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최승범 지음 / 생각의힘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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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싶다.


 

되돌아보건대 빨갱이가 되겠노라는 결심이, 그리고 나는 빨갱이라는 선언이, 너무 성급했던 건 아닌가 생각하는 일이 잦다. 자본도 안 읽었으면서, ‘빨간 맛이 뭔지도 잘 몰랐으면서, 도대체 어떤 문장에 반하여 syo는 빨갱이가 되(었다고 믿)었을까.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여러 방법으로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포이어바흐 테제) 였을까? 아니면, “잃을 것은 오직 족쇄 뿐, 얻을 것은 온 세계일지니,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공산당 선언) 였나? 하여간 죽여주게 멋있었다. 스무 살 남짓의 syo는 그렇게 어쭙잖은 진보뽕을 맞고(빗맞고) 섣불리 마음에 빨강색을 칠했다. 이어폰도 빨강색, 필통도 피처럼 빨강색을 고집했으며, 파스타를 먹어도 오직 토마토만이 혁명적이지, 카르보나라 같은 회색 반동 파스타는 결코 용납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유래로 보자면 카르보나라야말로 노동자의 음식이라는 소오오름 끼치는 반전.) 무지하면 용감한 법. syo에게 빨강이야 말로 세상 짱이라는 것은 자연법칙에 가까웠다. 무지개는 왜 주노초파남보겠어. 후레시맨, 바이오맨, 파워레인져 가릴 것 없이 모든 쫄쫄이-하이바 용사들의 우두머리는 왜 빨간 유니폼을 입겠냐고. 만세, 빨강 만세, 빨갱이 만세..... 이거 원, 별 미친놈을 다 보겠다.

 

빨강이 옳아서 내가 믿은 건지 내가 믿어서 빨강이 옳은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 지점까지 신념은 눈 감고 질주했다. 이럴 때 너라면 어떻게 하겠냐는 모든 질문에 가장 빨간 선택지를 골랐다. 때론 그 질문은 전제 자체가 틀렸다며 빨간 펜을 들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일이 있었다. 누군가 약자를 위하여 세상과 맞서 싸우고 있는 자리를 그냥 스쳐 지나갈 때면 목이 꺾여 아무리 용을 써도 땅만 보고 걸을 밖에 도리가 없었다. 스스로의 언행 불일치와 용기 없음을 아프게 인식하면 오래 괴로웠다. 빨간 일을 그렇게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빨간 말을 많이 하고 빨간 글을 썼으며, 꽤 촘촘한 빨간색 안경으로 다른 이의 일과 말과 글을 거를 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빨간색을 바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근본 없는 빨갱이, 이론도 실천도 모자란 알라딘의 입빨갱이 syo가 되었다. 좀 더 많이 알고 좀 더 많이 싸웠으면 좋았겠지만, 그랬다면 스스로 내가 조선의 빨갱이다외치는 일이 덜 부끄럽고 민망했겠지만, 그렇다고 30년 동안 겨우 하나 만든 정체성을, 영혼의 빨간 그림자를 부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른 관점으로 보자면, 그렇다. 글눈이 트이고도 30년을 더 살았는데, ‘나는 누구요할 수 있는 명함을 이제 겨우 하나 만든 셈이다. 심지어 빨강색을 칠한다고 칠했는데 주황색에 가까운 누리끼리한 명함이 나왔다.....


 

첫 번째 정체성이 그렇게 허접하게, 기세에 휩쓸려 어어- 하는 사이에 형성 되서였을까, 좀 신중해졌다. 오래 물색했고, 그 결과 두 번째 명함을 만든다면 거기에 페미니스트라고 새기고 싶어 페미니즘의 주변을 잠시 얼쩡거렸다.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단기간 몰아치듯 많이 듣고, 많이 읽었다. 그러나 지금은 적게 듣고 있고, 읽지 않는다. 무섭기 때문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쓰기가 두려웠고, 들으면 들을수록 말하기가 겁났다. 사내놈인 내가 감히,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그게 가능한 일일까? 만약 그게 된다면, “안녕하세요,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라고 말해오는 어떤 여성에게 , 안녕하세요. 페미니스트입니다.” 라고 대답할 수 있는 걸까? 저 말들 속에 들어 있는 페미니스트는 똑같은 두 발음이 과연 라는 조사로 엮일 수 있는 같은 단어일까? 희망은 너무도 작고 두 번째 명함은 요원하기만 했다. 실은 그 작은 희망조차 지금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아직 절대 페미니스트라고 자칭하지 못할 syo, 지금껏 읽은 책들, 지금껏 들은 이야기들 앞에서 반성하고 고칠 일이 너무도 많아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세상의 많은 남자 페미니스트들은 어찌나 당차고 멋있는지, 이 괴롭고 부끄러운 절름발이 시절을 헤치고 나가 당당히 페미니스트의 이름표를 단 그들이 존경스럽고 부러울 때가 많았다. 나도 열심히 읽고 쓰면 저렇게 될 수 있을 거야, 하는 기대를 품고 몇몇 이들의 행로를 좇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방 좌절했다. 그들의 빛나는 명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그러므로 너는 페미니스트가 아니고 니가 말하는 페미니즘은 진짜페미니즘이 아니란다)”

 

작년, 윤김지영 선생님의 대구 강연 자리에서, 몇 안 되는 남성 청중 한 명이 선생님께 여쭸다. 남자 페미니스트(이하 남페미)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느냐고. 선생님은 결론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신다면서도, 여자 페미니스트(이하 여페미)와 똑같은 방식으로 기능하진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곱씹어보건대, 페미니스트로서 두 성별의 기능이 다르다면,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을 붙이기 위해 넘어야 할 윤리적 허들 역시 같거나 동등할 이유가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여페미와 남페미를 같은 페미로 볼 것이냐 아니냐 하는 여러 방법의 해석이 아니라, 여페미와 남페미의 기능과 윤리를 활용해 세계를 변혁하는일이겠다. 그리 보면 세상에는 과연 남페미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사람들이 명백히 있다. 이 책의 저자가 그렇다. syo가 감별을 하자는 게 아니라(감별은 감별 능력이나 자격을 인증 받은 사람이나 하는 것이다. 그리고 병아리, 보석, 골동품 따위에나 하는 것이다), syo의 하찮은 젠더 감수성에 비추어 볼 때 저자는 정말 닮고 싶다는, ‘만약 내가 저 정도 되면 나도 내가 페미요 떳떳하게 밝히고 다니겠네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실은,


 

쉼표(,)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싶다.


 

책 속에 담긴 내용 역시 남자들에게 극히 중요하고 유용하지만, 200쪽을 채우는 문장 전체만큼이나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한 줄의 제목이, 표지를 넘기면 만날 수 있는 모든 활자의 총량만큼이나 제목 가운데 들어 있는 쉼표 하나가 의미를 가진다고 syo는 생각한다. 페미니즘에 열려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말하는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이 하지 말자는 일들을 하지 않고, 하자는 일들을 하는 것은 큰 무리가 아니다. ‘또 페미니즘 책이 나왔군. 하여튼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니까. 이번에도 내가 신나게 까주지와 같은 의도를 품고 이 책을 손에 든 사람을 제외하면(물론 책을 이렇게 읽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 책은 대체로 모두에게 쉽고 나긋나긋하다. 그렇지만 당신이 이 책의 모든 견해에 동의한다고 해서, 혹은 오히려 이 책이 너무 온건하다고 여긴다고 해서, 곧바로 남페미의 자격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은 다음, 우리는 제목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아야 한다. 제목이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가 아니라,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인 데는 무시 못 할 이유가 있다.

 

어떤 남페미도 쉽게 남페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많이 읽고, 그래서 많이 알고, 그러다보니 많이 싸워야 한다. 그건 물론이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통과했대도, 우리는 계속 생각해야 한다. 공부로 끝내지 않기를. 실천으로도 만족하지 말기를. ‘내가 남페미인지를 생각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처음으로 되돌아가 내가 과연 남페미여도 되는지를 꾸준히 생각해야 한다. 나도 모르게 내가 무엇을 망칠 수도 있는지, 잊지 않고 자꾸 뒤적여 줘야 한다. 그래야 굳지 않는다. “저는 남자고,” 그리고 그 쉼표에서 되도록 오래 쉬었으면 좋겠다. 그 쉼표 뒤에 페미니스트입니다.”를 어렵지 않게 붙일 수 있는 당신은 멋지다. 아직 그러지 못하는 syo는 당신이 부럽다. 그러나 만약, 당신의 쉼표 뒤에 길고 긴 공백, 괴롭고 묵직한 시간의 켜가 쌓였다면, 오래 묵혀 번민한 끝에 당신이 페미니스트입니다를 가까스로 붙일 수 있었다면, syo는 당신을 존경한다. 당신처럼 되고 싶다. 당신의 목소리가 아무리 작아도 곁에 서서 그 목소리를 듣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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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18-06-20 1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나긋나긋 하지요 ㅎ 스요님 글 재밌어요 ㅎㅎ

syo 2018-06-20 16:45   좋아요 1 | URL
좋은 책이었어요. 이만큼도 되기 어렵겠지만 이만큼만 되면 좋겠다 싶었지요 ㅎㅎ

단발머리 2018-06-20 17: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난 뭐랄까... syo님 글에서 동지애를 느껴요. 저의 쉼표 뒤에도 길고 긴 공백 그리고 괴롭고 묵직한 시간의 켜가 쌓여있고요. 기혼의 전업주부로서 말이죠.
항상 조심스럽고 그러죠.
페미니즘 책을 읽기 두렵다는 말, 그 말에도 공감되고요.

이런 고민의 시간과 말들이 페미니스트가 되기 전에 필요한 시간은 아닐까 생각해요. 이런 글을, 이렇게 좋은 글을 써준 남자, syo님에게 고맙구요.

