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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전민식 지음 / 북폴리오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13월은 비현실적인 허상의 시공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책을 읽는 동안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13월보다 더 강하게 다가오는 것은 88 서울 올림픽의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88 서울 올림픽 개막일은 내 생일이고, 학창 시절의 그 날, 친구는 올림픽이 열리는 그 역사적인 날이 내 생일이라는 것에 분개를 했었던 기억이 있다. 친구의 농담같은 분노는 반대로 내게는 더욱 뜻깊은 날이 되었는데 올림픽 개막일이라는 사실보다도 그 날이 개막일이 된 이유가 십여년의 날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가장 쾌청한 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기억에 남아있다. 그러니까 나는 분명 좋은 날 태어났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강하게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존재는 그렇게 날씨 하나로 좌우될 수 있는 존재였던가?
여기 관찰하는 자와 관찰당하는 자가 있다. 관찰 당하는 남자는 자신의 삶의 운명에서 벗어나려 기를 쓰고 살아가지만 자꾸만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얽매이게 되는 걸 느끼게 된다. 그러한 남자를 관찰하는 여자는 그 남자의 모든 표면적인 행동을 보이는 그대로 기록할 뿐이다. 밑도 끝도없이 그렇게 13월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보육원에서 자란 고아 재황은 노력끝에 명문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었고, 보육원 시절의 모든 것을 끊고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그에게 지우고 싶은 과거 보육원 시절의 친구 광모가 그를 찾아내어 연락을 하고 만나게 되면서부터 재황의 현재의 삶은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흘러가버리고 있는 재황의 삶은 그렇게 되도록 짜여진 운명인걸까? 아무리 기를 쓰고 덤벼들어도 출신과 계급을 바꿀 수 없는 한계를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13월의 이야기는 관찰당하는 재황의 이야기와 그를 24시간 관찰하며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수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현실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재황과 수인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그들의 삶이 끊임없이 주위 환경과 타인으로 인해 조작되고 끌려가고 있음을 서서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을 읽으며 줄거리의 흐름보다는 자꾸만 그들의 이야기 이면에 담겨있는 뜻이 무엇일까를 의심해보게 된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고 주체이며 내 의지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것이 맞는 것일까? 라는 물음이 자꾸만 튀어 나오고 있다.
얼마전 우리 동네에 브랜드빵집이 생겼다. 아무 생각없이 포인트 카드를 만들고 카드로 결제를 하고 이벤트를 한다길래 홈페이지에 들어가 회원가입까지 했다. 그리고 두어달 후 메일로 날아온 설문지를 보면서 순간적으로 두려움이 생겼다. 내가 무심코 만들어 쓰고 있는 포인트 카드와 신용카드를 통해 내 생활패턴이 드러나고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간단한 전산망을 통해서 어느 날 몇시에 어디서 무엇을 사고 무엇을 먹었는지를 분석하고 내가 즐겨 먹는 것이 무엇인지까지 분석되어 나 자신을 데이터화 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은 좀 오래갔다. 이미 오래전부터 나 자신도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관찰되고 기록되고 있었던 것이다.
수인은 그저 관찰대상자인 재황의 24시간을 기록하고 보고할 뿐이지만 그 기록을 읽고 분석하고 자료로 사용하는 배후의 세력을 생각해본다면 그저 나의 데이터 분석 역시 관찰당하는 이의 기록일뿐이라고 할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뿐인가. 13월의 수인은 관찰하는 역할이면서 동시에 또 누군가로부터 관찰당하고 있음을 암시해주고 있는데 지금의 감시사회는 단지 관찰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때문에 더 무서움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13월을 읽고난 후 뭔가 명확하지 않은 이야기의 끝으로 인해 괜히 더 불안해지고 있다. 이건 소설이라는 허구의 이야기이고 작가의 상상력일 뿐이야,가 아니라 지금도 이 세상 어느곳에선가 수없는 관찰과 기록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게 해버리고 있어서이다.
물론 소설 속 재황과 수인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13월을 살아가고 있지 않듯이. 하지만 그들의 삶의 모습의 단편들은 과거에 존재했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으며, 어쩌면 미래에 나타날 우리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자꾸만 우리를 데이터화 시키고 분석하여 어딘가로 내몰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의 삶의 흐름을 바꿔놓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나의 의지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작되어진 운명의 길로 끌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결국 미래에는 개량화된 인간들의 모습만 남게 되는 것은 아닌지... 자꾸만 의심하며 물음을 던지게 된다.
13월이 조금 아쉬운 것은 이야기의 끝맺음도 그렇게 한순간의 허구의 세계를 그려낸것마냥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는 상태로 끝이 나버렸다는 것이다. 수많은 물음과 의문을 남겨놓고 있지만 현상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지 아닌지는 온전히 독자의 몫인것일까, 싶을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