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뉴욕 - 영화와 함께한 뉴욕에서의 408일
백은하 글.사진 / 씨네21북스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팔리는 영화잡지 <씨네21>.
<씨네21> 기자 채용 경쟁률을 보고 기절할 뻔 한 적이 있다.
글쎄 4명 뽑는데 1,600명이 몰렸단다.
웬만한 대기업이랑은 비교도 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에 빠진, 영화 없으면 못 사는 사람
- 해변의 모래알처럼 넘쳐 난다.
영화 보고 글 쓰기를 업으로 삼고 싶은 사람
- 공기처럼 널려 있다.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 영화로 유학 가는 사람
- MBA 가듯 많이 가서 놀랐다.

평론가로, 프리랜서 평론가로 먹고 살기는 정말 힘들다.
원래 집이 부자거나, 배우자의 직업이 빵빵하거나, 영화과 겸임교수가 아니라면 더더욱.
기자도 만만치 않다.대한민국에 영화잡지 몇 개 있지도 않다.
이러니 <씨네21> 기자 채용 경쟁률이 그렇게 천문학적일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백은하는 그런 대단한 <씨네21>의 기자였다.
2001년 9월 11일, 그 잘난 뉴욕에서 무역센터가 어이 없이 무너졌을 때,
백은하는 생각했다. '나도 내일 저렇게 허망하게 죽을 수 있겠구나.'
그래서 들고 있던 적금을 깨고, 생명보험을 중도 해지하고 뉴욕으로 떠난다.
용감한 또는 무모한 그녀. 뉴욕에서 408일 동안 네일 가게에서 일해 생계를 유지하며, 하루하루 영화에 미쳐 산다. 영화 속 배경들을 하나하나 답사하듯이 찾아가 보고, 온갖 멀티플렉스,허름한 극장,영화제들을 찾아다니며 영화를 본다.굶은 듯이.

이 책을 읽으면서, 솔직히 '질투'를 느꼈다.
30대 싱글 여자가 직장을 때려 치고 1년이나 떠나 있을 수 있다니!
그 배짱과 용기가 마구마구 부러웠다.

그런데...지난주 <씨네21>을 보니 백은하는 다시 <씨네21> 기자가 되어 있었다.
마치 휴직을 마치고 복귀한 것처럼.
' 음....믿는 구석이 있었구만. 그럼 그렇지.' 하며 자기합리화(?)를 했다.

내가 적금을 깨고, 종신보험을 해약하고
" 내 꿈에 다가가고 싶어요.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하며
뉴욕이건 카트만두건 내 꿈의 도시 방콕이건 어디로건 떠난다면
다들 "미쳤다!"고 하겠지.

무엇보다도 회사가 1년 후 나를 다시 받아 줄리 만무하다.미션 임파서블!
그럼 30대 여자가, 가진 국가자격증이라고는 운전면허(그것도 2종) 뿐인 나는
한국으로 돌아온 후 도대체 무엇을 할 것인가?
어느 회사에 면접을 갔다고 치자.
면접관 : 1년간 공백이 있네요. OO에서 뭘 하신거죠?
수선 : 네...네일숍에서 일하며 영화를 봤습니다.
음하하하, 웃음 밖에 안 나온다.

김형경처럼 아파트를 팔아 세계 여행을 떠난다. - 대단하다.존경!
백은하처럼 회사를 때려 치고 적금을 깨고 뉴욕으로 떠난다. - 멋져, 너무 멋져!

김형경은 세계여행을 다녀와서 그걸 소재로 글을 썼고,
※ <사람풍경>을 보라, 다 여행 얘기다.
백은하는 뉴욕 통신원을 거쳐 더더욱 인기있는 기자가 되었다. 이렇게 책도 한 권 나왔다.

하지만 나는....30대 중반의 백조가 될 것 같다.
나는 그렇게 불쑥 떠날 용기가 없다.
떠난다 해도 '한국 가면 뭐하지?'하는 불안에 밤잠을 못 이룰 것 같다.

그러니...용기 있는 그녀들의 책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할 수 밖에.
영화를 소재로 풀어 나간 백은하의 발랄한 에세이는 촉촉하고 상큼했다.
읽으면서 몇 번이나 크게 웃었고, 내내 미소가 지어졌다.


덧붙이며)
<안녕 뉴욕>은 내가 사랑하는 인터넷 친구가 선물해준 책이다.

