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부르크, 막이 오른다
김주연 지음, 김병진 그림 / 파롤앤(PAROLE&)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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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유럽을 향한 창을 내세우면서 표트르 대제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이 도시는 처음부터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설계되었다. 궁전과 성당, 건물과 운하에 이르기까지 이 도시의 건축 지향점은 오직 하나, 유럽적인 것이었다. 덕분에 온갖 유럽적인 풍경이 도시의 외관을 수놓게 되었지만, 실제로 이곳은 유럽이 아닌 러시아다. 러시아 작가 게르첸은 "페테르부르크는 유럽의 다른 모든 도시들과 유사하기 때문에 그 모든 도시들과 다르다"라고 썼다. 바로 이 간극에서 오는 묘한 부조화와 이중적인 정체성이 도시를 하나의 거대한 무대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6쪽


표트르의 도시 페테르부르크는 이후 성곽을 뜻하는 독일어인 부르크를 대신해 슬라브어의 마을, 도시를 뜻하는 그라드를 붙여 페트로그라드로, 소비에트 혁명 이후에는 이 도시에서 시작된 혁명을 기려 레닌그라드로, 그리고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다시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이 도시. 이름만으로도 역사책 1권쯤은 가뿐히 써낼 것 같은 러시아의 이 도시를 규정짓기에는 아마도 저자의 말처럼 수많은 무대를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무대가 되는 도시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린스키 극장의 발레,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의 러시아 음악, 말리의 드라마극장의 연극들, 에르타미주를 비롯한 미술관들.

이름만 들어도 아 하게 되는 수많은 예술가들과 작품들을 배출한 도시.

하지만 이런 것 정도야 유럽의 다른 도시들도 꽤 있고, 정작 명성으로 따지자면 파리를 따라가긴 힘들것이다.

그러므로 페테르부르크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저 유럽적이면서도 유럽이 될 수 없는 수많은 운하의 안개속에 신기루처럼 떠있는 도시 그 자체일것이다.


푸시킨, 고골,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에 이르기까지,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금자탑을 쌓아올린 작가들의 소설 대부분은 이곳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펼쳐지거나 이곳을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대부분의 러시아 소설에서 이곳 페테르부르크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이 펼쳐지는 현실적인 도시가 아니라, 굉장히 그로테스크하거나 매우 환상적이고 신화적인, 비일상적인 공간으로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93~94쪽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들고 이 도시를 탐험하고 싶은 것은 나만의 꿈이 아니리라. 


무엇보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것은 격동의 역사의 무대가 된 이 도시 자체의 역사이다. 

그 중에서도 2차대전중 레닌그라드 봉쇄기간중 이곳을 살아냈던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를 듣는것만으로도 장엄한 인간의 힘과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872일간의 봉쇄기간동안 레닌그라드의 사람들은 굶어죽고 얼어죽어갔다.

길거리에서 시신을 보는건 일상이 되어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도시의 도서관은 문을 열었고, 사람들은 열람실에서 책을 펴놓은 채 굶어죽었다.

도시 내의 바빌로스 식물산업연구소의 연구원드은 대부분이 굶어죽었지만 누구도 종자 표본을 건드리지 않았다.

극장은 여전히 문을 열었고, 최선을 다한 음악회와 연극은 여전히 공연되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자 인간의 존엄에 대한 경배가 어쩌면 쇼스타고비치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끝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고자 했던 도시의 후예들이 오늘날 우크라이나 침략자가 된 것은 유감이다. 

하지만 그 러시아인들이 자신들의 휴머니티의 뿌리가 되는 그 기억들을 잊지 않는다면 지금의 자신의 폭력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도 있찌 않을까라는 것은 또한 지나친 낙관인걸까? 

세상을 사는 일도, 폭력에 대해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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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2-05-14 18: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르크가 독일어로 성곽이었군요...;;그래서 독일 여행할 때 ~부르크가 엄청 흔했던 것임을 이제 알았습니다.

