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는 우주에 나를 부치다
김경 지음 / 이야기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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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 김경이 소설도 썼네.’

냉큼 집어 읽다 여주인공이 상관에게 쓴 사직서 부분에서 허걱했다.

이 책이 서민 박사 <집 나간 책>에 실렸던 게 그제서야 기억났다.

 

우와, 치맨가.

 

처음 소제목 파스칼을 좋아하세요에서 느낄 수 있듯 다분히 보통의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사강을 떠올리는 분도 계시겠지만.^^;:) 또한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꽤 오래전 어떤 분이 내게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를 선물한 적이 있다.

도움이 되실 거예요.”

도움은 젠장. 이 책을 읽으며 아마 울었던가. (, 묻지 마시라. 괴롭다.)

 

그러니까 김경의 첫 소설은 연애소설이다. 심지어 해피엔딩이다. 다국적인 연애질로 유명한 패션 에디터 여주인공이 영혼이 아름다운 남자인 화가를 쫓아다녀 결국 결혼에 골인한다는.

 

난 김경에 대해 잘 모른다. 정기 구독하는 경향신문 필자들 중 직설화법이 마음에 들어서 좋아했을 뿐. (책을 보아하니 그녀의 별명은 경솔이었던 듯. 경솔할만큼 솔직하다고 해서. 김규항도 좋아했는데,.... 아직도 김규항은 노무현, 김대중 욕하느라 바쁜가. ‘비판에 적당한 때란 없다라고 말하는 거 보고 포기했다. 참 정의로우세요. )

 

김경이 패션잡지 편집부장이었던 것도 몰랐다. 화가 남편을 만나 편집부장도 때려치우고 경기도 평창에 손수 집을 짓고 산다니. 그러니까 이 소설은 거의 자전적 소설일 것이다.

 

김경은 사랑을 씨줄로 삼아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 음악들을 날줄로 엮어간다.

 

친절하게도 김경은 책 말미에 <취향리스트>를 정리해놓았다.

 

20대 때 지인들을 만나면 항상 이 문장을 들려줬다.

 

내가 왜 그때에 있지 않고 지금 있는지

내가 왜 저기에 있지 않고 여기 있는지

무한한 우주 공간의 침묵이 나를 전율케 한다.

 

대충 저런 문구였는데, 대충 우리의 만남은 정말 전율스럽지 않니?’

뭐 그런 뜻을 전달하고 싶었더랬다. 아우, 나의 20대는 소름끼칠 정도로 유치했다.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문장이었다. 김경도 파스칼을 좋아했나보다.

 

20대 때 나 역시 <호밀밭의 파수꾼>에 환장했다. 김경도 좋아했다니!

자꾸 이러면 전화가 걸고 싶어진다는.

 

김경도 존 버거를 좋아한다.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에서 정세랑 작가는 제인 오스틴을 좋아하는 남자라면 됐어라고 말했다. (슬그머니 손을 드는 나. 저도 좋아해요^^ ) 나는 존 버거를 좋아하는 여자라면 얼마든지 기꺼이 햄버거를 먹으리라! (물론 나와 마주앉아 햄버거나 뜯어먹을 여자가 없다는 건 나도 잘 안다.)

 

, 정말로 오랜만에 구영탄이란 이름을 들었다. 그런데 고행석 만화 안 좋아하는 남자도 있었나?

 

사랑과 책. 더 바랄 게 없다.

 

(여성분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지, 김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패션잡지 기자에 파리, 맨하탄 같은 국제도시를 회사 돈으로 제 집 드나들 듯 할뿐더러, 브래드 피트처럼 좋은 외국 남자들의 접대를 받으며 맛있는 음식, 고가의 와인을 퍼마시며 놀아나면서도 결혼은 대화가 통하는 영혼이 아름다운화가랑 하다니! 한 미모하면서 게다가 똑똑하다. 내가 여자였더라면 정말 재수 없어 미쳐버렸을 것 같다.)

 

p.s. To 김경.

 

, 우리끼리 하는 얘기지만 46페이지에 우리 미국이라고 써있더군요.

아시죠? 토크빌은 프랑스 사람입니다. 그거 외에 딴지 걸 게 없어 아쉽네요.^^:;


밑줄 그은 문장

 

p5. 예술을 한다는 것은 삶을 견딜 만하게 만드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다. 잘하건 못하건 예술을 한다는 것은 진짜로 영혼을 성장하게 만드는 일이다. 샤워를 하면서 노래를 하라. 라디오에 맞춰 춤을 춰라. 이야기를 들려주라. 친구에게 시를 써 보내라. 아주 한심한 시라도 괜찮다. 예술을 할 땐 최선을 다하라. 엄청난 보상이 돌아올 것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았던가! <나라 없는 사람> 중에서, 커트 보네커트.

 

p15. 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신의 방 안에서 조용히 혼자 있을 수 없다는 한 가지 사실에서 시작된다. (파스칼, 팡세)

 

p18. 결국, 샤넬과 에르메스일 수밖에 없는 거야. 연애는 수많은 백이나 이름 모를 백들과 하고 결혼은 샤넬이나 에르메스와 해야 하는 거지.

 

P21.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없으면 찾으러 나서야 한다. ’ - 스칼렛 요한슨

 

p32. 제가 재탄생이라는 표현을 쓴 건 랭보의 영향때문일 겁니다. ‘허튼소리인가 하는 산문시에서 그랬거든요. 자기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사랑은 재창조해야 하는 것인데 여자들은 안전한 자리밖에 원하지 않는다고.

 

P59. 존이 그러더군요. ‘문명과 도시화가 인간의 근원적 공간인 집을 와해시키자 영원히 떠돌게 된 우리에겐 오직 사랑만이 소중해졌다

 

P64. 그래서 레너드 코헨이 이렇게 노래했나? ‘모든 것엔 금이 가 있다. 빛이 거기로 들어온다.‘

 

P71. 샤토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보셨죠? 보르도에는 포도밭은 소유한 대형 양조장이 많은데 그걸 샤토라고 부르고, 부르고뉴에는 가내수공업 형태의 매우 작은 양조장이 대부분인데 그걸 도멘이라고 하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보르도를 회사의 와인이라고 하고, 부르고뉴를 농부의 와인이라고 합니다.

(명색이 조니워커 스쿨 졸업생인데 전혀 생소하다! 스쿨인데 술만 쳐 마셨으니!! )

 

P73. 그거 알아? 러시아의 침공을 피해 조국 폴란드를 떠나 파리로 온 쇼팽이 별천지 같은 파리의 밤을 처음 체험하면서 작곡한 음악이 바로 녹턴이라는 거? 그러니까 밤의 신비로움을 음악으로 옮긴거지.

 

P83. 카텔란은 비극을 안다고 할까요? 얼핏 어릿광대처럼 희극적으로 보이지만, 이 세상이 품은 온갖 비극에 연민을 품고 있는 아티스트라고 할까요? 그런 점에서 아류는커녕 되레 뒤샹을 뛰어넘는 작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P84. 삶은 인간에게 무엇이든 줄 수 있고 또 인간은 삶에서 무엇이든 얻을 수 있네. 그러나 인간의 취향, 성향, 사람의 리듬은 바꿀 수 없어. - 산도를 마라이 <열정> 중에서.

 

같은 리듬의 사람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전 생애를 허비하기도 한다.

 

P99. 네르발이라는 프랑스 시인이 있었는데 파란 리본에 가재를 묶어 뤽상부르 공원을 돌아다녔어. 애완동물에 대한 기존 관념에 순응하기 싫었던 거지. 그걸 보고 사람들이 그를 괴물 취급했겠지? 그러자 그가 이렇게 말했어.

 

왜 개는 괜찮은데 가재는 우스꽝스러운가? 도대체 무슨 상관 인가? 나는 가재를 좋아한다. 가재는 평화롭고 진지한 동물이다. 무엇보다 개처럼 짖지 않고 사람의 귀중한 사생활을 갉아먹지도 않는다. (영화 <랍스터>도 네르발의 가재의 인용인걸까)

 

P119. 게다가 우리는 오스카 와일드가 말한 것처럼 아름다움에 대한 추상적인 감각을 대부분 잃어버렸어.

