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닉
아니 에르노 지음, 조용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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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닉 / 아니 에르노 / 문학동네
낭독녹음 시작 2023. 4.12.
완료. 2023.5.17. 총358쪽



녹음하며 가장 많이 발음한 단어는 “전화”다. 먼저 연락할 길 없이 35세 러시아 남자에게서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48세 여자의 일기 대부분은 전화가 왔다 혹은 전화가 오지 않는다,로 시작한다.

페이퍼 제목으로 쓴 문장은 원제가 “Se Perdre”인 이 책의 125쪽 마지막 문장이다. 번역 제목이 좀 더 유혹적이긴 하지만 원제 그대로 “길을 잃다”로 번역해도 괜찮지 않았을까. 아무튼 에르노가 지극히 개인적인 내면일기를 공개한 이유가 숨어 있을 듯. 육체적이고 구체적인 좀 더 내밀한 감정들, 우리 중 누군가에게도 원초적으로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것이기에. 1988.9.27. 시작해 1990.4.9. 월요일의 일기로 맺는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이 나오고 10년이 흘러 잊고 있던 일기장에서 나온 <탐닉>은 같은 남자와 같은 화자(에르노 자신)가 등장하는 이야기다. 실제 겪은 것만 쓰겠다고 공표한 에르노가 밝혔듯 자신의 실제 이야기이고 지독하게 솔직하게 보이는 방식을 취한다. 자신의 욕망과 욕망에서 오는 고통과 열정에, 그리고 미테랑 대통령이 말했다는, 자기 앞에 둔 시간 즉 젊음을 붙들고자 하는 열망에 솔직하게 보이는 방식이다. 예리한 칼로 저며내듯 고도의 전략이고 따라가기 어려운 특허품. 아, 아니 에르노, 바로 느껴지는 문체. 이 모든 욕구는 결국 글쓰기를 위한 욕망이고 또한 글쓰기가 욕망을 유지하게 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 현재를 살아내는 일.

345쪽 이 책의 결미 마지막 문장은 프라하성의 지하묘지로 들어가는, 영화 <카프카>의 카프카, 그 심연을 소환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위험한 어떤 것을 쓰고자 하는 욕구
마치 무슨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꼭 들어가야만 하는
지하실의 열린 문
같은. ”

언제쯤이나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사물을 관찰할 것인가?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것들을 더는 쓰지 못할 것이다. 그전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열정, 욕망, 질투가 빚어내는, 너무나 미세한 인간적인 움직임에 유의할 수 없을 것이다.
오후 끔찍한 기다림. 욕망과 공허. 비육체적인 욕망을 내 몸에서도 구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나는 ‘젖어 있지 않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텅 비고, 울고 싶을 정도로 나 자신과 분리되어 있다. - P182

질투의 심연과 강렬한 비애. 열여섯 살 때 적어놓았던 프루스트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비애란 끊임없이 저항할수록 점점 더 그 마수에 빠져들어, 지하 통로를 통해 당신을 진실과 죽음으로 인도하는 말없는 하인 같은 존재다. 죽음을 만나기 전에 진실을 만난 사람들은 행복하다." 혐오와 슬픔 속에서 서너 번 자위행위를 한다. 그래도 슬픔은 남고, 그로 인한 피로감 때문에S가 평범한 바람둥이인지 아니면 ‘유혹할 만한‘ 남자인지에 대한 불확실성 사이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다. 소문대로 쿠바 여자들이 저돌적이라면 두 가지 불확실성 사이에서 고민할 필요도없다. - P185

원인이 꼭 S인 것은 아니다. 우리 관계에 관한 성찰이 조금은 가능해진 현재로서, 글을 써야 한다는 절대적필요성과 4월 말부터 생긴 삶의 고통을 제대로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는 죽음, 창작, 섹스가 뒤섞여 있는 구덩이 속에 빠져서, 그 상황을 빤히 보면서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체험을 엮어서 책으로 내야지. - P194

우리가 매번 만날 때 일어나는 일들의 세부사항과 생각들을 적어놓을 걸 그랬다. 1) 내가 입었던 옷, 2) 내가 준비했던 음식.
3) 그가 도착했을 때 내가 있었던 장소. 삶을 낭만적인 문학의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아름다운 연출, 아직도 이런 사치를 누릴 수 있을까.
3시 10분, 아직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 P220

이렇게 해서 오늘, 스물여섯 해 동안 기록해온 내 일기의 녹음이 현재의 시점과 만났다. 이것은 이야깃거리가 아니다. 다만 자기중심적인 고통을 펼쳐놓은 것뿐이다. 그러나 나는 바로 그것을 통해 인류의 나머지, 다른 사람들과 교감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 P243