그나저나 빨갱이 이야기는 왜 이렇게 재미지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8-06-20 18:50   좋아요 1 | URL
저도 페미니즘 책 퍽퍽 읽고 페미니즘 글 뿜뿜 쓰고 막 그러고 싶은데 그게 안 돼요...... 뭘 쓰질 못하겠어요. 그래서 고작 ‘써도 되나?‘ 라는 말만 길게 쓰는 요즘입니다. 희한한 슬럼프야..... 지금이 긴 쉼표를 찍는 중인 걸까요.....

그러나 빨갱이 이야기라면 언제라도 신명나게 쓸 수가 있다!

마! 느그 대장 독일 살제? 마 내가 느그 마르크스랑 임마! 어? 어저께도 밥묵고 사우나도 같이 가고 마 다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8-06-20 18:51   좋아요 0 | URL
그 이야기 너무 좋아요. 써도 되나? 그런 이야기요. 그 이야기를 길게길게길게길~~~~~~~~~~~게 해 주길요.

근데, 진짜 밥묵고 사우나도 같이 가고 그랬단 말이예요?
(말똥말똥) @@

syo 2018-06-20 18:55   좋아요 2 | URL
..... 그랬으면 제가 어디 syo겠어요? 엥겔스지.....

근데 빨걍이로서, 엥겔스 좀 부럽다. 돈도 뜯기고 남의 애를 자기 애라고 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온갖 드러운 꼴도 다 봐야했지만, 그래도 역사상 손꼽히는 ‘성덕‘ 아닐까요.

북다이제스터 2018-06-20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캬~~~ 이런 감칠 맛 나는 글.... 부럽습니다.^^
시요님은 항상 노력하는 빨강쟁이나 페미니스트 일지도 모르지만 하느님이 특별히 사랑하여 점지해 주신 타고난 글쟁이입니다. ^^

syo 2018-06-20 21:43   좋아요 1 | URL
그렇게까지요?? ㅎㅎㅎ 하늘의 사랑은 모르겠으나 북다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것 같아 즐겁습니다. 북다님이야말로 알라딘의 빨강대장이시니까요 ㅎㅎㅎㅎ

그나저나 제가 쓰는 ‘빨갱이‘나 ‘빨걍이‘보다 북다님의 ‘빨강쟁이‘가 더 맘에 드는데요....

hellas 2018-06-21 0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고, 페미니스트.. 라는 말에 뱁새눈을 뜨고 50프로 정도 의심했었는데 좋은 리뷰네요. 책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syo 2018-06-21 21:20   좋아요 1 | URL
그 지점에서 뱁새눈을 뜨실 정도로 크게 열려 계신 분께는 별 소용에 닿지 않는 책일 수 있습니다. 미지근하네 싶으실까요. 그래도 남자들이 보기에는 좋은 책인 것 같았습니다.^-^
 
파리일기 - 은둔과 변신
정수복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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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정수복 선생님의 파리 일기를 읽으며 실망을 이어나갔다. 정수복 선생님의 글은, 정말 재미가 없고, 정말 정론이다. 정론인데 재미가 없는 글, 그것은 존경스럽지만 그렇다고 굳이 연락하고 지내고 싶지는 않은 꼬장꼬장한 인생선배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분명 좋은 책인데도, 읽는 내내 언제 끝나나, 계속 남은 페이지들을 뒤적거리다 다시 돌아와 끙끙대며 읽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흥미로운, 선생님도 저땐 별 수 없으셨군요, 싶은 부분을 발견했다. 선생님이 늦은 시간까지 연구에 몰두하다 그만 늦잠에 들고 말았는데, 사모님이 등장하여 이제 곧 아들 프랑스어 선생님이 올 시간인데 왜 아직 이러고 있느냐고, 오늘 뿐 아니라 당신의 그 밤낮 없는 연구 때문에 나도 요즘 계속 신경이 곤두서 있다며, 어디 나가지도 않는 이런 답답한 삶을 계속 살아야 하느냐며, 버럭 화를 내신 듯하다. 연고도 없는 파리에 이사와 반강제적 은둔 생활을 해야 했으니 선생님도 사모님도 쌓인 게 있었으리라. 어쨌든 선생님, 주무시다가 비몽사몽간에 물벼락 같은 말벼락으로 큰 봉변 당하시고 그날 일기에 이렇게 남기신다.


감정적 폭발은 심리적 미성숙의 표현이고 스스로 마음의 안정을 찾을 능력이 없음을 말한다두 사람 다 성숙한 인간으로서 모든 문제를 합리적으로 처리해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가야 한다그런데 그러한 감정적 폭발은 미란의 개인적 특성인가여성적 특성인가흔히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감정적인 반응이 빠르고 사태를 전체적으로 파악해 대응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반면에 미세한 일에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한다이런 특성은 인류의 역사에서 오랜 기간 동안 남성은 수렵이나 채취 등의 일을 하기 위해 널리 밖으로 돌아다니는 일을 했던 반면에 여성은 안정된 장소에 머무르며 출산과 양육농작물 재배 등의 일을 담당했던 성별 분업 때문에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그러나 문제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따지는 일일 아니라 폭발적 감정을 적절하게 다스리고 서로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상황을 합리적으로 처리해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넘어서 타인을 성숙한 자세로 대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더 생각해보아야겠다. (121 122) 

 

이 글은 마치 이성과 논리와 합리성으로 무장하여 객관적으로 쓰인 척 하지만, syo의 눈에는 세상 감정적인 글로 읽힌다. 감정적 폭발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감정적 낙진 정도는 되어 보인다. 선생님께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이기지 못하고 저지르신 실책 몇 가지를 언급해볼까 한다.

 

첫째, 아내의 감정적 폭발을 심리적 미성숙의 표현이라고 비난한다. 설령 정말 상대의 행동이 심리적 미성숙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니가 지금 이러는 건, 니가 아직 심리적으로 미성숙하다는 뜻이야, 알아?” 라고 대응하는 것은 정말 문제 해결에 도움이 1도 되지 않는 최악의 발언이다. 이런 발언은 일을 더 크게 만들 뿐이므로 실리적 관점에서 보면 결코 나와서는 안 되는 말이라 하겠다오십을 바라보시면서 이런 연애의 기초적 주의사항조차 무시하시는 이유가 '감정' 아니면 뭘까. 인류의 역사에서 오랜 기간 수렵이나 채취 등의 일을 해온 남성유전자를 보유하신 선생님께서 사태를 전체적으로 파악해 대응하는 능력을 좀 더 발휘하셨다면 참 좋았을 텐데.

 

둘째, 선생님이 할 수 있었던 괜찮은 대응이 어차피, “당신, 그렇게 화낼 것 까지는 없잖아. 지금은 일단 진정하고 선생님 맞을 준비를 하고, 이따 선생님 가시면 찬찬히 더 이야기해 보자.” 정도였다는 걸로 미루어보면, 감정적 폭발이 개인적 특성인지 여성의 종특인지를 따져보는 부분은 정말 사족에 불과하다. 저 초보적 진화심리학 고찰의 합리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지금 사모님의 감정적 폭발을 개인적 특성으로 보든 여성적 특성이라고 우겨보든 어차피 선생님의 대응 방침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는 마당이다. 그런데 굳이 불필요하게 이건지 저건지 따져보는 척 하며 여성이 감정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그 태도/의도. 이거야말로 감정적인 대응이다.

 

셋째, ‘흔히 ~ 라고 한다.’는 말로 내가 그런 건 아니지만, 남들이 다 그래.’ 하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건 좀 비겁해 보인다.

 

넷째, 저 진화심리학적 명제가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그 명제를 서술하는 어휘 자체가 중립적이지 않다. 여성의 특성으로 들고 있는 사태를 전체적으로 파악해 대응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미세한 일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라는 두 표현이 '반면에' 라는 단어로 연결되었음에도 syo의 눈에는 둘 다 부정적으로 보인다. ‘미세’? 뉘앙스가 더 중립적인 다른 단어 많다. ‘예민’? 이것도 마찬가지다. 진화심리학 서적을 보면, 이런 부분을 서술할 때 어휘나 대응 구조를 매우 세심하게 고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무슨 무슨 능력이 떨어지고라는 표현보다는 남성은 상대적으로 이런 능력이 뛰어나다는 식의 표현을 선호한다. 언어를 다루는 일을 오래 해 오신 선생님이므로, 충분히 조금 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표현을 고를 수 있었으리라 syo는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아무래도 너무 화가 나서 그러기 싫으셨던 것 같다.

 

다섯째, 결국은 최종적으로 하고 싶으셨던 말씀은 니가 감정적 폭발을 억제하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이 부족하니까 그걸 좀 키워라, 그래야 여자가 아니라 사람된다, 정도로 보인다. 진화심리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진화심리학이 주장하는 여성의 특성이 사실이라면, 그것이 개인이 어쩔 수 없는 특성임을 고려하여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배려하는 데 있다. “여성은 원래 특성 자체가 이렇게 열등하니까 여성 니들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그 특성을 극복하여 남성처럼 합리적인 존재가 되도록 해라고 주장하기 위해 진화심리학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결론은 그냥 니가 똑바로 해. 그러기 위해, ‘문제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라는 말까지 첨언하신다. 아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본인이 다 따져놓고? 깔 때는 다 까고서는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을 위해서 안면을 싹 바꾸셨다. 그러니까 제 말이요. 이러실 걸, 그 이야기를 왜 하셨냐구요. 결국은 감정적 폭발을 자행한 사모님에 대한 감정적 툴툴거림을 주욱 늘어놓으셨으면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넘어서 타인을 성숙한 자세로 대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더 생각해보아야겠다.” 며 더 깊은 자기 성찰이라도 하실 것처럼, ‘성찰은 역시 나의 것처럼 서술하시는 데는 정말 혀를 내두를 밖에.

