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는 오스트리아의 사회학자이다. 따라서 저자가 예로 드는 사회적 현상 대부분은 유럽과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그 사례의 내용들이 오늘의 한국에 갖다놔도 별로 어색함이 없다. 이건 글로벌화의 영향도 있을테지만 더 중요하게는 유럽 사회와 한국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가 비슷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제기하는 핵심 담론들은 큰 위화감없이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로 읽어도 무방했다.

이 대목에서 세계를 균질화시키는 신자유주의 아니 자본의 힘에 또다시 짓눌리는 느낌이다. 자본의 세계화만큼 그에 대한 저항도 세계화 될 수 있을것인가를 생각하면 잠시 암담하다. 그러나 암담하다고 생각과 행동을 멈출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는 여전히 세상의 변화를 믿는 철없는 낭만주의자라는 내 포지션을 지키고 싶으니까..... 물론 이 말은 전혀 과학적이지 못할뿐만 아니라 몽상적이기까지 함을 모르는바는 아니다. 며칠전 휴가여행에서 함께 했던 친구들에게도 엄청 질타받았던 바이기도 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런 희망이라도 갖지 않으면 삶이 너무 암담하지 않은가? 끊임없이 책을 읽고싶은 이 욕망도 어쩌면 이 암담한 세상에 매몰되고싶지 않은 발버둥일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 열정페이도 마다하지 말고. 그러면 너는 성공해서 부와 성공을 이룰 것이다.

수많은 책들이, 유명인사들이 부르짖는다. 그 첨병에는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오프라 윈프리같은 유명인사들이 포진해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면서 외면하고 있다. 젛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실제로 얼마되지 않으며, 좋아하는 일을 해도 성공하는 사람은 극소수라는걸. 왜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의 끝은 남과 다른 신화 창조적 부와 성공이어야 하나?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면서 그 일의 노동조건과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투쟁과 연대가 더 좋은 사회를 만들고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길이라는건 왜 말하지 않는가? 사실은 모두가 답을 알고 있다. 자본의 입장에서 유리한 것은 수많은 개미들이 죽어라고 경쟁하는 것임을. 그래서 오늘도 신화는 만들어지고 널리 널리 울려퍼진다. 청년들이여. 연대하지 말고 경쟁하라! 그래서 성공하라!

같은 의미에서 이제 실업은 사회나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실패로 귀결된다. 이런 이데올로기의 능력이 얼마나 탁월한지 개인 실업자들 조차도 다른 실업자와의 동일시를 거부하고 나와 타인을 구분함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지키려고 한다. 이 대목에서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OECD 상위 국가들의 중산층 신화를 생각해보게 된다. 실제의 처지와 관계없이 많은 사람이 나는 중산층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능력이 없어 실업자가 되는 저들과는 다르다는 생각, 이런 심리적 허구적 중산층의식 역시 나와 타인을 구별짓고 실업자간의 연대를 무시하며 이 차별적 사회의 근간을 굳건히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이주민은 설 자리가 없다. 생각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청년문제 실업자문제에서 그러하듯이... 제주에 예멘 난민들이 들어왔을 때 우리 사회가 보인 극도의 히스테릭한 반응들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최대한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선을 그었다. 그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우리 나라로 전 세계의 난민이 몰려오고, 그들은 모두 잠재적 범죄자일 것이며, 결국 우리의 세금을 도둑질하는 악이 될것이란 상상이 그 히스테리의 근저에 있지 않았을까? 최대가 아니라 이 책의 저자가 제시하듯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는 무엇인가에서 출발한다면 좀 더 이성적이기라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난민문제가 어렵다는걸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유럽의 극우세력이 하는 주장을 우리는 반 이상의 국민이 주장한다는 것이 너무 서글펐을뿐....

