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따위가 책을 평가할 기준이란게 있나? 읽은 책은 다 좋은 책!! 했었는 데, 읽기가 쌓일 수록 ‘내’가 읽기에 너무 좋은 책들은 별 다섯을 주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별 반개가 없는 북플의 특성상 (도입좀 해주라 제발), 모든 책이 별 네개가 되어가고 있었고…. 또 그건 아닌 것 같아 깎다보니 좋은 책들도 별 세개가 되어 본의아니게 좋은 책들에게 별점 테러(?)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나름의 기준을 정하고, 또 별 셋이 별로라는 뜻은 아니라고 항변하기 위해 페이퍼를 써보는 중이다. 시작은 이러한데 언제나 그렇듯 쓰다보면 맨날 다른 글을 쓰고 있는 나…. 두시까지 후딱 쓰고 일하러가자.


사실 책에서 만큼은 양다리 세다리 문어다리인 내가 마지막 장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완독하는 책은 내게 좋은 책에 속한다 싶다… (예외 : 너무 좋아 아껴 읽는 경우, 너무 어려워 못읽은 경우가 있음) 집 앞에 도서관이 생겨서 다양한 책을 고를 선택지가 많아지니까 더 뒤적뒤적 하게 되서 완독이 수월하지 않으니 점점 더 ㅋㅋㅋ 그렇게 될 예정이다..


도서관에서 일단 책을 편 후 나는 보통 세가지 기준으로 완독 할지 말지를 판단한다. 


1. 내가 몰랐던 세계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를 주거나

2. 재미있거나

3. 아름답거나


과거 1-2-3 이 충족되었던 저자라서 아묻따 의리로 읽는 경우도 있음. 중요도 순서는 평등한거 같다. 사회과학이나 철학, 인문교양 책에 1 번이 2,3은 주로 에세이나 소설에 해당한다.


1. 정보 혹은 의미


기실 모든 책은 정보를 주기 때문에 별 다섯에 다다르기는 좀 까다롭기로 해보자. 


(내 기준에)새로운, 알아서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주는 책의 최고는 별 넷

새로운 지식 + 인식하는 방법론 자체를 재구성하게 하는 책 에는 별 다섯 (정희진과 푸코가 별다섯인 이유)

읽었고 의미가 있었던 독서 였다면 별 셋 -> 별 셋을 기준으로 더 깔지 더 할지 생각함

새로운 지식을 줬는 데 빻았으면 별 하나씩 깜 (윌 스토)

새로운 지식을 ‘재밌게’ 풀면 별 하나 추가 (유발 하라리) 

같은 맥락에서 정보전달을 아름다운 문체로 하면 더욱 관대해짐(별 하나가 아까울 때가 있어 반개가 필요함ㅋㅋㅋ)

정보가 새롭진 않았지만 분석력, 통찰력이 돋보이거나 설명을 정말 잘했거나. 취재 과정에서 너무 열심히 쓴 노고가 느껴지면 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다.

굳이 상향평준화 되어있는 평점들이 보이면 일부러 별을 낮게 매기는 경우도 있는 것 같긴 하다.. 

좀 싫었던 책은 별하나… (이건 별점 테러용...)



2. 재미


음… 재미는 진짜 주관인데… 내 개그 코드가 기준이며.. 그래서 이 부분 만큼은 기준이 없는 것 처럼 보이기도ㅋㅋㅋㅋ? 일상에서 보통 재밌는 사람은 눈치가 빠른 사람(!)인데, 글로 독자를 웃기는 건 눈치의 문제는 아니라고 봄. 전적으로 지적 설계의 문제임 ㅋㅋㅋ (읭?) 세상에서 글이 재밌는 사람이 제일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번역을 했는데도 재밌어 버리면? 음.. 헤어나올 수 없어지지요. 최근에 에런 라이크 책이 그랬고, 페미니즘 책 읽다보면 풍자와 해학의 고급 개그코드들이 느껴지는 데, 그럴 때 가끔 영어공부를 하고 싶어져… (마음만 그래) 


독서에 습관이 붙으면서, 책과 책의 연결 고리로 아는 게 많아질 수록 웃기고 더 재미도 생겨나는 것 같다. 금며들었다고 표현했는 데… 예전엔 이뭥뮈 했던 금정연 작가가 좀 그랬음. 책 덕후용 유머였어.


웃기겠다고 노력하다가 불편하게 만드는 유머(김영민 교스님ㅋㅋㅠㅠ)를 구사하거나, 책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두세 페이지 안에 너무 많은 유머가 들어가 과유불급이 안타까운(혼비님의 아무튼 술😭이 그랬다.. 웃기려고 너무 애쓰는게 티났어…) 경우도 있다. 이렇듯 저는 글로 웃기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재밌기만 참 재밌고 웃기기만 겁나 웃기다고 생각하던 도중 뼈가 있어 버리면 바로 폴인럽.. (사실 혼비님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가 그랬는 데 ㅠㅠ 아무튼 술에서 ㅠㅠ..무리하셔가지고 ㅋㅋㅋ) 여하튼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 중 독보적인 분으로 손꼽는 에세이스트에 <계간 홀로> 발행자이신 이진송님이 있음. 20대 부터 그녀의 글을 읽어왔으나 생각해보니 제가 애정하는 만큼 그분의 책에 대해 페이퍼를 쓴 적은 없었더라고요? (왜지? 스스로 의아함)


여하튼 그녀의 주옥 같은 책을 살짝 페이퍼에 공유해드리겠습니다. 아래와 같습니다. 언젠가는 묵혀둔 리뷰도 써보겠음다.
















신예로 이주윤님 있다 들었으나 (대놓고 웃기다는 오빠 맞춤법을 아직 읽지 못한 고로) 아직은 판단을 유보. 솔직히 요즘 에세이 시장이 활활 타올라서 내가 발견하지 못한 웃기신 분 진짜 많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소설 계에서는 독보적으로 박상영(나오는 사람들 하는 짓이 웃김..)이 있고, 그 밖에는 소설을 안 읽어서 나 잘 몰라… 앗;;;


참고로 알라딘 마을에 글로 웃기는 분 많다 ㅋㅋㅋㅋ 특히 댓글로.. (여러분 내가 애정해여😚) 이는 이 마을의 지적 능력이 한국의 평균 이상이라고 ㅋㅋㅋㅋㅋ 쓰려고 했는데, 가끔 유튜브 댓글들 보다보면 한국의 지적 총량이 이렇게나 세계적임을… 아 어떡해 쓰다보니 또 쓸데 없는 소리 계속 쓰고 있어…. 


암튼 소설의 별표 기준은 이렇다.


흡입력있는 (페이지터너) 소설 < 생각할 것이 많은 소설

캐릭터가 매력적인 소설 = 구조가 촘촘한 소설

문장이 이쁘고 좋은 소설 < 내 마음 같은 공감이 많은 소설 


힘빼고 그냥 즐겁게 읽는 소설이 많아져야 할텐데… 작가가 소설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뭘까?를 많이 생각하는 편(황정은 작가님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그렇게 읽다 보니 자꼬 힘이 들어가고 읽는데 힘들면 피로해지니까 소설 안읽고… 고치고 싶은 점임.