 

한 문단 가지고 너무 성대하게 깐 것 같아 송구한 마음이 있다. 진짜로 있다. syo는 남자인데, 분명 수렵과 채취의 본능이 뼛속까지 새겨져 있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 미세한일에 예민하게구는 걸까?

 

몇 페이지 더 뒤에 발견한 또 다른 재미있는 대목.


나는 재스민 차를 마시면서 다시 툴루즈 여성학대회 자료를 읽었다자료를 읽다가 세상의 불평등과 차별정의롭지 못함으로 억압받은 자들에는 여성만이 아니라 노인외국인노동자장애인아이들동물유대인흑인아시아인 등 상황에 따라 수없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130) 

 

이미 이런 저런 사회 운동에 발을 담근 경험이 있는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syo는 언감생심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정체성이 빨갱이에 가깝다 보니 노동운동이나 사회개혁 쪽에 더 관심이 많지만, 저런 발언을 볼 때면 좀 웃긴다. 노동 운동에 열중하는 사람들은 노동자의 억압만 발견한다. 그들의 눈에는 여성/장애인/외국인/생태계가 받고 있는 억압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환경운동가들은 생태계의 파괴가 너무 가슴 아프다 보니 노동자/여성/장애인/외국인이 받고 있는 차별은 물론 없어지면 좋겠지만 급한 일은 아닌 것처럼 생각한다. 그런 다양한 운동가들에게 이내 페미니즘에 대한 감수성도 좀 가지라는 이런저런 압력이 들어온다. 그리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읽든 마지못해 읽든 페미니즘에 대해 한두 권의 책을 읽고 나면 그들은 세상 전반에 대해 갑자기 눈을 뜬다. “그래, 여성 뿐 아니라 노인/외국인/노동자/장애인/아이들/동물/유대인/흑인/아시아인 모두가 다 억압받고 있어. 이런 상황에 여성 문제만 말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옳지 않아!” 맞다. 정론이다.

 

그런데 세상에, 원래 자기들이 하던 운동에 열중하던 시절에는 좀 봐 달라고, 봐 달라고 그렇게 외쳐도 전혀 보이지 않던 젠더 억압을 비롯한 세상의 갖가지 억압들이, 희한하게도 여성 문제에 대해 공부만 했다 하면 단기간에 모조리 다 발견되어 여성 문제에는 집중을 못할 정도라니. 이쯤 되면 페미니즘 이거, 정말 위대한 학문 아닌가

 

 

이런 이유로 이 책이 나쁜 책이냐고 물으신다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15년도 더 전에 이런 글을 썼다는 이유로 정수복 선생님을 폄하하는 거냐고 물으신다면, 절대,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착용할 수 있는 안경은 여러 가지다. syo는 이 책을 정수복 선생님의 주된 관심사였던 망명자의 안경을 쓰고도 읽을 수 있었다. syo의 지금 생활이 정수복 선생님의 파리 생활의 하위호환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빨갱이의 안경을 통해 읽을 수도 있었다. 그것은 syo가 책을 읽을 때 가장 자주 착용하는 안경이다. 다른 안경을 쓰고 읽은 이 책은 나쁘지 않았다. syo에게 좋았다고까지는 못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정말 좋은 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굳이 syo가 익숙하지도 정교하지도 않은 페미니즘의 안경으로 이 책의 한두 구절을 물고 늘어진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그다지 온당치는 않지만 그렇다고 못할 짓도 아니었다. 페미니즘의 안경은 언젠가 syo가 꼭 제대로 갖추고 싶은 시선이고,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으므로 부족하고 부끄럽지만 쓴다


결국 syo에게 이 책은 책으로서 버젓이 역할을 했다. 문학책을 읽은 사람이 문학적 지식이나 감동만 얻고 마는 것은 아니다. 공산주의를 다룬 책을 읽었는데 어쩐지 미적분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면, 그 책과의 만남은 그걸로 충분히 가치 있는 경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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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5-08 0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말입니다, 쇼님.
이 리뷰를 읽다가 이 부분에 밑줄을 그었고요.

<syo는 남자인데, 분명 수렵과 채취의 본능이 뼛속까지 새겨져 있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 ‘미세한’ 일에 ‘예민하게’ 구는 걸까?>

그리고 일어나서 박수를 칩니다. 네, 기립박수!! 훌륭한 리뷰네요. 보통 제가 피씨로 ‘좋아요‘를 눌러서, 제 좋아요는 보이지 않을 때가 많겠지만, 이 글은 제가 좋아요를 눌렀다는 것을 반드시, 기필코 알리기 위해, 이렇게 피씨에서 댓글 쓴 뒤에 북플 가서 좋아요를 누르겠습니다. 꾹, 하고 말이지요.

syo 2018-05-08 10:02   좋아요 0 | URL
뭘 이렇게까지나요 ㅎㅎㅎ
이 글은 그저 syo가 ‘미세한 예민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글일 뿐인 것을요.....ㅎ

유부만두 2018-05-08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인이신 장미란님의 ‘빠리의 여자들’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

syo 2018-05-08 10:04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드님의 건축 관련 책도 흥미가 생겼구요. 어마어마한 가족이네요. 일원이라면 누구나 책 한 권쯤은 쓰는....

단발머리 2018-05-08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세상에, 원래 자기들이 하던 운동에 열중하던 시절에는 좀 봐 달라고, 봐 달라고 그렇게 외쳐도 전혀 보이지 않던 젠더 억압을 비롯한 세상의 갖가지 억압들이, 희한하게도 여성 문제에 대해 공부만 했다 하면 단기간에 모조리 다 발견되어 여성 문제에는 집중을 못할 정도라니. 이쯤 되면 페미니즘 이거, 정말 위대한 학문 아닌가?˝

페미니즘 정말 위대한 학문 맞아요. 그렇다니까요. 페미니즘이 이렇게 넓은 강이예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정희진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여성주의 학자들의 주장을 syo님이 이렇게 정리해 주시니, 아주 명쾌하면서도 깔끔하네요.
역시나 syo님! 참말로 멋지십니다!!

그나저나, 제 좋아요! 도 잘 보이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8-05-08 10:50   좋아요 0 | URL
보여요! 잘 보여요! 심지어 다섯 개로 보이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18-05-08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으면서 밑줄치고 박수친 부분을 댓글에 다 달아주셨네요 ㅎㅎ syo님은 안경도 멋져요😎

syo 2018-05-08 13:4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센스있는 이모티콘🤓

2018-06-12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2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2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2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2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2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끝까지 멈추지 못하는 책과 끝없이 멈춰야 하는 책


썩 많은 책을 읽었다는 정도의 자랑이라면 부끄러움 없이 할 수 있겠다. 이런 3자 대화를 종종 겪곤 한다. "얘는 책 진짜 많이 읽어!" "아, 진짜 많다 할 정도는 아니예요." "와, 어느 정돈데요? 일 년에 백 권 넘게 읽으세요?" "아, 네, 뭐." "이봐, 장난 아니지?" "우와, 진짜 대단하시네요. 좋은 책 하나만 추천해주세요. 안 그래도 요즘 책 좀 읽으려고 그러는 중이거든요." 꾸준히 읽고 쓰시는 알라딘의 이웃분들 역시 무시로 겪는 일일테지만, 쟁쟁한 독서가들 사이에서도 책 추천은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물며 서로를 뜨문뜨문 아는 와중에 대뜸 책 한권 골라 달라는 요청은 때로는 폭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당신을 모르면 당신이 읽을 책도 모릅니다. 당신을 읽지 못하면, 당신이 읽을 책이 무엇인지도 읽지 못합니다. 정말로 '책 읽으려는 마음'을 품었는데 갈 길을 모르시는 거라면, 먼저 당신을 조금 더 알려주세요.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해 주세요. 당신은 지금 이렇게 말하신 거예요. 자, 이 글자는 '에이'라고 읽구요, 요건 '비'라고 읽으면 되구요. 그 다음 건 '씨'라고 읽으시면 돼요. 아시겠죠? 자 그럼, 이 단어 한 번 읽어보실까요? 'pneumonoultramircroscropicsilicovolcanoconiosis'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뜸' 책을 추천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syo는 두 부류의 책들을 떠올린다. 끝까지 멈추지 못하는 책과 끝없이 멈춰야 하는 책. 마지막 장을 읽고 나서야,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산소호흡 하는 동물이었지, 하고 깨닫는 책과, 단 한 줄을 읽어 넘기는데 들숨과 날숨을, 심지어 때로는 한숨을 몇 번씩이나 빚어놓아야 겨우 발이 떨어지는 책. 어느 쪽이 더 좋으세요, 하고 물으면 열 명 가운데 열두 명이 망설임도 없이 전자를 고른다. 그래서인가 어쩐지 후자를 고르는 사람을 만나면 감동받을 것 같다. 밥 한끼 사먹이고 싶을 것도 같다. 그래서 돈 좀 있었으면 좋겠다. 마음만 있다. 마음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마음이 없어서 세상에 굶주림이 없어지지 않는 것인데...... 하여튼, 그래놓고서는 막상 syo 자신은 '못 서는 책'과 '못 가는 책'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좋냐는 질문을 만나면 묵비권 말고는 답이 없다. 그런 책들과 함께 했던 순간들은 돌이켜보면 지금도 은근히 행복해지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못 서는 책



syo가 최초로 경험한 '못 서는 책'은 『죄와 벌』이었다. 열린책들판이었고,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눈이 쉬이 피로해지는 편집이지만 그런 걸 느낄 새도 없었다. 앉기만 해도 천장에 머리가 닿는 복층 좁은 공간에 매트리스 하나 깔고 얹혀 살던 시절, 겨울이었다. 날이 밝아 올 때 읽기 시작했는데 두 권을 다 덮었을 때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두 끼를 걸렀고, 정신을 차리고 나자 미친 듯이 배가 고팠으나 어쩐지 지금 당장 입으로 뭔가를 집어넣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의 여운을 길게 가져가지 않으면, 최소한 이 고양된 감정이 스스로 물러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내가 먼저 그 손을 놓친다면 평생 오늘을 후회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매트리스 위에 누워 팔을 뻗어 손끝으로 천장을 어루만졌다. 그 질감,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던, 그래서 차갑기도 하고 뜨겁기도 한 것 같던 감각을 아직 기억한다. 내가 지금 사실은 무엇을 만지고 있는지 계속, 계속 생각했다.




