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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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시란 그저 멀찍이 떨어져서 쳐다만 보고 말아버리는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내가 무슨 바람이 불어 시집을 붙잡았는지 모를 일이다. 호기심이었고 충동이었다. 별다른 뜻 없이 그냥 읽고 싶은 맘이 동해서 읽게 됐는데 생각보다 받은 인상과 느낌이 좋았다. 그건 난해하게 들리는 시가 적었기 때문인 거 같다. 시를 접해본 적이 없는 문외한으로서 그나마 얼핏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시를 이해했다는 말은 못하겠지만 어렴풋이 한 번 느껴본 기회가 됐다.

희미하기도 선명하기도 한 기억과 사유 속에서 힘들게 한 자 한 자 시를 짓는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눈으로 한번 슥 하고 보면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 글도 소리내서 천천히 자꾸만 읽다보면 느낌이 생겨났다. 신기하다. 어렵다는 핑계만 댈 것이 아니라 현재의 수준에서 시와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조금씩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직하고 담담하게 마음에 와 닿는 표현들이 자연스레 감정의 파고를 높였다. 그런 정제된 표현들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언어를 시도했을까. 그런 시인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숭고해진다.

여전히 내겐 시는 멀다. 하지만 그 거리가 마냥 아득하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시집으로 인해서 말이다. 이따금 고급 언어인 시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생각이 사방팔방 펼쳐지는 느낌과 가슴을 때리는 시적 표현으로 위로도 받고 감성적으로 깨어나고 끝끝내 일부만이라도 깨우치는 인생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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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어트 Quiet -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
수전 케인 지음, 김우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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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것을 무시할 수 없다. 그냥 하늘로부터 받는 것이다. 선택권도 거부권도 없이 그렇게 주사위는 던져진다. 소위 성정 내지는 성격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나 자신을, 나의 성격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있을까. 파악만이라도 바른 방향으로 하고 있는 걸까. 내향적인 성격이 아니었다면, 책이 눈에 띄지도 굳이 시간을 내서 책장을 넘기며 큰 공감을 하지도 못했을 것 같다. 단연코 지극히 내향적인 편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내향적인 면면들에 전부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내가 아주 가끔 마음에 들기도 하지만 불만일 때가 압도적으로 더 많았다.

뭐가 됐든 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성격이었다면 덜 힘들지 않았을까. 내가 나를 힘들게 하는 성격인 거 같다. 끝끝내 가질 수 없는 것에 눈길을 빼앗기고 마는 것처럼 여전히 나는 반대 성격에 강하게 끌린다. 성격 그 자체는 하나의 성향일 뿐이건만 내향적인 우리는 왜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일까. 그건 내향성을 둘러싼 삐딱한 사회 시선들과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와 편견들이 합쳐져 강력하게 작용하는 바람에 우린 턱없이 자신에 대해 인색해질 수밖에 없었다. 도움되는 내향성 관련 정보도 정보지만, 포괄적으로 짚어주는 내향성의 여러 면들을 안달복달하지 않고 편히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준다. 솔직히 내 성격에 대해 자부심을 느껴본 적은 없다. 뒤늦게나마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알게 된 것만이라도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낼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내면을 중시하는 성향은 모든 곳에서 필요하고 통용돼야 할 성향이라 생각한다. 자꾸만 흔들리고 속되게 휩쓸리기 쉬운 세상에서 무엇을 간직하고 지속시키며 살아가야 할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레 달라질 성격의 모습도 부분적으로 있겠지만 크게 달라지진 않을 거 같다. 그럴 수 없을 테니까. 그렇게 쉽게 변하면 성격이 아니지. 내가 지닌 성격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가질 수 없는 것에 연연하고 실망할 것이 아니라. 말은 왜이리 쉬운가. 차분하고 깊게 시야를 넓혀준다. 도움이 됐다. 별 생각 없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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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 1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파리 리뷰 인터뷰 1
파리 리뷰 지음, 권승혁.김진아 옮김 / 다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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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그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다 해도, 여전히 그렇게 변하지 않는 감정으로 꿈꾸고 바라보는 대상이 있다면 그건 내겐 소설이지 싶다. 쓰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쓰지는 않는다. 쓸 수 없으니까. 재능도 근성도 없는데 어떻게 글을 쓸 수 있겠는가. 내가 나를 아는데. 읽는 것이 불만족스러운 것도 아니고. 작가란 직업에 호기심이 있는 편이다. 모든 창작자들에 대한 경외심도 있고.

