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삼촌, 현기영


 

현기영의 <순이삼촌>1978<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발표되었다. 4.3을 소재한 한 최초의 작품.

 

15년 전 이 작품은 내 삶의 전환점, 격동의 모퉁이가 되었다. 나름 수많은 결심을 했다. 코너를 돌아 모르는 곳에 들어설 때까지 내 앞에 무엇이 버티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 긴장은 진실이라는 신세계에 대한 두려움, 혼란, 호기심, 쾌락.....일 수 있다. 분명 한 것은, 이 긴장이 나를 살게 한다는 것이다.

 

이십세기 기수, 다자이 오사무




 

한수산의 분석이 딱 옳다. “그를 읽는다는 것은 젊은 날의 상처다. 그러므로 그 상처가 나을 때 독자는 그를 떠난다. 다자이는 홀로 거기 있다. 어린이가 자라면 또 다른 젊은이가 다자이를 만나고....다만, 나는 안다. 그는 자신의 초기 작품에서 더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는, 나아가지 못한 작가라는 것을.”

 

20대 때 나는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했다.

40대의 나. 다자이 오사무 곁을 떠나지 못한다. 왜 나는 여전히 그 옆에서 어슬렁거리는 걸까.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소설과 달리 영화는 파커가 사라진 밀림 입구를 두 번 클로즈업한다. 통증이 느껴지는 압권이다. 소년은 엉엉운다. 살아남은 감격 때문이 아니라 7개월 넘게 함께했던 리처드 파커가 뒤도 안 돌아보고 아무 인사도 없이떠났기 때문이다.

 


정희진도 그 장면에서 울었다.

나도 울었다.

그래도 나는 조금 늦게 울었다.

 

은밀한 호황, 김기태, 하어영


 

2010년 한국 사회의 화대7조 원. 같은 해 영화 산업 매출 12천억의 5배를 넘는다.

 

성 판매는 당연히 노동이다. 그것도 위험한 중노동이다. 그러나 나는 성 노동에 반대한다. 노동이되 어떤 노동인가, 수천 년간 왜 여성 직종인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너무 오래된 노동을 두고 노동이 VS 아니다를 논하는 이 사회의 지성이 민망하다.

 

탈식민 이론가 가야트리 스피박은 민중은 말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하면서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접근했다. 당사자의 말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무조건 옳거나 정당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생각 역시 사회적 산물이다. 어떤 여성은 생존자보다 성 노동자라는 정의에 더 자존감이 높아졌다고 말한다. 나는 성 판매가 기존의 노동 범주에 포함되기보다는 노동 개념의 변화를 촉진하는, 새로운 문제 제기의 언어가 되기를 바란다.

 

손 무덤, 박노해



 시집 <머리띠를 묶으며> 중


턱뼈 무덤’(어느 성형외과에 전시된 턱뼈)을 보고 박노해의 시 <손 무덤>이 생각났다. 여기서 예술다움이 무엇인가를 가장 창조적인 방식으로 질문한 그의 시를 새삼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20여 년 전 최소한 내 주변에서 그의 시를 읽는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외우고 노래했다.

 

작업복을 입었다고

사장님 그라나다 승용차도

공장장님 로얄살롱도

부장님 스텔라도 태워주지 않아

한참 피를 흘린 후에

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을 갔다.....

기계 사이에 끼어 아직 팔딱 거리는 손을

기름 먹은 장갑 속에서 꺼내어

36년 한 많은 노동자의 손을 보며

말을 잊는다

비닐봉지에 싼 손을 품에 넣고

봉천동 산동네 정형집을 찾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공상이다. 생각은 몸의 형식으로만 존재한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이 안 따른다는 말은 이상하다. 머리(의식)도 몸이다. 의식은 몸의 어느 부위인가? 그런 부위는 없다.

 

지금은 비가....조은


 

그녀의 시 <지금은 비가...>와 동일시하면서 잠시 행복하고 싶다. 남의 시로 연애 편지를 대신하는 이들처럼 이 시가 내 인생이었으면 좋겠다. 그녀의 첫 시집 <사랑의 위력으로>에 처음 등장하는 <지금은 비가....>는 시집 전체를 운명 짓는다. 서른 즈음에 어떻게 이런 언어를! 차갑고 뜨거운 전율이다.

