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빠져 죽지 않기 - 로쟈의 책읽기 2012-2018
이현우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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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대 데본기에 다양한 생선들이 어슬렁어슬렁 육상으로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그와 유사한 양태로 2015년 초의 서울에서는 그저 읽는 syo가 읽고 끄적거리는 syo로 진화의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중이었다. 그해 이전의 syo는 서평 같은 게 왜 있는지, 서평과 독후감의 차이는 무엇인지, 뭐 이런 기초적인 것들을 1도 이해하지 못하는 한 마리 무지몽매한 척추동물일 따름이었다.

 

그리고 무덤이 있으면 반드시 핑계가 있는 법. 핑계 1. 아니, 지금 지구에 책이 몇 권이나 있는 줄 알아? 그리고 걔네가 앞으로도 태어나길 그만 둘 것 같아? 책 읽은 책 읽을 시간 있으면 책 읽어. 핑계 2. 네가 읽은 책은 네가 읽은 책이고 내가 읽은 책은 내가 읽은 책이다. 그러므로 내가 읽은 셰익스피어와 네가 읽은 셰익스피어는, 내가 읽은 셰익스피어와 내가 읽은 도스토예프스키만큼 다르지. 핑계 3. 너는 내가 네 반찬 다 씹어서 밥상 위에 뱉어놓으면 소화 잘 되겠다고 신나서 주워 먹겠다?

 

아 세상 깝깝한 2015년의 syo. 나 이놈, 내 죄를 내가 알렷다......

 

그렇게 무식하면 용감한 법이라는 명제가 진리가 되는데 아낌없이 몸 바치던 syo에게 계몽의 빛, 진화의 구름판이 되어준 이가 있었으니, 이 책은 바로 그가 2018년에 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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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책이 있었으니 그 이야기부터 하자면, 


그 책의 표지는 차갑고 자비 따윈 모를 것 같은, 어쩐지 구치소 쇠창살을 떠올리게 하는 색깔이었다. 이걸로 사람 한번 툭 치면 그 구치소 쇠창살 안에서 내다보는 바깥 풍경이 어떤지 뼈저리게 알게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두껍고 무거운 책이었다. 제목을 비롯하여 표지에 인쇄된 글귀들은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그 책으로 무고한 시민의 둔부를 가격, 현장에서 적발되어 구치소에 갇혀 살던 한 남자가, 임종 전날 바스러져가는 멘탈을 가까스로 부여잡고 손톱으로 시멘트벽을 긁어 남긴 유서 스타일로 디자인되어있었다. 그 모든 시각적 정황증거와 전혀 합이 맞지 않는,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역설적인 제목이 syo로 하여금 그 책을 펼칠 수밖에 없게 하였으니, 그 책의 제목은 책을 읽을 자유였다.

 

당시 벌써 나온 지 5년이 다 된 책이었지만 그런 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감옥 같이 생긴 자유의 책을 통해 syo가 깨달은 것은, 서평이 되었건 독후감이 되었건, 책 읽은 글은 버젓한 하나의 장르라는 사실이었다. 인터넷 공간을 방황하다 가끔씩 마주친 서평이나 독후감으로부터 늘 실망만을 얻어왔다는 불행한 우연 때문에, 내가 이 어엿한 아이들을 근거 없이 괄시했구나. 문제는 질이구나. 그리고 양이구나. 우와, 이 양 좀 보소.

 

이런 사연이 있었으므로, ‘로쟈라는 인물의 자취를 좇던 syo가 알라딘에 유입된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와서 보니, 이 인물은 구텐베르크 은하계에 존재하는 모든 책의 3/4 쯤을 읽고, 그 반절에 길고 짧은 코멘트를 다는 그야말로 탈 갤럭시 급 독서가였다. 이 책 재밌겠다 싶어 검색하면 로쟈의 코멘트가 있다. 저 책 재미없겠다 싶어 검색하면 거기도 있다. 도대체 어느 구석으로 드리블을 해야 저 거대한 관음보살의 물샐 틈 없는 손바닥 바깥으로 도망칠 수 있을까 잠깐 고민하다 관뒀다. 뭐하러 그래. 그럴 바엔 그냥 친구 추가나 하자. 딸깍.


 

 

3


그해 여름, syosyo의 친구 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로쟈님의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우리 두 백수는 교통비 말고는 지불여력이 없었으므로 강의료가 없는 강의 밖에는 선택지가 마땅치 않았다. 노원구에서 19세기 러시아 문학 강의를 들었고, 남산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 강의를 들었다. 노원구 강의는 평일 오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시간에 참석한 젊은이는 우리 말고는 없었으므로, 맨 앞줄에 앉은 우리는 첫날부터 다른 분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 등가죽이 뜨뜻했다. 짧은 자기소개의 시간이 있었는데, 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입니다. 혜화동에 살구요, 저는 옆에 이 친구를 따라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박수 짝짝. syo의 차례였다. “안녕하세요, 제가 바로 옆에 이 친구 syo입니다. 저도 혜화 살구요, 저는 앞에 저 분 따라 왔습니다.” syo의 손끝이 강단 책상에 앉아 있는 로쟈님을 향했다. “저는 저 분 선생님 따라다닙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짝짝짝짝짜자자자짝짝. 웃음 하하하호호하하호호. , 보았니, 이 해일 같은 박수와 웃음의 앙상블을? 이것이 너와 나의 눈높이다......

 

1시간 강의가 끝나고 잠깐 쉬는 시간, 강의실 뒤쪽에 비치된 녹차 티백을 가지러 나왔는데 50대쯤 되어 보이는 참가자 한 분이 syo를 보고 웃으며 물으신다. “선생님 매니저세요?” “?” “아니, 선생님 따라 다닌다길래, 호호호.” syo가 웃으며 대답한다. “, 아닙니다. 전 그냥, 사생팬인걸요.” 대답하고 아차 했다. 사생팬까지는 아닌데. 정정할까? 넌지시 그분의 표정을 살피고 syo는 안심하며 돌아섰다. 아무래도 사생팬이 뭔지 모르시는 눈치였으므로. 자리에 앉았는데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사생팬이 뭔지 아는 나이대의 사람이, 평일 이 시간에 구립도서관 강의실에 앉아 푸쉬킨, 고골, 레르몬토프 중에 누가 형인지 생각하고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런 전복적인 자기소개에도 로쟈님은 옅은 미소만 보일 뿐 미동조차 않으셨다. 며칠 뒤 그해 노벨상을 발표하는 날, 남산에서 강의 초입에 로쟈님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수상을 은근히 바라시는 투의 말씀을 하셨다. 네이버에 노벨문학상을 입력하고 5초 단위로 새로고침을 하고 있던 syo,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그 우크라이나 작가가 수상을 한 것 같습니다.” 하고 말씀을 드렸을 때도, “그렇습니까? 우크라이나 태생이지만, 벨라루스 작가입니다.” 하시며 안경을 살짝 올리셨을 뿐, 안경 너머로 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 아주 잠깐 찾아들었을 뿐, 이내 더 이상의 언급 없이 다시 강의 주제로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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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함, 정확함, 세세함. 개인적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강의를 수십 번 들은 것도 아니지만, syo가 눈으로 보고 느낀 로쟈님의 이미지는 그의 책에서, 특히 서평을 모은 책에서 읽고 느낀 것과 아찔할 정도로 비슷했다. 글과 말이 서로를 벗어나지 않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그리고 흔치 않다. 그놈들은 하루아침에 일치를 이룰 수 있는 성질 순한 아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취향을 자극하지 않는 음식은 폭발적으로 팔려나가지 않는다. 누군가 눈물 나게 매운 치킨을 먹을 때, 다른 곳의 누군가는 단짠단짠이 절묘한 치킨을 먹고 있다. 치킨의 알파요 오메가는 후라이드임을 설파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가장 맛있는 음식은 뭐냐고 물어보면, 시간을 많이 줄 테니 오래오래 생각해보라고 하면, 그들은 무취향한 음식들을 떠올릴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그걸 고르진 않더라도, 돈을 주고 사 먹을 수 없기에 팔지도 팔리지도 않는 어떤 기본적인 요리들을 생각해 볼 것이다.

 

물론 세상에서 제일 잘 팔리는 서평을 쓰는 로쟈님에게 딱 들어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하여튼 그런 이유만으로, 양념 팍팍 친 맵고 짜고 달고 때로는 쓴 문장을 사랑하는 syo가 삼삼하고 때론 심심하기까지 한 그의 글을 좋아하는 것일까?

 

역설적일 수 있지만 좋은 서평은 서평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서평을 쓰는 일 자체에 대해 과도하게 흥분할 필요가 없으며 너무 많은 기대를 갖는 것도 조지 않다멋진 문장보다는 간결하고 명료한 문장이 바람직하며 화려한 수사에 대한 고민도 자제하는 것이 좋다예술적인 글을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읽을 만한 책을 감별하고 권장하는 일이 서평의 주된 역할이라면 그것은 한두 사람의 몫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독자라면 모두의 일이고 모두가 나서서 자기 몫을 거들어야 하는 일이다서평은 자발적인 품앗이에 가깝다. (94)

 

그의 글이 지닌 품성이 어디서 발원하는지 명확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 편의 글을 읽을 때는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 어떤 강인한 마음 같은 것이, 책 전체를 이어 읽으면 느껴진다. 더 화려하고 멋스럽게 쓸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도록 자신을 붙잡는 마음. 더 세고 따가운 분노의 표현을 휘두를 수 있음에도 춤추는 손을 꼭 붙잡고 가라앉히는 힘. 있는 대로 수사를 갖다 붙이고, 10만큼 건드리면 12만큼 분노하는 syo는 하려해도 도저히 되지가 않는 절제와 자제......

 

그리고 그런 굳센 지지점을 건설해 두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스스로 자기 안에 세운 기준으로부터 뻗어 나온다는 점이 찬탄을 던져 넣을 바른 자리이다. 좋은 글의 기준이 내 안에 있다는 것, 타인의 평가나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글을 쌓아올린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쓰듯이 그렇게 말한다는 것. 내가 쓰는 글이 자꾸 내가 되는 것.

 

 

 

5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읽기를 위해 쓰는 것은 배우고 싶지 않다. 나는 삶을 직조하는 쓰기가 부럽다.

 

읽기와 쓰기는 상호보완적인 동시에 독립적인 역할을 가진다. 읽기로 삶의 내용을 기르고 쓰기로 삶의 형태를 세워 올리는 것이 독서의 양 날개라면, 이 책을 비롯한 이현우의 모든 책이 그 날개를 펼쳐 흔드는 법을 보여준다.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 이 책 속의 수백 권 다른 책들이 다 낡아져 시간의 저쪽으로 치워지는 날이 와도, 이 책은 서가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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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8-31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땜에 이 책 질렀다는....ㅋ

syo 2018-08-31 14:57   좋아요 1 | URL
아니, 영업당하셨군요 ㅎㅎㅎ

좋은 책입니다.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더 좋은 책이 될 수 있으니, 아마 저보다 카알님께 훨씬 더 좋은 책일 거예요.

