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통 사람들의 지금 영어
김아영 지음 / 사람in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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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통 사람들의 지금 영어, 라고 하면 미국 사람은 아니지만 국제학교를 다니며 영어를 사용하고 있는 조카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8살에 주재원 파견을 나가게 된 아빠를 따라 외국의 국제학교를 다니게 될 때까지 영어라고는 써보지도 않았지만 학교에 입학해 영어를 배우고 생활하면서 원어민 영어 교사가 인정하는 원어민 발음을 하고 있는 조카를 볼 때마다 하루가 멀다하고 영어공부를 해야한다고 기를 쓰던 내 모습이 교차되면서 많은 자괴감이 생기기도 한다. 조카 둘은 이제 다 커서 영어 자신감이 없는 내게 완벽하게 잘 해야한다는 부담을 버리고 편하게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영어는 무척 쉽게 할 수 있다고 말을 하는데 솔직히 그 말이 더 무섭다. 그처럼 쉬운 걸 나는 왜 못하느냔 말이지.

 

휴가때 단 며칠이긴 하지만 조카들이 집에 와서 지내며 우리와 상관없이 조카 둘만 대화를 할 때는 편하게 영어를 쓰는데 그럴 때는 나도 맘이 편해져서인지 대충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것 같기는 했었다. 특히 서로 의견이 안맞아 목소리를 높이며 싸울 때 - 내가 전혀 모를 것이라 생각하고 맘놓고 영어로 떠들어댄 듯 하지만 분위기로 싸우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는 걸 몰랐는지 - 거리낌없이 말하는 것을 대강 눈치로 알아들을수는 있었다. 물론 그것으로 끝일 뿐 내가 그 말을 다시 해보는 것은 어렵지만 관심을 갖고 듣는다면 이해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보통 사람들의 지금 영어'는 그처럼 일상적인 대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인터뷰 형식이니 일상 대화와는 좀 다르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인터뷰 자체가 서로 주고받는 대화이고 인터뷰어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니 크게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일단 저자의 지인 다섯명에 대한 인터뷰라고 되어 있어서 뭐 흥미로울까 싶은 마음이었는데 예상외로 한편의 에세이나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항상 영어 문장을 먼저 보고 내가 얼마나 이해를 했을까,에 대한 생각으로 공부를 하듯이 책을 접했었는데 우리말 문장을 먼저 보고 있으니 정말 이 문장을 영어로 옮기면 어떻게 표현하면 될까를 고민해보게 되었다. 공부는 나름 자기만의 방식이 있기는 하지만 저자가 의도하는 바를 충실히 따르고 있게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 그만큼 교재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겠다는 일종의 신뢰감 같은 것이 생겨서 더 진중하게 책을 살펴보게 된다.

 

내용이 어려운 뉴스기사나 잡지의 글을 보면서 영어를 애써 공부하기 보다는 훨씬 재미있고 다양하게 미국 현지인의 생각과 말을 접할 수 있는 이 한권의 인터뷰집 같은 책이 더 친근한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듯 하다.

한 권의 인터뷰집으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데 자연스러운 대화속에서 우리말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은지 익힐 수 있고 각 챕터마다 일상회화가 담겨있고 간략하지만 문법 설명도 되어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공부를 하며 읽기보다는 한 권의 책을 읽듯이 들여다보고 표현에 익숙해진다면 그것이 내게는 더 좋은 학습방법이 아닐까 싶다.

여전히 말로 하기 보다는 눈으로 읽는 것이 편해서 아직 이 책의 스피킹 단계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하고, 큐알코드를 이용해 원어민의 생생한 발음을 듣고 따라하는 것도 없이 한번정도만 쓱 듣고 지나가버리고 말았지만 앞으로 책의 내용이 익숙해지면 스피킹 부분을 더 많이 활용하면서 공부를 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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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도시 3 - 에어비앤비로 여행하기 : 아시아편 한 달에 한 도시 3
김은덕.백종민 지음 / 이야기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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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나니, 아니 책을 다 읽을즈음 이들의 오랜 세계여행도 끝이 났으리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책을 읽다보니 중간에 멈추지 못하고 타이베이에서의 만두얘기에 군침을 삼키게 되는 새벽시간이었고 그들의 일정이 끝나 서울에 정착하게 되는 이야기에 내 마음이 더 싱숭생숭 복잡해지는 그런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신나고 재미있게 그들의 여정에 함께 했는데, 글로만 여행을 함께 한 나보다 실제 이들 부부가 더 마음의 정착이 어려웠으련만 왜 내 마음이 더 복잡해지는 것인지... 새벽이라 그런걸까?