나는 이 열정을 1년 동안 살았다.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여름을, 7월 중순부터 온 여름을 끝까지 살아내기 위해 이 열정에 바쳤다. 또 한번 전율하며 자문한다. "현재란 무엇인가?" 현재는이곳에 존재한다. 그것은 버거운 미래와 두려움이다. 그를 볼 것이라는 행복감과 서너 시간의 만남이 흐른 후에 그를 더이상 볼수 없을 것이라는 공포감. 멍청한 노래 한 곡이 머릿속을 맴돈다. - P253

찬란한 가을 햇볕 아래 반짝이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끝없이 작년을 생각한다. 이 열정으로 내 인생의 걸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아니, 오히려 내가 그것이 걸작품이길 바랐기 때문에 이 관계가열정이 된 것이다(미셸 푸코:"최고의 선은 자신의 인생을 예술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 P256

또한 내게 글쓰는 작업은 도덕적 기능을 지닌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에는 글쓰기에 대한 집념을 잃지 않기 위해서 사랑의 모험을 원치 않았다. 오랫동안-아직도 그렇지만글을 써왔기 때문에 쾌락적인 삶은 내게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내 남편이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그가 글을 쓰지 않기 때문에 용서했다. 글을 쓰지 않는 인생이 다른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먹고,
마시고, 섹스하는 걸 빼고는. - P267

내가 머물 곳은 어디인가, 사랑은 오직 죽음을 대가로 존재한다ㅡ크리스타 볼프(『어디에도, 그 어디에도 없는 곳)
그녀는 또 이렇게 이야기 한다 때때로 나를 보완하기 위해서 나는 나머지 인류를 필요로 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바로 이 모자라는 부분 때문이다 - P274

S가 떠난 후로 거의 냉동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그리움과 추억과 사라진 애정으로 눈물 흘리다. 한 남자를 잃는다는 것은 한꺼번에 몇 해를 늙는다는 것, 그가 있었을 때는 흐르지 않았던 그 모든 시간을 한꺼번에 늙는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상상 속의 시간들을 한꺼번에 늙는 것이다. 이 욕망은 내가 어쩌면 다른 누군가와 똑같은 동화 같은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 P315

10~11월 일기장을 다시 읽는다. 벌써 이렇게 많은 것을 잊었다니. 보르헤스의 너무도 아름다운 이 문장, "수십, 수천 세기의 시간이 흘러가지만,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현재뿐이다. 공기 중에, 땅에, 바다에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바로 나한테 일어난 일뿐이다." 나는 그 뜻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현재, ‘현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올여름 내내 자문했다.
오로지 나 자신…… 너무나 확실하다. - P318

아버지는 계급에 대한 의식이다. 출신을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열두 살의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사건은(아니지, 나는 그걸 알고 있었어. 설명 가능한 일이었어) 그 나름의 동기를 가지고있었다. 내 어머니의 공격성, 그녀의 신분상승 욕망, 모든 사람들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 - P337

지난 11월 6일 (내가 S를 마지막으로 본 날) 이래 처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끼며 눈을 떴다. 그럼에도 이 행복이 아무 동기가 없다는 사실이 약간은 나를 슬프게 한다. 어쨌든 쓸 것을 어떤 한 가지로든 정해야겠다. 이제 그만 망설여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위험한 어떤 것을 쓰고자 하는 욕구. 마치무슨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꼭 들어가야만 하는 지하실의 열린문 같은. -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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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5-18 0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르노 글을 본 적 없지만 자기 일을 솔직하게 쓴다니 쉽지 않은 거네요 처음부터 그런 글만 쓰겠다 생각하다니... 아무도 따라하기 어렵겠습니다 아주 없지는 않겠네요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 힘들겠습니다


희선

프레이야 2023-05-18 19:59   좋아요 2 | URL
애착과 욕구가 있으니 기다림이 있겠지요. 기다릴 일이 없는 것보다는 나을지도요.
희선님 이곳엔 하루종일 부슬비가 내려요.
에르노는 읽을수록 늪입니다.

페크pek0501 2023-05-18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르노의 작품을 읽어 보지 않았는데 호기심은 생깁니다.
인간이 어디까지 솔직할 수 있는지가 궁금하거든요. 장바구니에 담겠습니다.^^

프레이야 2023-05-18 20:03   좋아요 0 | URL
솔직을 연필 삼아 쓰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간혹 구체적 묘사에 확 놀랍기도 합니다. 그보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게 매력이랄까요. 자신의 이야기를 써도 자기검열에 먼저 걸리기 마련인데 말이죠. 이 책부터 읽으면 별로일 수도 있어요 페크님.