 

시집 <사랑의 위력으로>중

 

벼랑에서 만나자.

부디 그곳에서 웃어주고 악수도 벼랑에서 목숨처럼 해다오

그러면 나는 노루 피를 짜서 네 입에 부어줄까 한다.

, 기적같이

부르고 다니는 발길 속으로

지금은 비가......

 

벼랑에서 만나기를 원한다. 삶 자체가 벼랑의 선택이다. 사방이 배수(背水)의 집이다.

벼랑에 살다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벼랑을 경멸하는 자, 벼랑으로 몰릴까 봐 못 본 체 지나가다 넘어지는 자, 친한 척 다가와 벼랑만의 경험을 인터뷰하는 자, 그저 벼랑에서 함께 살자고 하는 자, 벼랑을 파괴하고 공사판을 벌이는 자, 벼랑에 매달린 손을 밟는 자......

 

인맥 관리, ‘밀당’, 포커페이스.....몸 사리고 계산해봤자다. 남김없이 준다고 해서 바닥나는 마음은 없다. 인간이 바닥을 드러낼 때는 따로 있다. 그러니, 목숨처럼 해 다오.

 

전화, 마종기


 

1976년에 출간된 시집 <변경의 꽃>에 실렸다.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당신 방의 책장을 지금 잘게 흔들고 있을 전화 종소리. 수화기를 오래 귀에 대고 많은 전화 소리가 당신 방을 완전히 채울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당신이 외출에서 돌아와 문을 열 때, 내가 이 구석에서 보낸 모든 전화 소리가 당신에게 쏟아져서 그 입술 근처나 가슴 근처를 비벼대고 은근한 소리의 눈으로 당신을 밤새 지켜볼 수 있도록.

 

다시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외로움에 대해서도 시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지만 내겐 이 시만한 외로움은 없다. 외로움에도 고립, 좌절, 무기력 등 여러 가지 감촉이 있다. 이 시는 간절한 외로움이다. 촉각과 청각의 공감각이 뛰어난 전화소리에 몸이 젖는다. 읽고 또 읽노라면 외로움이 몸에 가득 차서 손목이라도 그어 몸 안의 외로움을 빼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죽음은 내게 주어진 마지막 자유였다. 라몬 삼페드로


 

영화 <씨 인사이드>의 원작이다.

 

생애 한순간만이라도 이렇게 살아봤으면. 책장마다 간절함과 열정의 불꽃이 튄다. <죽음은 내게 주어진 마지막 자유였다>는 지은이가 사지 마비 상태가 된 이후 형수 등 가족들의 도움으로 살다가, 안락사 권리를 위해 투쟁한 기록이다.

 

그는 안락사를 위해 법, 교회, 언론.......온 세상을 상대로 싸웠다. 그의 생의 절정은 죽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 투쟁할 때였다.

안락사를 생명의 차원에서 다루는 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생명을 무시하는 태도다. 문제의 본질은 생명이 아니라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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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6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한수산의 분석에 공감이 갑니다. 더불어 우리에게는 그런 작가로 김승옥이 있다는 생각이 스치고...

개인적으로는 졸업했다고 생각하면 한참 후에 재수강을 하게 되는 두 작가이기도 합니다.

시이소오 2016-02-26 17:57   좋아요 1 | URL
저도 동감입니다. 20대 때 읽고 떠나는 게 건강해보이는데 왜 머뭇거리는지. 안쓰러워서일까요? ㅋ

2016-02-26 1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2-26 18:27   좋아요 1 | URL
몇해 전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집을 읽고 깜짝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너무 웃긴거에요. 웬만한 개그작가들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아 내가 혹시 장남 코끼리 말하듯 다자이의 일부를 보고 전체를 안다고 착각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전작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아무튼 저 역시 다자이 오사무 곁을 이래저래 떠날 수 없을것 같습니다^^;

2016-02-26 1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2-26 18:36   좋아요 0 | URL
ㅋㅋ 나중에 다자이 전작 모임이라도 할까요? ^^

물고기자리 2016-02-26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 님은 읽는 스펙트럼이 넓으신 분 같아요.ㅎ