 

P125. 제가 웃긴 얘기해 줄까요? 말더듬이 협회의 표어가 뭔지 아세요?

우리가 말할 때 끄끄끄끄 끝까지 들어 줘래요.

 

P129. 쇼펜하우어가 이런 말을 한 적 있어요. 신문 기자들은 오직 그날그날만을 생각하고 되는 대로 쓰기 때문에. 이들을 감시해 달라고 경찰에게 요청한 적이 있다고요.

 

P151. 무사태평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중에서

 

P160. 천국을 바라거나 지옥을 두려워하는 자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 > 중에서

 

P168. 만유인력이란 서로를 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다.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집 <이십억 광년의 고독> 중에서.

 

P186. ‘만일 부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싶은데 게이가 될 배짱이 없다면 예술을 하는 게 좋다‘ - 커트 보네거트

 

P190. 너무도 우아하고 감각적인 편집 레이아웃으로 잡지 디자인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전설거인 아트 디렉터, 알렉세이 브로도비치. 그가 만든 <하퍼스 바자>의 어떤 페이지들은 지금 봐도 깜짝 놀랄만큼 신선하고 우아하다.

 

P191. 하긴 쇠렌 키에르케고르도 <유혹자의 일기>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놀라게 만드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다.

 

P211. 삶에 대한 자세는 본질적으로 순진무구함과 용기, 이 둘뿐이다. 나머지는 거기서 뉘앙스만 약간 다르다. 어리석음이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둘 중의 하나뿐이다. - 에밀 시오랑

 

P242. 최종 결정권자로서 개인적인 일로 마땅히 자리를 비우면 안 되는 데드라인에 당신은 7시간씩 부재중인 채 행방이 묘연했던 일이 있었지요. 하지만 당신은 어떠한 해명도 사과도 하지 않았습니다.

 

P267. 존 버거

죽는 날까지 오직 한 작가의 책만 읽을 수 있다면 영희는 기꺼이 존 버거를 선택할 것이다. 존 버거 전작주의를 지향하는 영희가 추천하는 작품은 <여기, 우리 만나는 곳>

 

P270. 산도르 마라이 와 열정

소설가 이신조는 인생의 어느 밤, 산도르 마라이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라고 했는데, 과연 그랬다.

 

P271. 모조소년의 ‘La Rosa’

 

3호선 버터플라이의 <사랑은 어디에>

아마츄어 증폭기의 <금자탑>

 

p275. 알베르 카뮈의 <안과 겉>

나의 원천이 <안과 겉>속에. 내가 오랫동안 몸 담아 살아온 그 가난과 빛의 세계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선 가난이 나에게 불행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빈곤은 나로 하여금 태양아래에서라면, 그리고 역사속 에서라면 모든 것이 다 좋다고 믿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p277 웨스 몽고메리.

웨스 몽고메리의 첫 번째 앨범 <The Incredible Jazz Guitar>는 지금까지도 최고의 재즈기타 앨범으로 손꼽히고 오늘날 재즈기타의 거장으로 추앙받는 팻 맨스니나 조지 벤슨 같은 이들도 가장 존경하는 재즈 뮤지션으로 웨스 몽고메리를 뽑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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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16-03-02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일단 찜! ㅅㅅ

시이소오 2016-03-02 17:38   좋아요 0 | URL
저를 ? ㅎㅎ ^^;;

cyrus 2016-03-02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대표작 이름이 `미국의 민주주의`라서 저자를 미국인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순간, 저도 헷갈렸습니다. ^^

시이소오 2016-03-02 20:23   좋아요 0 | URL
잠깐 한눈팔다 보면 헷갈릴만 하죠^^
 
철학의 위안 - 라틴어 원전을 충실하게 완역한 탁월한 정본
보에티우스 지음, 이세운 옮김 / 필로소픽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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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에티우스는 6세기 초 로마의 철학자이자 시인이다. 510년부터 콘술(흔히 말하는 집정관)을 지냈으며, 이후 로마 장관직과 행정관장을 지냈다. 523년 동로마 황제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고소당한 알비누스를 변허하다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그가 죽기 전 옥중에서 쓴 책이 바로 <철학의 위안>이다.

 

보에티우스는 꽤나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저술들을 남겼다. 수학, 신학, 음악, 천문, 철학, 번역서, 주석서 등등. <철학의 위안>은 굉장히 독특한 형식을 취한다. 대화체라는 점에선 플라톤의 대화편을 떠올리게 한다. 시와 산문이 섞여있는 형태의 문학은 매니포스 풍자문학에서 유래한다고.

 

보에티우스는 옥중에서 철학을 연상시키는 여신을 만난다. 여신은 보에티우스를 위로하던 무사(뮤즈)여신들을 내쫓고는 자신이 보에티우스를 치유하기를 자처한다. 보에티우스는 누명을 쓰고 갇힌 자신을 한탄한다. 여신은 철학을 통해 보에티우스를 위로한다. 보에티우스는 철학에게 복종한 댓가가 고작 모함에 의해 명예가 실추되어 감옥에 갇힌 것이냐며 여신에게 항의한다. 보에티우스의 슬픔, 분노, 탄식이 너무 깊어 철학은 가벼운 치료제를 사용하기로 한다. 치료하는데 적당한 방법을 찾기 위해 철학은 보에티우스에게 여러 가지 짧은 질문들을 던진다.

 

이 세상이 우연과 운에 좌우되는지, 이성의 규칙에 의한 것인지, 신이 있다고 믿는지. 신에 의해 다스려진다면 어떤 통치 원리로 다스려지는지, 세상의 목적이 무엇인지, 자연의 의도가 무엇인지. 사람은 무엇인지.

 

철학은 보에티우스가 과거의 운명에 대한 미련과 갈망 때문에 스스로를 소진시킨다고 진단 내린다. 사실 보에티우스는 당시 최고위층이었다가 모함에 의해 하루아침에 사형수의 위치로 전락했으니 억울할 만도 하다. 철학에 따르면 운명은 보에티우스에게 적대적으로 바뀐 것이 아니다. 운명 자체가 원래 그런 것이다. 운명의 굴레에 일단 목을 걸었다면, 운명의 영역으로 무엇이 들어오든지 평정한 마음으로 견뎌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운명의 바퀴를 잡으려는 시도는 손으로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매한가지다.

 

철학은 또한 그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한탄하지 말고 (애초에 가진 것도 없었다) 즐거웠던 경험, 행복했던 것들을 떠올려보라고 충고한다. 철학의 입장에선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행복이란 운명 안에서, 밖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자신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의 정신 속에. , 권력, 명성 등은 우연적이고 외부에 있는 것이기에 그것으로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는 없다.

 

철학은 운명이 호의적일 때 보다는 적대적으로 보일 때 오히려 더 인간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행운은 우리의 정신을 옭죄게 하지만 불행은 사람들을 현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쯤 되자 보에티우스는 탄식에서 벗어나 기운을 회복하고 철학에게 참된 행복을 간구한다.

 

철학에 의하면 참된 행복이란 bonum, 선이다. 모든 좋은 것들 중에서 최고는 최고선이다. 에피쿠로스는 재산, 명예, 권력, 영광, 쾌락 등울 최고선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러한 것들 역시 인간 외부에 있어 일시적인 것이다. 부자들은 행복할까? 철학의 입장에선 아니다. 그들은 언제나 결핍을 두려워한다. 권위는 어떨까?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더라도 권위, 명예를 누린 자들 중 비참한 말년을 보낸 이가 수두룩하다. 세네카 역시 네로에게 재산을 바치고 관직에서 물러나려 했지만 결국 황제암살 모함을 뒤집어쓰고 독배를 들이마셨다.

 

보에티우스가 재산, 명예, 권력, 쾌락 등이 진정한 행복에의 길이 아님을 인정하자

철학은 이제 최고선의 가르침을 펼친다.

