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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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마 전, 엄마가 죽었다. 카뮈가 이와 비슷한 문장을 남긴 이후로, 다른 누구도 이런 문장을 함부로 쓸 수 없게 된 것 같다. 일생에 오직 한 번, 실제로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를 빼면.

 

엄마가 죽었다.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러나 이 말들을 내뱉기 어려운 것이 사실 카뮈 탓은 아니다. 나는 입으로, 손가락으로, 심지어는 침묵으로 저 문장을 수십 번 이상 뱉어내면서, 그때마다 아프고 슬프면서, 많이 생각했다. 세상에서 죽음이라는 개념을 가장 멀리 밀어내는 단어가 엄마라서, 그 엄청난 척력을 찍어누르고 한 문장으로 묶기 위해서 마음의 힘을 많이 소모하는 것은 아닌지를.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153)

_ 시몬 드 보부아르, 아주 편안한 죽음

 

 

 

2

 

엄마는 길지 않은 생의 아래쪽 절반을 암과 이런저런 방식으로 싸우다 갔다. 지금의 나보다 고작 몇 살이 더 많았던 나이에 첫 암을 만났다. 그놈은 골수에 생겼다. 골수 이식을 두 번 받았고, 오랜 시간을 무균실에서 지냈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나 모르게 넘겼다고 나중에 들었다. 몇 개의 천운이 있었고, 천운과 천운 사이를 의지로 이어붙이며 엄마는 암과 싸웠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항암이 끝나고 새로 나는 머리와 눈썹은 이전의 것들보다 굵고 진해서 좋다고, 엄마는 말하며 웃었다.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엄마는 그 후로도 10년은 날것을 먹지 않았다. 과일도 익혀 먹었다. 주기적으로 내원했고, 엄마의 이런저런 혈액 수치는 우리 가족의 근심거리가 되었다가 낭보가 되었다가 했다. 일희일비했지만 며칠이면 잊고 우리는 살았다. 나는 대학을 졸업했고, 아버지가 암에 걸렸고, 동생이 대학에 입학했고, 나는 군대를 갔고, 아버지가 죽었고, 내가 전역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엄마는 꾸준히 엄마였다. 10년이나 무사했으니 이제는 괜찮을 거라고 모두들 말했지만 그건 엄마에게 그저 말에 지나지 않았다. 고통, 공포, 절망, 그리고 외로움. 정말로 그 모든 걸 다 겪은 사람은 말을 하는 우리가 아니라 말을 듣는 엄마였다. 암은 끝나도 끝난 게 아니었다. 엄마에겐 그랬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렇지 않았고, 우리는 안일했으며, 결과는 처참했다.

 

 

 

3

 

배변이 원활하지 않고 소변에 살짝 핏기가 비친다고 엄마가 처음 말했을 때, 우리가 한 것은 병원에 가보라는 말이 다였다. 엄마는 언제나처럼 병원에 가지 않았다. 우리는 암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태만했고, 엄마는 혹시나 암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을 먹고 회피했다. 암 환자 가족들은 안다. TV에서 의사들이 불러주는 발암 물질을 외우고, 암에 좋다는 각종 먹거리들과 조리법을 노트에 꼼꼼하게 적어가며 암의 가능성으로부터 최선을 다해 도망치는 사람이, 정작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병원 가기를 피하는 일은 하나도 모순적이지 않다. 암을 통과해온 사람에게, 암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훨씬 무서운 것은 암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하여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렀다


뒤이어 우리가 한 것은 병원에 가보자는 제안이었다. 그리고도 엄마를 병원에 데리고 가기까지 또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내과에서는 CT촬영을 권했고, 방사선과에서는 이 CT를 들고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아닐 거라고 말하는 우리의 마음속에는 그럴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있었고, 맞을 것 같다고 대답하는 엄마의 마음속에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예감이 이기고 희망은 졌다. 엄마의 생은 엄마에게 두 번째 암을 선고했다. 요관암 3. 예후가 나쁘기로 유명한 암이었다. 이미 방광과 신장에 전이가 있었다. 수술했고, 신장 하나와 방광의 일부를 떼어냈다. 2019년이었다. 림프 전이를 막지 못했고, 2020년부터 항암에 들어갔다.

 

 

 

4

 

당신은 죽을 거라고 끝내 알리지 못했다. 엄마에게 당신의 죽음에 대해 알려준 것은 죽음이었다.