목나무 2018-08-31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로쟈님 강의 몇 번 다녔었는데 그렇다면 어쩌면 혹시라도 syo님을 만나지 않았을까요. ㅎㅎㅎ

syo 2018-08-31 19:2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로쟈님 강의 듣는 알라디너들이 적지 않을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18-08-31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이 syo님의 이 글을 꼭 읽으셨으면 좋겠네요. 사생팬이 아닌데도 이렇게 멋진 헌사를 쓰는 이 한 사람의 멋진 팬이라니....
syo님 글 읽다보니까 로쟈님 뵈었던 그 해 여름도 떠오르고요.
의도치 않게 로쟈님의 진짜 사생팬분들(월화수목금, 매일 로쟈님의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에게 둘러싸여 로쟈님 옆옆 자리에 앉아 콜라를 홀짝였던 바로 그 여름이요.
아.... 나는 이걸 말할 데가 여기 밖에 없네요. 여기, syo님 방밖에...... ㅠㅠ

syo 2018-08-31 19:2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로쟈님과 얽힌 사연이 다들 하나씩은 있는 것 같아요.
역시 로쟈님은 알라딘의 기둥뿌리시로군요.

로쟈 2018-08-31 23: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와 그런 인연까지 있으신 줄은 미처 몰랐네요.^^ 즐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데, ˝세상에서 제일 잘 팔리는 서평˝을 쓴다고 하신 건, 흠, 오해의 소지가 있겠습니다. 저는 일개 서평가일 뿐이에요.^^;

syo 2018-09-01 00:34   좋아요 3 | URL
좋은 글 써주셔서 독자로서 제가 감사할 일이지요. 즐독할 수 있는 책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람없이 농담하는 스타일이라 과장이 과했던 부분이 많은데, 모쪼록 불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수정이나 삭제의 필요성을 느끼시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별 거 아닌 글이라 걍 슥슥 지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개‘ 서평가라는 말씀에는 저도 동의할 수가 없고, 계속 그렇게 주장하신다면 아마도 수많은 성토의 댓글이 달릴 걸로 예상합니다. ^-^

마태우스 2018-11-04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syo님 마태우스라고 합니다. 제가 이 책의 리뷰를 지금사 읽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서평이 바로 이런 서평이에요.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들어가서 재미를 더하는 그런 서평이요.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존경을 바칩니다.

syo 2018-11-04 20:30   좋아요 1 | URL
생각도 못한 방문과, 받아들 도리가 없는 거대한 칭찬 말씀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가 대체 뭘 썼다고, 알라딘의 양대거성 동사서독 와룡봉추 로쟈님과 마태우스님의 댓글을 다 받고 말았네요. 영광입니다, 마태우스님.

2020-02-17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8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련님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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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암사 소세키 전집에 속한 모든 책들의 뒤표지에는 폰트도 당당하게 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이야기라는 글귀가 박혀 있다. 아무리 리뷰라고 각 잡고 써 봐도 쓰고 나서 읽어 보면 어쩐지 다 내 이야기이기 일쑤인 syo의 입장에서는 이것 참 땡큐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아니, 책이 제 입으로 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이야기라 그래서 지금 제 이야기를 썼사온데, 왜 당최 리뷰에서 이렇게 책 맛이 안 나고 니 맛만 나냐고 물으시오면......

 


 

2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 전문

 

이 시를 처음 만났던 때가 생생하다. 선생님께서 쓸데없이 무게 잡은 목소리로 이 시를 한 번 읽어주시고는 말씀하셨다. “야들아, 진짜 아름답지 않냐?” 아이들은 영혼이 없어 맑은 목소리로 예에- 하고 대답했고, 선생님은 살풋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시고는 분필을 쥐고 칠판 쪽으로 돌아섰다. 선생님의 집도 아래, 시는 이내 쪼개지고 갈기갈기 찢겼다. 감탄이 묻은 목소리로 아름다움을 말하고, 바로 돌아서서 그 아름다움을 푸줏간에 걸린 고깃덩이처럼 척척 해체하는 선생님이 syo는 무서웠다. 그러나 선생님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은, 다름 아닌 저 시였다. 선생님, 그때 예에- 하고 대답했던 아이들 안에 저는 없었어요. 왜냐하면 전 무서웠거든요. 저는 저 이라는 시가, 너무 징그러웠거든요. 하나도 아름답지 않았거든요.

 

내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도, 그는 그였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단지 그 이름을 내가 모를 뿐. 그는 그가 되기 위해 많은 것들을 지나왔을 것이고, 도중에 많이 울고 또 웃었을 것이다. 단지 그가 울음과 웃음 가운데 어느 쪽을 더 많이 모아 여기까지 왔는지 내가 모를 뿐. 그리하여 그는 이미 완성되었거나 아직 완성되고 있는 하나의 몸짓이 되어 마침내 내 앞에 섰을 것이다. 단지 그 몸짓이 오롯이 한 자락 춤이었다는 사실을 내가 모를 뿐.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례하게 나는 그의 이름을 지어 부른다. 그러자 그는 내가 부른 이름의 칼날에 팔이 잘렸다. 내가 넘겨짚은 의미의 도끼에 다리가 잘렸다. 마침내 춤마저 빼앗겨 내 손안의 피투성이 꽃으로 유배되었다.

 

나는 내가 지금 무엇의 숨통을 끊어놓았는지 전혀 모른다. 몸짓을 잃은 꽃이 보시기에 좋았다. 내가 그에게 베푼 시혜와 은총을 내게도 누군가 가져다주기를 바라며, 그를 거세하며 내 손에 묻은 핏방울과 피냄새를 내 빛깔과 향기라고 착각하며, 목을 길게 내민다. 내 이름을 지어 부를 누군가 찾아오면 이 목을 베어 꽃으로 만들어 가지라고.

 

그리하여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칼과 도끼를 들고 찾아와 서로의 몸짓을 제 입맛대로 도려내는 오만무도한 정복자가 되고 싶다.

 

 


3


어제 도착했어참 따분한 곳이야다다미 열다섯 장짜리 방에 묵고 있는데여관에 행화를 5엔 줬어안주인이 바닥에 코가 닿을 정도로 인사를 하더군어젯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어기요가 조릿대 잎으로 싼 사탕을 조릿대 잎째 먹는 꿈을 꾸었거든내년 여름에는 돌아갈 거야오늘 학교에 가서 여러 선생님들한테 별명을 지어주었어교장은 너구리교감은 빨간 셔츠영어 선생은 끝물호박수학 선생은 산미치광이미술 선생은 알랑쇠야다음에 또 여러 가지 이야기를 써 보낼게잘 있어. (36 37)


이 작품 전체에서 주인공이 일관성 있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유일한 인물인 기요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의 내용이다. 주인공이 울며 겨자 먹기로 시골 학교에 선생으로 부임하여 가장 먼저 한 일은 다른 선생들의 별명을 붙이는 일이다. 어제 도착하여 편지를 쓰는 게 오늘. 주인공은 동료 선생들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붙여줄 만한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그들을 꽃으로 만들었을까? 기요를 뺀 모든 사람들을, 심지어 가족들조차 우습게 여기는 주인공 도련님에게 누구보다 경멸스러운 인간들은 시골 사람들이다. 사무라이의 핏줄을 감고 태어나 도쿄에서만 살다 시골로 떨어진 도련님에게 미개한 그들은 결코 서로의 존재를 섞으며 살아가기 어려운 족속들이다. 단지 정복해야 할 적군이었다. 그래서 도련님은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우면서 동시에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선제공격을 가한 것이다. 도련님이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들은 도련님의 손안에 몸짓 없는 한 송이 꽃으로 들어온다. 꽃은 더 이상 위험하지 않을 것이므로, 주인공은 의기양양하다.

 

그러나 한번 붙은 별명은 주인공의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거대한 색안경이 되어 주인공에게 되돌아간다. 이제 너구리의 모든 행동은 너구리를 더욱 너구리로 만드는 방식으로만 보인다. 빨간 셔츠는 빨간 셔츠가 된 순간부터 빨간 셔츠가 아닌 순간이 없고, 산미치광이는 내 편일 때나 아닐 때나 시종일관 산미치광이 짓을 한다. 알랑쇠가 입 밖으로 내는 모든 말은 알랑거림 말고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읽히지 않는다. 읽힐 수가 없다. 그렇게 그들이 자기 이름에 붙은 빛깔과 향기를 더 세게 내뿜는 방식으로 해석되는 순간, 그들은 잊고 싶어도 도저히 잊히지 않는 하나의(단 하나의) 의미가 되어 도련님의 일상을 끊임없이 압박한다. 도련님이 던진 칼이 저절로 제 몸을 갈고 돌아와 날카롭게 도련님을 덮친 것이다. 함부로 이름을 붙이는 일은 언제나 이렇듯 제가 갈 길을 스스로 잡는다. 정복자에게 되돌아와 정복자를 정복한다.

 

 


4

재수학원을 다니던 시절의 syo가 꼭 저랬다. 같은 반 교실에 60명의 학생이 있었으나, 그 안에 syo가 아는 이는 고교 동창 단 한 명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나란히 앉아 58명에게 하나하나 이름을 붙였다. 항상 교실의 한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던 가장 나이 많아 보이는 학생은, 아마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던 것 같은데, ‘나마알씨라는 별명을 얻었다. 주기율표의 3주기 상에 일렬로 선 원소 나트륨-마그네슘-알루미늄-규소(Si)’의 두문자로 이미 익숙했던 나마알씨나이 많은 아저씨의 변형으로서 채택된 것이다. 나마알씨와 항상 나란히 앉던 역시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성은 잘 알 수는 없었으나 나마알씨와 사연이 있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와이프가 되었다. 그러다 쉬는 시간에 큰 목소리로 떠들어 학우들의 꿀 같은 쪽잠을 방해하는 행동 패턴이 포착되면서 고성방가로 변신한 그녀는, 얼마 안 가 그들의 자리가 가운데였다는 점에 착안하여(고성방가는 너무 직접적이었으므로) ‘센터방가가 되었고, 언어 경제성의 원리가 동작하면서 센방이 되었는데, 모종의 이유로 이윽고 선빵이 되며 긴 별명 진화의 역사를 매조졌다. 물리 시간에 깨워도 깨워도 계속 자던 어떤 학생은 깨워봤자소용없다는 뜻에서 봐짜로 시작되었다가 추후에 역시 언어 경제성의 원리에 의해 2음절에 묵음처리가 이루어지면서 ()’의 형태로 변형되었다. 이런 식으로 학생 거의 전원의 별명을 짓는데 두 달이 넘는 시간을 소비하였다. 그 시간에 공부를 철저히 했다면 재수를 성공했을까? 그건 아니지. syo의 재수가 폭망한 것은 저런 잡질 때문이 아니라 코인 노래방에 빠져서 오후 수업을 자꾸자꾸 제꼈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저런 악독한 나치 독일식 별명 독재 행위를 자행하고도 syo는 아무런 페널티를 받지 않았는가? 이미 고등학교 때 이름짓기의 폐단을 소스라치며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짓을 하였는데? 있었다.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외로움이었고, 다른 하나는 두려움이었다.

