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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력이 교양이다 - 말 한마디로 당신의 평가가 바뀐다
사이토 다카시 지음, 장은주 옮김 / 한빛비즈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1
사이토 다카시는 syo에게 훌륭한 스승이다. syo는 그를 통해 인간관계에 관해 너무도 많은 지혜를 배웠다.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만 적어본다면,
법칙 1. 애정 총량 보존의 법칙 : 세상엔 뭘 해도 이쁜 사람이 있는만큼 뭘 해도 별로인 사람도 있더라.
법칙 2. 애정 불변의 법칙 : 비 올 때 별로인 사람은 대체로 비 안 올 때도 별로더라.
법칙 3. 애정 관성의 법칙 : 한 번 별로인 사람이 뭔가 하면 그게 또 그렇게 별로더라.
법칙 4. 애정 가속도의 법칙 : 한 번 별로인 사람은 점점 더 별로더라.
원리 1. 애정량-에너지 등가의 원리 : <E=mc^2> 즉, 인간은 누군가를 까겠다고 맘만 먹으면 그저 콧구멍이 두 개라는 이유만으로도 막대한 에너지를 동원해 깔 수 있더라.
원리 2. 방향성의 원리 : 한 번 까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까고 까고 또 까다가 멈추지 못하고 계속 까더라
과연 사이토 다카시가 syo에게 무슨 짓을 했길래 이렇게까지 하는지, 오늘날 이 시점에서는 추적이 불가능하다(법칙 1, 2). 왜 syo는 사이토 다카시의 책만 만나면 투견 챔피언마냥 어금니를 드러내고 침을 질질 흘리는지 도저히 모르겠으나(법칙 3, 4), 그래도 법칙은 법칙, syo가 무슨 용 빼는 재주 있어서 그의 책을 그냥 스쳐지나가겠는가. 어차피 내가 까도 그가 볼 것이 아니므로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가리, 그렇게 이를 앙다물고 버텼건만은. 나중에 올리려고 한줄평을 메모하기 시작했는데,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마냥 한 줄이 두 줄이 되고 두 줄이 네 줄이 되고 네 줄이 여덟 줄이 되는(원리 2) 신묘한 체험을 하고야 말았는지라, 이럴 바에는 그냥 리뷰를 따로 쓰자 해서 이렇게 판이 커졌다.
2
책을 권하고, 글쓰기를 권하고, 철학을 권하고, 이제 어휘력까지 권하는 훌륭한 권학자 사이토 다카시의 책이 syo에게 시종일관 별로인 이유는 일단 이런 곳에 있다.
지적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즐거운 트레이닝을 하고 있으면 어느 샌가 어휘력이 단련된다. 스스로도 만족하는 대화가 가능해져 부하 직원이나 상사, 거래처로부터 인정받게 된다. (7)
한편, 200색의 물감을 사용하는 사람은 다양한 표현을 구사하여 상대를 움직일 수 있다. 부하 직원에게 지시를 내릴 때도 자신을 어필할 때도, 업무상 상담도, 사생활에서의 잡담도, 200색의 물감을 갖고 표현할 수 있다. 당연히 당신이 받는 평가도 크게 달라진다. (8)
비즈니스 현장에서 어휘가 부족하면 첫인상이 나빠져 '이 사람을 더 알고 싶다. 또 만나고 싶다, 함께 일하고 싶다'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게 된다. 또한 부하 직원이나 후배로부터는 말에 깊이가 없다고 무시 당할 가능성도 있다. 어휘가 부족하면 어른으로서, 비즈니스맨으로서, 스스로 큰 핸디캡을 짊어지게 되는 셈이다. (19 20)
학생들에게도 좋은 소식이 있다. 세 가지 포인트는 취업 면접 자리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52)
책 날개의 작가 소개에 따르면 이 사람이 일본 최고의 교육학자이자 'CEO들의 멘토'로 인정받고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렇다는 느낌이다. 어휘력이 늘면 일어날 수 있는 '유익한' 상황들을 묘사한 대목들이 죄다 무슨 회사에서, 클라이언트를 만나서, 거래 상대방을 만나서, 이런 식인데, 또 막상 읽어보면 정말 이 사람 회사 나가본 지 백만 년은 됐겠다 싶을 정도로 실체감이 떨어진다. 그러니까, 제목에 붙인 단어 '교양'을 소비하는 태도가 지극히 자본주의적이라는 것이다. 빨갱이 syo는 CEO들의 멘토라는 칭호가 붙는 사람들을 믿지 않고, 그런 칭호를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믿지 않는다.