무라카미는 '못 서는 책을 쓰는 사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다. 처음 무라카미를 손에 들었던 18살부터,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던 이십대 중반까지 무라카미는 syo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였다. syo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4人'이라는 내부문건을 작성하고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기 위해 항상 유력 소설가들의 동향을 사찰하고 있다. 무라카미는 그 리스트에서 내려온지가 좀 되었는데도, 그런 것과 무관하게 여전히 가장 강력한 페이지터너다. 심지어 『1Q84』의 위력은 syo 혼자 검증한 것도 아니다. 보급이었는지, 아니면 개인이 가지고 들어온 건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하여튼 이 책이 유입되자 부대가 아주 난리가 났다. 몇몇 중요한(......새끼들.) 페이지는 소실되었다가 화장실 귀퉁이에서 꾸득꾸득 접힌 채 발견되질 않나, 책이 하도 서가에 돌아오지 않자 기다리다 빡친 말년 병장 하나가 누구 관물대에 짱박혀 있는지 찾아내겠다며 생활관을 지 맘대로 헤집어 놓다가 걸려서 말년 휴가 이틀이 짤리질 않나......  




못 가는 책



'道可道非常道' 라는 여섯 자가 인생의 화두였던 때가 있었다. 스물 갓 넘은 놈이 화두로 삼기에는 거대한 면도 없지 않았으나, 다양한 책들이 보여주는 그만큼 다양한 해석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보니 아무리 미미한 syo라도 나 하나 기대고 살 조악한 해설 하나 덧붙이는 게 뭐 그리 큰 죄겠느냐며 마음 위에 놓고 며칠을 궁굴린 여섯 글자였다. 종이에 열심히 적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한 페이지를 읽는 데 일주일이 더 걸렸다. 깨달은 것도 많고, 실질적으로 얻은 것도 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제일 안 아픈 부위를 골라 한 번 새겨 볼까 하여, 저 여섯 자 가운데 두 번째 道 하나를 제외한 다섯 글자로 타투 디자인도 만들어 보았다. 그때 그때의 여친들이 모두 반대했고, 여친을 제외한 나머지 인류도 반대표를 던졋기 때문에, 그 도안은 syo의 몸이 아닌 마음 속에서 때를 기다리며 조용히 잠들어 있다.   



『섬』은 순수하게 그 문장에 반하여 얼굴을 붉히며 오래 머물렀던 책이다. 지금은 어쩐지 본문보다 카뮈의 서문이 더 유명해져 있지만, syo는 특이하게도 카뮈보다 그르니에를 먼저 알게 되었기에 오히려 더 좋았던 걸 수도. 학교 도서관 서가를 기웃거리다 정말 우연히 뽑아든 책이 청하출판사에서 나온 『섬』이었는데, 이런 건 운명이라는 말 말고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민음사판과 청하판은 역자가 다른데, 민음사판의 김화영 선생님의 불어 번역이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느냐만은, 청하판 함유선 선생님의 번역도 미려하기로 따지면 한 치의 양보가 없다. 개인적으로 청하판 장 그르니에 전집은 정말 미친듯이 갖고 싶은 책들인데, 표지 디자인은 물론 수동 타자기로 때려넣은 것 같은 옛스러운 글자체 하며, 뭔가 그야말로 섬 같은 『섬』이 아닌가 싶다. 절판이고, 꼴랑 『섬』하나 가지고 있다. 복간되면 좋겠다. 민음사판은 선집이다. 





syo의 인생책이라 항상 추천하지만 단 한 번도 좋은 리액션을 받아본 적이 없는 비운의 책. 경험적으로 보면 사실『월든』을 좋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소로의 긴 문장을 천천히 읽기를 좋아해야 하고, 천천히 사는 소로의 삶 자체를 좋아해야 한다. 천천히, 천천히. syo는 속독하는 편이지만, 월든만큼은 음독 이상의 빠르기로 읽지 않는다. 매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때면 볕 잘 들고 바람 잘 통하는 곳에 앉아 조용히 마음 속으로 소리 내 이 책을 읽고 있다. 볕 들면 멈추고 바람 통하면 쉬어가는 법을 몸에 새기고 있다. syo는 위의 3종을 가지고 있는데, 다 좋다. 막 좋다. 조금씩, 그러나 명확히 세 권은 다르다. 그래서 더욱 좋다. 




syo가 톨스토이고 뭐고 모르겠고 난 그냥 무조건 도선생, 을 외치고 다닌 것은『죄와 벌』을 두 번째로 완독했을 때부터였다. 이 책은 syo에게 '못 서는 책'인 동시에 '못 가는 책'이다. 아직 다른 어떤 책도 syo에게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요즘 천천히 읽느라 가다 서다 되돌아가다를 반복하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  




멈추는 법을 알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끝까지 멈추지 못하는 책과 끝없이 멈춰야 하는 책 중 무엇이 더 좋은 책인지, 혹은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 하는 물음은, 어쩌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아니라, 질문할 수 없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면, "헤어 드라이어랑 미디움 웰던으로 구운 스테이크 중에 뭐가 더 패셔너블해요?" 하는 질문처럼. 그것은 '책의 기능'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가지치기하는 하위분류가 아니라, 전혀 다른 평면의 문제일 수 있다. 


그렇지만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어쨌든 책은 멈추는 법을 가르치는 가장 좋은 선생이 아닌가 하는, 멈추지 않으면 읽을 수 없고, 읽지 않으면 멈출 수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제발 좀 그만하고 멈췄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들의 말과 행태를 접할 때마다 권하고 싶은, 아니, 아예 어디다 가둬 놓고 쑥과 마늘만 먹이면서 읽히고 싶기까지 한 책이 쉽게 떠오르는 것을 보면, 저런 생각은 과정이 섞이긴 했어도 완전히 새빨간 거짓말은 아니지 않나 싶다.


그나저나 '못 서는 책'과 '못 가는 책'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니, 이건 무슨 계급 높은 꼰대들이 사람들 앉혀놓고 농담이랍시고 꺼내는 음담패설 같기도 하고, 타이틀 걸지게 뽑아서 독자 낚으려는 전형적인 기레기 수법 같기도 하다. 중의적 효과를 노린 건 전혀 아니었지만, 그게 오히려 syo가 태생적으로 더러운 작자라는 증거인가 싶어 더 무섭다......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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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도리 2018-02-17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까지 멈추지 못하는 책, 에는 도스토옙스키와 나쓰메 소세키가 있지요..죄와 벌.. ㅠㅠㅠ

syo 2018-02-17 15:25   좋아요 1 | URL
도 선생님과 나 선생님은 syo가 사랑하는 소설가 4人 리스트에 현재 등재되어 상시특별감시대상이 되고 있는 분들이지요.

깐도리님도 syo와 취향이 비슷하시네요- 라고 말하려고 하고 보니, 도스토옙스키나 나쓰메 소세키쯤 되는 거장들을 입에 올리면서 사적인 취향 이야기하는 건 좀 웃기긴 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2-17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 님의 독서일기는 항상 읽어도 새롭게 읽히는 맛이 있어 좋네요.. ㅎㅎ

syo 2018-02-17 17:24   좋아요 0 | URL
반사 ㅎㅎㅎㅎ
무지개 반사 ㅎㅎㅎㅎㅎ

단발머리 2018-02-22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죄와 벌,에 대한 syo님의 사랑이 아름답네요. 도선생님의 <죄와 벌>이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라는 걸 왜 사람들은 진작에 알려 주지 않았는지....전, 저보다 먼저 죄와 벌을 읽은 사람들을 원망했습니다, 진심으로요.

월든,을 볼 때마다 syo님 생각이 날 것 같아요. 여러번 언급하셔서 저도 읽어봐야지 하고 있구요^^

syo 2018-02-18 00:05   좋아요 0 | URL
왜 보통, 고전이라고 해서 추천받거나 잘 나가는 대학교 선정 필독도서랍시고 뽑아놓은 목록 속의 책들은 희한하게 다 재미가 없잖아요. 그런 진실에 한없이 수렴하는 편견 때문에 피해보는 거장들을 모아 놓으면 아마 제일 선봉에 도선생님이 서실 거예요. 저 편견 어택에 크게 당해서 사실 저도 꽤 늦게 도선생님 책을 손에 들어본 편이지요. 단발머리님의 진심을 십분 백분 오만분 이해합니다.

<월든>의 경우는, 혹시 내가 추천해서 부정 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반응이 떨떠름했지요...... 뭐......이젠 포기야......으흐규ㅠ

고양이라디오 2018-02-20 21:53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저도 그랬습니다! 저도 진심으로 저에게 <죄와 벌>을 추천해주지 않은 사람들을 원망했습니다.

psyche 2018-02-18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르니에 <섬>! 남편이 책 좋아하는 저를 꼬시려고 자기가 좋아하는 책이라며 건냈던 책.(본인은 흑심이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그거 읽고 그르니에 빠져서 그 이후 청하에서 사온 그르니에 전집 꽤 모았어요. 미국올 때 거의 모든 책은 다 친정에 두고 오고 큰 박스 한개에 책을 넣어 배로 보냈는데 그 때 챙겨온 책들 중 하나였죠.
지금 찾아보니 청하에서 나온 그르니에 전집 10개 가지고 있네요. <섬>은 청하것도 있고 민음사것도 있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민음사 <섬>은 저 사진에 있는 게 아니구요. 민음사에서 이데아 총서로 나왔던 <섬> 이에요. 틀춰보니 막 한문이 섞여있는.... 나 그 때 이거 어떻게 읽었지? 지금은 한자 까막눈 수준인데....
<월든>은 몇번 시도했다가 끝까지 못 읽었는데 다시 시도해봐야할까요?

syo 2018-02-18 08:44   좋아요 0 | URL
우와, 섬으로 썸타셨네요.
두 분 다 핵멋있어요. 섬으로 유혹하는 남편님도 멋있지만, 10권 모으신 프님이 더 멋있네요. 부럽습니다......

