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 전에 쓰는 글들 - 허수경 유고집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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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에 구입한 후 이제야 완독을 했다.

어떤 때는 몰아서 읽는 것이 버거워 내려놓기도 했고 어떤 때는 지루해서 책을 손에 쥔 채 잠이 들었고 그러다 아침에 옆에 구겨진 채 놓여있는 책을 보면 이 글을 쓴 사람이 하늘을 향해 걸어갔다는 것에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글을 가장 잘 쓰는 사람은 시인이 되고 그보다 못한 사람은 소설가가 되고

그보다 글을 못 쓰는 사람은 평론가가 된다고 누가 그랬었다. 


글을 가장 잘 쓰는 사람이 썼는데 왜 시는 팔리지 않아, 라는 물음이 입안에서 맴돌았고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새로운 형식의 시들과 삼행시가 떠올라서

'시가 정말로 소설보다 나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들이 모조리 잘못되었다는 것을 허수경 시인같은 사람들의 책을 읽으면서 느낀다.


그러니 시와 소설과 평론이라는 형식을 두고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없는 일인지, 무슨 글을 썼느냐보다는 누가 썼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소설인데도 시같이, 시를 소설같이 평론같이, 혹은 기사같이 어느 유행가 가사같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날아다니며 글을 쓴다. 존 버거의 글은 마치 사진같고 존 윌리엄스의 소설은 마치 시 같고 때로는 그 글 전체가 그저 한 인간 같다. 


허수경 시인의 시는 내게 소중한 한 친구의 선물로 처음 접했었다. 어둡고 캄캄하지만 크리스탈 잔이 빛나던 그 공간에서 친구는 술잔 옆에 리본으로 감싸진 그 책을 내게 건넸다.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이라니.

나는 그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웃음이 터졌다. 

꼭 내 마음을 대변하는 제목이잖아.

차가운 심장 때문에 제대로 표현 못하고 늘 엉거주춤한 위치를 택해 서 있던 나를 위한 책이잖아.

하지만 차가운 심장을 가진 내게 그 책은 어려웠다.

얼마안가 그녀의 유고집이라는 이 책을 발견했고 나로선 그 시집을 이해하고 싶어 이 책을 택했다. 그러니 운명적이라는 건 이럴 때 쓰는 거 아닌가, 그 친구를 만난 그 시간과 그래서 만나게 된 시집과 그리고 이 책까지. 


지난 번에 자습할 것을 안 가지고 왔다는 아이에게 교무실로 가서 내 책 중 읽고 싶은 것을 가지고 오라고 했더니 이 책을 골라왔다. 많은 책 중 무엇을 골랐을까 궁금해서 아이가 교실 문을 열자마자 아이의 손을 봤는데 보라색으로 칠해진 이 책이 들려 있었다.

그때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직 어린 10대가 가기 전에 쓰는 글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이해할까 싶었는데 역시나 몇 분 후 아이는 책을 덮고 잠에 들었다.


하지만 교무실에서 이 책을 골랐던 그 순간, 가기 전에 쓰는 글들 이라는 제목이 아이의 마음을 흔들었을 것을 생각하면, 이미 돌아가신 분의 글이 찰나의 순간 어떤 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힘은 이미 죽은 힘임에도 불구하고 강하구나, 갸냘프게도 강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쉬운 마음으로 글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글을 썼던 지난 날을 반성한다. 역시 나는 쉽게 읽히지 않는 글이 좋다. 스르륵 읽히지만 눈동자가 지나가는 길에 어떤 궤적을 만들어내는, 그래서 다시 그 궤적을 바라보게 만드는 글이 좋다.


어제는 이 책의 끝을 읽고, 만나고 싶지만 만날 수 없는 사람이 한 명 늘었다는 것이 조금 슬펐다.

- 쉽게 이해가 되는 시,그러면서도 미학적 긴장이 떨어지지 않는 시, 진짜 운율이 살아 있는 시, 낭송될 수 있는시. 김소월의 시가 아직도 나를 울릴 때, 그때 내가 가야 하는 시의 길이 정해지는 것이다. 서정주, 백석의 시. 서정시의 본령으로 들어가는 시. 만일 내가 「딸기」라는 시를 쓴다면 사람들은 딸기를 볼 때마다 그 시가 떠오르는, 그런 것.- P24

- 어제는 혼자서 술을 많이 마셨고 많이 울었다. 한 인간이 한 인간에게 배려랍시고 하는 것이 너무나 서운했나보다. 누구에게도 침범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곳을 누군가가 사정없이 들어왔다고 생각한 시간은 술을 마시게도 하고 울게도 했다. 도대체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이 서울이라는 곳에서 잠시 만나고 다시 혼자가 되고 그리고 뒤척이다가 잠이 드는 거, 참 쓸쓸하다. 그러나 이 십일월의 아침에 감을 만난다. 감이 걸린 늦가을 하늘은 맑고 청랑하다. 뭘 해도 시달리지 않고 마음 편하게 하고 싶다. 이렇게 설레고 떨리는 것이 싫다.- P87

2012년 5월 8일
-오월의 빛 속에서 소포를 부치고 돌아와 파울 첼란이 번역한 『만델스탐』을 읽는다. 이 전세기의 시인은 시베리아에서 죽었다. 수용소에서 죽은 시인, 살해당한 시인, 무엇을 보자고 세계는 시인을 그렇게 죽였는지 모르겠다. 이 세기에도 어디에선가 시인들은 살해당하고 있을 것이다. 오월 봄볕을 쬐며 막 돋아나오는 깻잎의 싹을 오래 들여다보며 이제 오지 않을 사람의 그림자가 저편 하늘로 가는 것을 보았다.- P160