정리해주신 도시의 역사를 보니 말씀대로 옛사람들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대단합니다. 종자 표본을 보존했다는 이야기도 이 도시의 역사였군요...

새파랑 2022-05-14 1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테르부르크는 너무 매력적인 도시인거 같아요~! 그로테스크하고 환상적인 도시~!

특히 러시아 소설을 좋아한다면 더욱 더~!! 언젠가 꼭 가보고 싶습니다 ^^

미미 2022-05-14 20: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람실에서 책을 읽다가 굶어죽다니...종자표본 건드리지 않은것도
어쩐지 경건해지게 만드네요.
러시아는 지금 언론통제와 조작을 아주 효과적으로 하고 있다고 해요.
그래도 인터넷 특히 SNS는 다 통제가 안될텐데 말이죠.
당연한듯 보이던 문제들이 갈수록 복잡해지네요.

coolcat329 2022-05-14 22: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러시아 참 싫지만...페테르부르크는 참 가고 싶은 도시에요.
얼마 전 죄와 벌을 읽었는데 이 책 읽고 싶어집니다.
 

18세기 유럽을 향한 창을 내세우면서 표트르 대제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이 도시는 처음부터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설계되었다. 궁전과 성당, 건물과 운하에 이르기까지 이 도시의 건축적지향점은 오직 하나, 유럽적인 것이었다. 덕분에 온갖 유럽적인 풍경이 도시의 외관을 수놓게 되었지만, 실제로 이곳은 유럽이 아닌러시아다. 러시아 작가 게르첸은 "페테르부르크는 유럽의 다른 모든 도시들과 유사하기 때문에 그 모든 도시들과 다르다"라고 썼다.
바로 이 간극에서 오는 묘한 부조화와 이중적인 정체성이 도시를하나의 거대한 무대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 P6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정말 부족한 것은 공감입니다. 우리는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공감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연극은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공감을 하게 만듭니다. 연극을 본다는 것은아무것도 안 하고 무대를 쳐다보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 작가와 함께 위대한 정신적 모험을 하는 것이죠." - P40

마치 <알라딘>에 나오는 마법의 궁전처럼, 페테르부르크는 어느 날 갑자기 솟아났다. 이곳은 오랜 시간을 두고 조금씩 발전해나간 자연스러운 도시가 아니라, 처음부디 완성된 모습으로 짜잔 하고 등장한 도시다. 아무것도 있던 땅에 갑자기 솟아난 이 눈부시게화려한 도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기적처럼 보였고, 이를 바탕으로이 도시를 둘러싼 수많은 신화와 전설이 만들어졌다.  - P94

특히 페테르부르크가 네바강과 운하, 그리고 늪지라는, 물위에 세워진 도시라는 사실은 이 도시가 땅에 굳건히 뿌리내린 곳이 아닌 신기루 같은 공간이라는 인상을 남겼고, 이것이 이 도시를 더욱 환상적으로 만들었다.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많은 문학에서 이곳이 초자연적이거나 환상적인 공간으로 그려지고, 도시를 배회하는 주인공 중 유난히 몽상가가 많은 것은 모두 이러한 도시의 태생적인 특성과 관련이 있다.
- P95

또 한 가지, 페테르부르크의 특징은 이곳이 그전까지 러시아에서 찾아볼 수 없던 유럽풍의 도시라는 점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럽이 아니라 유럽 풍의 도시라는 지점이다. 페테르부르크를(유럽을 향한 창으로 만들고 싶었던 표트르 대제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을 불러 모았고, 이들은 강과 운하를 따라 베네치아와 암스테르담, 로마를 연상시키는 장대한 건축물들을 세웠다. 그러나 이렇게 온갖 유럽의 스타일을 가저 왔기 때문에 결코 유럽이 될 스 없는,
이 도시의 또 다른 특징이 생겨났다. 즉, 페테르부르크 전체에 걸쳐흐르는 유럽적이면서 유럽이 아닌, 인위적이면서 이국적인 분위기가 이 도시에 어떤 특별한 정취를 만들어낸 것이다.
- P95

