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배기의 멋 / 꽈배기의 맛

최민석 지금 / 북스톤 / 2017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만나, 지금은 누가 물어봐도 가장 친하다고 대답할 수 있는 20년도 더 먹은 친구 녀석은 아무말에 매우 능하다.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는 한 달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려웠는데, 아니 이놈이 만날 때마다 키가 쑥쑥 자라 사람을 빡치게 만들었다. 나보다 작은 게 너의 유일무이한 매력이었는데. 키 크는 비결을 내놓지 않으면 우리의 우정은 여기 어디쯤에서 먼지가 되어 흩어질 것이라 협박했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한다. 글쎄, 엄마 아빠가 같이 안 살기 시작해서 그런 것 같은데? 야! 나돈데 나는 왜 안 커. 아니 아니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같이 안 살아서 밥 대신 라면을 자주 먹어서 그런 것 같은데? 야! 나 땜에 우리 동네 무파마 멸종 직전이거든? 아니 아니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같이 안 살아서 밥 대신 라면을 자주 먹는데 그러다보니 김치를 많이 먹어서 그런 것 같은데? 야! 나도 김치한테 미안해서 김장이라도 배울까 고민하는 상태거든? 아니 아니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같이 안 살아서 밥 대신 라면을 자주 먹는데 그러다보니 김치를 많이 먹게 되는데 그 김치에 생굴이 잔뜩 들어서......


플라타너스 이파리가 바스라져 바람에 흩날리던 가을의 어느 날, 분명히 그럴 리가 없는데도 자꾸 날이 덥다며 윗도리를 펄럭대는 그 녀석의 복근에 새겨진 선명한 王자를 발견한 syo는 그걸 못 본 척 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으나, 점점 더 격렬히 배를 까고 옷을 펄럭이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이쯤에서 언급하지 않으면 배꼽을 내 눈알에 갖다 대기라도 할 기세라 못 버티고 입을 열었다. 야, 장난 아니네 복근. 아아, 이거? 뭐 그렇지. 그게 복싱 다닌 결실이냐? 그러자 녀석인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아니 아니 그러니까, 요즘 너무 웃긴 시트콤을 보고 있는데, 계속 웃다보니까 배가 이렇게 된 것 같은데? 친구야. 니가 그놈의 복싱 배우는 중만 아니었으면, 그때부터 넌 삼겹살을 앞니로 씹어야 했거나, 네이버에 '임플란트 잘하는 곳' 따위를 검색하고 있거나 그랬을 거야.


여러분의 펀치가 syo의 모니터를 뚫고 날아오지 않는다는 확신, 어금니의 안보는 탄탄하다는 믿음에 힘입어 과장을 보탠 아무말을 하자면, 최민석의 에세이『베를린 일기』를 읽고 났더니만 선명한 복근까지는 아니더라도 윗몸 일으키기가 열다섯 개 늘었어요! 과연 복근 전문 트레이너 최민석 작가. 최신작(이라 쓰지만 묵은 에세이 모음집)『꽈배기의 맛』과『꽈배기의 멋』은 그보다는 좀 약해 일곱 개 반 정도, 레그레이즈 세 개 정도 늘려준다! 한국의 빌 브라이슨이라 불린다는데, 그만큼 웃긴다는 이야기지만 막상 글 자체의 꼴은 빌 브라이슨보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가까워 보인다. 세 스푼 더 웃긴 무라카미.




그리고 덜 웃긴 최민석


  





나의 첫 젠더 수업

김고연주 지음 / 창비 / 2017


여친이 교사라, 교육 정책이나 교육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많다. 코딩이 교육 체제 안으로 편입되어 자리를 잡으면서 우리는 학교에서 꼭 배웠으면 싶은 것들에 대해 말했다. 여친은 영화나 드라마, 라디오 프로그램과 같은 통합적인 예술 콘텐츠 제작에 관한 프로젝트식 수업을 원하고, syo는 두 과목을 원한다. 노동법과 젠더.


학교 교육의 실용성에 대한 우스개는 역사도 깊고 판본도 다양하다. 선생님, 전 문과 가고 법대 갈 건데 미적분은 어따 써요? 더 크게는, 계산기가 이렇게 좋은데 수학은 뭐하러 배워요? 같은 질문들에 다양한 대답들이 짝을 맞추어 해피엔딩부터 막장엔딩까지를 골고루 연출한다. 실용성 면에서 보면 노동법만큼 실용적인 과목이 있을까? 이 교실의 서른 명 아이 가운데 스물아홉 명은 장차 한 번은 노동자가 될 운명이다. 노동법은 창인 동시에 방패이며, 비록 그 창은 군데군데 날이 빠지고 방패는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나 있지만, 그래도 맨주먹 맨발로 싸우는 것보다는 낫다.


그렇다면 젠더는 배워서 어디다 써요? 하고 물어온다면 젠더를 배워서 어디다 쓰려는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젠더 교육의 필요성을 드러내는 지점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젠더. 누군가에게 그것은,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느껴지지만 너무 흐릿하게 보여 명확히 가리켜 짚어내기 어려운 것들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안경이고, 어떤 누군가에게는 평생 모르고 살아도 지장이 없는 보기 불편한 것들을 드러내 보여주는 또 다른 안경이기도 하다. 안경이 필요한 사람은 특정한 일을 하기 위해 안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일단 안경을 쓰고 무엇인가를 한다. 어떤 눈은 배우지 않으면 뜨이지 않고, 어떤 배움은 이르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 나 아닌 사람과 어우렁더우렁 살기 위해 언어와 사회규범을 배우듯, 그리고 그것들은 사용하는 게 아니라 착용하는 쪽에 가깝듯, 우리에겐 학습하기보다 장착해야 하는 과목들이 있다. 



초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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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3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3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23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교육’을 ‘젠더 교육’이라는 말로 대체해서 보편화되었으면 좋겠어요. ‘성교육’의 ‘성’이 뜻하는 정의가 고리타분해요.

syo 2018-01-23 15:25   좋아요 0 | URL
성교육과 젠더교육은 지향점 자체부터가 완전히 다른 별개의 교육인 것 같아요. 말을 대체할 게 아니라 교육 유형 자체를 교체해야 할 판이지요.

붉은돼지 2018-01-23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뭐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꿀꽈배기를 즐겨먹는데요
달달하니 소생같은 초딩 입맛에 딱인데, 다만 한가지 혼자 한 봉지 쯤 다먹으면 입천장이 좀 아프다는 ....

syo 2018-01-23 17:48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유서 깊은 맛동산성애자 집안 출신이라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희 쪽은 주로 과자 본체보다는 땅콩 부스러기에 입천장을 쓸리는 경우지요.