- 우리의 운명은 우리의 가장 긴밀하고도 민감한 곳을 팔아야 하는 것이다. 너는 이 세기의 운명에서 놓여날 수 있니? 너는 팔려야만 존재한다. 팔리지 않으면 너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발터 벤야민이 점성가라고 생각하는데 무섭다. 나는 예술가로서 팔리지 않는다. 즉, 그러니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청중이 무섭고 낯설다. 이런 생각을 할 때쯤이면 오븐에 머리를 박고 죽은 한 여인이 생각난다. 그러나 그것조차 한 진실일 뿐.- P170

- 이생은 이렇게도 끝날 것이다. 태양 밑에서 쉬지 않고 녹아가는 아이스바처럼 숨을 거둔다, 라는 것은 마지막 한 숨을 맹렬하게 쉰다는 걸 뜻할 것이다.- P199

2014년 3월 23일
- 어제의 산책. 숲과 함께한 산책. 느끼고 본 것이 쓸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설 때가 많다.- P208

- 하루종일 기다린다.
아무 생각 없이 하루종일 기다린다.
감기 없는 세상을
독재자 없는 세상을
몸 없는 세상을
약이 나를 기다리게 했다.
나른한 신경이 나를 기다리게 했다.
저녁이 오는 것을
밤이 오는 것을
밤에 창밖에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라일락 곁에서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그들은 포옹을 기다리고 있거나
입맞춤을 기다리고 있거나
정말 기다리는 게 무언지 알게 될 때까지
약은 나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P211

- 저녁에 가야 할 곳을 생각하다가 잠시 어두워지기도 했다. 그리고 길녘에서 지나가는 새들이 방향을 바꾸면 울음보다 더 진한 노을이 숲을 가로질러 서녘에 문득 머물다 갑자기 가버리는 광경을 보기도 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응급차의 소리가 울릴 때마다 노을은 잠자리의 날개처럼 떨었다. 더 이상 이 세계로부터 탈출할 수 없던 새들은 없는 어미를 노래했다. 아주 어려운 세계였다. 내가 증오하는 것들을 새들은 증오하지 않았다. 그것은 불면의 내 밤을 향하여 누군가가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들려주는 노래 같았다. 없어진 노래, 마음속으로는 있었으나 이 길을 따라 걸을 때 아무도 없었던 노래. 나는 이때 내 존재가 생긴 것 같아 서러웠으나 그런들 어떠랴. 어미 흉내를 내며 자살하던 새들도 그랬을 것 같다.- P215

- 어제는 프랑스어 수업을 받으러 간 날, 마틸데라는 나의 맞은편에 앉아서 수업을 듣는 이에게 우연히 말을 걸 일이 생겼다. 그녀는 최근에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무슨 수술이었냐고. 그녀는 말했다, 자궁을 제거하는 수술이었다고. 6주 동안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었다고 했다.- P225

- 우리 모두는 실패할 것이라는 악몽에 시달린다. 악몽에 시달리든 시달리지 않든 우리는 실패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패하는, 실패하는 존재다. 죽음은 모든 실패의 어머니이다. 몸의 실패. 이것이 바로 인간의 실패의 근원이다.- P227

달리면서 그녀는 앞서 달리는 아들에게 천천히 달리라는 잔소리를 하다가 옆에서 가는 개를 보다가 또 뒤를 돌아보며 작은 차가 안전한지 아닌지 확인했다. 혼자 달리는 사람은 없다. 특히 어머니는 혼자 달릴 수 없다.- P227

- 내일은 사월이다. 그게 뭔가. 나는 모레를 기다린다. 내일이 아닌 모레를.- P235

이렇게 스스로 선택한 고립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독한 외로움이 낳는 무기력. 어떤 글도 어디에도 다다르지 않으리라 싶은 무기력.- P236

그렇다고 죽음이 딱히 실감나는 것도 아니다. 살기 위한 긴 싸움을 하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또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다.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마도 시를 생각하고 쓰는 일이겠지만 그마저도 앞으로 두 달간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 집어치워버릴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경험해보는 시간이 시보다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것이야말로 시 쓰는 인간들의 근원적인 불편이 아닌가? 시 쓰는 인간뿐인가. 예술을 하는 인간들의 근원적인 불안. 바로 예술은 예술 내의 필연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우연으로 생겨난다는 것. 수공예가 아닌 예술가가 진정 드문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P296

간절한 한 사람의 시간을 붙들고 있는 것, 그 시간을 공감하는 것, 그것이 시를 쓰는 마음이라는 생각을 나는 하곤 한다. 사람의 시간뿐만이 아닐 것이다. 어린 수국 한 그루를 마당에 심어놓고 아침저녁으로 바라보는 일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기 새들이 종일 지저귀던, 늙은 전나무에 있는 새집을 바라보던 시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간절한 어느 순간이 가지는 사랑을 향한 강렬한 힘. 그것이 시를 쓰는 시간일 것이다. 시를 쓰는 순간 그 자체가 가진 힘이 시인을 시인으로 살아가게 할 것이다. - P299

- 젊은 시절에 읽었던 몇몇의 시 말고는 자신을 움직인 시가 없다는 글을 읽으며 짜증이 났다. 그건 타인들이 쓴 시 탓이 아니라 자신 탓은 아닌가. 젊은 날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자신 탓. - P304