그레이스 2023-05-18 23: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탐닉, 집착, 단순한 열정 중 단순한열정만 읽기로 했는데... ^^*

프레이야 2023-05-19 12:11   좋아요 1 | URL
단순한 열정, 예전에 읽고 올해 초 영화도 봤어요 그레이스 님 ^^

얄라알라 2023-06-05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의 음성으로 접하는 아니 에르노는?^^ 바쁘실 텐데, 신경쓰실 일도 많으실 텐데
나눔의 열린 마음으로 사시는 모습에서 자극받습니다 ~~

프레이야 2023-06-05 17:18   좋아요 1 | URL
얄라님 안녕하세요 ~ 깊고 넓은
독서생활에 늘 박수 보냅니다. 여름인가 싶을 정도로 한낮 기온이 높네요. ^^

2023-06-05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녀왔어요. 너무 좋으네요. 날씨도 책방도.
낯익은 길이다 싶더니 통도환타지아를 지나서 마을로
더 들어갔어요. 아이들 어릴 적에 데리고 갔었던 곳인데
놀이공원은 폐장한 것 같습니다.
책방엔 오전부터 사람이 많았어요.
두 분이 키우신 새싹도 줍니다.
우린 완두콩 새싹을 받았어요.
줄을 서서 결제하고 잔디마당에 나와 볕을 쫌 쐬었어요.
위쪽으로 더 걸어 올라가면 신정희 도예지가 있어요.
거기까지 가는 길에서
장남 신한균 님을 가다오다 만났습니다.
신의 그릇, 한번 읽어주세요, 라고 인사하시네요.
찾아보니 역사소설입니다. 품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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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4-27 15: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벌써 다녀오셨군요 ^^ 소식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가보고 싶네요.

프레이야 2023-04-27 16:12   좋아요 3 | URL
수하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사람들 기차 타고 왔다는 말이 여기저기 들렸어요. 좋은 기운 모이는 곳 같아요.

페넬로페 2023-04-27 15: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회되면 한 번 다녀오고 싶어요^^

프레이야 2023-04-27 21:34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 님 안녕하세요
책읽는나무 님 관할구역인데 말이죠.
시찰 잘하고 계시겠죠. 저 아래는 극성유튜버들이 아직 좀 있더군요.

거리의화가 2023-04-27 16: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회가 될 때 가봐야겠습니다^^ 좋아보이네요!ㅎㅎㅎ

프레이야 2023-04-28 11:40   좋아요 2 | URL
네. 좋은 날 나들이 가보세요 화가 님 ^^

햇살과함께 2023-04-27 17: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찍 다녀오셨네요~
저도 휴가철 계획 세워야겠는데요~!!

프레이야 2023-04-28 11:41   좋아요 2 | URL
오월 연휴 계획요. 좋으시겠어요.
석가탄신일 맞이 등이 거리에 달려 있었어요 ^^

stella.K 2023-04-27 18: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넘 멀어서 갈 수 있을 거 같진않지만 멋진 것 같습니다.
인간미 넘치고. 늘 북적일 것 같습니다.^^

프레이야 2023-04-28 11:41   좋아요 3 | URL
공간은 넓지 않은데 기운이 참 좋았어요. 밝고 활기차고 전망도 툭 트여서는.
늘 북적이면 좋겠네요^^

세실 2023-04-27 19: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오늘 직원이랑 평산책방 가보고 싶다 얘기했는데 역시~~
저도 조만간 가야겠습니다^^

프레이야 2023-04-28 11:42   좋아요 3 | URL
어디든 훌쩍 잘 떠나시는 세실 님.
날씨도 너무 좋은데 책방까지 완벽하네요^^

렛잇고 2023-04-27 2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사진도 너무 잘 찍으셨네요!!! 저도 가보고 싶습니다!^^

프레이야 2023-04-28 11:42   좋아요 3 | URL
어여 가보세요 렛잇고 님~^^

Rosie 2023-04-27 2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좋으셨겠어요 ㅠㅠ 저두 곧 가려구요!!

프레이야 2023-04-28 11:50   좋아요 1 | URL
네. 전국에서 많이 오시는 거 같았어요. 젊은층도 의외로 많아서 반가웠고요.
양지바른 곳이라 참 아늑했어요. ^^

psyche 2023-04-28 0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다녀오셨군요. 저도 한국 가면 꼭 가보리라 마음 먹고 있어요.

프레이야 2023-04-28 11:44   좋아요 2 | URL
오호 님 언제 오시려나요.
꼭 가보시길요~^^ 동네 일대가 참 좋았어요

2023-04-28 06: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28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bookholic 2023-04-28 0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저도 가보고 싶습니다~~^^
책방 주인님은 잘 계시던가요?^^

프레이야 2023-04-28 11:45   좋아요 3 | URL
책방주인을 못 보고 와서 다음에 한번 더 노려보려구요 ^^ 인생 후반 한 인간으로서 부럽더군요.

yamoo 2023-04-28 17: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가보고 싶은 책방이에요!!!

