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은 한 여자의 영혼에서 시저의 정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미술사 책을 왠만큼 봤다고 생각하는데도 이 책 속에 있는 21명의 여성 화가들 중 내가 알고 있던 이는 겨우 4명에 불과했다. 기존 미술사에서 얼마나 여성 예술가들이 폄훼되고 지워졌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여성들의 그림은 때로 아버지나 남편의 이름으로 팔려 나가거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역사화나 종교화쪽으로는 아예 진입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르네상스 시기만이 아니라 20세기 다다이즘의 한나 회흐조차도 남성 예술가들을 보조하는 위치만을 강요받는다.

예술이란 결국 세상을 보는 다양한 방법과 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세상의 반인 여성의 시각도 그 반만큼 중요할 것인데 권력의 역사란 항상 자신의 시각이나 생각과 다른 것을 지워온 역사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최근에 읽은 책들을 통해 이 책을 다시 들여다 보면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소수자들 - 성적소수자나 장애인, 이주자들의 예술과 시각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성의 예술사가 지워졌듯이 지금의 우리는 다른 소수자들의 예술을 함께 지우고 있을 수도 있으므로....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서 만났던 젠틸레스키의 유디트 그림앞에서 받은 충격을 잊지 못한다. 여성의 눈에서 적장의 목을 베는 여성은 카라바조의 그림속 연약한 소녀일리가 없다는 것을 강렬하게 웅변하고 있었다. 이 책속 화가들의 그림이 모두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수잔 발라동의 자화상들이나 젠틸레스키의 그림, 그리고 한나 회흐와 파울라 모더존 베커의 작품들은 두고 두고 다시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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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2 0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0-07-22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은 아르테미스의 말이구요. 저도 멋지더라구요
여기 소개 된 화가들의 그림들은 정말 여태까지 알려지지 않은게 안타까울 정도로 좋더라구요.

ㅇㅇ 2020-07-22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었습니다. 다만 장애우라는 표현은 더 이상 쓰지 않는 표현이며 장애인에 대한 시혜적 시각이 들어간 단어입니다. 장애인이라고 칭하는 것이 맞습니다.

바람돌이 2020-07-22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고쳤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이스테르 그림은 왜 할스의 작품으로 둔갑했을까?
그녀는 작품에 자신의 이름 이니셜 ‘JL‘과 별 마크로 구성된 모노그램을 남겼지만, 정작 그림은 화가였던 남편 얀 민세 몰레나르 Jan Miense Molenaer나 프란스 할스 Frans Hals 작품으로 팔려나갔다. 여성의 예술적 전문성이 남성보다 현저히 떨어진다고 인식됐던 시대이니 금전적 이익을 위해 여성 화가의 작품이 남성 화가의 작품으로 둔갑하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이것이 그녀의 이름이 사망 후 미술사에서 사라졌던 결정적 이유이다.
- P60

그러기 위해서는 인체 근육 묘사에 능숙해야 했으므로누드 데생 수업은 필수였다. 그러나 남성 화가들이 남자 누드모델을 앉혀놓고 직접 드로잉하는 실기 수업에 앙겔리카 카우프만과 메리 모저는 아카데미 회원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배제되었다. 이것이 의과생이 인체를 해부하며 의학을 연구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여성 화가들이풍속화, 풍경화, 정물화 등 회화의 군소 영역으로 밀려나야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72

어머니와 아이를 그린 작품들은 마치 마돈나와 아기 예수를 그린 종교화의 구도를 연상시키는데, 이것은 카사트가 육아를 여자라면 누구나 쉽게 해내는 그림자 노동으로 보지 않고고귀하고 가치 있는 일로 생각했음을 드러낸다. 남자의 사회생활만큼 존중받아야 할 일 말이다. 르네상스 시대 자애로운 마돈나의 모습과 카사트의 그림 속 어머니가 다른 점이라면 이상화되지 않은, 현실적이고 정직한 일상의 어머니라는 점일 것이다.
모리조는 인상파 그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급진적이고 현대적인 미술 실험에 동참했다. 사실 마네에게 옥외에서작업하고 좀 더 다채로운 색채를 사용하도록 조언한 것도 모리조였다. 그녀의 작품은 결코 남성 인상파 화가의 작품보다 덜혁명적이지 않은데도, 여전히 섬세하고 우아한 여성성을 표현했다는 비평이 지배적이다. 카사트와 마찬가지로 그림 소재 때문에 빗어진 편견이다.
- P99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Artemisia Gentileschi, 1597~1651는 최초의페미니스트 화가로 불린다. 젠틸레스키는 17세기 여성으로서는 아주 독립적이었고, 전문 직업인으로도 성공했으며, 작품역시 강인한 여성상을 묘사했다. 젠틸레스키가 한 고객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기도 했다.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은 한 여자의 영혼에서 시저의 정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 P131