3. 아름다움


글이 아름다운 책 < 태도가 아름다운 책

 

이 좋지만 점점 문장이 아름다운 게 왜 중요한지 알아가고 있는것도 같다… 아, 이 문장을 만나려고 내가 이 책을 읽었나? 싶을 때도 있고. 이 아름다움 역시 재미만큼 주관적이라서ㅋㅋ 그래도 객관적으로 아름다운 글들도 있다. 한강 작가님 김애란 작가님 아름답고, 신형철 평론가 글도 아름답고, 김혜리, 이슬아… 아, 아름다운 글 너무 많지만… 근래에 읽은 책중에는 김상욱의 <떨림과 울림>이 탁월하게 지적이면서 아름답고 아름다우면서 지적이더라… (물리학이라고는 에프는 엠에이밖에 모르는 문돌이가 과학책에 매료되는건 쉽지 않아요. 하지만 이과가 글까지 잘쓰면 그거 진짜 반칙 아닌가?)  


버뜨!! 문장을 꾸미지 않아도 진실한 통찰이 묻어나는 글에 훨씬 후한 점수를 주는 편이다. 아주 가끔 미문으로 만들어졌는 데 지적이지도 재밌지도 않으면서 하나마나한 착한 소리를 하면 빡이 칠 때도 있다. 어이 당신,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워? 째려보고 싶달까… 그 문장력으로 착할거면 차라리 아름다운 개소리를 해줘. 물론 개소리보다는 하나도 안꾸민 소박한 문장으로 적혔을지라도 하루를 살아가는 데 용기를 주면 그 글, 그 책이 좋다. 그런 의미에서 에세이는 전업 소설가들(에세이 김연수님 만큼 쓸거 아니면 소설가들은 소설을 쓰자.. 물론 에세이 잘쓰시는 분들이 소설 잘쓰는 경우도 거의 없더라... 헛...)보다 직업인(?)이나 엔잡러(!)들의 글이 더은 것 같다. 예를 들자면 허혁님의 <나는 그냥 버스운전사입니다>같은?


태도의 아름다움도 주관적이다. 주관적이기만 한가, 나 자체가 일관성 없어서 자꾸 자꾸 좋아하는 태도들이 변한다. 솔직히 나는 잘 살고 싶다. 그 잘사는 게 어떤 건지는 공부하는 중이고, 그 공부로 책만한 게 없는 것 같아서 열심히 읽는다. 읽고 또 읽으면서 잘 사는 태도를 삶에 적용해보는 것 말고 다른 잘 사는 방법이 있다면, 책 따위 다 불살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세상을 해석하는 이야기가 정말 중요하다. 또 그렇기에 못사는 사람들의 글도 중요하다. 정 반대의 의미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별표를 다는 것이 다 뭔가 싶다가도. 이거 잊지 않고 해보려마하는 사람들이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우리가 같은 이유로 이 공간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서도), 좀 덜 외롭다. 


사실 요즘은 외롭다는 감각에 꽂혔다. 그래서 요즘 내 별표의 기준은 ‘멋지게 외로운 태도’다. 


(+)

정리 및 추후에 덧붙임,

⭐️별하나 별점 테러용 (ㅋㅋㅋ)

⭐️⭐️별둘 굳이 안읽었어도 상관없었을 책

⭐️⭐️⭐️별셋 한번은 꼭 읽어야하는 책

⭐️⭐️⭐️⭐️별넷 재독해도 좋은 책

⭐️⭐️⭐️⭐️⭐️별다섯 (내 기준에)여러번 거듭 읽을 책


나도 몰랐던 나의 기준을 하나 추가하면, 디자인이다 고유의 기능을 잃지 않은 범위 안에서의 가독성을 보장한 아름다움과, 종이 벌크감과 때타는 것과 휴대성과 들었을 때의 그립감을 포함한 ㅋㅋㅋㅋ 여러가지 면을 본다 ㅋㅋ 

그게 많이 충족되면 내용까지 좋게 느껴지더라.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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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6-02 14: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캬 이 페이퍼 참으로 재미납니다?!

그나저나 쟝쟝님 웃겨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06-02 14:19   좋아요 2 | URL
아이 참, 그대 내가 만난 알라딘 서재인 중 다섯 손가락안에 드는 웃긴 사람 ㅋㅋㅋ (이라고 쓰고 천재라고 생각한다)

잠자냥 2021-06-02 14:27   좋아요 2 | URL
사실 왠지 어머 나? 하고 생각하면서 이런 댓글 달았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왠지 다부장님 자뻑 닮아간다....)

공쟝쟝 2021-06-02 14:37   좋아요 2 | URL
큰 엄지 손가락에 다코타 부장님 계신다고 합디다??? 그나저나 이 행간의 맥락을 읽어내는 웃긴 것 아는 잠자냥님... 이제 아시겠죠?? 페이퍼 안에 재밌음의 티키타카를 설계하는 저의 재미력(천재력)을 요?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6-02 15:37   좋아요 2 | URL
다코타 존슨 부장님의 자뻑력이 세상에 널리널리 퍼져야 합니다. 모두모두 자뻑으로 하나되는 세상 만들어가도록 해요.

그럼 이만.

공쟝쟝 2021-06-02 15:48   좋아요 1 | URL
다부장님의 자뻑은 천재력을 구성하는 코어라고 할 수 있죠. 자뻑력을 단련할 수록 재미력이 증가하는 근력형 유머의 세계. 글로 웃기는 사람에게 누가 근육이 없다고했던가.. 커몬커몬 !! 다 오ㅏ랏!!!

난티나무 2021-06-02 15: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 아직 안 썼지만 쓸 지 확실치 않지만 오빠를 위한 맞춤법, 음 저는 글케 웃기지 않더라고요. 내가 어떤 시선으로 글을 읽고 있는지 가끔 헷갈렸어요. ㅎㅎㅎ
떨림과 울림, 그렇단 말이죠? 담아만 두고 살 생각은 안 했는데 흠흠.

공쟝쟝 2021-06-02 15:49   좋아요 1 | URL
야한걸로 웃기면서 피씨하기가 어디 쉽당가요… ㅋㅋㅋ 그 어려운 걸 해내는 사람이 이 알라딘 마을에 있다니까요? 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6-02 1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에 제가 별을 다슷 개! 드립니다.
(웃겨보려고 애 쓰는 거 보이시죠?;;;)

공쟝쟝 2021-06-02 15:51   좋아요 2 | URL
만두님.. 하아, 정말.. 의미와 재미와 아름다움을 두루갖춘 천재님을 쉽게 알아보는 당신은 안목의 천재…🤭??

붕붕툐툐 2021-06-02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지게 외로운 태도 넘 좋네요~ 저도 타인을 웃기는 게 최고의 지식&재능이라는 데에 공감합니다~ 얼마전 읽었던 syo님의 글에서도 소설 읽을 때 작가에게 감정이입하신다 했는데, 공쟝장님도 그러신 거 같아요. 비법 알았어! 글 잘쓰는 사람들은 작가에게 감정 이입을 한다!!ㅎㅎ

공쟝쟝 2021-06-03 14:06   좋아요 1 | URL
잉? 쇼님이랑 저랑 읽는 스타일 다른 편 인데 ㅋㅋㅋ 저는 이 사람 뭔 말하고 싶은 지(서사나 문장 뒤에 숨긴 하고 싶은 말)를 생각하는 데, 쇼님은 스타일까지 두루보시는 것 같더라고요. 특히 어떻게 이렇게 ‘쓸‘수 있지? 이렇게요ㅋㅋ 저는 스타일 잘 안 보고요. 내용 좋으면 형식 신경안쓰고 문체에 관대하며 엉망인 번역도 용서 가능해요 ㅋㅋㅋ 쇼님은 번역에 자비 없으심. (어떻게 이렇게 잘 아냐면 한달 전에 치킨 뜯으면서 만나서 이야기했던 내용)

붕붕툐툐 2021-06-03 14:19   좋아요 1 | URL
앗! 하나 더 추가. 글 잘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읽기 방식을 디테일하게 알고 있다!ㅎㅎㅎㅎㅎ