레닌그라드 봉쇄가 유명한 이유는 단지 참혹한 상황을 오랫동안 버텨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지옥보다 못한 조건 속에서도 사람들은 인간다움을 지키면서 단순한 생존이 아닌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추위와 배고픔으로 도시의 반 이상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도서관은 여전히 문을 열었고, 사람들은 열람실에서 책을 펴놓은 채 굶어 죽었다. - P159

성 이삭 성당 근처에 있는 바빌로프 식물산업연구소는 소련의세계적인 식량학자인 바빌로프와 그의 동료들이 러시아의 기근을없애기 위해 전 세계 25만 종이 넘는 씨앗을 수집하고 연구한 곳이다. 독소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바빌로프는 스탈린의 숙청으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감옥에서 아사했다. 하지만 그가 사라진 뒤에도 그의 동료들은 연구소에서 종자를 지켰다. 극도의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그들은 차례로 쓰러졌지만 아무도 책상 위의 완두콩이나 귀리, 감자 씨 표본을 먹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결국 봉쇄가 풀린 뒤연구소가 다시 문을 열었을 때, 연구원들은 대부분 죽었지만 바빌로프의 종자 표본에서는 쌀 한 톨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 P160

이처럼 봉쇄 속의 레닌그라드를 진정한 영웅 도시로 만든 것은,
포탄도 탱크도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삶의존엄을 지키고자 했던 시민들의 신념이었다. 그들 한 명 한 명의 의지가 이 도시를, 끔찍한 파국의 무대가 아니라 고통과 영광이 공존하는 비극적 영웅으로 만든 것이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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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본 척 하기로 한 거지. 마을 서쪽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지는 다들알고 있으니까. 모두들 그치들을 두려워하고 있거든요. 거기 살고 있다.
는 이유만으로,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말이에요. 그 사람들은 우리와 달라요. 그들 인 게지. 그리고 사실 그건 무척 꺼림직한 일이랍니다. " - P145

"그래요, 어쩌면 그 제안을 받아들였어야 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렇지만 난 우리 집에 있는 게 좋아요. 사법체제란 가해자에게 벌을 줘야 하는거지 증인을 괴롭히는 게 아니잖아요? 이것도 원리원칙의 문제지요."
- P150

난 참 대단한 특권을 누리는 사람이에요. 그녀는 말했다. 말을 행동으로 보여줄 기회를 얻는 사람은 무척 드물지요.
- 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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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시대 시장은 개인의 윤리적 원칙과 분리되어 작동하지 않으며, 오히려 윤리적·도덕적 원칙을 경제적으로 합리화하.
는 법과 정치, 실천에 의해 작동한다(Brown, 2005; Preda, 2005; Power,
2005), 즉 시장의 도덕화가 목격되는 것이다. 성매매 경제의 작동역시 현재 개인의 규범과 활동 양식을 통치하는 경제적 합리성의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 이 점을 간과한다면 적극적으로 성매매에참여하는 여성들의 경험은 물론, 재편된 성매매 경제와 접면한 비교적 전통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는 성매매 여성들의 경험 역시 충분히 분석하기 어려울 것이다.  - P32

그러므로 여성들의 성매매 참여 요인을 소득과 부채의 이분법으로 파악하는 건 결국 이 시대 (매춘) 여성‘이 구성되는 방식에 대한 구조적 분석 없이 개별 인물의 교정과 처벌, 혹은 인정만으로성매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P33

도덕의 회복을 통해 성매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기존의 여성주의 전략을 문제 삼는 이유는 이들을 고루한 도덕주의자라고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만 여성주의가 개인의 도덕적 조정에몰두하는 것은 오히려 여성들의 몸과 노동을 자본축적의 주요한수단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에 공모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것이다.
- P49