- 바다에는 쓰레기들만이. 북극의 얼음벽들은 무너져내리고 아픈 이에게 내일은 덜 아플 거라고 말하는 이 순간은 무엇인가. 예쁘게 차려입고 아직 오지 않은 사랑을 맞이하러 가는 저녁때처럼 모든 게 다 살아 있던 순간이 자꾸 멀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깨진 맥주병이 뒹굴고 유릿조각에 종소리가 찔리고 있다.- P305

시인으로서 내 존재는 고아이다. 누군가가 나를 태어나게 했고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홀로 남겨진 고아. 고아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기댈 전통이 외부에 있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전통이라는 것에 기대면 스스로를 베끼는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위기감 때문이다. (중략) 또한 전통은 어떤 의미에서는 독재자이다.- P353

수많은 우연의 순간에서 시는 나온다. 그 순간이 언제일지 알 수 없기에 한시라도 시인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면 균열의 순간에 균열을 경험하지 못한다. 순간을 재구성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비슷한 순간을 시 언어로 만들어 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비슷하지 그 순간이 아니다. 균열을 감지할 때 온전히 경험을 해야 한다.- P358

이 세계를 그리고 인간을 가난과 부, 권력자와 약자로 이분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인간의 결핍에 관심이 있다. 결핍이 빚어내는 내면은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결핍을 인식하는 것이 어쩌면 시쓰기의 시작일 것이다.- P360

내 세대는 아직도 자신을 개인으로 생각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또 어떤 의미에서 내 세대는 ‘적’과 오랫동안 대치하면서 ‘적’의 얼굴을 닮아갔는지도 모르겠다. 내 세대는 유감스럽게도 ‘개인’을 발견하고 인식하고 온몸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신이 당한 억압을 통하여 내면을 해방하는 것에 실패한 세대인 것이다.(‘내 세대’라고 적었지만 이건 나만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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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작가와의 대화 - 노벨문학상 작가 23인과의 인터뷰
사비 아옌 지음, 킴 만레사 사진 / MBC C&I(MBC프로덕션)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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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대한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하는가, 삶으로 말해야 하는가?

2. 글이 정 말 로 모든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가?

3. 누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인가?


번역투가 심하고, 심지어 따옴표조차 엉망으로 들어있는, 제대로 탈고가 되지 않은 책이지만

여러가지 물음을 던지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


인터뷰를 한 모든 노벨문학작가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들이 다 옳은 것도 아니기에

비판과 수용을 겸하며 읽을 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가장 공감된 두 페이지,


p.99

시인은 종교를 “인간이 가진 모든 것 중 가장 떠받쳐지는 환영에 불과하다.”라고 정의한다. “나는 전위적 무신론자가 아닙니다. 나는 대답보다 질문이 마음에 듭니다. 나의 신성은 ‘나는 모른다’입니다. 모두 알고 있을 겁니다. 우리들 중 아무도 사후세계를 알 수 있는 메커니즘이 없다는 것을. 알려지지 않은 일들은 삶을 매력적인 것으로 바꾼다는 것을.”



p.187

일터에서도 자기만의 의식을 가진, 정신적으로 독립한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나는 주도적으로 사고하는 존재로서의 개인을 옹호합니다. 자기 주변의 생각과 굳이 일치시키지 않는 존재 말입니다. 





가장 씁쓸한 한 페이지


p.401

전직 대통령 데 클레르크는 지금쯤 멋진 별장에서 낚시하고 있을 겁니다. 남아공 국민은 보복하지 않습니다. 자국민에게 그런 짓을 자행하고도 자기 나라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자가 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는 여느 국민처럼 남아공에 살고 있습니다. 아무도 귀찮게 굴지 않습니다. 이것이 믿기 힘든 우리나라 흑인들의 관용입니다.





가슴에 새겨야 할 한 페이지


p.277

“단순한 카테고리로 나누는 세상 분류에 치우치지 않은 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반면, 누군가가 말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보지 않으려고 그렇게 말하는 누군가에게 딱지를 붙이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그것들은 현관 옷걸이에 외투처럼 걸려 있었죠. 독재의 일면은 그런 시골의 삶과 비슷합니다.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갈 자유를 박탈하는 것, 자신의 의지대로 배우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 계획된 것들만 허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독재입니다.- P39

누구나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심지어 매우 가난한 사람도, 절망 한가운데 있는 사람도 아름다워지길 원합니다. 브라질 빈민가 허름한 집에서 잘 다려진 흰 셔츠를 입고 행복한 표정으로 걸어 나오는 소년을 보았어요. 그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름다움은 자존감을 높여줍니다.
- P41

독일인들은 난민들이 타고 오는 기차가 도착할 역으로 음식, 옷, 아동용 장난감 등을 들고 나가 애정으로 그들을 받아 주었어요.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통해 박해를 피해 도망쳐온 동독인들과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 P45

시인은 종교를 "인간이 가진 모든 것 중 가장 떠받쳐지는 환영에 불과하다."라고 정의한다. "나는 전위적 무신론자가 아닙니다. 나는 대답보다 질문이 마음에 듭니다. 나의 신성은 ‘나는 모른다’입니다. 모두 알고 있을 겁니다. 우리들 중 아무도 사후세계를 알 수 있는 메커니즘이 없다는 것을. 알려지지 않은 일들은 삶을 매력적인 것으로 바꾼다는 것을."
- P99