제가 시이소오 님 글을 처음 읽은 건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리뷰였는데 저도 좋아하는 책인데다가 읽으신 책들의 리스트에도 관심이 가길래 처음 뵙는 분인데도 덥석 친구 신청을 했더랬죠.^^

사실은 당시만 해도 친구 목록이 거의 비어있으셔서 혼자 조용히 읽고 싶어 하는 분이면 어쩌나 하고 잠깐 걱정하기도 했었어요.ㅎ

근데 이렇게 열심히 읽는(책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의 글도) 분이라니.. ^^ 완전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ㅎ

책 정리를 자세히 해주고 계셔서 도움이 많이 되고 있습니다.^^

시이소오 2016-02-26 18:41   좋아요 0 | URL
물고기자리님 저 알라딘 초기의 친구님. 환대에 감사의 말씀도 못 드렸네요^^; 고맙습니다. 도움이 되신다니 다행이에요 ^^

2016-02-26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자이 오사무 전작 모임이라니, 대찬성입니다! ^^

깊이에의강요 2016-02-27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졸업했다고 생각 했는데 재수강 하게 된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시이소오 2016-02-27 11:19   좋아요 0 | URL
깊이에의 강요님도 다자이 전작 모임 의향 있으신가요? ㅋ

깊이에의강요 2016-02-27 1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수강 의향 있습니다^^
저는 수강생 입장ㅋ

시이소오 2016-02-27 11:30   좋아요 1 | URL
다자이 오사무 전작 모임을 꾸려야 할까요? 모임 이름은 `인간 사양` ㅋ
 

 

벌레이야기, 이청준








알려진대로 <벌레 이야기>는 영화 <밀양>의 원작이다. 정희진은 이 작품을 가해자와 피해자의 권력관계로 해석한다.

 

분노, 고통, 복수에 비해 용서, 화해, 평화는 우월한 가치로 간주된다. 종교는 말할 것도 없고 진보 진영이나 여성운동, 평화운동 세력도 후자를 좋아한다. 분노와 복수는 극복해야 할 비정상 상태라는 것이다. 나는 탐욕이 아이를 죽였다면 용서와 화해라는 인간의 고상한욕망이 아이 엄마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고통의 감정은 물질이다. 달리 해석될지라도, 크기가 작아질지라도,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몸에 있다. 가해자의 몸은 고통 경험이 없으므로 온갖 절대자의 이름으로 자기 마음대로 구원, 용서, 평화라는 관념의 향연을 주관할 수 있다...나는 용서가 저주보다 바람직한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나는 용서와 평화를 당연시하는 사회에 두려움을 느낀다.

 

동감이다. 미국식 낙관주의의 영향 탓일까. 언제부터인가 암에 걸려도 축복받았음을 강요하는 사회가 되었다. (바바라 애런라이크, <긍정의 배신>) 피해자들은 현실을 부정 없이 받아들이길 강제 당하고 침묵을 강요당한다. 긍정강박증의 사회다.

 

그날, 이성복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이성복의 시, <그날>의 마지막 구절이다..실제로 나를 좌절시킨 것은 몇몇 후보의 당선이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의 표현대로, “우리의 삶이 아무리 비천해도 그 고통까지 마비시키지는 못한다.” 고통이 아픈 것이 아니라 마비된 고통이 불러올 고통이 끔찍한 것이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아프기는커녕 더욱 열심히 뛰겠다고 한다. 썩지 않는 시체에 항생제를 붓는다. 인간이 인격체가 아니라 방부제인 사회. 절망할 기력조차 없다.

 

조울병,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 케이 레드필드 재미슨

 



저자는 평생 조울증을 앓아 온 생존자이며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정신과에 재직 중인 임상심리학자다. 그녀의 다른 책인 <자살의 이해><천재들의 광기>도 명저다. 역시 우울증 환자이면서 베스트셀러 저자인 앤드루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에 보면 저는 케이 재미슨 같은 사람이 아니잖아요?”라고 하소연하는 내담자(환자)가 나온다. 그만큼 저자 재미슨은 투병 공개와 연구로 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한 성공한 환자로 알려져 있다.

 

정신 질환자의 자살률이 가장 높은 시기는 병세가 호전되어 병원에서 퇴원할 때다

병은 나았지만 이미 인간관계와 경제적 능력....모든 것을 잃은 상태이기 때문에 생활고로 죽는 것이다.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인권운동사랑방 엮음.