프레이야 2023-05-01 21:58   좋아요 0 | URL
야무 님도 한 번 가보세요 조만간^^

희선 2023-04-30 0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평산책방 몰랐어요 다들 아시다니... 찾아보니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한다는 말이 나오는군요 멋진 책방이네요 문 연 지 며칠 안 됐군요

프레이야 님 사월 잘 보내주고 오월 잘 만나세요


희선

프레이야 2023-05-01 21:58   좋아요 1 | URL
희선 님 오늘 어느새 오월로 들어셨네요
날이 왜 이렇게 잘 가는지요. 책방 자리가 참 좋아요 ^^

페크pek0501 2023-04-30 10: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멋져요!!
잘 다녀오셨습니다. 소식 전해 주셔서 사진까지 잘 봤습니다.

프레이야 2023-05-01 21:56   좋아요 1 | URL
페크 님 안녕하세요^^
주말엔 발길이 북적이나 봐요

얄라알라 2023-05-01 17: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두콩이 성장기도 중간 중간 올려주실거죠?
프레이야님, 올려주셔서 감사드려요

프레이야 2023-05-01 21:56   좋아요 2 | URL
얄라 님 안녕하세요
식물 잘 키우시는 분에게 드렸는데 잘 크겠죠
덩굴을 감고 자라는 식물이라고 하네요. ^^

hnine 2023-05-06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혹시 이전에 프레이야님 대문 사진 아래 적혀 있던 말이 Rose Wylie의 말이었던가요?
오늘 nama님 포스팅 보다가 생각이 나서요.

프레이야 2023-05-07 00:1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나인님. 요즘 뜸했어요.
그 문구는 윌리 호니스의 말이었어요.

기억의집 2023-07-03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문대통령에게 너무 실망해서.. 갈지 모르겠어요. 프님 덕분에 서점 내부 보니 한적하면서 여유로워 보여요!!

2023-07-03 1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대전시 동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구석으로부터”에서
여울 님의 그림전이 열립니다. 이 달 말까지입니다.

포스터와 여러가지 시리즈 중 두 가지만 첨부합니다.
그림이 날로 날로 깊어지네요. 여울 님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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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23-04-08 14: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감사드려요. 여의치가 않아 긴댓글을 쓸 수 없어 아쉽네요. 지나시는 알라디너분들 꼬옥 둘러가세요.

서니데이 2023-04-09 21:04   좋아요 0 | URL
전시 축하드립니다. 대구에서 전시중이라서 가볼 수는 없지만, 예쁜 작품 잘 봤습니다.^^

2023-04-09 2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3-04-12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울 님의 그림전, 대전이군요. 아쉽게도 멀군요. 이젠 먼 곳에 가는 게 부담스러운 나이가 됐어요. ㅋㅋ

프레이야 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고 계셨지요?
언제 나타나시나 하고 기다렸는데 반갑습니다.^^

프레이야 2023-04-17 19:21   좋아요 0 | URL
페크님 서울에선 여기보다는
가까울 듯요 ^^. 기차 타고 휭~ 가보고 싶은데 제 사정이 좀 그래서 좀 기다려보고 있어요. 반겨 주셔서 고마워요 ☺️

2023-04-12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17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가 오고 있다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명령하고 결의하고
‘평범하게 되려는 일‘ 가운데에
해초처럼 움직이는
바람에 나부껴서 밤을 모르고
언제나 새벽만을 향하고 있는
투명한 움직임의 비애를 알고 있느냐

순간이 순간을 죽이는 것이 현대
현대가 현대를 죽이는 ‘종교‘
현대의 종교는 ‘출발‘에서 죽는 영예
그 누구의 시처럼

그러나 여보
비오는 날의 마음의 그림자를
사랑하라
너의 벽에 비치는 너의 머리를
사랑하라
비가 오고 있다
움직이는 비애여

결의하는 비애
변혁하는 비애......
현대의 자살
그러나 오늘은 비가 너 대신 움직이고 있다
무수한 너의 ‘종교‘를 보라

계사 위에 울리는 곡괭이소리
동물의 교향곡
잠을 자면서 머리를 식히는 사색가
--- 모든 곳에 너무나 많은 움직임이 있다

여보
비는 움직임을 제(制)하는 결의
움직이는 휴식

여보
그래도 무엇인가가 보이지 않느냐
그래서 비가 오고 있는데!