실제로 작가는 2000년 노벨문학상 수상때까지 수채화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지구상 가장 값진 문학상 발표 날 그의 아파트 경비원은 작가를 찾아온 기자들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아닙니다. 여기는 그런 작가가 살지 않아요. 당신들이 찾는 그는 화가라고요."- P129

시인은 도피를 연출하는 자이며 역설적으로 그의 언어는 도피자의 언어입니다.
- P135

"나는 히틀러 청년대에서 군 복무를 했습니다. 전쟁이 터지자 자원 입대했습니다. 해군이 되고 싶었지만 무시무시한 나치 엘리트 부대인 친위대에 배속되었습니다. 나는 총 한 방 쏘지 않았어요. 작전에는 딱 두 번 나갔는데 거기서 부상을 입고 미군 포로가 되었습니다. 나치 친위대로 가는 것은 놀랄 일도 의아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미안하게 생각할 일도 아닌데 결과는 치욕스러운 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나는 총통을 믿었고 독일의 승리를 믿었습니다. 12살 때부터 착각에 빠진 채 그들에게 현혹된 채 나치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 시대의 독일 젊은이들은 그런 우리를 부러워했습니다. 내가 나치의 범죄를 깨달은 것은 전쟁이 끝난 후였습니다. 내게는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진실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나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정상을 참작해줄 사람도 없고 내가 젊은 날 저지른 멍청한 짓이었다고 변명해도 나에 대한 비판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P165

그 책의 주제는 날조된 기억입니다. 우리의 기억은 우리를 어떻게 속일까요? 사건 순서를 뒤바꾸고 원래 없던 의미를 부여하고 툭하면 미화하고 품위있게 만들어 내가 했던 것을 구체적인 것들로, 객관적인 것들로 한정시키는 선에서 마무리했습니다. 나는 내 생각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거나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 P169

우리는 말합니다. 민주주의의 적은 극우와 극좌, 이슬람주의자들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로붙터 자유의 내용물을 비워내고 있는 것은 거대 기업과 은행, 입법권을 쥐고 흔드는 정치 권력임을 증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을 쫓아내는 기업들은 그들의 주식이 오르는 동안 우리에게 익숙해진 파렴치한 타락행위를 일삼는 것도 부족해 어떻게 법을 지키냐고 말합니다. 정치가들은 그들의 편법을 묵인합니다.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들의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P172

우리는 반드시 이야기해야 합니다. 치명적인 트라우마까지 그 모든 것을. 나는 지금까지 할 수도 알 수도 없었지만 그렇게 된 데 매우 만족합니다.- P172

일터에서도 자기만의 의식을 가진, 정신적으로 독립한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나는 주도적으로 사고하는 존재로서의 개인을 옹호합니다. 자기 주변의 생각과 굳이 일치시키지 않는 존재 말입니다. - P187

거의 모든 논쟁거리는 내가 솔직히 순진하게 답하는 순간 시작됩니다. 터키 타블로이드는 그 중 일부를 오려 제멋대로 과장, 왜곡해 슬쩍 흘립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금처럼 나를 증명해야 합니다. 나는 내 명예를 지킬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말은 할수 없지 않나요? ‘무서워서 침대 밑으로 숨어야겠어요.’ 어쨌든 나의 기본적인 본능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문학적인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방구석에 쳐박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 P218

"어릴 때 내가 본, 신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하녀나 요리사들뿐이어서 나는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의 믿음을 연관시켰습니다. 신이 전능하다면 나를 용서할 거라고, 그런 이유로 믿음을 가질 수 없는 나를 이해해줄 거라고 항상 생각했습니다.
- P218

복음서는 원래 그리스로 간 이주민 즉 팔레스타인이 아닌 그리스 세계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쓴 것으로 거기에는 그들의 상황에 적합한 관습이나 관례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내 피를 마시라’라고 말하지만 그건 아닙니다. 유대인에게 피를 마시는 것은 이슬람교도들이 그렇듯 잘못된 것입니다. 한 사도가 로마인들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는지 그리스도에게 뭍는 장면에서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동전을 잘 들여다보라고 하자 베드로는 ‘카이사르의 얼굴이 나와 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그리스도는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주라’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유대인의 동전에는 아무 얼굴도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동전에 인간의 얼굴을 재현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얼마든지 많은 예를 들 수 있습니다.- P237

여행에 대한 ‘네이폴 방식’은 이전에 존재하는 모든 유형의 이론을 창고에 처박아버리는 것이다. "내가 여행할 지역에 대한 단순한 정보 서적조차 읽지 않습니다. 내 마음속에 깃든 어떤 인상을 비워낸 나라로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물론 그것들을 읽습니다. 엄청나게 읽습니다. 이 과정이 끝나야 비로소 그때부터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특정한 생각을 갖고 여행하지는 않습니다. 거기서 나온 결론들은 고쳐지지 않을 것입니다."- P272

일부 위대한 영어권 작가들에 대해서도 호평이 나오지 않는다. 그에게 제인 오스틴은 ‘단지 그 시대의 특정 양식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매력을 줄 뿐’이고 헨리 제임스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작가로 모험을 감행한 적도 진지했던 적도 없으며 마차 상석에 앉아 ‘젠틀맨’같은 폼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헤밍웨이도 자신이 사는 세계에 대해 알지 못했으며 전쟁 중 파리에 있었지만 독자에게 준 것은 그가 무슨 칵테일을 마셨는가 뿐입니다."
- P275

