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이 모든 것을 멈춰 세웠어도 구유를 꾸며야 하는 성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세상의 구원자가 온다면 가장 먼저 찾을 곳은 어디일까. 모두 하나같이 요양병원을 떠올렸다. 전염병 대유행 이후 매달 성체聖體, Ostia 를 모시고 찾던 그곳을 한 번도 방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화로 드문드문 생사만 확인할 뿐이었다. 매일 다를 것 없는 고만고만한 하루를 보내는 처지에선 비록 한 달에 한 번뿐이지만 본당 신부는 무척이나 반가운 손님이었으리라. 직접 찾아가지는 못해도 완성된 구유를 사진 찍어 성탄 선물과 함께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어려웠다. 방역 단계 격상으로 제대로 모일 수 없으니 평범한 구유만 간신히 만들 수 있을 뿐이었다.
얼마 후 지척의 한 요양병원으로부터 집단감염 소식이 들려왔다. 비교적 저렴하다고 알려진 그곳은 상가 빌딩 한 층에 세 들어 있었다. 집단 격리 조치 후 연일 사망자가 나왔다. 격리된 건물에서 밖으로 나올수 있었던 것은 시신 39 구뿐이었다. 주검이 마지막으로 나오던 날에도 병원이 자리한 상가 빌딩에서 사람들은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커피를 마셨다. 전혀 다른 두 개의 시간이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무심히흘렀다. 누구도 대로변 상가 건물에서 돈으로 밥과 물건을 사듯 제 삶의 마지막을 이런 식으로 구매‘ 하리라곤, 또 그렇게 마감하리라곤 생각지 못했을 테다. 모두에게 평등하다고 믿었던 죽음은 이제 더는 평등하지 않았다. 생로병사마저 시장에 포섭된 것이다. 이대로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 소비자로 끝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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