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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주윤 지음 / 한빛비즈 / 2019년 6월
평점 :
사랑하는 이주윤 선생님께,
생판 모르는 마당에 다짜고짜 사랑해서 죄송한 저는 알라딘 마을에서 책 읽고 독후감 쓰는 syo라는 잡놈입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언젠가 꼭 한번은 선생님의 작품을 향한 저의 끓는 애정을 담아 힘찬 응원의 아리아를 들려드려야겠다 마음먹고 있었는데요, 어느덧 겨울은 가고 바깥에 봄은 오고 있어서요. 이때가 좋은 때다 싶었습니다. 게다가 저의 경우, 우리 비혼/미혼인 들의 영원한 2학기 기말고사 “설 명절” 역시 다소간 마찰은 있었으나 비교적 무탈하게 통과할 수 있었기에 흥겨운 마음 금할 길이 없는지라 그 금할 길 없는 흥에 대판 취해 무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졸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번 설 어떻게 지나셨는지요. 혹시 그간 ‘장동건도 똥 누고 방귀 뀐다’는 아버님 말씀에 감화되셔서 똥 잘 누시고 방귀 시원하게 뀌시는 장동건강한 남자분 만나 혼례를 올리셨는데 그것도 모르고 제가 물색없이 ‘우리 비혼/미혼인’ 카테고리에 작가님을 함께 묶는 빅실례를 범한 건 아닐까 저어됩니다. 물론 아닐 것 같긴 합니다. 아니지요?
저는 처음 선생님의 글을 만났을 때, 어떤 운명 같은 끌림을 느꼈습니다. 이건 곱게 말한 거구요. 간략하게 말해서, 제가 쓴 줄 알았습니다. 이런 대목이요.
하루의 대부분을 산송장처럼 누워 지낸다. 늦잠 자고 일어나 낮잠 자고, 낮잠 자고 일어나 늦잠 자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훌쩍 흘러가 버린다. 반복되는 늦잠과 낮잠 사이에 이렇게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데 그마저도 누워서 가능한 일이니 딱히 침대를 벗어날 이유가 없다. 먹고 싸는 일만 어떻게 좀 해결된다면 평생을 누워서 살 수도 있을 것만 같다. 한창때에 왜 그러고 사느냐 물으신다면, 모르겠다. 세상만사 모두 귀찮다. 젊은 놈이 별소리 다 한다며 혀를 끌끌 차신다면,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젊은 놈도 사람이니 귀찮음을 느낄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담이다. 나는 사는 일이 진심으로 귀찮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매일 그렇다.
혹은 이런 대목도요.
그리하여 나는 내 글을 소리 내어 읽어 본다. 걸리는 부분이 한 군데도 없을 때까지 계속, 계속. 얼마큼 많이 읽어 보느냐 하면은 턱이 빠지기 직전까지, 목소리 쉬기 직전까지, 열 받아서 아이패드 작살내기 직전까지. 쉼표를 여기 찍었다가 저기 찍었다가 하면서, 숨울 여기서 쉬었다가 저기서 쉬었다가 하면서, 그 느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기 위해서는 자꾸만 읽어봐야 한다.
그렇게 아무리 읽어 보아도 어디에 쉼표를 찍는 게 더욱 적확한지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럴 때는 마감이 있는 게 너무나 고맙다. 마감이 없었더라면 나는 성대결절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무식하게 글을 쓰는 것도, 굳이 이럴 필요까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와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의 느낌은 사뭇 다르지 않은가. 문장에서 느껴지는 결연함이 다르잖아. 나만 느낀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하여튼 나는 그래.