"단순한 카테고리로 나누는 세상 분류에 치우치지 않은 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반면, 누군가가 말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보지 않으려고 그렇게 말하는 누군가에게 딱지를 붙이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P277

지평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가 말한다. "이게 내 나라입니다. 오직 이것만."
- P278

그들을 죽이기 전 간수들은 그들을 무척 상냥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옷걸이에 입었던 옷을 어떻게 거는지, 몸은 어떻게 씻는지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마치 그 곳에서 계속 살아갈 사람들을 대하듯. 아이들은 공놀이를 했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들이 질식해 죽어갈 곳은 풀과 작은 숲과 화단 사이에 있었습니다.- P287

케르테스는 <운명은 없다>에서 아우슈비츠에서는 행복하기도 했다고 말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중략) "우리는 어떤 소설의 단어 하나에만 연연하면 안 됩니다. 성당 벽돌 하나가 아니라 성당 전체를 경배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내 책에서 독자들은 여러 극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행복’이라는 단어에 서서히 다가갑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그 단어를 만나면 폭발하는데 이것은 고통을 세세히 묘사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살다보면 더 이상 위험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데 그 때가 바로 그런 순간입니다. 그럴 때 나오는 모든 긍정적 자극은 모진 고문 속에서도 오히려 거대한 평온함과 안도감이 들게 만듭니다.- P290

이런 종류의 국제적 사안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의견을 내고자 한다면 그것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장 좋은 경험이죠.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무책임한 의견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특히 진실이 왜곡되고 정치적, 사상적, 경제적 다양한 이유들로 정보가 조작되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 P337

프랑스는 나라 규모에 비해 유독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많은데 정말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P351

훗날 차우차우는 창문 밖으로 투신자살했어요.- P364

내 경우, 가족과의 유대감은 전혀 없었고 그것이 내게는 너무나 큰 혼란인 동시에 밑거름이 되었죠. 나를 괴롭히던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이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설적으로 그것들은 나와 아무 관계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것들이 아니니까요.
- P365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의 피아니스트들은 ‘Que reste-t-il de nos amours’를 연주하고 소설 전체가 우리 삶에서 결국 남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때 많은 경우, 우리 삶에서 매우 짧은 한순간만 남겨진다는 데 집착했어요. 몇 장 안 되는 사진과 다이어리, 사라지는 증인들, 그리고 남겨진 증인들도 명확하지 않은 기억에 의해 거짓을 이야기하는 것 말이죠. 이 세상 모든 것에는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께 마련이죠. 뭔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려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뭔가가 있어야 해요. (중략) 거리, 사람들, 그리고 그것들에 신비를 덧입히죠. 우리의 눈에 평범해 보이는 것들에도 분명히 신비로운 부분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누군가 그것을 자세히 바라본다면 그 신비로운 면을 분명히 찾아내고야 말 것입니다.
- P366

전직 대통령 데 클레르크는 지금쯤 멋진 별장에서 낚시하고 있을 겁니다. 남아공 국민은 보복하지 않습니다. 자국민에게 그런 짓을 자행하고도 자기 나라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자가 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는 여느 국민처럼 남아공에 살고 있습니다. 아무도 귀찮게 굴지 않습니다. 이것이 믿기 힘든 우리나라 흑인들의 관용입니다.

- P401

"그들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을 죽이거나 수용소로 데려갔지만 그때마다 나는 다른 쪽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것이 바로 내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고통이고 내가 결고 떼어낼 수 없는 고통입니다." - P166

어떤 사람들은 이제 작가는 더 이상 독일인의 도덕적 잣대가 아니라고 말한다.
"내가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데 만족합니다. 그 동안 언론은 고맙게도 나를 ‘민족의 양심’이라고 칭송해 주었습니다. 하인리히 뵐에게 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말해 그동안 내가 했던 유일한 것은 내게 주어진 표현의 자유로 나의 권리를 행사해왔다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그때와 똑같은 언론은 잔혹한 주먹을 가하며 내게 주었던 칭호를 거두어 갔습니다. 기쁜 일입니다."- P166

지난날 나치 전력이 있는 정치인, 법관, 군인들에게 가했던 나의 비판에 대해 나는 그들이 나치 권력 조직 속에서 요직을 차지했던 성인 정치가들이고 그들 중 어떤 자들은 나치 이전의 민주공화국을 배반했고 어떤 자들은 나치 선전국 고위관리였으며 어떤 자들은 인종차별 정책의 선동자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나 같은 애송이와 똑같다는 말입니까? 히틀러가 권좌에 올랐을 때 나는 겨우 6살이었습니다. 그런 내게 키신저 같은 늙은 나치를 비난할 것을 강요하겠다는 건가요? 왜, 무슨 이유로? 오늘날 역사가인 요하임 페스트(최근 사망)의 자서전이 다수 출간되고 있는데 그 책에서 그들은 모두 안티 파시스트를 표명하지만 그것들은 순전히 지어낸 것입니다. 잘 보세요. 우편배달원이었던 내 사촌 프란츠는 아무와도 접촉하지 않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군사 법정은 내 사촌을 사형에 처했습니다. 내 사촌에게는 아내와 내 나이 또래의 자식들이 4명이나 있었습니다. 나도 그들을 비난하면서 그들 뒤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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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동안 살이 많이도 쪘다. 얼마나 쪘냐면 너무 커서 옷핀으로 고정하고 다니던 치마가 꽉 껴서 소화가 안 되는 정도. 사실 살이 찌는 거야 나중에 빼도 되고 아님 그대로 살아도 괜찮을 듯 한데 문제는 입고 나갈 옷이 하나씩 줄어들고 있다는 거지.