성, 젠더의 문제에 대한 접근에서도 여성의 입장에서의 접근뿐만이 아니라 남성의 입장에서의 접근이 흥미롭다. 미국의 총기사건은 대부분 남성 그것도 중산층 백인 남성이 절대 다수란다. 자신의 억압된 남성다움을 폭력으로 폭발시키는 양상에 주목하면서 남성성을 강요하는 문화에 대해 고민을 던져준다. 이것은 또한 성범죄, 왕따문제, 시기피해 등에 있어 피해자에게 오히려 책임을 묻는 사회현상과도 당연히 관련되어 있다. 이런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유지하고자 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사회는 어느 정도 공정하고 나만 잘하면 부당한 일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공정한 세상 가설‘이 있다고 한다. 당연히 지배층에 가까울수록 이 가설을 믿는 경향이 강하다. 자신의 성공이 공정하다고 가정해야 자신이 도덕성이 훼손되지 않을테고 성공 역시 정당한 것이 될테니 당연한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부당한 일을 당한 사람을 부정적으로 보며 나와 선을 긋고, 사회 정의의 실현을 위한 노력을 무화시킨다. 우리 사회에서 지금 미투참가자들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을 보라. 피해 예방에 애쓸것이 아니라 가해 예방에 애쓸 일이다.


이 책의 가장 독특한 시각 중 하나는 이른바 진보적인 사람들의 도덕적 우월성에 대한 것이다. 유기농 식품의 섭취 및 재배, 공정무역상품 구매, 친환경 여행 상품의 구매,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한 제품의 구매 등 소비 영역에서의 이 변화들은 어떤 정치적 함의를 가질까? 물론 이런 행동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런 행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소비행위에서 도덕적 우월성을 가지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거리두기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뒤집어 생각해보자. 비싼 유기농 제품을 살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친환경이고 뭐고 도대체 해외 여행을 갈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말이다. 진정 환경을 위한다면 아예 여행을 안가는게 맞다. 이런 말의 의미는 앞에서 말한 소비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소비에서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결국은 계급의 문제다.

근대사회에서는 계급의 문제가 자본과 노동의 문제로 비교적 단순하게 나타났다. 누구의 눈에도 극명하게 계급 차별이 보였으니까. 하지만 이 시대 계급문제는 노골성과 은폐가 교묘히 결합되어있다. 특히나 유럽이나 우리나라처럼 살만한 나라들에서는 누구나가 중산층이며 상류층으로 역전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끊임없이 주입하고 있다. 그러므로 타인의 부당함은 나의 부당함이 될 수 없다. 거기에 나와 타자의 구별과 차별, 거리두기가 있르며 이 선을 넘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희망은 멀고도 멀것이다.

최근의 새로운 부동산법을 둘러싸고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진통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온국민이 잠재적 부동산 투기자이고 과반의 국민이 실제적 부동산 투기자인 나라에서 어떤 부동산정책도 결국 보수화되어버리지 않을까라는 의문이다. 부동산을 통한 중산층 상류층으로의 신화달성! 그 속에 내집마련이 환상이 되어버리는 빈곤층이나 이제 출발하는 청년들이 설 곳이 생길 수 있을까?

묵직한 주제에 비해서 책의 내용은 어렵지않다. 제목 때문에 얼마전에 읽은 선량한 차별주의자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일상적 미시적 차별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킨다면 이 책은 조금 더 거시적이고 이론적인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함께 읽을 수 있어 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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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지위가 낮으면 교육받을 기회가 적어 전문 지식을 쌓기 힘들 것이고, 그럼 당연히 실업할 위험성도 높다. 따라서 이들이야말로 실업자의 곤란한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것이다. 실업이 개인의 책임만은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이들이더 실업자의 부정적인 태도를 탓하며,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실제로 많은 실업자들이 자신은 다른 실업자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상황 탓에 일자리를 잃었지만 남들은 자기 잘못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며 자신과 남들을 구분한다. 동일시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집단을 꾸릴 여지가 없어질 것이므로 실업자조직을 만들어 사회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도 자동적으로 사라지고 만다.
- P111