공쟝쟝 2021-06-03 14:21   좋아요 0 | URL
매번 잘쓴다고 칭찬해주셔서 제가 정말로 잘쓰는 줄 알겠네요? ㅋㅋㅋㅋㅋㅋ 하지만 나는 재밌게 쓰고 싶다!!!!!!!!! (천.재.되.고.싶.다)
 
네가 매일 실패해도 함께 갈게 - 우울증을 이해하고 견디기 위한 엄마와 딸의 혈투
최지숙.김서현 지음 / 끌레마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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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먼 것은 너무 멀어서, 너무 가까운 것은 너무 가까워서 잘 보이지 않는다. 사랑한다면 때로는 멀리 그리고 때로는 가까이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 어떤 엄마를 데려다줘도 내 엄마와는 바꿀 수 없을 만큼 (대다수의 딸이 그러겠지만) 엄마를 사랑한다. 엄마가 되어봐야 엄마의 마음을 안다지만 당분간은 엄마가 될 리 없을 것 같으니, 엄마의 마음이 아닌 딸의 마음이 가질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내가 가진 마음의 용량이 가능한 만큼 사랑한다. 때로는 멀리, 때로는 가까이를 넘나들며 엄마를 잘 보려고 노력한다. 

법이 정하는 성인이 되고도 10년이 지나서야, 엄마를 개성을 지닌 한 사람으로서 공평하고 동등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냥 얻어진 것은 아니었고 정말 많이 노력했다. 엄마는 모르겠지만(아마 알겠지만), 나는 그랬다. 내 마음속에서 엄마와 정말 많이 싸우기를 거진 5년, 지난한 악전고투 끝에 (역시 내 마음속에서) 화해했다. 그리고 엄마를 다시 사귀기 시작했다. 엄마로부터 독립해서 / 엄마와 대등한 존재로서 / 엄마와 다시 사귀는 것 / 은 곧 내 삶을 사는 것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엄마 탓이라고 말하고 싶은 비겁한 욕망과 이별하는 것이었다. 더 거칠게 말하면 엄마한테 사과받기를 포기하는 것이었고, 엄마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을 중단하는 일이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듯이 엄마를 사귀는 중이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궁금히 여긴다. 가깝게 보고 멀리 본다. 장점을 보고 단점을 본다. 공정하게 생각하고 배려한다. 내가 어떻게 보일까? 내 행동을 점검해본다. 안 해본 대화들을 나눠본다. 궁금한 것들을 물어본다. 엄마에게 주목한다.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알아가고 있는 엄마는 참 좋은 사람이다. 엄마가 내 엄마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딱 보편적인 엄마들 만큼의 잔소리(시집가 공격)와 걱정을 놓아서는 안 되는 엄마의 건강 상태까지 포함하더라도 지금의 엄마에 매우 만족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고 점점 더 그래 진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조금 부러워하는 엄마의 모습이 있긴 있다. 그건 책 읽는 엄마다. 조금 더 욕심내면 글 쓰는 엄마. 어릴 때 잠들기 전까지 동화책을 읽어주는 엄마 말고, 책을 읽는 엄마를 본 기억이 없다. 사춘기 시절 공부 잔소리(별로 심하지도 않았다)에 “그러는 엄마는 왜 책 안보냐”고 따졌을 때, 엄마는 “나는 노안이 와버렸어!”로 응수했다. 그 대답이 어찌나 충격이었던지 뇌리에 생생히 박혀서, 이십 대 후반부터 내 쓸데없는 걱정 중 하나는 노안이다.

종종 책 추천을 해주는 모녀 관계를 보면 놀랍다. 아, 모녀 관계에 읽기와 쓰기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 신기하다. 나라고 시도를 안 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엄마는 거부의 제스쳐였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엄마가 책 읽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텔레비전 만이 아닌 다른 노후의 여흥 거리가 있길 바라는 거다. 할 수 있는 것을 해드린다. 시골집에 넷플릭스를 설치해드리고, 유튜브를 알려드린다. 당연히 엄마는 엄마의 방식이 있었다. 유튜브로 다육이를 검색한다. 몸고생을 많이 시키지 않는 식물들을 키우면서 예뻐 죽겠다고 한다. 딸들은 자식을 넷을 키우고도 키울게 남았냐, 그쯤 하면 양육 중독 아니냐고 놀리고 엄마는 중독 맞으니 손주를 내놓아라 한다. (아이고)

***

이 책이 이미 성인인 딸의 우울증에 엄마의 책임이 있었다는 식으로 흐를까봐 내심 걱정했다. 다행히 그렇지도 또 아주 그렇지 않지도 않았다. 깊은 사랑을 가진 - 조력자로서의 자세, 딱 그만큼.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한 이야기. 함께 가기를 포기할 수 없으므로 사랑의 방식을 서로 조율하는 이야기. 후루룩 읽을 수 있는 종류의 에세이는 아니었다. 

읽으면서는 엄마의 마음에 이입을 할 것인지 딸의 마음에 이입할 것인지 입장을 딱히 정하지 못해서 곤란했다. 굳이 정하고 읽을 필요는 없지만 남의 이야기처럼 읽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지. 주되는 글쓴이가 엄마라서 엄마의 마음으로 책을 읽을 때는 속을 몰라주는 것 같은 서현 씨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그러나 

“(P.107) 서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을 겁니다. 피아노 레슨을 받는 아이들이 연주회장을 빌려 작은 음악회를 갖기로 했었지요. 서현이는 선생님과 곡목을 정해 오랫동안 진지하게 연습했습니다. 공연 일주일 전쯤으로 기억하는데요. 중간에 곡목을 한 번 바꿨던 서현이에게 제가 지나가는 말로 “엄마는 원래 치려고 했던 곡이 더 좋더라”라고 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서현이는 공연 당일, 생각보다 넓고 관객이 많던 무대 위에서 오른손으로는 ‘연습했던 곡’을, 왼손으로는 ‘원래 치려 했던 곡’의 반주를 연주했습니다. 선생님이 무대에 올라 저지할 때까지, 본인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말입니다. 나중에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서야 저도 서현이가 연주한 불협화음의 실체를 알았고요.
때로 궁금합니다. 제가 서현이를 양육한 방식과 딸의 우울증에는 얼마만큼의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양쪽의 인과관계가 생각보다 더 촘촘한 듯해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서현이가 먼저 자리를 뜬 놀이터 그네 위에서, 아무리 애써도 답을 낼 길 없는 문제 때문에 저는 조금 많이 울었던 것도 같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나도 울었다) 딸 서현씨의 마음을 너무 알 것 같았다. 한 손으로는 엄마의 곡을 다른 손으로는 내가 쳐야 하는 곡을 연주하는 사랑. 결과적인 불협화음. 아직 자라고 있는 중인 아이의 마음은 저처럼 연약하다. 그런데 우리는, 또 나는 대체 어떻게 저 시절을 거치고 통과해서 나의 곡을 연주하는 진짜 어른이 되게 된 걸까. 진짜 지금 연주하는 곡이 내 곡이긴 한가? 그렇다고 치면, 그러니까 대체 어떻게, 왜, 언제, 나를 나 자신으로 인식하고 나의 삶을 살기로 마음먹는 걸까. 그게 물 흐르듯 저절로 되는 사람들도 있나. 아니 세상이 그게 ‘자연스럽게’ 되도록 구축이 되어있단 말인가? 나만 어려운 것도 아닌 것 같은 데, 왜 다들 능숙하게 연주하는 것 같지? 어떻게, 정말인지 어떻게. 