월든의 경우 추천을 포기했습니다..... 몇 번 시도했다가 못 읽으셨다면 굳이 읽으셔야 할까 싶기도 하구요. 지루한 면이 다분한 책인 것은 확실하니까요. 그래도 읽어보시겠다면, 이걸 완독해야겠어, 하는 욕심 없이 저처럼 며칠이 되건 몇 달이 되건 한 줄 한 줄에 머무르고 싶은 만큼 머물러가면서 천천히 읽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스토리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니, 마치 잠언처럼 읽어나가는 것도 방법이겠어요ㅎㅎㅎ

책읽는나무 2018-02-18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님의 책 이야기가 늘 흥미진진한데......
오늘은 읽고 있는데 왜 가슴이 뛸까요?
읽었던, 읽지 못한 책들....
조목조목 야무진 설명에
syo님 넘 사랑스럽습니다^^
집에 찜박아 놓은 월든과 죄와 벌 얼른 읽어야 겠구나!! 눈도장 찍으면서 그 책들을 읽으면 저도 syo님의 서재글이 많이 떠오르겠어요.월든은 정말 따라해 보고 싶은 광경입니다^^


syo 2018-02-18 08:50   좋아요 0 | URL
주신 사랑은 아주 넙죽 받아먹겠습니다 ^-^

도선생님 책은 전혀 걱정없습니다. 전적으로 시작하느냐 마느냐에 달린 문제거든요. 일단 시작만 하시면 그저 도선생님이 이끄시는 대로 물 흐르듯 흘러갑니다. 반면 월든은 걱정입니다.

저는 다른 책들은 빨리 읽는 편인데, 희한하게 월든은 처음부터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 천천히 읽었고, 매년 그렇게 읽고 있거든요. 월든을 읽다 중도에 그쳤다는 제보가 쏟아질때마다, 어쩌면 나처럼 읽는 것이 월든 읽는 유일한 방법인건가 하는 생각도 막 들고 그렇습니다. 책나무님도 올해 봄-여름 환절기를 한번 노려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ㅎㅎㅎ

cyrus 2018-02-18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판본을 복간하는 출판 트랜드를 생각한다면 청하 그르니에 전집 복간 소식이 없어서 아쉬워요. 최측의농간 출판사라면 해볼만한데 1인 출판사라서 전집 복간 출간은 어려울 듯합니다.

syo 2018-02-18 08:54   좋아요 1 | URL
언감생심이네요. 죽기 전에는 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요......

라로 2018-02-18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 저는 이 글을 읽고 너무 놀랐어요!! 제 고등학교 시절 서점에서 얇은 섬을 발견하고 구매했을 때 생각은 긴 글을 싫어하기 때문에 글이 대체로 짧고 얇아서 샀는데 결과는 제가 아주 사랑하는 책이에요!! 명상록과 함께 제 고등학교 동반자가 되어 준 책이랍니다.
도선생님의 책은 정말 대단하죠.
월든은 저도 시도라기보다 읽다가 흐지부지된 것 같아요. 아~~~이 책도 마무리를 져야 하는데. ㅠㅠ
저는 토비 님이 좋지만 섬 때문에 이제 빼도박도 못하게 좋아졌다는. ㅎㅎㅎㅎ

syo 2018-02-18 14:50   좋아요 0 | URL
맘 먹고 읽자고 들면 하루에 일곱 권도 더 읽을 수 있는 얇은 분량의 책 한 권을 일곱 날에 나눠서 읽으면서도 내내 감탄하고 감동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요. 물론 책 자체도 뛰어나야겠지만, 독자와 주파수가 맞아들어가야 가능한 일이니까요. <섬>은 그렇게 syo하고 주파수가 잘 맞는 책이었고, 라로님께도 그랬다면, 결과적으로 syo와 라로님이 주파수가 맞물리는 독자라는 이야기네요 ㅎㅎㅎ 빼박캔트 환영합니다. ^-^

<월든>에 부채감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꽤 많은 것 같아요. 비슷한 댓글을 계속 달다 보니 반복학습에 의한 최면 효과가 생긴건지, <월든>을 읽는 방법은 그야말로 느긋하게, 천천히, 볕과 바람 안에서, 라는 출처불명의 확신이 생깁니다.....

2018-02-18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18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짜라투스트라 2018-02-18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덕경 장자 논어 주역 같은 책들은 평생 계속해서 읽을 생각입니다^^ 섬은 진짜 청하출판사판본을 생각하면 문장 하나하나가 섬 같아서 문장 사이를 항해하며 섬들을 둘러본 느낌입니다^^ 어쨌든 쇼님의 책구분에 200% 동감합니다 ㅎㅎㅎ

syo 2018-02-18 23:30   좋아요 0 | URL
역시 청하판 그르니에 전집의 아름다움은 아는 이들은 다 아는군요. 크-

독서괭 2018-02-18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당신의 못 서는 책과 못 가는 책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져서 여러 사람들에게 답을 들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전 중학생 때 죄와벌을 시도했다가 질식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었더랬습니다 ㅠㅠ 몇년 전 다시 읽으니 숨쉬며 읽겠더군요 ㅎㅎ
몇년째 책장에 잠자고 있는 월든 토비님이 자꾸 얘기하셔서 자꾸 쳐다보게 됩니다. 죄책감은 점점 커져만 가고...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ㅠㅠ
암튼 토비님은 넘 멋져요.

syo 2018-02-18 23:3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월든 이 자식은 여기저기서 괜히 죄책감 조성하고 다니네요.

멋지다는 말씀은 못 들은 걸로 하지 않겠습니다. ㅎㅎㅎㅎ

고양이라디오 2018-02-20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선생과 무선생, <죄와 벌>과 <1Q84> 반갑네요^^ 저도 같은 느낌, 심정으로 읽었습니다. <1Q84> 3권을 읽으면서 남은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어찌나 아쉬웠던지요ㅎ

저도 따라해보고 싶은 ‘못 서는 책‘과 ‘못 가는 책‘ 이네요ㅎ

syo 2018-02-20 22:46   좋아요 0 | URL
제 특허도 아닌데요 뭘. 고라님도 한 판 하시죠 ㅎㅎㅎ

프리즘메이커 2018-02-21 0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흡입력 파기 때문에... 죄와벌과 하루키를 조용히 장바구니에 담겠습니다..

syo 2018-02-21 11:12   좋아요 0 | URL
프메님이라면 당연히 읽어보셨을 줄 알았어요 ㅎㅎㅎㅎ <죄와 벌>은 추천 안했다가는 욕먹는 분위기입니다.

프리즘메이커 2018-02-21 14:09   좋아요 0 | URL
ㅠ 대학원은 책을 못읽게하는 나쁜곳입니다....
 
존 치버의 일기
존 치버 지음, 박영원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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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검사유서


어두운 시간이 찾아오면 당신을 구원하는 데 재산은 쓸모가 없다오랫동안 다녔던 스키장이나 시냇물에 이르는 오솔길도 마찬가지다그보다 더 위대한 무엇을 당신은 반드시 찾아내야만 한다. (27) 


일기를 믿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소설가의 인생을 구성하지 않아도 된다. 듣고 믿으면 충분하다. 일기를 믿을 수 없다면 우리는 이 소설가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된다. 소설을 읽으면 충분하다. 하지만 일기가 믿을 수 있지만 믿을 수 없는 기록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소설가의 증언을 듣고, 신문하고, 상상하고, 메꾼다. 소설가는 이미 죽었다. 우리는 죽은 소설가의 일기에서 살아있는 소설가를 건져낼 필요가 없다. 소설가의 삶을 부검하고 그 흔적들 안에서 우리가 쓸 백신이나 치료제의 실마리를 길어내면 된다. 소설가는 이미 죽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살아있다. 이게 희소식이다. 나쁜 소식도 있다. 죽은 소설가를 찾아갔던, 그의 다잉메시지가 지목하고 있는 그 느긋하고 끈덕진 살인마, ‘어두운 시간역시 아직도 살아있다. 이제는 호시탐탐 우리의 옆자리를 노리면서.

 

 

 

첫번째 비상구 : 쓰기


잘 쓸 것정열적으로 쓸 것좀더 자유롭게 쓸 것좀더 너그러워질 것자신에게 좀더 엄격해질 것욕망의 물리적 힘뿐 아니라 그 지배력에 대해서도 인지할 것글을 쓸 것사랑할 것. (43)


어두운 시간에 갇힌 소설가는 종종 펜과 잉크 대신 나침반과 지도를 집어 들었다. 각도기와 삼각자를 문장에 가져다 대고 미세조정을 거듭했다. 글길이 멀었으므로 그 길은 아름다워야 했다. 문장의 여행자는 정열적이면서도 자유로웠고, 너그러운 동시에 엄격했으며, 욕망, 욕망에 신경을 온통 쏟았다. 소설가는 쓰고, 쓰고, 쓰고, 사랑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펜이 지나온 궤적 위에 나침반을 올려놓고 어디로 향할지를 가늠했다. 그의 인생은 그런 과정의 지난한 반복이었다. 우리는 그 반복의 매듭을 가리키며 소설이라 불렀다. 우리가 그저 소설가의 잉크가 달려간 궤도만을 포착되는 동안, 소설가는 자신의 비밀스런 측량기구들을 일기장 속에 조용히 묻었다. 그가 죽고 나서야 세상에 나온 일기장이었다. 