프리즘메이커 2018-01-24 0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트콤 같은 맛깔나는 글...syo님의 일화만 따로 묶어서 읽고 싶어요

syo 2018-01-24 07:12   좋아요 0 | URL
별 것 없는 소소한 인생입니다.
프메님 오랜만이네요 ㅎ

레삭매냐 2018-01-24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급 작가를 표방하는 최민석 작가가 계속해서
책을 발표하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수요가 있는 모양이네요 :>

초기작들을 읽었는데 신간들은 다른 책들에
치어서리.

syo 2018-01-24 16:13   좋아요 0 | URL
원래 B급이라는 것이 크진 않지만 단단한 수요를 기반으로 하니까요.

막상 전 이 작가의 소설은 한 권도 안 읽어봤습니다 ㅎㅎㅎ
 
패러데이와 맥스웰 - 전자기 시대를 연, 물리학의 두 거장
낸시 포브스.배질 마혼 지음, 박찬.박술 옮김 / 반니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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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1학년 때는 그래도 할 만했다. syo의 경우, 2학년이 되자 여기가 고등학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통렬하게 깨달을 수 있었는데, 주로 <전자기학>이라는 놈으로부터 따가운 깨달음 공격이 들어왔다. 정말 짜증나는 다른 과목도 많았지만, 걔네들이 좀 빠르며 가끔은 묵직한 펀치였다면 <전자기학>은 하이킥이었다. 그게 왜 충격이었냐 하면, 순진하게도 syo는 1학년이 끝나도록 지가 권투를 배우러 온 줄 알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여긴 뭐지? 뚜닥뚜닥 컴퓨터나 두드리면 되는 곳인 줄 알았는데 이 미친 수식들은 도대체......야, 이거 어떻게 읽냐..... 어어, 뭐야. 왜 인테그랄 쟤네 뭔데 막 세 개씩 붙어 다니는 건데, 이거 반칙 아냐? 


학생들은 자신의 성적표를 초토화시켜 가정 내 분위기를 흉흉하게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전자기학>의 최대주주를 고소고발하기로 결정, 과연 어떤 놈이 그랬는지 수색하기 시작했다. 수사망이 좁혀짐에 따라 용의자는 둘로 압축이 되긴 했는데, 아뿔싸, 우리는 피고를 도저히 특정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패러데이를 지목했다. 패러데이가 발로 뛰어서 만든 걸 맥스웰은 수학적으로 정리 정돈 했을 뿐이야. 애초 일을 친 놈은 패러데이라고. 우린 패러데이를 조져야 돼. 그러자 맥스웰 파가 반론을 펼쳤다. 잠깐, 우리가 그들을 법정에 세우려는 것은 다 학점 때문이잖아. 맥스웰 아니었으면 전자기학이 학점을 매길 만한 학문 체계를 갖출 수 있었을까? 우리가 조져야 할 놈은 맥스웰이야. 방정식 이름을 봐 봐, 맥스웰 이큐에이션이잖아. 


패러데이가 개놈이다, 맥스웰이 잡놈이다, 난만한 토론이 오갔지만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공대생들은 울분을 삼킨 채, 결국 다음 의제인 모 여대와의 5:5 미팅에 관한 안건에 대한 토론을 시작했다. 이 지점에서, 아마 미팅 안건이 블랙홀처럼 갈등과 대립을 빨아들여 대동단결을 이루어 냈을 거라고 예측하신 비공대인 이웃들이 계신다면, 미드 <빅뱅이론>을 권해 본다. 우리는 여자 때문에 정말 아무 짝에도 쓸데 없는 학문적 고집을 포기하지 않는, 진성 크레이지 공대남이었으므로, 마무리되지 않은 결론이 모든 걸 망치고 말았다. 미팅의 주선자가 맥스웰 파였으므로, 5:5 미팅은 맥스웰 지지자 3인과 아무 생각 없던 1인, 그리고 패러데이를 지지했던 1인이 참여하는 것으로 결착이 난 것이다. 진짜 미팅이 필요했던 지질이들은 패러데이 지지자 쪽에 잔뜩 있었음에도...... 그 가운데, 외견상 미팅을 위해 지지를 철회한 배반자로 보였던 그 마지막 1인이, 토론장을 나오며 조용히 "그래도 나는 패러데이 때문에 미치고 돈다" 라고 혼잣말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혼잣말이 어떻게 기록에 남았느냐고 의혹을 제기하신다면, 해답은 간단하다. 그 1인이 바로 s...... 다른 이유 때문에 결국 그 미팅에는 안 나갔다고 전한다. 재밌었다고 그런다.


syo가 패러데이 지지자였던 것은, 그의 입지전적 행보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겠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노동자로 살아가며 한 땀 한 땀 자신의 꿈을 향해 불굴의 노력을 쌓아나갔던 패러데이. 반면, 대영지를 물려받은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교육과 문화 자본을 듬뿍 들이마시며 자라난 맥스웰. 수학을 모르는 실험의 천재 패러데이와, 앉은 자리에서 수식으로 모든 것을 만들어 낸 책상앞의 천재 맥스웰이라는 편향된 이미지의 대립은 그들의 출생과 성장 환경에서 그 싹이 보인다. 결국 syo는 20대 초반부터 벌써 빨갱이였던 것이다. 패러데이 만세!


사실 아는 사람들은 다 맥스웰 쪽의 우세를 말하긴 했지만, 학부생 입장에서는 쉽게 결론이 나는 싸움이 아니었다. 교수님, 패러데이하고 맥스웰하고 싸우면 누가 이겨요? 컨디션 좋은 놈이 이긴다네. 교수님, 패러데이하고 맥스웰 중에 누가 더 컨디션이 좋을까요? 전날 저녁 많이 먹고 일찍 잔 놈 컨디션이 더 좋다네. 교수님, 패러데이하고 맥스웰 중에 누가 전날 저녁을 많이...... 그러지 말고, 두 사람 평전을 읽어보는 게 어떤가? 물론 원서라네. 번역본은 없지. 교수님, 쉼없이 진도 나가시죠.


그때는 없었지만 지금은 있다. 도서관 서가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syo의 가슴은 이제야 묵은 싸움의 진정한 결말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결론은 맥스웰의 판정승인 듯. 그래도 저자들은 이런 구절을 팡팡 삽입하여 패러데이의 기를 살려주는 것에 조금도 인색함을 보이지 않는다.


