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서문에서 

저자가 아버지의 임종을 회고한다. 


"아버지의 죽음은, 이런 일들이 그렇듯이 예고없이 찾아왔다. 

임종을 준비하라는 소식에 나는 아버지 댁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아버지의 저무는 황혼 세계에서 

내가 있을 곳은 어디였을까? 혼란스러운 꿈에 잠겨 떨던 아버지의 손을 나는 잡았다. 

48년 사랑했던 대상이니 오래 보지 않아도 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았다. 아버지의 시선이 

잠시 내게 고정되었고 아버지는 희미하게 웃었다. 약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눈을 감으셨다. 

나는 모를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 나 말고 중요한 다른 일이 있다는 것. 아버지 혼자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 아버지는 터덕터덕 당신의 길을 가기 전에 아들이 잘 있는지 확인했던 거 같다. 

나를 키울 때 그랬듯이, 아버지는 생각하면서 나를 떠나셨다." 



저 마지막 문장 때문에 적어두고 싶어진 대목이다. 

Then he left me, as he raised me, thinking. 영어로 이런 문장인데 

......................... 어떻게 번역해야 합니까. 


나를 키울 때 그랬듯이 나를 떠날 때도, 아버지는 생각했다. (x)

나를 키울 때 그랬듯이 나를 떠날 때에도, 아버지는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x) 

.........................



서문 전부가 저자의 자전. 

왜 어떤 사적인 이야기는 깊이 빨려 들어가고 여러 번 다시 읽게 되는데 

어떤 사적인 이야기는 그만 해라.... 그만 하지 않으면 내가 그만 두겠다. 가 되는 것이냐. 

이 책의 이 서문은 사실 후자였을 수도 있었을 내용인데, 전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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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림'으로만 ('사진'이 아니라) 찾아지는 

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 서한집. 독일어 책이라 안그래도 그림의 책이긴 하다. 

어제 도서관 페이지에서 뭔가 검색하다가 이게 찾아졌는데, 몇 년 전 내가 구입신청했던 책이었다. 

도서관에 책이 입고되었을 때, 무거운 네 권 전부 받아와서 실물 구경 했었다. 1927년 시작하여 (아도르노 24세) 

그가 타계했던 해 1969년에 끝나는 편지들. 각 권이 7백, 8백 페이지 이럴 것이다. 무거운 책들이었다. 

표지는 회색이었고. 내용은 빽빽했다. 


정말, 어떻게 저렇게 많은 편지를 쓰지? 


35년 8월에 아도르노가 벤야민에게 

벤야민의 어느 글에 (아마 "아케이드 프로젝트" 선행 작업 원고) 세밀하게 논평하는 편지를 보냈다. 

길이가 기절할 길이. 그냥 논문 길이다. 그리고 페이지 별로 (누락되는 페이지가 거의 없는 듯. 모든 페이지에 대하여... 하나씩 하나씩) 본격적으로 논평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이 사람 말고 이러는(이랬던) 사람이 누가 있지? 

그들은 거인이라서 이럴 수 있었는가, 아니면 이러다가 거인이 되었는가. 

........... 여러 복잡한 감정 들게 한다. 


"같이 생각한다"는 게 뭐냐를 

아주 그냥 조금의 모자람없이 시전한다. 


친구의 작업을 자기 작업만큼(때로는 더) 진지하게 여긴다는 것. 

어마어마하다. 그냥 할 말이 없어진다. 하아. 할 말이 없어져서, 없는데, 그냥 가장 피상적이고 

가장 한가하게 아무말 포스팅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신기한 건 

우리 언제 만나느냐. 12월엔 가능하냐. 1월이면 되겠느냐. 

내가 런던으로 가면 좋겠냐, 네가 파리로 오면 좋겠냐. 

널 만날 생각을 하면 가장 깊은 기쁨이 나를 휘감는다.

이 곳은 너와, 너하고만, 와야 하는 카페인데 여기서 나는 어둠 속에 앉아 너에게 편지를 쓴다 : 이런 얘기가 편지마다 반복된다는 것. 


이들이 느끼는 강도로, 이들이 느끼는 방향에서 

저런 감정을 나는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는 거 같다. 

감정 교육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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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츠가 태어난 해인 1795년 괴테는 46세였다. 

1821년 키츠가 사망하고 나서, 괴테는 11년을 더 살았다. 

그의 짧은 생에서, 단 5년 세월 동안 키츠는 상상력이라는 주제를 발견하고 탐구하는데 

키츠의 상상력은, 괴테가 그의 긴 생에서 50년간 탐구했던 내용과 경이롭도록 흡사하다. 

베이컨이 말한 바 있다. 살았던 해(years)는 짧았지만 살았던 시간(hours)은 길었던 인간들이 있다고. 




지금 읽는 책에 이런 대목이 있다. 