 

 

 

5

 

  "미뤄야…… 만해…… 조금."

  "지금 미뤄야 한다고요?"

  "아니, 죽음을."

  엄마가 죽음이라는 단어를 매우 강하게 강조해서 말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죽고 싶지 않구나."

  "그럼요, 엄마는 다 나으신걸요!"

  그러고 나서 엄마는 조금은 헛소리를 했다.

  "내 책을 발표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 여자는 자기가 원하는 사람에게 젖을 물려야 해."

  동생은 옷을 입었다. 엄마가 의식을 거의 잃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엄마가 외쳤다.

  "숨이 막혀."

  입이 벌어지고, 살이 쏙 빠진 얼굴에서 유난히 커 보였던 두 눈이 부풀어 오르듯이 확장됐다. 경련을 일으키면서 엄마는 혼수상태에 빠져들었다. 쿠르노 씨가 "언니분께 전화 드리세요"라고 말했다. 푸페트가 전화를 걸었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교환원이 30분이나 계속해서 전화를 걸고 나서야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사이 푸페트는 이미 의식을 잃은 엄마 곁을 지켰다. 심장이 곤두박질치는 가운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흐릿한 눈을 하고는 주저앉은 채 숨만 겨우 쉬면서 말이다. 그렇게 끝이 났다.

  "의사들 말로는 촛불이 꺼지듯이 돌아가셨대.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동생은 흐느끼며 말했다. 간병인이 답했다.

  "하지만 보호자분, 제가 보증하건대 어머니께서는 아주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셨어요." (126-127)

 

그래도 고생 덜하고, 일찍 가신 게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남겨진 사람을 위한 말이었고, 말을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최선을 다해 조심스러워하는 기미가 보였다. 나중에는 내가 먼저 그 말을 하게 되기도 했다. 어쩌면 다행일지도요. 길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보았다. 죽음이 엄마에게 들이닥치는 모든 순간을 세세히 보았다. 그걸 모두 본 사람은 세상에 나 하나뿐이었다. 엄마는 한 번도 쉬지 않고 100km를 달리고 있는 사람처럼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몸이 떨리고 눈이 자꾸 뒤집어졌다. 내 손을 힘있게 맞잡지 못했다. 내 말을 듣고 있었겠으나, 숨을 쉬느라 말을 하지 못했다. 내가 감히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아프고 무서웠을 것이다. 아파, 아들, 나 너무 무서워,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인데 말할 수 없어서 더욱 아프고 무서웠을 것이다. 그 고통과 공포 속에서 마지막 남은 몸부림을 치는 엄마를, 나는 보았다. 나만이 보았다.

 

당신들이 그 모습을 보지 못해 다행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고생 덜하고 일찍 가신 게 어쩌면 다행이라는 위로의 말을 어렵게 건네는 그 따뜻한 마음 뒤에 눌러두었을 슬픔을 나도 위로하고 싶어서, 길지 않아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편히 가셨을 거라고, 내가 그렇게 말했다.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 같은 죽음 뒤에, 남은 이들이 주고받은 거짓말들만 남았다. 죽음은 그렇게 완성된다는 것을 배웠다. 자기도 채 온전히 믿지 않는 말을 던져 믿음을 주고, 돌아오는 말을 들으며 믿음을 더하고. 끝내 모두가 그렇게 믿거나 믿기로 결정했을 때, 죽음은 1차적으로 완성된다. 그 누빔점으로부터 시작해 죽음은 완전한 완성을 향해 가고, 그 길 위에서 남은 이들의 슬픔은 시간에 풍화된다.

 

 

 

6

 

영성체를 위한 기도대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영성체를 했다. 신부는 다시 한 번 짤막하게 설교했다. 그의 입에서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라는 이름이 불려 나왔을 때 나와 동생은 둘 다 격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 이름은 엄마를 되살아나게 했다. 그 이름은 엄마의 생애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결혼 생활을 하던 시절을 비롯해 과부였던 시절과 관 속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마지막 시기마저도 포함하는 생애 전체 말이다.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

  이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적이 거의 없는, 잊힌 여인에 불과했던 엄마가 한 명의 주체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145-146)

 