 

결국 syo의 재수는 성과도 인간관계도 얻지 못한 명실상부 인생 낭비로 마무리되었다. 졸렬하기 짝이 없는 마음으로 쓰레기 같은 이름을 붙였으므로, 그리고 이름 붙은 이들의 행동은 이름을 따라가는 방향으로만 포착되었으므로, syo는 그들 중 누구에게도 먼저 마음을 열지 못하게 되었다. 분명 syo에게 먼저 손길을 내민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syo는 그 손을 잡지 않았거나 살며시 잡았다가 쉽게 놓치기도 했다. syo는 말이 많은 아이였는데도 학원에서 입을 뗄 기회가 별로 없게 되었다. 외로웠다. 학원이 싫어졌다. 결국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 하는 식으로 학원을 멀리하다가 D-30부터는 아예 학원을 나가지 않았다. 실은 두렵기도 했다. 교실에 친구가 없었으므로, 다른 학생들은 syo의 이름을 모를 거고, 그렇다면 syo를 지칭하기 위해, 그들은 syo에게 어떻게든 별명을 붙였을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 것이다. 그때부터, 가끔씩 눈길을 스치는 다른 학생들의 얼굴에서 내 별명의 실마리를 찾으려 했다. 아니, 오히려 찾아질까 봐 무서웠다. 저들은 나를 뭐라고 부르고 있을까, 병신? 머저리? 아웃사이더? 음소거? 제가만든칼날에결국제목이따인병신머저리아웃사이더언어장애자? 등골이 서늘하거나, 사람을 피하고 싶을 만큼 무섭진 않았다. 풀어야 할 문제집이 산이었고, 노래 부르는 데 써야 할 동전이 바다였으므로, syo는 괜찮았다. 재수는 망했지만, syo는 괜찮았다. 그러고보면 저건 어쩌면 두려움이 아니라 쪽팔림이었을 수도 있겠다. 정확히 말하면 쪽팔리는 놈일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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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역시 책이 끝날 때까지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도련님, 선생님, 자네, 와 같이 불릴 뿐이다. 그리고 그 이름들은 죄다 부르는 입장에서 붙여진 것들이다. 이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6

이름의 칼날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기껏해야 공기, 시선, 마음같이 구하기 쉽고 가벼운 것들뿐이라 부지런한 생산자라면 하루에도 몇 개씩 이 무기를 만들어 타인을 베어나갈 수 있다. 그리고 세상에는 너무도 잘 만들어져 나 아닌 다른 인간의 인생 따위 하찮은 것들은 양심의 가책도 없이 덜컥 베어버릴 수 있는 혐오의 이름들이 이미 차고 넘친다. 내 이익을 위해, 우리 집단의 유대를 위해, 심지어는 그냥 거품처럼 사라질 한 순간 웃음을 위해, 굳이 타인을 찌르고 싶은 마음이 없어도 쉽게 주울 수 있는 칼말들이다. 모든 인간을 죽이고도 거뜬히 남아 저 혼자 제 새끼를 낳을 것만 같은 끔찍한 종양들이고, 언젠가 우리가 모두 치워야 할 병원균들이다.

 

칼을 가는 자의 손도 반드시 베고야 마는 독한 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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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7 22: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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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7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읽어 본다》 읽어 본다

 

난다 출판사 《읽어 본다》시리즈 / 전 5권



1

 

일단 그들을 위한 변론으로 시작할까 한다.

 

이적료가 천억을 훌쩍 넘는, 아마도 포르투갈어나 스페인어를 구사할 것 같은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있다고 치자. 게임이 있는 날 아침, 푹 자다 깬 그는 상체를 일으키면서 어쩐지 몸이 깃털처럼 가벼운데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폭발적인 에너지로 충만함을 느낀다.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부엌으로 향한 그가 어뭬리컨블뤡퍼슽흐를 만들 심산으로 달걀을 깼는데, 쌍란이다. 처음이군, 하며 하나를 더 깼는데, 대박, 이번에는 노른자가 세 개다. 그는 어쩐지 오늘 경기에서 다섯 골을 몰아치고야 말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에 소스라친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내리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누구세요? 택배요~ , 출근 전 택배라니, 오늘 무슨, 곗날인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베네치아의 수많은 굴다리 중 어딘가에 은거하여 한 땀 한 땀 손으로 빚어낸 축구화를 일 년에 딱 두 개만 만들어 세상에 내 놓는다는 63년차 축구화 장인, F. 슈마허(81)씨의 눈부신 2018 S/S 시즌 신상이었다. , 5년 안에 올 지조차 불투명했던 이게 마침 오늘 오다니. 그는 이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경기장도 나쁘지 않았다. 그가 데뷔 경기를 가진 곳으로, 그날도 그는 21도움의 맹활약을 펼치며 세상을 놀라게 했던 것이다. 오늘, 내 인생 최고의 날을 만들어 보는 거야. 축구화 끈을 꽉 조이며 그는 다짐했다.

 

다섯 골을 몰아칠 물적 심적 운적 모든 준비가 끝났다. 온몸의 관절을 한 번 점검한 후, 그는 그라운드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런데 그때, 멀리서 단호한 눈썹의 주심이 그를 불러 세웠다. , 그 축구화 정말 예쁘군요. 슈마허인가요? , 이번시즌 신상이지요. 축하합니다. 당신은 그걸 가질 자격이 있지요. 감사합니다. 헌데,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어 참 아쉽습니다. ? , 당신은 오늘 경기에서 상대방 페널티 박스 바깥쪽 5m 지점을 중심으로 하여 가로 세로 2미터 영역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 ?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씀이세요. , 비록 말 같지도 않은 말씀이지만 당신이 따라야 할 말씀이기도 합니다. 무슨 소리야, 당신은 내게 이럴 자격이 없어! ,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오늘은 자격이 있는 누구라도 당신에게 똑같은 지시를 할 겁니다.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습니다. 오늘 아침 당신의 컨디션, 다섯 개의 노른자, 굿모닝택배, 슈마허 신상, 그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듯이요. 왓더훡. 당신이 내게 이러는 걸 세상 사람이 다 알게 하고 말겠어! 이런, 내가 당신에게 이러는 걸, 당신은 아직 몰랐단 말입니까?

 

그날 경기에서 그는 2x2미터의 작은 영역 안에 갇혀 동료들의 공격의 맥을 끊거나, 심한 경우 상대 수비에 힘을 실어주는 등, 팀이 4:1로 대패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책들이 전체적으로 재미가 없는 것은 다 분량 문제다. “이 책들이 전체적으로 재미가 없는 것은 다 분량 문제다.”라는 단 한 마디의 말을 재미없게 하지 않기 위해, syo가 사용한 저 막대한 분량을 보시라구요. 물론, 작은 재미를 얻기 위해 어마어마한 분량의 신소리를 해대야 하는 건 syo의 재능이 부재한 탓이다. 그 말을 뒤집으면, 실제로 짧고도 재미있는 글을 쓰는 건 어느 정도 재능의 영역에 발을 걸쳐 있다는 뜻이고, 그런 재능, 그런 돈 되는 재능은 희소하다. 이 저자들은 다방면에서 훌륭하시지만, 최소 분량 최대 재미의 재능까지 갖추지는 못한 듯 보인다. 최소한 이 책들에서는 엿볼 수 없었다.

 

딱 정해진 것은 아닌 듯하지만 평균적으로 한 권당 한 쪽, 책 전체의 부피와 예상 가격을 고려했을 때 저자들은 그 좋은 책들을 열심히 읽고도 평균 한 바닥의 지면밖에 허락받지 못했다. A4 한바닥도 아니고, 무시 못 할 좌우 여백에 읽은 책 제목이 차지하는 면적까지 고려하면 그들의 플레이는 점점 더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왼쪽 오른쪽 페이지를 각각 한 명씩 맡아 쓴 책들은 오죽하겠는가. 분량에 쫓겨 머리와 꼬리와 몸통의 반절마저 다 쳐내기 급급한 내용 요약과, 반드시 첨언하고 싶은 몇 마디 찬사가 자리를 잡고 나면, 그만큼 재미와 감동이 요동칠 공간이 협소해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훌륭한 선수가 모든 조건을 갖추고 경기에 임해도, 게임 자체는 지는 수가 생긴다.

 



2

 

이 다섯 권의 책을 읽는 동안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강렬하게 머리통을 두들긴 생각은 아, 겸손해야겠다, 였다. 그리고 이제 모니터에다가 겸손해야겠다고 써놓고 보니, 겸손이라는 것 자체가 잘난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syo같은 먼지가 감히 겸손 님을 하겠다는 생각을 품은 것 자체로 벌써 겸손의 정반대편에 서 있는 셈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정정합니다. “깝치지 말아야겠다.”

 

가장 큰 소득은 아무래도 스스로의 미미함을 안 것이겠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을 평소에도 꼭 자랑거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으나, 사실 그 자체로 부인한 일은 별로 없으며 심지어 스스로 나는 책을 좀 많이 읽는 편인데,” 하며 말길을 놓는 일도 꽤 된다. 도대체 어디서 싹튼 호연지기로 그런 만행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첫째, syo는 무직(無職)인데, 독서에 있어서만큼은 무직은 곧 무적(無敵)이다. 둘째, 최소한의 노력으로 독파할 수 있는 쉽고 얇은 책을 주로 골라서, 읽은 책 카운트 올리는 데 집중한다. 셋째, 책 많이 읽는다고 자랑하는 데에 리뷰 쓰기란 투입 시간 대비 극히 저효율적인 행동이므로 그거 쓸 시간에 얇은 책 한 권 더 읽고 자랑질의 총알이나 만든다. 이렇게 운용 가능한 모든 졸렬한 전략전술을 총동원하여 최대치로 어디 한 번 뽐내 보자꾸나...... 이래저래 부끄러운 인생이다.


11독의 목적물로 이 양반들이 고른 책들은 잔꾀머신 syo의 낯짝에 큰 불 놓기에 충분할 만큼 분량과 함량을 고루 갖춘 작품들이었다. 그런 놈들을, syo처럼 무적(無職)도 아닌 시민으로서 당당하게 밥벌이 하는 도중에, 비 오는 날이면 비 온다고 1, 비 안 오는 날 안 온다고 또 1권 꼭꼭 읽어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읽는 족족 쓰는 출석률 100%의 매일리뷰라니, 이쯤 되면 놀라움을 넘어서 무서울 지경이다. 그렇게 빚어낸 이 독서괴물들의 365일 기록을 팔랑팔랑 읽고 있으면 곤장 맞는 기분이 된다. 감히 네깟 놈이 독서가를 자칭하고 다닌단 말이더냐! 여봐라, 당장 저 미미한 자를 형틀에 묶고 미미 몽둥이로 장 365대를 쳐라.....