 

세계일주를 한 여행자의 이야기는 많이 읽어봤다. 혼자 배낭메고 떠나는 사람도 있고,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마음이 맞는 친구와 함께 일정을 함께 하기도 한다. 물론 여러곳을 다니기도 하지만 여행생활자로서 한곳에 장기간 머무르며 현지인처럼 생활하는 여행자의 이야기도 읽어봤는데, 이들처럼 한도시에 한달간 머무르며 세계일주를 한 부부의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에어비앤비에 대한 이야기도 이들 부부의 여행이야기를 통해 처음 들었다. 그게 엊그제 같은데 이들은 유럽으로 시작하여 남미를 거쳐 아시아를 여행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물론 그들의 표현에 의하면 하루에 이만원하는 에어비앤비 – 그것도 집 한 채를 통으로 다 사용할 수 있는 좋은 거주지에서 서울생활을 하게 되었다.

 

처음 이들의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을 때 – 여행을 시작한 유럽편은 모든 것이 새로웠고 모든 것이 부러웠고, 이탈리아의 아씨시에 갔을 때 외국에서 처음으로 딱 한달정도만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기억에 더 감정이입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서툴지만 신기하고 낯설면서도 왠지 익숙한것만 같은 이들의 이야기는 시간을 지나며 좀 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시아편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까 망설이고 있을 때 선뜻 이 책을 집어들고 싶게 만든 건 터키에서의 에피소드 때문이었다. 전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난민 문제,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난감한 딜레마에 빠지게 되어버리는 난민 이야기가 정치,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다가왔는데 불법 장사를 하는 난민 소년을 단속한 경찰이 아이들을 쫓아내기 전 따뜻하게 끌어안아주는 모습을 본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에 빠져들어버렸다. 경찰의 직무를 다 하기 위해 불법 단속을 하지만 인간적인 그의 마음은 난민 소년을 보듬어주고 싶은 따뜻함이 있다는 것. 우리 경찰들에게도, 우리 정치가들에게도, 우리 모두의 마음에도 그런 따뜻함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좀 더 서로에 대해 익숙해져서일까, 두 사람의 이야기에는 자신의 이야기와 서로에 대한 감정을 툭 털어놓고 그 과정도 숨김이 없다. 서로가 완전히 다른 성격 유형을 갖고 있으며 서로의 단점도 숨겨놓지 않는다. 이들의 이야기에서 삶은 여행이고 여행이 곧 삶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시의 풍경이나 여행지에서의 놀이에 푹 빠져들어가는 이야기보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특히 그들의 가족이야기와 일상생활에 더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이 많아진 것도 그 이유가 되겠지.

크리스마스즈음 복잡하고 시끄러운 도시를 피해 찾아 든 고아에서 마음을 전할 카드를 쓰려다가 방도 아닌 식당의 맨바닥에 이불하나 깔고 잠에 든, 네팔에서 돈을 벌기 위해 형을 따라 인도의 소도시 고아에까지 와서 일을 하는 차팔의 얼굴을 보고 카드 대신 초콜릿, 사탕, 과자를 잔뜩 사고 차팔과 단골식당의 모든 직원들, 동네 꼬마들을 비롯한 이웃 모두에게 나눠줬다는 이야기에는 감동을 받아버렸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은 이웃에게 전해지며 바로 또다시 그들에게 되돌아오는 것, 이것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겠지.

 

이야기를 끝내며 이들은 불안보다는 설레임이 더 크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보다는 해 보길 잘했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한다고 한다. 매 순간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지금이야말로 인생의 후우시절이라고 하는 그들의 마음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하리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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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초등학생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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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어른 초등학생이다’. 응? 어른 아이도 아니고 어른 초등학생이라... 그냥 마스다 미리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 이야기일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예상외로 이 책은 “명작 ‘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를 비롯한 추억의 그림책 스무 권을 소개하면서 어렸을 때의 일들을 에세이와 만화로 그려 본”것을 담고 있다.