앞서 언급한 페미니스트들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 노동의 비노동화, 여성의 가정주부화, 나아가 매춘화는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사회‘를 조직하는 원리다. 여성은 주부 또는 매춘부로, 이들의노동이 교환되는 비자본주의적 외양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위해 기능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다 (Fortunati, 1997 [1995) 69), 현재 글로벌자본주의 아래 친밀성의 상품화가 강화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돌봄, 섹스, 가사 노동의 연속선에 자리하는 "친밀한 노동 intimateLabors"이 고용 문제가 될 때 이들의 노동은 노동으로서의 지위를 얻을 수 없으며 누구나 할 수 있는 미숙련 노동으로 간주된다  - P60

그러므로 성매매에서의 연쇄적 부채 관계‘라는 분석틀을 통해성매매를 ‘불법 경제의 문제로 규정하며 개인 포주 또는 알선자와의 일대일 대면 관계에서 발생한 예외적 문제로 보는 시각과 성매매를 동등한 경제행위자 간 계약 · 교환의 문제로 보는 시각 모두를극복하고자 한다. - P65

그러나 반성매매 운동이 사회복지 실천으로 한정되는 상황은 비판적으로 사유할 필요가 있다. ‘성매매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성매매피해의 증거로 박제되어 잔여적 사회복지의 대상자로 단정되는 순간, 우리는 성매매 여성들의피해가 만들어지는 그 경험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성매매 문제는 여성 문제가 아니라 다시금 개인의 문제가된다.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가졌던 전제들을다시금 질문해보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실은 이미 알려진 지식 체계에 의해 구성되기 때문이다(조순경, 2000 182). 또한 경험은 이미 해석인 동시에 해석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언제나 경합적이며, 그러므로 언제나 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이나 (Scott, 1991),
- P75

이제 우리는 성매매에서의 부채 문제를 성매매 여성 개인의 문제, 당사자의 문제를 (포함하되 이를) 넘어, 이 시대 여성들을 수익원으로서 끌어들이는 성매매 산업의 문제, 나아가 자본의 견인력의 문제로 이해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소득인가 부채인가, 부채가많은가 적은가가 아니라 ‘누가 이 부채를 조절하는가‘, ‘부채를 조절하는 힘은 무엇인가‘이다.
- P109

단순히 사회를 폭력조직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넘어, 조직폭력배, 성매매 업소, 은행과 여성들 간에 형성된 ‘부채 관계‘를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경제행위로 인정하는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매춘 여성들의 선불금 차용증이 시중 은행에서 대출의 근거, 위험 회피의 수단이 되는 현실은 이 시대 자본축적 방식이 여성들의 매춘화와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어준다. 따라서 성매매문제를 알선사와 구매자의 문세로만 한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협소한 문제설정이다. 여성들이 ‘탈성매매‘ 후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가정된 사회의 구성 양식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는다면, 단편적인 해법만 제시할 뿐 사회적 의미의 ‘탈성매매‘는 이루어질 수 없다.
- P154

이처럼 현재 부채 경제의 국면에서 성매매를 통한 여성들의 미래 수익을 예측하고 여성들의 몸을 담보로 계산하는 과정은 시중은행에서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대출의 근거로 간주된다. 매춘 여성의 몸이 만들어낼 미래 수익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여기 결합된 여성 몸 담보화는 합리적인 경제행위로 분류될 뿐만 아니라 사법적비호를 받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금융화된 경제에서의 여성 몸 담보화에는 이 같은 법적 장치 외에도 그것을 정당하고 합리적인 실천으로 만드는 다양한 장치와 테크놀로지가 연루되어 있다.  - P173

