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렌디피티 - 위대한 발명은 ‘우연한 실수’에서 탄생한다!
오스카 파리네티 지음, 안희태 그림, 최경남 옮김 / 레몬한스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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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발명은 '우연한 실수'에서 탄생한다!'


완벽과 최고를 향해 달려온 인류를 허탈하게 하면서도, 당혹스러운 웃음 피식 한번 날릴 문장이다.

어이없이 웃고 지나갈 법한데, 어라? 그게 아니다. 지나가던 사람도 잡아 돌아오게 할만한 내용이다. 우연한 실수에서 다른 것도 아니고 코카콜라, 커피, 누텔라, 고르곤졸라, 샴페인이 나왔다면?


바로 이 우연한 실수를 하나로 나타내 주는 단어가 바로 이 책 제목 '세렌디피티'다.

먼저 세렌디피티가 무엇인가 궁금해할 만한데, 그 단어는 스리랑카의 옛 이름인 세렌디(Serendip)에서 따온 것으로 1754년 호레이스 월폴(영국작가, 미술가)이 만들었다. 오래된 페르시아 우화에 나오는 나라인 세렌딥이란 나라의 지아퍼 왕에겐 세 아들이 있었다. 이 세 왕자들은 세계를 여행하는데 찾지도 않은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 영감을 받은 월폴은 이렇게 '무언가를 찾다가 실수로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을 묘사하고자 세렌디피티란 단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작가 오스카 파리네티는 20년 넘게 음식과 와인 전문가로 고급 식료품 체인점 '이탈리'를 창업하고 성장시키면서 다양한 음식의 역사를 연구했다. 그렇게 공부하게 된 음식에서 바로 '세렌디피티' 사례를 접하게 됐고, 그것들을 가치있게 여겨 많은 전문가들의 안목과 경험을 인터뷰하며 이렇게 책으로 엮어내게 됐다. 이 책은 이 세상에서 '세렌디피티'로 생겨난 48가지의 주제를, 특히 음식(재료)를 다루고 있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코카콜라, 누텔라, 커피, 요거트, 브라우니, 감자튀김, 고추, 켈로그 콘플레이크, 팝콘, 안초비, 발사믹 식초, 샐러드, 아이스크림콘, 가나슈초콜릿, 고르곤졸라, 스파게티 볼로네제, 파니노, 럼, 두부 등이 있었는데, 이렇게 맛있는 음식(재료)에 의외로 세렌디피티였다는 게 놀라워 웃음이 났다. 몰랐더라면 그저 맛으로만 즐거워하는 걸로 그쳤을 텐데, 음식의 기원도 '세렌디피티'라는 걸 알게 되니 여기 나온 음식들을 먹는 즐거움이 배가됐다.(사실 이 책을 먹으며 누텔레에 다뤄진 '페레로 로쉐'를 먹었다) 많이들 아는 예일지 모르지만 '커피'의 경우만 살짝 이야기해 보겠다. 에티오피아 남서쪽 카파의 고지대에서 한 양치기는 자신의 염소가 어떤 붉은 베리를 먹고 더 기분 좋게 뛰어다니는 것을 발견한다. 궁금해서 먹어보는 베리를 구워보고 근사한 향이 나오자 가루로 만들어 뜨거운 물을 섞어보게 된 게 커피의 탄생이란다. 우리가 커피 하면 흔히 떠올리는 남미나 이탈리아가 커피의 시작이 아니라는 점, 저렇게 소소한 계기로 커피를 마시게 됐다는 이야기도 뜻밖이고 재미있다.


이 책 속 저자가 인터뷰한 사람과 다룬 음식들이 생소할 때면, 옆에 둔 핸드폰으로 검색해가면서 읽어보았다. 저자가 이탈리아 사람이고 음식(재료) 또한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것들이다 보니 이탈리아 여행 글에서 많이 발견되곤 했는데, 그럴 땐 이탈리아로 날아 가서 이 책에 나온 음식들을 죄다 먹어보고 싶어졌다. 특히 한 번도 맛본 적이 없는 아이스 바인, 헤이즐넛 초콜릿 잔두이오토, 나폴리식 바바, 화이트 트러플은 그 맛이 너무도 궁금하다.


