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종교.



피터 게이, <계몽시대> 2권. 자유의 과학. 



세네카는 카누스의 죽음을 증언하면서, 이 용감한 인간에게 불멸을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는 용기를 준다. 세네카를 상세히 인용하면서, 디드로는 

카누스의 불멸에 대한 세네카의 확신을 정당화하고, 세네카 자신의 영웅적 죽음을 찬미하면서 

잘 죽었던 또다른 로마인을 불멸이 되게 한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 철학이, 시간의 파괴를 치유하고 

달력에 거역한다. 


"오 세네카!" 디드로는 쓴다. 

"소크라테스와 함께 당신이, 저 저명하고 불행했던 인간들 중에서도, 저 위대한 고대의 인간들 중에서도 

나와 내 친구들을 잇는 가장 달콤한 고리였다. 모든 시대의 교육받은 인간들과 그들의 친구들을 잇는 고리였다. 

나와 친구들은 자주 당신을 주제로 대화했다. 당신은 영원히 그들의 대화 주제일 것이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불편해하는 우리 세기에, 그리고 용감한 죽음이란 

운이나 기질의 문제지 철학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우리의 세기에, 디드로의 이런 열정은 

억지스럽고 어쩌면 당황스럽다. 그러나 철학의 자율성을, 그리고 철학이 삶에 제시되는 다른 지침들보다 우월함을 옹호하려는 인간에게, 죽음 앞에서 철학적 용기는 종교의 필요에 맞서 제시할 또 하나의 반론이기도 했다



저 마지막 대목이 눈에 들어와서 올려 봄. 

디드로. 이름도 사랑스러운 디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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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도 케임브리지 판을 갖고 있는데 

오래 되었고 한 번 물에 젖은 적이 있고 

.... 번역은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 책도 펭귄판 구입이 필요할 수도. 



예술가가 그의 예술로 그의 시대 최고의 인간들을 만족시켰다면, 그 예술은 

그의 다음 시대에는 최고의 인간들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 예술은 "미래의 모든 시대"에 

살 것이긴 하다. 최고의 인간들이 보내는 갈채는 명성의 보장이니까. 



"여러 의견과 금언"에 이런 단장이 있는데 

<비극의 탄생> "서문"에서 니체가 하던 말 기억하게 한다. 

그 책이 겪은 운명, 불운에 대해 말하다가 


"그러나 이 책은 

나의 시대 최고의 정신들을 만족시켰다...." 하던 대목. 


이게 자화자찬도 아니거니와 

아니므로, 정말 돌아와서 그에게 지극한 만족이지 않았을까. 


이런 말들을 보면 나는 어김없이

그런 책을 쓴 인간들이 하게 되는 막대한 서비스... 

생각함. "우리 시대 최고의 정신들을 만족시킨 책..." 이런 말이 의미있게 쓰일 수 있는 곳이면 

쌩양아치같은 짓들이 훨씬 덜 일어나지 않겠는가. 이 나라 검찰만이 아니라. 검찰과 (아직) 무관했던 

당신 인생에서 나의 인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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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케임브리지 판은 

카우프만과 공역도 (한 권 이상인가) 했고 

다수 니체 번역을 남긴 R. J. 홀링데일의 번역. 

이게 영국식 고풍스러움인지도 모르겠고 홀링데일의 사적인 편벽에 불과한 걸 수도 있겠지만 

문장이 과하게 길어지고 문법, 구문이 과하게 지금 문법(20세기 중반 이후)이 아닌 감이 있다.  

이 책이 그렇게 힘들다 느껴진 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gutenberg.org 번역 보다 생각함. 


그래서 다른 번역 하나 주문했다. 펭귄판. 

이 판은 <그리스 비극 시대의 철학> 번역한 여성 역자. 마리온 파버던가 이름이. 

카우프만이 혹독하게 깎아내리던 역자. 이것도 이해 못하고 저것도 이해 못하고 이것도 부정확하게 옮기고 

저것도 어수선하고. 


그러나 나는 좋기만 했다. 

독어와 비교해서 좋은 건 아닐 것이다. 독어와 비교하면 나쁠 거 같다고 

알아봐지는 듯한 느낌도 있었다. 원문의 한 80%만 번역하는 느낌. 


그런데 어떤 책들은 그런 번역을 요구하지 않나 생각함. 

어떤 책들은 50% - 200% 다양한 수준, 층위의 번역 버전들이 공존하면 좋겠다 생각함. 

힘이 딸릴 땐 


살살, 그러나 동시에 빠른 번역으로. 

힘이 넘칠 땐 원저보다 두꺼운 주석도 주섬주섬. 



그래서 이 펭귄판 역시 

약 80% 번역하는 느낌의 책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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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번 단장은 이런 것이다. 


사랑과 이원성: 

다른 사람이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우리와 반대의 방식으로 

살며 느끼고 행동한다는 것을 이해하며 그에 기뻐함이 아니라면 사랑이 무엇인가. 

기쁨을 통해 대립들 사이에 다리를 놓고 싶다면, 사랑은 그 대립들을 부정하거나 파괴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자기애도 그렇다. 자기애는 한 사람 안의, 융합될 수 없는 이원성(혹은 다원성)을 전제한다. 



너무 뻔하거나 (거의 설교적으로 뻔한) 

아무튼 대단치 않기 때문에 지루하게 느껴지는 단장일 수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 책 지루한 책이라고 니체 자신 서문에서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생명이 생겨난다. 


그러게 왜 그런 걸까. 

니체보다 못한 사상가가 1만 피스 퍼즐이면 

니체는 100만 피스 퍼즐 쯤 되며 그리하여 ...... 뭐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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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지 않은 경험.




36. 

뱀니: 


우리에게 뱀니가 있는지 없는지 누가 발꿈치로 우릴 밟기 전엔 모른다. 

여자나 어머니라면 말할 것이다. 내 사랑, 내 아이를 밟기 전엔 모르는 거지. 

우리의 성격은 우리가 경험하는 것보다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어떤 것들에 의해 더 많이 결정된다. 



월터 카우프만은 

우리가 니체를 접근할 때 

니체가 낭만주의자들을 접근하듯 (근본적으로 모호한 대상으로) 접근하면 안된다고 하던데 


이런 단장은 

여기서 어떤 의미가 확정될 수 있나. 

근본적으로 모호하다.... 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게 되는 단장들 무수하지 않나. 


아무튼. 

내가 이런 걸 경험하다니. 이걸 경험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되다니.... 하던 탄식이 

어느 나이 이후엔 친구 같은. 친구같은 탄식. (친구같은 휴식. 과 그래도 라임이 됩니다.... 아 휴식같은 친구였다..ㅜㅜ) 


어떤 끔찍한 일도 일어나기 전이던 스물 다섯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네이트 피셔 in Six Feet Under). 

등을 기억하게 하는 단장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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