3
어휘력에 격차가 있는 사람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은 원만히 흘러가지 않게 된다. (28)
최근 어휘력의 저하는 학생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대기업 간부로부터 상담 요청을 받은 적도 많다.
"요즘 이삼십 대 부하 직원은 어휘가 빈약해서 제대로 기획을 못해요."
"열심인 건 알겠는데, 말을 하면 도통 통하지가 않아요." (29)
어휘가 빈약한 사람들끼리도 즐거운 대화는 가능하다. 난해한 말도 쉬운 말로 바꾸면 된다. 하지만 말의 배경에 있는 스토리를 공유하면 의사소통의 농도가 확연히 높아진다. 그것이 또한 즐겁다. 젊은 사람이 친구끼리만 쓰는 말로 "이거 꿀잼이겠다" 와, "와 , 핵꿀잼", "그러네, 꿀잼허니잼!"이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범이 된 듯 동지의식마저 싹트게 된다. 우리들의 선배 중에는 놀랄 만큼 중국 역사에 관한 교양을 갖춘 분이 많다. 방심한 순간 "거래처 담당과는 수어지교水魚之交해야만 한다."는 말을 해올지도 모른다. (104 105)
이런 대목은 정말 한심하다 못해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놀랄 만큼 중국 역사에 관한 교양을 갖춘 분'이 쓴다는 말이 꼴랑 '수어지교'라는 대목은, 피아식별 없이 그냥 수류탄을 까서 던져 놓은 꼴이다. '우리들의 선배' 세대에서는 '수어지교'만 써도 놀랄만한 교양을 갖춘 인물로 대접받을 수 있나 보다. 물론 이런 자잘한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니고,
저자는 자기 세대가 쓰는 용어를 모르는 젊은이를 두고 '어휘력의 저하'라는 일방적 진단을 내린다. 그러나 그것은 '어휘'가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다. 그들도 나일리지 쌓인 티 내지 말고 낄끼빠빠하라는 말 앞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신조어를 '어휘'로 인정하지 않는다. '공범이 된 듯 동지의식마저 싹트게 된다'는 대목에서는 신조어를 범죄처럼 취급하고, 그 말들을 유통하는 젊은 사람들을 범죄자로 여기고 있음이 엿보인다.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그냥 그렇다고 단정한다. 설령 이런 '유행어'들이 언어 생태계를 교란하는 면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범죄취급을 받고 사용자들이 자동으로 '어휘가 빈약한 사람' 대접을 받는 일이 온당한가.
결국 이것은 '어휘'를 인증할 수 있는 권력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일종의 투쟁이다. 우리는 종종 순진하게도 특정한 말을 많은 언중이 사용하면 바로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여기지만, 실제로 '어휘'의 체계가 갱신되는 속도는 생활세계의 변화를 신속하게 따라잡지 못한다. '짜장면'은 표준어가 되기 아주 오래 전부터 널리 쓰였지만, 된소리 현상이 언어 사용자의 정신을 건드린다고 하여 '자장면'을 지지하던 언어권력자들의 저지 탓에 한참 나중에야 가까스로 표준어의 자리에 올랐다. 특정한 어휘를 사용하는 언중의 투쟁력과 그에 반대하는 이들의 저항력 사이에서 길항하며 언어는 진화한다. 경제권력을 쥔 이들이 문화권력을 쥐고 있고, 문화권력을 쥔 이들이 언어권력을 가지고 있다. 인용문에서 드러나는 사이토 다카시의 면모는 그가 말하는 '교양'의 초점이 어느 계층의 입맛에 맞게 조율되어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와, 과연 'CEO의 멘토', 명불허전. 사이토 다카시의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런 관점이 그의 거의 모든 책에 은근히 녹아들어 있음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 사람 입에서 나오는 '교양'이 하나의 계층을 부지불식간에 다른 계층의 문화식민지로 만드는 전략으로 전용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책을 읽어나가기를 권합니다.