예술이란 게 순전히 재능으로만 풀어지는 것이 아니란 걸 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출중한 재능이 있다 해서 술술 써지는 것도 아니고. 실패해도 인내하고 끝까지 다시 시도해서 마침내 달성하는 태도가 핵심이다. 글쓰기든 삶이든. 쟁쟁한 소설가들의 인터뷰를 찬찬히 읽어내려가면서 난 무엇을 기대했던가. 어떤 힌트를 바랐던 것일까. 글을 쓴다는 행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든다. 정확한 문장과 표현을 위해 쓰고 지우고 고치고 또 고치는 그 지난한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고 견디는 작가들의 경험담을 듣자 자연스레 비교가 되는 것이다. 매일매일 대충 게으르게 흘려보내는 내 삶과 말이다. 무엇을 깊이 추구하지도 사랑하지도 탐구하지도 않는 내가 한심해지는 거다. 왜 이 모양이지? 당장 뜯어고쳐도 모자를 판에 왜 변하지 않고 정체된 삶을 계속하는 걸까.

좋은 인터뷰를 보면 확실히 배우는 것도 깨우치는 것도 있다. 배운 게 있지만 내 삶에 연결이 돼야 진짜 배운 것이 될 텐데. 머리와 가슴으로 감동했으나 실천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보통 신중하고 깊어서는 이런 훌륭한 작품을 쓰지 못하겠지. 알아서 쓰는 게 아니라, 쓰기 위해 공부하고 알아야 하는 작가들의 겸손함이 크게 와 닿는다. 경험도 관찰력도 상상력도 빈약해서 남들에게 보여주고 인정받는 글은 쓰지 못하겠지만 나 혼자 쓰는 글쓰기는 할 수 있을 텐데. 근데 그것도 쉬운 건 아닌 것 같다. 타인의 시선이 없어도 혼자 묵묵히 한 글자씩 써내려가는 게 무진장 어려운 거더라. 내가 나를 의식하니까. 존재할 법한 그럴듯한 세계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의미와 표현으로 마음과 세상을 보고 느끼게 해주는 작가들이 있어 다행이다. 이런 재미를 알아서, 느낄 줄 알아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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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퍼 이펙트 -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
필립 짐바르도 지음, 이충호.임지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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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윤일병 사건을 뉴스로 접한 충격의 여파가 이 책을 끝까지 붙잡게 만들었다. 경악했고 불편했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특히 사회면을 장식하는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사건을 볼 때마다 매번 뜨악한 기분이 된다. 인간이란 존재가 대체 무엇이며, 과연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지 자못 궁금해졌다. 사회심리학은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학문이었다. 관련 지식과 정보가 없기도 했지만 이미 수십 년 전에 교도소 모의실험을 통해 시스템과 상황이라는 사회적 힘의 위력을 밝혀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난 이제서야 어렴풋이 인식하기 시작했건만.

개인의 기질 탓으로 빚어진 문제가 아니라는 전제하에서 개인은 사회적 동물로서 사회적 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나쁜 시스템이 낳은 나쁜 상황에 놓인 개인과 집단은 엄청나게 나쁘고 이상한 미친 짓을 할 수 있게 된다.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환경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내면에 단단한, 확실한 것을 가져야 그나마 덜 흔들리며 살 텐데. 인간성에 새로운 이해가 더해지면서 편향된 시각이 조금은 균형이 잡히는 듯하다. 양면적 진실에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나 심층적인 분석의 글은 난해하지 않고 분명하다. 범죄의 수렁에 빠지지 않으려면 인지하고 최대한 조심하며 사는 수밖에 없겠다.