공정한 세상 가설 - 세상은 공정하고 정의롭고 안전하기에 나만 제대로 행동하면 공정한 결과가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다. 자신도 부당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무섭고 불안하다. 그래서 우리는 부당한일을 당한 피해자에게 그 책임을 전가한다. 그래야 자신은 계속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다음과 같이 여기고 믿는다. 세상에는 정의로운 규칙이 있다. 나쁜 일은 불운의 탓이 아니라 그 개인의 잘못된 행동 탓이다. 세상만사가 뿌린 대로 거두는법이다. - P151

이런 장점들이 있음에도 이 가설은 여러 가지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으면 굳이 정의 구현을 위해 노력할 이유가 없다. 사회심리학자 지크 루빈 (Zick Rubin)과 레티티아앤 페플로 (Letitia Anne Peplau)는 세상이 공정하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연구했다. 57 그 결과에 따르면 세상의 공정함을 믿는 사람들은 불이익을 당하는 집단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또 사회를 변화시키거나 사회적 약자의 고단한 상황을 개선해주고 싶은욕망이 적었다. 이들은 자기 불행은 자기 탓이라고 믿음으로써 자신의 세계관을 지키려 애썼다. 그런 일을 당해도 싸다는 생각, 자업자득이라는 믿음은 약자에 대한 공감을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 P152

이런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기대가 돈과 시간을 요하는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식에게 모유를 먹여야 한다는 도덕적 정언 명령 역시 시민 가치의 상징적 표식이다. 그렇게 되면 일하느라 모유를 먹이지 못하는 엄마들을 향해 도덕적으로 해이한 인간이라고 손가락질을 할 수 있다. 아이에게 모유 수유를 할 수 있는능력은 한 가정의 경제적 상황이 아니라 도덕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물론 의식 있는 식습관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한 계급의 우월함을 표현하고 사회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데사용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 P181

녹색 제품과 서비스를 선택한 사람들은 두 가지 목적을 이룬다. 지구를 구하겠다는 개인의 목적과 기업의 매출과 성장, 이 두가지 목적에 기여한다. 공정 제작 스마트폰이나 플라스틱 병을 재활용한 배낭을 구매하는 것은 소비재를 더 집중 소비하면서도 양심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제품 제작의 환경 영향만을 고려할 뿐, 진정한 환경 보호가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소비를, 제품을 아예 포기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일 테고 나아가 더 지속 가능한 세상을만드는 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시장 친화적이지 않고기업에 유익하지 않으며 소비 지향적 상류층의 자기 과시에도 별도움이 안 된다.
- P184

하지만 더 나은 세상의 비전은 인간에 대한 관심과도 함께 가야하지 않을까? ‘무지한 인간들‘을 배제하는 독선적 경계 짓기야말로 1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신중한 식습관은 교육 및 수입과 매우 긴밀한 관련이 있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방어의 안전지대에서 걸어나오라고 애걸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자신의 안전지대에서걸어 나와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들여다보는 쪽이 더 의미가 있을것이다. 정직한 공동체는 윤리적으로도 바람직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런 공동체는 물질적 차이나 교육 수준의 차이가 도덕적불평등으로 이어지지 않고 서로 다른 시각을 관용으로 대할 수 있을 때 생겨난다.
- P189

요즘엔 세계관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등지는 사람들이점점 늘고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우리의 존재를 위협하는 나쁜 인간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 다채롭고 열린 민주주의의 기틀은 의견의 자유다. 그 말은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의견도 인권 규약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항상 관용으로 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관용이라고 해서 다른 입장에 동조하라는 것이 아니다. 거슬리더라도 ‘남의 생존권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 P226

