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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카의 화 다스리기 ㅣ 소울메이트 고전 시리즈 - 소울클래식 8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정윤희 옮김 / 소울메이트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죽이고 싶도록 미운 사람이 있는가? 혹은 당신을 화나게 만드는 사람이 죽기를 원하는가?
이 책에는 때려죽이고 싶도록 미운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아주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 실려 있다.
단, 책 끝부분에 소개하고 있어 본 리뷰에서도 맨 마지막에 공개하기로~~
세네카는 알려져 있다시피 스토아학파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사상가다. 그는 그 유명한 폭군 네로 황제의 최측근으로 활동하지만 네로가 거의 실성할 무렵 네로 곁을 떠나 은둔생활을 한다. 결국 황제암살을 모의했다는 모함에 의해 독약을 마시고 세상을 떠났다.
불교가 열반, 니르바나를 추구한다면 스토아학파는 평정, 아파테이아를 추구한다.
동양으로 치자면 중용이다.
누구는 화를 내라고 하고, 누구는 화를 참으라고 하고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난감하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화를 내서 좋은 결과가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화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내 육체와 정신을 갉아먹었으니.
오호통재라. 화를 냈다 병원 신세를 졌던 게 무릇기하였던가! 부러지고 째지고 깨지고.
돈은 또 얼마나 깨졌던가. 수 천 만원이 날라 갔다.
세네카는 화를 초기에 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화가 난 이상 제어하기는 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영화 <레버넌트>처럼 자신의 눈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서도 화를 내지 말아야 할까? 세네카에 따르면 그렇다. 화는 성급하고 광기에 가까운 것이라 목표를 성취하는데 걸림돌이 되기 십상이다.
인간들이 저지르는 죄악에 대해서도 화를 내지 말아야 할까? 예를 들면 세월호 유가족 단식하는 옆에서 짜장면, 치킨을 쳐 먹는 것들을 보고도 화를 내지 말아야 하나? 그렇다. 왜냐하면 온 사방이 악덕과 죄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경우에 화를 낸다면 우린 분노로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차분하게 대안을 생각해야지 화를 낸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의 우매함을 인정하고 용서하려는 아량을 지녀야 한다. 숲에 과일나무가 자라지 않는다고 화를 내야 하나? ‘배부른 돼지’들이 꿀꿀댄다고 화를 내야할까? ‘개새끼’들이 컹컹 짓는다고 화를 내야 할까. 그들은 오로지 꿀꿀대고 짖기 위해 태어났다.
타고난 자연의 결함 때문에 화를 낼 순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을까. 참아야 한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화가 났을 때 거울에 비춰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또한 화가 날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된다. 너무 과중한 일이나 중요한 일에 휘둘린다면 화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진다.
소크라테스는 화가 나면 억지로 목소리를 낮추고 말수를 줄였다고 한다. 화를 자극할 만한 사람들과는 아예 어울리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그리고 가장 공감한 문장. ‘애꿎은 물건을 향해 화풀이를 하지 말라’ 게임에서 졌다고 핸드폰을 던져 버린 게 몇 번 이던가. 세네카의 말대로 이건 미친 짓이다. 핸드폰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심지어 누군가 우리에게 화를 내더라도 오히려 친절함으로 대해야 한다.
연약한 생물들은 건드리기만 해도 공격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연민을 가져야한다.
결정적으로 화를 내면서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아, 우리를 화나게 하는 사람이 죽기를 원한다면?
세네카의 방침은...... ‘가만히 있는 것’이다.
“그 역시 곧 죽음을 맞을 테니까. 당신이 애쓰지 않아도 이루어질 일이라면 괜스레 고통스러워하며
우리의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우리를 괴롭게 하는 돼지, 개, 말라리아 같은 ‘인간’들도 곧 죽을 거라고 생각하니 행복하다.
웃으며 잠들겠다.
밑줄 그은 문장.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상처를 입었을 때 곧바로 화가 나는 것인지, 아니면 먼저 마음의 동요가 일어난 후에 화가 나는 것인지다. 스토아학파의 일반적인 견해는 화는 그 자체로 야기되지 않으며 마음의 동요가 있어야만 느껴진다는 것이다.
우리도 긴 호흡을 유지하며 끝없이 밀려오는 끈질긴 악덕에 맞서야 한다. 악덕을 뿌리 뽑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떻게든 사악한 격정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우리는 모든 경우의 수를 예상하고 있어야 한다.
언제나 우리를 힘들게 할 수 있는 사건이 터질 수 있다고 생각하라. 배를 조종하는 사람은 절대로 자만하여 돛을 활짝 펴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언제든 밧줄을 짧게 당겨야 할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개미와 쥐는 누가 손만 내밀어도 이빨을 드러낸다. 연약한 생물들은 건드리기만 해도 공격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아테네의 폭군으로 알려진 피시스트라투스의 만찬회장에서 비슷한 일화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만찬회에 온 손님 중 한 명이 피시스트라투스의 잔혹성에 대해 꼬치꼬치 따지고 들었고 사방에서 그를 가만히 두면 안 된다는 불만이 들끓었다. 그런데도 피시스트라투스는 아무렇지 않은 듯 자신의 화를 돋우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실수로 나와 부딪혔다고 해서 화를 낼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화가 나 있는 상태에서는 가능한 한 어떠한 행동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이유가 궁금한가? 일단 화가 나면 그 순간에는 어떤 짓이라도 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로마의 사상가 섹스티우스도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그는 매일 저녁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스스로 이렇게 자문했다. ‘오늘 나는 어떤 나쁜 습관을 고쳤는가?’ 악덕을 다스리려고 노력했는가? 어떤 점에서 발전을 이루어냈는가?‘
지금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소중한 시간들은 얼마 후면 사라질 것이다. 그때까지 최대한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 타인을 위협하거나 공포를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엄청난 손해를 입거나 부당한 일을 겪더라도, 경멸을 당하고 비웃음을 듣더라도 덧없는 인생사를 초월해 인내하자. 세상사에 휘둘려 살다 보면 어느새 우리 앞에 죽음이 다가와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