그런데 남성 화가들이 목욕하고 있는 수잔나의 성적 매력에 초점을 맞추고, 심지어 장로들의 희롱을 은근히 즐기는 수잔나를 그렸던 데 반해, 젠틸레스키는 매우 다른 시각으로 이주제를 다루었다. 즉, 남자들이 자신을 관음적 시선으로 훑고희롱하는 것에 고통을 느끼는 수잔나를 보여준 것이다. 이는 자신의 경험에서 온 트라우마를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 P137

그런데 그녀의 정물화에는 흥미롭게도 숨은 그림이 곳곳에 있었다. 바로 정물화 속 백랍 주전자 위, 황동색 금속 고블릿 등에 자화상을 그려 넣은 것이다. 마치 언젠가 사람들이 정물에 숨은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고 그 존재를 알아봐주길 수백년 동안 기다린 듯 느껴지지 않는가?
페테르스는 포도주잔, 접시, 동전, 식기 등에 반사된 빛에 특히 매료되었다.- P147

정물화에서는 이런 세속적인 향락 문화와 더불어 바니타스의 개념이 혼재되어 나타났다. 물질적 소비를 즐기는 동시에세속적 재화의 공허함을 드러낸 것이다. 이것은 당시 사회에 상반된 생각이 공존했음을 보여준다. 즉, 바니타스 정물화는 16~17세기에 싹을 틔운 근대 자본주의 정신과 중세 금욕적 전통의갈등을 보여주는 동시에 근대 물질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과도기를 드러낸 미술 장르였던 셈이다. 금욕적인 신교의 교리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현세적 쾌락을 즐기고 부를 과시하고 싶었던 사람들의 바람을 정물화가 절묘하게 만족시킨 것이다.
- P159

파울라 모더존 베커는 서양 미술사에서 최초의 누드 자화상을그린 여성 화가이다. 미술의 역사에서 여성의 몸은 오랫동안 남성의 시각적 쾌락을 만족시키는 대상으로 그려져왔다. 남성 화가의 모델이 된 여성들은 아름답게 보여야 하는 대상물이었을뿐 그 자신이 주체적 인격을 가진 존재로 대우받지 못했다.
모더존 베커가 자신의 누드를 그리며 최대한 형태를 단순화하고자 했던 것은 여성의 몸이 표현하는 이러한 관능성을제거하기 위해서였다. 
- P199

이제 21세기다. 이쯤이면, 여성 미술가를 얕보고 비우호적으로대우했던 과거 성차별을 인식하고 수정해야 할 시기가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시도는 여성이 주체가 되어야한다. 인간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혁신하려고 했던 어떤 급진적인 정치 · 사회적 운동도 남성들이 주도하는 한, 여성 문제에관해서는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잣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나 회흐가 작품에 담은 메시지가 의미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회흐는 작품을 통해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을 고발하고여성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애썼다. 미술계, 그리고 모든 분야의성차별은 비단 여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성평등을 비롯한 인간평등은 문명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이기때문이다. 여성이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누릴때, 남성 역시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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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 이전의 서양화는 언제나 어렵다. 왜냐하면 그림의 아름다움 여부를 떠나 그림의 소재가 대부분 서양의 역사거나 신화 아니면 성서의 이야기들을 소재로 하고 있어 그림이 담고 있는 스토리를 모르면 무슨 내용인지 어떤 장면을 그린건지 잘 모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카노 쿄코의 그림 이야기는 항상 재밌게 읽힌다. 내가 모르는 그림속 이야기를 아주 친절하게 풀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도판의 훌륭함은 그림을 온전히 보여주기까지 한다.