 

작가란비극적이게도방관자의 입장에 서기 위해 기웃대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작가는 그의 창을 통해 공원에 핀 천수국을 훔치는 여자를나무 뒤에서 오줌 누는 노인을또 사람들이 공터에서 공을 주고받는 놀이를 지켜보지만 작가와 이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광경 사이에는 그 어떤 냉혹한 심연이 가로놓여 있는 듯하다어쨌든 작가는 손에 든 펜으로 카뷰레터를 수리할 수 없고 풋볼도 할 수 없다거기에 너무 날카롭고 비판적인 눈을 갖고 있기도 하다. (486)

 

인간의 비참함이 지니고 있는 그 광대함과 강렬함을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게끔 묘사하기초조함과 병적 상태라는 고뇌를 잘 다듬기고통에 약간의 고귀함을 부여하기하지만 우리가 이를이러한 비극을 어느 정도의 도덕적 권위도 없이선과 악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각도 없이 다룰 수 있을까? (316)

 

소설에 소설이 쌓였다. 쌓인 소설들이 세상 사람들의 책상 위로 퍼져나갔다. 세상이 소설가를 칭찬했다. 당신이 세상에 무엇인가 해줬노라고. 그러나 그 즈음 소설가는 소설이,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보았다. 그리고 썼다. 그러나 의심했다. 가능한 일이 의심받았고, 이내 허락된 일들도 의심받았다. ‘할 수 있을까에서 해도 될까. 그러는 중에도 소설은 계속 태어났다. 세상은 기뻐하며 소설의 겉옷에 무겁고 빛나는 훈장을 달았다. 소설은 저 홀로 육중해졌고, 소설가는 점점 부풀어가는 자식을 불길한 눈동자로 응시했다.

 

 

작가는 그의 상상력을 개발하고확장하고끌어올리고부풀리며 이것이 선과 악의 이해에 대한 자신의 운명이요 유용성그리고 공헌이라고 확신한다작가가 그의 상상력을 부풀리면 그는 악에 대한 그의 능력을 부풀리는 것이 된다작가가 그의 상상력을 부풀리면 그는 불안에 대한 그의 능력을 부풀리는 것이 되고 그러면 필연적으로 오직 치사량의 헤로인이나 알코올로만 완화시킬 수 있는 참담한 공포의 희생양이 되고 마는 것이다. (493)

  

그렇게 소설가는 서서히 무너졌다. 제 몸보다 더 거대한 자식을 낳기 위해 끝없이 상상력을 부풀려가며. 낡은 나침반과 지도는 이제 와 어떠한 위대함도 가리키지 않았다. 소설가의 손에는 펜만 남았다. 그것은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휘둘리고 마는 참담하고 무서운 물건이었다. 여기가 그의 첫 번째 환멸의 자리였다.

 



두 번째 비상구 : 부부

 

결혼에 대한 네일리스의 기억은 낭만적이지 않았고 심지어 조잡하기까지 했다그는 전통적인 아름다움엔 관심이 없는 듯했다가을 장미를 다듬는 메리앨런야회복 차림의 메리앨런친구가 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흐느끼던 메리앨런하지만 이보다도 네일리스는 테시라는 개가 병에 걸려 그랜드피아노 밑의 마룻바닥에 토했던 밤을 기억했다때는 새벽 3시였고 그는 늙은 개를 밖으로 내보낸 후 대걸레와 양동이를 들고 와 토사물을 치우는 중이었다청소하는 소리에 잠이 깬 메리앨런이 나이트 가운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피아노 밑에서 위를 쳐다보던 네일리스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메리앨런은 종이타월을 가져오더니 이어 손과 무릎을 굽혀 네일리스를 돕기 시작했다청소를 다 마치고 일어서던 메리앨런은 그만 피아노 뚜껑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상처가 생겼고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벌거벗고 있던 네일리스는 키스로 눈물을 닦아준 후 메리앨런을 소파로 데리고 갔다그는 메리앨런의 나이트가운을 가슴 위로 끌어올리고 그녀와 사랑을 나눴다또다른 밤메리앨런은 자신이 목욕을 하기 전에 섹스를 하자고 그에게 부탁했다섹스가 끝난 후 그녀는 욕조에 물을 받았고 그가 욕실로 가서 알몸으로 변기에 앉아 있는 동안 다리의 털을 밀었다. "점심 때 더운 음식을 먹지 않으면." 그가 말했다. "설사가 나와치즈를 먹어도 설사가 나오더군." "난 치즈를 먹으면 변비에 걸려." 메리앨런이 말했다그녀는 계속 다리의 털을 밀었다그 모습은 정말정말정말 아름다웠다그것이 그가 기억하는 장면이었다. (527 528)

 

인간의 창백함을 오래 지켜보았던 소설가는 사람을 사랑하였으나 사람의 사랑에 커다란 기대를 거는 것은 아니었다간혹 사랑에 기대었으나 사실 그 사랑의 가면 뒤에는 의무나 성욕의 맨얼굴이 숨어있을 뿐이었다의무성욕성욕의 의무의무적 성욕. 어쩌면 그가 바란 것특히 아내에게 그가 바랐던 것은 고작 이런 것들일 뿐인지도 모른다그러나 그 속에 숨어있는 조잡함이야말로 오히려 그의 숨통이었다무시로 사랑을 나누고소소하고 더러운 것들을 함께 나누는 것소설가는 고작 그런 것을 바랐다무려 그런 것을 바랐다.

 


거리에서그러니까 동창이나 그와 비슷한 누군가를 만났다고 가정해보자당신은 그 동창의 저녁식사 초대를 받아들인다친구의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당신은 뭔가 일이 잘못됐음을 깨닫는다친구의 아내는 울고 있고 동창은 술에 취한 것 같다비틀거릴 정도는 아니지만 술을 상당히 많이 마신 것처럼 눈에 띄게 이상한 짓만 한다당신이 땅콩을 사양하면 냉소적인 표정을 짓는다저녁식사를 하려고 식탁에 앉기 전친구가 자기 아내를 욕하고멸시하고조롱한다한창 식사하는 도중 친구는 자기 아내가 더러운 계집이라며 흉을 본다친구의 아내는 평범하고 착한 심성을 가진 여자 같다당신이 식사 중에 모자와 코트를 집어 밖으로 나오는 동안에도 그녀는 계속 울어대고 친구는 입에 담지 못할 온갖 더러운 말로 그녀를 욕해댄다. 10년에서 15년이 지난 어느 날 저녁극장에서 빠져나오던 당신은 동창이 당신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를 또 듣는다옆에 있는 아내는 여전히 같은 여자여서 당신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는데 동창의 아내는 행복한 표정이다동창의 집은 당신이 사는 곳 근처로 밝혀지고 이에 같이 택시를 타고 가다가 술을 한잔 마시기 위해 내린다십 분 동안은 모든 게 유쾌하다동창 친구는 아내에게 왜 샌드위치를 만들어주지 않느냐고 묻는다왜 그 엉덩이를 움직여 뭔가 쓸모 있는 일을 하지 않느냐고 따진다친구의 아내는 울기 시작하며 부엌으로 들어가고 당신이 모자와 코트를 챙겨 밖으로 나올 즈음 동창은 또 자신의 아내를 향해 계집년더러운 년창녀라면서 욕을 해댄다. (122 123)

 

그러나 소설가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았을 때쯤이미 그들 부부는 파국의 시야 안에 들어와 있었다그들은 끝과 아직 사이의 두꺼운 경계선 위에 서로의 그림자를 밟고 서 있었다어느 날은 끝인 것 같았고또 어느 날은 아직인 것 같았다다른 모든 싸움은 그 시작점이 명확하지만오직 부부의 싸움만큼은 그렇지가 않다. “내가 이런 것은 그 전에 당신이 그랬기 때문이다.” 모든 부부는 이 말에 동의한다단지 누가 고 누가 당신인지에 대한 합의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뿐이다그는 아내에게 수없이 요구했고수없이 거절당했으며그 거절을 수없이 기록했다우리는 그 기록을 상처로 읽을 수도 하고 과도한 성욕이나 착취시도로 읽을 수도 있다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읽든소설가로서는 여기가 바로 그가 맞닥뜨린 두 번째 환멸의 자리임이 분명하다.


 


세 번째 비상구 : 도망

 

창가에 서서 거리의 사람들을 지켜보았다나는 갇혀 있다사람들은 자유롭게 거리를 오갔지만 그 자유 속에서 너무 무신경하게 행동하고 있어 자유가 낭비되고 있는 듯이 보였다. (694)

 

우리 역시 누구나 한 번은 다 겪듯결국은 소설가도 내려놓고 싶었을 것이다그는 갇혔다그러나 갇혀 있는 것보다 더 무섭고 괴로운 일은갇혀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느끼는 것이다그때 우리는 탈주를 꿈꾼다무엇도 나를 속박하지 않는 곳을동파된 수도관에서 자유가 터져 나와 하수구로 낭비되는 무심하고 방탕한 세상을 열망한다우리가 그렇다그도 그랬다.

 

 

하지만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려 하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도망칠 수 있단 말인가? (211)

 

그러나 도피의 험한 길 위에서 그는 생각한다무엇이 나를 밀었나무엇이 나를 도망치게 하였나대부분의 도피를 무로 되돌리는 묵직한 질문이다그래서 종종 도피에 실패한다멀리 못 가고 되돌아온다우리가 그렇다그도 그랬다가는 길은 혼자였으나 돌아오는 길은 동행이다환멸이 따라 붙었다.