이 이론은 10년 이상 지속되었던 엄청난 창의적 노력의 결과물이었으며, 그 영감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이클 패러데이의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패러데이가 <전기에 대한 실험적 연구>에 세심하게 기록해 놓은 발견과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맥스웰은 패러데이가 보았던 방식대로 세계를 볼 수 있었고, 패러데이의 비전과 강력한 뉴턴의 수학을 결합함으로써 물리적 실재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할 수 있었다. 수학의 강력한 힘을 통해 성취했다고 해도, 기적에 가까운 맥스웰의 직관 없이 수학만으로는 결코 불가능했을 결과였다. 이는 이론에 완벽함을 부여한 변위 전류라는 개념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니 이 이론은 맥스웰과 패러데이 모두의 것이다. (288)


사실, 평전이라는 것은 읽기가 쉬운 장르는 아니다. 철학자의 평전에는 그 철학자가 주창한 철학 지식이, 과학자의 평전에는 그가 만들고 증명한 이론이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겠다. 이 책 역시 전자기학, 하다 못해 일반 물리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펼쳐 들면 두 거장의 위대함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고, 그것은 곧 감동과 기쁨의 축소나 절제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전기라는 장르가 갖춘 무시할 수 없는 또다른 매력, 동기 부여와 의욕 고취 관점에서 보면 이 책 역시 쓸모를 충분히 다한다. 과학도 수학도 결국은 인간의 일이므로, 거장은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그들의 노력, 삶의 행로, 그리고 한계. 이런 것들은 분야의 울타리를 벗어나 모든 독자의 가슴을 때리는 파동이다. 우리가 가진 관심의 망에 포착되지 않는, 전혀 다른 인간들의 삶. 나와 하나도 닮은 게 없는 사람들의 삶과 내 삶이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는 소소한 사실이 묵직한 위로와 동력이 된다는 것. 미지의 이웃들과 함께 하는 따뜻한 삶을 위한 비슷함. 그런 것들이 평전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메타적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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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5 15: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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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5 1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12-25 15: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학관련 책을 읽으면 상당한 수식을 인정하고 읽고 있는데, syo님은 어느정도 비판적으로 읽으실 것 같아 부럽습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syo 2017-12-25 15:18   좋아요 1 | URL
저도 인정파입니다 ㅎㅎㅎㅎ 수식을 비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어요. 숭배하는 법을 배웠지요.
겨울호랑이님도 따뜻한 연말 되시기를^^

chaeg 2017-12-26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물리에 한참 푹 빠져있을 때가 생각나네요~^^;

syo 2017-12-26 06:19   좋아요 1 | URL
그런 것에 푹 빠질 수 있으시다니 고수시다....^^

2017-12-26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7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7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7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7 14: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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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7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7 15: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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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7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7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7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haeg 2017-12-28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은 공학도이시지 않으십니까~? 대단하십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나요...)

syo 2017-12-28 23:26   좋아요 0 | URL
공학도는 아니고, 공학도˝였던˝ 백수입니다 ㅎㅎㅎ

깐도리 2017-12-30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리학을 물리도록 좋아했던 고딩 친구가 생각 나네요...
고딩 때 대학 물리학 책을 독학했던 아이였는데, 수능을 망처서...

syo 2017-12-30 15:50   좋아요 0 | URL
너무 슬픈 이야기네요......ㅠ

겨울호랑이 2017-12-31 09: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syo님께서는 진정한 2017년 다독가이십니다. 새해에도 유쾌한 책소개와 일상 페이퍼 기대해 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yo 2017-12-31 09:23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한테 많이 배운 2017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18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12-30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적어도 대학 내내 사기 당하신 것 아니잖아요. 전 큰 사기 당해 무척 억울하단 느낌입니다. ㅠㅠ

syo 2018-12-30 20:3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제가 뜻밖의 전공승리를 거두었군요. 그렇네요. 사기라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ㅎㅎ
 
어휘력이 교양이다 - 말 한마디로 당신의 평가가 바뀐다
사이토 다카시 지음, 장은주 옮김 / 한빛비즈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1


사이토 다카시는 syo에게 훌륭한 스승이다. syo는 그를 통해 인간관계에 관해 너무도 많은 지혜를 배웠다.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만 적어본다면,


법칙 1. 애정 총량 보존의 법칙 : 세상엔 뭘 해도 이쁜 사람이 있는만큼 뭘 해도 별로인 사람도 있더라.

법칙 2. 애정 불변의 법칙 : 비 올 때 별로인 사람은 대체로 비 안 올 때도 별로더라.

법칙 3. 애정 관성의 법칙 : 한 번 별로인 사람이 뭔가 하면 그게 또 그렇게 별로더라.

법칙 4. 애정 가속도의 법칙 : 한 번 별로인 사람은 점점 더 별로더라.

원리 1. 애정량-에너지 등가의 원리 : <E=mc^2> 즉, 인간은 누군가를 까겠다고 맘만 먹으면 그저 콧구멍이 두 개라는 이유만으로도 막대한 에너지를 동원해 깔 수 있더라.

원리 2. 방향성의 원리 : 한 번 까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까고 까고 또 까다가 멈추지 못하고 계속 까더라


과연 사이토 다카시가 syo에게 무슨 짓을 했길래 이렇게까지 하는지, 오늘날 이 시점에서는 추적이 불가능하다(법칙 1, 2). 왜 syo는 사이토 다카시의 책만 만나면 투견 챔피언마냥 어금니를 드러내고 침을 질질 흘리는지 도저히 모르겠으나(법칙 3, 4), 그래도 법칙은 법칙, syo가 무슨 용 빼는 재주 있어서 그의 책을 그냥 스쳐지나가겠는가. 어차피 내가 까도 그가 볼 것이 아니므로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가리, 그렇게 이를 앙다물고 버텼건만은. 나중에 올리려고 한줄평을 메모하기 시작했는데,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마냥 한 줄이 두 줄이 되고 두 줄이 네 줄이 되고 네 줄이 여덟 줄이 되는(원리 2) 신묘한 체험을 하고야 말았는지라, 이럴 바에는 그냥 리뷰를 따로 쓰자 해서 이렇게 판이 커졌다.



2


책을 권하고, 글쓰기를 권하고, 철학을 권하고, 이제 어휘력까지 권하는 훌륭한 권학자 사이토 다카시의 책이 syo에게 시종일관 별로인 이유는 일단 이런 곳에 있다.