 

 


3



 차라리 재미라도 없든가 / 남궁인

 

syo는 처음 남궁인이라는 사람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싫었다. 의산데 글도 잘 쓴다고 하니까, 싫었다. 책이 잘 팔린다고 하니까, 또 싫었다. 의사라는 타이틀이 그에게 역량 이상의 판매고를 가져다 준 거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지 않을 것 같아서 더, 싫었다. 아니, 이 양반은, 직업도 훌륭해, 그 와중에 책도 많이 읽어, 그래서 글도 잘 써, 그래서 책도 잘 팔려, 심지어 잘 생겼어, 피아노도 잘 친다는구먼!(이건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입니다) , 이렇게까지 나의 열등감을 건드리는 인간은 이제껏 없었다! 싫어해야지. 이유도 근본도 없이 일단 싫어하자. 싫어하고 말테다..... 뭐 이런 졸렬하면서 진부한 메커니즘. 그래서 그의 산문집을 읽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인기가 많아서 도서관에 돌아오질 않아요.....) 추후에 읽게 될 날을 대비하여 미리 눈에 쌍심지를 구비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 권을 읽고 나니, 입장이 상당히 애매해져 버렸다. 아니, 잘 쓰는데, 분명히 syo같은 시정잡배보다야 잘 하긴 하는데, 그렇다고 또 아득바득 열폭할 만큼은 아닌 거라...... 그래, 어차피 내가 방구석에서 키보드 붙들고 혼자 좋아하건 싫어하건 남궁인 선생 앞날에 뭐 달라지는 게 있겠어. 그냥 이제부터 좋아하자. 좋아하기로 해. 그래서 좋아하기로 했다.

 

책 읽은 책에 대해 한줄 평을 남기며 syo가 가장 자주 쓰는 말이 있다. 요지는 알라딘에도 이만큼 쓰는 사람 수다하다정도 되는 말이다. 그동안 몰랐지만, 사실 당연하게도 그 말은 syo의 전매특허가 아니었다. 많은 이웃들이 같은 맥락의 평을 이런 책 저런 책에 달만큼, 알라딘이라는 판이 만만치가 않다. 그 결과 알라디너들에게 다른 알라디너책 읽은 책을 평가하는 일차적인 잣대로 기능하는 것 같다. 물론 그 잣대는 알라디너들 각자가 맺은 이웃의 수와, 그 이웃의 내공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겠다. 이 책은 syo가 가진 일차적 잣대에 걸쳤거나 넘어도 아슬아슬 턱걸이로 넘은 수준이다. 잘 된 글과 아닌 글 사이의 격차가 너무 심하다. 바쁜 와중이라 구색만 맞추고 넘어갈 수밖에 도리가 없었는지, 짧은 글들 가운데는 이 책을 읽지 않은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써도 이보다는 더 길고 그럴싸하게 쓸 수 있겠다 싶은 글도 몇 있었다. 읽고 쓴다고 써도, 아니 얘 이거 지금 읽고 쓴 거 맞아?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독후감 밖에 못 쓰는 인간 syo, 반면에 또 안 읽고 썼는데도 읽은 건지 안 읽은 건지 애매한 느낌이 들게 하는 얍삽이 또한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으하하하하.....

 


 

읽은 척하면 됩니다 / 김유리, 김슬기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각자의 책을 읽는다 / 장으뜸, 강윤정

 

독서에 뜻이 있는 사람들에게 부부 독서가, 부부 저자라는 구도는 대체로 생각하기만 해도 배가 다 부른 훈훈한 상상을 동반한다. 이렇게 쓰고 나니까, 달리 더 할 말이 없다. 아이 참, 큰일이다. 바로 앞 문단이라도 복붙할까..... 복붙한 걸로 칠까.


작가님들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셨을텐데 제가 멸망시켰네요.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 장석주, 박연준


일단 장석주의 등판 자체가 반칙 같다. 이 기획에 참여한 8명의 저자가 모두 독서에는 제각각 가락이 있는 사람들이겠지만, 그래도 이 분야는 장석주에겐 전공이다. 일단 경력부터가 좀 다르잖아. 장석주 한 명이 낸 책이 나머지 일곱 명이 낸 책 수를 합친 것의 5배쯤 될 텐데. 심지어 장석주가 시인이라구요? ‘서평가아니었나요? 하는 사람조차 있다(있을 것이다..... 솔직히 미확인입니다. 죄송합니다.) 8명의 저자들이 매일 한 권씩 읽고 기록을 남기는 프로젝트를 제안 받았을 때, 아마 별로 부담을 느끼지 않은 사람은 장석주뿐이었을 것이다. 하루 한 권이라고? 한 끼 한 권이 아니구요?

 

게다가 장석주 혼자가 아니라, 박연준까지 출동했다면? 이건 리그(이 시리즈의 저자 집단 8명을 말합니다)에서 제일 잘 던지는 투수와, 리그에서 제일 잘 치는 타자가 한 팀에 있는 것이고, 나머지 저자들에겐 거의 민폐에 가깝다(두산 베어스는 반성하세요. 그렇게 막무가내로 잘하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이 책이 제일 기대만발이었다.

 

역시 기대대로 제일 좋았다. 하지만 책 자체 엄청 좋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일단, 역시 서평에서라면 장석주는 잘한다. 너무 잘한다. 너무 잘해서 마치 기계 같다. 그러다보니 독자의 심장을 노리고 쓴 것으로 보이는 대목조차 가슴을 치지 않는다. 아름다운데 울림이 적다.

 

너무 많이 알아서 독자를 주눅 들게 한다. 가뜩이나 좁은 지면을 다른 데서 읽은 책 이름을 나열하는데 사용한다. 분량 덕에 많이 줄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 소설가, 문장가, 철학자들의 이름을 열거하는 습관은 이 책에서도 여전히 드러난다. 이름만 늘어놓고 보아도 아름다운 존재들임에는 분명하나, 장석주가 그 이름들을 주욱 읊으면서 느꼈을 그 고양된 감정을, 독자들은 그대로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실제로 이 책의 매력은 거의 박연준의 글에서 나온다. 이 시인의 글이 이 책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박연준이 없었다면, 내가 이 책을 통해서 오로지 정보만을 얻고 있구나, 어차피 오래 기억하지도 못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책을 일찍 내려놓았을 것이다.

 

잠깐, 어쩌면 이것이 그들의 빅 픽쳐가 아닐까? syo가 박연준의 따뜻한 글에서 큰 매력을 느낀 것처럼, 어느 누군가는 장석주의 서늘한 글에 감동할 것이다. 결국 비슷한 글을 엮어 누군가에겐 사랑받고 또 누군가에겐 사랑받지 못하는 책이 아니라, 모든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책을 만들려고 일부러?! 그렇다면 대단하시군요. 이 완벽한 포지셔닝이라니.....

 

꿈보다 해몽일지도. 워낙 두 사람 다 좋아하다보니 그만.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 / 요조

 

처음 책을 휘리릭 넘기며 탐색전을 펼쳤을 때는, 요고 요고 요조 요고 응? 요고 봐라 요고 요조 요고 응? 이런 마음이었다. 가뜩이나 분량도 적은데, 읽은 책 사진을 직접 찍어서 꽝꽝 박아 놓았어? , 요 얍삽이 좀 보게, 요고 요고 응? 이랬던 것이었다(나여, 자네는 어쩌다 이렇게 삐뚤어지고 말았는가.) 그런 이유로 이 책을 가장 마지막에 읽은 것이다. 어차피 네 권쯤 읽으면 기력 떨어져서 마지막 책은 꼼꼼히 안 볼 것 같은 예감에. 부당하고 불공정한 대접.

 

그랬는데, 처음 며칠 치를 읽다가 소름이 돋았다. 잠깐, 이거..... 나잖아? 난데? , 내가 썼나? 하면서 책 표지를 다시 펼쳐 저자 이름을 확인하고 돌아오기까지 했다(당연히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분명히 독후감은 독후감인데, (글자크기 3.0포인트) 후감(글자크기 254포인트) 인지라 읽으면 읽을수록 그 사람이 읽은 책보다는 그 사람 자체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그런 독후감이었던 것이다. 한 장 한 장 넘어가면서 내가 다 불안해졌다. 명백히 책37인데, 이런 걸 책 읽은 책이라고 펴내도 되는 거야? 그리고 84페이지에서 만난 서평 쓰는 법에 대한 글 첫머리에서 드디어 빵 터지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역시 거짓말입니다. 새빨갛지는 않지만.)


얼마 전 어떤 책에 대한 내 리뷰가 까였다’. 책의 줄거리가 그 속에 충분히 들어가 있지 않아 독자들이 책에 대한 정보를 알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엄청난 부끄러움 속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이 책에 따르면 독후감과 서평은 엄밀히 같은 말이 아니라고 한다리뷰-독후감-서평 다 같은 말로 쓰곤 했던 나는 초반부터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고독서라는 것의 완성은 비로소 서평에서 이루어진다는 책의 분명한 주제는나에게 양치질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운동이라고 해야 할까아무튼 해야 하는 거 아는데도 너무나 하기 싫은 모든 것그 세계에 서평 쓰기도 있는 것이었다. (84)


이 한 문단에 syo의 모든 것이 있었다. 책 이야기 쓰는 공간에서, 책 이야기 쓰는 척, 써 놓고 보면 다 책 이야기는 간데없고 내 이야기인 syo의 글들. 그것조차 쓰기 싫어서 안 쓰고 또 안 쓰는 나날들. 10권을 읽으면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는 9권의 책들이 모종의 장소에 모여, 언젠가 우리의 단단하고 날카로운 모서리로 syo 저 자식의 명치를 세게 때리자며 혁명 거사를 도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다른 이웃들의 그야말로 리뷰 같고 더 나아가 좋은 리뷰 같은 리뷰들을 만날 때마다 자꾸 작아지는 자존감......

 

역시 세상은 넓고, syo와 비슷한 약점이 있는 사람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어지는 글들을 읽는 눈이 어찌 따뜻하고 촉촉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 그래. 안다, 알아. 내 다 안다...... 우리는 각 잡고 쓰지 않으면 늘 이런 글이 나오는 것이지. 이 무슨 슬픈 운명이냐, 이러면서 혼자서 동질감을 형성하고 자빠졌더니, 금세 책이 끝났다. 이 책을 통해 얻은 것? 그것은 요조를 향한 나의 사랑이지. 독자에게 사랑을 심어주는 책은 위대하다.....고 하고 싶긴 한데, 솔직히 뭐 그 정도는 아닙니다.

 

 

4

 

결국 꾸역꾸역 다섯 권을 읽으며, 다른 책 다섯 권을 읽은 것에 비해 얼마나 더 괜찮은 인간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 페이지에 오래 머무르면서 활자를 한 자씩 곱씹은 데도 있었지만, 지겨움이 폭풍처럼 몰아쳐 책을 집어 던진 때도 있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같은 작가의 글인데도 기꺼웠다가 고까웠다가 했다. 다섯 권이 도서관에 나란히 꽂혀 있는 풍경이 어떤 기이한 욕심을 자극하지 않았다면, 이런 식의 독서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치킨을 너무도 숭배하는 syo, 나는 매 끼니 닭을 처 먹여도 감사히 잘 먹을 놈일 거라 이제껏 굳게 믿어왔지만 어쩌면 아닐 수도, 다섯 끼 연속으로 먹는다면 후라이드-양념-매운양념-간장-눈꽃치즈의 5개 버라이어티 구성으로 내놓은들 간장쯤에서 질리고 눈꽃치즈에서 쳐다보기조차 싫어질 수도 있겠다는, 그런 자기 인식을 얻을 수 있었다.

 

 

+


정확히 체크한 것은 아니라서 누락되었거나 틀릴 수도 있는데, 다섯 권의 책, 여덟 명의 저자들이 모두 읽은 책이 몇 권 있었다. 대충 기억나는 것은 이렇다.

