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이라도 싸게 여행을 가보고자 조금 돌아가는 (로마 행 대한항공 직항도 밀라도를 거쳐 들어가는 것이니, 파리를 경유해 가는 것도 직항에 버금가는 것이라 생각하며) 항공권을 구입했습니다. 에어 프랑스에서 구입하면서 대한항공을 탈 수 있는 비행시간대를 선택해 조금이라도 항공권 금액이 저렴한 기간을 선택해 8일간의 여행을 하게 되었지요.
첫날, 새벽부터 일어나 집 단속을 다 하고 첫 비행기를 타러 나갔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로마까지 가기 위해 제주에서 김포로, 김포에서 인천으로 간 다음 비행기를 타고 파리까지, 파리에서 다시 로마까지 세번의 비행을 한 것입니다.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땀 삐질거리며 다니다보니 국제선을 탄 이후에 정신없이 졸고 있었는데 눈 뜨고 보니 아직도 비행기가 뜨지 않았더군요. 멍때리며 앉아있던 그 시간에는 지연되는 시간에 아무런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가 환승해야 하는 승객이었음이 떠올랐습니다. 파리 도착 후, 환승 시간이 한시간 반이었거든요. 우리의 도착 예정 시간은 로마행 비행기가 이륙하는 시간이었고, 과속운전을 하라고 말도 못하는 우리는 승무원에게 문의를 해 봤지만 그 역시 지상에서 별다른 지시가 오지 않는다면서 일단 비행기에서 내리면 지상직원의 안내를 받으라는 얘기만 해주더군요.
에이 뭐, 지들이 연착한거니까 알아서 해 주겠지 라는 배짱으로 있었지만, 로마 공항에서 기다리기로 한 신부님 생각에 좀 화가나기도 하드만요.
어쨌거나 어머니가 계셔서 휠체어 서비스를 신청했었는데 비행기가 착륙하니 바로 앞에 다부져보이는 여직원이 대기하고 있더군요. 무전 연락을 계속 취하면서 앞장서서 휠체어를 끌고 가는데 뒤따르는 우리가 뛰다시피 해야 속도를 맞출 수 있을만큼 아주 빨리 움직였습니다. 그녀의 뒤를 따라 정신없이 달리고, 셔틀버스를 타고 환승 터미널 앞으로 갔는데 무전연락을 하던 셔틀버스 기사가 우리보고 그냥 앉아있으래요. 우리가 타기로 한 비행기가 떠났다고...
잠시 후 다시 처음에 봤던 휠체어 서비스 직원이 나오더니 우리를 데리고 또 다른 곳으로 가더군요. 우리가 탑승 할 수 있는 다른 비행기를 찾았고 그곳으로 가는 거였어요. 다른 터미널로 이동하고 다시 짐 검색을 하는 와중에 그 직원에게 우리 수하물도 문제없이 탑재되었는지 확인해달라고 했더니, 아무 문제없이 오케이!라고 해 주더군요.
그렇게 숨가쁘게 달리고, 결국은 두어시간 늦게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아무 문제 없다던 우리의 트렁크 세 개. 사람들이 거의 빠져나가고 난 후 더 기다려봤지만 보이지 않아서 데스크에 가 문의를 하자 여권을 보자마다 대뜸 기다렸다는 듯이 유어 배기지 스틸...어쩌구 하는겁니다.
아, 긴장하고 피곤하고 정신없던 내게는 오로지 '스틸'만 들렸어요!
그래서 정신줄 놓으려고 하는데 뒤에 있던 언니가 '스틸 인 파리?'라고 확인하더군요.
하.하.하;;;;;
걱정이 많은 내가 steal만 생각하고 있을 때, 언니는 still을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ㅡ,.ㅡ
그래도 칫솔은 트렁크가 아닌 배낭에 담고 있어 다행이네,라는 긍정의 마인드로 몸만 가볍게 (아, 정말 마음은 무지 무거웠습니다 ㅠ.ㅠ) 공항 밖으로 나와 신부님이 소개해 준 숙소에 가서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 날, 짐을 숙소로 보내준다는 그들의 말은 절.대.로 믿을 게 못된다는 걸 경험으로 아는 신부님의 조언대로 아침에 확인 전화를 다시 하고 오후쯤에 직접 공항으로 찾으러 가기로 했지요. 로마 시내를 잠깐 둘러보고 (아침 9시경이면 짐이 도착할 예정이고 그러면 전화를 준다는 이들은 열두시가 되어가도록 전화한통 없고, 확인 전화를 했더니 짐을 싣고 올 예정인 비행기는 도착을 했지만 짐이 도착했는지는 모른다 는 어이없는 대답만 듣다가) 공항으로 찾아갔습니다.