모두들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깨우치게 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모두들은 깨우치지 못했을 거다). 엄마가 돼봐야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된다고 세상은 쉽게 말하지만, 엄마가 되기 전에 엄마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 이것은 배운 적이 없다. 덧붙여, 엄마 역시 배운 적이 없을 테다. 자식으로부터 벗어나는 일 ― 말이다.

“(P.37) 자신에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너는 딸을 믿고 지지해준 엄마였니?’ 하고 말이지요. 머릿속에 핑곗거리만 가득한 걸 보니, 답은 ‘그렇지 않다’ 인가 봅니다. 애써 감춘 민낯을 들킬까 봐 두려워 선생님 앞에서 그처럼 경직되고 울컥했나 봅니다. 지금 딸이 겪는 고초가 행여 엄마의 모자람 때문은 아닌지, 저는 불현듯 죄인 아닌 죄인이 되고 맙니다.”

딸의 우울증에 엄마의 양육 방식이라는 몫이 차지하는 지분이 얼마일지는 모르겠지만, 기실 주양육자와의 관계 문제가 한 인간의 인격이 만들어지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저자가 느끼는 죄책감이 온당하지 못하다고 느낀다. 그 죄책감의 아주 많은 지분을 적어도 90% 이상의 지분을 사회가 나눠져야 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10프로 미만의 적은 지분 안에서 아빠 역시 엄마와 같은 무게와 농도로 죄책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수치화할 수도 없고, 계산을 할 수 없는 영역임은 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계량하지 않으면, 너무 쉽게 한 사람의 탓(주로 엄마)을 할 수 있게 되어버리는 거다. 그게 너무 답답하고 슬프다. 

하지만 지금의 조건에서 결국 서현 씨가 삶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가장 현실적인 조력에 엄마인 저자의 몫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 사회가 만든 상처(학교폭력, 외모차별, 성차별 등등)의 치유에까지도 엄마의 몫이 있다고 하는 거 진짜 너무 엄마한테 가혹한 거 아닌가 싶다. 보호자에 양육자에 가장에 교사에 보디가드에 치유자에 상담자에 친구까지… 왜 다 엄마가 해야 하는 건지, 심지어 엄마들은 그렇게 자식에게 묶여 있으면서도 자아의탁까지 자식한테 안 하고 선 긋는 것도 저들 알아서 해야 하는 거다. 사회 이딴 식으로 거지같이 구성할 거면 엄마 자격증제 도입해야 한다. 스펙 쌓듯 뭐 몇 점 연수 몇 번 하고 난 뒤에 훌륭해짐 인증받은 다음에 엄마 해야지, 이게 뭐냐고. 왜 엄마들만 못살게 구냐고, 암 것도 모르고 엄마를 사랑하며 자라나는 애들은 또 무슨 잘못이냐고… 

“(P.72) 엄마가 나를 도와준 만큼 잘 자라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하고, 두렵다.
그렇지만, 나는 새벽 2시에 내 방문을 여는 엄마가 싫었다.
내 실패와 성공을 엄마의 것으로 생각하는 그 부적절한 마음이 싫었다.
엄마와 내게 부족한 것은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알맞은 선을 긋는 일이었다.
어디까지가 엄마이고 어디까지가 나인지 모른 채 함께 녹아내리는 대신 우리는 선을 그어야 했다.
서로의 삶을 더 존중하기 위해서.”


견고한 가부장제와 엉망인 사회 속에서 마음속의 단단한 선을 긋는 것. 혹은 내가 치고 싶은 곡과 엄마가 치고 싶은 곡을 정확히 갈라보고 단호하게 내 곡을 쳐가는 것. 당장은 가능한 개인들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고, 말이 쉽지 나는 5년 넘게 걸린 것 같다. 절연을 (혼자) 각오하고 만나지 않은 적도 있었고, 중간에 엄마가 아프시면서 미칠 것 같은 날들도 있었고… 

***

요즘 나는 엄마를 새롭게 사귀는 중이고, 내가 알지 못했던 엄마는 자꾸자꾸 등장한다. 너무 심한 사투리, 구시대적인데도 이상하게 진보적인 데가 있는 엄마의 말들, 일상에서 엄마만의 작은 도전들과 끝없이 바지런하고 자연친화적(?)인 행동들이 매력적이라 동생들과 때 아닌 엄마 덕질(-_-;;)을 하게 되었다. 무릇 덕질이란 함께하면 행복이 열 배 이나니. 차마 하지 못하는 애교와 사랑의 메시지를 담뿍담뿍 보내는 동생들에게 배우기도 한다. 사랑하는 법, 사랑받는 법. 표현하면서 더 많이 행복해지는 법, 등등등. 

“(P.231) 아니, 난, 가끔 옛날이야기하면서 그때 엄마는 왜 그랬는지, 나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물어보고 대답 듣는 거로 괜찮은 거 같은데?” 

지은 지 33년이 되어가는 우리 집은 아빠의 은퇴와 동시에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착수했다. 오늘은 20년 넘게 묵혀있던 묵혀있던 다락을 치웠던 모양이다. 아침에는 엄마에게서 느닷없는 카톡을 받았다. 2000년 여름에 엄마가 쓴 일기였다. 우리 모두는 깜짝 놀랐다. 책을 읽는 엄마도 본 적이 없지만 글을 쓰는 엄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에엥? 엄마가 일기를? 알고 보니 가계부였다. 정말 속상할 때 가계부 뒷장에 쓴 엄마의 일기 두 편. 엄마 팬들은 더 내놓으라고 아우성을 쳤지만 딱 두 편만 있다고 했다. 하나는 나에 대해 엄마가 엄청 화나서 쓴 일기였는데 사실 오해였고, ‘기억난다. 생각해보니, 지금도 그건 좀 억울해!’라고 했더니, 엄마가 ‘큰딸 그래 미안해. 사과할게’라고 해서 나는 아침부터 울었다. 나조차 잊고 있었던 사건에 대해 엄마가 사과할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것도 20년 지나서. 생각해보니까 엄마는 사과를 할 줄 아는 분이셨다. 언제부턴가 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지만, 엄마가 사과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게, 그게 기억나서 울었다.

그리고 두 번째 메모는.... 이거는 그냥 너무 엄마 같아서 올려놓겠습니다. (허락 없이 무단 전재)

“날씨 탓도 있지만 아빠가 너무 힘들어한다. 식구들은 용돈이나 맛있는 음식이나, 어른이든 애들이든 똑같다. 내가 조금이나마 돈벌이를 해야 할 텐데 마음뿐이고 한다고 해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을 것이고 집안 일만 해도 힘들고 피로하기 때문에 선뜻 나서지도 못하고 점심 차리는 것은 헛일 같아 짜증도 난다. 차라리 밖으로 나가 일을 하고픈 심정이다. 가을에는 아빠에게 약이나 좀 해줘야 할 텐데.”




아... 네 명의 자식들 밥보다(자식들은 급식 먹음) 시부모님 밥을 더 많이 차린 우리 엄마.... 
그리고 아빠에 대한 그냥 찐 사랑.... + 가난... (잠깐만요, 코 좀 풀고 올게요...)

근데 울 엄마 글 너무 잘 씀. 놀라버림. 아... 이건 진심으로 몰랐던 엄마다. 대반전. 나는 글 쓰는 엄마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힘들 때마다 일기를 썼던 것은 바로 엄마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렇게 짧은 문장에 페미니즘적 요소가 가득하다니..(기승전페미니즘...)!!

