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걸 볼 필요가 없다
"얘야, 너무 빨리 가지 마라."
할아버지는 내 걸음을 따라오지 못했다. 오늘 나는 머릿속이 온통 일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의 엄마 아빠처럼걸었다.
"그렇게 가면 아무것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하지만 이제 거리를 다 외웠는걸요!"
"그건 네 생각이지."
할아버지가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플라타너스로 다가갔다. 먼저 뿌리 쪽을 바라보고 나서 그다음에는더는 고개를 들 수 없을 때까지 고개를 위로 젖혔다.
나도 할아버지를 따라했다. 하지만 특별한 걸 볼 수는없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내가 손으로 할아버지를 잡아끌 때까지.
"할아버지, 뭘 보셨어요?"
"그냥 봤어. 꼭 특별한 걸 볼 필요는 없어."
그러고 나서 할아버지는 나에게 그 문장을 기억해 두라고 표정으로 말했다. 더는 말을 하지 말고 위를 바라보고 기다리라고 할아버지는 바로 그때 기억을 만들고 있었다고. - P36

우리는 베짱이가 될 수 있어나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가 우화인 줄 몰랐다. 옛날에아빠가 읽어 주었지만, 할아버지가 이야기해준 게 훨씬 좋았다.
"그런데 할아버지, 우리는 개미처럼 해야 하는 거죠? 그렇지요?" 다 읽고 나서 할아버지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이렇게 말했다.
"아니다. 우리는 베짱이가 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러면 겨울에......."
"겨울은 잊어버려라. 아직 오지 않았잖아."
할아버지가 조금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내 머릿속에 그날 오후에 보았던 개미들이 떠올랐다. 모두 일렬로 서서 부지런히 빵 부스러기를 나르고 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 개미굴에 도착하기 전에 누가 밟기라도 하면요?"
할아버지가 내 눈에서 개미들을 보았다는 것을 알았고,
나를 이해시키려고 설명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았다. 할아버지는 마치 내가 답을 알고 있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우화는 동화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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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과 부동명왕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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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니요. 미미여사의 글은 늘 반갑지만 이번은 더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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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카페에서 우리가 만난다면
황주리 지음 / 파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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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까페,가 주는 상징적인 이미지가 있어서일까. 비현실적일 것 같은 공간에서의 만남은 이 글이 '소설'임을 계속 상기시켜주면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알려지지 않은 신인 한국인 화가의 전시회를 보고 그 그림이 유독 마음에 남아 그림을 구입하고 오랜 시간 망설이다 우연히 화가의 SNS계정을 알게 되어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생각과 마음을 나누며 연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줄거리지만 사실 두 연인의 운명같은 사랑 이야기가 중심 주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의 편지를 통해 한국과 이슬람의 테러가 난무하는 곳에서 의료활동을 하는 의사와의 사랑이야기라니 너무 비현실적인 낭만이 아닌가 싶겠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은 비현실같지만 모두가 현실인 이야기라는 것이 이 소설의 아이러니같다.


두사람이 주고받는 편지에 여러 에피소드가 담겨있는데 그 중 이슬람에 가입한 연인을 찾기 위해 떠났다가 테러의 참혹함을 느끼고 그녀를 위해 선뜻 동행해준 친구와 결혼을 약속했지만 그녀가 애타게 찾을 때는 외면하는 남자친구가 그녀의 변심을 알게 되어 그녀의 남자친구를 죽여버린다,는 이야기이다. 

너무 극단적인 비극 이야기가 아닌가 했지만 이 세상의 테러와 전쟁은 모두가 비극일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림이 어우러진 소설,이라고 해서 사실 글 보다는 그림에 더 많은 기대를 했는데 솔직한 느낌은 소설 속 삽화,정도의 느낌이라 좀 많이 아쉬웠다.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것 역시 아쉽기는 하지만 그와 그녀의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이야기 속 사랑은 사라져버리고 현실만 남아있게 될 것 같아 그에 대한 아쉬움은 접게 된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떠나겠다고 했지만 끝내 오지 못하게 되는 이유가 마음아프면서도 이 세상에서의 사랑이 끝나지만 어쩌면 불멸의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이와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에 잠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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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3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03 1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3-01-03 2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alling you^^💕
 
