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시대는 더 이상 형이상학의 시대가 아니다...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은 실용성과 현금가치가 없는 말에는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이런 시대에 형이상학의 그 난해한 말들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자연이나 인간에 대한 오늘날의 지식은 24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분화/전문화되어 있지만 인간, 자연,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적 사유는 어디서도 찾기 힘들다. 많은 사람들은 세계 전체를 바라보는 통합적 안목에는 무관심한 채 자신들이 수행하는 연구의실용적 가치를 광고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인다. ‘무반성의 실용주의‘가 오늘날 학문의 대세라는 사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에도 형이상학을 읽을 가치가 있다면, 이렇게 전문화되고 파편화된 연구와 실용적 정보취득에 몰두하는 가운데 ‘잃어버린 사유의 길‘이 그 안에 제시되어 있다는 데서 이유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이 길은 ‘반성적‘이고 ‘통합적인 사유‘의 길이다.

이 길은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의 ‘근거‘를 묻는 데서 시작해서 우리를 아포리아 aporia로 몰고 간다. 인간만이 그런 사유의 길을 걷는다. 동물들은 ˝왜˝라는 물음을 던지지도 않고 의문에 빠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은 ˝왜˝라는 물음과의 궁극적인 대결의 장이며, 우리의 정신으로 하여금 동물적 삶의 감각적 확실성과 편협성에서 벗어나 인간과 세계 전체를 둘러싼 불확실성과 대면하면서 이를 탐구하게 만든다. 형이상학의 사유는 우리를 사유하는 존재가 되게 한다.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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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robot‘이라는 용어는 1921년에 카렐 차페크 Karel Capek의 연극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R.U.R.: Rossum‘s Universal Robots)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이 연극에서 그는 산업 노동자로 일하는 인조인간 종족을 창조했는데, ‘로봇‘이라는 단어는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체코 단어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나 차페크가 만들어낸 로봇은 합성 반응을 통해 성장한 유기적 존재였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로봇보다는 복제인간에 가까웠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는 로봇을 ‘복잡한 일련의 행동을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계‘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보통은 로봇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식기세척기나 세탁기와 같은 기계도 로봇에 포함해야 한다. 

국제로봇협회는 로봇을 ‘자동으로 제어되고,
재프로그래밍할 수 있으며, 고정되어 있거나 이동할 수 있는 다목적 조종장치manipulator‘라고 정의한다. 이는 산업 분야에서 로봇을 정의하기에는 유용할지 모르지만 다른 분야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예를 들어, 수술 로봇은 프로그래밍할 수 없다.

 로봇의 초기 개념은 상상 속에서 나왔으며, 개발자들은 문학 속에서 발명된 ‘기계적 인간‘을 전형적인 로봇의 형태로 부각시켰다. 1939년 뉴욕세계박람회에서는 ‘일렉트로 더 모터 맨Elektro the Moto Man‘이라는 2m 높이의 금속 인간을 선보였다. 이 로봇은 음성 명령에 반응하였고, 질문에 로봇 음성으로 대답하였으며,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고 심지어 담배를 피울 수도 있었다.

 ‘일렉트로 더 모터맨‘은 웨스팅하우스일렉트릭westinghouse ElectCorporation 의 광전지 및 전기계전기와 같은 몇 가지 최첨단 기술을 보여주기 위해 제작되었다. 사실 ‘일렉트로 더 모터 맨‘은 일종의 속임수라 할 수 있다. 로봇의 대답은 사전에 입력  된 내용이었으며, 이 로봇의 기능은 설정된 행동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했다.

  우리는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기계를 종종 로봇이라고 불렀다. 최초의 신호등은 1868년 영국의 국회의사당 외부에 설치되었으며, 경찰이 수동으로 조작하였다. 1920년대에 자동 교통 신호등이 최초로 도입되있고 사람들은 이것을 ‘로봇 경찰‘ 이라고 불렀다.

 1940년대에 나치 독일은 폭발물을 운반하는 무인항공기 V-1을 배치하였다. 이 항공기는 ‘개미귀신 doodlebug‘ 또는 ‘버즈 폭탄 buzz bomb‘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지만 영어권에서는 ‘로봇 항공기‘ 또는 ‘로봇‘이라고 알려졌다. 오늘날에는 드론 drone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6쪽.