지적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즐거운 트레이닝을 하고 있으면 어느 샌가 어휘력이 단련된다. 스스로도 만족하는 대화가 가능해져 부하 직원이나 상사, 거래처로부터 인정받게 된다. (7)


한편, 200색의 물감을 사용하는 사람은 다양한 표현을 구사하여 상대를 움직일 수 있다. 부하 직원에게 지시를 내릴 때도 자신을 어필할 때도, 업무상 상담도, 사생활에서의 잡담도, 200색의 물감을 갖고 표현할 수 있다. 당연히 당신이 받는 평가도 크게 달라진다. (8)


비즈니스 현장에서 어휘가 부족하면 첫인상이 나빠져 '이 사람을 더 알고 싶다. 또 만나고 싶다, 함께 일하고 싶다'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게 된다. 또한 부하 직원이나 후배로부터는 말에 깊이가 없다고 무시 당할 가능성도 있다. 어휘가 부족하면 어른으로서, 비즈니스맨으로서, 스스로 큰 핸디캡을 짊어지게 되는 셈이다. (19 20)


학생들에게도 좋은 소식이 있다. 세 가지 포인트는 취업 면접 자리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52)


책 날개의 작가 소개에 따르면 이 사람이 일본 최고의 교육학자이자 'CEO들의 멘토'로 인정받고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렇다는 느낌이다. 어휘력이 늘면 일어날 수 있는 '유익한' 상황들을 묘사한 대목들이 죄다 무슨 회사에서, 클라이언트를 만나서, 거래 상대방을 만나서, 이런 식인데, 또 막상 읽어보면 정말 이 사람 회사 나가본 지 백만 년은 됐겠다 싶을 정도로 실체감이 떨어진다. 그러니까, 제목에 붙인 단어 '교양'을 소비하는 태도가 지극히 자본주의적이라는 것이다. 빨갱이 syo는 CEO들의 멘토라는 칭호가 붙는 사람들을 믿지 않고, 그런 칭호를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믿지 않는다. 




3


어휘력에 격차가 있는 사람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은 원만히 흘러가지 않게 된다. (28)


최근 어휘력의 저하는 학생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대기업 간부로부터 상담 요청을 받은 적도 많다.

"요즘 이삼십 대 부하 직원은 어휘가 빈약해서 제대로 기획을 못해요."

"열심인 건 알겠는데, 말을 하면 도통 통하지가 않아요." (29)


어휘가 빈약한 사람들끼리도 즐거운 대화는 가능하다. 난해한 말도 쉬운 말로 바꾸면 된다. 하지만 말의 배경에 있는 스토리를 공유하면 의사소통의 농도가 확연히 높아진다. 그것이 또한 즐겁다. 젊은 사람이 친구끼리만 쓰는 말로 "이거 꿀잼이겠다" 와, "와 , 핵꿀잼", "그러네, 꿀잼허니잼!"이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범이 된 듯 동지의식마저 싹트게 된다. 우리들의 선배 중에는 놀랄 만큼 중국 역사에 관한 교양을 갖춘 분이 많다. 방심한 순간 "거래처 담당과는 수어지교水魚之交해야만 한다."는 말을 해올지도 모른다. (104 105)


이런 대목은 정말 한심하다 못해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놀랄 만큼 중국 역사에 관한 교양을 갖춘 분'이 쓴다는 말이 꼴랑 '수어지교'라는 대목은, 피아식별 없이 그냥 수류탄을 까서 던져 놓은 꼴이다. '우리들의 선배' 세대에서는 '수어지교'만 써도 놀랄만한 교양을 갖춘 인물로 대접받을 수 있나 보다. 물론 이런 자잘한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니고,


저자는 자기 세대가 쓰는 용어를 모르는 젊은이를 두고 '어휘력의 저하'라는 일방적 진단을 내린다. 그러나 그것은 '어휘'가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다. 그들도 나일리지 쌓인 티 내지 말고 낄끼빠빠하라는 말 앞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신조어를 '어휘'로 인정하지 않는다. '공범이 된 듯 동지의식마저 싹트게 된다'는 대목에서는 신조어를 범죄처럼 취급하고, 그 말들을 유통하는 젊은 사람들을 범죄자로 여기고 있음이 엿보인다.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그냥 그렇다고 단정한다. 설령 이런 '유행어'들이 언어 생태계를 교란하는 면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범죄취급을 받고 사용자들이 자동으로 '어휘가 빈약한 사람' 대접을 받는 일이 온당한가.


결국 이것은 '어휘'를 인증할 수 있는 권력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일종의 투쟁이다. 우리는 종종 순진하게도 특정한 말을 많은 언중이 사용하면 바로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여기지만, 실제로 '어휘'의 체계가 갱신되는 속도는 생활세계의 변화를 신속하게 따라잡지 못한다. '짜장면'은 표준어가 되기 아주 오래 전부터 널리 쓰였지만, 된소리 현상이 언어 사용자의 정신을 건드린다고 하여 '자장면'을 지지하던 언어권력자들의 저지 탓에 한참 나중에야 가까스로 표준어의 자리에 올랐다. 특정한 어휘를 사용하는 언중의 투쟁력과 그에 반대하는 이들의 저항력 사이에서 길항하며 언어는 진화한다. 경제권력을 쥔 이들이 문화권력을 쥐고 있고, 문화권력을 쥔 이들이 언어권력을 가지고 있다. 인용문에서 드러나는 사이토 다카시의 면모는 그가 말하는 '교양'의 초점이 어느 계층의 입맛에 맞게 조율되어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와, 과연 'CEO의 멘토', 명불허전. 사이토 다카시의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런 관점이 그의 거의 모든 책에 은근히 녹아들어 있음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 사람 입에서 나오는 '교양'이 하나의 계층을 부지불식간에 다른 계층의 문화식민지로 만드는 전략으로 전용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책을 읽어나가기를 권합니다. 


물론 순수하게 언어의 오염과 수준 하락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고, 그런 걱정이 온당하다고 syo도 생각한다. 실제로 거의 경쟁적으로 일어나다시피하는 조어활동이 우리말을 급하게 변질시키는 측면이 있다. 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경계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그러나 조정은 여러 언어 계층 사이의 이해와 인정, 토론을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생각해보지도 않고 단지 상대방 계층이 사용한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변질이나 정체로 몰아붙이는 일은 폭력이다. 


