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떠나가는 동료를 위한 환송회가 있었다.
뽀다구 나는 대기업 명함을 과감히 버리고,
사업을 하기 위해 출사표를 던졌다.

만 9년 동안 꼬박 회사를 다닌 K대리.
마지막 출근 날이었던 어제,
정말 만감이 교차했을 꺼다.

어제 K대리가 보낸 "회사를 떠나며..."란 제목의 단체메일은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이 보내는 형식적인 "퇴직인사"랑 많이 틀렸다.

보통의 "퇴직인사"는 이렇다.

그 동안 베풀어 주신 사랑과 도움에 감사 드립니다.
일일이 찾아 뵙고 인사 드려야 하나, 이렇게 지면으로 인사 드립니다.
........(세줄 정도 중략)
정들었던 선후배, 동료 여러분 모두 건승하시기 바라며,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어제 K대리가 보낸 메일은 정말 솔직하고 잔잔한 감동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저번주 금요일 휴가를 내었습니다.
오랜만에 3개의 자명종을 끄고 잠들었지만, 알람이 세팅된 각각의 시간에
자동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늦은 아침..정말 오랜만에 집사람이 차려 주는 아침을 먹고 민규 손을 잡고
유치원에 갑니다. 그 동안 내가 몰랐던 낯선 풍경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빵집 아저씨 웃으며 인사하고, 이발소 아저씨 투덜거리며 가게 앞을 청소합니다
그 시간엔 무슨 노란차들이 그리도 많이 다니던지...찾아보기 힘들던 꼬마아이들이
그리도 많던지...유치원에 도착하니 민규는 "안녕히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뛰어가고..

갑자기 회사를 그만 둔다는 것이 현실로 무겁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아침햇살을
등지고 집으로 오는 길엔 새로운 미래에 대한 설레임으로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 K대리의 "회사를 떠나며" 중에서)


그 동안 몰랐던 낯선 풍경.
- 그렇다. 출근길에는 그저 빨리 걷는다.
지하철 안에서, 버스 안에서 고개를 떨구고 잠든 사람들 밖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찾아보기 힘들던 꼬마아이들.
- 그렇다. 이른 아침 출근길에는 꼬마들이 없다. 넥타이를 휘날리며 분주하게 걷는 회사원들이 있을 뿐이다.

자명종을 다 끄고 잠들어도
9년 동안 훈련된 생리시계는 정확한 시간에 자명종 3개를 합친 것 보다 더 큰 소리로 울린다.

K대리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딱 한 달 동안 쉰다고 한다.
환송회 때 소주를 한잔 권하며 K대리에게 물었다.

" 쉬시는 동안 뭐하실 꺼예요?"
" 매일 아침 아내랑 조조영화를 보러 갈꺼예요.
그 동안 아내랑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해 안타까웠거든요.
한 달 내내 뭘 하든지 아내랑 같이 있을 꺼예요."


아..... 정말 부럽다.
매일 아침 사랑하는 사람이랑 손을 꼭 잡고 극장에 가다니...
아....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해도.생각만 해도.

도대체 나의 반쪽은 어디서 뭘하고 있는지...
일요일 아침에 도서관에서 자판기 커피 마시기가 어찌 이리 힘든지...

매일 아침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조조영화를 보러 갈 K대리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길 바라며.

Bravo, Hi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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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3-31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수선님, 맨날 구경만하다가 글 남겨봅니다. ^^
근데, 전 괜히 미리 벌써 쓸데없이 아마 그분 많이 들었을 그런 걱정들이 머리를 휙휙 스치고 지나네요. 대기업의 우산을 벗어나 사업을 하실 그 분. 앞으로 과연 시간이 더 많아질지, 더 없어질지, 아,그리고 전 출근할때 맨날 노란차들이랑 거기 탄 꼬맹이들 본답니다. ^^;; 대략, 8시 40-50분 정도지요?

로드무비 2005-03-31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대리의 인사 멋지네요.
그에게 더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기를......
그리고 이렇게 예쁜 우리 수선님과 이른 아침 도서관에서
만나 커피 마시고 조조로 영화보고 할 행운의 주인공이 누굴지
저도 궁금해요.(빨리 나타나소서!)

