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 선생님의 특강 마지막 날, <일제말기 학병 세대의 체험적 글쓰기론>을 강의하시며이가형의 <버마전선 패잔기>, <분노의 강>을 읽으시고눈물을 흘렸다고 하셨다.그러면서"시적 진실"(일면적 진실)과 "산문적 진실"(전면적 진실)에 대해 말씀하셨다. 우리가 소설을 읽고 눈물을 흘리는 건 시적 진실(일면적 진실)에 속았기(?) 때문이라고. 아무리 남루하고 구차한 삶을 사는 사람도 그 사람 인생의 어떤 순간은 너무도 아름답고 행복하다고! 다만 길게 펼쳐 놓았을 때 구질구질하고 비루할 뿐! 강의를 들으며 성석제의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이 생각났다. 성석제는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의 "저자의 말"에서 이렇게 말했다.내 인생은 순간(瞬間)이라는 돌로 쌓은 성벽이다. 어느 순간은 노다지처럼 귀하고 어느 벽돌은 없는 것으로 하고 싶고 잊어버리고도 싶지만 엄연히 내 인생의 한 순간이다. 나는 안다. 모든 순간이 번쩍거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겠다. 인생의 황홀한 어느 한 순간은 인생을 여는 열쇠구멍 같은 것이지만 인생 그 자체는 아님을.인생 그 자체는 아님을! 잘은 모르겠지만....인생의 황홀한 어느 한 순간은 인생 그 자체(전면적 진실)가 아니라"일면적 진실"이라는 말인 것 같다. 내가 성석제나 아사다 지로를 좋아하는 건 남루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아무리 노력해도, 어떻게 해도 꼬인 인생이 달라질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번쩍거리는 황홀한 순간"을 잡아내기 때문이다. 가슴이 먹먹하게!어쨌거나..."번쩍거리는 황홀한 순간"이 조금 더 많아야 누구건 그 삶이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번쩍거리는 황홀한 순간"을 보면 정말,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 주겠다고! 최소한 초는 치지 않겠다고!누군가의 "번쩍거리는 황홀한 순간"에 쏴~한 말 한마디로 초를 치는 사람들이 은근 너무 많다. "번쩍거리는 황홀한 순간"은 상대적인 거다. 기쁨의 질량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걸 자기의 잣대에 대서 "그만한 일에 뭘 그렇게 호들갑이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근 너무 많다. 난 나의 주특기인 온갖 오버를 다해서 주위 사람들의 "번쩍거리는 황홀한 순간"을 함께 기뻐해 주고 싶다. 그래서...그들이 그 "번쩍거리는 황홀한 순간"을 조금 더 기뻐할 수 있도록, 조금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