 여성운동은 성매매특별법을 제정하고 실행하는 데 온 힘을 집결하면서 ‘포주‘, 성구매자, 성매매피해자‘ 등의 정체성에 근거한 운동에 천착했고, 그사이 법정에서 포주는 자신의 재산권을 보호받을권리가 있는 소유자 - 시민, 사업가로 정의되었다. 결국 새로운 법의야심찬 집행에도 성매매 업소는 세금 문제만 정직하게 해결하면31합법적으로 큰 이익을 거둘 수 있는 전도유망한 사업이 되었다.
- P205

이처럼 개인 부채 문제가 여성에게 적용될 때는 성윤리의 문제로번역되면서 사회문제로 등장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러나 이 같은지적에는 여성들의 채무자로서의 역할에 의존해 조직화되고 있는경제의 금융화라는 구조적 차원의 분석이 누락되어 있다. 또한 현재 개인의 주체성을 구성하는 경제적 합리성, 도덕의 원칙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역시 간과하고 있다.
- P269

동시에 자기 투자 채권은 상품화되어 다른 투자자의 투자 대상이 되기도 한다. 과연 내가 생산한 잉여가치에 대한 착취가 아니라 내 삶 자체가 이윤의 원천이 되는 수탈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성들에 따른 차별적 가치가 전체 성매매 업소를 작동하는 원리가 되는 상황에서 많은 수수료와 이자를 지불하면서 부채를 차입해 자기 투자를 하는 일은 계속 일어나게 된다. 자기 투자는 자기 삶의안전장치를 스스로 마련하라는 개별화된 명령에 의해 이루어지는것 같지만, 이는 채무자 선체의 삶에 대한 수탈을 통해 이 사회의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구조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성매매 산업을 중심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자기 투자의 회로 속에서 실제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오직 매춘 여성뿐이다.
- P328

여성들에게 성매매는 ‘자유의 조건들을 관리하고 조절하는 실천과 다름없었다. 이들은 자신의 ‘자유‘를 확보하겠다는 적극적 의지로 부채를 사용하며, 여기에 부과되는 이자와 수수료 등의 비용을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점을 내면화하고 있다. 이렇게 성매매 산업이 금융화되면서 산업 구성원에게 신용이 확장된 현실에서 파산은 여성에게 이 모든 현금 흐름을 멈추고 그 바깥에서 자유와 기회를 박탈당한 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자신이 획득한 기회와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서 파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이는 개인이 실제 파산절차를 진행할 수 없다는 뜻이아니라 이들이 놓인 구조적인 환경을 살펴보았을 때 이들은 파산불가능한 주체‘로 거듭나고 있다는 의미다. 이들은 신용 사회‘를 재생산하기 위해, 또한 시신이 신용과 자유를 재생산하기 위해 지금의 현금 흐름을 계속 회전시켜야 한다. 이들에게 파산은 스스로의의지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자본에 이해 추방되는 것이다.
- P384

이런 배경 속에서 성매매 문제는 여성 개인을 탈성매매 여성‘
으로 만들어냄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명의 여성이나간 자리는 현금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다른 여성의 성실한 몸에 의해 채워질 것이다. 금융화된 경제를 작동시키는 부채 관계를 통해 여성 일반을 끊임없이 부채의 회로 속으로 포섭하는 자본의 전략을 고려할 때, 구매자와 업주, 알선자를 법정에 세우는 것만으로 성매매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지나치게 순진하고 협소한 생각이다. 누가 업주이고 알선자인지 구분하기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노동 없는 여성들에게신용이 부여되고 있는 현실 체제를 직면하지 않고 이들을 자발적성노동 참여자라고 인식하며 성매매 문제에 대해 단순히 탈규제의해법만을 내놓는 것도 여성들의 몸을 담보화해 확대재생산하고 있는 부채 경제라는 동인을 간과하는 일이다.
- P387