이탈리아에선 음식을 대하는 태도라 상당히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전통과 역사가 깊은데다 이탈리아 특유의 감성적이고 열정적인 국민성이 한몫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했다. 특히, 저자가 다룬 이탈리아 음식(재료)의 전문가이자 역사를 이루어나간 이들의 자부심, 철학, 애정, 직업윤리 또한 인상적이었는데, 그 내용은 그들의 말을 옮겨 적어 전달하겠다.


마릴리사가 내게 윙크했다. 우리는 역경을 정점으로 바꿀 수 있는 인간 능력에 대해 확고부동한 믿음을 공유했다. 단 세 가지만 있으면 된다.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이를 관리하는 법을 배우며,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 우리는 세렌디피티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가 됐다. p.103 <아마로네>


"학교를 졸업했을 때 저는 훗날 와인의 세계에 몸담게 될 거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저는 항상 와인을 마시는 걸 좋아했지만 무엇보다도 와인이 지닌 가치, 역사, 전통을 사랑합니다. 저에게 와인은 문명의 일부입니다. 와인이 주는 여흥, 좋은 와인을 공유하는 성스러움 등을 사랑합니다. 훌륭한 와인을 혼자 마신다는 건 제게는 좀 슬픈 일입니다. 혼자 영화관에 가는 것 같은 느낌인데 이건 제가 못하는 일이거든요. 피렌체는 제 고향이고 키안티는 저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지요. 작은 마을 카스텔로 디 아마는 저에게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p.172 <키안티의 검은 수탉>


이 모든 것에는 철학이 있는데, 조반니는 이를 죄책감 없이 단맛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면 몇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최고의 재료를 고르고, 농부들과 공급자들을 제대로 대우하며, 설탕과 같은 건강하지 못한 재료들을 더 적게 사용하는 레시피를 만드는 것이다. p.180 <초콜릿 가나슈>


"훌륭한 식품 뒤에는 항상 훌륭한 원재료가 있고, 훌륭한 원재료 뒤에는 훌륭한 사람들의 지식과 직업윤리가 있습니다. 경제성을 뛰어넘어, 최고 재료를 공급할 수 있는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재배자들에게 공정하고 수익성이 있는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p.193 <헤이즐넛 초콜릿 잔두이오토>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다룬 세렌디피티의 정점은 바로 '인류'였다. 사실 이 주제는 나머지가 음식과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에 '인류'를 다룬 건 다소 생뚱맞게 보였다. 하지만 저자가 꼭 다루고 싶었고, 세렌디피티로 살아남은 가장 놀라운 존재가 '인류'라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기에 빠뜨릴 수 없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이는 전문가 텔모 피에바니의 기고문으로 함께 설득력을 강화했다.(이건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그저 내가 먹는 것들이 나와 반가워 읽었을 뿐인데, 재미난 일화로 먹는 즐거움도 더해지는데다, 성공스토리를 세렌디피티로 알게 되어 흥미로운 책이었다. 세렌디피티가 음식에서 나아가 '인류'로 이어질 전개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지라 이런 주제 구성도 새로웠다. 완벽과 진보를 추구하며 가는 인류임에도 그들이 이뤄온 문명의 많은 부분이 세렌디피티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인생은 불확실하고, 한계를 지을 수 없다'라는 점을 꺠닫게 하는 것 같다. 세렌디피티가 무조건 갑자기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점이 아니라 인간의 무한한 노력과 도전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점 또한 기억하면서, 그렇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경험이 인류의 발전에 있어서 소중하고 가치가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세렌디피티는 완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찾아오는데, 중요한 '발견'은 다른 무언가를 찾는 동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혁신을 위한 지성과 본능이 결함처럼 보이는 것을 기회로 바꾸고 고객이 인식하기도 전에 필요를 창출할 때 발생하지요." p.30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브랜딩