만약 '꿀잼허니잼'과 '수어지교' 중 어느 한 쪽만 고르고 나머지 하나를 사장시켜야 한다면 syo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꿀잼허니잼'을 살리고 싶다. '잼'이 '재미'라는 사실만 알고 읽으면, 이 단어는 언어유희를 기본 장착한데다, 꿀, 허니, 잼 같은 달콤한 미각 단어들이 의미 속으로 녹아들어 재미를 공감각적으로 느끼게 해 주는 기가 막힌 단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단어의 생김새나 만듦새가 모난 데가 없진 않으나 그런 단점을 뛰어넘는 가치가 있다고 보아서다. 반면 '수어지교'라는 말 속에서 물은 고기에 비해 일방적으로 불리하다. 고기는 물 없이 못 살지만, 물은 고기가 있든 없든 상관없기 때문이겠다. 유비가 실제로 저 말을 했을 때, 본인이 고기고 제갈량이 물임을 명백히 밝혔다. 과연 제갈량은 유비와 그의 아들에게 열심히 착취당하다 딱히 뭐 하나 이뤄놓은 것 없이 오장원에서 쓸쓸히 별이 되었다. 결국 이 말은 호혜적인 의미에서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아름다운 관계를 드러내기보다, 한 쪽이 일방적으로 의지하거나 이용 또는 기생하는 양상을 드러내는 어휘로 읽어낼 여지도 있는 것이다.


'말의 배경에 있는 스토리를 공유하면 의사소통의 농도가 확연이 높아진다'라니. 진짜 '교양'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다면, 그냥 있는 고사성어를 외워서 갖다 쓰는 방식으로 공유하기보다는 좀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정말 거래처 담당을 물로 보고 자신은 고기가 되어 열심히 빨아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교양있게' 고백한 것인데 '어휘가 빈약한' syo가 몰라뵈었거나. 물론, '꿀잼허니잼'은 아마 번역 과정에서 적당히 비슷한 용어를 가져온 것이겠으니 전적으로 사이토 다카시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4


사이토 다카시의 새 책이 기존에 내놓은 책에서 50% 정도를 자가복제하여 큰 품 들이지 않고 만들어지듯이, 그를 향한 syo의 비판 역시 품이 들지 않기 때문에, 이런 짓은 밤새도록 할 수 있다. 




5


밤 샐까봐 관둔다. 이제 이런 관계를 좀 청산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이렇게 꼬박꼬박 까려면, 꼬박꼬박 읽어야 한다. 유시민 작가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안티는 진짜 내 책을 열심히 읽은 독자라고. syo는 인생의 멘토 유시민 선생님의 말씀에 토를 다는 일이 거의 없지만, 이번만큼은 예외겠다. 진짜 열심히 읽지는 않았다. 유시민 선생님을 까려면 그의 책을 열심히 읽어야 했겠으나, 사이토 다카시의 안티가 되는데는 열심이 불필요하다. 그냥 보면 보인다. 우린 그런 관계다. 척 하면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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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7 2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7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7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7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7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2-07 2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양반은 어휘력이 교양이며 소통의 근간이라고 하지만 대중소셜계의 최대 거봉이신 조르조 심농은 소통을 위해 작가가 사용하는 단어의 수를 최대한 줄였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6000단어 안에서 소설을 쓰려고 했던 분이셨죠. 쉬운 언어로 소설을 쓰겠다는 야심.. 그리고 킹 옹께서도 어려운 언어를 버리고 대도록이면 중2 수준이면 모두 알아먹을 수 있는 단어로 글을 써써 대박난 분이죠. 저 양반의 논리라면 심능과 킹은 모자란 사람이죠.. 다양한 어휘가 아니라 정확한 단어를 쓰는 게 중요한 거죠.. 멍청한 새끼.... 같으느리구.

syo 2017-12-07 20:34   좋아요 0 | URL
교양있는 단어랍시고 예시로 내 놓은 것들이 거진 다 사서삼경이나 사기 같은 곳에서 나오는 고사성어예요. 결국은 자기가 맨날 하던 ‘책 읽어라‘라는 말을 새로운 버전으로 한 것 뿐이예요. 정말 책 파는 방식의 신기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2-07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 책소개 글 보니 한국어는 어휘가 매우 풍부한 언어(단어가 44만 개 ) 라며 자랑하던데
공교롭게도 욕의 종류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도 한국어입니다. 사실 일본만 해도 욕 표현이 몇 개 없어요.
빠가야로.. 뭐 이 정도 몇 개... 한국어는 정말 어마어마하죠.. 욕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악랄하게 착취했다는 증거입니다.

syo 2017-12-07 20:41   좋아요 0 | URL
언제 꼭 풍부한 우리 욕에 관한 신랄한 글을 써 주세요.
어쩐지 그건 이 알라딘 바닥에서 곰발님이 독보적으로 하실 수 있는 영역인 것 같은 강한 예감이.....

yamoo 2017-12-07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리뷰가 알라딘 서재에 많아야 하는데 말이죠. 사이토 다카시도 그렇고 이기주의 책도 그렇고 뭔 사람들이 다 좋다구 하는데, 도무지 이 찬사들이 거시기 해서 참을수 없다는...아닌 거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까줘야 하는데, 알라딘 서재에는 그런 분들이 많지 않아 좀 안타깝다는...

그런 면에서 쑈 님의 이 리뷰는 사이다라는!^^

시간이 되시면 이기주의 책들도 좀 까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런 책이 베스트셀러로 회자되는 게 진짜 열받아요!

syo 2017-12-07 21:40   좋아요 0 | URL
이기주는 많은 사람들이 읽는 만큼 곰발님을 비롯해 다른 분들이 잘 까주셨어요. 반면 사이토 다카시는 죽어라 책을 내는데 매번 읽는 사람만 읽는 꼴이라, 누가 시킨 바 없지만 알라딘에서는 syo가 자체적으로 맡아 까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기주의 책이라고 쓰신 걸 보니 어쩐지 이기주 씨 초등학교 때 별명이 선명하게 짐작되네요....

sprenown 2017-12-07 2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기 알라딘에서도 리뷰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좋아요‘의 품앗이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내글에 대해 ‘좋아요‘ 하니까 별로 내키지도 않는데, 내 글 ‘좋아요‘ 해 준 친구니까 ‘좋아요‘ 해주는 거.. 과연 이게 계승해야할 미풍양속인지 싶습니다. 애정욕구에 불과한 게 아닐까요? 최소한 리뷰를 꼼꼼히 끝까지 읽고, 비판할 것은 과감히 비판해야 북플이 더 활성화가 될 것 같습니다!

syo 2017-12-07 21:44   좋아요 0 | URL
저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좋아요‘ 누르는 일이 있어서 찔리네요...

