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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에쿠니 가오리의 결혼 생활을 잔잔한 어조로 써내려간 산문집.
에쿠니 가오리의 남편은 평범한 회사원이다.
매일 아침 똑같은 시간에 허둥지둥 출근하고,
매일 밤 피곤에 지쳐 퇴근해서는 꼼짝도 하기 싫어하고,
집에서는 하루 종일 TV를 틀어 놓는
그런 평범한 남자.
내 옆자리에 앉는 신입사원 B가 물었다.
" 대리님은 어떤 남자가 좋으세요?
대리님 홈피 봤는데요....남자도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쓰는...그런
남자 좋아하세요?"
뜬금 없는 신입사원의 질문에 좀 당황했었다.
가끔.... 이런 질문을 듣는다.
글쓰는 사람이나 예술하는 사람을 만나는게 어떻겠냐고?
대답은....No.
난 그냥 무던한 남자가 좋다.
규칙적인 일을 하는 평범한 남자.
에쿠니 가오리는 결혼을 하고 나서야 주말을 좋아하게 된다.
혼자 일을 하는 작가라는 특성상,
에쿠니 가오리에게는 주말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출근하고 밤 늦게 퇴근하는,
평일에는 개인 시간이 전혀 없는,
즉 평일에는 둘이 같이 있는 시간이 거의 없는 남자랑 결혼을 해서 살면서,
주말을 기다리게 되고 주말을 좋아하게 된다.
결혼을 하고 몇년 동안 한번도 혼자 여행을 간 적이 없었던 에쿠니는
혼자 가는 여행을 계획하고 남편에게 말한다.
"나 ,9월에 여행할 거야."
양복과 넥타이,와이셔츠와 양말을 여기저기 벗어던지던 남편이,
옷을 벗다말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밥은?"
이번에는 그 말을 들은 내가 어안이 벙벙했다.
밥?
몇초 동안, 둘 다 말이 없었다.그리고 간신히 내가 말했다.
"밥? 첫 마디가 그거야?"
지금 외출을 하는 거라면 몰라도 앞으로 몇 달 후에 여행을 간다는데, 그 말을 듣고 처음 하는 소리가 어디?가 아니고,며칠 동안이나?도 아니고 밥은?이라니.
나는 나의 가장 큰 존재 가치가 밥에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아 슬펐다.(p45)
이 책에서 가장 와닿았던 부분이 바로 "밥"이다.
아....결혼은 생활이구나.
"부인의 부재 = 밥의 부재"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생활의 장. 아하!
황당하지만...한편으로 이해도 된다.
결혼이라는건...상대방의 "기능(?)"과 "역할"에 상호의존하면서 유지되는 걸테니까...
이런 상상을 해본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는 회사원 남편이
전업주부인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 나....회사 그만 두고 공부를 하고 싶어."
이럴 때,
" 그래? 어떤 공부가 하고 싶은데? "
이렇게 묻는 아내가 얼마나 될까?
"그럼 아파트 대출금은 어떻게 갚아?"
이렇게 묻는 여자가 훨씬 많지 않을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간다는데 첫마디가 "밥은?" 이면 정말 기분 나쁠 것 같다. ㅎㅎ
정말 나는 몰랐으니까.남자란 존재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도.
연인과 함께 지내는 밤의 달콤한 친밀감이 아니라,
그저 함께 자는 남자의 팔이 얼마나 편안한 것인지.(p55)
나도...모른다.알 수가 없다.
매일 함께 자는 남자의 팔이 얼마나 편안한 것인지...
남자의 팔이 얼마나 편안한지 알기 위해서...결혼을 해봐야 하나? 음하하...
에쿠니 가오리는 말한다.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척 들러 붙어 자는 것이 결혼생활이라고....
여성지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은 산문집인 만큼,
에세이 하나하나가 말랑말랑하고,
결혼생활이라는 것이 참으로 "낭만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냥...가볍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산문들이다.
이 책, 남자가 읽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
아하! 결혼한 여자는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