 


쇼코의 미소 // 82년생 김지영 // 너무 시끄러운 고독 // 안녕 주정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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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7-31 2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느 책에서 “쓰지 않고는 못배길 죽어도 못배길 사연이 있는가? 그렇다면 펜을 들라” 라는 문구가 생각듭니다. ^^

syo 2018-08-01 08:51   좋아요 0 | URL
허허..... 위안이 되는 말씀입니다만 그런 말씀 한 마디로 퉁치시기에는 북다님 글들이 제게 주는 상대적 박탈감이 너무 심합니다 ㅋㅋㅋㅋ

2018-08-01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01 0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리즘메이커 2018-08-01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우...! ㅋㅋㅋsyo님의 글은 항상 유쾌한 드립으로 가득해서 넘나좋구요 !!

syo 2018-08-01 08:53   좋아요 0 | URL
프메님!
20대 때는 일찍 자야 키가 크는 법인데 3시까지 안 주무시면 나중에 syo처럼 땅바닥에 붙어 지내게 됩니다.....

2018-08-01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01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01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8-01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이게 뭡니까?
맨 첨엔 이 시리즈 까는 줄 알았더니 결국 칭찬일색이고,
그럼으로써 스요님이 얼마나 겸손한 사람인가를 은근슬쩍 보여주는
이 전법은 누구한테 배우신 겁니까?
이 더운 날 읽느라 고생 꽤나 했는데
그래도 스요님 특유의 유머가 없었다면 읽다 포기했을 겁니다.
담엔 날씨를 고려하셔서 엑기스로만 웃겨주시면 안 될까요?ㅠ

어뭬리컨블뤡퍼슽흐는 드셨습니까?ㅋㅋㅋ
참고로 전 이 시리즈 책 표지가 맘에 안 들어 일찌감치 읽을 생각을
안하고 있었습니다.ㅋ

syo 2018-08-01 10:54   좋아요 0 | URL
아니 전법에다가 칭찬 일색이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다섯 권 다 엄청 까논 건데 저게ㅋㅋㅋㅋㅋㅋ
제가 볼 때는,
저자분들의 노고를 치하합니다- 이외에 칭찬할만한 데가 많지 않은 책들이에요.
기획 자체가 좀 빡센 것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요즘은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필력이 바닥나서 그런지 자꾸 말이 길어지나봅니다 ㅎㅎㅎ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ㅋㅋ

페크pek0501 2018-08-01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기가 많아서 도서관에 돌아오질 않아요.....)라는 글에서 웃음이 빵 터졌어요.
어깨에 힘을 빼고 편안히 쓰는 글이 어떤 건지 syo 님의 글에서 보게 됩니다. 유쾌하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그렇다고 뼈대가 없지도 않은 글이올시다. 한 수 배워 갑니다.

syo 2018-08-01 16:03   좋아요 0 | URL
제 글은 전형적인 아무 말입니다 ㅎㅎ. 어떻게 여기서 뭔가를 배워가실 수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게 가능하다면 그건 제 글보다 페크님의 읽으시는 능력 덕이겠습니다^^

독서괭 2018-08-02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너무너무 재밌어요~~ syo님의 독”후감”이 제 스타일인데 그럼 요조씨 책도 제 취향이려나요. 줄거리 얘기 거의 없이도 그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거, 대단한 능력이라구요!^^

syo 2018-08-02 13:19   좋아요 0 | URL
저도 1년쯤 되는 독서괭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하여 어느 정도 독서괭님의 스타일을 짐작하는데, 막상 읽어 보시면, 어 별론데? 하실 것 같아요 ㅎㅎㅎㅎ

블랙겟타 2019-05-21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안녕하세요!
지금 이 글에 댓글을 남기는 이유는...
지금 시점인 19년 5월 21일에 이 글에 등장했던 책이 올 계획인데 마침! syo님의 글을 발견했기 때문이겠죠? ㅎㅎㅎ
그런데 제가 산 책은 이 글에서 가장 평이 짧아서.. 괜히.. 구매했...? ㅋㅋㅋㅋ 라고 잠시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syo님 글에 언급된 것 만으로도 위안을 삼으며 책을 기다리고 있네요 ㅎㅎㅎㅎ
작년의 이 글에도 보듯 여전히 많이 읽으시고 계시고 재미있게 쓰고 계셨군요!
매번 syo님의 모든 글을 챙겨보지는 못했지만 앞으로는 이렇게나 정성스런 글 잘 챙겨볼께요. ( ›◡‹ )

syo 2019-05-21 13:29   좋아요 0 | URL
제가 이런 글을 썼군요. 참 저다운 글이네요. 말이 길어 ㅋㅋㅋㅋㅋㅋㅋ
‘책 읽은 책‘에 손을 댄다는 것은 독서계획이나 독서의지에 어떤 변화가 있다는 뜻이니, 어쨌든 블랙겟타님의 독서생활이 풍성해질 일만 남았군요.
정성껏 쓴 퀄리티는 아니지만, 앞으로도 뭘 쓰긴 써야 블랙겟타님이 챙겨보실 건덕지라도 있을 텐데요.
저는 요즘 열심히 읽지도 못하고 열심히 쓰지도 못하고 있어서 부끄럽습니다.....
 
엔도 슈사쿠의 동물기
엔도 슈사쿠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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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를 아냐고 물으신다면, “, 엔도 슈사쿠, 알죠. 좋은 작가죠. 침묵! 그 사람 침묵 썼잖아요, 침묵.” 이라고 말한 뒤 즉시 침묵할 수밖에. 그 이상 아는 게 없으니. 실은 그침묵도 읽은 바가 없고. “, 정말 좋은 작가지요. 얼른 다음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는데요.” 따위의 말을 덧붙인다면 성대하게 망했다고 봐야지. 2018년은 바야흐로 엔도가 타계한지 23년이 되는 해다.

 

들리는 말에(똑바로 안 들음), 스콜세지 감독(모름)의 손에 영화(안 봄)화되었으며 노벨상 후보에까지 오른 엔도의 대표작 침묵(안 읽음) 종교적 주제(관심 없음)에서 시작해 삶의 일반적 문제(골치 아픔)에까지 손길을 뻗는 질문을 묵직하게 던지는 대작이라고 하는데(도 관심 안 생김). 그 추천 말씀에 묻어 있는 거룩함과 심오함 덕분일까, syo에게 엔도라는 사람은 강요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읽기에는 조금 머어어얼리 배치된 작가로 오랫동안 인지되어 있었다. 아직 내 인생 8, 90년은 더 남았으니까(120살까지는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엔도라는 자의 장중한 책들이야 팔순잔치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나 읽기 시작하면 되겠지, 뭐 이런 식이었던 것인데. 그런데도 이 책이 갑자기 공중도덕을 개무시하고 내가 읽어야 할 책들의 긴 입장행렬 맨 앞자리에 새치기한 것은 순전히 표지 때문이겠다.

 

시바견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충성스러운 자세로 앉아 주인을 올려다보고 있다. 입에는 여성의 속옷 하의로 보이는 하얀 색에 빨간 땡땡이(진부하다! 여자 팬티에 대한 일본 소년만화 수준의 진부한 클리셰!) 천 쪼가리를 물고 있다. 하얀 셔츠를 걸친 중년 남자는, 몽타주가 엔도 슈사쿠로 추정되는데, 화들짝 놀라 동공은 확장, 입은 개방, 상체는 정황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시바견은 더없이 낭창한 표정이고, 그렇기에 말풍선이 허락된다면 이런 내용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얼른 받아요. 얼른 받고 쓰다듬어 줘. 처음 아니잖아, 이런 거. 좋아하잖아, 이 물건.” 그렇다면 엔도의 말풍선은 이렇게 예측할 수 있겠다. “아니, 이 시바.....시바개가?”

 

표지에 그려진 장면은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으며 심지어 약간의 박진감마저 느껴지는 <속옷 도둑과 똥개> 에피소드의 한 컷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구도와 기조를 패러디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코믹한 한 판 활극이라 하겠는데,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 그 전에, 우선 저 시바견의 이름은 먹보. 그러나 시바라는 단어를 합법적으로, 도덕적 비난을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이 드문 기회를 쉽게 포기할 수는 없기에, 여기서부터 먹보시바를 의도 없이(...) 혼용할까 한다. 불편해 하실 분들을 위해 미리 알려드리는 것이다. 이어지는 글들 속에 등장하는 모든 시바먹보는 입맛 따라 치환해서 읽으셔도 좋겠다는 사실을.


이 시바는 수컷이다. 하필 먹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단순히 이름 그대로 잘 먹기 때문이다. “아니, 이런 먹보, 엄청 시바네? , 먹보.” 이 시바는 갈색 털에 귀가 꼿꼿하고 입 아래 검은 반점이 있어서 사람으로 치면 코밑수염을 기른 품위 없는 아저씨처럼 생겼다(38)고 엔도는 묘사한다. 지하철 같은 데서 마주쳤는데 나를 힐끗 쳐다보고 있으면 , 기분 나쁘게 왜 자꾸 쳐다보는 거야. , 먹보.’ 하는 생각이 절로 들 것 같은 생김새라고 하겠다. 실제로 이 시바는 산책을 데리고 나가면 지나가는 아가씨의 치마 속으로 느닷없이 머리를 들이미는, 얼굴도 상스럽고 성격도 상스러운, 딱 일본 남성적인 무뚝뚝한 색골(39)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먹보와 함께 산책을 나간 엔도. 이 시바는 생긴 것 말고도 고질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배변이었다. 답지 않게 또 엄청 눌 자리를 가리는지라, 주인을 끌고 숲을 종횡무진 하다 보면 엔도는 가시나무에 긁히기도 하고, 나뭇가지에 얼굴을 얻어맞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시바, 숲을 아무리 뱅뱅 돌아도 안착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더니, 갑자기 새로 지은 것처럼 보이는 깔끔한 양옥집 대문 앞에서 힘을 주는 게 아닌가. 저지할 틈도 없이 이미 두 세 덩어리가 사출되었고, 당황한 엔도, 목줄을 힘껏 끌어당겨 보았으나 이런 먹보, 이 먹보가 요지부동이네? 마침 그때 기다렸다는 듯 현관문이 열리고 안경을 쓴 엘리트 풍의 남자가 나타나 시바가 세상에 낳아놓은 세 개의 따끈따끈 덩어리를 발견한다. 이어지는 그들의 대화.

 

으악당신이거대체.” 삽시간에 화내는 표정으로 바뀌더니 말했다.

당신, ...... 의식적으로 개로 하여금 여기에다 배변하게 한 건가요?”

당치도 않소의식적이라니이 녀석말릴 틈도 주지 않고 해버렸지 뭐요.”

서털구털한 내 답변에 상대는 따지듯 물었다.

숲이 있지 않습니까거기서 왜시키지 않았죠?”

그게...... 거기에선...... 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에다 누게 했다는 건가요당신에게는 시민 의식과 도덕심이 없습니까?”

이렇게 다그치는 말을 잔뜩 퍼부었다이쪽은 이마에 땀을 닦으며 그저 사죄할 수밖에막힘없이 술술 회전하는 상대의 혀에 맞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청소해주세요당연하잖아요?”

