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 전부터 전화를 해 대고는 돈 십만원을 보내라고 한다. 그러면 또 바로 보내준다고.

이건 분명 뻔하다. 마이너스로 쓰다가 돈 갚을 때 되었는데 통장 잔고가 부족하니 돈 메꾸기 위해 계좌송금하라는 소리겠지. 그러고는 또 바로 마이너스. 그리고 또 다음달 반복.

나이 처 먹고 그러고 싶을까.

금액의 문제가 아니다. 몇년 전 소액조차 없다고 자르지 않았다면 지금도 매달 백만원 단위로 돈을 써댔을테니까. 

자기 카드값 메꾼다고 내 돈을 임시 빌린다고 해 놓고는 내 카드결제일까지 돈을 안주니 나 역시 신용불량으로 뜰뻔했다. 그래놓고는 미안한 마음 하나없이 또 돈을 빌려주라고 하니 믿을수가 없다.


친구가 언니때문에 잠깐 쓴다고 해서 거액을 빌려줬다가 받지 못하고 마이너스로 힘들게 살고 있다고 하니, 대뜸 하는 말이 그래서 저축할 필요가 없다나. 돈을 모아봐야 딴 사람들이 다 빌려가서 써버린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이게 미쳤나, 싶더라. 

자기는 몇천만원을 빌려가도 달마다 조금씩 갚지않냐고.

그래봐야 십년을 갚아도 다 못갚을 금액인데, 그에 더해 연금 받기 시작하면 직장도 그만두겠다는 소리를 해대니 내 돈을 갚을 생각이 없는건가 싶었다. 하긴 얼마전에 말을 하다가 은연중에 가족한테 빌린돈을 누가 갚냐,라고 하더라.

혈연관계라고 하지만 성인이 되어 금전거래를 하면 그때는 가족이 아닌거 아닌가. 내가 여유있어서 기부한셈 치고 준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돈을 융통해줬는데 그걸 갚을 생각을 안하면 그게 가족이라 생각할수있는건가 싶다.


아침부터. 기분이 확 상하는데.

또 이런 식이면 다음부터는 아예 전화를 받을 생각을 하지 않겠지. 맘을 좋게 쓰려고 해도 그럴수가 없다.

돈이 없으면 쓰지를 말아야지. 본인이 필요한 사치품은 다 사면서 어떻게 저럴수가 있는지.

내 저축은 너를 위한 돈이 아니라는 걸 이제 알 나이가 되었어야 하는데 이건 죽을때까지 모를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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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어제까지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토록 괴로워했을까. 인간의 본질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낯가죽 따위에 힘들어하는 마음은 털끝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다며 이리저리 핑계를 대본 것은, 결국 선입견에 의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 P149

자, 나가보자! 새로운 타인의 얼굴을 통해서 새로운 타인의 세계로 나가보자! - P150

나는 신이 났다. 난생처음 혼자 기차를 타는 아이처럼 기대와 불안으로 가슴 설레었다. 가면 덕분에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완전히 새 단장을해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기대의 소용돌이에 떠밀려서 속 끓이던 꺼림칙함도 잠시 어딘가 바닥으로 가라앉은 것 같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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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사망신고서도 제출했고, 날마다 조금씩 필요없는 짐들을 빼고 있는 중이다. 

더운 여름에 땀 흘리며 집 정리하기는 힘드니, 여름이 지나면 본격적으로 하나하나 해보겠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 그동안 어머니 돌보느라 다른 것에 신경 쓸 틈이 없어서 몰랐는데 왜 이렇게 방치된 것들이 많은지.


한달쯤 지나면 갑작스러운 현실감에 감정이 몰아칠 수 있다고 하더니, 정말 하나씩 주변 정리가 되면서 이제 집안 정리를 하려고 하니 온갖것들이 다 떠오르고. 

사실 며칠 전 어느 순간에는 오늘은 어머니에게 뭘 해서 드리나, 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마음 한쪽이 살짝 뭉개지는 느낌이었다. 


어제는 어머니 친구분이 전화를 하셨고. 어머니 절친인 삼춘은 어머니가 혼자 다니기 힘들어하실때부터 가끔 모시고 댁에 찾아가 같이 인사를 드리고 어머니와 통화가 안되면 내게 전화를 거시고 안부를 묻는 분이신데.