쓰다보니 독후감이라기보다는 최근에 입덕 한 엄마에 대한 글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사실 나는 이 글을 슬퍼서 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어제까지 내가 써보려고 메모해 둔 독후감의 첫 문장이 ‘엄마와 함께 글을 쓰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였기 때문이다. 내게 ‘엄마’와 ‘글’ 이란 둘 다 너무 사랑하는 존재이지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케이크와 함께 먹는 김치만큼의 조화랄까? 엄마가 책을 읽고 글을 썼다면 엄마한테는 좋았겠지만 나한테도 좋았을까? 막 진짜 말도 안되는 이런 글을 쓰게 돼버릴까 봐 쓰기도 전에 벌써 슬퍼서 계속 걱정했는데. 

땡!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거고, 아무리 가까워도 사람을 함부로 안다고 하면 안 되는 거고, 나에게 읽고 쓰는 게 중요하다고 엄마한테도 중요 할리 없으며, 엄마를 생각하면 슬펐던 감정은 조금 습관성 슬픔인 것.... 물론 찡하고 짠함은 있긴 한 데, 결론만 놓고 보면 울 엄마 아빠 요즘 가장 행복하신 듯. 꿈꾸면서도 웃으시더라?? 그럼요, 나도 행복하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지금 당장 많이 함께 행복해하는 걸로. 일상의 소소한 이벤트를 꾸려가면서 친하게 지내는 걸로. 우리들은 그걸 누릴 자격이 있고, 그래도 된다. 아무튼, 자매들 카톡방에서 맨날 하는 말인데.. 꽃길만 걷자. 울 엄마 짱임. 엄마 짱! 그리고 역시 케이크엔 김치죠. 

“(P.194) 서로를 아끼고 지지하고 사랑하는 데는 여러 갈래 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 느슨한 듯, 너무 멀지 않은 거리가 우리 가족에게 어울리는 ‘사랑의 모양’이라 생각했습니다.”

너무도 지당하신 말씀. 지숙씨와 서현씨도 고유한 사랑의 모양을 잘 찾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한다.


덧, 마지막 사진은 버섯처럼 솟아난(?) 산책 중인 엄마를 파파라치함 (요즘엔 이런 용어 안쓰나?)ㅋㅋ 덕질은 역시 엄마 덕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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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1-06-02 09:3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태그 보고 깜놀했습니다. 덕질은 역시 시엄마 덕질로 읽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추천하신 책은 눈물바람 너무 불 거 같아서 차마 읽을 생각은 하지 못하고 패스하겠습니다.

공쟝쟝 2021-06-02 09:36   좋아요 4 | URL
시엄마덕질…… 은 어나더레베루의 사랑이네요. 가부장제철폐 먼저 하고 가실께요…ㅋㅋㅋ

바람돌이 2021-06-02 11:0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딸과 엄마의 애증관계, 공쟝쟝님 글 읽으면서 제 엄마 생각을 많이 하게되네요.
제가 나이가 들면서 엄마를 대하는 저의 태도, 생각 이런 것들이 계속 바뀌어가는걸 많이 느끼는데 당연한거겠죠. 그래도 엄마 덕질하는 공쟝쟝님 귀여우세요. 저도 요즘 약간 저희 엄마를 방치했는데 오늘은 덕질하러 가볼까나 싶습니다. ㅎㅎ

공쟝쟝 2021-06-02 11:23   좋아요 5 | URL
엄마 덕질의 팁을 알려드릴게요. “엄마 귀여워”를 연발한다. 내 엄마 최고! 를 시시때때로 외친다. 유튜브에서 주접댓글을 공부한뒤 엄마와의 카톡에 적용한다. 계속 사진을 찍으면서 엄마를 주인공으로 만들어드린다, 가능한 현질(?)을 아끼지 않는다…!! ㅋㅋㅋ
아무래도 덕질 자체를 좀 더 배워야할까 봅니다 ^^;;

단발머리 2021-06-02 13: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인용하신 72쪽의 세번째 문장..... 제가 6-7년 전에 알라딘에 썼던 문장과 거의 같아요. 제가 그런 심정이었고요. 지금도 그래요. 제 딸이 이런 문장을 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노력하고 또 노력하거든요. 그게 그 애를 자유롭게 해준다고 믿어요.
엄마로부터 무한의 사랑을 받은 내가, 딸애에게 무한의 사랑을 주지 않고, 주지 않겠다 결심했거든요. 딸이며 엄마인 내 마음이 이리저리 휘몰아칠 때마다 쟝쟝님의 이 글을 읽어야겠어요. 오늘 글 오래오래..... 너무 고마워요.

엄마 닮았네요, 쟝쟝님! 어머님 무단 전재 일기가 아주 찡해요. 엄마 닮았어요. 훌륭한 사람이 될거에요. 확신합니다!!!

공쟝쟝 2021-06-03 14:14   좋아요 1 | URL
통상 ‘무한한 애정‘으로 유포되어버리는 ‘유한한 자원‘인 엄마의 사랑을 사회와 개인이 의심없이 받아들이게 되면 정말 ‘부적절‘해지는 것 같아요. 그 부적절 때문에 괴로웠던 당사자로서...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까지 알아오기까지...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요.. 그것도 운이 좋았던 거지.. 여튼 그래서 저는 그게 개인보다 사회의 몫이 엄청 크다고 생각하고요, 당장 사회구조 바꾸기 힘드니 그래서 반대로 개인들이 끊임없이 말하고 행동해야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지금은 개인들이 많이 말할 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6년전에 하신 옳은 결심을, 그리고 하고 있는 많은 노력들을 우리 부족하더라도 많이 써나갔으면 좋겠고.. 또 이 부족들을 써 두면, 후대의 누군가는 부족들을 수정해주지 않을까. (그것이 훗날의 나라도)
단발님의 마음이 휘몰아칠 때마다 이 글 읽으시면서 꼭 힘내세요!! 제가 언제나 말씀드리지만 저의 페미니즘은 비혼주의자만큼 페미니스트 양육자를 소중해 한답니다.

엄마 닮았죠? 제가 훌륭해진다면 팔할이 엄마 닮아서예요. (2할은 내가 잘나서)ㅋㅋㅋ

2021-06-02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03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21-06-02 2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어머님이 글도 잘 쓰시고 글씨도 잘 쓰시네요. 엄마 덕질은 왠지 남는 장사일 거 같아요! 딸이 덕질해 주면 어머니가 너무 기뻐하실 듯!!(무뚝뚝한 딸이라 미안해, 엄마~)

공쟝쟝 2021-06-03 14:20   좋아요 1 | URL
시상 제일 남는 장사지요. 저도 엄청 무뚝뚝한 딸 인걸요? 저도 직접적 애교와 표현은 서툴러서.. 아쉬운대로 귀여운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표현하곤 합니다... 헛...... 엄마 때문에 산 잔망루피와 텔레토비...

scott 2021-07-07 16: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장쟝님 이달의 당선 축!카!

7월 행복, 행복!!

새파랑 2021-07-07 16:33   좋아요 2 | URL
엄마덕질 공쟝쟝님 축하드려요~!!😄👍

공쟝쟝 2021-07-07 16:53   좋아요 2 | URL
스콧님 어케 아신거예요?ㅋㅋㅋ 신기해 ㅋㅋ 새파랑님도 축하드려요!

서니데이 2021-07-07 16: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공쟝쟝 2021-07-07 16:53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더위조심 하세용~~~

초딩 2021-07-08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관왕 축하드립니다!