좋아요 품앗이라는 표현이 신랄하고 좋습니다. 말씀도 정론이구요. syo도 북플의 활성화를 위해 앞으로 꼼꼼히 끝까지 읽고 행동하도록 하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12-08 0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 말씀처럼 많은 어휘를 사용해서 대접받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보다, 나와 다른 이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한 그릇으로 삼아야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syo 2017-12-08 00:27   좋아요 1 | URL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저는 그저 사이토 다카시 까기 바빠서 결국 어떤 의미있는 결론을 내지를 못했네요.... 반쪽짜리 글이로군요.

프리즘메이커 2017-12-08 0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애들 책은 중간이 없는 거 같아요. 퀄리티가 대박아니면 쪽박..

syo 2017-12-08 07:33   좋아요 0 | URL
세상 어디에나 책팔이는 있다....

cyrus 2017-12-08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제자는 스승의 단점을 알고 거부해야 합니다. 그러면 스승을 뛰어넘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저도 독서의 중요성을 알려준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비판적으로 보려고 합니다. 그가 문학을 저평가한 것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꼰대 느낌이 나요.

syo 2017-12-08 12:55   좋아요 0 | URL
전 저냥반을 스승으로 안 쳐서 뛰어넘고 뭐고 할 필요가 없지만, cyrus님은 얼른 다치바나 다카시를 뛰어넘으시기를. 그 양반은 문학을 저평가한 것보다 지독한 성차별주의자라는 것이 더 문제지요.

2017-12-08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히노 에이타로 지음, 이소담 옮김, 양경수 그림 / 오우아 / 2016


테헤란로에 면한 고시원 작은 방에서 살던 시절, 새벽 2시 부엌에 물을 마시러 들어갔다가 창문 너머로 길 건너편 거대한 빌딩 아직도 불 켜져 있는 사무실들을 마주한 채 꽤 긴 시간 멍하니 섰던 기억이 있다. 아, 나도 야근하고 싶다. 아무리 기다려도 불이 꺼지지 않는 밝은 방들을 바라보며 복잡한 마음으로 몇 가지 짧은 생각이나 조각난 감정들만 머릿속에서 애꿎게 켰다 껐다 반복하고 있었다. 어느 일하는 사람의 공간이 새벽 2시까지 밝듯이, 어느 일하지 않는 사람의 작은 방에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차이라면, 누군가는 그 빛을 떳떳하게 세상 바깥으로 쏟아내고 있었지만, 누군가의 방에는 창문이 없어 그 연약한 빛조차 안으로만 갈무리하고 있었다는 것 정도였다. 밖으로 새어나가는 빛이 앞으로도 결코 꺼지지 않을 것처럼, 안으로 고여 눅눅한 syo의 빛 역시, 아무리 오래 오래 씹어 삼켜도 결코 꺼질 일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직업이 있는 사람들과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공간에서 매일 새벽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지만, 그 빛을 아무리 그러모아도 세상은 한 뼘도 밝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빛이 셀수록, 밤은 비웃듯 더욱 깊었다.


지금도 그때와 같아 syo는 여전히 한 움큼도 가진 게 없이 좁은 방에서 새벽을 태우는 처지지만, 기나긴 이 백수 생활 가운데서도 놓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가짐 하나는 있다. 노동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되, 야근 당하는 그들의 불만에 배 부른 소리 하지 말라며 혀를 차지 않는 것. 배가 고파도, 자본이 나를 쳐다보기도 전에 알아서 훌훌 벗고 엎드려 고개를 조아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윈주의 좌파

피터 싱어 지음, 최정규 옮김 / 이음 / 2011


자연스러운 것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른바 '자연주의의 오류'는 웬만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초저녁에 타파되어서 이제 자연스러운 섭리 운운하는 말은 syo의 귀에는 "제가 이렇게나 무지몽매한 인간입니다. 아시겠어요?" 하는 말로 자동번역되어 들리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syo는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그 '이것'이 못마땅하거나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뿐, 인간의 본성이 있다는 주장 자체에 대해 조금의 거부감도 갖고 있지 않다. 빨갱이 syo에게 스스로 올바른 행동의 방향을 정하고 그 길을 따라가는 데 있어서 인간의 본성은 중요하면서도 중요하지 않다. 제도와 문화가 만들어지고 운용되는 과정에서 인간 본성을 무시한 데 따른 부작용은 경계해야겠으나, 문화와 제도가 도착해야 할 올바른 목적지를 설정하는 데 인간의 본성이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가야할 자리가 어디인지는 그렇게 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설령 여성의 본성이 남성에 비해 육아나 양육에 적합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주장이 사실이라고 치더라도, 그것은 그냥 사실일 뿐이다. 양육과 육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다. 사실이 아무리 축적되어도, 그것이 가치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데는 그저 '효율적인'이나 '자연적인' 따위의 허접한 형용사로 범벅된 것 이상의 근거가 필요하다. 양육과 육아에 관한 본성이 어찌되었건, 그것은 곧바로 여성의 사회진출 비중을 남성에 비해 낮은 상태로 유지하는 일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 행여 그 사실을 가지고 현재의 이 불균형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해도, 이 불균형이 올바르거나 타파될 필요가 없다고 설득할 수는 없다. 원래 그래. 본성이니까 그래. 세상에 그만큼 허망한 말은 없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인간 본성의 정의가 변화되어 온 긴긴 역사를 보자. 노동이 노예의 본성이라고 말한 사람은 25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최고의 철학자지만 오늘 우리는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최소한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안다.) 오늘의 우리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합의한 물건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후에 뒤집히지 않으리라는 근거가 어디에 있다고 확신에 차서 원래와 본성을 말할 수 있는지. 귀납적 학문은 언제나 위태롭다. 굳기로 따지면 세상 단단할 것처럼 보이는 물리학도 왕왕 판이 뒤집어진다. 진화심리학은 반짝반짝하기는 한데, 아직 예금 보유량이 많지 않은 자그마한 신생 은행처럼 보인다. 가치 판단의 영역에 자금을 대출해주기보다, 오히려 다양한 영역으로부터 자본을 확보할 필요가 있지 않나.