청소할게요그럼 되겠죠?”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고나도 무심코 불끈해 몹시 난폭하게 작은 삽으로 부드러운 먹보의 똥을 떠서 비닐종이에 넣었다그사이 그는 감시하듯 꼼짝 않고 내 동작을 지켜보다가 작업이 끝나자 한마디 내뱉었다. “이런 사람이 있으니까 일본의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않는 거야!” 그러고는 문을 쾅 닫고 모습을 감췄다. “바보 자식뭐가 민주주의야라는 말이 엉겁결에 입 밖으로 나올 뻔했지만 이미 그는 사라진 뒤였다. (41-42)

 

엔도는 빡쳐서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그 집의 주인을 아냐고 묻는다. 아내는 그 집 문패에 마루다 리코라고 쓰여 있었음을 알려주고, 엔도는 그 마루다란 작자가 근래 어려워 보이는 평론으로 잡지에 등장하여 기염을 토하는 평론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두 시간에 걸쳐 잡지를 뒤져, 외국어로 쓰인 책이 즐비한 책장을 등지고 매우 심각한 표정을 한 채 찍혀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나를 모욕한 그 남자였다(43)고 확인한다. 아니, 그렇다면 업계 사람이라는 건데, 나를 몰라봐? 이 엔도 슈사쿠를? 그때부터 엔도는 마루다 리코의 일거수일투족이 하나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요즘 그의 평론이 인기를 얻고 있는 모양인데 아 먹보, 빡친다. 근방에서 강연회랄지 부인 독서 동아리랄지 그런 것들을 이끌고 있다는데 꽤 호평인 듯하다. 이런 개 먹보, 빡친다.

 

그리고 때는 6월 중순, 마을에 치한이 출몰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돈다. 속옷을 도둑맞은 여성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정의감에 불타는 엔도는 대취한 후, 호기롭게 주변의 풍기순찰을 나간다. 시바를 데리고. 공원에서 농탕질을 하고 있는 아베크족을 발견하고 말로 좋게 타이르려 했으나 아 먹보, 저것들이 아예 듣지를 않네. 빡친 엔도, 슬쩍 먹보의 목줄을 푼다. 가라! 시바! 먹보는 자신의 외모와 성품에 걸맞게 나도 같이 한판 걸지게 놀아보자고 풀밭에서 뒹구는 남녀 사이에 뛰어든다. 혼비백산 도망치는 남녀. 엔도는 더없이 의기양양하다. 가자, 시바! 그런데 아차! 그 사이 먹보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아무리 시바 시바 불러도 이 시바,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는 시바다. 이튿날, 근처의 S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네 먹보가 지금 우리 집 메리양에게 상스러운 얼굴로 상스러운 짓을 하고 있으니 얼른 와서 데리고 가라고. 엔도가 허둥지둥 달려갔는데, 멀리서 오는 엔도를 보고 시바, 재차 도주. 그날 여기저기서 엔도의 집으로 항의전화가 빗발치고, 이윽고 밤이 되자 먹보는 못된 곳에서 하룻밤 지새운 탓에 맥이 다 빠져 하숙집으로 돌아오는 남자의 얼굴(51)을 하고 집에 들어온다. 손바닥으로 뺨따귀를 몇 대 후린 다음 쇠목줄에 먹보를 묶어놓는 엔도. 이렇게 모든 사건이 일단락 되나보다 했다.

 

다음 날, 아내가 마당의 한 구석에서 진흙투성이가 된 꽃팬티 두 장을 발견한다. 아내는 요즘 동네에 출몰한다는 치한의 짓일 거라 생각하지만, 엔도는 치한이 훔친 속옷을 이렇게 쉽게 포기하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생각에 잠긴 엔도, 문득 고개를 돌렸는데, 마당 저쪽에서 멍청하고 품위 없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먹보와 눈이 마주쳤고, 그 순간, 엔도는 범인이 누군지 직감하고야 말았다. , 빼박 저 시바네. 난처하다. 저 속옷을 돌려줘야 하긴 하겠는데, 일일이 한 집 한 집 다니며 속옷 주인이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러나 엔도는 역시 노벨상급 소설가. 문득 죄와 벌의 한 장면, 도스토예프스키의 명문이 떠오른다. “범죄자는 반드시 범죄를 저지른 장소에 돌아온다.” 엔도는 꽃팬티 두 장을 신문지에 싸들고 먹보와 함께 산책을 나간다. 여유 있게 숲에서 똥을 누인 다음, 신문지를 열어 팬티를 먹보의 코앞에 가져다 댄다. 이 시바,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짓는 것 같더니, 이내 무엇인가 기억해 낸 것처럼 펄쩍 뛰면서 맹렬한 힘으로 목줄을 끌어 엔도를 어딘가로 데려간다. 역시 도선생. 세계문학의 큰 별.

 

그런데 먹보가 엔도를 데려간 곳은 바로 재수 없는 평론가 마루다 리코의 집이 아닌가! 슬쩍 안쪽 마당을 보니, 널려 있는 빨래 가운데 손에 든 꽃팬티와 유사한 속옷 몇 장이 보인다! 이후는 엔도의 진술을 옮기기로 한다.

 

 그 팬티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먹보의 범죄는 바로 이 정원에서 이루어졌음을 확신했다아마 팬티는 어쩌다가 땅으로 떨어졌을 테고먹보는 기쁨에 겨워 그걸 물고 쏜살같이 우리 집으로 달려왔으리라주위를 둘러봤다근처에 사람의 그림자가 없음을 확인한 뒤 바지 주머니에서 아까 신문지로 싼 팬티를 살며시 꺼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려주고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성서의 한 구절을 들릴 듯 말 듯 되뇌며 신문지속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의 꽃무니 팬티를 빼내 철책 너머 정원으로 던졌다그러나 슬프게도 팬티는 너무 가벼운 나머지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그만 철책에 걸리고 말았다그걸 다시 집어 들고 안쪽에 돌멩이를 넣은 다음 홱 내던졌다. “뭘 하는 겁니까?” 갑자기 여자의 목소리가 집 안에서 울려 퍼졌다그와 동시에 이층 프랑스창이 열리고 마루다 리코가 문자 그대로 여우처럼 생긴 인색하고 약아빠진 얼굴을 내밀었다. “뭘 정원에 던진 거죠?”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달아나려는 나를 붙들었다마루다 리코도 외쳤다.

자네기다리게뭘 하고 있었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정원에 뭔가를 냅다 던졌잖아뭐지그거?”

화염병은 아니야그러니 안심해.”

 나는 정색하며 말했다.

화염병그런 물건 따위를 내가 맞을 리 없어나는 좌익 학생 편이라고.”

여보!” 하고 부르는 마루다 부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 사람속옷을 던졌어요여자 속옷이요.”

뭐라고?”

어제 도둑맞았잖아요요츠의 속옷을그걸 지금 이 사람이 던졌어요.”

자네...... 자네가 치한이군.”

무례하네무슨 말을 하는 거야아니야이 개가 했다고.”

이 개가그러면 자내의 개는 치견인가?”

치견일본어를 소중히 해치견이란 단어는 사전에 없다고이래서 평론가는 안 된다니까우리 집 개가 어쩌다 추태를 부리는 바람에 돌려주러 온 것뿐이야.”

 창문에서 마루다 리코의 얼굴이 사라졌다나를 잡으러 서둘러 현관으로 뛰어 내려오는 모양이었다먹보로 말할 것 같으면 예의 품위 없는 코밑수염을 기른 얼굴로 이상하다는 듯 가만히 쳐다봤다어디까지 바보인 걸까이 개는나는 먹보를 잡아끌며 부리나케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이날부터 소설가인 나와 평론가인 마루다 리코 사이에 어리석기 짝이 없는 반목과 싸움이 이어지지만그건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56~59)

 

여기까지가 그나마 이 책과 관련이 있는 내용이었고, 이어지는 글은 늘상 그렇듯 그저 syo의 뻘소리입니다. 이쯤에서 그냥 창 닫기 하고 가셔도 되겠습니다. 가시고 싶으시면 가세요. 가셔도 된다구요. 가차 없이 냉혹하게 x를 누르세요. 피도 눈물도 없이 alt+F4를 누르시라구요. 어차피 syo의 글 같은 거..... 으흑, 먹보.....

 

 

가진 것 없는 자들이 가진 것 많은 자들보다 더 많이 가진 게 딱 하나 있다면, 그것은 아마 이사의 경험일 것이다. 열세 살이었는데, 이미 내 나이보다 이제껏 거쳐 온 집들의 문패 숫자가 더 많을 만큼, 우리 집은 꾸준히 가난했다. 몇 번째 집인지 모를 우리의 새로운 셋집은, 한국 전쟁 직후 사회 속에 혼란이 많고 혼란 속에 기회가 많던 시절을 놓치지 않고 움켜잡은 어느 중견기업 회장님이 말년에 살고자 지었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세 가구에 세를 놓은 정원 딸린 거대한 저택이었다. 1층을 쪼개어 크고 작은 집으로 나누었고, 그 중 작은 쪽이 우리 가족의 차지였다. 웃프게도, 집은 작은데 1층을 분할하기 전 사용했던 거대하고 현란한 현관문은 우리 집에 달려 있었다. 과장을 좀 보태면, 그 현관을 열고 집으로 들어설 때마다 마치 숭례문을 열었더니 문 안쪽이 옷장이라 얼떨결에 웃옷을 벗어 걸고 나프탈렌 냄새나 맡으며 으스스 돌아서는, 그런 춥고 황당한 기분이 되곤 했다. 출입문에 자동굴욕기가 장착되어 있는 그런 희한한 집에 우리 가족이 깃든 이유는 순전히 세가 쌌기 때문이고, 복식조로 배드민턴을 쳐도 될 만한 잔디정원을 갖춘 그 집이 그렇게 세가 싼 이유는, 거기에 세입자가 책임지고 돌봐야 할 개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대하고 늙은 개가.

 

이삿짐을 옮기는 날, 짐차는 벌써 새 집으로 도착했는데 이사도우미 아저씨들은 대문 밖에서 심각한 얼굴로 소리 낮춰 이야기만 나누고 있었다. 난 그게 IMF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명 이상의 아저씨가 모여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그게 다 IMF 탓이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대문 안쪽에서 퀑- 하고 목구멍으로 대포 쏘는 소리가 나더니, 대문에서 가장 가까이 서 있던 아저씨가 소스라치면서 한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방금 발포한 바로 그 대포가 어슬렁어슬렁 이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철제 대문 틈 사이로 보였다. 그르르르장전르르르릉, ! 이사가 잠시 지연되었다.

 

네 발을 땅에 다 대고 있어도 자기보다 눈높이가 높은 그 생물을 가리키며 동생이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나 저 말 무서워.” 이미 사전답사를 와서 그 거대생명체와 안면을 터놓은 엄마가 대답했다. “말이 아니라, 마루래. 마루.” 동생은 대체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이냐는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동생은 미운 다섯 살이었다. 그러니까 그 말 같지도, 그렇다고 개 같지도 않은 개의 이름은 마루였다.

