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건 내가 집에서 독립하고 성인이 되어 나름의 취향을 쌓아가던 시기와 겹쳤다. 멋진 취향을 가진 어른을 만나면 자연스레 그들과 아빠를 비교하게 됐다. 집 밖의 세상이 전부였던 철없던 시기의 나는 어쩌면 아빠의 식도락이 아니라 우리네 인생 자체를 자조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 사과집,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 中



 아버지의 전화가 떠올랐다.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물으며 마지막에 조금 어설픈 톤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던 그 목소리가. 뜬금없다고, 우습다는 톤으로 내가 대꾸하자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을지도 모르잖아.'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감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당신 목숨을 인질 삼아 그런 말들로 내 태도를 다그치곤 했다. 그땐 정말로 아버지가 죽을까봐, 학교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게될까봐 무서웠던 시기도 있었는데 어느덧 시간은 많이 흘렀고, 나는 그런 아버지의 말에 요즘은 100세는 거뜬히 살아, 하며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더군다나 이젠 사랑 고백을 하기 위해 살 날을 운운하다니. 아버지도 많이 변한 모양이다. 

어렸을 때 내게 아버지는 다정하면서도 무서운 존재였는데, 그래서 가끔은 이렇게나 싫을 수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사랑이 포기가 안 되는 존재였는데, 이젠 나도 아버지가 느낀 쓸쓸함이나 분노나 외로움 따위를 어렴풋이 알게 된 걸 보면 삶이란 무엇하나 확신할 수 없는 것이 없고 확신할 수 있는 감정조차 없는 걸까, 생각하게 된다.



2.

이렇듯 '메타버스'란 용어를 세상에 다시 불러들인 건 엔디비아의 젝슨 황이다. "메타버스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그의 말은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의 휴스턴 연설인 "우리는 달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와 같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시작점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 이임복, <메타버스, 이미 시작된 미래> 중.


 메타버스가 유행이래, 라는 말은 쉽게들 하는데 그래서 그 메타버스가 뭔지 대체불가토큰은 뭔지 물으면 실체없는 대화가 핑퐁핑퐁하다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때때로 어떤 지식들은 아는 척을 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쓸데없는 포장만 계속해서 까다가 종착역에 이르러서야 아주 작은 돌맹이 하나를 발견할 때. 그런 게 중고나라 사기가 아니고 뭐겠냐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실용서들은 도움이 된다. 실용에 치우쳐 깊은 생각은 못 하게 하더라도 최소한 다른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는 초석은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메타버스라는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이미 완벽한 유니버스를 굳이. 차라리 그 지긋지긋한 '제O의 물결'이라는 말을 꺼내는 게 낫겠다 싶다.


 코로나가 급속도로 변화하며 이젠 '오미크론'까지 왔다는데 그것도 참 웃픈 얘기다. 베타, 감마라고 이름지을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랫동안 코로나가 장악할 줄은 몰랐으니. 어쩌면 변종의 단위를 너무 자잘하게 나눴는지도 모른다. 미래에 코로나가 종결되고 다시 코로나를 재평가할 때는 아주 먼 옛날에 생물의 구분을 잘못 지어 수정했던 역사와 같이 코로나 또한 좀 더 굵직하게 분류될 수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가 끝났을 때도 과연 메타버스는 현재의 위상을 가질 수 있을까. 요즘 가장 궁금한 물음이다. 결국 인간은 감각과 감정으로 향할텐데, 메타버스가 감정은 채워준다해도 감각에 대한 결핍까지 충족시켜줄 수 있을까? 




"굳이 다 말하려고 할 필요 없네. 경우에 따라서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도 연설문이 될 수 있네."

"자네 글이 아닌 내 글을 써주게. 나만의 표현방식이 있네. 그걸 존중해주게."

"글은 자연스러운 게 좋네. 인위적으로 고치려고 하지 말게."

"반복은 좋지만 중복은 안 되네."

"문장은 자를 수 있으면 최대한 잘라서 단문으로 써주게. 탁탁 치고 가야 힘이 있네."

"접속사를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게. 없어도 사람들은 전체 흐름으로 이해하네."

"상징적이고 압축적으로 머리에 콕 박히는 말을 찾아보게."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은 쓰지 말게. 모호한 것은 때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 이 시대가 가는 방향과 맞지 않네."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 <노무현 대통령의 글쓰기 지침> 중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글쓰기에 대한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절제된 삶이 왜 아름다운지도. 시간은 절대 똑같이 흐르지 않는다.