 

최고선의 원천은 신이다. 완전한 선이 참된 행복이므로, 참된 행복은 최고의 신 안에 있어야 한다.

 

최고선을 추론하는 3권이 <철학의 위안>의 핵심인데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철학에 관심 없는 독자라면 2권까지 읽어도 충분히 철학의 위안을 느낄 수 있다. 기껏 위안을 얻었는데 3권을 읽으며 고뇌에 싸일 필요는 없을 듯)

 

신이 존재하며 그것이 존재한다면 악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여기에 대한 추론들은 내 지력으로 이해 불가능하다. 관심도 없고. 궤변 속으로 빠져든다. 의지와 능력이 있는데 악인들의 능력은 힘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힘없음에서 나온다고?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악은 이신교가 아닌 유일신교에서 가장 설명하기 까다로운 문제여서가 아닐는지. 단지 악인은 인간이 아닌 것으로.

 

5권에선 우연성과 필연성, 인간의 자유의지를 다룬다.

신에 의해 모든 것이 필연적이라면 과연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가?

아몰랑. 이것도 일단 패스.

 

철학으로 위로받으려 했지 지혜를 간구한 것은 아니기에.

 

 

밑줄 그은 문장

 

p28. 이 옷의 맨 아랫단에는 희랍 문자 Π, 가장 윗단에는 Θ가 수놓아져 있었고 두 글자들 쪽을 향해 사다리 문양이 찍혀 있는 것이 보였다.

 

p36. 그러니 혹시 우리가 이러한 고통스러운 삶의 바다에서 몰아치는 폭풍으로 인해 고난을 겪는다고 해도 놀랄 것은 없다. 극악한 자들의 마음을 거스르는 것이 우리 삶의 방식이니 말이다.

 

p37. 가련한 자들은 어찌하여 잔혹한 폭군들이

절제하지 못한 채 광분하는 데 그토록 놀라는가?

무언가를 희망하지도 무언가를 두려워하지도 마라.

그러면 너는 저 난폭한 자의 분노를 없앤 것이나 마찬가지거늘

 

p44. 그러니 당신의 무리들 중 누군가가 정당하게 물었었지요.

만약 정말로 신이 있다면 악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신어 없다면 선은 어디서 오는가?’

 

p49.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모든 것을 조종하는 당신은

오직 인간들의 행위에서만은 마땅한 제재를

가하지 않으십니다. 지배자시여,

어찌하여 불확실한 운명은

그토록 크게 바뀌는 것입니까?

죄인이 받아야 할 처벌은 결백한 자들에게 내려지는데,

그릇된 습속은 높은 옥좌에 앉아 있고

사악한 자들은 부당한 운명으로 고귀한 자들의 목을

짓밟고 있습니다.

빛나는 덕은 어두운 그림자에 가려지고

정의로운 자는

적들이 덮어씌운 죄를 견디고 있습니다.

거짓된 구실로 꾸며진 속임수도,

어떤 거짓 맹세도 저들에게는 해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기꺼이 힘을 사용했을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저들,

저 위대한 왕들까지도 속이기를 기꺼워합니다.

 

p51. 나는 상아와 유리로 벽이 장식된 서재를 찾는 게 아니라

네 정신의 창고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 안에 나는 책이 아니라 책들을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한때 나의 것이었던 책 속의 생각을 모아 놓았으니.

 

p61. 너는 운명이 너를 적대하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운명의 법칙이며 본성이다.

 

p63. 모든 필멸하는 것들 중에 가장 어리석은 자여, 운명이 머무르려 한다면 그것은 운명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p69. 그런데 그때 즐거운 것이라 여겼던 것들이 사라져 버렸다는 이유로 네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슬픈것들이라 생각되는 것들 역시 사라질테니 너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혹 너는 삶이라는 무대에 지금 처음 발을 들인 방문객으로 온 것이냐?

 

p71. 저 아름다움이 세상에서 유지되기 힘들다면,

그처럼 자주 변화한다면,

인간의 운명이 사라질 것임을 알며

부가 금세 지나가 버릴 것을 알지어다.

생겨난 것은 그 어떤 것도 변화하지 않은 채 머무르지 못한다.

이는 영원한 법을 통해 굳게 자리 잡았으니

 

p73. 나는 너의 행복에 뭔가가 빠졌다고 그렇게 슬퍼하고 걱정하며 불평하는 네 자만심을 참을 수가 없다. 대체 누가 어느 모로 봐도 자신의 처지에 불평할 게 없을 정도로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단 말이냐?

사람들 각각에게는 겪어 보지 않은 자는 모르고 겪어 본 자는 두려워하는 뭔가가 있는 법이니 말이다. 또한 가장 행복한 자들의 생각은 대단히 연약한 것이어서, 모든 것이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으면 불행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은 모두 아주 작은 일들에 쓰러진다.

 

p74. 내가 너에게 가장 큰 행복의 으뜸이 무엇인지 간략히 보여주마. 너에게 너 자신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네가 자신을 지배하게 된다면 너는 절대 버리고 싶지도 않고 운명이 앗아갈 수도 없는 것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연적인 일들 안에는 행복이 영속할 수 없음을 알기 위해 이렇게 생각해 보아라. 만약에 행복이 이성에 따라 살아가는 본성의 최고선이고, 최고선은 어떤 식으로든 빼앗길 수 없는 것이라 해 보자.

 

p78. 사물의 본성상 네 것이 아닌 것들을 운명이 네 것으로 만들어 줄 수는 없다.

 

p80. 인간 본성은 자신을 알 때, 그때에 다른 사물들보다 그만큼 뛰어나지만, 만약 자신을 알기를 포기한다면 짐승들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다른 동물들에게는 본성에 속하는 것이나 인간에게는 악덕이 되는 법이다.

 

p91. 1만 년이라는 시간은 소위 망누스 안누스(Magnus annus) 혹은 태년이라 불리는 것으로 태양과 달, 그리고 다섯 개의 행성이 우주가 처음 생겼던 당시의 자리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인 12,954년을 의미한다. 이 역시 키케로가 <국가론> 스키피오의 꿈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p94. 운명은 호의적일 때보다는 적대적일 때 사람들에게 더 이익이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운명은 매력적으로 보일 때 행운의 모습으로 속이지만, 변화로써 항구적이지 않음을 보여줄 때는 항상 진실하기 때문이다. 운명은 행운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불행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며, 행운은 거짓 선의 위장된 모습으로 행운을 즐기는 자들의 정신을 옭아매고, 불행은 깨지기 쉬운 행운을 인식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 준다.

 

그러니 행운은 바람처럼 흘러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항시 그 자신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지만, 불행은 경고를 하며 명쾌하여 그 불행의 단편을 통해 사람들을 현명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아 두어라. 마지막으로 행운은 매력을 발산함으로써 참된 선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지만 불행은 대부분 갈고리를 가지고서 사람들을 참된 선으로 돌아오게 이끈다.

 

한때 거짓된 행복을 바라던 나도

네 목에서 멍에를 벗어 버려라.

그리하면 참된 행복이 네 마음에 깃들 것이니.

 

p141. 분명 만물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선이라 결론을 내렸으니 만물의 목적이 선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p. 164. 하나인 모든 것은 하나 그 자체이자 선이라고 조금 전에 내가 가르쳐주었다. 그 결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또한 선이라 여겨지게 된다. 그러니 선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은 무엇이든 존재이기를 멈추게 된다. 따라서 악한 자들은 그들이 악하기 때문에 존재이기를 멈추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육체 형태가 남아있어서 그들이 과거에 인간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악으로 돌아선 그들은 인간의 본성 또한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오직 선함만이 누구든 인간을 넘어서도록 이끌 수 있기에 필연적으로 악함이 인간의 조건에서 떼어놓은 그들을 인간의 가치 아래로 몰아간다. 따라서 네가 누군가 악덕으로 인해 그 모습이 변한 것을 보는 경우, 너는 더 이상 그를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처럼 좋음을 버리면 그는 사람이기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고, 신의 상태로 건너갈 수가 없기에 짐승과 같은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p173. 육체의 병처럼 악함이라는 것이 소위 정신의 병이라면, 우리는 몸이 아픈 이들이 미움이 아닌 동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병보다도 지독한 악함으로 인해 정신이 고통받는 자들은 비난이 아니라 더 큰 동정을 받아야 하는 자들이다.