 

마루는 유럽의 어느 왕조였나 영주 가문이었나 하는데서 사냥개로 즐겨 길렀다는 혈통의 덩치 큰 개였다. 우리가 만났을 때 이미 열 살이었던 그 아이는, 그 나이께의 개들이, 혹은 그 정도 분량의 삶을 소모한 생명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조용하고 덜 움직이며 늘 께느른한 표정으로 먼 데나 바라보며 소일하곤 했다. 그런 것 치고는 또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사람이 나타나면 제 딴에는 반갑다고 말을 걸며 다정하게 다가오는 것인데, 정작 인사를 받는 사람들은 그 짖는 소리를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만 떡이 없다면 아쉬운 대로 팔 한쪽도 받습니다.”로 해석하곤 했다. 그 덕에 우리 집에 놀러온 친구들은 대문이 열리면, 대문에서 현관까지 족히 20m는 되는 거리를 걸으면서 인생의 행복했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그 진귀한 상황을 빈번히 체험할 수 있는 특급 서비스를 누리기도 했다. 한겨울이 와도 내 친구들은 구슬땀을 잘만 흘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마루를 좋아했다. 우리는 중2가 되었는데, 2는 세상 모든 것이 다 슬프고 부질없고 귀찮고 짜증나지만, 미쳐 환장하는 것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섹스와, 섹스와, 섹스와, 그리고 섹스였다. 그러나 중2에게 섹스란 흔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대신 섹스는 아니지만 섹스와 비슷하거나, 섹스를 연상시키는 것들에 열광했다. 그러나 초록은 동색이라지. 내 친구들은 역시 내 친구들이라, 섹스를 둘러싼 것들을 좋아는 하였으나 좋아하는 방법은 아직 유아적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니까, 네다섯 먹은 꼬마들이 !” 소리만 들어도 세상 자지러지듯이, 우리 역시 !” 혹은 !” 소리만 들어도 신나하는, 그런 식으로 섹스를 소비할 뿐이었다. 어른스럽지 못해서 참 다행이었지. 여하튼 그런 우리에게 마루는 정말 놀라운 흥밋거리였다. 그것은 이 영감이 남자란 것들은 문지방 넘을 힘만 있어도 그 짓 생각이라는 속담과 진실 사이의 어디쯤 존재하는 저 말의 실감나는 구현자였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 집 마당에는 마루 말고도 분지(푸들), 새짝이(요크셔테리어), 진아(치와와), 순아(???)와 같은 아이들이 함께 살았는데, 공교롭게도 그 아이들은 전부 암컷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집 마당이 마루에게는 천국이었을까? 천만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천국이나 지옥이나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는 건 마찬가진데, 거기 사는 팔 굽은 인간들이 서로 음식을 먹여주는 곳이 천국이고, 지 혼자 먹겠다고 낑낑거리지만 팔이 굽어 굶주릴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사는 곳이 지옥이라는. 어린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팔을 굽혀봤다. 잠깐이지만, 눈앞에 있는 것을 입으로 가져갈 수 없는 고통이라는 것을 조금은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마루를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그런 고통을 상상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눈에 선연히 보이니까. 푸들, 요크셔테리어, 치와와에 해당하는 소형 견종과의 랑데부를 성사시키기에, 그는 너무도 거대했다. 앞다리로 그 작은 아이들을 감싸 쥐고는 허리를 미친 듯이 흔드는데, 닿질 않는다. 닿질 않는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그의 정열을 우리는 함께 모여 열심히 응원했다. 마루야, 힘내! 그리고 미친 듯이 웃었다. 그의 숨소리는 거칠어지다 못해 금방이라도 단말마가 나올 것처럼 비참해지고, 눈에는 핏발이 서는데, 닿질 않는다. 아래에 있는 아이들은 그야말로 담담하다. 그저, ? 이게 웬 그늘이지? 하는 표정일 뿐. 간간히 하품도 한다. 그러나 마루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바쁘고 고되다. 저러니 마루가 살이 안 찌지. 우리와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던 동생이 말했다. 동생은 미운 일곱 살이었다.

 

3이 되었다. 4월이었고, 고등학교 들어가면 정석 푸느라 생일 챙길 시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마지막으로 성대한 생일파티를 계획했다. 유난히 쾌청한 날이었다. 파티에 와 준 9명의 친구들은 누구는 만화를 보고, 누구는 컴퓨터를 하고, 누구는 배드민턴을 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으슥하게 해가 넘어갈 때쯤, 우리는 모두 정원 가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음료수 한 잔씩 놓고 선행학습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몇 반에 누구는 지금 고2 정석을 풀고 있다더라. 내가 듣기로 걔는 유제와 예제만 풀고 넘어간다던데 그러면 다 헛 거다, 정석은 자고로 연습문제지. 요즘은 개념원리가 좋다던데, 그거 살까? 친구여, 사마외도로 빠지지 말게나, 오로지 정도만이 자네를 1등급으로 인도할 걸세. 뭐 이런 구슬픈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때, 친구 하나가 고개를 들어 정원 한쪽을 보더니 말했다. “, 저거 봐봐라.” 모두 고개를 들어 그쪽을 보았다. 다른 친구가 말했다. 또 시작이네.

 

또 시작이었다. 닿지 않는 몸부림. 부질없는 헐떡임. 뜻밖의 체중감량.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웃었다. 하하하. 그런데 어쩐지 그날따라 석연찮았다. 해가 정원 한쪽 귀퉁이 높게 솟은 호두나무 우듬지 뒤쪽으로 무거운 몸을 낮추고 있었다. 마루는 분지 위에서 한참 헛심을 쓰더니 이내 포기하고 새짝이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참 끈질기다.” 친구 하나가 말했다. 우리는 웃었다. 하하. 그러나 그 웃음은 직전의 웃음보다 더 짧게 끝났다. 바람이 낮게 불어 정원의 잔디를 스쳤다. 우스스 풀이 눕는 소리가 음악처럼 곱게 들렸는데, 그 사이에 소음처럼 거대한 개의 헐떡임이 끼어들었다. 바람이 아무리 호흡을 가다듬어도, 개의 입에서 나오는 바람과는 조율이 되지 않았다. 음악이 자꾸 무너져 내렸다. “, 진짜.” 친구 하나가 말했다. 우리는 웃었다. . 그러나 그건 웃음이라하기도 민망한, 일종의 탄식에 가까운 소리였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마시지 않았으며,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웃기지만 슬프기도 했고, 징그럽지만 불쌍하기도 해서, 욕지기가 나오지만 위로를 덧붙이고도 싶은 그런 이상하고 복잡한 풍경이었다. 우리는 이제 궁금했다. 왜 우리는 이 이상하고 복잡한 장면을 그토록 오래 봐오면서 이제껏 웃음 말고 다른 마음을 길어 올리지 못했을까. 지금은 그 답을 쉽게 찾는다. 그때까지 우리가, 우리는 우리고 저건 마루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람이고 저것은 개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 답을 정확히는 몰랐다. 그럼에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던 것 같다. 그날부터 마루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던 날까지, 우리는 누구도 마루를 비웃지 않았으니까.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그날 그 풍경을 거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어쩌면 한참 많이) 웃기지만 슬프고, 징그럽지만 불쌍하여, 욕지기가 나오지만 위로를 덧붙이고 싶은, 그런 이상하고 복잡한 인간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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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7-30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엔도의 책 하면 <침묵> 밖에 없는 줄 알았더니
제법 많은 책을 냈나봅니다.
사실 저도 <침묵>은 못 읽어봤습니다.
최근 영화로 나왔다고 해서 관심이 가긴 합니나만
그걸 또 스콜세지 감독이 만들었는 줄은 몰랐습니다.
스 감독은 그 독특함 때문에 저도 나름 좋아하는 감독이긴 합니다만
<침묵>을 만들만큼 거룩한 것 같진 않거든요.
영화를 한번 봐야겠슴다.

근데 시험은 잘 보셨습니까?
보셨을 것 같은데...ㅋ

syo 2018-07-30 11:27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바로 어제부로 시험이 끝이 났지욯ㅎㅎㅎㅎㅎㅎ요호!!

이제 신나게 읽을 일만 남았습니다만ㅎ

카알벨루치 2018-07-30 12:33   좋아요 0 | URL
축하합니당당당~syo님! 좋은결과 있기를

syo 2018-07-30 22:14   좋아요 1 | URL
카알벨루치님 감사합니다 ㅎㅎㅎ
묵은 짐 내려놓은 기분이네요.

붕붕툐툐 2018-07-30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저도 침묵밖에 떠오르는게~ 그래서 보자마자 바로 읽고 싶은 책으로 찜했습니다. 전 침묵 읽고 진짜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syo 2018-07-30 11:33   좋아요 0 | URL
저는 침묵을 읽지 않았지만, 아마 많이많이많이 다른 느낌이실거예요 ㅎㅎㅎㅎㅎ

몰리 2018-07-30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재밌습니다.
장편 확장 부탁드립니다! 마루의 삶.

syo 2018-07-30 13:21   좋아요 0 | URL
심장사상충으로 마무리된 그의 기이한 삶...

붉은돼지 2018-07-30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뭐 침묵에 대해서는 침묵입니다만
그 왜 가토 기요마사하고 고니시 유키나가 하고 등장하는 숙적 이라는작품도 있잖아요
뭐 역시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언제 한번 읽어봐야지 생각은 하고 있는데
이게 품절이라서 ㅋ

syo 2018-07-30 13:23   좋아요 0 | URL
숙적 그것도 어쩐지 불교와 기독교의 한판 승부 같은 느낌이네요.
이번에도 한번 읽어봐야지 하지만 언제 읽을지는 미정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요....

2018-07-30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30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7-30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무슨 시험 있었는지 모르지만,
애쓰셨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좋은 결과 진심으로 매우 많이 기원합니다. ^^

syo 2018-07-30 22:0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북다님 ㅎㅎㅎ
이제 다시 북다님에 뒤지지 않는 알라딘 빨강이로 열심히 활동할까 하구요. 그게 되겠습니까만은 ㅎㅎㅎ

모운 2018-07-31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나는 읽었는데 시오님이 안 읽은 책을 알게 되면 짜릿한 기분이 듭니다.🤪 영화도 책도 흥미롭게 보고 읽은 작품입니다.

syo 2018-07-31 15:28   좋아요 0 | URL
그게 뭐라고요. 짜릿할 것까지야 있을까요. 하여간 추천하신대로 침묵은 조만간에 읽어볼 작정입니다.
 


2차전이 벌어졌어


 v.s. 


경애의 마음 / 김금희 / 창비 / 2018년 06월

내게 무해한 사람 / 최은영 / 문학동네 / 2018년 06월

 

때는 바야흐로 2016, 아직 박근혜가 그랬고 최순실이 그랬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짐작조차 못하던 암흑시절이었다. 여기저기서 나야말로 한국 소설의 앞날을 책임지고 말리라 주장하는 젊은 군웅들이 할거하는 가운데에서도 가장 큰 주목과 기대를 얻은 두 명의 젊은 고수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길 없는 넓은 초원에서 그야말로 대놓고 일대 결전을 벌인 일이 있었다. 2016531일 세상에 나온 김금희의 단편집 너무 한낮의 연애, 201677일에 간행된 최은영의 단편집, 쇼코의 미소가 한 달을 사이에 두고 크게 맞붙은 것이다. 그야말로 용과 호의 싸움이었다.