우파 포퓰리스트들과 많은 에너지 기업들이 그렇게 강력하게 기후 변화를 반박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그래야 자신들의 행동방식과 기존의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고 막대한 부과금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진실 공격의 새로운형태와 마주하게 되었다. 진실과 거짓을 정하는 것은 독립된 사실과 의견의 다양성, 이성이 아니다. 정치권력이 진실과 거짓을 가른다.
- P234

분명한 것은, 이해를 하려면 정확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그러나상대의 입장과 논리보다 상대의 정치적 신념이 더 중요하다면, 공감이 자기 집단의 구성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라면 우리는 결코상대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없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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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외침은 위장되고 은폐된 엘리트주의이다. 항상 열정만 좇으며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열정을 바친 직업은 특권층에서 자기 최적화의 우아한 몸짓이 된다. 그들이 생각하는 직업은 돈과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자아실현의 행위이다. 자아는 직업을 통해 마침내 정당화된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래픽 디자이너인 것이다.
- P23

애플의 성공을 잡스 개인의 사랑과열정의 결과인 양 선전하는 것은 지구 반대편의 애플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수천 노동자의 땀과 노동을 외면하는 짓이다. 스티브잡스가 일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다 이들의 노동 덕분이다.
- P25

페이스북 공동 경영자 셰릴 샌드버그,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한 백만장자 빌 게이츠, 토크쇼 사회자 오프라 윈프리, 이들 모두는 진보 사상가의 가면을 쓴채 자본주의 원칙을 떠받친다. 오프라 윈프리는 꿈을 실현해야 한다고 설교한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모험은 꿈꾸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녀가 말하는 그 꿈을 실현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현실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현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다. 이 현실을 만든 책임자나 이해 집단, 노동 조건, 정치나 제도를 바꿀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그 결과 우리는 현실에 순응하고 탈정치화되며 자족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소비자와생산 도우미로 전락하고 만다.
- P26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폭력이 특정 목적을 이루기 위한 남성 특유의 길이라는 점이다. 폭력의 한 종류는 내적 고통의 외적 표현이다. 가령 소속되고 싶은 갈망이 채워지지 못해 절망하고 분노하다가 폭력을 휘두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기대와 규범은남성들에게 특정한 감정만 허용한다. 분노와 화는 공동체의 남성구성원들에게 용인되고 기대되는 정서적 표현 형태이다. 하지만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여성성 이미지에 따르면 여성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폭력을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 P70

어려서는 남자아이들도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는다.
하지만 자라는 동안 여자보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끊임없이 학습당한다. 자기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것은 자연스럽지 않을뿐더러 자신은 물론이고 남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슬픔과 절망을 억누르다 보면 나중에는 아예 느낄 수도 없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면 남의 아픔도 공감할 수가 없다. 고통과 아픔을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이 여자 같은 짓이라고손가락질당하다 보면 결국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없고 남의아픔을 같이 아파할 수도 없게 되고 마는 것이다.
- P75

다. 현재 가장 난민이 많은 나라는 유럽이 아니라 터키와 요르단(각각 250만 이상), 레바논과 파키스탄(각각 100만 이상)이다. 그러니우리는 접근 방식을 뒤집어 하한선을 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은 무엇인가? 우리는 얼마나 많은 난민을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럼 사고방식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필요 이상은 안 돼‘에서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최소한의 도리다‘
로 바뀔 것이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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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저자 버전인, 글을 쓰는 네 가지 이유, 자신을돋보이게 하려는 욕망, 미학적 열정‘, 역사에 무엇인가 남기려는 의지, (좋은) 정치적 목적, 나는 모두 아니다. 나는 승부욕이다. "말로든 글로든, 싸워서 이기려고 하지는 맙시다." (97쪽)아,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는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글을 쓰는데,
- P66

