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 시작한 <드라큘라 1>은 토요일 새벽에 2권으로, 저녁엔 프란시스 코폴라 버전의 영화로 이어졌다. 피비린내가 나는듯도 해서 액막이 삼아 저녁엔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었다.
영화는 드라큘라의 못이룬 사랑, 신에 대한 원망이 주축이다. 미나의 약혼자 조너선은 스트레스로 백발이 되어가지만 자신의 여인에 대해선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다. 운명적 사랑이라잖아.... 드라마 '도깨비' 같이 몇백 년을 기다려온 사랑이래. 뒤러의 자화상과 흡사한 젊은 드라큘라 (개리 올드만, 당시 35세)은 현란한 분장으로 흉물스러운 괴물과 외국인 신사, 옛성주를 넘나들며 연기한다. (처칠 분장이 여기에서 시작했을지도) 1993년 영화에 드라큘라는 런던의 다주택자이며 한 여자만을 향하는 순애보의 주인공이다. 다만, 햇볕을 싫어하고 피를 좀 밝힌다.
하지만 브램 스토커의 소설은 인간의 이야기다. 드라큘라의 성에 찾아가 갇히고, 여자 귀신들에게 희롱당하다 탈출하고 수녀원에서 치료받는 초짜 변호사 조너선을 비롯해서, 미나의 절친 루시의 삼인방 추종자들, 뇌과학자 반헬싱은 힘과 지혜를 합쳐서 문명사회(런던)에 침략한 야만(외국) 세력을 내쫓는다. 드라큘라는 영국의 부녀자들과 가치를 공격하는 악의 정수이다. 영국 신사들과 네덜란드 의학자는 정의의 '십자군'을 자처하며 드라큘라 박멸, 그 씨앗 혹은 후손의 가능성 하나까지 없애기 위해 투지를 불태운다.
1권은 상대가 안되는 드라큘라의 강력함, 마력, 재력에 공포를 쌓고 루시는 그 제물이 된다. (영화 속 루시의 붉고 너풀거리는 드레스는 고스트버스터즈의 시고니 위버를 생각나게 하고요) 드라큘라는 막을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 나약한 인간과 문명은 속절없이 스러질 뿐이다. 읽다가 너무 무력한 인간과 거대한 공포에 손톱을 깨물 수 밖에. 2권은 조금 정신을 차린 인간들이 드라큘라의 '어린이 같은 두뇌' 운운하며 반격하고 그의 퇴각길 루마니아까지 쫓아간다. 이미 드라큘라와 교감을 한 미나는 이 퇴마사 그룹의 좋은 길안내자와 미끼 역할을 한다. 정신줄 놓지 않고 끝까지 인간임을 잊지 않은 미나, 당당하게 한몫의 인간을 표현하려 애쓰는 미나가 (시대적 한계는 어쩔 수 없지만) 인상적이다. 또한 불가해한 존재와 싸우며 한편으론 자신이 '미치지 않았음'을 계속 확인하는 나약한 남자들의 협력도 두드러진다.
드라큘라 소설책을 제대로 읽은 건 처음인데 얼마전 '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을 읽고 그 원형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외지인이 들어와서 사람을 홀리고, 쥐떼를 부리고, 여인과 어린이들을 공격하는 장면, 삼인방이 뱀파이어를 도륙하는 장면등은 오마주라고 칭할 만하다. 나는 이 책을 매일 새벽 여섯 시, 병원 침상에서 피를 두세 투브씩 뽑히면서 읽었다. 피는 거의 검은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