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페이퍼를 보지말자, 라고 결심했음에도 또 봐버렸다.
침묵하고 있어야지, 라고 굳게굳게 결심했음에도 지금 이렇게 쓸데없이 글을 쓰고 있다.
맛있는 점심 먹고 맛없는 글은 왜 보게 되는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나는 조금은 참견쟁이로 살아왔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일정부분 포기해야 하는 부분들은 포기하고 살아가야지,라는 얄팍한 생각들이 더 많아져가고 있어서 참견하지 않고 그저 마음속으로만 지지를 하거나 욕을 하거나 안타까워하거나 까탈스럽게 승질을 부리거나... 뭐, 아무튼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가만히 보고만 있기엔 답답하고 미치고 폴짝 튈 지경이라 화가나기 시작한다. 이거 뭐하는 짓일까?
아니, 나는 '덩달이'가 되기 싫으니 역시 모른척하는 것이 낫겠다.
어제 집 마당에 있는 커다란 양동이에 담겨있는 물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양동이 위에 뭔가 붙어있는 것이 보였다. 빨래를 널다말고 가까이 다가가 봤더니 청개구리다! 옛날엔 마당에 청개구리 천지여서 여름밤에 빨래 널 때 화들짝 놀라곤 했었는데 - 우리집은 내천을 끼고 있지는 않지만 바로 가까이에 붙어있는지라 개구리 울음소리가 이웃집 강아지 멍멍대는 소리보다 더 크게 나고 마당천지에 개구리들이 폴짝거리고 다녔어.
아, 얘기가 엉뚱한데로 흐르고 있다고?
논쟁없이 팝콘 튀기듯 마구 튀어가는 글을 보고 있으려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청개구리가 떠올라서 그랬다. 그냥 그렇다고.
상관없어. 어차피 내가 보고 느낀것들에 대해서 말 안하기로 작정한거니까.
비판이라는 것도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며 애정이 없는 글은 비난일뿐이라고들 하는데 솔직히 나는 나 자신을 비춰보면 비판의 저 깊은 곳 어딘가에는 인간에 대한 기본예의가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표현의 경중과 공격성의 강약과 사람에 따라 수많은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나이를 먹으며 더 게을러지게 되는 것은 '변화발전 가능성'에 대한 믿음.
솔직히 내가 용을 써봐야 받아들이고 변화할 것 같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애써 무관심해버리고 말게 된다는 것이, 조금은 마음아픈 일이긴 하지만 내가 받아들이게 된 현실이다.
지배구조와 권력에 따른 영향력의 차이를 실감하게 된 것이 시작이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로 상대방의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변하게 되었다. 그냥 쉽게 말해서, 당신은 나로 인해 변화발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라고 제껴놓는다는게지.
그러니 나처럼 얄팍하게 살아가지 않고 그나마 한가닥 희망을 갖고, 애정어린 마음으로 촌철 살인...정신을 드러내보인 그 누군가에게 말없이 추천을 얹는다.
뭔말이래? 하지 마시길. 혼잣말이니까.
그런데 갠적으로 김두식님의 글을 좋아했는데 이번에 나온 책은 좀 실패인듯.
며칠전 욕만해도 괜찮아,라고 시덥잖은 농담을 지껄여대는 무식함을 드러내보이긴 했지만 나말고 다른 누군가도 그가 이야기하는 '욕망'에 대해 잘못이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어. 사실 욕망해도 괜찮아,라는 말이 MB같은 사람에게 하는 말은 아니지 않은가. 지금 자신의 책과 글이 이곳에서 이렇게 쓰이고 있는 걸 알면 또 혼자 구석에서 상처받고 그럴지도 몰라... 라는 생각을 해보니, 왠지 진짜 이건 아니구나 싶다. 개나소나 '복지'를 떠든다고 다 같은 복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진대.....
하긴 우리가 그 뜻을 알고 있으면 되는거지 뭐.
스스로는 개념,을 잡고 이성과 논리로 무장해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감정적인 글로 도배된 것을 보면 화가난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이야기하면 엉뚱하게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버럭하는 걸 보면 더 화가난다. 그런데 그 화를 참지 못하고 이렇게 지껄여대는 나 자신을 보고 있으려니 더더더 화가난다.
맛난밥 먹고 뭐하는 짓이래. ㅡ,.ㅡ
쓸데없는 글을 하나 더하고 있구나, 라는 후회가 밀물처럼 막 밀려들고 있다.
이럴 때 필요한건 투에이엠 노래. '그만하자~그만하자 ♬......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