'사실'과 '가치'를 구분하는 것. 정확히 말하면 '사실 문제'와 '가치 문제'를 구분하는 것은 이제 어디서나 기본적인 자세다.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syo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게 있다면 그걸 개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가치 기준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들을 다 잘라내는 일은 더욱 말도 안 된다. 결국은 0 초과 100 미만의 싸움이다. 그리고 그 싸움은 자체가 가치투쟁이고 관점투쟁이며 헤게모니의 다툼일 뿐, 어느 한쪽이 객관적인 진리를 드러낼 수 있는 다툼이 아닐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비유에서,


조각공예가에게 나무 한 토막을 건네주고 그것으로 나무그릇을 하나 만들어달라고 부탁해 보라. 그가 나무토막을 보지도 않고 이미 자신의 머릿속에 그려진 디자인에 따라 나무토막을 깎고 다듬기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작업하게 될 재료를 면밀히 검토하고 나서, 재료의 나뭇결과 재질에 걸맞도록 디자인을 수정한다. 정치 사상가들이나 혁명가들 혹은 이들을 추종하는 사회개혁가들은 너무 쉽게 이상 사회의 상을 만들어내는 반면, 정작 그렇게 만들어질 이상 사회에서 일하고 살아나가며, 또 그 이상 사회를 향한 계획을 추진해나갈 주체인 인간에 대해서는 알고자 하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는다. (69)


피터 싱어의 지적은 정론이다. 그가 비판할만큼 정치 사상가들이나 혁명가들이 인간의 본성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안이하게 생각했던 측면이 있다. 0과 100은 옳지 않다. 그러나 저 비유 자체가 결국 이상 사회의 상을 만들 때 인간의 본성을 '어느 정도' 고려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점 투쟁이 될 수 밖에 없음을 드러내고 있다. 조각공예가가 나무그릇을 만들 때, 그는 나뭇결과 재질을 면밀히 검토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무를 구성하고 있는 분자들이나 탄소 원자들의 결합 구조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논점은 인간의 본성을 '나뭇결과 재질'로 보느냐 '분자나 탄소 원자'로 보느냐, 즉 본성의 위치가 어디이며, 어느 정도로 고려해야 하느냐 하는 정량적인, 그러나 동시에 정성적인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데 있는 게 아닐까.


이렇게 쓰고 나니까 마치 피터 싱어가 무슨 망발이라도 한 것처럼 읽히지만, 전혀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이 책은 syo에게 상당히 좋은 책이었고, 피터 싱어는 이 책에서 어떤 기록할만한 망발도 하지 않았으며, 단지 소소한 부분에서 고개를 갸웃했을 뿐, 전체적으로 열심히 끄덕거리며 독서를 마쳤다. 요약을 덧붙이지 않으면 syo의 똥글이 이 책에 대한 오해를 만들까봐, 피터 싱어가 주장하는 다윈주의 좌파의 강령을 덧붙인다.


다윈주의 좌파는 

- 인간의 본성을 부정해서도, 인간의 본성이 원래 선한 것이라고 주장해서도,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 무한히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해서도 안 된다.

- 정치적 혁명에 의해서든 사회적 변화에 의해서든 혹은 보다 나은 교육에 의해서든, 인간들 사이의 모든 갈등과 분쟁이 언젠가는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 모든 불평등이 차별, 편견, 억압 혹은 사회적 조건들로부터만 기인한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불평등의 일부는 이들로부터 유래했겠지만 모든 경우에 그럴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다윈주의 좌파는

-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정책을 제시할 때에는 그 정책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증거들을 바탕으로 제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어떤 것이 '자연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옳다'는 식의 추론을 거부해야 한다.

- 어떤 사회적/경제적 시스템 아래에서 살든지,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를 상승시키고, 권력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과 그들의 친족들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예상해야 한다.

- 경쟁보다는 협조를 촉진하는 사회구조를 만들고, 경쟁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목표를 향해 작동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 인간이 아닌 동물들을 착취해도 된다는 새악은 사람과 동물 간의 간극을 과장하는 다윈주의 이전의 유산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동물들의 도덕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라는 인간 중심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

- 약자, 빈자, 그리고 억압받는 자의 편에 섬으로써 좌파가 가졌던 전통적 가치를 옹호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사회적/경제적 변화가 이들에게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곰곰이 연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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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6 23: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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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7 07: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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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7 15: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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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7 15: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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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7 15: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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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8 16: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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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0-01-24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는 2017년...

syo 2020-01-24 11:3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이때사서 아직 안 읽음 ㅋㅋㅋㅋ

공쟝쟝 2020-01-24 11:45   좋아요 0 | URL
그 글을 이제서 읽고 댓글다는 나 ㅋㅋㅋㅋ 근데 이글 슬퍼요 ㅠㅠㅠㅠㅠㅠㅠ

syo 2020-01-24 12:03   좋아요 1 | URL
슬픔이여 안녕. 백수의 슬픔은 끝났고 이제는 노동자의 슬픔대열에 동참합니다....

공쟝쟝 2020-01-24 12:12   좋아요 0 | URL
백수보다는 좀 덜 슬퍼요! 월급이라는 기쁨! (찰나의) 잘 하실 거잖아요, 게다가 고용주가 국가라니..(부럽다)
 




책인시공 / 정수복 지음 / 문학동네 / 2013

서민 독서 / 서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7


syo는 책책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책 있어 책', '책 읽은 책' 그리고 '책 읽어 책'. 대체로 '책 있어 책'은 인문서로 분류되는 분위기고, '책 읽은 책'은 에세이 쪽에 밀집해 있다. 그러나 '책 읽어 책'은 자기계발서, 잘 봐줘도 '인문학으로자기계발한번해보자서' 혹은 '넌내가에세인줄알았을거닼ㅋ실은자기계발서지롱' 정도로 대접 받아 종종 서럽다.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 책을 읽는 모든 이의 마음에 감동을, 가슴에 의욕을, 머릿속에 읽을 책 리스트를 집어넣어 마침내 손에 다른 책을 쥐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는 '책 읽어 책'은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독서의욕 고취는 '책 있어 책'이나 '책 읽은 책' 입장에선 그저 부차적 목표이거나 부수적 효과일 뿐이지만, '책 읽어 책'에게는 존재 의미이기 때문에 가슴이 아픈 셈이다. 같은 책을 읽었는데 누구는 무릎을 탁 치고, 누구는 빡치면 저자 입장에서는 그게 또 골치 아픈 일이겠다. 그러나, 그것은 '책 읽어 책' 뿐만이 아니라 모든 책이, 더 넓게 보면 모든 예술이 안고 가야하는 숙명 아닐까. 그래서 혹시나 이 책들이 당신의 마음에 뜨거운 불을 지피지 못하고 미지근한 커피처럼 후루룩 빨려 사라지고 말았대도, 결코 책의 실패가 아님을 말하고 싶다.