어차피 집순이라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거의 없긴 하지만.


오늘은 기분이 영 별로였다. 뭐 그렇다고 하루 종일 죽상하고 있는 건 아니고, 기분 좋게 밥 차려 먹고 '이 놈의 세상은 왜 이 모양이지' 속으로 생각하는 정도로?


가장 먼저 기분이 나빴던 건 홈트를 할 때였다. 끈질기게 유튜브 프리미엄을 구독하지 않고 있어서 영상을 누를 때마다 광고가 뜨는데, 요즘 들어 자꾸만 기부 광고가 뜬다. 오늘은 너무나 가난해 추위에 떨고 있는 한 소녀의 영상이 떴다. 


영상을 보는 순간 하고 있던 기부마저 끊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가난은 정말 불행이 맞다. 겪어봐서 알지.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준비물인 파일 꽂이를 사주지 않으셨다. 다들 그거 알죠? 초등학교 때 창가쪽에 아니면 사물함 위쪽에 주욱 나열하고는 파일 꽂아두는 용도로 쓰는 그거. 십자형으로 구멍 숭숭 나있는 그거. 아버지가 사주지 않아서 못 가져갔는데 선생님은 매일 날 혼내셨다. 손 내밀어! 라고 앙칼지게 말한 담임 선생님은 회초리를 때리면서, 왜 안가져오냐고 물었고, 난 아이들 앞에서 차마 돈이 없어서 못샀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1년을 사지 않았고, 한 달을 맞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담임 선생님은 통지표에 이런 비슷한 말을 기록했던 걸로 기억한다.


'고집이 세고 꼼꼼하지 못해 준비물을 잘 챙겨오지 않음'


그러니 가난이 어찌 불행이 아닐 수가 있나. 그건 아주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사람은 상처를 건드리는 순간 그게 상처라는 걸 더 뼈저리게 느끼곤 한다. 요즘 우울증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접근할 수 있는 상담이 늘어나고 지원이 늘어나는데도 아이들이 계속해서 죽는다. 왜 그럴까?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보여주기식 말고. 그래서 어렸을 적을 생각해봤지. 가장 큰 원인은 나만 가난한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만 파일 꽂이를 사오지 못했고 나만 낡은 집에 살고 있었다. 그런 내가 이런 기부 광고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아, 난 역시 저렇게 불쌍한 거였어. 긴가민가했는데 확실하군.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내가 비슷한 집에 사는 아이라면, 난 그 기부 광고를 차마 보지 못할 것 같아. 채널을 돌려버릴 것 같아. 신영복 선생님은 말하셨다. 동정은 동정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동정하는 자의 시점에서 자신을 조감케 함으로써 탈기와 위축을 동시에 안겨줍니다. 그것은 공감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값싼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동정의 감정은 절대로 고고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그건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고 우월해하는 저속한 감정이라고 믿는다. 우리 모두 동정심을 품지 말자! 좀 더 아름다운 감정을 품자, 이를테면 좀 뻔하긴 하지만 공감같은 거. 뭐. 신영복 선생님도 동정 대신 공감을 외쳤는 걸.


만약 동정의 프레임을 씌워야만 기부가 늘어난다라는 주장으로 변명한다면 난 그가 창의성이 없음에도 광고를 만드는 일을 한다는 걸 안타깝게 생각할 거다. 그건 대꾸할 가치도 없지. 

혹은 난 가난한 적이 없어서 가난에 공감하지 못해, 라고 한다면 그에게는 좀 더 넓은 시각을 가지라고 이야기할 거야. 이러이러한 사람은 모두 불행해, 라는 지긋지긋한 프레임. 이러이러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사람은 모두 불행해. 불행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누구나 외톨이가 되어본 적이 있잖아. 


첫번째 짜증나는 일을 말하고 나니 벌써 여기까지 왔네.


두번째 짜증나는 일은 책이다.


정말 싫다, 책.

작년엔 진심으로 꼴도 보기 싫어서 꾸역 꾸역 읽은 스무 권이 전부다.


난 사실 책을 별로 안 좋아했는데 책이 너무 재미가 없어서 내가 써봐야겠다, 생각하고 그러려면 좀 읽어야하니 읽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여전히 재미있는 책은 많지 않다(하지만 없지는 않다) 다만, 정말 너무 재밌는 책은- 그 재미가 유익함에 근거하든 사고의 전환에 근거하든- 사실 세상에 몇 개 없는 것 같다. 게임이 훨씬, 예능이 훨씬, 코미디와 드라마가 훨씬 재밌다. (그리고 내가 쓴 글도 재미가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도 살아남았나 생각하면, 그건 책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 더 나은 내가 되리라는 기대 때문이 아닌가? 그런 효용에 대한 기대가 아닌가?


그런데 왜 바뀌지 않나?


물론 누군가는, '아니요, 전 책이 정말 재밌는데요.'라고 할 것이다. 특히나 책 리뷰를 쓰는 이곳이라면 틀림없지. 책을 싫어하던 시절에 그런 생각을 했다.


'지들만 재미있을 책을 쓰고는 지들끼리 재밌어 하네.'