거리에서 하는 노동은 쉽지않은 일이다. 전단지 아르바이트와 피시방 밤샘일은 저임금 알바중 하나다..........수십 장을 그냥 버리고 싶은 유혹, 받지 않는 사람에 대한 분노, 춥고 더운 날씨의 어려움,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을 귀찮아한다는 비참함이 일이 끝난 후에도 이어진다. 상상력은 지구 밖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보이지 않았던 곳을 생각하려는 마음이다. 전단지를 기꺼이 받아주는 작은 선행은, 그들의 노동 상황에 대한 큰 상상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 세상에 부족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상상력이다. (37쪽)- P72

매일매일이 괴로운 뉴스다. 타락이 공기와 같고 언어도단이일상이다. 욕망에 한계가 없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부럽기까지 한 이들,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사회가 그들 편이기 때문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에게 그만하라고 한다. 천지가 그런 사람이니 너만 다친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다치고 공동체는 붕괴된다. 누가 멈춰야 할까.
- P75

저들이 두려워하는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이번사건에서 최순실급‘ 연루자들은 최소한 종신형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자신이 한 일을 안다. 아니, 몰라도 상관없다. 정의는 그들의 교정(橋正)이 아니라 공동체의 정상화다. 인간이 변하는경우는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상대방이 저항할 때이고, 나머지는 자신이 고통을 받을 때다.
- P81

주장할 것이 없는 사람, 주장이 없어도 되는 사람은 글을 쓸필요가 없다. 안주 상태에서는 참된 문학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글이란 뜻을 드러내면 그뿐" 이다. 뜻을드러내다‘의 원문은 사의(寫意)인데, 직역하면 ‘뜻을 쏟아낸다.
는 뜻이다. (83쪽) 자기 주장이 창작의 요체다. "남을 아프게 하지도 가렵게 하지도 못하고 구절마다 범범하고 데면데면해서우유부단하기만 한 글을 어디다 쓰겠는가."
- P90

익숙한 말은 진부하게 여기고, 어렵다고 느껴지는 말에 호기심을 보이는 사회가 창조적인 사회가 아닐까. 사회적 약자가 경험을 드러내면 사소한‘ 것인데도 불안하게 느껴지고, 가진 자의 논리는 편안하게 느껴지는 사회에서 인간성은 어디를 향하게 될까- P108

이처럼 인생= 길이라는 통념은 다양한 경험을 이해하는 데방해가 된다. 상투성의 원단,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은단지 선택하지 않은‘ 삶일 뿐이다. 선택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갈 수 없는 길이고 이미 삶이 아니다. 외출 준비에 한나절 이상 걸리는 장애인, 여성이 피하는 밤거리, 치매와 광장공포증환자에게 길은 도전이자 치열한 정치다. 비장애인의 걷기, 걷기투쟁이 많지만 이진섭, 이균도 부자에게 길은 그들과 같지 않다. 이 책은 길의 의미가 사람마다 얼마나 다른지를 생각하게한다.
- P128

우리는 모두 각자 다른 몸들이다. 같은 성별이라도, 장애인‘
으로 분류되어도, 같은 몸은 없다. 몸의 다름이 정치의 근거가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가장 오해하는 말, "사는 대로 생각하지말고 생각하는 대로 살자."는 최악의 구호다. 인간은 평생 자기생각에 다다르지 못한다. 생각은 몸의 배신자. 늘 타인의 시선과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머리(희망 사항)만 앞서간다. 오히려, 사는 대로 생각해야 한다. 모든 망상, 이데올로기, 거대 관념이 무너질 것이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가 아니라 삶 자체를 사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몸이 안 움직이는 사람‘은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
- P138

"나는 평화를 기원하기보다 목숨 걸고 싸우는 약자의 정의가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연대의 기록이라는 의미에서,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 (18쪽) 평화는 투쟁이라는 저자의 시각이반가웠다. 오인한 제목은 "평화를 믿지 않는다" 였다. 나는 평화를 믿지 않을 뿐 아니라 평화를 기원하는 사람도 믿지 않는다.
평화?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평화는 인간의 심장이 꺼질 때에야 찾아온다.
- P139