이건 우리가 매사를 귀찮아하지만 만사를 귀찮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겠고, 또 읽기에 따라서는 귀찮지 않은 일에 ‘그럴 필요까지 없는’ 최선을 다하느라 그 나머지 일이 대체로 귀찮은 인간이라는 이야기기도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저 두 개의 문단은 한 인간의 성격이 굉장히 정합적임을 보여주는 증거인데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모순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거죠. 그러나 저는 압니다, 그게 어떤 마음인지. 선생님이 말씀하시지 않아도 거울 속의 제가 말해주니까요. 선생님과 저의 차이라고는 고작 선생님은 여자고 저는 남자라는 것(고작이 아니군요), 그저 선생님이 저보다 글을 더 잘 쓰신다는 것(그저도 아니군요) 정도랄까요. 그런 몇몇 요소들을 제외하면 선생님과 저는 겁나 닮았다고 일단 저는 우겨볼 텐데, 이런 우김조차 우린 닮았다니까요. 증거를 대 볼까요. 지금, 누워 계시죠?
이주윤 선생님, 선생님은 뭐랄까. 참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작가입니다.
선생님의 다른 책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는 얼마나 팔렸나요. 저는 그 책이 잔뜩 팔려서 선생님께서 계속 쓰는 삶을 이어나가시길, 그래서 선생님이 쓰신 글을 자주 읽을 수 있기를 겁나 앙망했습니다만, 뭐라 하면 좋을까요, 선생님의 책은 제가 읽고 즐기기에는 너무 좋지만-그것은 제가 선생님의 개그 코드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그렇다고 친구들에게 이 책 사라고 추천하기는 좀 애매한 데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노릇인가 하면, 제 친구 새끼들은 대체로 올해 책 두 권 읽으면 내년에는 당당하게 독서를 거를 수 있는 메탈-멘탈Metal-Mental을 지닌 친구들이오라, 그 녀석들이 평생을 읽고서 떠날 책이래 봐야 채 100권이 넘지 않을 모양인데, 그 100권 중 한 권을 추천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일단 위대한 작가들의 이름이 너무 많이 떠올라서 선생님의 책을 권하기가 다소 아리송까리송해진 것입니다. 게다가 제가 애들에게 선생님의 책을 권한다면 아마도 야, 이 책 겁나 웃겨- 라는 추천사를 부착하게 될 터인데, 선생님의 말재간이 제겐 너무나 웃기지만 직장생활과 부부싸움과 육아-현재 선생님과 제가 공통적으로 하고 있지 않은 세 가지-에 트라이앵글 초크를 당하고 있는 저 상처 입은 짐승들의 거친 감수성에도 맞물릴지 확신이 없는 상황이랄까요. 우리 같은 소수의 인간들은 웃고 웃기는 것조차 소수소수해야만 하는 운명인 것일까요? 그 답은 제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선생님의 글이 제게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잡소리로 가득한 편지를 띄운 것이지요. 언제 결혼할 거냐는 물음이 언제 행복할 거냐는 물음과 연결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은, 그 사람들이 웃는 곳에서 웃지 않는 우리들이 그 사람들이 웃지 않는 곳에서는 잘도 웃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마다의 언어가 있다면 모두 같은 언어를 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나의 웃음과 같은 문법의 웃음을 가지고 귀찮은 하루하루를 그래도 이어나가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는 정보는 그야말로 ‘생활정보’지요. 저와 같은 얼치기 독자에게 선생님이 필요하듯, 계속 쓰는 삶을 지향하는 선생님께도 저 같은 얼치기 독자나마 필요하실 거고, 우리는 그래서 각자의 자리에서 낄낄대며 이러구러 생활할 수 있는 거겠지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입니다. 혼자 있어도 혼자 있지 않은, 더 정확히 말하면 같이 있지 않아도 혼자 있는 게 아니라서 어렵게 같이 있을 필요가 없는, 책과 독후감으로 혼자서 같이 있는, 선생님과 저는 그런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거부권은 없으십니다. 그런가보다 하세요. 저는 물지 않습니다. 훈련을 꽤 잘 받았거든요. 그리고 이빨도 시원찮습니다.
그럼, 마이클 잭슨 선생님의 주옥같은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유아낫얼론하니,
위아더월드니라.
좋은 봄 맞이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