이하라 2021-07-08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메리, 마리아, 마틸다 한국문화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775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메리 셸리 지음, 이나경 옮김 / 한국문화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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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리>

메리가 사랑한 사람들이 다 죽은 게 아니라, 메리는 죽을 사람들에게만 사랑을 느낀 것이다. 오늘날의 임상심리학 도움을 받았더라면 그녀의 죽음까지는 막을 수 있었을 것 같은 데. 아, 딱한 메리. 그렇지만 병약 (중요 💫별표)소년 스타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녀가 “(p.15) 동정심의 노예”라는 사실에 일단 호감을 느꼈고(허영심의 노예, 성욕의 노예, 이기심의 노예 보단 낫지 않아요? 호호)… 동정심이 일면 상냥해지는 그녀의 모습에 뜨끔해지고 말았는 데(낫고 말고가 어딨냐. 노예 안 하면 되지. -_-;;) ….

“(p.18) 그러다 메리는 앤이 아프거나 불행한 탓이라고 생각했고, 그러면 상냥한 마음이 물밀듯 쏟아져 들어와 마음을 채우는 바람에 온갖 상념은 밀려났다. 이런 식으로 어머니의 질병과 친구의 불행, 자신의 불안으로 인해, 메리의 감수성은 자극을 받았고, 또한 발휘되었다.”

가족안에서 돕는 역할이 기대되는 방식으로 양육되고, 또 사회 전체가 ‘미덕’이라는 명분으로 칭송하며 그 모습을 강요한다면. 그가 아무리 독립적이고 사색적인 성향을 타고났다 한들, 어쩌면 그 독립성과 사색이 바탕이되어 되려 더 지독하게 헌신하는 형태로 ‘자아 실현’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메리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와 유사한 형질의 마음을 앓아본 적 있는 나는 책을 읽다 말고 그런 생각을 했고, 노트에는 이런 문장을 적어 놓았다.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 나는 무가치한 사람이 되는가?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에 대한 생각 해보기’

만약에 방탄소년단 말대로 ‘선한 영향력’이라는 게 있다면은 그것은 ‘영향력 없음’에 가까울 걸?이라는 주장까지하게 된 내가 오랫동안 포기하지 못했던 것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다. 항상 필요하다는 요청 앞에서 모질지 못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 조직에 헌신하길 기꺼워했다. 내가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는게 참 헤펐다. 

필요한 사람 혹은 도움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의 이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무력감? 영향력? 뭐 이 정도까지 사색을 진전시켜보다가 이내 그만두고 만다. 이 문제는 내 마음 안에서 어느 정도 해결된 것 같다. 그러니까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된 나 자신에게 더는 무가치함을 느끼지 않는다. 아, 나는 한 뼘 자라난 것 같다. 뿌듯해. 흐흐.

“(p.49) 여인들은 메리처럼 지각 있는 사람이 그렇게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했고,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는 둥, 시시한 말로 평범한 위로를 시작했지만 메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메리는 손을 내저으며, 견딜 수 없다는 듯 외쳤다. “앤이 없으면 살 수 없어요! 제게는 다른 친구가 없어요. 앤을 잃는다면, 제게 세상은 사막과도 같을 거예요.” “친구가 없다니.” 모두 함께 되물었다. “남편이 있잖아요?” 

이 부분은 페미니즘의 대모 울스턴크래프트 님의 블랙 코미디적 연출이 돋보여서 가져와봄. ㅋㅋㅋ

“(p.65) 사랑할 사람을 갖는 것에 익숙한 메리는 애정을 쏟을 상대에게 마음을 주지 못하면 외로웠고, 위로받을 수 없었다.”

아. 그러게 말이다. 왜 우리는 사랑할 사람을 갖는 것에 익숙한 걸까. 왜 우리는 애정을 쏟을 대상을 필요로 하나. 인간은 정말로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가. 메리야 말로 자신의 넘치는 애정을 쏟기 위해, 대상들을 이용한 것이 아닐까. 메리의 상냥한 동점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죽어야만(?) 하는 그들은 어쩌란 말인가. 

예전에 가까운 지인들에게 종종 (임시적) 탈연애를 권하곤 했었는 데, 쉬지 않고 애정을 쏟을 대상들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에게 차라리 덕질을 하라고 권했다. 눈을 떠!! 그건 사랑이 아니라, 사랑할 사람이 필요한 너의 환상이야!!!! 제발!!!! 그 지인들은 연애도 하고 덕질까지 함께 했다. (뭐랄까.. 어떤 의미로는 굉장히 현명하다!!!) 쓰다보니 결혼해서 잘들 사는 지 모르겠넴ㅋㅋㅋㅋㅋ 

덕질도 사흘 이상은 하지 못하는 저는 애정을 쏟는 대신 애정의 조건에 대해 분석해 봅니다. 아아, 그저께 읽은 책에서 이런 문장이 나오더라고요?

“(p.156) 연애 감정도 결국에는 어느 정도 구성되는 것이다. 사랑은 특정 조건이 갖춰지면 발동되는 ‘부호화된 감상’ 일 수 있다. 문화는 감정 경험을 조직화하고 해석하는 틀이다. 우리 사회의 높은 연애 농도는 어떤 관계든 조금만 친밀하거나 만남이 잦으면 금방 로맨틱하게 버무려버린다. - 이진송,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아무튼, 그러므로.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라는 노희경 시인의 시는 부분적으로만 옳다.
당신의 남는 사랑력에 대상들을 이용하지 말지어다.

그리고 울스턴 크래프트는 알고 있다.

“(p.99) 그때까지도 메리는 체념하는 법을 익히지 못했다. 헛된 희망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2. <마리아>

“(p.127) 여성이 겪는 고난은 억압받는 인류의 고난과 마찬가지로 억압하는 이들이 필요하다고 여긴 것일 수도 있다.”

라는 멋진 서문으로 시작하는 소설 <마리아>는 등장하는 모든 여성인물들의 고난이 너무 켜켜해…. 숨 막혔다. 아이쒸, 진짜 18세기 여자의 일생… 소설로 읽으니 더 처참했다. 당연히 마리아 보다는 제미마의 이야기를 유심히 읽었고, 종종 계급 문제를 등한시 했다고 비판받는 울스턴크래프트는 깊게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p.185-6) 
“어떻게 자유를, 그리고 윤리 향상을 옹호한다고 하면서 작가들이 가난이 악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어요.”
마리아가 껴들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그 사람들은 가난의 독특한 행복에 관해 설명하기도 하잖아요. 그 행복이라고 해봐야 사람이 양식도 제대로 벌 수 없다면, 그저 동물처럼 아무것도 안하는 것 이외에 무엇이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정신은 작은 방에 갇힐 수밖에 없겠죠. 그리고 그 방을 지키는 데 정신이 팔려서 밖으로 나다니며 향상을 추구할 시간도 없고요. 날마다. 힘겨운 노동을 하지 않으면 죽는 사람들에게, 지식을 주는 책은 닫혀있어요. 그리고 사색이나 정보에 자극받는 호기심은 썩고 있는 무지의 호수에서는 움직이는 일이 드물어요.
제미마가 대답했다. “제가 지켜본 바로는 가난한 이들은 우연히 생겨난 편견에 고집스럽게 집착해 더 나아질 수가 없어요. 그들은 어느 정도 사고하거나 반성할 시간이 없어요. 모든 방면에서 충족감을 주는 유일한 근거가 되는 행동의 원칙을 세울 만큼 정신을 단련시키지도 못하고요.””

2021년의 대한민국. 가장 페미니즘이 필요한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이 파고들지 못하는 이유일 수도 있고. 요즘 나의 페미니즘 공부가 주춤한 이유이기도 하다. 자꾸 어딘가 갸웃거리게 되는 지점들에는 분명 계급의 문제가 있다. 
나를 다른 이들의 자리에 세워보려는 생각. 그 생각을 해볼 수 있는 마음의 여력, 시간, 결국 돈, 그러니까 자유.