 

p178. 모든 사물들의 탄생과 변화하는 자연의 모든 진보, 어떤 방식으로든 움직이는 것이라면 원인, 질서, 그리고 형상을 신의 정신의 항상성으로부터 얻는다. 이 항상성은 단일성이라는 성채 안에 놓인 것으로, 수행되어야 할 일들에 다양한 방식을 만들어 주었다. 그 방식이 신의 저 순수한 지성 안에서 인식될 때 그것은 섭리라고 불리지만, 그 방식이 움직이고 배치하는 것들과 관련될 때 선조들은 그것을 운명이라고 불렀다.

 

섭리는 모든 것이 아무리 다르고 아무리 무한하다 해도 그것들을 동일하게 포괄하지만 운명은 장소와 형태, 시간에 배정된 각각의 것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래서 이러한 시간적인 질서의 전개가 신의 정신의 통찰과 하나가 되는 것이 섭리이며, 그 합치가 시간에 따라 나눠지고 전개되는 것이 운명이라 불리게 되는 것이다.

 

p190. 사실 덕을 키워 가는 단계에 있는 너희는 사치로 방종하지 않고, 쾌락으로 시들지 않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너희는 온갖 운명과의 전쟁을 영혼과 함께 격렬하게 치르고 있으니 이는 슬픈 운명이 너희를 짓누르거나 즐거운 운명이 너희를 타락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굳건한 힘으로 중용을 지켜라.

 

아래에 머물러 있거나 위로 나아가는 것은 무엇이든 행운으로부터 경멸을 받을 뿐 고난의 보상을 받지 못하는 법이니까. 왜냐하면 너희 스스로 어떠한 운명을 만들고자 하는지는 너희의 손에 달려 있으며, 역경으로 보이는 모든 운명은 단련이나 교화의 목적이 아니라면 처벌을 그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어떠한 일을 위해서 행해졌는데 원래 목적했던 바와는 다른 것이 어떤 원인들로부터 생겨날 때 우연이라고 한다. 이는 밭을 갈려고 땅을 파다가 깊이 묻힌 금덩어리를 발견하는 것과 같다.

 

p198. 그러니 우연이란 다른 목적으로 행해진 일들에 여러 원인들이 합쳐짐으로써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원인들을 만나고 합쳐지게 만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결합과 함께 진행되는 저 질서이며 질서는 섭리의 원천으로부터 흘러나와 모든 것을 제자리와 제때에 맞게 배치한다.

 

p202. 예견되는 일들이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일들이 필연적으로 예견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말하자면, 어떤 일의 원인이 무엇인가, 즉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아는 것이 필연성의 원인인가. 아니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의 필연성이 섭리의 원인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것과 같습니다.

 

p211.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이유는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오직 인식되는 것들 자체의 힘과 본성에 의해 인식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완전히 반대다. 인식되는 것은 모두 그 자신의 힘이 아니라 인식하는 자의 능력에 따라 파악되기 때문이다.

 

p219. 어떠한 미래도 부재하지 않고 어떠한 과거도 흘러가버리지 않는 바로 그것이 영원함이라 할 수 있다. 영원한 것은 자신의 주인으로서 필연적으로 항상 자신에 대해 현존하며, 무한히 움직이는 시간을 현재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p222. 만약 신의 현재와 인간의 현재를 비교해도 된다면 너희가 너희의 시간에 속하는 현재 안에서 어떤 것을 보는 것처럼, 그렇게 신은 자신의 영원한 현재 안에서 모든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신의 예지는 사물들의 본성과 고유성을 변화시키지 않고, 시간 안에서 언젠가 미래의 것들로 일어날, 그러한 현재의 것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p223. 만약 섭리가 어떤 것을 현재적인 것으로 본다면, 비록 그것이 본성상 어떤 필연성도 없다고 해도 그것이 있다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런데 신은, 의지의 자유로부터 나오는 저 미래의 것들을 현재의 것들로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들이 신의 시선에 들어오면 신의 인식으로 인해 만들어진 조건을 통해서는 필연적인 것들이 되지만, 스스로 고찰될 때는 고유한 본성의 절대적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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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um 2016-03-01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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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3-01 11:0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번 달도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다. 적어도 44권을 읽었어야 했는데. 하루가 더 있었더라면.

실제로 하루가 더 있었다. 올해 2월이 29일까지인 걸 몰랐다.

28일이 2월의 끝이라 여기고 지레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기를 쓰고 40권을 읽으려 덤볐을텐데. 서른 여섯 권에서 일찌감치 포기했었으니......


 

이 달에 읽은 38권의 책 중 서유미 작가의 <끝의 시작>만은 리뷰를 쓰지 않을 작정이다.

지인의 작품에 호평을 하는 건 비도덕적이고

혹평을 하는 건 비윤리적이다.

 

<판타스틱 개미지옥>수상으로 축하주를 마신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서유미 작가는 중견작가가 되었다. 부지런히도 쓰는구나.

자랑스럽고 대견한다는 말만은 하고 싶다.

(미안하다. 유미야. 빌려봤어. 돈 많이 벌면 사서 볼게.^^;;)

 

이달엔 휴...... 이달의 책으로 뽑을만한 책이 무더기다.

읽는 인간, 시의 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토너, 사피엔스, 사회학의 쓸모,

생각의 시대, 인생에 화를 내봤자, 사는 게 뭐라고, 직언, 위험한 자본주의, 가능성의 중심,

과학은 반역이다, 세네카의 화 다스리기, 라면을 끓이며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달의 책을 뽑으면서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밤새 이 책을 읽은 아침에 철학 선생하는 친구에게 카톡을 날렸다.

 

읽어라

친구는 뭐야, 자음과 모음이네.....’ 했지만

 

이런 미친 책은 실로 오랜만이다. 20대 때 쇼펜하우어나 니체를 읽었을 때만큼의 충격.

일본의 니체라고 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렇다. 이 달의 책으로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 손을 들겠다.

책을 읽으며 내내 영화 <>이 떠올랐다. 사다코의 비디오를 본 여주인공 레이코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봐 버리고 말았어.”

 

읽어버리고 말았다. 돌이킬 수 없다. 비디오를 보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듯

이 책을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니까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게 되는 셈이다.

사사키 아타루 책을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

어느 쪽이 행복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아니, 이 책을 읽은 사람이 불행해질 확률이 더 높다.

(그러니까 되도록 읽지 마세요 ^^;;)

 

읽어버리고 말았다.

좆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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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6-03-01 08: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정말 많이 읽으셨네요. 불행해질 확률이 높은 책은 읽지 말아야겠어요. ^^;;

시이소오 2016-03-01 08:31   좋아요 2 | URL
감히 추천할수 없네요^^;;

[그장소] 2016-03-01 08: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하루 1권을 더 줄여야하나...하는중 ㅡ^^;
서점측에선 달갑지 않을 테지만..
암튼 ㅡ천천히 읽기 ㅡ하려고.
그래도 하루 여러권을 같이보는데..
참 성실하시네요!^^

시이소오 2016-03-01 08:58   좋아요 3 | URL
허걱 3331권이라니!!
그장소님 일주일에 한 권으로 줄이세요. 그래야 따라잡을듯. 대단하시네요^^

[그장소] 2016-03-01 09:03   좋아요 1 | URL
어..ㄹ ~저 체크 상태를 고치자니 번거로워 둔건데..
이미 읽은 것들 ㅡ이랑 겹쳐서 그런거예요.
제가 서재시작한지 오래되지않아서.
1년차 새내기 ㅡ니!
1년에 읽는 권수로는 평균 하루 1.5권.. -..
아닐까...싶은.