책 내용 중, 술을 마시는 문인들이 줄어 아쉽다는 한 시인의 푸념을 보고 술을 끊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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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을 쓰면 너무 많은 것을 쏟아부을 것 같은 밤이다. 그래서 책 이야기는 안 하련다.


싸구려 와인을 꺼내 마시고 박정현과 헨리가 부른 Shallow를 들었더니 드레스덴에서 들었던 길거리 공연이 생각났다. 마치 '나홀로 집에'에 등장했던 그 두 도둑만큼이나 덩치 차이가 나던 두 남자가 들려주던 완벽한 하모니. 혼자서 서있기가 뭐해서 노래를 포기하고 숙소를 들어왔는데 창문 넘어 나를 따라오던 그 목소리들. Shallow를 들으면 절규하는 심정이 되어버린다. 더군다나 좀 뚱뚱하던 그 남자가 내지르듯 부르는 "I'm off the deep end watch as I dive in I'll never meet the ground"부분에서는 힘이 풀린 듯 침대에 누워 허우적거리는 것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할아버지는 깁스를 안 했고 동생은 점심을 먹는다. 해결된 듯 보이지만 쉬이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다. 운이 좋아서, 회사가 선심을 써줘서, '어쩌다가' 해결된 문제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주변에서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그게 문제인지조차 인식하지못한 당사자들의 '자기 탓'이었다. 내가 건강하지 못해서, 내가 부족해서, 회사와 가족에게 피해를 줄까 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침묵하는 사람들. 쉽게 내 무능력을 탓하고, 죄책감 때문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근로자들.

- 사과집,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 中


반년 전 엄마와 나는 아빠가 직장에서 죽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장례 지원과 산재 신청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걸 다행이라고 말해선 안 된다. 아무도 직장에서 죽지 않아야 비로소 다행인 것이다.

- 사과집,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 中


그날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어쩌면 엄청난 위로의 말보다는, '네 상황을 이해해'라는 공감이었다. 너의 부담감을 이해해, 벗어나고 싶지만 어디에도 갈 수 없는 너의 상황을 이해해, 생각보다 힘들 수도, 또는 생각보다 슬프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해.

- 사과집,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 中



생각보다 힘들 수도, 또는 생각보다 슬프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해.

나는 이 문장 하나를 위해 이 책을 읽은 것이 아닐까 싶다. 알고보니 작가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었고, 난 책 제목에 속은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그 문장 하나만큼은 위로가 됐다. 



"당신이 그처럼 열렬히 좋아하는 그 리본들은 모두가 인간이 만들어낸 노예의 상징이오. 당신은 자유가 리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소."

- 조지오웰, <동물 농장> 中



보통 프로씨발러들의 욕을 보면 '씨파'와 '씨바'사이 어딘가에서 발음의 경계가 살짝 흩어지듯 자연스럽게 굴러 나오는데 나의 그것은 아나운서가 저녁 뉴스 중에 씨발을 말했어도 이렇게는 못 하겠다 싶을 정도로 너무나 또박또박하고 굴곡 하나 없었다.

"야, 그 정도면 됐어. 사실 욕이란 게 연습한다고 늘겠냐. 술 마신다고 늘겠냐. 그냥 사는 게 씨발스러우면 돼. 그러면 저절로 잘돼."

- 김혼비, <아무튼, 술> 中


김혼비 책 재밌다. 참 웃긴다.

나도 비슷하게 느꼈던 일인데, 

같은 이야기도 참 재밌게 잘 한다.



그다음 인간관계를 정리했다. 나를 흔들리게 하는 사람도, 불쾌함을 남기는 관계도, 매번 같은 주제만 반복하는 모임도 정리했다. 정리하고 나니 그때부턴 시간을 내어서라도 만나고 싶은, 무언가 배울 게 있고 본받을 게 있는 인연에 집중할 수 있었다.

- 장명숙,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中



요즘 들어 내게 가장 중요한 삶의 지향점이다. 나를 발전시켜주고 나를 사랑해주고 내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사람들에게 집중하자. 