아 도판 얘기를 하려니 뭉크의 절규 얘기부터 해야겠다.
아주 운이 좋게도 노르웨이에 간적도 없는 내가 뭉크의 절규를 직접 미술관에서 만났었다. 2년전쯤 겨울에 중학교를 졸업했던 둘째 딸과 둘이서 일주일정도 일본 도쿄 여행을 했었다. 둘 다 그림에 관심이 많아 그야말로 미술관 여행이었는데 정말 운이 좋게도 뭉크 전시회를 만날 수 있었다. 그 때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이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갔다던가? 하여튼 밖으로 거의 나오는적이 없는 절규를 비롯한 뭉크의 엄청나게 많은 그림들이 일본 나들이를 한 것이다. 뭉크의 초기작부터 후기작까지 많은 작품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었던 행운이었다.
평일 아침 일찍 미술관을 찾았는데 사람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우리도 유명한 그림이 오면 미술관이 복작복작하지만 이건 그 수준 이상이었다. 조용한 관람은 물건너갔고, 뭉크의 절규앞에서는 딱 2분정도 봤다. 줄 서서 이동하면서 사람에 떠밀려 봤으니.... 원작을 본 감동? 잘 모르겠다. 워낙에 많이 알려진 작품이고 이 책 도판이 워낙 훌륭하다보니 지금 도판으로 보는 것이나 별로 다르지 않은듯하다.
일본의 서양미술에 대한 관심은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듯하다. 그 짦은 기간동안 내가 본 대형 전시만 뭉크전, 베르메르전, 루벤스전 3개였다. 전시의 규모도 대표작 1,2개에 소품들로 채우는 우리 전시와 달리 마치 현지에 가서 보는 듯 온전하게 작가의 연대기별로 충실하게 시기별 대표작을 모두 알차게 채워놓은 전시였다. 도대체 어떻게 이 많은 작품들을 한꺼번에 가지고 올 수 있었을까 싶은.....또한 그외 상설 전시관들의 컬렉션도 굉장히 훌륭했고.....
아마도 이런 문화적 환경이 나카노 쿄코같은 작가를 만들어낸게 아닐까 싶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다양한 작품들을 보고 즐길 수 있었던 사회적 인프라랄까?
더구나 도쿄의 대형미술관들은 모두 우에노공원 안에 몰려있다. 멀리 찾아 다니지 않아도 하루종일 걸어서 미술관만 돌아다녀도 되니 접근의 편리함이 아마도 이런 미술에 대한 관심과 소양을 더 키워줄듯하다. 이 부분은 살짝 부러웠다.

나카노 쿄코의 이번 책은 운명이라는 주제로 그림들을 모았다. 책 속의 그림들은 이미 본적이 있는 그림들보다 처음 보는 그림이 더 많다.
시작부터 로마의 검투 장면을 거린 제롬의 <아래로 내린 엄지>로 시작해 패배한 검투사의 삶과 죽음의 기로의 순간을 표현한 그림으로 시작한다. 그림에 대한 설명과 함께 당시 로마의 검투사들의 처지 진행과정 등을 쉽게 설명하니 그림과 역사가 이야기로 어우러진다. 물론 깊이있는 심오한 이야기를 하는건 아니다. 이 책의 그림을 감상하는데는 약간의 배경지식만 있으면 충분할테니.... 누구든 쉬운 문장으로 상세한 그림 이야기로 쉽게 그림을 볼 수 있다는게 이 책의 최대 장점일듯하다.