이러한 논의를 경유한다면 이 시대 부채 경제, 금융화에 대한 여성주의적 문제제기는 단순히 여성들에게 신용이 차별적으로제공되고 있다는 현실 진단을 넘어서야 할 것이다. 동시에 신용을통해 여성들이 자활하여 탈성매매할 수 있다는 믿음과 실천도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신용은 빈곤한 이들의 몸과 미래의 삶을 수익으로 계산하고 이를 담보 삼아 사회 안에 내재한 불평등을 가리는수단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 P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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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7 11: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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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브라는 말에서 먼저 떠오르는건 낯설다는 이미지다. 러시아의 민족 또는 1차대전의 한 계기가 되었던 발칸반도의 범게르만주의 범슬라브주의 할 때 그 슬라브?
실제로는 어마어마한 땅과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인데도 슬라브라는 저 말에서 러시아를 떠올리고 마는 것은 왜일까?
책을 읽으면서 곰곰 생각해보니 1국가 1민족체제에서 살아온 한국인인 나에게는 민족 하면 바로 국가와 연동시키는 자동메카니즘이 있었구나, 머리로는 실제 세계가 그렇지 않다는걸 알지만 오랜 인식습관은 자동인형처럼 그렇게 연결되는구나 싶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슬라브가 생각보다 낯설지 않다. 귀에 익숙한 도시들, 알고있는 역사들, 또한 익숙한 예술가들과 작가들. 생각보다 슬라브인들의 삶의 궤적은 가까이 있었는데 다만 인지하지 못한 것이 더 큰 듯하다.
지도를 보면 슬라브 지역은 크게 3지역으로 나뉜다.
러시아를 포함하는 동슬라브 지역- 지금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가 포함된다.
서슬라브지역은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남슬라브지역은 예전에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 묶여있던 지역들 -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코소보, 북마케도니아, 불가리아가 해당된다.

이 책은 이 지역들에 대한 여행기이자 문화 예술 역사에 대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또한 독일과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다 오스만제국까지 엄청난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사람들의 피와 눈물에 대한 기록이기도하다. 그래서 이들은 나라가 달.게 모두 흩어져있어도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할때 슬라브라는 말을 유난히 강조하는지도 모르겠다.
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굶어죽었건 우크라이나의 홀로도모르는 아직도 국제기구를 통해 공식적인 제노사이드로 인정받지 못했고, 체르노빌은 여전히 죽음의 땅이다. 그 땅은 지금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 중이다.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평화는 언제쯤 찾아올까?
모두가 모른척했고 지금도 모른척하고 있는 이 땅의 비극을 기억하게 한 것은 예술의 힘이다. 우크라이나의 헐로도모르를 취재했던 영국기자 가레스 존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의 영화 <미스터 존스>, 스탈린에 대한 우화로 읽을 수 있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스베틀라나 알렉예비치의 작품 <체르노빌의 목소리>, 우크라이나의 바비 야르 지역에서 발생한 나치의 이 지역 유대인 학살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오늘 이 지역의 비극은 또 누구에 의해서 기록될 것인가? 여태까지의 기록으로도 고통의 임계점을 이미 넘겨버렸을 이 땅의 사람들에게 부디 빨리 평화가 찾아오기를 기원한다.

서슬라브에서 귀에 가장 익은곳은 역시 체코의 프라하다. 프라하를 가로지르는 블타바강은 독일어로 몰다우다.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중 두번째 작품이다. 체코 필하노닉의 연주를 듣고싶었지만 못찾고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로 음악을 들으면서 서슬라브지역을 읽는다. 이 책은 사실 굉장히 쉽고 책장이 잘 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읽는데 시간이 꽤 많이 걸린다. 그 이유가 바로 이런 것 - 곳곳의 장소마다 관련된 음악과 미술 영화 책을 소개하고 있어 도저히 찾아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하는 힘이다. 작가님의 목적은 아마도 이 슬라브 지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고 싶은듯한데 정감있는 글쓰기랄까, 그런 마음이 글에 곳곳에서 배어나와 아 이책도 봐야지 이 영화도 봐야지 하면서 자꾸 다른 자료들을 찾게 한다.