엄마는 주말에 내려오라고 했다. 맛있는 것을 먹여주고 싶다고, 남자친구 손 잡고 내려오라고. 난 알겠다고 대답하고, 다음 주말이 내 인생에서 어떤 응축된 삶의 순간으로 남으리라고 확신하고 만다. 어머니가 사는 모습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나 또한 그곳에 함께 존재하면서 어색하고도 친밀하게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겠지.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난 다음주 주말의 기억을 떠올리고, 엄마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밥을 짓고 반찬을 요리하는 모습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반면 최근에 내게서 떠나간 이들이 있다. 어쩌면 그들이 나를 떠났을 수도, 내가 그들을 떠났는지도 모르겠지만. 한 명은 자기의 기쁨에 도취되어 다른 사람의 슬픔을 볼 줄 모르는 이였고, 한 명은 자기뿐만 아니라 모두가 바쁘다는 사실을, 그래서 우리는 서로 노력해야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였다. 전자는 속 시원하게 떠나간 느낌이지만 후자는 어쩐지 상처로 남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장명숙님의 말대로 난 좀 더 배울 게 있고 본받을 게 있는 인연에 집중하고 싶다. 난 친하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좀 우습고 가볍게 보이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녀가 나를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우린 어느 순간 친하지 않게 되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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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21-11-17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그것은 아나운서가 저녁 뉴스 중에 씨발을 말했어도 이렇게는 못 하겠다 싶을 정도로 너무나 또박또박하고 굴곡 하나 없었다.˝
봄밤님 말씀이신거죠?^^ 와! 이 앞 문장과 요 문장, 완전 좋아요!

봄밤 2021-11-17 06:48   좋아요 0 | URL
혼비님 문장이에요. 중략이라고 써둘 걸 그랬네요! 저는 저 프로씨발러라는 말이 너무 좋습니다.
 


요즘 물건을 살 때마다 프로메테우스의 기분을 알 것 같은 느낌이다. 최저가를 찾는 지옥의 형벌을 견디고 나면 또 다시 그보다 더 저렴한 최저가가 등장한다. 반복하는 회원가입과 쿠폰의 굴레를 견디고 힘들게 결제를 하려고 보면 배송비 15,000원. 프로메테우스는 불이라도 넘겨주는 꽤 그럴 듯한 일이라도 하고 형벌을 받는 것이지만, 슬프게도 내가 하려는 건 그냥 선반 하나 구입하려는 것 뿐이다.... 


1.

"사실 나는…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사실 나는…."

"…?"

"배추야."

- 김혼비, <아무튼, 술> 中'


처음으로 술집에서 술을 마셔본 날. 호기롭게 잔을 부딪치며 "내가 너보단 잘 마신다!"를 외치던 나는 약 한 시간 후 친구들의 부축을 받으며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다음 날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떠오른 첫번째 장면은 당시 짝사랑하던 친구의 이름을 대면서 "왜 OOO는 날 안 좋아하는 거야아."를 외치는 나였고, 두번째 장면은 무거운 나를 양쪽에서 부축하며 "와씨, 웃긴다"고 말하며 킬킬거리다가 "으핰 진짜 웃곀ㅋㅋ"하며 어이없어 하던 두 남사친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세번째는, 이런 나를 부모님께 보여드리기 죄송했던 두 친구가 계단에 나란히 앉아 내가 술에서 조금이나마 깰 때까지 오들오들 떨며 기다리던 모습이었는데, 엄마의 말에 의하면 그 둘은 하필 현관문을 연 엄마와 눈이 마주쳤고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나를 엄마에게 버리듯이 던져두고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고 했다. 그래서 나쁜놈들인줄 오해했다고 했다. 


모든 경험을 열거할 수 없지만 나도 술에 관련된 에피소드라면 넘치도록 많다. 다만 모든 기억들이 마냥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여서 입을 다물게 될 뿐... 어떤 즐거운 술자리는 그날 있었던 슬픈 일을 시작으로 일어나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즐겁게 시작했던 술자리가 슬프게 끝나기도 했는데 돌이켜보면 가장 슬픈 건, 시작도 즐겁고 술자리도 즐거웠는데 지나고나니 슬프게 남아있는 경우들이다.


2.

서울에서 우리가 함께 살 집을 구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5천만 원은 아버지가 평생 동안 모은 재산이었다. 우리는 그걸 너무나 잘 알았기에 절대로 기죽지 않겠다고 다짐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울의 집값은 아버지의 유산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어느새 아버지는 6평 남짓한 반지하방의 전세금만 남겨준 사람이 되어 있었다.

-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1' 이서수, <미조의 시대> 中 




우리를 위해 만들어져있지 않은 세상에서 잘 살아간다는 것

- 피터 카타파노, 로즈마리 갈런드-톰슨, <우리에 관하여> 中


떠올랐다.