“(p.220) 사실 우리가 사귄 첫해 동안에 조지는 내 마음에 조금도 들지 않았어. 하지만 그는 종종 나와 의견이 같았고, 내 감정과 같은 감정을 가졌지. 그리고 달리 애정을 가질 상대가 없었으니 나는 숙부의 제안을 기쁘게 들었단다. 하지만 연인을 얻기보다는 자유를 얻을 생각이었지. 겉으로는 내 행복을 간절히 바라는 척, 조지가 내게 당시의 괴로운 상황에서 벗어나라고 재촉했을 때, 내 가슴은 감사로 벅차올랐단다. ”

자유를 얻기 위해 선택하는 게 결혼이라니…. 근데 페미니즘을 알기 전에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고요? 지금도 많이 그렇게들 생각하지 않나요? 솔직히 원가족 보다 나은 가족을 만들게 되면 조금은 더 자유로워지는 것도 사실이고. 그러나 그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는 살아봐야 안다는 점에서 어쨌든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결혼’이라는 거대한 가부장제의 사기극을 울스턴 머모님께서 무려 1788년에 소설로 써서 낱낱이 이미 밝혀놓으셨던 것입니다.

그녀가 얼마나 결혼을 싫어했는지는 소설 <메리>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는 데, “(p.121) 메리는 장가도 시집도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ㅋㅋㅋ 앍ㅋㅋㅋㅋ 주인공이 죽으면서 마지막 대사가 천국엔 결혼이 없다고 하는게 실화냐고 ㅋㅋㅋ

읽기에 좀 더 즐거운 번역을 가져와 본다.

“(p.40) 두 번째 저작인 소설 「메리(Mary, A Fiction,1788)는 자전적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고드윈의 평가처럼 사건은 별로 없으며, 폭력적인 아버지와 약한 어머니에게서 보살핌을 받지 못한 딸이 강한 여성으로 성장하면서 절친한 친구와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울스턴크래프트의 성장기 가정환경과 파니 블러드와의 관계가 소설이라는 형식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여주인공 메리는 친구 앤이 죽은 다음 결혼을 하기는 하지만, 결국 자신도 약해져 가는 건강상태 속에서 “결혼하는 일도 없고 결혼당하는 일도 없는 별세계”(that world where there is neither marrying, nor giving in marriage)로 가게 되리라고 예상한다. 이 우울한 서술 속에는 당시의 결혼제도에 대한 울스턴크래프트의 회의적인 태도가 드러나 있다” -한정숙, 여성주의 고전을 읽다


3. <마틸다>

읽기 전에 <프랑켄슈타인>을 읽은 감동이 아직 덜 빠져서 기대했는 데, 재미없었다. 음… 메리 셸리가 도전적인 천재 작가라는 건 잘 알겠다. 아… 뭐랄까 급진적인데 안 급진적이야…ㅋㅋㅋ 작가님 무슨 말하고 싶으셨을까요? 제가 그 뜻을 아직 헤아리지 못하겠나이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의 짬바가 느껴지는 이 아름다운 문단은 적어 놓도록 할게요.

“(p.393) 나는 나 자신에게, 후회와 사라진 희망만을 영영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고독한 존재에게 몰입했다.
내 삶은 할 일도 없고, 쓸모도 없는 삶이었다. 그랬다. 하지만 폭풍이 지나간 뒤 쓰러진 백합은 일어나서 전처럼 꽃을 피운다고는 말하지 말라. 내 심장은 죽음의 상처로부터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와 다르게 살 수는 없었다. 종종 겉보기에는 고요했지만, 절망과 우울이 찾아왔다. 그 어떤 것도 흩어놓거나 극복할 수 없는 어둠이었다. 삶이 싫었고, 아름다움에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발작적으로 나를 거의 소멸하곤 했다. 아무리 평온 한때라도, 단 한순간도 죽음을 달라고 기도하기를 멈춘 적이 없었다. 무로 기꺼이 변화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마틸다여, 본인 소유의 오두막도 있고 도망친 그곳에서 마저 하녀가 있어서 그래요… 
하녀 없었으면 할 일 많았을 걸요? (뾰족하게 튀어나오는 비뚤어진 마음…ㅋㅋㅋ)

책 읽고, 알라디너가 추천해주신 ‘메리 셸리-프랑켄슈타인의 탄생’ 영화도 봤다.
영화는 책으로 읽게 된 메리 셸리에 대한 정보… 딱 그 정도? 그저 그랬다.


***

아휴. 5월의 도서를 끝냈다! 6월의 도서를 읽기 전에 독후감 써서 다행이다..
사실, 3월 4월 책들이 훨씬 재밌었는 데… 역시 글은 너무 잘 쓰고 싶어 하면 못쓴다.
앞으로도 막쓰자…;;;;; 응? 일단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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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5-31 14: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고 며칠은 끙끙대야 써지는데 일단 쓰자 하고 써도 나중에 다 고치게 되요.^^;;

이 책 리뷰가 계속 올라오는데 언제 읽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공쟝쟝 2021-05-31 18:52   좋아요 3 | URL
전 읽고 독후활동을 꼭 하자라고 마음은 먹는데, 다음책 빨리 읽고 싶어져서 ㅠㅠㅠ 미루다가.. 하하하하하… 메모는 많이 하는 데, 쓰는 양은 항상 처참… ㅋㅋ 하지만 다음달엔 다시 태어날거야!

다락방 2021-05-31 14:4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ㅋㅋ 마틸다 읽고 저도 그생각했어요. 뭐여..세상하고 등져도 하녀 있고 돈 걱정 없고.. 라고요 ㅋㅋㅋㅋㅋ

5월 책 완독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이렇게 리뷰 적느라 또 고생하셨고요. 우리 6월달에는 재미진 책으로(제발) 만나요! 그래서 열심히 열심히 쓰도록 합시다. 여성주의 책읽기 만세, 만세!!

공쟝쟝 2021-05-31 18:54   좋아요 3 | URL
ㅋㅋ 앍ㅋㅋ ㅋㅋㅋ ㅋㅋㅋㅋㅋ 그쵸 ㅋㅋㅋ 하녀?? 읭??? 역시 ㅋㅋ 우리들의 킬링포인트ㅋㅋㅋㅋ
6월의 책아 기다려라!!!! 난 6월에 새롭게 태어난다!!

미미 2021-05-31 14: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틸다>요기조기에서 <프랑켄슈타인>의 느낌을 감지하고 신기했어요! 이것도 가수들의 ‘지문‘같은 작가만의 색깔인지 동일 작가란걸 몰랐어도 느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기‘라도 내 색깔좀 갖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됨요. 다음달도 파이팅입니다~^^♡

공쟝쟝 2021-05-31 18:57   좋아요 4 | URL
일기라도 내 색깔 갖고 싶다!는 말 공감이요. 저만 쓸 수 있는 독후감 쓰려다가 언제나 못쓰고 말아버리지만…. 일단 쓰는 것 부터 해보아요!! 🥳 힘내자 힘 🥳

붕붕툐툐 2021-05-31 2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왕~ 완독 축하드려요! 그냥 막 써도 잘쓰실 거면서~😉
6월엔 진짜 나로 다시 태어나기!ㅎㅎ

공쟝쟝 2021-06-01 08:38   좋아요 0 | URL
태어났다!!!!