- 김수영전집1 , 민음사


————

어제는 하루종일 봄비가 내리더니 지금은 화창한 하늘 아래 꽃들이 자리바꿈을 하고 있다.
올해 첫 낭독도서로 김유담 소설집 <돌보는 마음>을 골랐다. 부산원북원도서 후보작이라 미리 녹음을 해둔다. 어제는 14번 파일로 녹음을 완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가 쏟아졌다. 앞유리에 와이퍼가 바쁘게 움직이고 차창 밖은 어둡고 시야가 침침하였다. 한 곳엔 접촉사고가 나 길게 차량이 막혀 있었다. 천천히 가자고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배캠을 들으며 오는데 “비는 움직이는 비데”라고 김수영 시인이 그랬다고. 엉? 철수씨도 눈이 침침한가 보다 싶어 어찌나 웃었던지. 곧바로 정정하면서도 특유의 배짱으로 “비데도 움직이는 거 아니냐고.“


비가 오면 와이퍼 움직이듯 우리 마음이 작동한다.
마음이 조급해지기 쉽지만 와이퍼와는 반대로 느리게 움직인다.
시인은 비를 움직임을 제하는 결의… 라 했다.
밖으로 내달리는 속성과 마음의 속도를 붙잡아야 한다.
집으로 들어가 내 머리와 심장에 좀더 매달려 볼 일이다.
“비는 움직이는 휴식… 그래서 비가 오고 있는데! ”
무사히 집에 당도했다.

그동안 안부를 건네준 상냥한 마음과 묵묵히 기다려준 마음 그리고 단단한 목소리를 전해준 마음들을 잊지 않는다. 늘 그렇듯 어느 한 시기를 지나면 새봄이 와 있고 꽃들이 피어 있다. 고양이가 발소리도 없이 내 발치에 와 있듯이.



_ 돌보는 마음 / 김유담

여성의 돌봄 노동 그 회로를 다각도로 비추는 이야기 열 편이 담긴 소설집이다. 산후조리원 요양병원 맘카페 등 여성의 오랜 돌봄노동도 사회적 회로를 가지는데 그것이 노동을 덜어준다기보다 가중되거나 여전하다. 여기저기서 그 실태가 드러난다. 남성은 빠져 있고 그 자리에서 여성은 중첩된 돌봄을 이어간다. 실제 우리 사회의 이야기라 공감되는 내용이다. <이완의 자세>를 쓴 밀양 출생 83년생 저자가 직간접적 몸과 마음으로 체험했을 이야기. 어떤 단편은 82년생 김지영이 떠오른다. 경상도 사투리 대사 읽기, 재미있었다.



_ 바이닐 / 마이크 에번스 / 박희원 옮김

번역을 한 이는 1993년에 태어난, 나의 첫 분신이다. 이 일을 시작한 후 출판되어 나온 첫 도서다. 좋아하는 분야의 책이라 더욱 즐거웠던 것 같다. 내가 보는 그는 욕심없이 꼬박꼬박 사는 삶을 추구하며 정확하고 성실한 번역가이다. 번역가로서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바이닐, 책도 문장도 반듯하고 야무지다. 무선제본이라 책장 넘기는 것도 마음에 든다. 양쪽이 활짝 편평하게 펼쳐져 컬러 화보와 자세한 내용을 읽기에 편안하다. 팝과 엘피와 디자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반가운 도서일 듯.
작년 말에 나왔는데 이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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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4-06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꽃이 이쁩니다.
그리고 첫 분신님,
첫 번역 책, 표지도 이쁘네요.
축하드리고 싶네요.
엄마 닮았음 아무렴! 반듯하고, 야무지고, 성실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다 뿌듯합니다.
꼭 사서 읽어보겠습니다.

봄이 끝나가는 건가? 싶은데, 남은 봄도 즐거이 보내시길 바랍니다♡

프레이야 2023-04-08 23:02   좋아요 1 | URL
어젠 봄비가 단비라 참 좋았어요
저 안 닮아서 가능한 것 같아요 ㅎㅎ
같이 뿌듯해 주셔서 고마워요~ ^^
안그라픽스가 디자인 관련도서로 괜찮은 도서를 꾸준히 내온 데라는 걸 알았어요.

세실 2023-04-06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희원 번역가! 멋집니다.
저도 응원할게요^^
프레이야님 이제 다리는 괜찮으세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프레이야 2023-04-06 20:17   좋아요 0 | URL
세실 님 고마워요. ^^ 희원이 기억하시는구나. 대견하기도 하고 마음이 뭉클했어요. 엄마 마음이 다 그렇죠~ 전 많이 나아지고 있어요.

stella.K 2023-04-06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죠?^^

프레이야 2023-04-06 20:15   좋아요 1 | URL
스텔라 님 그간 안녕하셨지요. 전 잘 지내고 있어요 봄입니다^^

stella.K 2023-04-06 20:27   좋아요 1 | URL
ㅎㅎ 인사가 너무 성의 없죠?
딸래미 번역서 냈다고 자랑하시는데 반응도 없고.
지난번 우리 문자인가 댓글 나눈 후
아, 프님이 돌아오셨나 보다 싶어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맞아야지한 게 너무 했나 봅니다.
제가 이렇게 멋대가리가 없습니다.ㅠㅠ
희원이가 번역가가 됐군요.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

프레이야 2023-04-06 21:08   좋아요 2 | URL
ㅎㅎ 그러니 언제든 우리의 둥지이지요. 포에버^^ 축하 고마워요. 전할게요. 꽤 괜찮은 번역가로 활동하길 기대합니다 엄마로서 독자로서. 워낙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라 잘 하리라 믿어요.