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는 조카의 책장에 꽂혀있는 것만 봤었지 읽어보지는 못했다. 물론 이 책만이 아니라 마스다 미리가 추억에 잠겨 꺼내든 동화책의 대부분을 다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녀가 책 이야기를 통해 풀어놓는 어린 시절의 추억들은 나 자신을 어린 시절로 데려다주고 있다.

어렸기 때문에 책을 통해 친해지고 싶은 마음을 전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는 친구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한다거나 막연히 기억하고 있는 부분적인 내용만으로 어린 시절의 동화책을 찾고 싶은 마음이라거나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기억속에 강하게 남아있는 것이라거나... 마스다 미리의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또 한편으로는 나만의 어린 시절을 끄집어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첫장에 ‘어른이 되니까 좋아?’라는 물음에 ‘응. 하지마 처음부터 어른으로 태어났다면 재미없었을 거야’라는 말은 이 이야기가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에 젖어들며 그 시절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하고 그러한 어린 시절을 지내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것임을 전제로 어른 초등학생의 에피소드를 풀어주고 있음을 느낀다.

서툴고 혼란스럽고 엉망인 듯 보이지만 그런 어린시절이 없었다면 지금의 어른인 내 모습이 없을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어린아이 시절을 건너뛰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

 

어렸을 때의 일은 많이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중에서도 죽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없던 어린 시절 등장인물이 죽는 것으로 끝나는 내용이 담긴 동화책을 읽은 기억은 지울수가 없다. ‘팔거리의 소년들’이라는 제목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성인이 되어 여러 기억을 조합해보았을 때 헝가리의 한 도시 ‘팔’거리에 살고 있는 소년들의 일상을 그려낸 이야기였다. 빈 공터를 둘러싸고 그곳을 차지하기 위한 아이들의 진지한 전쟁같은 싸움에 오해가 생기고 그 소중한 곳을 지키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는 소년이 있는데 그 결말이 아이들에게는 목숨을 걸만큼 소중한 공간이었지만 어른들에 의해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리고 만다.

솔직히 어렸을 때는 그저 조금 슬프고 황당하다는 느낌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꾸 곱씹어볼수록 그 이야기는 너무 슬픈 이야기로 다가온다.

마스다 미리의 ‘어른 초등학생’을 읽다보면 자꾸만 이런 이야기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녀의 이야기에 나의 이야기가 덧붙여져 어른 초등학생은 그녀의 이야기이면서 또 나의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그 뜻을 몰랐지만 어른이 되고난 후 다시 떠올려보는 그 과거의 기억은 때로 마음을 아리게 하고 부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때로는 부당함에 화가 나기도 하고 왜 그리 어리석었을까 싶기도 한다. 물론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만들어진 기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스다 미리의 이야기처럼 그 역시도 어른인 자신을 지키는 ‘토대’가 되어 있음이 분명하겠지.

그런 나 자신을 도닥여줄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한번 더 꺼내어봐야겠다. 내 기억에는 전혀 없는 다섯 살 꼬맹이 시절, 옆구리에 동화책 한 권 끼고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걸터 앉아 책을 읽곤 했다던데 그때 내가 봤던 책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내 기억에는 없지만 그것 역시 지금의 나를 지켜주는 토대가 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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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조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0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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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만에 경찰소설을 읽었다. 그것도 사사키 조의 소설이다. 사사키 조의 소설이라는 것에 흥분을 한 탓일까? 이 소설의 도입부를 읽는데 나는 분명히 이 소설을 읽은 기억이 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전에 원작의 발간시점을 먼저 살펴봤다. 2011년 작품, 책 소개에는 사사키 조의 대표작인 ‘경관 안조’ 시리즈의 최신작이라고 되어 있다. 아하, 그러니까 도입부를 읽으며 어디선가 읽어봤던 느낌이 들었던 것은 경관의 조건이 경관 안조 시리즈의 한편이기 때문이었겠구나, 생각하니 왠지 안심이 되면서도 조금은 허탈해졌다. 인상 깊었던 이 안조 경관의 이야기를 제대로 기억못하고 있다는 것이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잊고 있지는 않다는 것에 안심을 하게 되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안심이라기보다는 뭔가 허탈한 마음이 더 크다. 경관 시리즈만을 기억하고 사사키 조의 경찰 소설에 담겨있는 수많은 의미들은 사그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 씁쓸한 마음을 느끼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의미들을 소설속의 에피소드로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일본 사회에 대한 풍자, 권력과 배신에 대한 풍자가 그들만의 것이 아님을 기억하고 우리 사회의 현실과도 빗대어 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으니 그것으로 조금은 위안을 삼아야겠다.