프라하에 대한 글에서 인상적인 것은 작가이자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를 이끌고 초대 대통령을 지낸 바츨라프 하벨에 대한 프라하사람들의 애정이다.
거창한 기념비가 아니라 프라하 국립극장 한 편에 저렇게
빨간 하트로 표현된 마음은 오히려 간절하여 이방인의 마음조차도 따뜻하게 만든다. 이 하트 하나를 보고싶어 짐을 챙겨 프라하로 가고싶다는 마음을 들게하는 것이다. 더구나 프라하는 카프카의 도시이고 카렐 차페크의 도시이며 자유를 향한 체코인들의 메시지를 담은 존 레논벽의 도시이기도 하니 이 도시 하나를 보는것만으로도 얼마나 벅찰까.

폴란드의 브로츠와프는 난쟁이의 도시이다. 1980년대 억압적이었던 이곳에서 이 도시 사람들은 정부의 공고문과 표어들 위에 난쟁이 그림을 덧붙임으로써 공개적으로 그들을 조롱했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뒤 폴란드인들은 도시 곳곳에 언갖 모습ㅇ 난쟁이 상들을 조각하여 이를 기념한다. 그런가하면 도심에 1980년대 계엄령 기간에 사망한 이들을 기념하는 슬픈 기념비도 존재한다. 혹독한 시절에 대한 기억을 유머로 승화시키는 한편 아픔을 진정한 아픔으로 표현할줄 아는 이들의 예술적 감수성에 놀라게 된다.

남슬라브는 정말로 낯설다 느꼈었는데 생각해보니 오래전 인상깊게 봤던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영화 <언더 그라운드>의 그곳이다. 모두가 죽고 영혼들이 흥겹게 떠들며 음악에 맞춰 춤추던 모습이 아릿하게 다가오던 영화였다. 그토록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춤추고 노래하던 이들의 땅. 그러나 20세기에 가장 극악한 비극을 겪은 이들은 지금도 그런 낙천성을 가지고 있을까? 사라예보를 가득 채운 묘지들은 모두 1992년에서 1995년 사이 보스니아 내전 기간에 죽은 이들이다. 이렇게 많은 묘지들을 안고 사는 이들의 땅에 대한 궁금증은 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 강의 다리>로 나를 이끈다. 보스니아에서 태어나 크로아티아 대학에서 공부하고 세르비아에서 집필활동을 했건 이보 안드리치는 지금은 없는 나라 유고슬라비아인이었다. <드리나강의 다리>를 주문하면서 어쩌면 그토록 오랫동안 고통의 역사를 겪은 이곳 사람들의 마음 한자락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갇을 해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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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년 10월 12일 프라하에서
    from 내 인생은 진행중 2022-05-05 05:33 
    오늘 아침 바람돌이님의 <슬라브 막이 오른다> 페이퍼를 보다가 책에 실렸다는 사진이 익숙하여 기억을 더듬더듬. 몇년 전 프라하 여행하면서 책에 실린 것과 똑같은 사진을 찍어놓은 것이 생각나서 지난 사진 앨범을 뒤적거리게 되었다. 프라하 국립극장 아래층 입구에 있던 하트.바츨라프 하벨을 기리는 마음을 나타낸 기념비 같은 것이다. 시내에는 바츨라프 광장이라는 곳도 있다. 관광객들이 결코 피해갈 수 없는 곳. 여기 바츨라프는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이
 
 
희선 2022-05-05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라브는 어느 한나라가 아니군요 몰랐습니다 동서남으로 나뉘고... 슬라브 민족은 힘든 일을 많이 겪었지만, 문화 예술을 좋아하기도 했네요 그걸로 힘든 걸 넘었을 듯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한이라고 하는... 그러고 보니 폴란드에도 한과 비슷한 말이 있다고 한 걸 봤는데, 그 말 잊어버렸네요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찾아와야 할 텐데...