#실수의미학

#세렌디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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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렌디피티 - 위대한 발명은 ‘우연한 실수’에서 탄생한다!
오스카 파리네티 지음, 안희태 그림, 최경남 옮김 / 레몬한스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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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어떤 것보다 완벽한 맛이지만, 그 탄생은 완벽하지 않다면? 그것도 우연한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생각지도 못한 데서 탄생해서 더 재밌고 더 맛나다는 사실!!^^ 더 충격적인 건 인류또한 그런 과정으로 살아남았다는 사실!! 을 알려드립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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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 사건편 2 - 벗겼다, 세상을 뒤흔든 결정적 순간들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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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겼다, 세상을 뒤흔든 결정적 순간들

뉴스를 보면 경악을 할 이야기들이 많다. 사회문제뿐 아니라 정치, 경제 다방면에서 우리의 상식과 예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시간으로 버무려지며 과거가 된다. 과거가 된 일들이 뭉쳐 역사가 된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즐겨보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일들이 집대성된 이야기들이 역사가 된다. 그래서인지 역사책을 보면 그런 이유로, 즉 드라마보다 더 재밌다는 이유로 기대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요즘은 또 역사를 재미있게 구성하고 편집해놓은 책이, 방송이 얼마나 많은지 그것들만 봐도 지루할 틈이 없겠단 생각도 든다. 이 책은 방송에서도 재미있게 보았던 tvn의 <벌거벗은 세계사>의 이야기를 책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특히 이 책은 <벌거벗은 세계사> 시리즈 중 10명의 지식인들이 10가지의 사건을 정리한 책, 그것도 두 번째 책이다. 다룬 사건들은 아래 사진을 참고해 보면 좋겠다.



대략적으론 학창 시절에 배웠던 세계사를 통해 달달 외웠던 일들을 떠올릴 수 있다. 이 책은 역사책이지만 다 같은 역사책이 아니라는 듯, '벌거벗은'이란 단어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로 작정한 듯 자주 사용한다. 그만큼 세계사에서 몰랐던 사실들을 하나하나 깊이 있게 보여주므로 역사에 대한 사실과 흥미에 한층 가까이 나아가게 해준다.


10가지 사건이었지만, 하나하나가 모두 세계사에서 의미 있는 사건들이었다. 그리스 신화와 민주주의가 이렇게 연결이 되었던 것인지, 인도라는 나라에 힌두교가 이렇게까지 영향력이 있었는지를 제대로 알게 됐다. 항우와 유방이 이런 관계로 중국의 역사의 줄기를 세웠는지, 제2차 세계대전의 발화점이 된 스페인 내전의 영향력이 이 정도였는지, 한 가문에 역대급 여인들이 어떻게 셋이나 나올 수 있는지, 우리나라의 현시점을 보게 하는 듯한 러시아의 라스푸틴의 존재가 당시 어떠했을지, 세계대전에서 학살자로 악명 높은 이들이 어떻게 풀려났는지, 영화에서 멋지게 봤던 CIA의 다른 실체는 어떤 모습인지, 뮌헨 올림픽으로 보았던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대립이 현 하마스-이스라엘 전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흥미롭지만 안타깝게 읽었다. 특히 전쟁과 관련해서는 자신의 욕망과 광기를 여지없이 드러낸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세우는지 제대로 보게 되어 역겹다 못해 소름이 끼쳤다.


개인적으론 이 책을 읽음으로 아이들이 읽었던 <그리스 신화>에 대해 아는 척 좀 해볼 수 있었다. 그 덕에 최근에 알게 된 나보다 오래전에 읽어 기억이 안 나는 아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도서관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이 책만큼 <스페인 내전>을 잘 알려주는 책을 만났더라면 조지 오웰과 헤밍웨이의 에세이가 어렵지 않았겠다 싶어 (진작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쉬움과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안도가 함께 들었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와 공화정 등 세력들 간 어떤 대립이 있었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이 책으로 스페인 내전의 상황들이 완전히 이해됐다. 과거 교황청에 부패와 죄에 대한 분별력이 이 정도였는지 요즘 시대 교회가 떠올라서 기독교인으로 상당히 부끄러웠다. 중남미에서 반미 감정이 왜 일어났는지도 이해할 만한 부분이었다. 최근에 니카라과 선교 기도를 하고 있어서 이 나라를 찾아볼 기회도 있었는데, 이 나라의 과거를 이 책으로나마 알 수 있게 되어서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벌거벗은 세계사>는 인물편, 사건편, 전쟁편, 경제편, 잔혹사편, 권력자편 등 다양하게 시리즈가 나온 상태이며 누적판매는 20만 부를 돌파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찾는 책은 맞다. 어떻게 그런 판매량을 기록할 수 있는지 이 책 한 권만으로 알 수 있었다. 연대기 순으로 한국, 세계사를 봐왔는데, 그와 달리 특정한 주제로 다양한 세계의 면모를 볼 수 있고, 더 깊이 있는 내용으로 알지 못했던 역사 지식을 흥미롭게 제공하는 점에서 다른 책도 궁금해진다.