 

 

 

네 번째 비상구 : 자기파괴

 

인생에서 가장 놀라운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가 스스로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자기파괴 본능을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이다혹시 자기파괴적인 모습을 갈망하거나 꿈꿀 수도 있겠지만 이런 우리의 생각은 한줄기 빛에또 불어오는 바람의 변화에 그래서는 안 된다고 설득당하는 것이다. (217)

 

그렇다면 나를 부숴버리는 것은 어떨까.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어디에도 기댈 대가 없다면 어디에도 기대지 않는 것이다. 아무데도 갈 곳이 없다면 아무데도 가지 않는 것이다. 소설가는 침잠했다. 그리고 자신의 안에 도사리고 있는 자기 파괴의 씨앗을 발견했다. 그것은 놀라울 만큼 얕은 곳에 있었다. 떡하니 있었다. 도리어 그는 이렇게 물었다. 우리는 어떻게 이제껏 이 파괴적 본능에 눈길을 주지 않고 버틸 수가 있었을까. 이렇게 선명한 것을. 이렇게 외설적인 것을.



마음속에서 자기파괴가 시작될 때그것은 그 크기가 단지 모래알 정도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그것은 두통이요가벼운 소화불량이요오염된 손가락에 지나지 않는다하지만 당신은 8시 20분 기차를 놓치고 신용기한 연장정책에 관한 회의에 늦게 도착한다점심을 함께하기로 한 옛 친구는 갑자기 당신의 인내심을 바닥내고 이에 당신은 유쾌해지기 위한 노력으로 석 잔의 칵테일을 들이켠다하지만 그때쯤이면 이미 하루는 그 형태를그 의미와 감각을 잃어버린다어떤 목적과 아름다움을 되살리고자 당신은 너무 많은 칵테일을 마시고 너무 많은 얘기를 하고 다른 누군가의 아내를 유혹하면서 결국은 바보스럽고 외설스러운 어떤 일로 치닫게 되며 아침이 되면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이와 같은 심연에 빠지게 된 경로를 되돌아보려 할 때 당신이 발견하게 되는 것은 모래알뿐이다. (65)

 

그저 딱 한번, 그 선명하고 외설적인 것과 단 한번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 이제는 그놈이 그를 물고 놓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이후로 그는 종종 단 한 알의 모래알로도 온몸이 서걱거렸다. 그것은 잡히지 않는 들불처럼 일어나 번졌고 그는 그저 불탈 뿐이었다. 그는 재가 되고 재가 다시 재가 되어 이리저리 날렸다. 차라리 그것을 찾지 않았다면, 호기심에 그것을 눌러보지 않았더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는 설득에 생각 없이 넘어갔더라면. 그는 새로운 환멸을 만났다. 남은 평생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작은 절망을 훔치고 큰 절망을 내밀 버거운 적수였다.

 

 

  

마지막 비상구 : 금지된 사랑

 

남자들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는데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가장 엄격한 잣대로 검토해보아도 그런 애정 관계에서는 그 어떤 성욕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다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기뻐하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주목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우리는 함께 있으면 서로 행복해하고 만족하지만 떨어져 있을 때는 결코 서로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이러한 유대관계들은 우리가 인생애서 형성하는 그 무엇보다 강력하지만 우리는 완벽한 무책임성으로 그것들을 집어 들었다가 내쳐버리기도 한다우리는 병원에 있어도 서로를 방문하지 않으며 떨어져 있을 경우 편지를 거의 쓰지 않는다하지만 같이 있을 때는 사람들이 소위 사랑이라 부르는 것의 최소한 몇 가지 증상들을 경험하기는 한다. (442 443) 

 

종종 있는 경우와는 달리, 소설가에게는 금지와 억압이 가져오는 매력이 동력으로 기능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소설가가 처음 남자에게 성욕을 느꼈던 시점의 일기에서 뜨악함과 일종의 자기 경멸까지 읽을 수 있다. 대신 그는 꾸준히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거절은 그런 힘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깊이, 그리고 오래 들여다보아도 그는 자기 욕망의 가지 끝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것이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불알을 흔들면서 숲으로 달려라달려라달려라그리하여 그것을 님프의 은밀한 곳에사티로스의 털로 덥수룩한 엉덩이에 집어넣어라그러면 마침내 네 자신에 대해 알게 되고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리라하지만 그렇다면 사티로스는 왜 그 바보천치 같은 음흉한 미소를 짓는 걸까보기에 그럴듯한 것과 이 세상이 사랑하라고 권고하는 것을 사랑하고그리하여 이에 대한 보답으로 사랑받게 되는 행운을 차지한다는 것은당신의 주머니를 털고 목을 비튼 후 당신을 죽은 채로 하수구에 내팽개쳐버릴 포르토프랭스의 한 선원에게 구애하는 것보다 더 가벼운 운명이기 때문이다. (480 481) 

 

그래서 결국은 싸워야했다. 누구도 자기 자신과 평생을 싸울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은 최초의 적이 동맹이 되고, 마지막 적은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 선택을 우리는 자기합리화라 부를 수도 있지만, 정신적 건강함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내 안에 숨어 있는 한 명의 적은, 내 밖에 도사리고 있는 수십억의 적만큼이나 두려운 상대이기 때문이다.

 

 

나의 불안정성은그 변화무쌍함은 새로운 수준에 다다랐다나는 종이에 이렇게 쓰고 싶다. "널 사랑해널 사랑해널 사랑해." 수백 번아니 수천 번이라도이 모두는 부적당한 고객에게로 향하고 있다전화를 해야겠다진실을 발견하는 중이라는 억측 뒤에 숨어 열정을 승화시키지도그렇다고 억누르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녀의 눈에서 콩깍지가 벗겨졌다."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었던 사랑의 열병이 종말에 이르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이 말에는당연하지만사회는 무너뜨릴 수 없는 운명적인 신의 말씀과 같으며 만약 우리의 에로틱한 욕구를 통제할 수 있다면 이는 이 사회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 (682 683)

 

그리고 마침내 소설가는 사랑한다. 사랑을 부인했던 시절을 넘어, 싸움과 싸움이 이어지는 전장을 거쳐, 마침내 사랑의 자리에 도달한다. 수백 번, 수천 번을 써도 부족함이 있는 사랑, 그것은 진짜로 보인다. 세상은 사랑을 한 덩이의 소고기처럼 등급 짓고 그 위에 도장을 찍는다. 월권이고 오만이다. 그의 사랑이 진짜였는지는 그와 그가 사랑한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소설가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과정에 옆자리를 지켰던 그 사랑이 있었으므로, 일기의 마지막 몇 장에 그 사랑의 이름과, 그 이름을 사랑하고 고마워하는 소설가의 마음이 잔뜩 들어있었으므로, 어쩌면 우리는 마침내 소설가가 어두운 시간의 방문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할 위대한 무엇인가를 찾아냈다고 선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이 어둠은 세상이 용인한 사랑을 하는 다른 이들에게는 찾아오지 않는, 소설가가 덤으로 감당해야 했던 또 다른 어둠이겠으나. 우리는 이번에야말로 환멸이 그를 빗겨나갔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syo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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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2-13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캬~~ 좋다~~
좋아요, 정말...

syo 2018-02-13 11:05   좋아요 1 | URL
(으쓱으쓱)
(으쓱으쓱으쓱)
ㅎㅎㅎㅎㅎㅎ

[그장소] 2018-03-09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좋네요! 멋져요..글이~^^

syo 2018-03-10 00:04   좋아요 1 | URL
어설픈 글이예요 ㅎㅎㅎ
감사합니다^-^

[그장소] 2018-03-10 00:12   좋아요 0 | URL
이 겸손 난 반댈세~!! ㅎㅎㅎ
으쓱으쓱 하셔도 되어요!^^

syo 2018-03-10 00:14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ㅎ
쓸 땐, 그리고 쓰고 나서 한 며칠은 진짜 혼자서 신나게 으쓱으쓱 했는데 시간 지나고 찬찬히 보니까 좀 부끄럽네요...

[그장소] 2018-03-10 00:16   좋아요 0 | URL
맞아요 . 저도 그래요 . 금방 쓰고는 빠져 있다가 정신차리면 어긋난 부분들이 보이곤 해서요 . 그래도 그냥 두지만요. ㅎㅎㅎ
syo님처럼 긴 글 잘 쓰는 분들 부러워요. 저!! 🤔🤗😁

syo 2018-03-10 00:21   좋아요 1 | URL
가끔 자려고 누웠다가 괜히 북플 켜서 예전에 써 놓은 글 한번 더 읽어보면 사정없이 이불킥....

그장소님이 syo를 부러워 하신다구요? 에이 아냐.....그건 아니죠🤔
이 겸손은 내가 반댈세~ 😆

[그장소] 2018-03-10 00:27   좋아요 0 | URL
ㅎㅎㅎ그럼 이불킥 대신 우리 자아비판을 킥해버립니다~!! 순간의 몰입에 빠졌던 그 느낌은 신났으니까요!^^
그리고 부러운건 부러운 거예요 . 다락방님도 그렇고 AgalmA님도 그렇고 syo 님도 .. 저는 5000천자 넘기는게 일이거든요 . 어려운 일.. 😥😆

syo 2018-03-10 00:33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AgalmA님 말씀하시니까 확 와닿네요.
부러운 건 부러운 일이죠. syo도 그장소님처럼 5000자를 쓰는 일이 어렵고 드문 일이지만, 제가 2500자 같은 5000자를 쓰는 반면 그 분들은 25000자 같은 5000자를 쓰시니까 참 부럽지요.

그렇지만 그장소님처럼 잘 쓰시는 분께 길이가 무슨 상관이겠어요. 짧아도 좋음 그저 장땡입니다.
그장소님 장땡.