출입문에서 5미터정도면 갈 수 있는 알이탈리아 안내 데스크를 찾아가기 위해, 2층의 인포메이션과 알이탈리아 창구 곳곳을 거쳐 (이탈리아어를 모르는 내가 듣기에도 1층에서는 2층으로 가라, 2층에서는 다시 1층으로 가라는 식의 화나는 안내를 대여섯번 듣고 난 후) 마.침.내 2층에 있는 경찰에게 문의를 하라는 얘길 듣고 찾아갔더니 경찰이 문의 내용에 귀를 기울여주더군요. 이제 겨우 끝인가...싶었는데! 경찰이 내 여권을 요구했고, 여권을 숙소에 두고 온 나는 사색이 될 수 밖에 없었고... 공항에서 헤매고 다닌 신부님도 뒤로 물러설 수는 없었기에 자신의 여권과 우리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효력이 있는 등록증(사제증명서 같은게 아닐까 싶었는데)을 보여주면서 사정을 했더니, 그래도 로마의 경찰들에게 아직까지는 사제에 대한 신뢰가 있었는지 좀 고민을 하더니 들여보내주더군요. 알고보니 경찰이 짐을 찾아주는 것도 아니고 단지 신분 확인을 하고 공항 검색대를 지나는 허가만 해 주는 역할이었어요 ㅡ,.ㅡ
뭐, 어쨌든 우여곡절끝에 겨우 검색대를 지나 승객이 도착하는 곳의 안내 데스크를 찾아 갔더니 또 줄이 무더기. 기다리고 기다리다는데 안쪽 문이 벌컥 열리더니 짐 찾으러 온 분, 하고 외치길래 손 번쩍 들고 따라 들어가서 이것저것 확인하고... 혹시나, 싶었던 저 끝 구석에 있는 짐들 사이에 우리 짐이 있을지 모르니 가서 찾으래요. 직접. 아아...;;;
짐 창고 문이 열려있길래 그냥 들어가서 두리번대고 있으려니 그곳 직원이 어떻게 들어왔냐고 화를 내려고 하면서 거칠게 문을 잠궈버리고, 우리 짐표를 확인하면서 우리에겐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 직접 가방을 찾기 시작하더군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방을 찾다가 못찾으니까 결국 우리보고 직접 찾으라고. 그러고는 안쪽에 세명의 직원이 있었는데 그들은 앉아서 잡담하며 떠들고 있고. 아이고~ 속이 터지지만 아쉬운 건 짐을 못찾은 사람들이니 우리가 헤매고 다닐밖에. 비슷한 시간에 들어갔던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 가방을 찾고 나가는데 우리만 세개의 가방 중에 하나를 못찾아 수십개의 가방을 하나하나 뒤지고 또 뒤지고. 아, 정말 미칠 것 같더군요. (그 한개의 가방은 우리것이 아니라 빌린 것이어서 텍 하나하나 살펴봐야하기 때문에 더 찾기 힘들었어요)
근데 웃긴건 우리가 그렇게 가방을 찾고 있는데 수다를 떨던 직원들이 갑자기 우리보고 잠시 비키라고 하더니 무더기로 쌓아 올리더니 한 블럭의 이동 짐칸을 채우고 그걸 밖으로 끌고 가는 거였어요! (뭐냐, 저걸 밖으로 가져 나간다면 밖에서 그냥 짐 찾아가라는 것과 같은데 처음 우리에게 손도 못대게 하던 건 그냥 쇼였어?)
아무튼 그렇게 짐을 밖으로 빼내는 것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짐을 빨리 찾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헤매고 헤맨 끝에, 드디어 찾았는데!
제주에서 김포로 갈 때 혹시 몰라서 트렁크 지퍼를 테이핑 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스윽 스치다가 대한항공 테이핑의 지퍼가 손에 잡혀 찾아낸 거였습니다. 2cm의 흔적이 가져다 준 단서라는 것은. 아, 가방을 찾은 그 기쁨이란.
