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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폭격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4년 12월
평점 :
이 책에는 저자의 글이 두개나 실려있다. 하나는 미리 써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출판되기 직전에 새로 쓴 것. 소설을 다 읽고난 후 저자의 글을 읽고 있으려면 왜 저자의 글이 두개인지 이해를 하게 된다. [맛집 폭격]은 배명훈이라는 작가의 새로운 소설로 그 제목에서 왠지 좀 흥겹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내 마음은 괜히 착잡하다. 역시 배명훈 작가,라는 생각의 한편에 미래의 일을 예견하듯이 썼는데 어째서 이건 과거의 일을 끄집어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인지, 작가의 대단한 필력에 감탄하게 되는 마음과 현실의 씁쓸함이 뒤섞이는.
맛집 폭격의 이야기는 에스컬레이션 위원회에서 일하는 이민소와 윤희나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어느 날 언젠가부터 시작된 전쟁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의 현재에서 막바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현장 조사원으로 일하는 민소는 폭격이 일어난 장소를 직접 찾아갈 필요없이 보고서만 봐도 되지만 현장의 내용이 얼마나 정교하게 사실적으로 보고되고 있는지 가끔은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열심히 현장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낙하산처럼 새로 들어온 윤희나 역시 일을 너무 열심히 한다. 이야기는 그렇게 미국을 중립국처럼 두고 두 나라의 맞대응 폭격으로 전쟁상황이 지속되고 뜬금없이 이어지는 공습경보와 폭격이 일상화되어버린 세상을 그려내고 있다. 그런데 민소는 폭격 현장을 다니다가 뭔가 이상한 점을 느낀다. 그의 추억이 담겨있는 장소, 그가 사랑했던 - 아니, 사랑하는 송민아리와이 추억이 있는 맛집이 하나둘씩 폭격되고 있는 것이다. 차츰차츰 의혹을 갖고 혹시 거기에 어떤 메시지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던 민소와 그의 의구심에 함께 조사를 하던 윤희나는 조금씩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는데....
맛집 폭격은 너무나 많은 사실들을 떠올리게 한다. 아니,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 소설이기 때문에 그 안에 담겨있는 은유가 무엇인지 떠오르는 수많은 사실들과 대비하며 글을 읽게 된다. 솔직히 첫 도입부분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그닥 흥미를 못느끼고 배명훈 작가의 글에서 느껴지는 가볍게 툭 치지만 지나고 나면 깊어지는 그런 느낌이 없어서 이상했다. 내가 이 소설을 병원의 정신없는 상황에서 읽어 그런가, 싶었는데 조금씩 이야기의 흐름이 잡히기 시작하면서 책을 놓을수가 없었다. 갑자기 한꺼번에 터져나온 수많은 생각들이 가끔은 책을 더디 읽게 만들기도 했지만 역시 책은 소리소문없이 쑥 읽혔다.
맛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결코 그럴수없는 이야기가 전개되어버리기 때문에 더욱 그 뒷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사실 이 책에 실려있는 맛집의 추억이 담긴 음식에 대한 세밀함을 다 잊어버렸다. 분명 미식가에 버금가게 훌륭한 묘사였다고 기억하고 있음에도 그게 무엇이었는지조차 떠올리지 못하고 있다. '폭격'에 의한 충격도 아닌데 말이다.
지금 우리의 생활 자체가 전시가 아닌 평시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전시나 평시나 다를 것이 무엇인가 되묻고나면 순간 멈칫하게 된다. "전쟁이 나고 공습 경보가 울리면 뭔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전쟁은 그렇게 일상과 겹쳐졌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의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진실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하고싶은 말은 많지만 그 많은 말들은 각자의 느낌에 맡겨두고 싶다. "관심갖는 사람이 별로 없는 곳에서는 오히려 책임을 같이 져주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인 나라"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얼마나 되겠는가 싶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