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동안 즉석에서 거짓말을 지어내는 일은 내 특기였다. 열세살이 채 안 되었을 때부터 나는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면 사람들이 언제든 내게 문을 열어준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도 진실에는 관심이 없다. 다들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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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 검은 그림자의 진실
나혁진 지음 / 몽실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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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마주한다는 것은 아무리 고통스럽다하더라도 거짓보다는 낫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세상에 넘쳐나는 악함이 상상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과연 진실이 정답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최근에 알려진 박사방, 엔번방 같은 이야기들은 너무 끔찍했다. 언젠가 움베르토 에코가 자료 수집을 위해 포르노 사이트를 찾으려고 했더니 평소 스팸처럼 밀려들던 그런 영상들은 자취를 감추고 정작 포르노 사이트에는 접속도 하지 못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이 단순히 그 말 그대로가 아니라 정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은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 힘들다는 뜻이아닐까 싶어진다. 엔번방에 접근하는 것이 범죄행위인 것이니.

 

상처,는 평범한 여대생이 실종된 사건에서 시작된다. 이진호는 범인 검거를 위해 가족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아내가 딸과 둘이 놀이공원을 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딸이 죽음에 이르자 형사직을 그만뒀다. 그후 알콜중독에 빠져 살고 있던 그에게 선배 형사인 백과장이 대학생 딸이 가출하고 실종되었는데 찾아 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우연히 포르노 동영상에 딸인 은애의 모습이 찍혀있다는 것을 안 백과장은 공개적인 수사를 꺼려하며 개인적으로 이진호에게 딸의 수배를 의뢰한 것이다. 그렇게 이진호는 은애의 행방을 찾아 대학교의 친구들을 찾아가고 동영상에 찍힌 화면을 분석하여 찾아낸 장소에서 잠복을 하고 있었는데...

 

소설에 대한 스포일러라고 할만한 것은 없겠지만 이야기는 반전이라는 느낌보다는 비현실적인 하드보일드같은 느낌이 들어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면서 기분이 가라앉을수밖에 없었다. 사실 작가의 말대로 2년전에 이 소설을 대했다면 훨씬 더 강한 느낌이 들었을지 모르겠다. 최근에 낱낱이 밝혀진 엔번방의 이야기는 그 실체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성착취와 성폭력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끔찍함이 떠오르니...

 

"이미 나는 그전의 수사에서 기본적인 것을 소홀히 했었던전과가 있었다. 포르노 동영상이라는 눈에 보이는 자극적인 증거에만 몰두해 정작 피해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지인을 곁에 두었는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눈을 돌리고 있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그동안의 선입견은 모두 버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한때 세상에 존재했던 은애라는 여자를 총체적으로 들여다보도록하자."(159)

 

사실 상처,라는 제목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이 문장을 읽으며 왜 상처인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언제나 성과 관련된 범죄에서 가해자가 처벌을 받아야하는데 사회에서는 오히려 피해자가 매장당하고 2차 피해까지 받게 되는 것이 현실임을 생각한다면 한때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는 과정을 없애버리거나 그 과정을 단죄하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허용되는 것이 아니다.

"젊었을 때는 누구나 잘못을 해. 그 잘못을 통해서 성장하는 거고.....다시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고 잘 살았겠지"(290)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지만 그걸 다 풀어놓고 싶지는 않다. 내가 많은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그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어설프게 할수도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몸에, 누군가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흉터를 남긴다"라는 문장을 다시 되내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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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나는 그전의 수사에서 기본적인 것을 소홀히 했었던전과가 있었다. 포르노 동영상이라는 눈에 보이는 자극적인증거에만 몰두해 정작 피해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지인을 곁에 두었는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눈을 돌리고 있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그동안의 선입견은 모두 버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한때 세상에 존재했던 은애라는 여자를 총체적으로 들여다보도록하자.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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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유럽 - 도시와 공간,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여행
조성관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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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자주, 많이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쉽게 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더욱더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실제로 여행을 가는 것이 안되니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방구석 여행을 다니고 있는데 나 역시 방구석 여행의 한 방편으로 여행서를 찾기 시작했다. 아니, 물론 예전에도 여행 에세이는 많이 읽었지만 '언젠가 유럽'은 말 그대로 나도 언젠가 그들처럼 여행을 갈 수 있으리라는 미래의 희망을 갖고 펜과 노트를 준비하고 책을 펼쳐들었다. 그런데 이 책은 내가 기대했던 그런 책은 아니었다. 유럽의 멋진 풍경이나 건축물같은 문화유산만 생각했었는데 그저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을 찾아 떠나는 여행서가 아니었다.