처음 짐이 안왔다고 했을 때, 숙소로 보내주겠다는 말을 그대로 들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아, 그랬다면 지금도 우리는 짐을 돌려받지 못했겠지요. 이탈리아인들의 업무처리 능력이란. ㅡ,.ㅡ
거기다가 돌아오는 날, 공항에 일찍 도착했는데 세시간전엔 티켓팅도 안해준다고 하고, 휠체어를 기다리는데도 서로서로 말이 어긋나 한시간을 넘게 기다리다가 결국 탑승수속 삼십분 전에야 들어갈 수 있었고. 아아, 정말 그들의 업무 처리 능력과 자세란! ㅠ.ㅠ
사실 돌아오는 날짜를 착각해서 피렌체에서 시에나로 향하려다가 급하게 로마로 올라가 비행기를 타고 온 것도 큰일이었긴 하지만 (이...이건 정말 챙피해서 발설하고 싶지 않은 일입니다만 ㅠ.ㅠ), 로마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마저 지연되었을 때 다시 한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삼십여분의 지연 소식에 직원에게 또 우리가 환승해야 하는 비행기를 타야하는데,라고 했더니 아주 간단하게 비행기는 정시에 도착!하니 아무 문제없다더군요. (이건 짐작인데 비행기 지연은 상시적으로 일어나고, 그래서 비행기의 도착 시간자체를 여유있게 적어놓는 것 같았어요. 지연된 시간보다는 좀 빨리 도착하긴 하더군요.)
뭐, 조금 늦게 도착하긴 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 한결 여유로운 마음으로 - 이번 휠체어 서비스 담당 직원 또한 여유롭게 천천히 움직여서 시간내에 출발 게이트에 도착할 수 있었지요.
========== 지금 생각하니 왜 그리 여유가 없었나, 싶군요. 처음 당해 본 일이라 (아, 두번 다시 당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예요!) 당황하게 되는 건 당연하지만 뭐 그래도.
긴박하게 움직이느라 사진 한 장 못찍었는데, 에어 프랑스의 휠체어 서비스 담당 직원들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더군요. 촉박한 시간속에서도 자신감 넘치는 여유가 있고, 프랑스어로 첫 인사를 하고 (싸바?가 인삿말 맞죠?)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지, 영어를 할 줄 아는지 물어보고 난 후 간단한 관심거리를 물어보기도 하고 셔틀버스 기사분들은 비행기를 놓쳐 울상인 우리에게 걱정말라며 잘 해결될꺼라는 말을 프랑스어, 영어 막 뒤섞어가며 얘기해주고(사실 영어를 잘 못하는 제가 듣기엔 그분도 짤막한 영어를 구사하는 것 같아 막 정겨웠어요! ㅎ), 난 정신없이 내리는데 어머니에게 웃으며 잘가라고 손도 흔들어주고 그랬다는군요. 사실 짝달막하고 똥똥하고, 벤치에 앉아 사탕물고 수다를 떨다가 셔틀에 올라타고는 휠체어를 밀며 나타난 직원이 자기가 아는 직원이라고 이름 부르며 막 반가워하고... 이런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는데.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나니 뭔가 다른 것이 느껴지더군요. 십오년전쯤 에어캐나다를 탔을 때, 나이 지긋해보이는 승무원들이 조금은 느릿느릿하게 움직이지만 아주 친절하고 신중하게 승객을 대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었는데, 오늘날 우리에겐 휠체어 서비스 담당 직원들조차 여전히 늘씬하고 이쁜 여자들만 있는것일까, 싶은.
사진은. 출발할때 티켓팅했던 무용지물이 된 표,와 다음 연결편으로 재빨리 티켓팅을 해 줬지만 그 또한 놓쳐서 무용지물이 된 표와 결국 세번째 티켓팅한 표로 로마에 들어갈 수 있었던 알이탈리아표. 짐이 스틸된게 아니라 스틸 인 파리일뿐임을 알려주고 내일 다시 문의하라며 건네 준 문서. 그리고 도둑이 무서워 잃어버려도 괜찮을 시계를 차고 갖는데, 지금도 여전히 로마 시간에 맞춰져 있는 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