삶의 가치관이 바뀌게 되었던 날짜를 의미하는 일련의 숫자들. 어느 순간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어버린 두 고양이 친구들. 어리석고 겁이 많던 과거의 시절. 유치하게 써내려간 글과 그에 대한 감상평. 영원히 읽지 않을 것 같은 아빠에게 받은 책 선물. 필요한 살림살이를 마련하라고 준 몇 백만원의 돈. 두 책이 그리 관련성이 없어보이는데도 이상하게 두 이야기가 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3.

"회사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 줄 알아? 공감과 협업이야."

- 송희구,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中


아마 마의 3년차였던 것 같다. 회사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게 공감이나 협업 같은 게 아니란 걸 느낀 게. 공감이나 협업은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무능함은 무책임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무능한 이들과 공감 같은 것을 해보려다간 큰 코 다치는 수가 있다. 그들은 무언가 잘 해볼 생각도 없고, 누군가 힘들다는 걸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데다가 모든 것이 뚝딱뚝딱 완성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차라리 개미와 소통을 하지....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왜 하필 개미였는지는 모르겠다.. 소통하기에 어려워보여서일까)


카페인지 블로그인지에서 연재를 하다가 인기가 많아지면서 책으로 발간된 것이라고 하는데, 부동산에 대한 고민이 많은 현실을 잘 담고 있다고 생각이 들지만, 얻을 것은 없는 책이었다. 휘리릭 다 읽어버렸는데 기록하려고 보니 기억에 남는 구절이 아무 것도 없었다.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느낌도 아쉽다. 귀여니소설 같은 느낌이 드는 가벼운 톤의 책이었는데, 만약 이 책을 읽고 깨닫는 바가 컸다면 이 책의 김 부장과 유사하게 살아왔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유추해본다.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이 아니어서 나의 아버지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오셨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몇몇 구절들은 공감이 되기도 했다. 비싼 것은 무조건 사기라고 생각하는 마음가짐이라거나 어떤 결과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려는 관성같은 것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이 이 책에서처럼 고작 귤에서 비롯되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사실 네가 부반장이 되었을 때 엄마가 떡을 돌리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는 작가가 반성해야하지 않을까..? 그건 누군가에겐 조금 모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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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1-05 16: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직장인의 생활이 담겨 있는 페이퍼...!
페이퍼 당선 축하드려요

봄밤 2021-11-06 20:34   좋아요 1 | URL
감사하옵니다

초딩 2021-11-07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밤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1

비가 온다.

비가 오면 노래 생각이 간절해진다. 


직장일을 시작한 이래로 생긴 변화 중 하나는 노래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학창시절에 내 컴퓨터에는 수많은 음악 파일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4만 곡이 넘는 노래들을 시대별로 혹은 느낌별로 정리해두었다가 자주 밤을 새우면서 그날의 기분에 따라 생각나는 노래들을 다시 또 정리했다. 컴퓨터 책상은 창가 쪽에 있어서, 그렇게 파일을 정리하고 있으면 새벽 4시쯤 하늘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가 파란색으로 되돌아왔는데 그 색의 변조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아이였고, 그날 그날의 기분은 늘 달라졌기에 듣고 싶은 노래들도 매일 새벽마다 정리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음악을 듣지 않으면 하루도 버티기 힘든 때였다. 쉬는 시간이 되면 이어폰을 꽂고 그대로 책상에 엎드렸다. 누군가 말 거는 것이 싫어서 자는 척을 할 때도 많았는데 좋은 노래가 들리면 나도 모르게 몸을 흔들거리는 바람에 자는 척하는 걸 들킬 적도 있었다. 


그랬던 나인데. 그래서 이어폰을 깜빡 두고 오는 날이면 그날 하루를 완전히 망했다고 울적해하던 나인데. 어느 순간부터 음악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 밖에는.....단순히 나이를 먹으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이 식은 것인지, 음악이 차지하던 마음의 공간을 다른 무언가가 차지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다행인 것은 비가 오면, 비가 오면은. 노래 생각이 간절해진다. 


오늘은 '걱정 말아요, 그대'의 구절을 빗소리에 맞춰 흥얼거렸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 하세요. 

후회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 버렸죠. 