오렌지향 2005-03-31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의 글 매번 100% 공감합니다. k대리가떠나셔서 섭섭하시겠네요. 그분의 용기에 진심으로 Bravo!

moonnight 2005-03-31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적인 작별편지네요. 용기있는 분이다 싶어요. 매일 손을 꼭 잡고 조조영화를 보러 갈 예쁜 부부의 모습이 그려지네요. ^^
우리 수선님의 반쪽. 얼른 만나셔야 할텐데. 어느 도서관 자판기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닐까요? 양손에 커피를 들고서요. ^^

kleinsusun 2005-03-31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스하이드님 안녕하세요! 저도 하이드님 글을 읽고 있지요.
야클님 서재에서도 자주 만나구요.ㅋㅋ
대기업을 벗어나 벤처에 간 분들, 사업을 하시는 분들 많지요.
근데...돌아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걸 피턴 현상이라고 부르던데...
K대리는 뜻하는바 대로 잘 되었음 좋겠네요.
참! 저희는 출근이 8시까지라 노란 차를 볼 수가 없답니다.
하이드님, 글 남겨 주셔서 감사해용!

kleinsusun 2005-03-31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로드무비님, 감사 또 감사합니다.
나타나기만 하면 냉큼 보여드릴께요.ㅋㅋ

moonnight님,양손에 커피를 들고 있는 사람이 팔 아파서 내려 놓으면 어쩌죠?ㅋㅋ
moonnight님은 이 아름다운 봄에 어떤 연애를? 핑크빛 봄을 바래요.
우리 같이 행복하자구요!!!

오렌지향님, 네 섭섭해요. 어제 K대리에게 책을 한권 선물했어요.
<삼미 슈퍼스타의 마지막 팬클럽>. 낄낄거리며 읽으면 좋겠네요.

마태우스 2005-03-31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멋지다.... 사업이 잘되어 계속 멋짐을 유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글구 님의 짝은..... 알라딘에 님의 몽환적인 사진이 떴으니, 이제 곧 나타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샘 2005-03-31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치원에 아이를 데려다 주고 싶은 정말 어마어마한 꿈. 아내의 손을 잡고 조조 영화를 보고 싶은 굉장한 꿈. 한 달간이라도 마음껏 누리실 자격이 있는 분이네요.
S대리님, 손잡고 도서관 가실 그 분은 한 걸음씩 오고 계신데, 안 보인다고 투정 부리지 마세요. 더 맛있는 글을 많이 남기셔서, 그 분이 오신다면 살포시 보여주시길... 아마 감동의 도가니가 아닐까요?

2005-03-31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코마개 2005-03-31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나도 회사 때려치우고 일단 원없이 '처'자고 싶다. 그 후에 배낭 메고 훌쩍 아시아 여행을 떠나면 좋으련만...

LAYLA 2005-03-31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진 분이시네요. 수선님도 올해는 님을 찾으세요 >//////////<히히

kleinsusun 2005-04-01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하하, 몽환적 사진이라...마태우스님의 표현은 항상 넘 재미있어요.
글샘님, 네.....오고 있는데 제게 안 보이는 거군요. 아하! 고맙습니다. 랄랄라.
속산이신님,맞아요.거창하지도 않은데 못하는 일들이 많죠? 저한테도 브라보 외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쥐님, 저도 아시아 여행 가고 시퍼요. 이번 주말엔 실컷 주무세요!
LAYLA님, 고맙습니다.///////////호홋.

야클 2005-04-02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을 떠나 혼자 해방감을 느끼며 쉬고 싶다는 남자도 있지만,이렇게 가족과 함께 시간 보내며 쉬고 싶다는 남자가 더 멋있고 근사해 보이네요. 그분에게 행운을! 수선님께도 멋진 4월을! ^^ 아니 멋진 남친을 ^^V

kleinsusun 2005-04-02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도 핑크빛 봄을! 요즘은 좀 여유 있으시죠? 기쁜 봄날 보내세요!

바람돌이 2005-04-03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주일에 이틀 정도를 빼고는 6시반정도에 집에 들어와서 아이들과 놀아주던 남편이 올해는 고3담임을 맡으면서 빠르면 저녁 8시 반 늦으면 12시 반에 들어옵니다. 그러면서 어느 날 밤 유난히 데면데면하게 구는 딸아이들을 보고 섭섭해 합디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아빠 얼굴볼일이 없으니 섭섭해지기도 했겠지요
그날밤 남편이 "아마 대한민국의 샐러리맨 아빠들이 다 이런기분이겠지"라고 말하더군요. 둘다 씁쓸함을 느끼면서 공감했습니다. 수선님의 글을 보니 문득 생각나네요. 대한민국의 회사원 아빠 엄마들의 봄날을 위해 bravo!!!

kleinsusun 2005-04-04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에도 고3들 야간자율학습하나요? 저희 때는 매일 밤 10시까지 했었는데...
야자 감독하고 집에 가시는 선생님들을 보면 우린 진학이라도 하지 선생님들은 진짜 힘들겠다 생각했었어요. 두분 다 많이 힘드시겠네요. 힘내세요, 홧팅!

2005-04-08 15:3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