cyrus 2023-04-06 1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알라딘에 글 잘 쓰는 분들이 많네요. 제 댓글 위에 있는 분처럼 책도 써서 내시고, 이번에 프레이야님이 번역가로 활동하시다니 정말 멋집니다. 첫 번역서 출간 축하드립니다. ^^

프레이야 2023-04-06 20:15   좋아요 1 | URL
아니ㅠ 제가 오해하게 썼나요. 제가 아니옵니다. 저의 첫 딸입니다. 다음에 더 자세히 페이퍼 써야겠어요. 반가워요 사이러스 님.

cyrus 2023-04-06 20:26   좋아요 1 | URL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프레이야님의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해서 큰 실수를 하고 말았네요. ^^;;

프레이야 2023-04-06 21:05   좋아요 1 | URL
아니어요 님^^ 오랜만이라 더 반가워요. 고맙습니다.

자목련 2023-04-07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산으로 온 큰 따님이 번역을 하시는군요. 따님이 번역하여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기대합니다.
프레이야 님의 글도 정말 반갑고요.
봄비가 그치고 막상미세먼지가 가득하지만 그래도 봄이니, 봄처럼 환하게!!

프레이야 2023-04-07 09:25   좋아요 1 | URL
네. 자목련 님 😊 감사합니다^^
그간 여여하셨지요. 그리운 이름들 이곳에 다 있네요. 봄꽃들이 미세먼지 견디면서 어찌 환한지요.

hnine 2023-04-07 1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따님이 얼마나 대견하세요.
제가 다 감격입니다!

프레이야 2023-04-07 17:50   좋아요 0 | URL
감격! 엄마 마음이죠^^
감사합니디 나인 님 ~

꼬마요정 2023-04-07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 님!! 축하드려요!! 따님 너무 멋져요^^ 다른 나라의 글을 우리 글로 옮기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데 너무 멋지고 부럽습니다!!

경상도 사투리 낭독 하실 때 신나셨을 것 같아요 ㅋㅋㅋ

프레이야 2023-04-07 17:52   좋아요 2 | URL
요정님 으샤으샤 고마워요^^
갱상도 사투리 완전 제대로 한 거 같아요 ㅎㅎ
감정이입 격하게 돼가지고 그다음 문장도 막 그 톤으로 읽을 뻔했어요.

희선 2023-04-08 0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 소리 없이 발치에 온 고양이를 보면 무척 좋겠습니다 봄은 고양이를 닮았군요 따님이 한국말로 옮긴 첫번째 책이 나왔군요 축하합니다 프레이야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프레이야 2023-04-08 10:10   좋아요 2 | URL
희선 님 고마워요.
고양이랑 동거 꽤 괜찮답니다. ^^

페넬로페 2023-04-08 15: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반갑습니다^^
프레이야님의 분신의 첫 번역작품 출간을 축하드려요. 제 마음이 더 뿌듯하고 좋아요^^

프레이야 2023-04-08 20:11   좋아요 3 | URL
와락 고맙습니다 페넬로페 님^^
봄밤 느긋하게 보내세요~

기억의집 2023-04-11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큰 따님이 출간하셨군요. 구매 들어갑니다~

프레이야 2023-04-17 19:19   좋아요 0 | URL
어마나 기억의집 님 고맙습니다
잘 계시지요.

기억의집 2023-04-17 19:26   좋아요 0 | URL
네 저는 잘 있어요. 프님은 잘 계신지요??!! 그리고 진심 따님 번역 축하드려요. 구매해 보고 있어요. 예전 기억 새록새록 생각 나 추억을 정리 하는 책이었어요~
 

소설가는 많은 경우, 자신의 의식 속에 있는 것을 ‘스토리‘라는 형태로 치환置換해서 표현하려고 합니다. 원래 있었던 형태와 거기서 생겨난 새로운 형태 사이의 ‘낙차‘를 통해서, 그 낙차의 다이너미즘을 사다리처럼 이용해서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것입니다. 이건 상당히 멀리 에둘러 가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입니다. - P20

그것은 뭐라고 해야 할까, 일종의 계시 같은 것이었습니다.
영어에 epiphany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어로 번역하면 ‘본질의 돌연한 현현‘ ‘직감적인 진실 파악‘이라는 어려운 단어입니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어느 날 돌연 뭔가가 눈앞에 쓱 나타나고 그것에 의해 모든 일의 양상이 확 바뀐다‘라는 느낌입니다. 바로 그것이 그날 오후에 내 신상에 일어났습니다. 그 일을경계로 내 인생의 양상이 확 바뀐 것입니다. 데이브 힐턴이 톱타자로 진구 구장에서 아름답고 날카로운 2루타를 날린 그 순간에 - P46