막내삼촌이 엄마의 추도 예배를 집전했다. 삼촌의 추도사는 남은 이들의 엄마, , 누나, 동생, 고모였던 사람을 단지 그렇게 호칭하다가 끝났다. 이름은 말해지지 않았다. 그 이름은 분향소의 입구 모니터에 쓰여 있었고, 상주가 서명해야 했던 몇몇 서류에 적혀 있었으며, 비석에 새겨져 그 이름 주인의 뼛가루 위를 덮었다. 그러나 말해지지는 않았다. 행정과 자본의 영역에서 엄마의 이름을 삭제하기 위해 나는 몇 번 그 이름을 입에 올려야 했다. 삭제되기 위해 호명되는 이름. 그런 이유로 불리는 것이 그 예쁜 이름의 마지막이라면 너무 슬플 것이어서, 다가오는 명절에 나는 엄마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사람들에게 한껏 그 이름을 불러주기를 청할 작정이다.

 


엄마는 이름으로 있을 재 자와 향기 향 자를 썼다정말이지 이름 같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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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맑음 2021-08-31 11: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머님을 닮으셔서 syo님이 멋지시군요~!
어머님 처럼 아름다운 글입니다.
가슴 한 켠이 먹먹해서 감당하기 힘이 드네요ㅠㅠ 재향님은 분명 행복 하실 꺼에요..
이렇듯 아드님의 사랑이 애틋 하니까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글을 읽는 지금이 제게도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syo 2021-09-01 13:28   좋아요 4 | URL
보잘 것 없는 글에 대한 칭찬, 좋은 말씀, 위로, 명복을 빌어주신 것까지 모두 감사합니다.
맑음 님께 쓸모없는 시간이 아니었다니, 그것만으로도 좋네요. ㅎㅎㅎ
환절기 건강 조심하세요^-^

mini74 2021-08-31 14: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명절이 되면 좋아하는 음식을 좋아하시던 프로를 좋아하시던 색과 꽃과 산을. 좋아하시던 영화와 책을 볼때마다 슬프고 그리워요. 어쩌다 마주치는 흔적들엔 그리워서 울게 되고요. 자연스러운 일인걸요. 그렇게 그렇게 지나도 보면 그립고 슬픈데 너무 보고싶은데 그런 말들 그런 기억들을 눈물대신 웃으며 할 수 있을거예요. 저도 아직은 힘들지만요. 마음으로 한 번 안아드리고 갑니다.

syo 2021-09-01 13:29   좋아요 4 | URL
어, 안아주시고 가셨네요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조금씩 잊고 조금씩 기억하고 그렇게 분류하면서 사는 게 남은 사람들 일이겠지요.

감기 조심하세요. 날이 춤습니다.

2021-08-31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01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21-08-31 23: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쇼님이 한 페이퍼에 한 권의 책을 쓴 거 처음 본 거 같아요. 그만큼 쇼님의 삶과 공명하는 부분이 큰거겠죠? 이렇게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있는 거 보면 쇼님 애도의 기간을 너무나 잘 보내고 계신 거 같아요. 페이퍼에서도 향기가 나네요.

syo 2021-09-01 13:31   좋아요 3 | URL
네 ㅎㅎㅎㅎ 저는 무척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가끔 울컥울컥 하는 건 있지만 그것조차 그정도면 양호할 정도입니다.

툐툐님 감사합니당

봄밤 2021-09-01 00: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진 속 어머님 모습이 참 멋지고 아름답네요. 어머님 글 많이 많이 적어주세요. 그 사람을 기억하고 쓰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애도의 방법인 것 같아요. 더 이상의 추억을 만들 수 없는 건 아픔이지만 그간의 시간들을 아로새길 수 있는 건 축복이니까요. 늘 syo님의 글에 묘한 위안과 위로를 얻어요.

syo 2021-09-01 13:32   좋아요 3 | URL
ㅎㅎㅎ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요즘 봄밤님 글 읽으면서 문장 많이 다듬습니다. 아직 멀었지만.
비도 오고 날도 추워지니까, 감기 조심하세요.

희선 2021-09-01 02: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syo 님, 어머님 명복을 빕니다 이런 말밖에 못하겠네요 이런 책 보면 더 어머님이 생각나겠습니다 저세상에서는 편안하셨으면 합니다 그러실 거예요 어머님이 저 위에서 syo 님하고 동생분 지켜보실 거예요


희선

syo 2021-09-01 13:33   좋아요 4 | URL
때마침 이 책이 책상 위에 놓여서 조금 놀라긴 했습니다. 펼쳐보기 전까지 무슨 내용인지 몰랐거든요.


희선님 감사합니다. 건강 잘 챙기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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