어머니 돌아가시고 난 후, 차마 그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피하고만 있었다가 결국 어제는 통화를 했다. 그래도 사실대로 말을 못하고. 어머니가 전화통화를 하실 수 없으시며 나는 이제야 퇴근을 하는 길이라고 했더니, 또다른 동창 친구의 사망소식을 전하며 어머니에게 안부를 전하셨다. 둘이 손잡고 같이 가자, 라는 말씀을 나누시는 걸 들었어서... 그냥 전화 한 통으로 절친의 죽음을 전할 수 없겠다라는 생각은 자꾸만 거짓말을 하게 만들고 있다. 


마당에 길게 뻗은 덩굴을 잘라 정리를 하고, 구석에 쌓여있던 먼지를 털어내고. 이제 쓸모없게 된 두달분의 약을 폐기처분해야하고. 어머니 드시라고 받아 온 반찬들... 냉장고에서 꺼내 다 버려야하는데.

머리속에서는 해야할 일들이 넘쳐나는데 막상 집에 가면 정리가 되지 않고 있다. 


문득문득, 내가 잘못한 것들이 나를 치고가며 힘들게 할 때, 그래도. 고통속에 병실에서의 삶보다는 편하게 가셨음을 떠올리며,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죽음이라는 것이 내 잘못일수만은 없음을 되내인다. 

그래도 여전히 내가 뭔가 잘못해서 어머니가 더 빨리 돌아가셨다는 생각을 온전히 뺄수는 없지만.

......


어머니는 나를 탓하지 않으실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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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4 2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8-14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26-08-15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은빛 2026-08-15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어머니께서 소천하셨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치카님 마음 잘 추스리시길 바랍니다.
 
여름 편집 후기 여름, 책
에밀리 헨리 지음, 이미정 옮김 / 윌북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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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만약에 말이야. '여름 편집 후기'가 '로맨스 소설'이라는 홍보로만 접했다면 내가 이 책을 읽었을까? 아니, 솔직히 말한다면 '만약'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붙이지 않더라도 지금의 나는 로맨스 소설에는 관심이 없다. 그 유명한 폭풍의 언덕 - 이 책에서 비유적으로 표현되는 히스클리프라는 이름때문에라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 과 오스틴의 여러 작품들을 읽었지만 현시대로 옮겨온 '본격' 로맨스 소설은 언제 읽어봤더라... 하게 된다. 그런데 집어든 소설이 로맨스 소설이었다니!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로맨스 소설의 그 흔한 공식에 따라 찰리와 노라의 이야기가 전개되겠구나 싶었고, 역시나 그 공식에 따라 여러 변주가 담기겠지만 노라의 동생 리비의 가정 역시 행복을 찾았습니다,라는 이야기로 끝을 맺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기에 책의 분량은 지나치게 많은 것 같았다. 예상되는 이야기지만 재미있게 읽히는 짧고 굵은 소설과 예상되지 않아서 더 몰입하게 되는 기나긴 이야기책도 재미있게 읽히는 소설도 많은데 내 취향이 아닌 책을 이리도 길게 잡아두고 있다는 것이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라의 말처럼 - 소설의 주인공은 당연히 클리셰 범벅인 인생이겠지만, 그 역시 현실세계의 반영이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노라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 다같이 클리셰 범벅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깊이 느끼게 하는 이야기가 진행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의 흐름은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여름 편집 후기,는 좀 더 개인적인 감상으로 이야기하자면, 지금의 내가 읽기에 찰리와 노라의 연애소설이라기보다는 노라와 리비 자매의 이야기와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더 크게 느껴진다. 결국 모두는 모두의 행복을 바라고 있고, 그에 대한 책임감이 행복을 유지해나간다고 믿는 사람과 그 책임감이 행복을 빼앗고 있다는 죄책감으로 뒤범벅이 되는 순간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역시 결국은 그 모든 것이 서로가 서로의 행복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소설 속 찰리와 노라가 서로를 좋아하기때문에 서로가 원하는 것을 알게 되지만 사랑하게 되면서 더욱더 상대방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욕심을 버리게 되는 것처럼.


내 취향이 아닌 로맨스 소설이라고 했지만, 또한 진부한 클리셰의 반복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에는 나름의 클리셰를 뒤집는 이야기가 담겨있고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내어줘야하는 등가교환의 법칙같은 세상살이를 알고 있기는 하지만 - 소설 속 소설에는 그 원칙대로 이어져가는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 여름 편집 후기에는 오래전에 이미 많은 것을 내어주는 인생살이였기에 그들은 모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처럼 행복한 이야기로 끝을 맺어서 아쉬움이 없다. 

그렇다면 이제 또 다른 로맨스 소설을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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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것과는 좀 다른 내용이었지만 졸음이 쏟아지는 오후의 한 때, 시간죽이기에는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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