살다보면, 아니 살면 살수록, 점점 더 악에 대해 왜 그런 것인지. 어떻게 그런 것인지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보게 되는 것 같다. 스탠퍼드 교도소 모의실험 전 과정과 실제 아부그라이브 교도소가 겹쳐지고 맞닿아 있는 지점에서 발견되는 의미들이 크다. 단순히 싫다고 거부할 수도 회피할 수도 없다. 생각보다 훨씬 더 인간은 수동적이고 취약하다. 이 점을 잊지 말자. 뒤늦게나마 새로 알게된 지식과 통찰로 인해 사뭇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사고도 해가며 독서할 수 있었다. 미친 짓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깨우치는 것이 모두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것 같다. 어리석은 미친 짓거리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더더욱 말이다. 자주 교만해지는 마음이지만, 금세 망각하는 정신이지만, 책에서 배운 바를 온전히 이해해서 내 삶에 약간이라도 적용하고 싶다. 각성하고 경계하자. 이면을 마주하니 생각이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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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의 매 대실 해밋 전집 3
대실 해밋 지음, 김우열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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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은 몰랐지만 샘 스페이드란 이름과 몰타의 매가 맥거핀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알고 봤지만 크게 곤란한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줄거리를 안다고 해도, 그게 전부는 말해주는 것은 아니니까. 글로 직접 대면하기 전까지는 한낱 작은 정보에 불과할 뿐이다. 미리 조금 알았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읽다보면 샘 스페이드란 캐릭터가 워낙 강해서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느껴진다. 단순하지 않게 복잡한 면을 잘 살려서 그런 거 같다. 확실히 착하지는 않다. 나쁜 매력이 있어. 그래서 끌리는 건가. 시작은 하나의 물건이었다. 그 하나로부터 비롯된 여러 사건들. 욕망에 취한 여러 사람들이 나온다. 사람 잡는 그 욕망이 문제지. 그렇게 값어치 있는 물건이라던, 값을 매길 수조차 어려운 진귀한 물건은 실체가 없다. 이 모든 게 다 헛소동이라니. 허상을 좇은 것이었다. 그 대가로 얻은 것이라면 무력함이 아닐까.

아쉬움이 없을 만큼 좋았다기보다는 생생한 캐릭터가 맘에 들어 기억되는 이야기지 싶다. 스페이드는 마초적이고, 주관이 분명하고, 능수능란하다. 이게 그의 재능이다. 끝부분에 나오는 스페이드의 대사 부분을 눈여겨보면서 느꼈다. 거부하기 힘든 그만의 시니컬한 매력을. 난 시니컬한 사람 좋던데. 너무 반듯하고 밋밋하기만 하면 뭐든지 재미가 없다. 그게 사람이라면 더더욱. 뾰족한 면이 있다 해서 나쁜 건 아니라 생각한다. 사람은 여러 면을 동시에 갖고 살아가는 존재이니까. 여러 표정, 여러 얼굴, 여러 말투가 내 속에 같이 있다. 소설과는 별 상관없는 얘기만 늘어놓았다. 샘 스페이드란 이름으로 기억될 소설이다. 먹히는 캐릭터다. 한 방이 있는 캐릭터. 그래서 괜찮게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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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4-10-07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이 책 최근에 읽었는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저도 거친아이 님처럼 무럭무럭 커지더라구요. 말로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요.
현대문학에서 나온 단편은 번역을 얌전한 여성의 말투로 해놔서 영 몰입이 안되던데, 대실해밋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려 하고 있습니다. ㅎㅎ

거친아이 2014-10-17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남은 두 권은 좀 이따가 보려구요. 아껴보는 심정으로...챈들러만큼 대실 해밋도 꽤 괜찮았어요! 맘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