의외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그림은 메인더르트 호베마라는 네덜란드 작가가 그린 풍경화 <미델 하르니스의 가로수길>이라는 작품이다.
전에도 어디선가 봤던 작품인것 같은데 그저 평범한 풍경화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갔던듯하다. 아마도 원근법의 들장 정도만 신경 쓰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그림이 내포한 스토리는 생각보다 흥미진진했다. 가로수길이라는 것이 시작은 귀족의 전유물이었다는 것. 하지만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전쟁을 벌여 자유를 쟁취했던 네덜란드에서는 이 가로수길의 계급성이 사라지고 장중함을 연출할 필요도 없이 누구나가 향유할 수 있는 길로 등장한다. 또한 네덜란드이 자연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그들의 치열한 고민이 이 그림속 길에 담겨있다. 포플러 나무를 선택한 것은 이 나무의 실용적 용도- 쳐낸 아래쪽 가지와 잎을 비료로 사용하고, 줄기를 습기가 많은 네덜란드에 적당하누나막신의 재료로 삼으며, 지면의 흙이 넘치는 물에 쓸려가지 않도록 단단하게 잡아주는 역할-를 모두 고려하여 네덜란드이 환경에 맞게 조성된 것이다. 풍경화 하나에서 당대 네덜란드인들의 지난한 삶의 과정이 모두 펼쳐져 있는 느낌이다.

표지 그림인 아리 셰퍼의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역시 이야기와 함께 읽으면 더욱 안타깝고 아름다운 그림이다. 불행한 정략결혼을 했던 두 연인의 사랑과 죽음이 어떻게 이야기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스토리와 함께 만나는 그림 이야기는 언제나 즐거운 독서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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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카데미에서 군림했던 장 레옹 제롬은 인상파 화가들의 앞길을가로막았다. 예술은 지적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한 그에게 인상파는 허용할 수 없었던 미술이었다.
- P21

지금껏 패배를 몰랐던 영웅호걸이 러시아의 혹한과 노련한 적장에게 처절하게 박살나 버린 일을 후세의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예전에 두 번이나 쉽게 이겼던 러시아군이었기에 아무리 자신만만했어도 상대편 지휘관이 미하일 쿠투조프(Mikhail Kutuzov)로 바뀌어 전략이 크게 변했다는 사실을, 우여곡절 끝에 모스크바까지 당도했지만 비참하게 패하고달아나야 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65만 명의 대군 가운데 살아서프랑스로 돌아간 병사의 수는 겨우 3만 명이었던 사실을, 또한 역사를통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다만 집무실의 본인만은 아직 모른다.- P53

예로부터 가로수길은 왕후와 귀족이 사유지에 냈던 특별하고 개인적인 도로였고, 보기에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우거진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제공했다. 대부분 성 안 정원에 조성했지만 성곽 밖으로 가로수 길이 난 경우는 보통 성문이나 사적인 예배당 등과 직접 연결되었다. 따라서 서민의 출입을 차단하여 선택받은 사람만 다닐 구 있는, 마치 레드 카펫과도 같은 길이었다.- P89

하지만 새롭게 탄생한 독립국 네덜란드는 특수한 나라였다. 당시주변국들은 어디든 절대주의 왕정 체제를 다지고 있었지만 네덜란드는왕족과 귀족도, 가톨릭교회도 몰아낸 나라였기 때문이다.(총독이 명목상최고 통치자였지만 의회가 존재하던 연방 공화정 체제였다.) 또한 이 시대는 자연을 힘으로 굴복시킨 인공의 나라였던 네덜란드가 해외 무역을 통해부의 축적까지 이루어 낸 황금기였다. 이제 가로수길은 더 이상 특권 계급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시, 읍, 면이 공공사업으로 건설하여 국민 전체에게 개방되었다. 길게 늘어선 나무도 당연히 장중함을 연출할 필요가없었다.
- P90

이렇듯 호가스가 묘사한 인간의 모습에는 한결같이 가차 없는 시선이 나타나 있다. 그의 냉정한 태도는 상류 계급을 향한 것만은 아니었다. 귀족이는 거지든, 남자든 여자든, 노인이든 어린 아이든 부자든 빈민이든, 현명한 자는 어리석은 자든, 그 누구도 호가스가 쥔 날카로운 풍자의 붓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죽음의 신과도 같은 평등주의가 바로 호가스가 지닌 매력이었다.
윌리엄 호가스는 "내 그림은 나의 무대이고, 등장인물은 나의 배우다."라고 항상 말했다고 한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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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 36 : 회화 - 우리 문화와 역사를 담은 옛 그림의 아름다움
백인산 지음 / 컬처그라퍼 / 201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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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역할을 보다 많은 대중에게로의 전시에 둘것이냐, 아니면 작품의 보존과 연구에 중점을 둘것이냐?