우리 삶에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19로 여행과 이동이 어려워진 시기에 안전하게 세계여행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고 제작진은 <벌거벗은 세계사>의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현재는 너도나도 다시 자유로이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된 시기이지만 역사를 아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답을 지혜롭게 모색해 볼 수 있는 계기가 이 책을 통해 됐으면 한다는 제작팀의 바람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 역사에 있어서 흥미에서 시작하긴 했지만 이렇게 알게 된 것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책임과 분별을 갖는 어른이 되는 데 자양분이 되길 바란다. 또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게 어른다운 행동으로 이어지길 나 또한 바란다.


#세계사

#벌거벗은세계사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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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 사건편 2 - 벗겼다, 세상을 뒤흔든 결정적 순간들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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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시리즈 처음인데요. 이렇게 재밌는 책이었나요? 방송도 유명하지만 책으로는 내용이 너무 알차네요!! 이 책 속 사건들을 알았어도 제가 읽은 책의 반 이상은 제대로!! 재미있게!!! 읽었을 거예요. 강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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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되어 줄게 문학동네 청소년 72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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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작가님의 책이어서 골랐다.

청소년 문학인 줄 알면서도, 요즘 너무 많이 다뤄지는 소설 구조의 타임슬립 이야긴 줄 알면서도 말이다.

나는 아들만 둘 있는 엄마인데, 우리 애들은 아직 사춘기에 'ㅅ' 자에도 이르지 않은 듯하다. 이 책의 내용과 내 상황이 너무 달라 공감을 기대하긴 어려웠단 말이다. 사춘기를 겪은 딸과 갱년기를 겪는 엄마의 이야기를 최근에 읽었고, 딸과 엄마의 관계를 딸을 바라보는 부모의 입장에서 감히 상상할 수 없을 거란 걸 알면서도 그저 '조남주'작가님의 책이어서 골랐다.


이 책은 2023년 딸(윤슬)의 삶을 살아보는 1980년생 엄마(최수일)와 1993년을 살았던 엄마(최수일)의 삶을 살아보는 2010년 생 딸(윤슬)의 삶을 그려냈다. 윤슬은 (엄마에게) 언니(이자 윤슬에게 이모) 에겐 맛있는 반찬의 도시락을 싸주고 나(수일)한텐 맛없는 나물 반찬을 싸주는 걸 알아채고 집을 나간 수일의 그 시절로 돌아간다. 그리고 엄마 '수일'은 술 마신 아빠를 데리러 갔다가 사고를 당해 깨어나지 못하는 엄마를 둔 '윤슬'의 몸으로 들어갔다. 교환일기를 바꿔 쓰듯 그들은 7일 동안 서로의 삶으로 교환 1주를 보낸다. 윤슬은 엄마의 어린 시절을 보내며 받은 억울함, 부조리함 들을 발견하고 자신의 유쾌함과 솔직함으로 문제를 풀어나간다. 엄마 수일은 엄마 캐릭터를 보존해서 말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을 경악하게도 하지만, 자신만의 성실성과 노력을 탑재한 수일답게 윤슬의 삶에 피해가 안 가도록 1주일을 최선을 다해 윤슬의 삶을 살아낸다. 그렇게 서로의 삶을 살아보면서 엄마는 딸을, 딸은 엄마를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 어느 책보다 시대를 따끈따끈하게 반영해서 공감이 많이 갈 듯하다. 예를 들면, 윤슬이가 좋아하는 음식이 마라탕, 친구들과 함께 가는 노래방과 네 컷 사진을 찍으며 신나하는 모습이 딱 요즘 아이들과 비슷하다. 아마 나 같은 사람은 엄마 수일이 살아왔던 삶이 더 공감이 되겠다. 내가 서태지와 이상은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학교 앞엔 분수대가 있었고, 수일이 입은 황토색 교복이 내 고등학교 때 교복색과 똑같은 데다 학교 앞 떡볶이집에서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는 모습은 오랜 학창 시절을 추억여행을 하는 듯했다. 슬프지만 체벌 받는 장면까지도 말이다. 딱 하나만 덧붙이자면, 엄마가 해주는 된장찌개를 먹는 장면이 있다. 엄마의 밥은 내게 족쇄를 채운 듯 너무나 맛있는데 이렇게까지 그립고 안 질려서 너무 지긋지긋하다고 반어적으로 말한다. 엄마의 밥을 먹은 딸만이 뱉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런 엄마를 향한 사랑을 나타내는 애잔함에선 뭉클하기까지 하다.(그렇다면 문장이 빠질 수 없죠!)