그리고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지, 그 개략은 처음부터 상당히확실했습니다. ‘아직은 잘 쓰지 못하지만 나중에 실력이 붙기시작하면 사실은 이러저러한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합당한 내모습이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그 이미지가 항상 하늘 한복판에북극성처럼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냥 머리 위를 올려다보면 됩니다. 그러면 나 자신의 지금 서 있는 위치며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잘 보였습니다. 만일 그런 점이없었다면 아마 나는 곳곳에서 상당히 헤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나 자신의 체험에 따라 생각한 것인데, 자신만의 오리지널 문체나 화법을 발견하는 데는 우선 출발점으로서 ‘나에게 무엇을 플러스해간다‘는 것보다 오히려 ‘나에게서 무언가를 마이너스 해간다‘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 P105

내 생각에는(이라고 할까, 그렇기를 바라는 것인데) 그런 자유롭고 내추럴한 감각이야말로 내가 쓰는 소설의 밑바탕에 자리한 것입니다. 그것이 기동력이었습니다.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엔진입니다. 다양한 표현 작업의 근간에는 늘 풍성하고 자발적인 기쁨이 있어야만 합니다. 오리지낼리티는 바로 그러한 자유로운 마음가짐을, 제약 없는 기쁨을, 많은 사람들에게 최대한생생한 그대로 전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구와 충동이 몰고온 결과적인 형체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또한 순수한 내적 충동이란 그 자체의 형식이나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습득해서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 P109

@@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만일 당신이 뭔가자유롭게 표현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것보다 오히려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원래 어떤 것인가‘를, 그런 본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라는 문제를 정면에서 곧이곧대로 파고들면 얘기는 불가피하게 무거워집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야기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자유로움은 멀어져가고 풋워크는 둔해집니다. 풋워크가 둔해지면 문장은 힘을 잃어버립니다. 힘이 없는 문장은 사람을-혹은 자기 자신까지도 끌어들일 수 없습니다.
그에 비하면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나비처럼 가벼워서 하늘하늘 자유롭습니다. 손바닥을 펼쳐 그 나비를 자유롭게 날려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문장도 쭉쭉 커나갑니다. 생각해보면, 굳이 자기표현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사람은 보통으로, 당연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당신은 뭔가 표현하기를 원한다. 그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운 문맥 속에서 우리는 의외로 자신의 본모습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 P110

소설가로 적합한 사람은 이를테면 ‘이건 이렇다‘라는 결론이 머릿속에서 내려지더라도, 혹은 자칫 내려질 것 같더라도, ‘아니,
잠깐, 어쩌면 이건 나 혼자만의 억측일 수도 있어‘라고 멈춰 서서 다시 생각해보는 사람입니다. ‘세상일이란 그리 쉽게 결정할수 있는 게 아니지. 나중에 뭔가 새로운 요소가 불쑥 튀어나오면 얘기가 백팔십도 달라질지도 모르잖아‘라는 식으로. - P120

통상적으로 가벼운 것으로 취급되던 것이 시간의 경과와 함께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획득하고,
일반적으로 묵직하다고 여겨졌던 것이 어느새 그 무게를 잃고형해만 남습니다. 지속적 창조성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시간의 도움을 얻어 그런 과격한 역전을 몰고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소재가 나에게는 없다‘고생각하는 사람도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약간만 시점을 바꾸면, 발상을 전환하면, 소재는 당신 주위에 그야말로 얼마든지굴러다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당신의 눈길을 받고 당신의 손에 잡혀 이용되기를 기다립니다. 인간의 삶이란 얼핏 보기에는 아무리 시시하더라도 실은 그런 흥미로운 것을 자연스럽게 줄줄이 만들어냅니다.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건전한 야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키포인트입니다. - P137

내가 경애하는 작가 레이먼드 카버도 그런 ‘망치질‘을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작가의 말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편의 단편소설을 써내고그것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고 쉼표 몇 개를 삭제하고, 그러고는다시 한 번 읽어보고 똑같은 자리에 다시 쉼표를 찍어 넣을 때,
나는 그 단편소설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라고. 그 기분, 나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것과 똑같은 일을 나도 수없이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가 한계다. 이 이상 더 고치면 도리어 맛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라는 미묘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그는 쉼표를 빼고 넣는 것을 예로 들어 그 포인트를 적확하게시사한 것입니다. - P164

‘근육은 빠지기 쉽고 군살은 붙기 쉽다‘는 것이 우리 몸의 하나의 비통한 명제입니다. 그리고 그 같은 감퇴를 보완하려면 체력 유지를 위한 정기적이고 인위적인 노력이 불가결합니다.
또한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이것도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얘기지만 그에 따라 사고 능력도 미묘하게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사고의 민첩성, 정신의 유연성도 서서히 상실됩니다. 나는 어느 젊은 작가와 인터뷰할 때, "작가는 군살이 붙으면 끝장이에요"라고 발언한 적이 있습니다. 그건 좀 극단적인 말이었고예외도 물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물리적인 군살이든, 메타포로서의 군살이든.
많은 작가들이 그런 자연스러운 쇠퇴를 문장 기법의 향상이나성숙한 의식 같은 것으로 보완하지만 거기에도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아울러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뇌 내에서 태어나는 해마 뉴런의 수는 유산소운동을 통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고 합니다. - P183