권력은 현실을 어떻게 조작하는가 - 마리아 레사의 진실을 위한 싸움
마리아 레사 지음, 김영선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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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21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마리아 레사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소셜미디어의 실체를 밝혀내고 진실과 정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 마리아 레사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어 마리아 레사의 삶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그것은 그녀의 삶의 방향이 어떻게 바뀌게 되었고 지금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이야기였다. 필리핀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재혼해 미국으로 간 어머니가 납치하듯이 그녀를 데리고 미국으로 간 이후 마리아 레사는 또 한번의 변화를 맞게 되는데 그런 어린시절의 환경들이 그녀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기도 한 것이다.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항상 배우는 쪽으로 밀어붙일 것, 도움이 필요할 때는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삶의 자세도 그렇지만 자기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고 괴롭히는 당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모른척 하는 것이 옳지 않은 것임을 깨닫는 것은 우리 모두가 새겨둘만한 이야기라 생각한다. 침묵은 곧 동의한다는 뜻이라는 것을 말이 아니라 실제로 깨닫게 되는 것은 놀라운 깨달음이다. 이유없이 따돌림당하는 친구를 외면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때 자신과 같은 마음인 친구들이 함께 한다는 것 역시 마리아 레사가 나중에 언론을 통해 진실을 밝히는데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이 책을 읽는 것은 그리 재미있지는 않았다. 내가 필리핀의 정치 상황을 모르는 탓도 있지만 막혀있는 언론에 대한 것이나 페이스북에 대해 그리 큰 관심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한때 대선을 앞두고 지인이 하루에도 몇개씩 정치관련 소식이 담겨있는 이웃들의 글을 공유해서 정치판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그 지인의 페이스북만 찾아봐도 알 수 있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정치성향에 따라 글의 흐름이 보이는 것이었다. 뉴스에 이슈가 되어 회자되면 그에 대한 반박글을 따라가거나 그에 대한 소문 퍼뜨리기식의 글이 되곤하는데 이것은 그나마 지인의 글만을 봤을 때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지난 총선에 우리 지역에서 출마한 도지사가 페이스북에 자신의 홍보 광고를 올린 것이 문제가 됐었는데, 페이스북을 자주 들여다보지 않는 나 역시 그 게시물을 본 기억이 있다. 내가 '광고'라고 표현했지만 문제가 된 이유는 정치홍보 광고게제로 올라온 것이 아니라 우리 지역 페이스북 이용자들에게 광고가 아니라 그 게시물이 알고리즘 추천처럼 게시되었다는 것이었다고 기억한다. 이런 경험을 떠올리며 이 책의 내용을 읽고 있으려니 언론과 소셜미디어의 역할과 책임이라는 것의 막중함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며칠전 사무실에 건강보험공단에서 온 우편물이 있어 봤는데 2023년에 또 다시 보험료율이 인상된다는 통지서였다. 작년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이미 보혐료율의 인상에 대한 것은 오랜시간 뉴스를 통해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이번은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급여인상의 시기에 보혐료율이 인상되는 것은 뉴스를 통해서가 아니라면 쉽게 알아챌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이런 것 하나도 쉽게 지나치게 되지 않는다. 언론통제라고 할것까지는 없지만 굳이 안좋은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지않은가,라는  느낌은 지울수가 없다. 


수많은 데이터 분석과 언론 탄압과 폐쇄, 구속에 대한 불안에도 굳건하게 진실을 알리려는 마리아 레사의 고군분투가 담겨있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는 않았지만 그 의미를 생각할 때 그 이상의 충분한 가치가 있다. 


"포기하고 현실을 외면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우리 세계가 파멸하도록, 우리의 후손이 조종당하도록, 그들의 가치가 파괴되도록, 이 세상이 황폐해지도록 돕는셈이다. 우리는 실존의 순간에 와 있다.
포기하고 싶을 때 나를 깨운 건 트윙크의 글이었다. 트윙크는 죽어가면서도 싸움을 택했다. 나를 위해, 필리핀 사람들을 위해, 더 큰선을 위해 자기 연민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이제 행동할 때다.
나는 여러분을 믿는다.
나는 우리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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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우에는, 유독 힘든 날들이 있다. 내 일을 그만두지 않겠다고마음먹은 대가로, 여행할 자유를 잃었다. 남은 평생을 감옥에서 보낼 수도 있는 일곱 건의 형사 소송으로 인해 앞으로의 인생을 계획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나는 이런 세상에 살기를 거부한다. 더 나은세상을 요구한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누릴 자격이 있다.
노벨상 수상 강연에서 우리의 민주주의, 우리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일대일 방어를 요청했다. 그리고 이 책에서 그 방안을 구체화하려고 노력했다. 개인적인 것에서 정치적인 것으로 나아가기 위해, 개인의 가치에서 출발해 집단 행동을 위한 피라미드 구조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까. 여기 해법이 있다. 장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그러니 지금 시작하라. 중기적으로는 가상 세계에서 법치주의를 복원하기 위한 입법과 정책이다.
우리를 분열시키기보다 함께 묶어주는 인터넷에 대한 전망을 형성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이제 우리만 남았다. 그러니 협력하라. 그리고 협력은 신뢰에서 시작된다.
물론 쉽지는 않다. 포기하고 현실을 외면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우리 세계가 파멸하도록, 우리의 후손이 조종당하도록, 그들의 가치가 파괴되도록, 이 세상이 황폐해지도록 돕는셈이다. 우리는 실존의 순간에 와 있다.
포기하고 싶을 때 나를 깨운 건 트윙크의 글이었다. 트윙크는 죽어가면서도 싸움을 택했다. 나를 위해, 필리핀 사람들을 위해, 더 큰선을 위해 자기 연민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이제 행동할 때다.
나는 여러분을 믿는다.
나는 우리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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