" 백은하의 <안녕 뉴욕> 읽다가 수선님 생각났어요. 수선님 글 향기처럼 도시적이고 깊은 통찰도 있고."

아....정말 감동했다.
내가 백은하처럼 잘 쓰는 것도 아니고
깊은 통찰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책을 읽으면서 나를 떠올려 줬다는 것만으로 가슴 뻐근한 감동.

한번도 만난 적 없지만 항상 힘이 되는 친구,
책을 읽으면서 내 생각을 해준 그녀에게 감사를!

사족)
백은하. 다 좋은데 문장에 영어 정말 많이 섞어 쓴다.
외래어 차원이 아니라 그냥 영어 단어다.

예를 들어,

- '에비뉴 Q'는 온갖 이민자들의 터전이자 루저들의 집결지이다.
- 그런 주인공에게 'PURPOSE', 즉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찾으라는 명령이 부과된다.
- 게다가 이 케이스는 단순히 한 가정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나도 참 영어 많이 섞어 쓴다.
난 글이 업은 아니쟎아...라고 합리화해 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반성해야 겠다.
남의 글에서 보니 툭툭 불거져 보이는데, 내가 쓸 때는 몰랐다.

왜 항상 남의 실수, 잘못은 잘 보이면서,
내 실수, 내 잘못은 흐리멍텅하게 보이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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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6 0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6-05-16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ㅆㅆ 수선님은 어디 한 1년 갔다 와도 또 다른데 취업할 수 있을거에요.물론 탈세하는 국민기업 s 그룹은 아니겠지만....개인적 능력은 있잖아요.단 대기업 제공하는 안락함(?)-그 정도 월급에 그 정도 사회적 인정에 그정도 심리적 안정감-을 포기하기 어려우니까 그런거겠지요.... 가진게 많은면 움직이기 더 힘든게 인지상정....
제가 아는 프리랜스 친구(가볍겠지요..)는 한 1-2년 일하고 회사에서 그만 두라면 모아놓은 돈으로 여행다녀요.지난번에는 인도,네팔에서 한 6개월 살더니...이번에도 또 짤렸는데...몇 달 후에 유라시아 열차를 타고 대륙횡단을 한다네요....그 친구도 걱정은 많아요..그래서.."멍하니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가는 것보단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 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마늘빵 2006-05-16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도 어디 가서 실컷 놀이체험담 써서 내면 성공할거에요. 근데 우리말 놔두고 쓸데 없이 영어 섞어 글쓰는건 별로 보기 좋진 않아요. 음. 위에 저 예들은 좀 심했네요. 펄포우즈를 걍 영어로 저렇게 써버리다니.

nada 2006-05-16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외래어에 관한 한 고종석의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하므로 할 말은 없지만..(저도 영어 쓸데없이 좋아하기 땀시..하하^^;;) 근데 PURPOSE를 대문자에 따옴표까지 한 걸 보면 영화 제목을 암시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저런 제목의 영화가 있거든요. 암턴 능력 있는 사람은 1년 놀다 와도 돌아갈 자리가 있군요. (이 부분에서 어쩐지 실망감이 드는 건 왜인지..) 심히 부러울 따름입니다.

icaru 2006-05-16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그렇게 사는 여자들 보면서..대리만족은 충분히 하겠는데...
뭔가 말이죠... 석연치가 않은 것은... 뭘까요~
나는 타인의 즐거운 욕망과 삶에 대한 설렘을 이유 없이 질투하며 살고 있었설까요~

하이드 2006-05-16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왜 적금 깨면 많이 손해인데, 그냥 다 채우고 계획해서 떠나지. 하는생각이 먼저 들죠? ^^; '그만두면 뭐해' 하는 생각에 지겨워죽겠는데 다니던 날이 있었어요. 친구 하나는 '그만두면 앞으로 뭐할까 생각할꺼야.' 하더군요. 그때 이후로, 여기서 저기로 호핑하는거 말구, 그만두면 앞으로 뭐할지 생각해야지. 하고 있어요.