 

경관의 조건은 한 범상치 않은 낚시꾼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경관으로 보이는 양복입은 두 사람이 눈빛이 살아있는 낚시배의 주인에게 거두절미하고 도움을 청한다.

이야기의 시작만으로도 경관의 조건은 과거로부터 시작되는 대서사의 서막을 알리는 느낌이 든다.

 

경시청 내 최고의 성과를 거둔 경찰 가가야 히토시는 원칙만을 고수하지 않고 나름의 융통성으로 범죄조직과 경찰 직분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범죄조직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 고지식한 경관의 틀을 버리고 고급 맨션에 살면서 외제차르 타고 다니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 그의 겉모습을 보면 조폭의 정보를 이용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들 조직의 비호를 받으며 뒷거래로 돈을 받는 타락한 경찰의 모습이다.

아니나다를까, 그런 그의 생활은 그가 키우고 있는 그의 부하 직원 안조 가즈야의 내부고발로 끝이난다. 보고되지 않은 마약을 지니고 있는 상태에서 체포된 그는 직접 약을 하지는 않았지만 각성제 불법 소지 혐의로 체포되고 재판을 받고...

이야기는 끝을 짐작하기 힘들정도로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할 여지도 없이 긴박하게 진행이 된다. 이건 책을 직접 읽어보지 않으면 그 느낌을 알기 힘들지 않을까...

 

이야기가 끝나기까지 긴장을 멈출 수 없고, 나는 솔직히 끝까지 이야기에 담긴 진실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경관으로 살아간다는 것, 경찰과 범죄 조직의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그 경계선을 넘나들며 끝까지 경찰의 직분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지난한 일인지, 세상살이가 조금 길어진 나는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더 ‘경관의 조건’이 마음을 울리고 있다.

십여년전쯤 이 책을 읽었다면 정의로운 경관의 활극, 경찰조직내의 배신과 권력 싸움에 희생되는 경찰, 부패한 경찰의 비리, 정의만을 위해 타협없이 살아가는 것과 융통성있게 타협할 줄 아는 모습 사이에서 무엇이 옳은 것일까에 대한 고민은 그리 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선뜻 그 경계선에서 단순히 무엇이 옳고 그르다라는 답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떠올리고 결코 흔들리지 않는 마음에 대한 존중은 세상을 살아가며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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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6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승 프란치스코
호르헤 밀리아 지음, 고준석 옮김 / 하양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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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종의 이야기가 온통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 방문 즈음하여 그 인기는 절정에 달하였고 요즘은 조금 시들해진 듯 하기도 하지만 아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한 인기다. 지금 내 모니터 바로 앞쪽에도 성지순례를 다녀온 분이 선물해주신 교종의 탁상달력이 있다. 로마에서 사용하는 달력은 우리의 현실과 맞지 않으니 달력으로서의 의미는 별로 없고 교종의 모습이 담긴 사진 앨범의 의미가 더 크다. 그래서 그 달력에는 항상 엄지척,하고 계신 교종의 모습이 일년내내 붙박이처럼 있을 예정이다. 이런 교종의 모습은 연예인들처럼 화려한 겉모습에 환호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어쩌다 전해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 - 교종을 만나고 오신 주교님의 강론말씀중에 '섬은 여전히 잘 있나요?'라는 안부를 묻는다거나 세월호의 이후 이야기를 묻는다거나 바티칸을 개혁하고 있다는 실질적인 이야기들을 신부님들을 통해서 들을 때 그 겉모습과 본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그분을 존중하게 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분의 젊은 시절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사였고 그 당시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글은 처음 접한다. '스승 프란치스코'는 정말 말그대로 '스승'이었던 프란치스코 교종에 대한 옛날의 기억을 끄집어 내어 기록한 글인 것이다.