 

2007년 차별금지법을 만들겠다던 정부는 입법 예고안에서 7가지 항목을 삭제했다. 출신 국가, 언어,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 경력, 성적 지향, 학력, 병력. 이 문제에 대해서는 차별해도 된다? 항의하는 전문가들에게 언론은 차별 피해 사례를 알려 달라고 했는데, 그 제안이 이 책이 탄생한 계기가 되었다.

 


나는 증언 형태의 책을 읽을 때 말하는 사람의 갈등을 가장 주의깊게 살핀다. 이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실천이 민주주의다. 이 책, “이야기를 기다리는 이야기는 정치적, 문학적, 윤리적으로 말하기와 듣기의 모범이다. 말하는 사람은 차별 경험을 본질적 자아로 환원하지 않으며, 듣고 쓰는 12명 저자들의 지성과 성찰은 안쓰러울 정도로 치열하다. 내용은 슬프지만방식은 독자를 위로한다. 앎과 삶을 위해 필독을 권한다.

 

개인적으로 ‘HIV 포지티브(양성)’라고 불리는 이들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평생이 대기 상태인 인생이다. 내 처지도 그러하다. (내 처지도) <추천사>에서 문학평론가 김영옥이 옮긴, 카프가의 산문 <이웃 마을>에 대한 브레히트와 벤야민의 해석도 매혹적이다.

 

현대 철학의 키워드가 차이라면 현대 사회학의 키워드는 차별이다. 부르디에의 아비투스에서 보듯 차별은 계급을 아우른다.

 

상실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외


 

이거 베스트셀런데하고 말하려고 했더니 지인의 강권으로 읽었다고.

 

내가 지지하는 평화는 이런 진술들과 통한다. “폭력, 나는 그것을 지성이라 부른다.”(마틴 루터 킹), “평화는 여성이 주로 해 왔던 돌봄 노동이 공적 영역의 가치로 전환될 때 가능하다.” (사라 러딕), “열려 있다는 것은 항쟁을 배제하지 않는 것이며 폭력은 인간의 뛰어난 공존 양식이다.” (사카이 나오키), “평화학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기존 학문 틀의 문화적인 폭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요한 갈퉁)

 

평화는 고통의 정중앙에 놓여 있다라는 목소리는 보편적 인간 조건을 극복하지 말고 항복할 것을 권한다. 슬픔에 저항하지 말고 느끼고 통과하라는 것이다. ‘슬픔에 잠긴다는 우리말은 정확하다. 몸이 슬픔에 잠겨 눈을 뜰 수도 없고 숨을 쉴 수도 없는, 살아 있는 죽음의 시간을 겪는 것이다. 고통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슬픔의 가치를 수용하는 것. 이것인 국가간 평화든 마음의 평화든, 평화를 논의하는 전주(前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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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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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처럼 읽기란 한 마디로 빤한 독서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녀는 베스트셀러를 읽지도 않고 사지도 않는다. 그녀의 관점에서 베스트셀러는 절충적이거나 피상적이다. 따라서 지적 자극을 얻기 어렵다. ‘시대의 흐름도 아니다. 그런 흐름이란 출판 산업 구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저자의 주장에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부분적이란 말은 한편으론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베스트셀러의 대부분은 읽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러나, 걔 중에 한두 권은 분명 읽을 가치가 있다. 예를 들면 신영복 선생의 <담론>이 그런 경우다. 하긴 한 두 권의 작품을 만나기 위해 치러야 할 출혈을 생각해보면 저자의 독서 기준이 더 경제적이랄까.

 

우리가 접하는 책들은 대개 서울 출신, 남성, 서양, 중산층, 비장애인, 이성애자, 건강한 사람, ‘학벌 좋은사람이 쓴 책이다. 사회는 모두 이들 주류시각 안에 포섭되어 있다. .....대개 독자는 이 사실조차 모르고 읽는다.....진부의 관점의 지당하신 말씀으로 종이를 낭비하는 책은 킬링 타임을 넘어 지구 자원을 파괴하는 범죄 행위다.