그대 슬픈 얘기들 모두 그대여, 

그대 탓으로 훌훌 털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 <걱정말아요, 그대>中


그래, 간만에 이 노래를 듣자, 마음 먹고는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를 검색했는데 뜨지 않는다. 한 템포 늦게 이 곡의 제목이 '걱정말아요, 그대'라는 걸 떠올린다. 제목이 '걱정말아요, 그대'이면서 가사엔 '걱정말아요, 그대'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니 반칙이다. 사실은, 이런 반칙을 저지르는 곡들을 더 좋아한다. 가사를 음미하면서 위로받는 기분이었다가 제목을 보고 정말로 위로를 받았을 때의 그 느낌은 이루 설명할 수 없다. 이거야말로 세련된 위로가 아닌가.


가사가 반짝이는 곡들을 마주하면 그 곡의 가사를 쓰고 부르는 사람들에 대한 경외심이 마구 피어오른다. 지금은 이적이 부른 리메이크 버전을 듣고 있다. 이 순간 너무나 행복하다. 밖은 다시 비가 그친 것 같다. 출근길에 다시 음악을 듣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다. 



2


그대 살아있는 동안 빛나기를.

삶에 고통받지 않기를.

인생은 찰나와도 같으며,

시간은 모든 것을 앗아갈 테니.

- 세이킬로스의 비문 中


창문 밖이 번쩍, 빛났다. 동생과 내가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놀란 표정을 할 때, 우린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같은 것을 공유하는 건 이렇게 사소한 데서 오는 커다란 기쁨이다. 비를 바라보며 예술가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진다. 이미 세상을 떠난 한 시인이 귤에 대해 썼던 시가 떠오른다. 비를 보며 썼을 문장들도.


사실 이 책을 택배로 받았을 땐 거의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15,000원짜리 책이 이렇게 작고 소중하다니. 더군다나 얇기까지 하다. 생각해보니 컬러 인쇄를 하느라고 책이 좀 비싸진 모양이다. 더군다나 읽고 나니 그 가격을 할만한 책이기도 하다. 마음이 좀 풀린다. 아무래도 가장 마음에 든 것은 챕터마다 들어있는 QR코드인데, 코드를 읽으면 유튜브로 연결이 되어 해당 내용과 관련된 재생목록을 들을 수 있다.(좀 허술한 건, 어떤 재생목록은 접속이 안 되고 어떤 곡은 빠져있고.....관리를 좀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각 시대에 따라 음악과 미술이 그 시대의 분위기를 띄게 된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해주는데, 쉽게 쓰여 있어 좋았다. 시대의 흐름을 크게 훑는 느낌이라 나같은 입문자에게 좋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읽을 땐 좀 허술해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모은 책들을 싸그리 정리하는 중인데 다시 읽을 요량으로 이 책은 살려주기로(?) 했다.


살아있는 동안 빛나야지. 

비어있는 모차르트의 관 위로 수북히 쌓여있던 꽃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것들이 죽은 모차르트에게 의미있는 꽃이 될 수 있을까. 


3

엄마가 미안해.


아무래도 동생에게 한 말을 엄마가 전해들은 모양이다.

아닐까? 원래 엄마는 늘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니까.


나도 어렸을 때 빌딩을 사주겠다고 구두계약을 해놓고 지키지 않았으니 엄마도 내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텐데. 


어린 시절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 사람은 그 어린 아이를 마음에 품은 채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던가 하는 비슷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잘 자라준 나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제까지 어린 아이로 머물러 있어야 할까 두려울 때가 있다. 이젠 많은 것을 회복했고 마음을 좀 가볍게 해도 좋으련만.


4


지난 70년의 근현대사, 우리 사회의 부의 축적 과정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손에 쥐기 위해 누군가를 짓밟았고 그들의 가난을 비웃으며 우리의 천박한 욕망을 정당화해왔다. '있는'사람들의 배부른 세상과 '없는' 사람들의 굶주린 세상으로 구분되는 것이 우리 사회가 그토록 신봉해온 자본주의 시스템의 필연적 결과라면, 그래서 끝이 없는 욕심을 채우기 위한 핏발 선 눈들로 가득한 세상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진정 사람답게 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SBS 제작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中



비가 그친 창문으로 시원한 밤공기가 들어온다. 비온 뒤 느껴지는 개운한 공기와 물을 많이 머금은 흙 냄새, 새로 구입한 책상과 울 일 없는 여유로움.