시이소오 2016-03-01 09:05   좋아요 3 | URL
아무리 겹친다한들
아무튼 따라잡도록 읽겠습니다
그장소님은 도망가세요 ㅋ

[그장소] 2016-03-01 09:09   좋아요 2 | URL
아...전 주로 소설 쪽 인데 속도가 ..괜찮으신지..
철학서나 인문서는 아무래도 시간이 양적.질적으로 좀 무거워서 저와 다른 시간운용을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골고루 읽으시는 분 같아서...ㅎㅎ
저는 갈지자로 걸을거니까..
맘편히 오셔요.^^

시이소오 2016-03-01 09:19   좋아요 3 | URL
갈지자로 가시는 겁니다. 치사하게 엉덩이 흔들면서 경보로 가면 반칙이에요!!^^

[그장소] 2016-03-01 09:42   좋아요 3 | URL
우핫 ㅡ경보 ㅡ갈지자 경보 ㅡ대회 준비위원회인거...들킨거임?^^
ㅎㅎㅎ
예~~썰!^^

깜장앨리스 2016-03-01 09: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한달에 40권이라니요. 읽는 속도가 빠르시네요. 부럽습니다. ^^

시이소오 2016-03-01 09:18   좋아요 4 | URL
절대로 빠르지는 않아요. 하루종일 책만 읽는데 한달 40권이면 울고 싶어져요. 흑^^;

징가 2016-03-01 09: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시이소오 2016-03-01 09:47   좋아요 1 | URL
지금은 비록 대단하지 않습니다만 대단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

징가 2016-03-01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방법 좀 알려주세요 한꺼번에 여러권 보십니까? 아님 한권씩 다이다이 하십니까? 전 도저히 속도가 안나서

시이소오 2016-03-01 09:54   좋아요 1 | URL
한때 저도 10권을 돌려봤는데 저한텐 너무 많더라구요. 3~5권 정도가 적당한것 같아요. 읽다 지치면 바꿔읽고 안 지치면 끝까지 달리는거죠^^ 항상 옆에는 읽어야 할 책 20권 정도가 있는 편이에요 ^^

징가 2016-03-01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충고감사합니다

시이소오 2016-03-01 09:59   좋아요 2 | URL
자신만의 독서법을 찾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여러 방법을 시도해보세요 ^^

시이소오 2016-03-01 10:04   좋아요 1 | URL
아, 너무 재밌는 책은 일부러 야금야금 읽는 거 아시죠? ^^

곰곰생각하는발 2016-03-01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ㅎㅎㅎㅎㅎㅎ 너무 많이 읽으시는 거 아닙니까 ?

시이소오 2016-03-01 14:58   좋아요 0 | URL
그동안 너무 안 읽은 탓이죠^^;;

깊이에의강요 2016-03-01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굉장합니다^^
부끄러움은 저의 몫ㅠ

시이소오 2016-03-01 18:16   좋아요 0 | URL
굉장한 거 아닌데요 ^^;

지니 2016-03-01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Good👍🏻

시이소오 2016-03-01 18:1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스텔라 2016-03-01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달에 40권이라니..대단하시네요. 전 새내기라 이번달 겨우 12권 읽었는데..그것도 가벼운 책이랑 섞어서 말이죠 ㅜ.ㅜ
출퇴근 시간에 읽으면 좋겠는데... 차만 타면 졸려서여 ㅋㅋㅋ
암튼 너무너무 대단하십니다. 부럽~~

시이소오 2016-03-01 21:24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도 저처럼 회사 안 나가면 읽을 수 있어요. 단 굶주려야한다는 단점도 있답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6-03-01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0년 걸려 2만권의 책 읽은 작가 한명 알고 있습니다. 긴가민가 했는데 이 속도라면 현실이었네요... 확인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
화이팅입니다. ^^

시이소오 2016-03-01 21:26   좋아요 0 | URL
허걱 40년 동안 2만권이라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책만 읽고 살면 좋을텐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을 해야하니, 그게 관건일듯 하네요^^;

북다이제스터 2016-03-01 21:31   좋아요 0 | URL
네, 그 분도 번듯한 직장 갖고 있는 투자 애널리스트입니다. ^^ 동시에 책도 쓰는 작가구요. ^^

시이소오 2016-03-01 21:35   좋아요 1 | URL
일하면서 이만권 읽는게 과연 가능한건지. 저는 일종의 프리랜서라 일할땐 한권읽기도 힘들어요. 일 없을때 죽어라 읽어놔야죠^^;

2016-03-01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대단하십니다 👍

시이소오 2016-03-01 21:47   좋아요 0 | URL
대단하긴요. 백수라 책 읽는거 말고 할게 없어서요^^;

cyrus 2016-03-01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인이 쓴 책에 대해서 호평을 할 수 있고, 혹평을 할 수 있다고 봐요. 그렇게 심하게 나쁘게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좋은 점을 좋다고 말하고, 아쉬운 점은 솔직하게 밝히는 게 왜 나쁜 겁니까? ㅎㅎㅎ 독자의 위치에 서서 지인의 책을 평가할 수 있어요. 지인이 자신의 책을 제대로 혹평하면 거부하고, 귀를 막는 작가야말로 비윤리적인 자세입니다. 서유미 작가님은 이런 사람이 아닐 거라 믿습니다. ^^

시이소오 2016-03-01 22:23   좋아요 0 | URL
서유미작가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난감하네요 ㅋ ^^;

VANITAS 2016-03-05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러운 독파 권 수네요. 계속 건승 기원합니다. 좋은 책 많이 올려주세요.

시이소오 2016-03-05 17:14   좋아요 0 | URL
격려 감사합니다 ^^

이정동 2016-03-06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대단들 하시네예!!~~저 나름,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어휴우~~~~님들께는 명함도 못 내밀겠어예!!~~
알리딘은 이주일에 한번 이용을 해서 갈 때마다 4~5권씩 사와서 보구 있는데~~~~

열심히 읽어야 겠습니다!

책을 읽으며 제 나름, 인생에서 크나큰 진정한 용기가 무언지 알게 되었고예, 저도 그것을 가지려 안간힘을 쓰고 있읍니데이!

시이소오 2016-03-06 17:50   좋아요 1 | URL
많이 읽는다고 좋은건 아닐겁니다. 님처럼 진정한 용기를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면 많고 적고에 상관없이 그게 진정한 독서가 아닐까요? ^^
 


뉴턴의 전기들도 많은데, 그중 표준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은 리처드 웨스토폴의 <결코 쉬지 않는>이다. 이 책은 무려 900쪽이 넘는다. 요즘에는 제임스 글릭이 쓴 전기가 각광을 받는다.

 

뉴턴의 종교적 연구들을 더 호의적이고 더 섬세하게 다룬 책을 읽고 싶다면 프랭크 마누엘의 <아이작 뉴턴의 종교>를 추천한다.

 

갤리슨의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 시간의 왕국>은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와 그들의 인생을 섬세하고 웅장하게 그린 두 장의 초상화다.

 

푸앵카레를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독자라면 벤저민 얀델이 쓴 짧은 전기를 일독하길 권한다. 얀델의 <명사들 :힐베르트의 문제들과 그 해결사들>1900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서 다비트 힐베르트가 제시한 그 유명한 23개의 수학난제를 해결한 사람들의 전기 모음집이다. 푸앵카레는 이 대회에서 22번 문제를 풀었다.

 

개념을 강조한 쿤파 역사학자들과 도구를 강조한 갤리슨파 역사학자들 간의 논쟁은 지금까지도 시들해진 적이 없다. 이론적 과학에 단련된 역사학자들은 쿤 쪽에 기울고, 실험적 과학에 단련된 역사학자들은 갤리슨 쪽으로 기우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이 논쟁에서도 각 파의 지도자보다 그들을 따르는 신봉자들이 훨씬 더 독단적이다......일전에 역사학자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쿤의 신봉자들이 쿤의 견해를 심하게 과장하고 있었다. 쿤은 회의실 뒤에서 좌중을 압도하는 목소리로 이렇게 소리치며 신봉자들을 제지했다. “여러분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전 쿤파가 아닙니다.”

