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5.18

.......... 조용하다.

아니, 사실 나는 요즘 주말마다 병원에서 지내고, 목감기까지 걸려 날마다 피곤을 달고 사느라 하루하루가 힘들었는데 오늘따라 아침기분이 상쾌하고 기침을 유발시키는 선선한 바람마저 반가운 오래비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5.18이다.

 

그리 특별한 경험도 아니지만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는 언제나 4.3을 시작으로 5.18까지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그 옛날, 시위를 하다 한밤중에 친구와 동떨어져 주위를 둘러볼때쯤이면 사방 온천지에는 깨진 보도블럭과 서슬퍼런 장비를 온몸에 두른 전투경찰뿐이었었던때가 있었다.... 

 

지금 우리는 벌써 그 모습을 잊어도 되는가.

감상적으로 향수어린 추억을 떠올리며 '그땐 그랬지' 라며 이야기하기엔 여전히 현실은 퍽퍽하다.

 

그래서 나는 이런 말을 꺼내는 것조차 싫다.

그런데 왠지 슬프다.

알라딘에서.

세상사를 잊고, 고통받으며 힘겨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을 잊고 살아가고 있을 때 사람답게 가치있게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다시 떠올려주게 하던 알라디너들의 수많은 글들은 사라져버렸다.

다른 알라디너들의 훌륭한 글을 읽으며 나 자신을 다잡기도 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잊지 않게 해주던 그때를 생각하니 갑자기 슬퍼지는 것이다.

나는 그저 소시민으로 살아가면서도 피터지는 고민과 투쟁의 삶을 살아가는 동지들은 그 모습 그대로이기를 바라는 나의 얄팍한 마음이, 서글퍼지고 있을뿐... 이다.

 

조용한 오늘,

그저 상쾌하다며 기분좋은 하루를 맞이한 내가 부끄러워지는 건 나 혼자만의 이야기는 아니리라... 믿고싶을뿐.

 

 

 

 

 

 

 

 

 

 

그 겨울 내내 고문실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고문당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그 고통이 절정에 이를 때, 그들은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떤 고통도 자신을 완전히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차레로 발견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저마다 절대로 지울 수 없는 삶의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혹은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가장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기쁨의 순간들을. 자기가 개나 돼지 혹은 곤충이나 벌레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일들을. 가슴이 터지도록 누군가를 꽉 껴안아 다른 인간의 심장에 가장 근접했던 순간을, 흡족할 정도로 맛있게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친구들과 배가 아프도록 웃던 순간을, 단풍이 든 산길을 걸어다니고 쌓인 눈을 밟고 초여름의 밤바다에 뛰어들고 공원 벤치에 누워 초승달을 바라보던 순간을, 그들은 죽어가면서 떠올렸다. 그게 사람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너무나 평범한 일상들을 자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로 떠올리는 것. 그런 순간에도 나는 그들의 마음을 읽었다. 나는 아파하고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또 침을 흘리고고,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가도, 다시 눈을 번쩍 뜨고는 말도 안되는 삶의 환희에 웃음을 지었다. (98)

 

 

사진은 우리집 마당의 자그마한 동백나무. 한겨울이 지나며 꽃을 피우고 저렇게 아주 자그마한 열매도 맺고 있다. 활짝 꽃피우고 온 힘 다해 툭, 떨어져버린 동백꽃이 지나간 자리에 저렇게 좋은 열매가 맺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분명 세상은 더 살기좋은 곳이 되리라는 희망을 가져야겠구나 싶어진다.

 

 
제주동백은 강렬한 빨간색으로 활짝 피어난다. 그리고 활짝 피어 난 후, 사그라질때는 미련없이 툭, 하고 통꽃으로 떨어져버린다. 해산령을 받은 산사람들은 그렇게 동백꽃처럼 툭,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해마다 제주동백은 다시 강렬한 빨간 꽃을 피워낸다. 그처럼 우리는 4.3의 정신을 이어나갈 것이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외세에 침략당하지 않고, 수탈당하지 않는 민중으로 살아가기 위해.  그리하여 진정 평화의 섬,을 이뤄낸다면 미련없이 툭 떨어져 후손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4.3을 모르지만 4.3의 후예로서 그렇게 살아가기를 원한다.

 

 

 

 

 

사람이라면 절대 해서는 안되는 게 있다. 그것은 죽을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너희들이 왜 짐승이 아니고 사람인지를 생각해보기 바란다. 생각을 한다는 것도 사람의 특징이다. 그러니 아무 생각없이 멍청하게 앉아있지 마라. 허무맹랑한 생각이라도 해라. 머리를 정지시키고 있는 것은 죄악이다.(62)

오늘따라 마음을 후벼파는 말이지 않는가.

 

 

 

하늘에서 수십개의 별똥별이 쏟아지던 날을 기억한다. http://lifewithu.egloos.com/2856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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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5-18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백 열매가 저렇게 생겼군요. 정말 야물게 생겼네요.
희망이라는 열매, 다른 사람을 위한 밑거름...이런 어귀들을 눈에 담아가요.
감기가 어서 떨어져야 할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