 

그래서 저자는 주류관점 밖에서 쓰인,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주로 읽는다고 한다. 의지의 문제라기 보단 그런 책들이 실질적 이익을 주기 때문이라고.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책은 피사체를 내가 모르는 위치에서 찍은 것이다. 하늘 위에서가 아니라 건물 옆에서, 지하에서, 건물 뒤에서, 아주 멀리서. 혹은 나와 완전히 다른 배경에 있는 사람이 찍은 것이다. 건물 안에서는 건물을 볼 수 없다. 즉 피사체, 문제 대상(사회)을 자신과 동일시하거나 그 안에 있으면 자신을 알 수 없다.....사회 밖, 틀 밖, 궤도 밖에 서 있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녀가 습득한 책 읽기 습관

 

1. 눈을 감아야 보인다.(in/sight)

2. 새로운 것을 얻으려면 기존의 인식을 잠시 유보하라(판단 정지 epoche)

3. 한계와 관점은 언어와 사유의 본질적인 속성이지, 결함이 아니다.

4. 인식이란 결국 자기 눈을 통해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나의 시각을 객관화하는 것이다.

5. 본질적인 나는 없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 나다.

6. 선택 밖에서 선택하라.

7. 궤도 밖에서 사유해야 궤도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8. 대중적인 책은 나를 소외시킨다.

9. 독서는 읽기라기보다 생각하는 노동이다.

 

정희진의 독서는 저항이고 불복종의 시작이다.”

 

독서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습득이고, 하나는 지도그리기(mapping). 습득이 객관적,일방적, 수동적 작업인 반면 맵핑, 배치는 주관적, 상호적, 갈등적이다.


책 속에 진리가 있다는 말은 역사 최대의 거짓말이다. 책 속엔 아무것도 없다. 저자의 노동이 있을 뿐이다. ..저자와 갈등적 태도를 취할 때 더 빨리, 더 쉽게,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2015. 8.1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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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2-26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에 대한 서평을 쓰기 전에 다른 독자들의 서평을 먼저 참고합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독자서평을 발견하면, 그 글의 포지션과 최대한 겹치지 않도록 서평을 쓰기 시작합니다. 글의 주장을 반박하거나 아니면 남들과 다른 감상을 기록합니다. 저는 이런 서평을 쓰는 자세가 저항과 불복종의 글쓰기라고 생각해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열심히 노력해봐야겠습니다. ^^

시이소오 2016-02-26 17:5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는 그런생각까진 못해봤어요. 아마도 아직까지 제가 쓰는 리뷰를 독후감이라 생각해서 인것 같아요. cyrus님의 서평은 저항과 불복종을 넘어 사사키 아타루의 말처럼 혁명이 되겠죠?

cyrus 2016-02-26 17:55   좋아요 0 | URL
혁명까지는 아닙니다.. ^^;;

시이소오 2016-02-26 18:00   좋아요 0 | URL
아타루의 관점으로 보자면 혁명일 수밖에 없습니다. ^^

cyrus 2016-02-26 18:18   좋아요 0 | URL
처음 쓴 댓글은 삭제하지 않을께요. 이왕 말이 나왔으니 노력은 해봐야지 않겠습니까? ㅎㅎㅎ

그런데 정말 잘 쓴 글이면 칭찬받는데, 못 쓰면 글쓴이의 무식함이 들통나죠. 저는 후자의 경우에 속합니다. 책을 비판한답시고 고작 오탈자를 발견하는 게 전부입니다. 시이소오님이 저의 무식함을 바로 잡아주세요. 올바른 비판도 `저항과 불복종의 자세`로 볼 수 있으니까요. ^^

시이소오 2016-02-26 18:29   좋아요 0 | URL
헉, 제가 어찌 비판을 ^^;; 응원이라면 얼마든지 하겠습니다 ^^ 화이팅이요!!!
 
예술가로 살아가기 - 나는 매일 일하며 창조적으로 산다
아드리안 아웃로우 외 39명 지음, 샤론 라우든 엮음, 김영수 옮김 / 블루베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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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예술가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예술가이고 싶긴 하지만, 나 자신을 단 한 번도 예술가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다. 나는 노동자이고, 프레카리야트(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

 

이 책에서 말하는 예술가는 화가, 설치미술가, 조각가, 사진작가 등이다.