그리고 외국어 섞어쓰는건, 그 언어만이 지닌 뉘앙스가 있잖아요. 너무 개념없이 섞어쓰는건 우스워보이겠지만, 그 뉘앙스를 나타낼 수 있는 말이라면, 영어건, 불어건, 독어건, 일어건 능력되는대로 마구 섞어 쓸꺼야요. 물론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과 소통할때요. (혹은, 상대방이 알아듣거나 말거나 상관없을때, 혹은 나 자신과 소통할때)

kleinsusun 2006-05-16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 질문이 있어요. 그 친구는 남자인가요? 그 친구는 어떤 일을 하나요?물론...싱글이니까 그렇게 자유롭겠죠? ㅎㅎ
왜 물어 보냐구요?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여자들의 재취업은 정말 580배는 더 어렵거든요.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여자가 나이 많으면 쥐약이예요. 그게....현실이거든요.쩝. 그 친구 멋있네요.유라시아 열차타고 대륙횡단이라.....바람처럼 사네요.캬~아!

kleinsusun 2006-05-16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제가 1년간 태국 여행을 하고 <캅쿤카 타일랜드> 이런 걸 써도 팔릴까요? 예전에 그런 상상을 하며, 기획안까지 쓴 적이 있답니다.ㅎㅎㅎㅎㅎ

꽃양배추님, 그죠, 부럽죠? ㅎㅎㅎ
저도 사실...영어를 많이 쓰는 편이라....우리말로 똑같은 느낌을 끄집어 낼 수 없는 그런 단어들이 많쟎아요. 그래도....좀 절제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kleinsusun 2006-05-16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caru님,맞아요.빙고!!!
대리만족은 할 수 있는데 뭔가 석연치가 않아요. 사실...누가 집 팔아서 여행 간다고 하면 "촌스럽다"는 생각도 한 적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여행이란 좀 "naive"한거 거든요.ㅎㅎㅎ (어머! 저 영어 썼네요.백은하 영어 많이 쓴다고 뭐라 하고...ㅎㅎㅎ)

kleinsusun 2006-05-16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오랜만이예요.
맞아요, 적금 깨는 것도 아깝지만, 생명보험 중도 해지하는 건 정말 쥐약이죠.원금은 커녕 반도 못 받쟎아.ㅎㅎㅎ
여기저기로 호핑하는 건(저도 해봐서 알지만) 정말 소모적인 일이예요. 뭐할까 생각하는 하이드님, 멋져요!^^

다락방 2006-05-17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어요. 수선님의 글이랑, 여러분들이 그 글에 달아 놓은 꼬릿말들을 보면 말예요. :)

드팀전 2006-05-17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 친구는 (사실 친구는 아니지만)...여자입니다.올해로 30살이 되었다고 징징거렸으니...나이는 30이네요.돈을 약간 더 모아서 간다고 하더군요.

kleinsusun 2006-05-17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재미있어요? 호홋....기분 좋아라~^^

드팀전님, 아하! 여자예요? 오....멋진 girl! 그 집 부모님도 걱정이 많으시겠군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moonnight 2006-05-23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수선님 리뷰를 놓치다닛! ^^; 저도 이 책 무척 재밌게 봤어요. 부럽기도 했지만.. 나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란 생각이 마이마이 들더군요. ;;

2006-05-31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6-06-25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수선님 서재에서 놀라와서 본 리뷰. 그런데 상상하는 대목에서 (이런 케케묵은 표현 쓰긴 싫지만 제가 어디 갑니까..) 무릎을 탁, 치며, 그래, 그거지,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엔트로피가 꼭 무너지라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전 그런 순간들이 더 많은 거 같죠? 음..그런데 루저 라는 단어는 한국어로 옮기기도 참 힘든 것 같아요. 실패자, 라는 묵직한 느낌도 아니고, 가벼운 느낌이건만 `인생 최대의 밥버러지' 정도의 절망적인 늬앙스. 굳이 BECK의 I'M ` A LOOSER, SO WHY DON'T YOU KILL ME? 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 이전에 차라리 제리 맥과이어 에서 제리의 여자친구가 `난 네가 루저라고 하더라도 널 사랑할거야'라고 말할 때 탐 크루즈가 눈썹을(맨날 작은 일에 눈썹 치켜세우고, 큰 일엔 머리를 쥐어뜯는 게 아쉽게도 한계입니다만..참고로 전 이러고도 탐 크루즈 팬입니다 흐흐..) 확 치켜뜨며 `모시기?'라고 말하는 것을 떠올려보면 더 분명해져요.
가볍지만 제가 딱 느낀 바를 써주셨습니다. 지금 막 책을 다 읽고 님의 리뷰를 본 것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