@@소설가의 기본은 이야기를 하는 것tell a story입니다. 그리고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말을 바꾸면 의식의 하부에 스스로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마음속 어두운 밑바닥으로 하강한다는 것입니다. 큼직한 이야기를 하려고 할수록 작가는 좀 더 깊은 곳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큼직한 빌딩을 지으려면 기초가 되는 지하부분도 깊숙이 파 들어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치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할수록 그 지하의 어둠은 더욱더 무겁고두툼해집니다. - P188

작가는 그 지하의 어둠 속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 즉 소설에 필요한 양분을 찾아내 손에 들고 의식의 상부 영역으로되돌아옵니다. 그리고 그것을 형태와 의미를 가진 문장으로 전환해나갑니다. 그 어둠 속에는 때로는 위험한 것들이 가득합니다. 그곳에서 서식하는 것은 때때로 다양한 형상을 취하며 사람을 미혹시키려 합니다. 또한 표지판도 지도도 없습니다. 미로같은 곳도 있습니다. 지하 동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칫 방심하면 길을 잃고 헤매고 맙니다. 그대로 지상에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 어둠 속에는 집합적 무의식과 개인적 무의식등이 뒤섞여 있습니다. 태고와 현대가 뒤섞여 있습니다. 우리는그것을 해부하는 일 없이 그대로 들고 돌아오는데 어떤 경우에그 패키지는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 같은 깊은 어둠의 힘에 대항하려면, 그리고 다양한 위험과일상적으로 마주하려면 반드시 피지컬한 강함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필요한지 수치로 제시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강하지 않은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강한 편이 훨씬 더 좋겠지요. 그리고그 강함이란 타인과 비교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강함이 아니라나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의 강함을 말합니다. - P189

자신의 내적인 혼돈을 마주하고싶다면 입 꾹 다물고 자신의 의식 밑바닥에 혼자 내려가면 되는것입니다. 우리가 직면해야만 할 혼돈은, 정면으로 마주할 만한가치가 있는 참된 혼돈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야말로 당신의 발밑에 깊숙이 잠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충실하고 성실하게 언어화하기 위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과묵한 집중력이며 좌절하는 일 없는 지속력이며 어떤 포인트까지는 견고하게 제도화된 의식입니다. 아울러 그러한 자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신체력입니다. 실로 재미라고는 없는, 말 그대로 산문적인 결론인지도모르지만 그것이 소설가로서의 나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그리고 비판을 받든 상찬을 받든 썩은 토마토 세례를 받든 아름다운 꽃 세례를 받든 나는 아무튼 그런 방법으로 글을 쓰는 것밖에는 그리고 또한 그렇게 사는 것밖에는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 P195

인생이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경향이 어느 한쪽으로기울면 인간은 늦건 빠르건 반드시 다른 한쪽에서 날아오는 보복(혹은 반동)을 받게 됩니다. 한쪽 편으로 기울어진 저울은 필연적으로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육체적인physical 힘과 정신적인 spiritual 힘은 말하자면 자동차의 양쪽 두 개의 바퀴입니다. 그것이 번갈아 균형을 잡으며 제 기능을 다할 때, 가장올바른 방향성과 가장 효과적인 힘이 생겨납니다.
이건 대단히 심플한 예지만, 만일 충치가 욱신욱신 아프다면책상을 마주하고 찬찬히 소설을 쓸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구상이 머릿속에 있고, 소설을 쓰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고, 풍성하고 아름다운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재능이 당신에게갖춰져 있다고 해도, 만일 당신의 육체가 물리적인 격한 통증에끊임없이 습격당한다면 집필에 의식을 집중하는 건 일단 불가능하겠지요. 우선 치과 의사에게 찾아가 충치를 치료하고ㅡ즉몸을 합당하게 정비하고 그런 다음에 책상 앞에 앉아야 합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간단히 말하자면 그런 것입니다.
너무도 단순한 이론theory 이지만 이건 내가 지금까지의 삶에서 내 몸으로 배운 것입니다. 육체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은 균형 있게 양립하도록 해야 합니다. 각각 서로를 유효하게 보조해나가는 태세를 만들어야 합니다. - P199

@@소설이란, 스토리란, 남녀와 세대 간의 대립이나 그 밖에 다양한 스테레오타입의 대립을 누그러뜨리고 그 날카로운 칼끝을 완화하는 기능을 가진 것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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