살았던 해는 짧았지만 살았던 시간은 길었던 인간들. 

여기서 잠시 멈추지 않을 수 없음. 


2019년은 내게 해로도 짧았지만 시간으로도 짧았다. 

올해 1월의 시작이, 정말 며칠 전 같다. 그냥 생생하다. 

올해 뿐이랴. 이런지가 이제 20년은 (........) 된 거 같다. 

자고 일어나기를 조금 꾸준히 반복했을 뿐인데 해가 바뀐다. 

그게 반복되다 보니, 해가 오고 감에 별 동요가 없어지기도 했다. 


상상력. 이 주제로 바슐라르가 쓴 책들은 

어쨌든 내게는 재미있고 아무리 읽어도 소진되지 않고 여기 일생을 걸 가치가 있고.... 

정말 그런 책들이다. 이것들을 제외하고 다른 저자들의 상상력 주제 책들 중에서 


비슷하게 반응하게 되는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바슐라르의 상상력 주제로 쓰고 싶은 글들이 있다 보니 

지금까지 사모은 상상력 주제 철학서, 아무튼 인문서들이 적지 않은데 

거의 전부 읽기 고역이었다. 


그런데 오늘, 예감이 좋은 책 하나를 발견함. 위에 인용한 대목이 나오는 책은 아니다. 

(그 책은 상상력 주제 연구서들 중에서는 최고 성취를 거두었다 평가되기도 하는 책인데, 아마 하버드 영문과 교수였을 것이다, James Engell의 The Creative Imagination. 상상력의 지성사.... 상상력으로 보는 서구 지성사... 같은 책. 이 책도 읽기 꽤 고역이다. 그러나 저자의 뭐랄까 단정하고 엄정한 정신? 그게 느껴지므로 꾸준히 읽을 수는 있다. 이 주제로는,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말하고 생각하는 저자들도 있다. 오래 버틸 수가 없는 책들....) 


그게 오늘의 소득, 성취다. 

좋은 책을 발견함. 이게 성취다. 


이 좋은 책을 발견하기 위해 

얼마나 먼, 가볼 필요 없었던 길들을 나는 가보았고 걸었던 거냐. : 진짜로 

이러면서 자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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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수업에서 

<국가의 탄생>에서 이 장면, 책장의 책을 꺼내려고 하는 꼬마 냇 터너의 손을 

막는 백인 여주인. 이 책들은 백인들이 읽는 책이야. 너희들은 이해 못해. 


이 장면 얘기하고 

우리는 금지된 책들을 읽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그렇게 오글거림 끝장이게 마무리한 적 있다. (어쩌다 보니 그러게 되었다. 어디서 시작해 

거기까지 갔던 거냐, 지금 기억이 안남. 기억하고 싶은데 나지 않는다....). 


이제 내일부터는 읽고 싶던 책 쌓아두고 읽고 쓰려던 페이퍼도 집중해서 써야겠다 

지금 내게 시간이 없다....: 이런 분발하는 상태에서 


벤야민-아도르노 서한집 꺼내 이어서 읽고 있는데 

"금지된 책들을 읽는다" 이거 조금도 무의미하지 않다고 갑자기 절감하게 된다. 


벤야만-아도르노 서한집도 

금지된 책인 것이다! 당국이 모르므로 아직 금지되지 않은 책인 것이다! 

이걸 읽는 이에게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지 아는 누구이든, 이 책을 노예의 손에 주지 않을 것이다. 




타협이 없다. 

해당 편지는 35년 5월 아도르노가 벤야민에게 쓴 편지인데 

..... 타협이 없다. 타협 없이, 친구의 정신을 무한히 존중하고 신뢰한다. 

바로 그게 내게는, 이 책 금서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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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가 

벤야민이 쓴 카프카 주제 에세이에 논평하는 내용으로 

1934년 12월에 쓴 긴 편지가 있다. 


어제 읽으면서 

이럴 수가. 인간이.......... 

이런 인간이 이 망가진 세상에 있었을 수가........  


34년이면 아도르노가 31세이던 해. 

44세, 50세, 60세이던 해의 그가 쓴 

글들과 다르지 않았다. 




경이감이 밀려듬. 압도됨. 

벤야민이 쓴 문제의 카프카 에세이는 

영어판 벤야민 저작선 2권에 실려 있음을 검색 결과 확인하고 

주문하고 맘. 그걸 나도 읽어야 그 편지가 준 경이감에 보답.... 하여튼 그 비슷한 심정에서 

주문하고 맘. 


조금 전 

그 편지에 벤야민이 쓴 답장을 읽으려고 폈더니 

벤야민은 답장을 저런 문장들로 시작하고 있다. 


"나는 당신의 편지를 읽기만 한 게 아니다. 

나는 당신의 편지를 공부했다." 


........................................................... (한숨은 오래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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