눈물이 쏙 들어갔다. 하여튼 엄마는 나를 너무 모른다. 일단 밥을 먹자. 호박을 듬뿍 넣은 엄마표 된장찌개를 밥에 슥슥 비빈다. 지겹다. 익숙한 메뉴, 익숙한 재료, 익숙한 맛, 엄마의 요리들이 내 입맛에 너무 딱이고, 먹어도 먹어도 안 질리고, 아프거나 피곤하면 더 그립다는 사실이 너무 지긋지긋하다. 딸이지만 엄마이기도 한 내게 족쇄처럼 느껴진다. 정말 왜 이렇게까지 맛있는걸까. p.81


내가 조남주 작가님을 선택한 이유는 조남주 작가님 현실감각이 돋보이고, 마음을 콱 사로잡는 글맛 때문이다. <82년생 김지영>만큼의 내 속에 억눌려져 있었던, 어디 선간 쏟아내지 못한 내 이야기를 탈탈 털어서 말해주는 이야기까지는 아닐지라도 이 책은 나름으로 아이의 마음을, 엄마의 마음을 담아서 풀어주는 매력이 있다. 1993년 엄마(수일)의 삶으로 간 윤슬에게 이모이자 엄마의 언니(수영)가 말하는 외할머니의 진심을 한 마디로 전하는데, 그 한 마디의 말이 읽는 이의 마음을 콱 비틀어 쥔다. 2023년의 윤슬의 삶을 사는 수일은 그간 집에서 빈둥대는 듯 보이는 윤슬의 모습을 보며 잔소리했던 자신을 생각한다. 하지만 이젠 자신이 경험해 보니 알겠고, 그 고단했었을 윤슬의 삶이 이해가 된다. 딸 가진 부모는 아니어도 자식 가진 마음은 똑같을지라 나는 이 장면에서 잔소리했던 나를 떠올렸다. 힘들다 투정 부리는 듯 보인 아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아이들도 아이들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 아이들의 삶을 가볍게 여겼다. 아이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이 미안함도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지만.^^:)


아무리 흔하디흔한 타임슬립 소설이라도, 어느 드라마나 소설에도 나옴직한 엄마와 딸 관계를 다룬 이야기라도 그래도 내겐 조남주 작가님이었다. 그래도 이 책을 읽기 가장 좋은 대상은 엄마와 딸이 되겠다. 딸이 없는 사람으로 감히 이렇게 말해도 될지 조심스럽긴 하다만, 엄마와 딸이 서로 부딪힐만한 포인트를 잘 잡아냈고, 엄마와 딸이 세심함과 따뜻함으로 서로를 이해할 만한 장면을 잘 보여줬다. 어찌 됐든 나 같은 아들 맘이라도 혹여나 그냥 아무 해당사항이 없더라도 조남주 작가님만의 모녀 이야기, 타임슬립으로 서로의 삶을 이해 가는 이야기에 잠시 빠져들어보시길 추천한다. 이 책 어딘가에서 내 모습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조남주

#네가되어줄게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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