 

갤리슨은 임계혼탁critical opalescence’이라는 용어로, 상대성 이론이 발견된 1905년의 상황을 요약하고 있다. 임계혼탁은 물이 고압에서 섭씨 374도로 가열될 때 나타나는 아름다운 효과를 말한다. 374도는 물의 임계온도라고 불린다. 달리 말하면, 물이 끓지 않고도 끊임없이 증기로 바뀌는 온도다. 임계온도와 임계압력에서는 물과 증기를 구분할 수 없다. 이때의 물과 증기는 기체라고 해야 할지, 액체라고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단일 유체 상태다. 임계 상황에 이르면 이 유체는 끊임없이 기체와 액체 사이에서 상전이를 일으키고, 이 상전이는 다채로운 빛깔의 반짝임으로 가시화된다. 이때의 반짝임이 유백색 보석인 오팔의 다채로운 빛과 비슷하다고 해서 ‘opalescence’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푸앵카레는 철학적 사유를 담은 <과학과 가설>에서 지식의 근원을 더 깊이 연구하면서 절대 시공간이라는 뉴턴의 개념을 비판했다. 아인슈타인도 그 책을 읽고 연구했다. 그러나 철학 역시 두 사람의 발견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상대성이론의 탄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사고방식이었다. 도구와 개념과 철학적 사유가 한데 뒤섞여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융합되는 그 순간, 상대성이론이 탄생한 것이다. 갤리슨은 쿤파와 갤리슨파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으려 했던 모양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중도의 입장을 견지한다. ‘임계혼탁의 순간에 이르면, 역사를 궁극적으로 개념에 대한 것으로 보느냐, 근본적으로 물질적 대상에 대한 것으로 보느냐 하는 변덕스러운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길이 열린다.’

 

푸앵카레는 보수적인 성향이었던 반면, 아인슈타인은 혁명적이었다. 이것은 두 사람의 중대한 차이다. 새로운 전자기이론을 찾았을 때도 푸앵카레는 가능하면 옛 이론들을 고수하려 했다. 그는 에테르를 사랑했다. 심지어 에테르가 관찰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론으로 입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에테르에 대한 믿음을 접지 않았다. 푸앵카레의 상대성이론은 조각천을 기워놓은 꼴이었다. 그는 관찰자의 이동에 따라 달라지는 지방시라는 새로운 개념을, 완고하고 요지부동한 에테르로 규정된 절대 시공간이라는 낡은 틀에다가 기워놓은 것이다.

 

개념이 바로 결정적 요인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낡은 개념을 버리고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는데 적극적이었던 탓에 상대성이론의 세계로 엄청난 도약을 했다. 하지만 푸앵카레는 벼랑 끝에서 머뭇거리느라 도약하지 못했다. 적어도 이 경우에서는 쿤이 옳았다. 1905년의 과학혁명은 도구가 아니라 개념이 추동한 것이다.

 

그린은 거시적 대상과 미시적 대상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양자중력이론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즉 거시적 대상에서는 일반상대성 이론처럼, 미시적 대상에서는 양자역학처럼 작동하는 통합이론을 의미한다....그 후 끈이론이 등장했고, 최초로 일반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성공적으로 통합했다. 이 성공으로 발견자들은 끈 이론이 만물의 이론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할 타당한 근거를 얻었다.


물리학의 세계를 분할하는 개념을 고안한 사람은 양자역학의 탄생을 주도한 닐스 보어였다. 그는 아인슈타인과 동시대인이었다. 또 한 명의 동시대인 로런스 브래그는 보어의 개념을 이렇게 한마디로 표현했다. ‘미래의 모든 것은 파장이고, 과거의 모든 것은 입자다


 

만일 초끈이론이 맞다면 물리학은 기념비적인 성공을 거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이론은 공간의 구조에 관해 아인슈타인조차도 대경실색할 정도로 황당한 가정을 저변에 깔고 있다......이 우주의 시공간이 3차원 공간과 1차원의 시간으로 이뤄져 있다는 기존의 관념을 폐기하고, 9차원 공간과 1차원의 시간이라는 황당무계한 가정을 받아들여야 한다......초끈 이론은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는 진정한 실체가 아니라 실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셈이다.

<우주의 구조>

 

오펜하이머는 편지에서 아버지처럼 의젓하게 동생에게 조언을 한다.

 

시련이 우리에게 주는 장점들이 많고 많겠지만, 무엇보다 우리 영혼을 단련시켜준다는 점이 중요하다. 나는 당장의 목표보다 시련을 통해 얻는 보상이 더 크다고 믿는다. 부디 시련이 부질없다고 여기진 말거라. 원래 시련이란 영혼을 지키게도 하지만 고의적인 시련이 아닌 한, 모든 시련에는 끝이 있는 법이다.

 

미세한 원자핵의 발견은 대성당안의 파리에 빗대어 설명되었다. 파리는 원자핵을, 대성당은 원자를 말한다. 그의 실험으로 원자의 거의 모든 질량과 에너지가 원자 부피의 1/1조에도 못 미치는 원자핵 안에 있음이 증명되었다.

 

월턴은 혼자 실험실에서 경금속 원자인 리튬으로 이뤄진 표적에 수소원자핵을 충돌시키는 최초의 실험을 했다. 그 결과는 굉장했다. 리튬 원자핵들이 둘로 쪼개지면서 여러 쌍의 헬륨 원자핵으로 분리된 것이다. 헬륨 원자핵들은 입사된 수소원자핵보다 무려 30배가 넘는 에너지를 갖고 방출되었다. ..바로 그날, 테이블 핵물리학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루빈은 조지 가모프가 미국으로 건너온 후에 그의 제자로 천문학에 입문했다. 그녀는 은하 내부의 운동속도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가벼운 어떤 물질이 은하들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의 망원경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은하들 구석구석을 암흑물질이 메우고 있다고 추정했다. 암흑물질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암흑물질은 탐구해야 할 또 하나의 심오한 미스터리다. 우리는 단지 암흑물질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안다. 그리고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물질보다는 무겁다는 사실만 알뿐이다.

 

위너는 응용수학자로서 제어 시스템과 되먹임 기작을 전반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을 정립하고, 그 이론을 사이버네틱스라고 불렀다. 사이버네틱스는 일종의 복잡성의 이론이다. 쉽게 말해, 잘 이해되지 않는 매개들과 불확실한 사건들로 가득 찬 세계를 최적으로 다루는 방식을 찾아주는 이론이었다.

 

19471, 위너는 <애틀랜틱 먼슬리>에 발표한 과학의 반역자들이라는 논평에서 정부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견해를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나는 앞으로 무책임한 군사전문가들의 손에서 훼손될 우려가 있는 연구는 발표하지 않을 것이다.’ 이 논평이 발표되자마자, 52세의 위너는 어린 신동이었을 때만큼 유명인사가 되었다.

 

내가 아는 한 <정보 시대의 우울한 영웅>은 노버트 위너의 세 번째 전기다. 제일 먼저 출간된 전기는 1980년 스티브 하임스의 <존 폰 노이만과 노버트 워너: 수학에서 기술로, 삶과 죽음>이다. 그리고 1990년에는 페시 마사니의 <노버트 워너, 1894~1964>가 출간되었다.

 

마거릿은 그 일을 훌륭히 수행했다. 검소하게 가정을 꾸리고, 위너를 위해 편안한 가정환경을 제공하고, 아이들을 낳고 길렀다. 결혼 초기에 그녀는 친구에게 노버트는 수학을 하고, 나는 계산을 하지라고 말했다.

