아주 간단한 것이라도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 제도나 물건이나 체계가 누구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여성의 특성과 필요가 반영된 젠더데이터를 만들어, 이를 바탕으로 공백을 메우고 사회의 균형을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상황을 고려한정책이라면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 P19
성폭력의 원인은 화장, 야한 옷차림, 술이 아니라가해자다. 그래서 성폭력을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가해자가 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 P36
여성이 자전거를 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자전거 조차 못 타게 하는 문화가, 어디에선가 눈에 보이지 않는약한 여성의 목숨을 빼앗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 P52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손해로 여기고 꺼린다면, 결혼과 출산이 이익이 되게 할 정책과 제도적·문화적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2016년 행정자치부가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대한민국 출산지도‘ 홈페이지를 만들었는데, 여기에 지역별 ‘가임기 여성 수‘를 표시한 지도가 있었다. 정부가 여성을 ‘애 낳는 도구‘로 본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여성들의 결혼과 출산 거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P80
아내의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그녀에 대한 일상적인 폭력을용인하는 사회를 건설해 왔으며 ‘그것을 사소한 문제, 탈정치적문제로 치부했다고 말한다. "가정폭력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가장 광범위하고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는 폭력이다." 폭력이 가부장제 속에서 강화된다.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사회 구성원보다는 가족 구성원으로서 구실을 우선적으로 요구받는다. 이에 따라 폭력 남편들은 자신이 아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을 때 자신에게 교정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폭력을 범죄가 아니라 역할 수행으로 받아들이는것이다. - P95
남성이 임신에 기여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여성의 신성은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것이 되었다. 그리고 숭배 대상이 남근으로 바뀌었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인류가 자연에 순응하는 채집보다는 자연을 길들이는 집약적 농업을 통해 안정적으로 먹을 것을 구하게 되고, 육체적 힘이 필요한 농사가 남성의 일로 여겨졌다. 한곳에 머무르며 농사짓고 사는 집단 간 다툼이 벌어져도 힘이 센 남성이 적극적으로 군사를 조직하고 나서면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여성에게 있던 권력이 이렇게 차차 남성에게 넘어가고, 여성이 날마다 하는 반복적인 일은 폄하되었다. 이런 힘의 이동은 전세계의 신화가 뒷받침한다. 지역에 따라 시기는 다르지만, 예수탄생 전 1000년 동안 대모신은 서서히 사라지고 그 자리를 남신이 차지했다. - P134
그런데 나이팅게일은 아픈 병사를 묵묵히 치료하는 이미지에가둘 수 없는 투사였다. 그녀는 사실 ‘망치를 든 여인‘으로 불렸다. 군의 지휘관이 필요한 의약품을 주지 않자 잠겨 있던 약품 저장실을 과감하게 공격해서 붙은 별명이다. 나이팅게일이 든 ‘망치‘ 대신 ‘등불‘만 강조하는 것은 그녀의 혁신적이고 강한 모습을당대 남성들이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 P149
사실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도 돌봄은 지나치게 여성만의 일이었다. 그러다 전에 겪어 보지 못한 팬데믹 상황에서돌봄이 필요한 곳은 많아지고 여성의 부담이 더욱 커진 것이다. UN은 2020년 4월에 발표한 정책 보고서에서 코로나19 가 여성들이 수십 년간 노력해서 일군 성평등 관련성취를 후퇴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코로나19로 가중된 돌봄 노동이 육체적인 고통과 고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 P164
정치철학자 이현재가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을 ‘규정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비체(abject‘라고 명명했다. 비체는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 공포스럽고 더러운 것‘으로 여겨지며 ‘기존의언어와 질서로는 파악할 수 없는 존재‘다. 이들은 특정 정체성을공유하지 않고 저마다 다른 자리에 있는 ‘분절된 타자지만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며 서로 의존하고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공감을 통해 연대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낯설고 공포스럽던 메리와 그녀의 괴물에게서 비체가 보인다. 이때 비체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가능성이다. - P214
약자로서 자신을 잘 성찰한여성의 상상력은 소외된 모든 사람에게로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혐오가 일상이 되어 버린 시대에 약자의 자리에서 세상을바라보는 글들이 더 많이 흘러나와야 한다. 여성이 글을 쓰는 이유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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