어떤 책들은, 자기도 모르는 것에 대해 떠들었다. 그건 이곳의 리뷰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도 잘 모르면서 떠드는 걸. 연애도 잘 못했으면서 연애론을 쓴 스탕달을 보면 비슷한 사례야 넘치고 넘친다. 스탕달이 연애를 못해봤다는 건 오해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확실히 연애 고수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무튼, 난 책이야말로 지식인들 혹은 지식인이고 싶은 사람들만의 문화라고 생각했는데 언젠가 내가 기타 연주곡에 빠져있을 때 동생이 이런 말로 내 뒷통수를 날렸다.


"별로야. 누가 좋아해, 아무도 안 좋아해. 기타 치는 찐따들한테나 좋게 들리지."



그래, 뭐. 모든 사람이 책을 좋아할 필요는 없지. 그럼 책을 읽는 사람들로 인해 무엇이 바뀌었나?

무엇이 달라지고 있나?


아주 작은 변화들은 있다.

이를테면 책을 읽은 내가 A에게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하고 A는 B에게 B는 C에게 그렇게 한 칸씩 나아가는 것. 하지만 변화가 생기려면 나는 A나 B나 C가 대단한 혁명가이기를 바래야겠지.

"우리의 교육은 망했어! 입시 위주의 교육은 없어져야 해!"

피켓이라도 들고 그렇게 외치길 바래야겠지.

혹은 이렇게 작고 소중한 유의미한 결론이 몇 십년동안 지속되어 정말로 괜찮은 세상이 열리기를 기대하거나.



그러니 다들 정신차리는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남 탓만 할 건가. 지금도 남탓하려고 썼으니 나부터 정신차려야겠지. 그럼 스케치북에 글이라도 적어서 1인 시위라도 시작해야하나?


지금 세상은 엉망이에요! 하고-



정말 엉망인 건 우리 자신, 나 자신이다. 



나는 유용하게 쓰이지 못하는 예산들이, 지나가는 아이들의 청춘이 너무나 아깝다.

금같은 그 시간을 대체 왜 졸렬한 계산 따위나 하면서 지나야 하는 거냐.


아, 선생님이 그런 걸 시킨다고요? 학교가 그런다고요?

여러분 대학 서열에 대한 욕심을 버리세요. 모든 직업을 평등하게 생각하는 눈이, 모든 학문을 사랑하는 눈이 생기면 절대 교육은 이 꼴로 남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교육을 하고 싶은 교사는 차고 넘친다. 일 안하는 교사도 넘쳐나지만 현장에 와 보면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그만큼 많다. 그건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다.

어렸을 땐 어른이 되서 무언가 바꾸고 싶었는데. 이거 뭐야. 그저 톱니 하나가 되어 낡은 시계를 돌리고 있다고. 


열심히 노동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 나라인데 왜 사람들이 행복해지질 않는 거냐.

이대로는 필즈상도, 노벨문학상도, 평범한 일상도 얻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아, 속 시원해.

결국 이 짜증도 내 갈증을 해소하고 끝이겠지.

방구석 키보드워리어. 현실에서 분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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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 오늘의 젊은 작가 9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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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2015년에 나온 책일 줄이야.


작년에 여기저기에서 많이 들리기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책인 줄 알았건만

영화화와 함께 급상한 책인가 보다.


'보건교사 안은영' 이라는 책이 인기가 많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듣고

아, 그래 보건 선생님들 고생 많이 하시지,

특히 2020년엔 코로나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지,

생각했는데

소설이라고 했다.

'또 교육도 모르는 것들이 교육 얘기하려나 보네'

라는 생각으로 시큰둥 했는데

판타지 같기도 하고 좀 독특하다고.


안 궁금한 척 하고 싶었는데, 그 말에 바로

"엥? 어떤?"

이라고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이고 말았다.


사실 핫한 인기를 끌고 있는 책은 

잘 안 믿는 읽는 편이라

안 읽으려고 했는데.

궁금해서 안 읽을 수가 있어야지..


그렇게 읽기 시작했는데 후루룩 다 읽어버렸다.


솔직히 재밌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진지한 고민이나 갈등은 담지 않았지만

읽는 내내 즐거웠고,

나로서는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회복하는 계기도 됐다.

그래, 애들은 저런 순수한 면이 있었지,


물론 실제 학교 생활은 즐겁기보단 슬퍼야 할 일들이 더 많지만,

그래도 안은영과 아주 조금 비슷한 사람들 몇몇이 떠올랐다.

참 부러운 사람들.

너무나 맑아서 불행을 불행으로 공감하지 않고

자기가 가진 맑음으로 그 불행을 치유할 수 있는 사람들.


나도 한 때는 안은영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글쎄 누구를 닮았을까.

영락없는 홍인표 아닌가. 대신에 재단 집안은 없는 홍인표.

다시 안은영처럼 가벼워지자고 다짐해본다.


읽는 동안 즐거웠다.

별점과 무관하게,

마음이 무거운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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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에 돌직구를 던져라
정성식 지음 / 에듀니티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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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적인 내용을 배우기 위해 신청한 연수에서

또 종이 교육을 하고 있다.

종이 교육을 받는 아이들의 마음이 이럴까?

스트레스 받던 차에 약 3년 전에 구매해둔 책을 이제야 완독했다.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고,

속이 뻥 뚫리는 기분도 들었으며

나 스스로를 되돌아볼 기회도 있었다.


이쯤 되면 반성 전문가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반성은 많이 하는데 실천은 하지 않는다.