[그장소] 2018-03-10 00:36   좋아요 1 | URL
하핫~ 25000자 같은 5000자! 쿵~ 와닿네요. 그분들은 아실까 몰라요. 어디선가 늘 부러움에 지는 상황을요~😆🤣

암튼 잘 쓴‘ 다고 해주셔서 응원챙겨갑니다.
굿굿한.밤되세요!^^
 
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그해 우리의 마음들을 기억한다.

 

눈발이 옅어 겨울도 옅은 고장에 뜻밖의 큰 눈이 내려 쌓이고 길이 얼었다. 아이들은 매일 걷는 길을 조심조심 걸었고, 학교에 모여 매일 듣는 수업을 듣거나 매일 보는 교재를 보며 겨울방학을 녹였다. 몇몇은 화가 났다. 마음이 얼었다. 그래도 숨거나 도망칠 수 없었다. 길이 얼었고, 얼어붙은 길 위에서는 언 마음이나 녹은 마음이나 모두들 조심조심 걸어야 했기 때문에, 어린 마음들은 탈주를 포기하고 교실에 앉아 그저 조금씩 딱딱해지는 중이었다. 마음의 모서리가 줄곧 날카로움을 더해가는 중이었다. 모서리가 다른 모서리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건드리기만 해.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기만 해 봐. 이곳은 웅크린 모서리들의 각축장. 겨울이 옅은 고장에 사는 아이들의 안으로, 안으로 겨울이 열렸다.

 

또 그해 그 여자아이가 맥없이, 잘못 없이 받은 상처와 우리의 잘못을 어림한다.

 

옆 반 아이가 창문을 열고 내지른 소리가 우리 반 창문을 타고 넘어왔다. 아가씨, 고개 좀 들어 봐. 우리 반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창가로 몰려들었다. 거칠게 열어젖힌 창문 바로 아래 우리 학교의 담이 있었고, 그 담 너머 자동차 한 대 겨우 지나다닐 좁은 길 위로 교복 입은 여자아이가 작고 조심스러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친구의 입이 뿜어낸 나쁜 말들의 손끝이 그 아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가씨! 여기 한 번 보라니까? 커피 한 잔 합시다! 여자아이가 웅크린다. ! 나는 어때? 저 새끼는 고자야! 나쁜 말이 커지고 여자아이는 더 작아진다. 아가씨! 놀다 가라니까? 오빠가 잘해 줄게! 그때 갑자기 여자아이가 미끄러져 휘청한다. 길가에 면한 여섯 개 학급의 창가에서 큰 웃음이 터진다. 어이, 아가씨, 괜찮아? 그러다 넘어져! 여자아이는 얼른 자세를 다잡고 다시 걷는다. 아이는 이미 너무 작아져 있다. , XX, 사람이 물으면 대답을 해야지! 지금 너 걱정하는 거 아냐! 여자아이는 여섯 개 학급을 겨우겨우 지나쳐 큰 도로 쪽으로 나가는 골목길을 돌아 사라진다. 아니 어쩌면, 작아지고 작아지다 이내 사라져버린 건 아닐까?

 

끈적거리는 가운데 날카로운 그 무섭고 더러운 말들을, 우리는 어디서 배웠을까? 그 검은 말들이 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었던 걸까? 창가에 우르르 몰려들었던 우리는 쉬는 시간이면 어깨를 겯고 매점에 들러 스스럼없이 자기 지갑을 열어 서로의 손에 먹거리를 쥐어주는 정다운 친구들이었다. 더운 여름 한 번 건네주면 땀에 찌들어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새로 빨아 가져온 체육복을 망설이지 않고 빌려주는 친구였다. 저 친구가 한 문제를 더 풀면 내 등수가 떨어지더라도 그 한 문제를 기어이 알려주고 차라리 제 잠을 줄여 공부를 더 하는 든든한 전우였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가 사라지고 모두들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려놓았던 샤프를 쥐고 다시 수학 문제를 풀 때, 이미 우리는 다시 예전의 그 모든 우리였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부끄러워 마땅한 것은 우리의 입이 만든 말들이었지만 정작 부끄러워하는 것은 여자아이였다. 우리가 뱉은 부끄러움들이 그 아이가 걷는 길 위에 미끄러움으로 쌓이고, 얼음이 아니라 말이 만든 그 미끄러움이 아이의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넘어지면 더 큰 부끄러움을 맞닥뜨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서, 아이는 그 지옥 같던 여섯 개 학급의 옆길을 더 조심스레 더 천천히 걸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 슬픈 발걸음 말고 다른 보폭을 선택할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걸 우리는 몰랐고, 우리 가운데 일부는 지금도 모를 것이다. 큰 도로를 향해 여자아이는 사라졌지만, 여자아이에서 여자가 되고, 여자에서 다시 연령이나 외모, 직업, 결혼여부 따위로 매겨지는 수많은 하위호칭들의 터널 속을 강제로 걸어 나가면서, 그녀는 아마 계속해서 조심스레, 천천히, 포착되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고, 넘어지지 않으려 웅크리며 걸었을 것이고 또 그렇게 걸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이 그녀의 보폭을 그녀에게 돌려줬으면 좋겠다.

 

성큼성큼 걷고 싶다면 성큼성큼 걷고, 잠시 멈춰 서서 여섯 개 학급의 창문 속에 숨은 머저리들에게 쌍욕을 하고 싶다면 손가락도 하나 펴서 시원하게 욕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날 우리가 빚은 말들과 그 말들로 더러워진 어느 겨울의 풍경을, 어린 날의 치기나 한때의 추억이라며 한 젓가락 술안주로 소비하는 친구들이 아직 남았다면, 말해주고 싶다. 우리가 만든 부끄러움은 끝내 우리의 것이며, 언젠가는 인정해야 할 날이 온다. 부끄러움을 부인하는 일이 더 큰 부끄러움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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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1-24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번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렸지요.
하지만 너무 읽을 책들이 많아서 잠시 미루어
두었었는데 예약이 되었다는 말에 오늘 아침에
집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타이틀 단편을 읽었는데 그것 참...

점강이 아닌 점층적 자각으로 이끈 점이 문학
적 클리셰이가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들었습
니다.

syo 2018-01-24 16:22   좋아요 2 | URL
솔직히 제 눈에 조남주 작가는 재능있는 소설가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김지영도 그렇고 이 작품도 그렇고 ˝문학적˝으로 기똥찬 데는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작가는 아니기도 하구요.

그런데도 이만큼 읽히고 이만큼 호명되는 건, 제 취향이랄지 작가나 작품의 ˝문학적˝ 역량 바깥에서 작용하는 뭔가가 있고, 그게 소위 문학적이라는 것이 뭐 얼마나 대단한 기준인 건지 메타적으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데도 있는 게 아닌가 하구 뭐 그렇지요.

레삭매냐 2018-01-24 16:34   좋아요 1 | URL
격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저도 신랄하게 더 까고 싶더라구요...

시류에 영합한, 시류를 만들어낸 소설이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는 법이니깐요.

아무래도 방송작가 출신이다 보니 말랑한 감성을 공략
하는 법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현남 오빠에게>도 소설이라기 보다 왠지 한 편의 단편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syo 2018-01-24 17:07   좋아요 2 | URL
허허.
전 신랄하게 까려했던 것은 아닌데;;;

레삭매냐님께서 말씀하신 ‘시류에 영합‘과 ‘시류를 만들어 낸‘ 이라는 두 가지 표현은 syo의 기준에서 보면 천지차이입니다. 저는 <82년생 김지영>의 경우는 시류에 영합했거나 시류를 만들어 냈다기보다 ‘시류를 드러낸‘ 소설이라고 보고 싶고, 그런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몸으로 느끼고 또 그 중 일부는 힘들여 증언하는 어떤 현상에 서사와 언어의 옷을 입혀 많은 사람들이 ˝맞아, 이거 내 얘기야. 딱 내가 이랬다고 말을 하고 싶었어.˝ 하게 만드는 것도 문학의 역할 중에 하나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작품 자체가 문학적으로 얼마나 잘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어떤 큰 집단의 언어를 대신 구현해 주었다는 데서 충분히 가치있게 자리매김하는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던 건데, 제 표현이 서툴렀던 것 같아요.

레삭매냐님이 느끼신 것들, 더 신랄하게 까고 싶으신 마음을 그대로 이해합니다. 평소 레삭매냐님의 글을 열심히 읽고 판단하건대, 소설에 대한 안목으로 보면, 레삭매냐님은 syo가 토를 달기에 너무 높은 데 있는 분이시기도 하구요. 작품 자체나 작가의 역량에 대해서는 뭐 별로 다르게 생각하지도 않구요. 실제로 제 주변의 여성분들도 이 작품이 하는 말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이 작품이 말하는 방식 자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훌륭한 것은 아니라고들 하시더라구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서니데이 2018-01-25 0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날씨도 많이 추워요.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독서괭 2018-01-25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비님!! 이 슬픈 글에 귀여운 별명을 불러 죄송하지만 입에 짝짝 붙네요..ㅎㅎ
그 작은 여자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ㅜㅜ “이미 우리는 다시 예전의 그 모든 우리였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 저도 인간의 이런 모습을 보면 의아하기도 하고, 저에게도 그런 이중성이 있을 수 있겠다 싶어 오싹해집니다.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syo 2018-01-25 14:14   좋아요 0 | URL
토비가 인기가 좋아지면 우선 닉네임을 바꾸고, 나중에는 영어 이름으로 쓸까 싶습니다.
아임빠인땡큐앤유밖에 못하는 영어긴 하지만요.ㅎㅎ

아트 2018-01-28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솜씨가 좋으시네요. 잘 읽고 갑니다 :) 감사합니다.

syo 2018-01-28 23:09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ㅎㅎ 제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