상처는 재해석될지언정 사라지지 않는다. "너는 아프니? 나는 안 아픈데. 마음을 비우면 되거든." 시장에 넘치는 힐링서 중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문제를 피해자의 마음 탓으로 돌리는 책들이 많다. 어디를 비우라고? 마음은 몸인데 비우면 죽지 않을까? (남에게 비우라고 말하기 전에 ‘멘토‘들은 자기 마음, 아니 통장부터 비우기 바란다.)- P192

세월호로 타살된 이들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을 삶에 대한 고민 자체를 빼앗겼다. 이 사실이 가장 나쁘다. 존재 이전에 존재의 의미를 없앤 것이다. 유목과 무명의 인생을 고민하고 설레어하고 마침내 그렇게 살다가, 홀로 황량한 언덕에 서 있는 삶도 영광이다. 삶과 죽음의 가장 큰 차이는 가능성이다. 행이든불행이든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를 가능성. 인간은 행복이아니라 가능성을 추구하는 존재다. 그래서 너무 일찍 죽으면 안되는 것이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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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쓰기의 ‘세 요소가 정삼각형 같은 형태라고 생각하지않는다. 이들은 상호 보완적이거나 대립하지 않는다. 핵심은 윤리다. 소재에 대한 태도와 글쓰기 방식이 정치적 입장과 미학을결정한다. 탈식민주의와 페미니즘 사상의 핵심은 재현의 윤리이다. 누가 말하는가. 누가 듣는가. 누구의 목소리가 큰가. 누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사람들이 듣기 싫은 말은 무엇인가. 사회는 누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가. 이러한 권력 관계의 동학은 교육 현장, 출판 시장, 미디어 같은 구체적인 장에서 어떻게 구현되는가. 글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결정하는가.
- P15

타자화(他者化)란 "나는 그들과 다르고 그 차이는 내가 규정한다."는, 이른바 ‘조물주 의식‘이다. 이러한 자기 신격화는 민주주의와 예술의 적이다. 윤리적인 글의 핵심은 다루고자 하는 존재(소재)를 타자화하지 않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알고,
변화시키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남을 억압하는 사람은 자신을해방하지 못한다. 실천적이고 진보적인 글은 불쌍한 이들에 대한 리포트가 아니라 글쓰기 과정에서 재현 주체와 재현 대상의권력 관계를 규명하고, 다른 관계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다.
- P15

"그들의 상황은 이렇다." (숭배, 연민, 공감……), "나는 그들로부터 현실을 배웠다."는 식의 글쓰기나 초월적 주체들의 ‘힐링의서(書)‘는, 나쁜 글로 보이지 않는다. ‘우월한 자신‘을 재생산하는 이러한 글쓰기가 바로 폭력이요, 지배의 재생산이다. 오리엔탈리즘과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언설이 가장 광범위하고 역사가깊은 예다. 자신을 주체(one)로 상정하고, 자신을 중심으로 삼아. 나를 제외한 나머지들 (the others)‘로 세계를 규정하는 것이다.
- P16

생각해본다. 나는 타인에게삶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인가. 인간에 대한 혐오로 죽고 싶은 마음을 부채질하는 사람인가. 우리 사회는 구성원들이 ‘어쨌든 살아보자‘는 의욕을 일으키는 매력적인 곳인가.
고통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가능성뿐이다. 생사의 갈등으로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에게 제시되어야 할 것은 미지라는 기대가 있는 사회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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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7-26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희진씨의 첫 책을 좀 어렵게 읽어서 그런가 그 이후로는 쳐다보지 않게 되네요. ^^;; 하지만 올려주신 글 잘 읽었어요.

바람돌이 2020-07-27 23:58   좋아요 0 | URL
저도 첫 책은 어려웠어요. 머리 싸매며 읽었던 기억이... ㅎㅎ 이 책은 그 정도는 아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