물론 순수하게 언어의 오염과 수준 하락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고, 그런 걱정이 온당하다고 syo도 생각한다. 실제로 거의 경쟁적으로 일어나다시피하는 조어활동이 우리말을 급하게 변질시키는 측면이 있다. 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경계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그러나 조정은 여러 언어 계층 사이의 이해와 인정, 토론을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생각해보지도 않고 단지 상대방 계층이 사용한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변질이나 정체로 몰아붙이는 일은 폭력이다.
만약 '꿀잼허니잼'과 '수어지교' 중 어느 한 쪽만 고르고 나머지 하나를 사장시켜야 한다면 syo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꿀잼허니잼'을 살리고 싶다. '잼'이 '재미'라는 사실만 알고 읽으면, 이 단어는 언어유희를 기본 장착한데다, 꿀, 허니, 잼 같은 달콤한 미각 단어들이 의미 속으로 녹아들어 재미를 공감각적으로 느끼게 해 주는 기가 막힌 단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단어의 생김새나 만듦새가 모난 데가 없진 않으나 그런 단점을 뛰어넘는 가치가 있다고 보아서다. 반면 '수어지교'라는 말 속에서 물은 고기에 비해 일방적으로 불리하다. 고기는 물 없이 못 살지만, 물은 고기가 있든 없든 상관없기 때문이겠다. 유비가 실제로 저 말을 했을 때, 본인이 고기고 제갈량이 물임을 명백히 밝혔다. 과연 제갈량은 유비와 그의 아들에게 열심히 착취당하다 딱히 뭐 하나 이뤄놓은 것 없이 오장원에서 쓸쓸히 별이 되었다. 결국 이 말은 호혜적인 의미에서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아름다운 관계를 드러내기보다, 한 쪽이 일방적으로 의지하거나 이용 또는 기생하는 양상을 드러내는 어휘로 읽어낼 여지도 있는 것이다.
'말의 배경에 있는 스토리를 공유하면 의사소통의 농도가 확연이 높아진다'라니. 진짜 '교양'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다면, 그냥 있는 고사성어를 외워서 갖다 쓰는 방식으로 공유하기보다는 좀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정말 거래처 담당을 물로 보고 자신은 고기가 되어 열심히 빨아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교양있게' 고백한 것인데 '어휘가 빈약한' syo가 몰라뵈었거나. 물론, '꿀잼허니잼'은 아마 번역 과정에서 적당히 비슷한 용어를 가져온 것이겠으니 전적으로 사이토 다카시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4
사이토 다카시의 새 책이 기존에 내놓은 책에서 50% 정도를 자가복제하여 큰 품 들이지 않고 만들어지듯이, 그를 향한 syo의 비판 역시 품이 들지 않기 때문에, 이런 짓은 밤새도록 할 수 있다.
5
밤 샐까봐 관둔다. 이제 이런 관계를 좀 청산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이렇게 꼬박꼬박 까려면, 꼬박꼬박 읽어야 한다. 유시민 작가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안티는 진짜 내 책을 열심히 읽은 독자라고. syo는 인생의 멘토 유시민 선생님의 말씀에 토를 다는 일이 거의 없지만, 이번만큼은 예외겠다. 진짜 열심히 읽지는 않았다. 유시민 선생님을 까려면 그의 책을 열심히 읽어야 했겠으나, 사이토 다카시의 안티가 되는데는 열심이 불필요하다. 그냥 보면 보인다. 우린 그런 관계다. 척 하면 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