나는 이들과 같은 부류는 아니지만 다들 어떻게 먹고 사나 궁금해서 읽었다.

 

미국은 그래도 한국 예술가보단 형편이 나은 듯 싶다.

대부분 주로 강의로 먹고 산다. 보조금을 받거나 작품을 팔기도 한다. 그것도 아니면 노동을 한다. 화가 브라이언 노바티니는 작품이 팔리지 않을 때 트럭 운전을 했다. 화가 에릭 핸슨은 마네킹 공장에서 일하며 인체 해부학을 익혔다.

 

나는 화가가 아니기에 그림을 팔 수 없고, 강의 할 여건도 안 되고,

이런 젠장. 어떻게 먹고 살지?

 

두 가지만은 분명하다.

 

가능한 한 일하지 않는다. (책 읽을 시간도 부족하다)

가능한 한 소비하지 않는다. (책마저?!)

 

밑줄 그은 문장

 

p122. 줄리 해퍼난

 

예술가 삶의 첫 페이지는 아주 힘들었고 기복이 많았다. 실패에 대한 공포는 공황장애, 한바탕 울기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럴 때마다 하나씩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위기를 극복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 더욱 깊이 알게 되었다. 예술을 한다는 것은 최신 유행을 따르거나 영혼을 죽이는 허황된 목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것이다. 그래야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

 

p137. 카린 데비

 

나와 이야기를 나눴던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예술가로서의 삶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p186. 미셀 가브너

 

작업을 할 때마다 어떻게 이 모든 것을 하지?”라는 질문에 답을 찾으며 의미 있는 창작을 하려고 한다. 나는 일 질문을 통해 라는 질문을 이끌어낸다. 그다음 자연스럽게 어떻게를 묻는다. 가치 있는 삶이란 이 모든 질문의 해답을 찾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p201 피터 뉴만

 

바로 아래에는 예술가들의 고민이 쭉 적혀 있었다.

 

완벽주의

창작 활동 막힘

과잉생산

작품 설명에 대한 어려움

비현실적 기대감

개인과 다른 이들의 작품에 대한 지나친 비판적 사고

금전적 문제

감정 기복

기타등등

 

p 에드워드 윙클맨, 빌 캐롤

 

저는 항상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해요. “여러분이 스튜디오에서 만든 작품은 여러분 자신의 목소리지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니다. 예술가로 살아가는 삶도 그래야 한다. 때론 남들과 비교도 되겠지만, 어떤 길도 쌍둥이처럼 같을 수는 없다.”라고요. 예술가가 기억해야 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소비를 줄일 것. 1980년대 후반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을 과대평가하여 생활하다가 공황이 일자 좋지 않은 상황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상황이 좋더라도 과소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직장을 구해야 한다면 예술계와 어떻게라도 관련있는 일을 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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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질 용기 - 기시미 이치로의 아들러 심리학 실천 지침
기시미 이치로 지음, 이용택 옮김 / 더좋은책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라, 이게 <미움 받을 용기>와 뭐가 다르지?’ 아들러 심리학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빌어먹을 트라우마를 깨 부셔줘서 너무 고맙다. (한동안 한국은 트라우마 공화국이었다. 한 두 가지 정도의 트라우마 없는 사람은 사람취급도 못 받았다. 저마다 없던 트라우마 마저 만들어내기 급급했으니.)

<미움 받을 용기>는 왜 저렇게 팔리는 걸까? 대인관계로 고생한 사람들이 많아서였을까? 열등감 때문에? 대담의 형식 때문일까? 단지 대담 형식 때문은 아닐텐데.

(아시는 분 있으면 가르쳐 주세요.)

 

아몰랑. 복습이나 해야겠다.

 

p5. 고대 그리스의 철학 플라톤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태어난다는 것부터가 애초부터 괴로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에피노미스>

 

p12. 프랑스의 출판인인 베르라느 그라세는 천재적인 재능이란 새로운 자명성을 창출하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예전부터 존재했음에도 아무도 그 존재를 깨닫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발견하고 말로 표현하는 능력이 천재적인 재능이라는 의미다.