작은 것들을 사랑하기로 했다. 자본을 모으고 나 스스로를 단련하되 내가 가진 것들을, 내가 가진 소중한 존재들을 잊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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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e future is already here - it's just not very evenly distributed."

- 이임복, <메타버스, 이미 시작된 미래> 中


윌리엄 깁슨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처음에는 evently라고 적혀있어서, 이게 대체 무슨 단어인가 싶어 구절을 검색했는데 나오지 않는다. 아, 이거 evenly가 오타났나보구나. 그런데 구절을 그대로 적어둔 감상들이 여럿 보인다. 어쩐지 이런 구절 하나에서도 윌리엄 깁슨의 말이 들어맞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책 한 권에서도 작은 불균등이 퍼져있다니. 영알못인 나로선 아주 간당간당하게 틀린 것을 알아차린 셈이다. 어쩐지 기쁘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식으로 내가 모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 지 조금 두렵다. 


늘 모든 것에 늦는 편이다. 워낙에 세상살이나 남의 일에 관심이 적은 데다가 남들이 좋아하는 것에 관심이 없는 편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군중심리같은 것은 내게 잘 통하지 않는 말이다. 오히려 청개구리에 가깝다. 돈은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남들이 돈 얘기할 때 같이 돈 얘기하고 싶지 않다.(진정한 속물인지도 모른다..) 남들이 주식 얘기할 땐 꿈쩍도 안 하다가 많은 친구들이 수익을 낼 대로 내고 빠져나올 때 뒤늦게 들어섰다. 대한민국이 기생충에 난리일 때 뜬금없이 해리포터를 다시 정주행하고 있었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심지어 국정농단 사태 때도 모두가 지쳐 분노조차 사그라질 즈음 뒤늦게 혼자 분노했다. 청소년기에는 모두가 '올인'을 볼 때 혼자 '눈사람'을 봤다.(내가 이 얘기를 하면 모두가 눈사람이 뭐냐고 묻는다....처제가 형부를 좋아하는 막장 드라마인데....확실히 B급 드라마이긴 했다.) 그런데 메타버스라니. 알 리가 없지. 그래도 그동안 모든 일에 늦어도 너무 늦던 것에 비하면 이 정도면 그리 느린 것은 아닌 것 같기도......? 


사실 메타버스라는 말이 난 좀 웃기고, 그냥 유치하게 단어 하나 붙여놓곤 자기들끼리 새로운 경제를 창조한 양 떠드는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NFT 거래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는 아무래도 조금 다른 미래가 오고 있긴 한 것 같다는, 작은 인정(?) 정도는 하게 됐다. 이러다가 몇 년 후, 그 책을 읽었을 때 메타버스 관련주를 사야했다며 눈물을 흘리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어떤 행위가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예측하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니 뭐 그때도 '어쩔 수 없었지' 라고 가볍게 체념할 수도. 아니면 '내가 그렇지 뭐.' 정도의 짧은 자기 비하와 함께 허허 웃으며 메타버스 주를 관심 목록에서 삭제하는 정도로 그칠지도. 그때도 주식이 있긴 하려나. 그래도 조만간 많은 일들이 정리되고 내년 즈음에는 나도 어떤 세계인지 한 번 구경이나 해보려고 생각은 하고 있다.



2


환자를 가족처럼 대하는 의사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환자는 실제로 의사의 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 사실을 깨달은 어떤 사람들은 의사 사위를 보든 며느리를 보든 의사를 진짜 가족으로 만들려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비싼 값에 그 가족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도처에 넘쳐나는 '가족 같은 의사'라는 말은 그저 판타지일 뿐 현실에선 그런 기대는 접는 게 낫다.

- 김범석,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中


아, 그래서였다. 나는 이 구절을 읽다가 무릎을 세게 쳤다. 그래, 그래서 의사랑 결혼하려고 했지. 그 친구는 나와 친하지도 않은데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자기 남자친구를 흉보길 좋아했다. 작은 다툼 같은 귀여운 흉 정도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얼마나 여자를 좋아하는지 어떤 여자 문제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거였는데, 그 말을 하면서 웃고 있기에 난 대체 왜 그런데도 만나고 있고 결혼하려 하는지 더군다나 그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 어떻게 웃을 수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더랬다. 지금은 '그런데 왜 만나'라고 물어볼 깡은 생겼는데 이제 굳이 물어볼 이유는 없게 되었다. 인간 관계란 게 그렇게 명쾌하게 결론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란 것과 결혼의 이유에는 사랑이 부재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는 것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물론 그 친구의 속 마음도 다른 친구를 통해 전해듣기도 했다.... 