쉽게 답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또한 사람에 따라서 정말 다양한 의견과 생각이 제시될 수 있다고 본다.

아마도 그 의견들 대부분은 나름의 논리적, 심증적 근거를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나 스스로가 대중의 입장에서 그동안의 간송미술관의 활동방법에 대해서는 불만이 좀 많았었다.

1년에 2번, 무슨 시혜처럼 베풀어지는 소장품의 공개, 거기다 그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좁은 미술관 공간, 그리고 사설 미술관의 재정적 한계라는건 알지만 세련되지도 못하고, 친절하지도 않은 전시방식, 즉 연도와 작품이름, 작가이름만 덜렁 적어놓은 전시방식은 뭐 전문가들만 와서 보라는거야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물론 간송미술관이 자신들의 역할을 연구와 보존에 중점을 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간송미술관의 정책에도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일명 DDP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는 간송미술관 소장품 전시회(지금 3기 전시가 진행중이다)와 이 책 <간송미술 36 : 회화>의 출간이 그것이다.

또한 인터뷰형식으로 진행된 이 책의 저자 서문에서도 대중을 향한 조심스러운 첫걸음을 확인할 수 있어 반가웠다.

 

저자 서문에서 재밌는 말이 있어 살짝 옮겨본다. 또한 이 책을 읽는 키워드가 될 수도 있을듯하다.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그건 아는 것밖에 안 보인다는 말도 될 수가 있어요. 게다가 자기가 알아낸 것도 아니고 남이 알려준거잖아요. 그때는 '그렇구나'하는 생각이 들지만 금방 쉽게 잊어버립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오래전 유홍준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한 이후로 광풍처럼 몰아친, 그래서 지금은 문화유산이나 예술작품을 보는데서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말이다.

여기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 것도 재밌고, 실상 아는 것이 어떻게 알게된 것이냐에 대한 문제제기도 재밌다.

결국 알기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종적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의 관점으로 자신의 생각으로 미술품을 볼 수 있어야 진짜 제대로 보인다는 것이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고 그림의 기법과 배경을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하다못해 도망간 여자친구라도 떠올릴 수 있어야 실제 그림의 아름다움에 진정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조선시대 대표회화들의 배경과 기법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얘기하기도 하지만 그림과 예술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 끊임없이 얘기하고 있는것이 바로 이런 의도에서인듯하다.

 

책의 만듦새를 보면 제대로 된 그림책을 만들기 위한 배려가 곳곳에서 우러난다.

이런 책은 도판의 인쇄상태, 종이의 질 등이 모두 중요한데 전문가가 아니라 종이종류가 어떻고 할 수준은 전혀 안되지만 상당히 비싼 고급지임은 확실해보인다.

또한 도판의 인쇄상태 역시 이전 내가 실제로 봤던 그림들을 떠올려봐도 이정도면 아주 훌륭하다.

놓치기 쉬운 배려도 눈에 띄는데 그림을 최대한 돋보이게 하기 위해 그림이 있는 면은 아주 연한 노랑으로 바탕면을 다시 깔아준 것이 그것이다.

그림을 감상하는데 글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편집을 시원하게 했고 그림의 제목과 그림을 나란히 배치하기 위해 앞의 글이 짝수 페이지에서 끝날 경우 다음 한페이지를 아예 공백으로 두는 것도 책의 단가보다는 가독성을 우위에 둔 배려로 돋보였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때 페이지에 비해서 책값이 너무 비싼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 책을 다 보고 난 지금 그 책값이 결코 비싸지 않음을 알겠다.

이런 책은 싸게 만드는게 능사가 아니라 제대로 볼 수 있게 만드는게 중요하다고 할때 그 기본에 가장 충실한 편집을 보여준 출판사에 대한 신뢰도가 살짝 올라간다.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면 행복한 순간들의 연속이다.

과연 명품들의 향연이라 할만하다.

처음 리뷰를 쓰고자 할때는 포토리뷰를 생각했으나 되지도 않는 사진실력으로 어정쩡하게 그림을 올리는건 작품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은 실제로 보는 것이 최고고, 다음은 되도록이면 좋은 도판으로 보아야 한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회화작품 중에서 가장 대중성있고 지명도가 있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덕분에 아는 그림도 많고 대부분의 작가가 어디선가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보았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명품이되 부담스럽지 않게 편안한 마음으로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옛 그림을 본다는 것의 의미가 뭐일까를 계속 생각했었다.