희선

바람돌이 2022-05-05 01:59   좋아요 1 | URL
맞아요. 희선님. 슬라브족들의 나라가 진짜 많죠. 또 그런데 이 지역에 사는게 또 슬라브족만은 아니라는.... 게르만족도 섞여 있고 유대인들도 많고... 거기다가 지역별로 종교도 다양하면서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은 지역이기도 하구요. 참 여러가지 생각이 많아 드는 책이었습니다.

hnine 2022-05-05 0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오늘 꼭두새벽부터 추억여행에 빠져보았습니다.
‘슬라브‘ 라는 단어는 낯설지 않지만 저는 슬라브 하면 우선 복잡한 역사, 지리, 정치, 이런 것들부터 연상되어요.
어떤 의미에서 막이 오른다고 했는지, 이 책 저도 읽으면서 더 알아보고 싶어졌어요. 그러다보면 러시아 역사, 문화에 대한 것도 흘끔거리게 되겠지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함께 올리신데는 다 이유가 있으실테니까.
음악 <슬라브 무곡>도 생각이 납니다. 저는 몰다우보다 좀 가벼운 슬라브 무곡부터 들으러 가봅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드려요.

바람돌이 2022-05-05 13:06   좋아요 1 | URL
러시아에 대한건 이 작가의 페테르부르크 막이 오른다라는 책이 있더라구요. 전 이 책도 보려구요. 동물농장은 우크라이나 이야기하면서 스탈린의 말도 안되는 강압정책으로 수많은 우크라이나인이 굶어죽었던 이야기와 연결되어요. 읽기 쉽지만 그렇다고 내용이나 관점이 가볍지 않아서 저는 이 책 좋았습니다

새파랑 2022-05-05 0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체코 하면 카프카, 쿤데라 아닌가요 😆 저도 드리나강의 다리 사놓고 못읽고 있는데 바람돌이님 글 보니 5월에는 읽어야 겠어요 ^^

바람돌이 2022-05-05 13:11   좋아요 1 | URL
국제적인 명성에서야 당연히 쿤데라와 카프카지요. 하지만 이 책에서 체코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작가는 보후밀 흐라발을 얘기하더라구요.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그 작가요. 암울한 시절에도 체코를 떠나지 않고 평생 체코어로만 글을 쓰면서 신간을 쓸때마다 금서로 지정되어 지하 출판으로만 읽을 수 있었다네요. 이 작가의 책도 제목만 보고 있었는데 빨리 읽어보고싶어졌어요. 제 드리나강의 다리는 지금 열심히 배송중이랍니다. ㅎㅎ

프레이야 2022-05-05 1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슬라브족의 수난사. 광범위한데 전 남슬라브 발칸쪽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다보니 그런 거 같아요. 드리나강의 다리 강추에요. 미스터 존스 영화 홀로도모르와 연관해 좋은 영화였어요. 무심히 흐르던 블타바강을 내려다보았던 기억도 떠올리며… 체르노빌의 목소리 아직 안 펼쳤네요. 예술가의 흔적과 함께 씹어먹기 좋은 책 같아 담아가요 ^^
표지그림도 참 좋습니다.
우크라이나에 어서 평화가 오길!

바람돌이 2022-05-05 17:45   좋아요 1 | URL
프레이야님이 강추하는 책과 영화 역시 기대만발입니다. 이 책 표지는 저도 참 마음에 들더라구요. 풍경그림도 좋고 뭔가 연극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달까요. ㅎㅎ 지금의 우크라이나 상황때문에 이 책을 읽는 것이 더 각별했던것 같습니다.

scott 2022-05-09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유럽 국가 중에
우크라이나 키예프만 못 가봤습니다(그루지아 몰도바는 가봤는데 ㅎㅎ)

가려고 계획 했던 시기에
코로나-전쟁 터져서 ㅠ.ㅠ

전쟁의 끝도 보이지 않고
전후 재건 과정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 비극적인 현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