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도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다. 적어도 44권을 읽었어야 했는데. 하루가 더 있었더라면.
실제로 하루가 더 있었다. 올해 2월이 29일까지인 걸 몰랐다.
28일이 2월의 끝이라 여기고 지레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기를 쓰고 40권을 읽으려 덤볐을텐데. 서른 여섯 권에서 일찌감치 포기했었으니......
이 달에 읽은 38권의 책 중 서유미 작가의 <끝의 시작>만은 리뷰를 쓰지 않을 작정이다.
지인의 작품에 호평을 하는 건 비도덕적이고
혹평을 하는 건 비윤리적이다.
<판타스틱 개미지옥>수상으로 축하주를 마신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서유미 작가는 중견작가가 되었다. 부지런히도 쓰는구나.
자랑스럽고 대견한다는 말만은 하고 싶다.
(미안하다. 유미야. 빌려봤어. 돈 많이 벌면 사서 볼게.^^;;)
이달엔 휴...... 이달의 책으로 뽑을만한 책이 무더기다.
읽는 인간, 시의 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토너, 사피엔스, 사회학의 쓸모,
생각의 시대, 인생에 화를 내봤자, 사는 게 뭐라고, 직언, 위험한 자본주의, 가능성의 중심,
과학은 반역이다, 세네카의 화 다스리기, 라면을 끓이며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달의 책을 뽑으면서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밤새 이 책을 읽은 아침에 철학 선생하는 친구에게 카톡을 날렸다.
‘읽어라’
친구는 ‘뭐야, 자음과 모음이네.....’ 했지만
이런 미친 책은 실로 오랜만이다. 20대 때 쇼펜하우어나 니체를 읽었을 때만큼의 충격.
왜 ‘일본의 니체’라고 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렇다. 이 달의 책으로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 손을 들겠다.
책을 읽으며 내내 영화 <링>이 떠올랐다. 사다코의 비디오를 본 여주인공 레이코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봐 버리고 말았어.”
읽어버리고 말았다. 돌이킬 수 없다. 비디오를 보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듯
이 책을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니까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게 되는 셈이다.
사사키 아타루 책을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
어느 쪽이 행복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아니, 이 책을 읽은 사람이 불행해질 확률이 더 높다.
(그러니까 되도록 읽지 마세요 ^^;;)
읽어버리고 말았다.
좆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