이런 절절한 위안의 말로 시작한 것은, 이 두 책이 최적 작용하는 독자층이 심히 다를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syo가 봤을 때,『책인시공』은 책을 많이 읽지 않는 독자들에게 살갗 레벨의 의욕을 때려넣지 못하는 뜬구름처럼 느껴질 수 있고,『서민 독서』는 책을 좀 읽는 독자들에게 하나마나한, 혹은 뭐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자잘한 데가 있다. 두 책을 읽고 양쪽 모두에서 독서욕을 길어 올리셨다면, 당신의 감수성은 폭포, 포용력은 바다급입니다. syo는 어땠을까.『책인시공』을 읽고는 음, 이 책은 나보다 좀 더 많이 읽은 사람들이 좋아하겠구먼, 했고, 『서민 독서』를 읽고는 음, 이 책은 나보다 좀 더 적게 읽은 사람들이 좋아하겠구먼, 했다. 어휴, 또 시작이다, 신이시여, 과연 저는 어디로 가야합니까.....



임마, 여기로


아니면 여기로 가면 되잖아



좀 다른 이야기지만,『책인시공』을 읽고 정수복 선생님이 고고함은 넘어섰고 고루함에는 아직 닿지 않은 어디쯤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올곧고 꼬장꼬장한 선생님 느낌. 그리고 어쩐지 가슴 속에 불이 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뜨지 못하는 미흡한 것들에 대한 분노. 물론 그런 표현을 쓰시진 않았고 그냥 syo가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오해일 확률이 높지만, 어쨌든 syo에게는 별로 좋은 느낌의 책은 아니었다. 어려운 책도 아니었는데, 그저 아름다우나 높은 산이라 길이 잘 나 있지만 오를 맘이 들지 않았다고 해 두자. 그런데, 며칠 전 읽은 다른 책에서 정수복 선생님의 가슴 속에 들끓는 불길의 연료 배관이 어디에 닿아 있는가를 넌지시 짐작할 수 있었다. 몇 군데 보자면, 


여기서


임지현 : 직업적인 사회학자들 사이에서 그런건지, 아니면 일반 지성인들 사이에서의 영향력인지는 따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수복 :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떠드는데, 미국에서는 바우만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별로 이야기하지 않거든요. 독일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우리나라에 번역된 바우만의 글들이 한국적인 적합성이 얼마나 있을까요? 사실은 한국에서 그의 책이 굉장히 오해되서 읽히고 있거든요.


정일준 : 오해라기보다는 수용하는 맥락이 다른 것 같습니다. (이하생략)


그러니까,『지그문트 바우만을 읽는 시간』이라는 책을 만들려고 대담하는 자리에서, 도대체 우리가 바우만을 왜 읽어야 되냐, 외국에서도 별론데, 우리랑 맞지도 않은데, 심지어 똑바로 읽는 놈들도 별로 없는데, 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호연지기가 드높으시다. 아, 그럴 수 있지. 바우만은 무조건 빨아야 되나? 그런데, 그 뒤에,


정일준 : 지금은 지구화로 인해 외국 것들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한국 것이 외부로 나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고려대도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많습니다만, 최근에는 외국으로 나가는 학생보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학생이 더 많습니다. 학부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교환학생을 제외하고 한국으로 완전히 유학오는 학생이 5천 명이 넘습니다. 유럽 여러 국가들과 미국, 캐나다에서도 오고요. .... (중략)


임지현 : 아무래도 한류 영향이 없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수복 : 한국에 대한 진지한 관심보다는 K-POP이나 한국영화 등 대중문화에 심취해서 유학 오는 학생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K-POP이나 한국영화와 같은 대중문화에 심취해서 오는 것은 한국에 '진지한' 관심이 있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건데, 아이고, 선생님..... 관심이 진지한지 아닌지가 장르나 학제에 따라 선험적으로 결정이 되어 있는 문제입니까..... 세상에 삘 받은 김에 타국에 가서 4년 대학생활 하고 와야지, 하고 룰루랄라 오는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있다고 치더라도, 그게 장르 탓인가요. 한국 정치/역사/철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어느 날 김치 안주로 참이슬 후레시 한 잔 걸치며 유투브로 판소리 다섯 마당 듣다가 삘 받은 김에 원서 내고 한국 대학 사회학과에 입학하면, 걘 진지한 놈인가요, 안 진지한 놈인가요.


임지현 : ....(중략).... 폴란드인들의 공범성 혹은 방관자적 지위를 논한 미워시의 시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 쓴 글을 보고 이 사람 글을 참 독특하게 쓴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바우만이었던 것입니다. 1987년에 쓴 글이니까 그때만 해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거든요. 물론 요즘 한국에서 그의 인기는 대단합니다.


정수복 : 그 인기에 깊은 뜻이 들어가 있는 것인지는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폴란드와 한국 사이에 어떤 정서가 통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임지현 : 바우만 글의 행간 속에 어떤 코드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수복 : 그런 정도까지 한국의 번역자들이 번역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쯤 오면, 정수복 선생님은 세상 모든 것이 미덥지 않은 분 같다는 느낌도 받는다. 물론 전부 다 지적할 수 있는 문제고, 정말 syo 같은 미미한 것 눈에 포착되지 않는 구멍들이 여기저기 깔려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모두 다 정론이지만, 그래도 이러면 너무 답이 없는 것 같잖아. 독자도 문제, 학생도 문제, 바우만도 문제, 번역자도 문제, 인용하지는 않겠지만 뒷쪽에서는 우리 역사학자와 사회학자들도 문제라고 지적하신다. 가뜩이나 갈 길이 구만 리 같은데, 구십만 리를 만들어 놓으시니 맞는 말씀이건 뭐건 고개 돌리고 싶은 삐뚤어진 남자 syo. 그러니까,『책인시공』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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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17-11-19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수복 선생님의 의견을 그렇게 볼수도 있겠네요

syo 2017-11-20 01:24   좋아요 0 | URL
답답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cyrus 2017-11-20 15: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자든 서평가든 책과 작가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으면 지적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책과 작가의 좋은 점만 보는 시선에 익숙하면,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어요. 물론, 문제점을 밝힌 의견도 비판 대상이 되어야 하고, 잘못되면 의견을 수정하거나 철회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