 

p30. 아들러는 인간의 모든 고민은 대인관계에서 비롯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삶의 과학>

 

p30. 전체론

 

아들러는 자신이 창시한 독자적인 이론을 개인심리학이라고 불렀는데, 그 원어 ‘Individualpsychologie’에서 사용되는 개인individual‘분할할 수 없는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개인심리학은 분할되지 않는 통일된 전체로서의 개인을 고찰하는 심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아들러는 인간을 정신과 신체, 감정과 이성,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누는 다양한 형태의 이원론에 반대했다.

 

p31. 목적론

 

아들러는 이처럼 분할할 수 없는 전체로서의 개인이 자신의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동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면 그런 행동을 야기하는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원인을 찾으려 하기 마련인데, 아들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p34. 단순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열쇠는 원인론적 발상을 목적론적 발상으로 바꾸는 데 있다.

 

첫째, 감정이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스스로 감정에 대해 아무런 대처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둘째, 지금 자신이 불행한 이유는 과거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불행의 원인이 과거에 있다면, 앞으로도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다.

 

p36. 그러므로 지금 애대로는 안 된다고 자각하고, 지금의 자신을 어떻게든 바꿔야 한다고 마음먹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변화하기로 결심했다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가 바로 목적이 된다.

 

p37. 성격은 타고난 것이라거나 바꾸기 힘들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아들러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성격이라는 말 대신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아들러는 라이프스타일을 스스로 선택한다라고 하며, 이것이 아들러 심리학의 기본이다.

 

p77. 용기를 내어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다고 결심하면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

 

p88 남들의 각별한 관심이 없더라도 남들에게 공헌하고 있다고 스스로 느낀다면 소속감은 덤으로 얻을 수 있게 되고, 소속감으로 충만한 자기 자신도 좋아지게 된다.

 

p90.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사람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해주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p105. 사람은 남들의 도움 없이 혼자의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따라서 도움이 필요하다면 서슴없이 청하는 편이 좋다.

 

p109. 자신은 혼자서 완결되는 존재가 아니라 남들에게 그 존재를 빚지고 있으며, 이것은 남들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가 아니라, ‘내가 남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인가?’를 생각했으면 한다.

 

p119. 조심해야 할 부분은 열등감열등콤플렉스는 의미가 다르다는 점이다. 열등감은 자신이 뒤떨어진다는 사실을 느끼는 것이다. 한편 열등 콤플렉스는 ‘A이므로 (혹은 A가 아니므로) B를 할 수 없다는 논리를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P153. 아들러는 아무런 이유 없이 데이트 시간에 늦는 애인을 믿지 말라라고 말했다. <삶의 과학> 이는 다른 인생의 과제와 마찬가지로, 과제를 앞에 두고 망설이는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여성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P204. 사람은 고통이나 과거에 초점을 맞춘 물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라는 물음에서 탈피하고 시선을 미래로 돌리려는 물음을 내놓아야 한다고 쿠쉬너는 말했다.

 

P210. 일반적인 운동(키네시스)에는 시작점과 끝점이 있다. 그 운동은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달성되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큰 역에만 정차하는 급행열차와 같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하며, 목적지에 이르기까지의 운동은 목적지에 이르기 전까지 불완전하며 미완성이다.

 

한편 에네르게이아는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가 그대로 이루어진 것과 같은 운동이다. 이 운동은 시작점과 끝점이 있는 운동(키네시스)과 달리 지금 움직이는 것이 어딘가에 도달했는지에 상관없이 이미 완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춤은 지금 춤추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

 

P217.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 가지 나쁜 것 가운데 가장 무서운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할 때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고, 죽음이 존재할 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P243. 현실이 어떻든 간에 이상을 잃지 않는 것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을 양립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P244. 인생에서는 분명히 길을 잃고 헤매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상을 길잡이 별로 삼는다면 금세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사건이 이상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에서 일어나는 셈이 되고, 일시적으로 쓰러질지언정 절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P264. 소크라테스를 잇는 키니코스파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술통 안에서 살고 있었는데, 물을 마시기 위한 그릇은 딱 하나 갖고 있었다. 어느 날 디오게네스는 한 아이가 냇물을 맨손으로 떠서 마시는 모습을 보고 나는 이 아이에게 졌다라고 생각하고 그릇까지 버리고 말았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나는 이런 디오게네스처럼 모든 것을 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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