 

아는만큼 보인다,라는 말은 이제 진리처럼 되어버렸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에는 파리, 빈, 프라하, 런던, 베를린, 라이프치히의 6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각 도시에서 이야기의 시작은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이야기로 시작하여 그 도시가 갖는 역사적인 의의와 시대, 문화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들이어서 다만 상상으로 유럽의 도시를 걸어본다. 오래 전 예술가들과 지성인들이 거닐었던 거리를 걸어보는 느낌은 어떨까.

특히 베를린에서의 느낌은 다를 것 같다. 책이나 방송을 통해서만 봤던 홀로코스트의 기념물 기둥을 돌아보는 느낌은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던 천사의 시선과 많이 다를까 싶기도 하고.

언젠가 런던에 가면 베이커 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파리에 가면 예술가들이 드나들었다는 까페에서 차 한잔을 마셔볼 생각은 해봤지만 정작 그들의 사상이나 문화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정말 느리게 여행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오래전에 가족여행을 가면서 신부님을 통해 성지순례를 갔을 때 관광지보다는 성지를 둘러보며 단체여행이었다면 가보지 못했을 곳에서 천천히 순례자와 같은 마음으로 여행을 했었는데 그 기억이 정말 좋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책은 문화예술 여행으로, 나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둘러보며 여행을 하기 위한 도움책으로 좋은 책이다. -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실감하는 만큼 여행전에 더 많은 것을 알아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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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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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라고 했을 때 먼저 떠올렸던 것은 게릴라걸스였다. 여성이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제기는 정말 놀라웠었고 그 물음 하나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었다. 아니나다를까 이 책의 저자 역시 작가의 말에서 바로 게릴라걸스의 그 이야기를 인용하고 있다.

그런데 게릴라걸스의 물음은 이미 삼십년도 더 전에 시작된 것이었는데 현재 우리에게 그 물음이 똑같은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더 충격적이다. 나 역시 여성미술가들에 대해 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이 책을 읽다보니 모르는 여성미술가들이 너무나 많았다. 여성에 대한 비하로 인해 남자의 이름으로 작품을 판매하고, 아버지나 스승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작품들도 많았고 새로운 화풍을 시도하고 당대의 미술계에 혁명적인 그림을 그려낸 여성 화가들의 역할 자체가 인정되지 않았던 일화들도 많았다.

 

사실 책을 읽으며 이들의 이야기가 굳이 '싸우는 여성들'의 세계사,라고 할만한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글을 읽을수록 느낌이 달라졌다. 지금도 '여성'이라고 하면 좀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근현대뿐 아니라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가 당시의 시대 상황을 생각한다면 '싸우는 여성들'에 담겨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더 깊게 다가온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유일하게 알고 있었던 화가는 아르테미아 젠텔리스키 뿐이었고 수잔 발라동의 이름은 그 동료 화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어보기만 했었다. 프란츠 할스의 그림은 너무 낯이 익은데 그의 그림으로 알려진 많은 작품들이 현재는 유디트 레이스테르의 작품으로 판명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읽을 때는 내가 정말 너무 많은 여성화가들을 전혀 모르고 있었음을 실감했다.

특히 3부에서 언급하고 있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여성들의 작품 이야기는 놀라움과 감탄 그 자체다. 종이오리기 작품이라는 것이 가장 놀라웠는데 펜화처럼 보이는 작품이 정말 종이로 오렸나? 라는 의심이 들만큼 정교한데 사진이 아니라 실물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정체를 숨겨야 했던 여성들이 미술사에 있어 더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는데 더 많은 여성예술가들의 자신의 이름과 작품을 찾을 수 있기를.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관심도 한몫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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