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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평점 :
사랑이 그랬다
1
어떤 원한은 원하는 마음이 짓는 무서운 표정이다. 어떤 악의는 아끼는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뱉는 잔인한 말실수다. 그것들이 그저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는 이유는 원한과 악의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원하고 아끼는 그 마음 때문이다. 사랑의 뒷면에, 그것들은 있다. 사랑이 끝나지 않으면 그것들도 끝나지 않는다. 그것들이 끝나지 않으면 사랑도 끝나지 않는다. 그때는 바꾸어 말할 수 있다. 그것들의 뒷면에, 사랑은 있다. 이것은 수사적으로는 같은 말이지만 서사적으로는 반대말이다. 서사에서, 사랑의 이면에서 원한을 발견하면 이야기는 시작되고, 원한의 이면에서 사랑을 발견하면 이야기는 종료된다. 그렇다면 뒷이야기는 누가 굴리는가.
내가 굴릴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관념으로, 감각으로.
2
그러면 이야기는 과연 끝이 나는가? 사랑이 끝나지 않으면 이야기도 끝나지 않는다. 줄여 쓰면 더 좋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끝나지 않는 이야기에 마주/기대서서, 이 책 『대불호텔의 유령』은 왜 있는가/읽는가?
이 소설을 간과하려는 시도가 성공하지 못하는(신형철) 이유는 사랑을 그만두려는 시도가 성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애-관계가 아니라 사랑-감정에 대해 말하자면 단언컨대, 절대로 사랑하지 않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없다. 우리는 사랑한다. 5cm 거리에서 바라보면 눈동자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호수가 되는 사람을, 병석에 누워 갈아 만든 과일 주스를 삼키는 엄마를, 외로울 때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몸을 비벼오는 고양이를, 주로 멍청하고 가끔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멍청하지만 그래도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나 자신을. 그래서 우리에겐 그 모든 사랑의 뒷면을 차분히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하다. 사랑은 나 혼자 두는 체스가 아니어서, 우리가 내 머릿속 가장 완전한 사랑의 조각상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현실의 사랑은 반드시 침식된다. 그 상처의 틈바구니를 악의는 가장 좋아한다. 달콤한 케이크에 먼저 앉는 곰팡이처럼. 그럴 때 내가 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내가 듣는 것은 들리는 것이 아니다. 기억은 왜곡된다. 5초 전의 기억조차. 나는 종종 내가 아니다. 나는 절대 내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뭐지? 유령인가?
에밀리 브론테일지도 모르지.
그게 무엇이건, 내가 무엇이기만 하다면.
3
이해의 범주는 늘 포근하다. 그렇게 느낄수록 침입은 더욱 불쾌하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웅성대는 소리를 듣는 일은 괴로워도 도망칠 수 없는 과업이다. 최소한 쓰는 사람에게는.
사랑과 원한이 공유하는 특성 가운데 하나는,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나 혼자 이해하게 되거나, 남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나 혼자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자주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들 바깥의 풍경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가끔 내 바깥에 내가 있다.
“영현아, 너는 이해할 수 없을 거야.”(161)
이 말을 하는 이의 마음과 듣는이의 마음을 다 알 수 있어서, 오래 머물러 생각했다. 이해할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없는 마음에서, 이해할 수 없음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되도록,
1'
사랑 이야기라면 환장하는 syo가 환장했으니 틀림없다. 이 소설은 원한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나는 소설이 전혀 아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걱정은 넣어두셔도 좋겠습니다.
이건 그냥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다른 많은 이야기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