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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프란치스코
호르헤 밀리아 지음, 고준석 옮김 / 하양인 / 2016년 5월
평점 :
프란치스코 교종의 이야기가 온통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 방문 즈음하여 그 인기는 절정에 달하였고 요즘은 조금 시들해진 듯 하기도 하지만 아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한 인기다. 지금 내 모니터 바로 앞쪽에도 성지순례를 다녀온 분이 선물해주신 교종의 탁상달력이 있다. 로마에서 사용하는 달력은 우리의 현실과 맞지 않으니 달력으로서의 의미는 별로 없고 교종의 모습이 담긴 사진 앨범의 의미가 더 크다. 그래서 그 달력에는 항상 엄지척,하고 계신 교종의 모습이 일년내내 붙박이처럼 있을 예정이다. 이런 교종의 모습은 연예인들처럼 화려한 겉모습에 환호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어쩌다 전해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 - 교종을 만나고 오신 주교님의 강론말씀중에 '섬은 여전히 잘 있나요?'라는 안부를 묻는다거나 세월호의 이후 이야기를 묻는다거나 바티칸을 개혁하고 있다는 실질적인 이야기들을 신부님들을 통해서 들을 때 그 겉모습과 본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그분을 존중하게 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분의 젊은 시절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사였고 그 당시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글은 처음 접한다. '스승 프란치스코'는 정말 말그대로 '스승'이었던 프란치스코 교종에 대한 옛날의 기억을 끄집어 내어 기록한 글인 것이다.
나는 천주교 신자가 아닌 시절 추첨으로 미션스쿨에 입학을 하였고 그후 천주교 세례를 받게 되고 고등학교에도 미션스쿨을 다니게 되었다. 교과 담당 수녀님이 담임선생님이 되기도 했고, 종교담당이셨던 수녀님이 너무 좋아 종교반 활동을 하기도 했었고 유학하고 한국에 오자마자 학교로 발령이 났다면서 현실적인 입시교육을 하지 못하고 교과서에 나온 연극을 준비하게 하거나 한시간동안 단어 열개를 가르치시던 영어담당 수녀님도 생각이 난다. 부모님들은 그래서 수녀선생님을 싫어하기도 했었고 - 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 역시 수녀님들이 교사자격증이 있는 전문교사이기는하지만 수도공동체 생활을 하는 특성상 교안작성이나 교재연구가 좀 미흡하기도 하다면서 약간의 불신을 갖고 있기도 했었는데 사실 나는 지금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그저 그 모든 경험들이 다 재미있게만 느껴진다.
어쩌면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종을 스승이었던 베르골리오 선생님으로 기억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실 저자의 이름이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나는 무심코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소설처럼 이야기가 진행되고 밀리오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구체적이라 이것이 진실일까? 라는 의구심도 갖기 시작했다. 아, 그런데 이 책을 쓴 저자가 바로 그 밀리오일줄이야. 나의 어리석음에 한방 먹으니 이 책이 더 재미있어졌다.
예수회회원답게 마에스트로 베르골리오는 진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 책을 읽는 도중 가장 재미있었던 이야기는 바로 그런것이었는데, 구두시험을 치르고 있는 학생(풍자만화를 잘 그리던 학생)에게 주제에서 벗어난 엉뚱한 질문을 던지고난 후 대답을 못하는 그 학생에게 시험이 끝난 후 쪽지를 한 장 내미는데 거기에는 겁에 질린 학생의 얼굴이 그려져있고 그 밑에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을 했을 때 학생의 얼굴이라고 적혀있었다. 풍자에 풍자로 맞대응하는, 그것도 시험을 치르는 자리에서 그런 장난을 걸 수 있는 선생님이 바로 지금의 교종이라니. 왠지 탁상달력의 사진처럼 장난끼어린 웃음을 지으며 엄지 척, 하고 있는 모습과 똑같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처럼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지하게 학생들에게 문학과 심리학을 가르쳤고, 학생들을 위해 그 유명한 - 나 역시 책을 읽으며 설마 내가 아는 그 보르헤스? 라고 의심했을정도로 - 호르헤 보르헤스를 학교에 초청해 강의를 듣게 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는 이 책을 그저 교종의 인기에 편승한 추억이야기쯤으로 여겼던 내 선입견을 완전히 깨뜨렸다.
그리고 한때 유행했던 - 성당 여름 신앙학교에서도 그랬고 언젠가는 성당 행사에서 여장을 한 신부님들이 나와서 온갖 환호를 받기도 했지만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괜히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는데, 그런 나의 마음을 확실히 정리해주는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다. 남학교에서 연극을 해야하는데 여자 등장인물을 연기할 배우가 없어서 여장을 시키려고 할 때 "아무리 연기라고 해도 여장을 하고 교우들 앞에 서게 하는 것은 당사자에게 굴욕감을 안겨주는 일일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여성의 이미지까지 훼손시키는 행위"라며 반대를 했고 학생들의 연극은 배우들의 어머니와 누이들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그러한 베르골리오의 입장은 교종이 된 지금도 교회와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해 그가 보여주는 입장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 진지한 연극인 경우 역할을 위해 분장을 할수도 있다고는 생각하는데, 교종이 이야기하는 그 근본적인 이야기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새겨넣고 싶다. 내가 봤었던 여장 분장은 단지 희극화하기 위한 놀이에 불과했기에 그닥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임을 깨닫게 되니 속이 좀 후련하기도 하다.
이 책에 실려있는 에피소드들은 가볍게 읽으려면 그냥 쓰윽 한번 읽고 지나갈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우리의 현실과도 많이 다르고 더구나 반세기 전의 교과과정도 다른 아르헨티나의 학교이야기여서 별로 재미있으리라는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각각의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웃음을 짓게 되다가 문득 깊은 깨달음이 남게 되는 것을 알게 된다. 역시 프란치스코 교종의 이야기는 엄지 척,이 아닐 수 없다.
"베르골리오의 아름다운 점은 닫힌 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스페인어라는 유물을 탐험할 때 그는 에둘러 가는 법이 없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유롭게 행동했다. 연구할 것, 의심할 것, 이것이 그가 학생들에게 주문하는 요구사항이었다"(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