사람과 같은 로봇을 만들기 위한 진지한 노력은 14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기계 기사 mechanical knight를 설계하였으며, 이는 현대 로봇의 조상으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관절 및 근육의 동작에 대한 인체해부학 지식을 활용하여 지렛대 lever와 도르래pulley를 사용한 인조인간을 설계하였다. 갑옷 한 벌을 기본으로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하고, 얼굴 가리개visor를 들어 올릴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기어를 조작해 다른 동작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정을 변경하는 제어기를 적용하는 등 기본적인 프로그래밍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레오나르도가 설계한 기계 기사가 실제로 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레오나르도의설계는 로봇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실물을 모델로 한 기술을 통해 문제를 극복하는 지혜를 보여준다. 손목과 팔꿈치 관절이 있는 현대의 로봇 팔은 레오나르도의 기계 기사와 매우 닮았다. 3차원 공간상의 관절 및 손의 이동에 대한 동일한 문제에 대하여, 엔지니어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동일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로봇은 수세기 동안 존재해왔지만, 현재의 세대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제시한다. 이제우리는 사람 같은 능력을 발휘하는 로봇에 대한 환상을 현실로 옮기고 있다. 아직은 걸음이 서투르고, 운전 실력도 형편없으며, 사과 따는 기술이 정교하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로봇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로봇이 인간의 라이벌이 되고, 모든 분야에서 인간을 넘어설 날이 다가오고 있다. 로봇들은 이미 세상을 바꾸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일을 해낼 것이다.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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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기술 중에서 가짜만으로 이뤄진 공간인 가상 현실이 가장 대중적이고 보편화되어 있다. 그다음이 진짜 공간과 가짜 공간을 결합하여 진짜 공간을 확장시킨 증강 현실이다. 

그 뒤로 가상 현실과 증강 현실을 융합한 혼합 현실이 있고, 혼합 현실에 네트워크를 결합한 공존 현실이 있다. 

공존 현실에서는 서로 다른 원격 사용자들이 현실공간감을 함께 느끼며 친밀하게 협업할 수 있다. 이 공존 현실이 완벽하게 구현되면, 우리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지워진 확장된 공간 속에서 시공간을 초월해 전 세계 사람과 일하고, 어울리고, 여러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혼자서 꾸면 꿈에 불과하지만 모두가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 가장현실에서 증강 현실과 혼합 현실로 진화했다면, 이제는 공존 현실이다.

현실과 가상이 결합된 공간에서 여럿이 교류하며 협엽하고 어울릴 수 있다. 혼자서만 가짜를 진짜로 여기는 게 아니라 여럿이 함께 가짜와 진짜를 결합된 공간에서 시각, 청각, 촉각, 후각을 느끼게 된다.

이쯤이면 어디까지가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 전혀 중요하지 않다. 함께 느끼는 모든 것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리고 그 자체로 모든 것이 실재하는 진짜가 되는 셈이다.

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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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를 자원으로 본다면 이 자원을 생산해내는 활동은 ‘노동‘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데이터 생산 노동은 산업사회에서 행하던 기존의 노동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생산 현장‘에서 차이가 납니다. 산업사회에서는 ‘공장‘에서 공산품을 생산했지만 빅데이터 시대에는 ‘일상생활‘에서 데이터를 생산하지요. ‘공장과 토지‘가 생산 현장이었던 시대는 가고, ‘생활의 모든 영역‘이 데이터를 생산하는 작업장이 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빅데이터 시대에는 개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데 이티를 생산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존재하고 활동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지요.

‘생산 관계‘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산업사회에서 ‘노동자‘는 기업가에 ‘고용‘되어 생산 활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빅데이터 시대의 ‘일반 사람들‘은 어느 특정 기업에 ‘고용되어 있지 않으면서‘ 데이터라는 자원이자 하나의 상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산업사회 노동자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여 퇴근할 때까지 일을 했지만, 인터넷 사용자는 정해진 시간 없이 언제 어디서라도 데이터를 생산합니다. 노동시간과 여가시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죠. 노는 것과 쉬는 것도 데이터를 생산해내는 노동이 될 수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노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IT 기업의 수익을 늘려주는 노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진보저널 『자코뱅acobin』은 2017년 4월 11일자 기사 「빅데이터에 숨겨진 노동에서 ˝인터넷 시용자들이 111기업을 위해 엄청난 공찌 노동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데이터 생산에 대한 대가를 밪디 못하니 공짜 노동이라는 거지요.

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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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란 디지털 환경에서 생성되고 관리되는 방대한 규모의 데이터를 뜻합니다. 

많은 기업들이 이런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수익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데이터는 ‘21세기의 석유‘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데이터가 ‘기업의 자본‘이 되는 시대가 온 것이지요. 이렇게 데이터가 자원으로 활용되어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여겨지면서 빅데이터에 대한 소유권 문제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논점은 이런 것입니다. 개인들의 일상 활동이 모두 데이터화되어 상업적으로 이용된다면, 그 데이터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정보를 생성하고 제공한 사람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정보를 수집하여 분석한 기업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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