김범석님의 글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로 또 새버렸다. 꼭 이렇게 되고 만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현재 우리나라 의사의 삶은 환자 한 명, 한 명을 가족처럼 보살필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고 또 애초에 정말 가족이 아닌데 어떻게 가족 같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가족이 크게 아팠을 때 우리 가족은 친하지도 않은 큰 아버지의 존재를 떠올렸었다. 그 집에 의사가 있으니 병실 하나 정도는 급히 구해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아주 염치없는 생각이 든 거다. 이래서 집안에 의사 하나, 검사 하나, 변호사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거구나- 하고 피부로 깨달은 날이었다. 


그래도 가끔 '가족 같이 편한 건 아니지만 어떻게 일로서 이렇게까지 챙겨줄 수 있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의사들을 만나기도 한다. 어떤 레지던트는 하루에 두 세시간을 자면서도 그렇게나 우리 가족에게 친근하게 굴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의사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따스한 성정이 얼마나 가치있고 희소한 매력인지를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물론 의사와 따스한 성정이 필요충분관계는 아닐 테지만.



3


매 발달 단계에서 아이가 전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때마다 가족은 매번 새롭게 절망을 경험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악을 가정하는 것은 흔히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다. 낮은 기대는 자기충족적 예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피터 카타파노, 로즈마리 갈런드-톰슨 <우리에 관하여> 中


장애아를 자식으로 둔 수백 명의 부모들과 인터뷰하면서, 나는 자기 아이가 의사들이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혹은 훨씬 적게 성취해내는 것을 보고 부모들이 분노를 터뜨리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아왔다. 장애가 있든 없든 아기는 일종의 암호와 같다. 오직 시간만이 아기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게 될지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 같은 책 中


요즘 나이를 먹었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 시도때도 없이 눈물이 난다.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어서 웬만해선 눈물을 잘 안 흘렸는데 요즘은 '우리'라는 단어만으로도 눈물이 날 정도다. 평소 내 가치관은 최대한 기대없이 살자는 주의인데, 그러다보면 실망하거나 상처받는 일이 없어서였다. 내 입장에서 다치지 않는 방법을 택한 것인데, 이 구절을 읽는 순간 기대를 품지 않는다는 것이 상대방에게 불행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지키기 위해 하는 행동이 상대방의 성장을 막을 수 있다. 사랑의 관점에서도 종종 자신의 불안을 상대방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 기대하지 않는 척하는 행동들이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다. 가끔 사람들은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그러는 것처럼, 크게 관심쓰지 않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매우 기대하는 행태를 띤다. 이 또한 새롭게 절망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4

그도 그럴 것이 가정폭력을 의심할 만한 상황이 생겨도 이웃들은 남의 집 가정사에는 함부로 끼어들지 않는 법이라고 생각해서 모른 체 하는 게 미덕이라 여겼고, 실제로 모른 척 지나갔거든. 게다가 설령 신고를 하더라도 경찰은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식의 한가로운 반응을 보이며 '아름다운 화해'를 종용했어. 그러다 보니 가정폭력은 어느 집에서나 벌어지는 일상이 돼버린 거지. 1992년에 형사정책연구원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결혼 후 남편에게 구타당한 주부가 응답자(640명)의 45.8퍼센트에 달했어.

- SBS 제작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中


연도를 보고 우리네 어머니들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세상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과거의 악습을 고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신고가 최고지, 라고 떠들기엔 개인의 삶에 어디까지 공권력이 개입할 수 있는지와 사건이 종결된 후 다시 그들의 삶으로 되돌아갔을 때 그 공권력이 어디까지 개인을 지켜줄 수 있는가의 문제도 포함되어 있어서 무엇이 '옳은지'는 판단하기는 쉬워도 무엇이 '잘하는 것인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때로는 법을 준수하고 정직하게 판단하는 것이 오히려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드는 어리석은 행동이란 걸 알게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당연히 가장 지혜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 지혜라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취득하고 책을 읽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미로 속에 갇힌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나저나 TV 볼 때도 재밌었는데 책으로 읽어도 재밌긴 하네.....최대한 중립적인 위치에서 읽고 싶은데 잘 안 된다.


꼬꼬무를 읽다보니 다시금 떠오르는 오늘의 구절..

The future is already here - it's just not very evenly distribu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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