 

나는 천주교 신자가 아닌 시절 추첨으로 미션스쿨에 입학을 하였고 그후 천주교 세례를 받게 되고 고등학교에도 미션스쿨을 다니게 되었다. 교과 담당 수녀님이 담임선생님이 되기도 했고, 종교담당이셨던 수녀님이 너무 좋아 종교반 활동을 하기도 했었고 유학하고 한국에 오자마자 학교로 발령이 났다면서 현실적인 입시교육을 하지 못하고 교과서에 나온 연극을 준비하게 하거나 한시간동안 단어 열개를 가르치시던 영어담당 수녀님도 생각이 난다. 부모님들은 그래서 수녀선생님을 싫어하기도 했었고 - 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 역시 수녀님들이 교사자격증이 있는 전문교사이기는하지만 수도공동체 생활을 하는 특성상 교안작성이나 교재연구가 좀 미흡하기도 하다면서 약간의 불신을 갖고 있기도 했었는데 사실 나는 지금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그저 그 모든 경험들이 다 재미있게만 느껴진다.

어쩌면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종을 스승이었던 베르골리오 선생님으로 기억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실 저자의 이름이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나는 무심코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소설처럼 이야기가 진행되고 밀리오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구체적이라 이것이 진실일까? 라는 의구심도 갖기 시작했다. 아, 그런데 이 책을 쓴 저자가 바로 그 밀리오일줄이야. 나의 어리석음에 한방 먹으니 이 책이 더 재미있어졌다.

 

예수회회원답게 마에스트로 베르골리오는 진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 책을 읽는 도중 가장 재미있었던 이야기는 바로 그런것이었는데, 구두시험을 치르고 있는 학생(풍자만화를 잘 그리던 학생)에게 주제에서 벗어난 엉뚱한 질문을 던지고난 후 대답을 못하는 그 학생에게 시험이 끝난 후 쪽지를 한 장 내미는데 거기에는 겁에 질린 학생의 얼굴이 그려져있고 그 밑에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을 했을 때 학생의 얼굴이라고 적혀있었다. 풍자에 풍자로 맞대응하는, 그것도 시험을 치르는 자리에서 그런 장난을 걸 수 있는 선생님이 바로 지금의 교종이라니. 왠지 탁상달력의 사진처럼 장난끼어린 웃음을 지으며 엄지 척, 하고 있는 모습과 똑같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처럼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지하게 학생들에게 문학과 심리학을 가르쳤고, 학생들을 위해 그 유명한 - 나 역시 책을 읽으며 설마 내가 아는 그 보르헤스? 라고 의심했을정도로 - 호르헤 보르헤스를 학교에 초청해 강의를 듣게 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는 이 책을 그저 교종의 인기에 편승한 추억이야기쯤으로 여겼던 내 선입견을 완전히 깨뜨렸다.

그리고 한때 유행했던 - 성당 여름 신앙학교에서도 그랬고 언젠가는 성당 행사에서 여장을 한 신부님들이 나와서 온갖 환호를 받기도 했지만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괜히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는데, 그런 나의 마음을 확실히 정리해주는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다. 남학교에서 연극을 해야하는데 여자 등장인물을 연기할 배우가 없어서 여장을 시키려고 할 때 "아무리 연기라고 해도 여장을 하고 교우들 앞에 서게 하는 것은 당사자에게 굴욕감을 안겨주는 일일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여성의 이미지까지 훼손시키는 행위"라며 반대를 했고 학생들의 연극은 배우들의 어머니와 누이들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그러한 베르골리오의 입장은 교종이 된 지금도 교회와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해 그가 보여주는 입장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 진지한 연극인 경우 역할을 위해 분장을 할수도 있다고는 생각하는데, 교종이 이야기하는 그 근본적인 이야기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새겨넣고 싶다. 내가 봤었던 여장 분장은 단지 희극화하기 위한 놀이에 불과했기에 그닥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임을 깨닫게 되니 속이 좀 후련하기도 하다.

 

이 책에 실려있는 에피소드들은 가볍게 읽으려면 그냥 쓰윽 한번 읽고 지나갈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우리의 현실과도 많이 다르고 더구나 반세기 전의 교과과정도 다른 아르헨티나의 학교이야기여서 별로 재미있으리라는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각각의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웃음을 짓게 되다가 문득 깊은 깨달음이 남게 되는 것을 알게 된다. 역시 프란치스코 교종의 이야기는 엄지 척,이 아닐 수 없다.

 

"베르골리오의 아름다운 점은 닫힌 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스페인어라는 유물을 탐험할 때 그는 에둘러 가는 법이 없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유롭게 행동했다. 연구할 것, 의심할 것, 이것이 그가 학생들에게 주문하는 요구사항이었다"(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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