너무 한낮의 연애 / 김금희 / 문학동네 / 2016년 05월

쇼코의 미소 / 최은영 / 문학동네 / 2016년 07월

 

용호가 아무리 상박이라 한들, 그래도 용이 있고 호가 있는 법이다. 용과 호가 붙으려면 최소한 증강현실이라도 필요하겠지만, 사실 안 봐도 대충은 안다. 어쨌든 둘이 붙으면 용이 이기리라는 것을. 걘 날개 없어도 날고 천둥번개도 우르릉 쾅쾅 쏴대는데 호랑이는 끽해야 이빨에 발톱이 다니까. 그건 심지어 인간도 다 갖고 있는 무기들이다. 허접해서 그렇지. 하여튼 물리적(용이?) 관점에서 용호상박은 상대적으로 기량이 부족한 호랑이의 졌잘싸를 칭송하기 위한 수사에 가깝게 사용될 때 맞춤하다는 전제를 깔았다 치면, 그렇다면 이 판에서는 과연 누가 용이고 누가 호인가. 무림의 호사가들은 대부분 김금희를 용으로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은 기실, 사이즈가 달랐다.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쇼코의 미소로 당선되어 문단에 등장한 최은영은 같은 작품으로 2014<5회 젊은 작가상> 7작품 안에 이름을 올리긴 하였지만, 당시 벌써 젊은고수를 넘어 무림 최고수의 반열에 오른 황정은의 <상류엔 맹금류>와 맞붙어 대상은커녕, 수상작품집 가장 말석에 이름을 싣는 데 만족해야 했다. 김연수 같은 눈 밝은 작가가 일찌감치 자신의 권좌를 채어갈 잠룡으로 그녀를 지목하기도 했으나, 어쨌건 그 이후 2년을 최은영은 이렇다 할 수상작도 없이 낮게 웅크리는 중이었다. 반면 김금희는 제61회 현대문학상 수상후보작에 <보통의 시절>을 올리며 2016년을 시작했고, 너무 한낮의 연애보다 한 달 앞서 수상작품집이 출간된 2016년 제7회 젊은 작가상 대상 작품이 표제작 너무 한낮의 연애였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누가 봐도 그녀가 용이었다. 너무 한낮의 연애출간 이후의 일이긴 하지만, 그해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로 제16회 황순원문학상의 창문을, 새 보러 간다로 제10회 김유정문학상의 대문을 두드리더니 마침내체스의 모든 것으로 12, 62회 현대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한해를 마무리 한 것을 보면, 과연 2016년은 김금희의 해였던 것도 사실이다. syo 역시 그 해에 그런 말을 들었다. “이제는 김금희야. 황정은 다음은 김금희야.” 그러나 막상 싸움은 굉장히 싱겁게 끝났다. 물론 용은 더할 나위 없는 용이었음에도, 뚜껑을 열어보니 이 호랑이 몸통이 산만 하고 이빨이 집채만 했던 것이다......

 

독자의 반응은 선명했다. 출판계가 수상 뽐뿌를 동원해 잔뜩 붐업 해 놓은 김금희의 책은 전체적으로 좋은 반응 가운데(실제로 좋다),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라는 의견 역시 건포도 케이크 속 건포도 알처럼 뜨문뜨문하나마 명백하게 상존했다. 반면 최은영의 책은 압도적인 호평이었다. 알라딘의 이름난 리뷰어들은 하나같이 최은영의 이름 앞에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고, 이름 안 난 리뷰어들(예를 들면 syo) 역시 뒤질세라 엄지손가락 두 개와 엄지발가락 두 개까지 들어올렸다. syo는 두 권을 다 읽었는데, 너무 한낮의 연애는 리뷰를 쓰고 싶을 만큼 좋았고(지금은 그 리뷰를 지웠지만), 쇼코의 미소는 리뷰를 쓸 수 없을 만큼 좋았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시점 알라딘에는 너무 한낮의 연애에 대한 100자평과 리뷰가 각각 40개 남짓 존재한다. 쇼코의 미소에는 그 세 배쯤 붙어있다. 당장 어제도 리뷰가 올라왔다. 과연 문단과 독자들 사이의 이 거대한 간격은 어떻게 발생했으며, 또 무엇을 상징하는가. 쇼코의 미소는 온오프라인 서점을 그야말로 뒤흔들었고, 그 책에 수록된 7개의 단편(2013년부터 2016년까지 발표되었다) 가운데 표제작에만 시상했던 인색한 문단은 그해 말, <소설가들이 투표로 선정한 2016년의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이 책에 달아주며 머쓱해했다. 이렇게 김과 최의 1차전은 의외로 한쪽으로 기운 승부로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2018. 리벤지 매치가 시작되었다. 2016년 싸움의 실질적인 승자는 사실 두 권의 책을 모두 출간한 출판사 문학동네였다고 봐도 무방했지만, 이번에는 구도가 다르다. 한판 붙어 보자, 대통령도 바뀌고 나라도 바뀐 마당에. 615, 김금희를 품에 안은 창비가 경애의 마음으로 2차 대전의 포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장편이다. 보름 후인 630, 문학동네는 디펜딩 챔피언 최은영의 새 단편집 내게 무해한 사람을 내세워 또 한 번 큰 재미를 기대한다. 과연 두 사람의 무공은 얼마나 고강해졌을지? 최근 그들의 단편을 몇 읽어 보자면, 최은영은 여전히 좋아 죽겠고, 김금희는 점점 더 좋아 죽겠던데. 현 시점 기준, 내게 무해한 사람이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는 두 배 앞서 있는 반면, 읽은 이 숫자와 100자평, 리뷰 개수는 경애의 마음이 각각 5, 2, 60(??!!) 앞서 나가고 있는 중이다. syo 역시 두 권의 책을 모두 구매하여 책장에 꽂아 두었지만, 아직 읽을 시간, 읽고 나서 리뷰를 쓸 만한 시간만큼은 차마 만들기가 어려워, 이렇게 1시간짜리(고작 이게 한 시간이나 걸렸다니 믿을 수 있나요, 이 어마어마한 비효율.....) 주제도 내용도 없는 똥글을 남기며 잠깐 뇌를 자리에 뉘었다가 다시 떠납니다. 월말에 다시 만나요.

 


그리고 1차전 이후 2년간 그녀들이 쌓은 전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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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buff 2018-07-07 1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경애의 마음 리뷰 수가 많은 건 서평단을 300명이나 뽑아서일 거예요 ㅎㅎ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syo 2018-07-07 21:48   좋아요 1 | URL
그런 비밀이 있었군요. 어쩐지 좀 과하더라. 과연 창비네요.
알찬 정보 감사합니다ㅎㅎㅎㅎ

모운 2018-07-07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긴 할 거지만 둘이 너무 뭐랄까...음... 으음... 할많말않...

syo 2018-07-07 22:48   좋아요 0 | URL
소설가들에 관한 정보라면 항상 준-내부자 수준이세요 작가님.

모운 2018-07-07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닙니다. 저건 순전히 개인적인 감상. 열등감에서 비롯된 깎아내리기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치만 타이밍과 풍문이 너무 커진 건 확실하다고 보므니다.

syo 2018-07-08 01:55   좋아요 0 | URL
뭔데 뭔데요 그 풍문이라는 게. 제발 알려줘......

단발머리 2018-07-08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로 말하자면 최은영한테 한 표 더 주고 싶어요. 나는 최은영이 좋아, 쇼코의 미소도 좋구요.
2차전 결과도 나중에 정리해서 올려주는 것은 syo님의 일이며~~~~~~~~~~

얼른 7월이 지나갔으면 좋겠네요.
syo님 책 많이 많이 많~~~~~~~이 읽게요^^

syo 2018-07-08 18:04   좋아요 0 | URL
8월에 다시 만나요~~ ㅎㅎ

푸른희망 2018-07-08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리뷰 기다립니다.~~~

syo 2018-07-08 18:04   좋아요 0 | URL
꼼꼼히 읽고 한 번 써 볼게요. 감사합니다 ^^

다락방 2018-07-08 2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쇼님도 악성댓글을 받네요!!!!!!!!!!!!! 이게 뭐라고 악플을?!?!?!?!!! 너무나 놀라운 악플러들의 세계~ 그들이 뻗어나가지 않는 곳은 없나니...


그건 그렇고, 저는 이번 두 책은 아직 안읽고 사지도 못했지만 최은영을 곧 살 예정인데요, 왜냐하면 저는 너무 한낮의 연애가 제목만 좋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목은 좋은데 이게 뭐여.. 이렇게 됐었기 땜시롱 저는 기꺼이, 고민 없이 최은영!!

그렇지만 김금희도 읽어볼까요? (고민)

단발머리 2018-07-08 20:57   좋아요 1 | URL
syo님의 인기를 시기하는 거 아닐까요?
이렇게 한 방 먹여서 알라딘에 못 오게 하려고? 우아~~~ 신기하고 놀라운 악플의 세계^^

제가 이 이야기를 솔직히 못하고, 저도 <한낮의 연애> 읽고.... 이게 뭐여.... 했지만....말을 못 하고... 말을....ㅠㅠ
아이고, 시원해라, 다락방님이 이야기해줘서.
syo님~~ 여기 최은영 하나 추가요!!!

syo 2018-07-08 21:0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저도 <너무 한낮의 연애>가 그 책에 있는 작품들 중에 제일 별로였던 기억이에요. 하지만 뒤로 갈수록 괜찮았는데 ㅎㅎㅎㅎㅎㅎ

독서괭 2018-07-09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손가락에 두발가락까지 치켜 드는 syo님의 귀여움이란 ㅋㅋ 악플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인기도 많아졌다는 뜻이죠!
2차전리뷰 기대하겠습니다^^

syo 2018-07-10 01:51   좋아요 0 | URL
저도 저 두 권을 꼼꼼히 읽을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중입니다 ㅎㅎㅎㅎ 리뷰까지야 할 능력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2차전 결과발표는 해 볼라구요^-^

공쟝쟝 2018-07-11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자는 문학동네 ㅋ 저는 최은영에 한표입니다 ! 물론 김금희도 좋아요. 하지만 압도적으로 최은영 소설이 좋아요 ㅠㅠㅠㅠ

syo 2018-07-11 12:49   좋아요 2 | URL
김금희 좋다고 하시는 분은 많지만, ‘최은영 보다‘ 김금희가 좋다고 하시는 분은 아직 한 번도 만나지를 못하고 있네요....ㅎㅎ

라로 2018-07-11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금희 몰라요, 최은영만 알아요, 좋아해요. ㅎㅎㅎㅎㅎ
그나저나 최은영보다 더 좋아하는 우리 토비님, 곰시생님 어서 빨리 시험 끝나고 좋은 결과 있기만을...!!!

syo 2018-07-11 21:22   좋아요 0 | URL
아니, 저조차 저보다 최은영이 더 좋은 마당에, 최은영보다 저를 더 좋아해주시는 라로님......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카알벨루치 2018-07-13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은영 좋아요! Syo님은 문학평론 하시죠 ㅋㅋㅋ

syo 2018-07-13 09:19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아니 그게, 평론은 커녕 사실 잘 보시면,
이 긴 글에 작품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다는 것이 함정입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