자그마치 2014년의 책인데

여전히 이 책에 나오는 현실에 공감하고 있다는 건

학교 현장이 얼마나 보수적인지, 시대착오적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전히 공문을 통한 일거리가 양산되고 있고

우리는 제대로 된 교육과정을 짜보지도 않은 채 수업에 뛰어들고 있으며

아이들은 자기가 뭘 배우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배운다.


교사는 너무나 바쁘고

아이들은 참 바삐도 공부하는데

왜 학교는 발전하지 않는 걸까?


수많은 탁상공론들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지겨울 정도로 의견을 제시해도 나아지지 않는 과정들과

따라주지 않는 동료 교사들과

그래서 포기하게 됐던 선택들 또한 지나간다.

어떤 것은 큼직하고 어떤 것은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거대한 것보다, 아주 사소했던 수많은 선택들이 지금을 만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 또한 한다.

지겹다.

여전히 이 일은 내가 하지 말았어야한다는 생각을 한다.

공허하다.

감사하다는 말을 수없이 듣고 살지만, 그 말을 단 한 번도 피부로 느낀 적이 없다.

그러다 책에서 아래의 장면을 읽었다.



p.146

“아빠는 학교가 좋아?”

“글쎄, 좋을 때도 있지만 안 좋을 때도 있지.”

“에이, 선생님이 학교를 안 좋아하는데, 어떻게 학생들이 학교를 좋아해?”

아들이 무심코 던진 말은 충격이었다. 



늘 싫었다.

이상하게도,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참 소중한데 그런데도 학교는 참 싫었다.

하지만 어떻게 바꾸어야할지 몰라 헤맸었다.

그래도 작년을 계기로, 무언가 변화하려는 것 같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개인적인 이유일 수도, 혹은 사회차원의 미세한 진동인지도.

나 스스로가 그래야한다는 필요성을 누구보다도 절실히 느껴서인지도.

일개 교사지만,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고 싶다.



좋았던 구절들을 기록해 둔다.



p.27

교원의 업무를 경감하기 위해서 ‘공문 없는 날’ 등의 자구책이 시행되고 있으나 여전히 아쉬운 대목이 많다. 학교혁신을 주문하면서 쏟아지는 그 많은 공문, 심지어 ‘공문이 몇 개가 줄었는지 보고하라’는 공문을 볼 때면 말이다.



p.42

얼마나 소리 소문 없이 진행하는지 교육과정 전면개정 사실을 모르는 교사도 태반이다.



p.48

교사가 이렇게 긴 시간 문서 작업에 붙들려있다 보면 결국 아이들에게 소홀해지기 때문이다.



p.49

100대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예산도 만만치 않다. 교육부의 예산자료와 올해 100대 교육과정을 주관하는 전라남도교육청의 예산서를 참고해보니 해당 학교에 대한 시상금(3억 3천만 원), 인증패(6백만 원), 심사수당(3백만 원) 항목 이외에도 연찬회나 보고회 등의 명목으로 많은 예산이 잡혀있다.


p.69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업, 학교가 회사인가?



p.218

교수는 강의계획서를 학생들에게 나누어주는데, 교사는 교육과정을 학생들에게 나누어주지 않는다. 즉, 내부문서로만 이용한다. 교수가 강의계획서를 학생에게 나누어주는 이유는 강의 진도를 미리 알고 준비하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교사도 같은 의미로 교육과정을 학생에게 나누어주며 안내해야 하지 않을까?


p.240

혁신학교 교사들이 들으면 조금 서운하겠지만, 나는 혁신을 말로 하는 순간 혁신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한다.


p.242

장학지도라도 온다고 하면, 교사들 모두 빙 둘러앉아 공개수업할 교사를 먼저 ‘공개수배’부터 해야 했다. 어색한 침묵을 깰 용자가 나오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이도 여의치 않으면 등 떠밀거나 밀리기도 하고 이런 분위기가 싫어서 자원이라도 할까 말까 얼마나 고민했던가? 공개수업자로 선정되면 만인을 위해 희생하는 양 또 얼마나 자만에 빠졌던가?


p.258

나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왜 이렇게 바쁠까?’, ‘무엇을 하느라 바쁠까?’, ‘그 일들은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왜 바쁜지를 묻다 보니 결국엔 삶의 의미로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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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슈 2021-01-18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좋은 책이죠 헉신이되려면 일단 교사집단부터 정신차려야 된다고봅니다 너무 과거에 메여있고 자신을 그저 행정말단으로 취급한 구태를 내면화해 혁신에 저항조차합니다 검찰기레기만큼 나쁘진않지만 개혁을 싫어한단점에서 뭐가다를까싶기도합니다

봄밤 2021-01-18 16:26   좋아요 1 | URL
저는 교사가 공무원이라는 것, 일하는 교사는 너무 바빠 정작 그들은 교장 교감이 되지 못하는 현실, 너무 많은 업무를 열정적인 교사들에게 맡기는 관행, 제대로 된 연수가 제공되지 않으면서 겉모양만 바꾸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혁신은 필요하지만, 이 책에 나와있듯 혁신을 말로 하는 순간 혁신에서 멀어진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 전까지는 작은 톱니바퀴가 뭘 하겠나라는 회의감이 들었는데 작은 바퀴가 100번을 돌면 큰 톱니바퀴가 한 번 도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작은 톱니바퀴는 계속해서 마모되고 있고 언젠간 멈추게 되겠지만요... 교직에 계시다면 알고 계실테지만 함께 간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