 

위너는 사이버네틱스를 기계와 동물을 막론하고 모든 분야를 통합하는 제어와 소통이론으로 정의했다. 이 소통이론의 언어는 수학이다. 아날로그 소통은 직접적인 측정이 가능한 전압과 전류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수량의 용어로 세상을 설명한다. 디지털소통은 01이라는 용어로 세상을 설명한다. 01은 두 개의 대안 사이에서 내릴 수 있는 논리적 선택을 대표한다. 한마디로, 아날로그 소통은 분석의 언어이고, 디지털 소통은 논리의 언어다.

 

위대한 과학자엔 두 부류가 있다. 이사야 벌린은 기원전 7세기 시인 아르킬로코스의 표현을 따서 이들을 여우와 고슴도치라 불렀다. 여우는 재주가 많고, 고슴도치는 재주가 딱 하나뿐이다. 여우는 만사에 관심이 있고, 이 문제에서 저 문제로 쉽게 옮겨간다.

 

고슴도치는 스스로 기본이라고 여기는 소수의 문제들에 매달려 몇 년 또는 몇 십 년을 파고든다. 위대한 발견은 대개 고슴도치들의 몫이고, 사소한 발견은 대개 여우들의 몫이다.....고슴도치들은 사물의 본질을 파고, 여우들은 경이로운 우주의 세세하고 복잡한 내용들을 파헤친다. 그런면에서 아인슈타인은 고슴도치였고 리처드 파인만은 여우였다.

 

<세상, 육체 그리고 악마 : 이성의 세 적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는 존 데즈먼드 버널이 28세였던 1929년에 처음으로 출간한 책이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두 가지 미래가 있다. 원하는 미래와 운명적 미래.

인간의 이성은 이 둘을 구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대단한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청소부로서 인공유기체의 효율성을 예측할 수 있다. 강이나 호수의 유기수은을 무해한 불용성 고체로 전환하는 미생물도 생각해볼 수 있다. 폴리염화비닐을 왕성하게 먹는 인공유기체라면 현재 지구상의 모든 해안가에 널려 있는 플라스틱류들을 말끔히 청소해줄 것이다. 어쩌면 폐기된 자동차를 먹어치우는 동물 종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겠다.

 

사실 태양계 주위의 우주에는 생명에 꼭 필요한 화학물질들과 물을 충분히 가진 직경 몇 킬로미터 정도의 혜성들이 무수히 많다......태양계가 형성된 지 수십 억 년 동안 혜성이 지속적으로 날아왔다고 본다면, 태양에 느슨하게 묶여 있는 혜성은 수십억 개에 이를 것이다. 이런 혜성의 표면적들을 합산하면 지구 표면적의 천 배, 아니 만 배나 된다. 나는 이런 근거에서 행성이 아니라 혜성에다 생명의 둥지를 틀어야 마땅하다고 확신한다.

 

인간 정착에 필수적인 요소 중 단 두 가지가 부족할 뿐이다. 온기와 공기다. 이제 생물공학이 우리를 구할 때다. 혜성에 나무가 자라게 하는 방법만 알면 된다.

 

우주공간에서 잎의 피막은 네 가지 요구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선 방사능 위험으로부터 생체조직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원자외선을 투과시키지 않아야 한다. 내수성도 필수다. 그리고 광합성 기관에는 가시광선을 전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원적외선 복사율은 극히 낮아야 열의 손실을 막아서 얼어죽지 않는다.

 

나무껍집은 단열성이 뛰어나야한다. 혜성의 표면을 파고든 뿌리는 얼어붙은 내부재료들을 녹여 필요한 물질을 만들어내 한다. 잎이 생성한 산소는 허공이아니라 뿌리쪽으로 방출해, 둥치 주변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공급되어야 한다.

 

나무는 혜성에서 얼마나 높이 자랄까? 그 대답은 놀랍다. 직경이 약 16킬로미터가 채 안되는 천체에서라면 중력이 약해 나무는 한없이 성장한다. 이 나무는 수백 킬로미터까지 높게 자라면서, 자기가 차지한 혜성 자체의 단위면적보다 수천 배 더 큰 단위면적에 해당하는 태양에너지를 모은다.

 

세포의 두 기능인 유전물질(DNA)과 효소 역할을 하는 기계(단백질)는 자기증식 기계를 구성하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기능에 정확히 상응한다.

 

미래를 긴 안목으로 내다볼 때, 나는 태양계가 두 영역으로 나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햇빛이 풍부하고 물이 부족한 내부 영역은 거대한 기계와 정부주도 사업체가 차지할 것이다. 이곳에서 자기증식 기계는 충직한 노예이고, 인간은 거대 관료체제로 편성된다. 태양이 미치지 않는 외부 영역은 물이 풍부하고 빛이 희박하다. 이곳에는 나무들이 띄엄띄엄 자라고 인간들이 소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는 혜성들이 드문드문 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올 때 보물처럼 간직했던 책이 하나 있었다. 존 더버 윌슨의 <셰익스피어의 참모습>이다.

 

존 리틀우드는 내가 학생이었을 때, 케임브리지에서 수학을 가르친 유명한 수학자였다. 그는 이 법칙을 제안하기 전에 이미 기적을 정확하게 정의했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기적은 일어났을 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어떤 한 사건을 의미하는데, 그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1/100만이다.


리틀우드의 기적의 법칙은 평범한 사람의 일상생활에서 대략 한 달에 한 번 꼴로 기적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우리가 보통 하루에 활동하는 시간은 약 8시간이고, 그 시간동안 약 1초에 한 번꼴로 무언가를 보거나 듣는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하루에 약 3만번, 한 달에100만 번 정도의 사건이 발생하는 셈이다.

 

스테이플던은 과학자가 아닌 철학자다. 그는 철학이 오랫동안 매달려왔던 고질적인 문제를 참신하고 우앟게 풀기 위해 <스타메이커>를 썼다. 그 문제란 우리 세상에 존재하는 악과 전능하지만 완전히 사악하다고 할 수는 없는 창조주를 화해시키는 것이다. 그가 찾은 해법은 우리 우주가 여러 우주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우리 우주가 생명에 우호적인 이유를 설명하는 철학적 문제는 결국 미세조정(우주의 물리상수들이 생명 유지에 적함하게끔 특정한 방법으로 미세조정되었다는 것)문제로 귀결된다. 우주학자 리 스몰린은 미세조정 문제에 최초로 다중우주 개념을 도입했다. 그는 이렇게 가정했다. 우리 우주는 여러 우주들 중 하나다.

 

아기들이 태어나듯, 늙은 우주들 안에서 새로운 우주들이 태어나고 있다. 아기 우주들은 부모 우주를 닮았으나 무작위로 갖가지 종류의 물리법칙과 화학법칙들을 타고난다. 이러한 가정을 전제로, 다윈의 진화론 과정을 따라서 수명이 긴 우주들이 선택된다. 따라서 인간과 같은 생명체가 수명이 긴 우주 중 한 곳에 존재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천문학자 마틴 리스는 자연이 미세조정 문제를 해결했음직한 또 하나의 방법을 제안했다. 그는 다중우주가 존재한다면, 그중 몇몇 우주는 우리보다 정신작용에서 훨씬 더 진보한 생명체의 진화를 허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초지능 생명체는 어쩌면 자신의 두뇌로 또는 슈퍼컴퓨터로 복잡성 수준이 조금 낮은 또 다른 우주의 역사를 완벽하게 모의실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리스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와 이 우주는 초지능 생명체의 뇌 안에서, 물질적 재료가 전혀 없이 오직 정신적 구조로 모의실험된 것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 개념은 새로운 종류의 가상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진보된 존재들이 창조한 모의실험은 사실상 과거를 재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창조한 모의실험이란 고전적인 개념의 시간고리가 아니다. 자기들의 역사를 탐구하기 위해 과거를 복원한 것이다. ’

 

<스타메이커>는 단테의 <신곡>에 비견할 만한 책이 분명하다.

 


데닛은 사회학자로서 미국의 종교단체들과 관행들을 연구한 앨런 울프의 말을 인용한다.