옛 그림을 본다는 것은 시대를 본다는 것이고, 동시에 미적 감성의 공유를 통해 지금의 나를 들여다보는 것같다.

그러므로 옛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역사적 배경이나 작가에 대한 지식이 어느정도는 필요할 것 같고, 그러면서도 여기에 얽매이지 않는 나의 마음으로 그림을 보는 연습 이 양자가 함께 어울릴때 그림이 좀 더 깊이 보아지지 않을까 싶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의 저자는 상당히 좋은 안내자라는 생각이 든다.

 

시대적인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고려한 그림이야기로 인상깊었던 것들을 짚어보자.

첫 번째 그림으로 신사임당의 포도그림이 나온다.

음... 신사임당 하면 대표작이 초충도 아닌가? 그런데 대표작이 포도그림??

이런 의문이 드는데 실제로 사임당 당대의 평가를 보면 신사임당은 산수화와 포도 그림에 대한 평가가 높았다고 한다.

그런데 후대에 우암 송시열의 글을 결정적 계기로 하여  화가로서의 사임당보다는 율곡의 어머니로서의 사임당에게 어울리는 그림을 더 평가하게 되는 웃지못할 이데올로기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우암 송시열답다고나 할까?

 

이정의 작품 <풍죽>을 보면 바람앞에 흔들리면서도 꼿꼿함을 잃지 않는 대나무의 기개가 선비의 기개처럼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바람을 온몸으로 맞서야 하는 안타까움도 같이 느껴진다. 이는 이정이라는 화가의 개인사-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칼을 맞아 팔이 잘려나갈 뻔한-를 알고 보면 더 마음으로 와닿게 되기도 한다.

그런 이정의 말년의 그림 <문월도 -달에게 묻다>를 보면 이 위대한 대가가 개인적인 고난을 이겨내고 드디어 도달한 경지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단 2개의 그림으로 이정이라는 대화가의 삶이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착시를 경험하다니 이는 뛰어난 안내자의 힘인듯도 하다.

 

정선의 진경산수화들은 워낙에 알려진 그림들이지만 그럼에도 <단발령 망금강>을 저자의 설명과 함께 다시 보는 것은 새롭다. 동시에 이 대가가 그린 또다른 분위기의 <서과투서 - 수박 훔치는 쥐>의 그림은 같은 화가가 그린 그림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정겹고도 유머감각이 넘쳐난다.

 

조선후기 조선남종화를 탄생시킨 심사정의 그림은 사실 평소에는 그리 감흥이 없던 그림인데 이 책에 소개된 <삼일포>는 새롭게 알게된 저자의 불우하고도 불우했던 일생과 같이 보다보면 그 쓸쓸함이 배가되어 애잔한 마음이 든다. 더불어 눈내리는 삼일포를 그린것으로 알던 것이 실제로는 눈이 아니라 보관의 잘못으로 좀이 쓸어 구멍이 뚫린 것이라는 설명을 듣다보면 오히려 그림의 애잔함이 더해지는 기가막힌 우연을 만나게도 된다.

 

추사 김정희의 그림을 통해 쓰러져가는 조선의 마지막을 선비의 학문과 기개로 헤쳐나가고자 했던 그 마음이 그림을 통해 읽혀지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마지막의 몸부림이 지나친 경직화로 이어지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모든 그림이 이러한 시대적, 개인적 사회사를 통해서만 읽혀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그림들은 그것과 상관없이 보는 순간 무한한 아름다움의 세계로 이끌기도 한다.

강세황의 <향원익청-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다>속의 연꽃의 아름다움은 그 향기가 책을 뚫고 배여나오는 듯하고,

김홍도의 <마상청앵 -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을 보면 인생의 후반기에 선 노대가의 마음이 손에 잡힐 듯하다.

또한 역시 김홍도의 <황묘농접 - 노란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속의 어린 고양이는 당장이라도 포근히 안아주고싶을 만큼 사랑스럽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온갖 감정을 모두 느낀 듯하기가 쉽지 않은데,

역시 뛰어난 예술은 하나 하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임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책장 속에 꽂아두고 두고두고 펴가면서 보고 또 보고싶은 책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명백한 진리이지만, 그 아는 것을 뛰어넘는 것이 또한 예술을 보는 제대로 된 힘임을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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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1-08 0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책 정말 읽어보고싶게 만드는 글을 쓰셨어요. ^^
간송미술관 딱 한번 가봤는데, 그 기억도 이제는 가물가물하네요

바람돌이 2015-01-09 16:37   좋아요 1 | URL
두 번 가기 힘든곳이 간송미술관이잖아요. ^^
이 책 보고는 다른 소장품들에게 대해서도 이런 책을 좀 더 내줬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자신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간송미술관 팀이 지나치게 폐쇄적이란 느낌을 많이 받았었거든요.

라로 2015-01-08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전형필의 책을 읽었지만 간송미술관에는 가보지 못하고 미국에 와버려서 늘 안타까워요. 이 글을 읽으니 어떻게 해서라도 꼭 가보고 싶네요~~~.

바람돌이 2015-01-09 16:39   좋아요 0 | URL
한국에서도 쉽지 않은데 그곳에서 간송미술관을 가보려면 정말 신의 도움이 있어야 할 듯하군요. 일년에 2번(일주일씩인가?)밖에 안 열어요. ㅠ.ㅠ
부디 비비아님에게 그런 축복같은 행운이 가기를..... ^^

라로 2015-01-10 00:52   좋아요 0 | URL
일년에 두 번 일주일!! 그래서 제가 결국은 못 보고 온 거에요,,,ㅠㅠ 근데 정말 행운이 따라줬으면 좋겠어요~~~.엉엉

바람돌이 2015-01-10 01:41   좋아요 0 | URL
요즘 간송미술관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3번째 전시회인데 5월까지 한다죠. ^^ 혹시 그전에 한국으로 출장이....

돌궐 2015-01-08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소개 잘봤습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는 `만들어진 명작`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그런데 이런저런 평가들과 별개로 또 초충도 자세히 보면 정말 동물이나 곤충들 잘 그린 거 같아요.
아는 게 보는 걸 가릴 때도 있다고 하잖아요. - 명법스님 책에 나온 말이에요.^^

바람돌이 2015-01-09 16:41   좋아요 0 | URL
신사임당의 초충도가 유명세를 띄면서 모작이 정말 많이 만들어졌다더군요. 그래서 지금 남아있는 그림들의 진위여부가 사실 의심스럼다는 말도 이 책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식으로 생각하면 진위여부야 미술사가들에게 중요한거고, 그걸 실제로 신사임당의 그림이라고 믿을만큼 멋지다는거잖아요. 미술의 즐기는 입장이 저같은 사람이야 그렇게 멋진 그림을 볼 수 있으니 베낀것도 고맙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

댄스는 맨홀 2015-01-09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바구니에 담고 싶어지는 책이네요. ㅎㅎ

바람돌이 2015-01-09 22:17   좋아요 0 | URL
저는 좋았습니다. 책의 만듦새도 내용도요. ^^

달걀부인 2015-01-28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읽었습니다. 전 간송미술관빠예요. 일년에 두번밖에 열지않지만..가끔 거기 정원가서 놀다와도.. 친절하지도 않지만...거긴 식민지시대부터 우리것을 지키고자한 어떤 무시무시한...정신이 서려있는듯 하거든요.사색하기에 좋은 장소. 아. 바로 그옆에 섭지코지도 맛있어서..밥도 먹고요.. 이러나저러나 이 책이 얼마인지 궁금하네요.

바람돌이 2015-01-28 23:37   좋아요 0 | URL
서울에 산다면 일년에 2번이라도 가는게 아주 어려운건 아닐 수 있지만 지방사는 저는 정말 저 날짜에 맞춰서 보러가는건 정말 쉽지 않아요. 간송이 지키고자 한 정신은 기리고 감사히 여겨야 할 게 분명 맞지만 시대가 바꾸면 그 정신은 다른 방법으로의 표현을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책값은 책소개 보시면 뭐.... 2만원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