 

복음주의의 인기는 교리에 대한 확신뿐만 아니라, 대중의 욕구에 영합하는 경향(신도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간파하고 그것을 제공하는 경향)에서도 비롯된다. 교회는 강력한 종교적 함의를 갖고 있는 성소라는 말을 원치 않는다. 성서의 문장들을 정확하게 해석하기보다는 더 큰 주차장과 더 쾌적한 육아실을 제공하는 데에 더 신경을 쓴다.


데닛은 물리학자 스타인 와인버그의 유명한 말을 인용하면서 적극적으로 동의를 표한다. ‘착한 사람들은 선한 일을 하고, 나쁜 사람들은 나쁜 일을 한다. 하지만 착한 사람이 나쁜 일을 할 때도 있다. 바로 종교를 갖는 것이다.

 

나카오 타카노리에게 지면을 할애하려고 한다. 그는 밤의 적막을 깨는 시계 초침소리마저 고독하여라라고 시작하는 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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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카의 화 다스리기 소울메이트 고전 시리즈 - 소울클래식 8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정윤희 옮김 / 소울메이트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죽이고 싶도록 미운 사람이 있는가? 혹은 당신을 화나게 만드는 사람이 죽기를 원하는가?

이 책에는 때려죽이고 싶도록 미운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아주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 실려 있다.

, 책 끝부분에 소개하고 있어 본 리뷰에서도 맨 마지막에 공개하기로~~


세네카는 알려져 있다시피 스토아학파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사상가다. 그는 그 유명한 폭군 네로 황제의 최측근으로 활동하지만 네로가 거의 실성할 무렵 네로 곁을 떠나 은둔생활을 한다. 결국 황제암살을 모의했다는 모함에 의해 독약을 마시고 세상을 떠났다.


불교가 열반, 니르바나를 추구한다면 스토아학파는 평정, 아파테이아를 추구한다.

동양으로 치자면 중용이다.


누구는 화를 내라고 하고, 누구는 화를 참으라고 하고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난감하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화를 내서 좋은 결과가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화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내 육체와 정신을 갉아먹었으니.

오호통재라. 화를 냈다 병원 신세를 졌던 게 무릇기하였던가! 부러지고 째지고 깨지고.

돈은 또 얼마나 깨졌던가. 수 천 만원이 날라 갔다.

 

세네카는 화를 초기에 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화가 난 이상 제어하기는 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영화 <레버넌트>처럼 자신의 눈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서도 화를 내지 말아야 할까? 세네카에 따르면 그렇다. 화는 성급하고 광기에 가까운 것이라 목표를 성취하는데 걸림돌이 되기 십상이다.

 

인간들이 저지르는 죄악에 대해서도 화를 내지 말아야 할까? 예를 들면 세월호 유가족 단식하는 옆에서 짜장면, 치킨을 쳐 먹는 것들을 보고도 화를 내지 말아야 하나? 그렇다. 왜냐하면 온 사방이 악덕과 죄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경우에 화를 낸다면 우린 분노로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차분하게 대안을 생각해야지 화를 낸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의 우매함을 인정하고 용서하려는 아량을 지녀야 한다. 숲에 과일나무가 자라지 않는다고 화를 내야 하나? ‘배부른 돼지들이 꿀꿀댄다고 화를 내야할까? ‘개새끼들이 컹컹 짓는다고 화를 내야 할까. 그들은 오로지 꿀꿀대고 짖기 위해 태어났다.

타고난 자연의 결함 때문에 화를 낼 순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을까. 참아야 한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화가 났을 때 거울에 비춰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또한 화가 날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된다. 너무 과중한 일이나 중요한 일에 휘둘린다면 화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진다.

 

소크라테스는 화가 나면 억지로 목소리를 낮추고 말수를 줄였다고 한다. 화를 자극할 만한 사람들과는 아예 어울리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그리고 가장 공감한 문장. ‘애꿎은 물건을 향해 화풀이를 하지 말라게임에서 졌다고 핸드폰을 던져 버린 게 몇 번 이던가. 세네카의 말대로 이건 미친 짓이다. 핸드폰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심지어 누군가 우리에게 화를 내더라도 오히려 친절함으로 대해야 한다.

연약한 생물들은 건드리기만 해도 공격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연민을 가져야한다.

 

결정적으로 화를 내면서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 우리를 화나게 하는 사람이 죽기를 원한다면?

세네카의 방침은...... ‘가만히 있는 것이다.

 

그 역시 곧 죽음을 맞을 테니까. 당신이 애쓰지 않아도 이루어질 일이라면 괜스레 고통스러워하며

우리의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우리를 괴롭게 하는 돼지, , 말라리아 같은 인간들도 곧 죽을 거라고 생각하니 행복하다.

웃으며 잠들겠다.

 

밑줄 그은 문장.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상처를 입었을 때 곧바로 화가 나는 것인지, 아니면 먼저 마음의 동요가 일어난 후에 화가 나는 것인지다. 스토아학파의 일반적인 견해는 화는 그 자체로 야기되지 않으며 마음의 동요가 있어야만 느껴진다는 것이다.

 

우리도 긴 호흡을 유지하며 끝없이 밀려오는 끈질긴 악덕에 맞서야 한다. 악덕을 뿌리 뽑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떻게든 사악한 격정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우리는 모든 경우의 수를 예상하고 있어야 한다.

 

언제나 우리를 힘들게 할 수 있는 사건이 터질 수 있다고 생각하라. 배를 조종하는 사람은 절대로 자만하여 돛을 활짝 펴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언제든 밧줄을 짧게 당겨야 할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개미와 쥐는 누가 손만 내밀어도 이빨을 드러낸다. 연약한 생물들은 건드리기만 해도 공격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아테네의 폭군으로 알려진 피시스트라투스의 만찬회장에서 비슷한 일화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만찬회에 온 손님 중 한 명이 피시스트라투스의 잔혹성에 대해 꼬치꼬치 따지고 들었고 사방에서 그를 가만히 두면 안 된다는 불만이 들끓었다. 그런데도 피시스트라투스는 아무렇지 않은 듯 자신의 화를 돋우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실수로 나와 부딪혔다고 해서 화를 낼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화가 나 있는 상태에서는 가능한 한 어떠한 행동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이유가 궁금한가? 일단 화가 나면 그 순간에는 어떤 짓이라도 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로마의 사상가 섹스티우스도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그는 매일 저녁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스스로 이렇게 자문했다. ‘오늘 나는 어떤 나쁜 습관을 고쳤는가?’ 악덕을 다스리려고 노력했는가? 어떤 점에서 발전을 이루어냈는가?‘

 

지금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소중한 시간들은 얼마 후면 사라질 것이다. 그때까지 최대한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 타인을 위협하거나 공포를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엄청난 손해를 입거나 부당한 일을 겪더라도, 경멸을 당하고 비웃음을 듣더라도 덧없는 인생사를 초월해 인내하자. 세상사에 휘둘려 살다 보면 어느새 우리 앞에 죽음이 다가와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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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 2016-02-29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때에 따라 화를 내는 것도 한 방법인 것 같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시이소오 2016-02-29 21:56   좋아요 0 | URL
세네카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저는 동의합니다^^

PRAUTES 2016-03-06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네카의 가르침도 네로를 어떻게 하지 못한 게 아쉽긴 합니다.

시이소오 2016-03-06 07:23   좋아요 0 | URL
독재자들은 현명한 말도 안 통하죠^^

PRAUTES 2016-03-06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맞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세네카보다는 아우렐리우스를 더 좋아합니다.

시이소오 2016-03-06 07:31   좋아요 0 | URL
리스본행 야간열차 읽고 저도 아우렐리우스 읽고 싶어졌어요^^

PRAUTES 2016-03-06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은 한 사람을 망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화를 돋운다.˝

시이소오 2016-11-01 13:51   좋아요 0 | URL
이글을 지금 읽었네요. 허걱 죄송해요^^;

마음대로대왕 2016-11-01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는 정말 본능에 충실하면 큰일나죠. 다스려야합니다.

시이소오 2016-11-01 13:52   좋아요 0 | URL
마음대로대왕님, 맞는 말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