난티나무 2021-06-02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는 동안 많이 삐딱했었습니다.ㅎㅎㅎ

공쟝쟝 2021-06-03 14:25   좋아요 0 | URL
그런다니깐요 ㅋㅋㅋㅋ 내 밥그릇 내가 치우는게 페미니즘인데.. 하녀라니.. 하녀라니...
전 돈벌기 힘들고 육아 힘들어서 베이비시터 가사도우미 도움받는 것 찬성하는 데...
그래도... 할일이 없다니..없다니.. 할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 없을 수 있지.. 없.... 그치만.... 암튼 마틸다 좀 그랬어...
해설 읽으면서 그럴 수도? 그랬지만 별로였...

공쟝쟝 2021-06-03 14:27   좋아요 0 | URL
라고 쓰면서 갑자기 든 생각인 데, 현재시점에서 놓고보면 ‘마틸다‘가 일종의 우울증이나 기분전환장애를 앓고 있었다고 치면 또 하녀나 조력자의 도움을 받는 것도 퍼뜩 이해가 되네요 ^^? 하아.. 정말 저란 사람.. 여자에게 무한히 관대한 매력적인 사람 ㅋㅋ

난티나무 2021-06-03 14:46   좋아요 1 | URL
돈 안 벌어도 되고 육아도 안 하는 여자가 가사도우미 쓰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순수한 질문임...^^
아 그래서 저 이 책 알라딘서 인쇄불량 반품 받아준대서 그냥 반품할까 교환할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중입니다. ㅎㅎㅎ
공쟝쟝님 = 매력적인 사람!!! 완전 !!!!

공쟝쟝 2022-03-12 01:52   좋아요 0 | URL
여성 가사도우미에게 월급 500주면 쌉 가능! 더 비싸게 주면 쌉쌉 가능! 내가 그 집 가서 일함.

공쟝쟝 2021-06-03 15:04   좋아요 0 | URL
일단 돌봄노동이랑 가사노동 등에 대한 가치가 너무 평가 절하되어있는 것도 문제예여. 뭐랄까 가치 재평가해서 돈이 확 올라가면... 평균임금보다 많이요! 가사노동, 남자 주부, 남자 베이비시터 많이 생겨날거라고 생각해요. 부작용? 생각 안해요 ㅋㅋ 일단 도입해보고 ㅋㅋ

난티나무 2021-06-03 16:46   좋아요 0 | URL
도입되면 정말 좋겠습니다!!!!!! ‘내가 그 집 가서 일함‘ ㅋㅋㅋㅋ
 
시와 산책 말들의 흐름 4
한정원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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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내 모습을 과거의 나들은 단 한 번도 그려보지 않았다는 게 인생이 드러내 보이는 진실일지도 모르겠다고.

‘산책’을 백수 루틴에 집어넣은 것은 5월부터이다. 매일 하기로 마음먹었던 달리기를 무릎이 견뎌내지 못해 처방한 임시방편이다. 얼마 전 읽은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책을 읽으며 걸어본다. 걸어 다니면서 책 읽기란 중학교 때 딱 한 번 해보고 말았던 일이다. 


실은 책이 아니라 만화책이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띵작 몬스터. 다음 장면이 너무 궁금해 미치겠어서 만화방에서 공수해오자 마자 펼쳐 읽으면서 집까지 걸어왔던 기억. 계절이 이즈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책장이 쏟아지는 햇빛을 반사하는 덕에 다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눈 앞에 잔상이 생겼다.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페이지를 넘겨 읽다가 그늘진 집에 들어오니 맙소사 눈앞이 캄캄해지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꽤 오래 시력이 돌아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설마? 나 이대로 앞이 안 보이는 거??? 걱정보다는 만화 속 닥터 덴마의 현재 상황이 어떤지를 더 걱정했던 흑빛역사가 있다. 


그날 쨍한 햇살 아래에서 책 읽는 행위란 자칫 눈을 멀게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은 후 걸으면서 종이에 쓰인 무언가를 읽어본 적은 없다. 그 흔한 수첩에 영단어 써서 외우기조차도 ㅋㅋㅋ (이건 그냥 공부를 안 한 거 아닐까?)

“(P.11) 나는 홀린 듯 집을 나선다.”

문장에 눈이 멈췄다. 산책하면서 핸드폰 보기보다는 산책하면서 책 읽기도 괜찮을 것 같은데? 홀린 듯 책을 챙겨 산책 독서를 도전해보기로 했다. 재밌어 중간에 못 끊어 눈이 멀면 안 되니까 소설 대신 에세이를, 읽다가 넘어질 수 있으므로 고르고 평평한 땅바닥이 있는 산책 코스를, 너무 밝거나 어둡지 않은 적당한 조도의 햇빛이 드는 시간대를 찾았고, 주목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이 없는 한적한 장소가 보이자 책을 펼쳤다. 


짧지 않은 인생에 책을 읽으면서 걷는 경험은 단 두 번. 공교롭게도 두 번의 독서에 간택받은 책 모두 훌륭한 책들이었다. 몬스터야 내가 말 안 해도 누구나 다 알 것이고, 이 책 ‘시와 산책’은 아아- 이 연사 큰소리로 외칩니다! 여러분. 읽으세요. 읽어주세요. 제발 흑흑. 저 아껴가며 읽었는 데, 최소 다섯 번 코끝 찡해짐. 오늘 영업 독후감 쓰려고 다시 읽다가 같은 대목에서 계속 더 찡해지기만 함.


“(P.18) 말도 사람도 진작에 사라졌지만, 그들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소리가 남은 것. 눈을 감고 그 장면을 상상하면 울컥할 만큼 좋았다. 누군가는 실없는 이야기로 치부할 테지만, 나는 삶에 환상의 몫이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대면하려는 삶에서도 내밀한 상상을 간직하는 일은 필요하다. 상상은 도망이 아니라, 믿음을 넓히는 일이다.”

꽁꽁 언 강을 배경으로 한 시인이 눈을 감고 생각하다 이내 울컥해하는 장면을 나 역시 눈 감고 상상해 보다가 함께 울컥한다. 삶에 환상의 몫이 있을까. 있었으면 싶지만, 그건 고스란한 문장으로 읽기에 예쁜 말. 누군가의 삶에는 켜켜이 들어차 있기를 바라지만 나 자신의 삶에는 허용하기 어려웠던 어떤 것. 소설 읽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내게 공상은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며, 환상은 퍼뜩 내 나이를 떠올리게 되는 쑥스러운 일이라고 내심 그렇게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기본소득과 관련한 책을 읽다가 ‘백일몽(데이드림)’을 검색한 적이 있다. 어릴 때 하는 공상 정도로만 생각했었는 데, 책에서 나오는 백일몽은 좀 더 심각(?)했고, 더 찾아 읽어보니 꽤 보편적인 현상 같았다. 정말로 백일몽을 꾸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지🤔 신기했다. 사실 그 무렵엔 백일몽은커녕 꿈속에서도 일을 했다. 나는 보통 현실의 연장선인 꿈을 꾼다. 일이 잘 안 풀려 스트레스받고 있으면 더 그렇다. 나도 그러기 싫은데 꿈을 내 맘대로 꿀 수는 없으니까 어쨌든. 퍽퍽한 현실을 꿈속에서 마저 살고 있는 나에게 백일몽이란 사전을 뒤져가며 찾아야 할 만큼 ‘없는 현상’이었다. 


공상, 환상, 상상이라니. 인생에 그런 게 끼어들 틈이 있다고? 문제-해결-문제-해결-문제-해결.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꽤 오랫동안.

조금 더 써볼까. 상담 선생님이 의식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 보길 주문했던 적이 있다. 그때의 감정이 본인의 베이스 감정인 경우가 많다고. 먼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고, 그 순간에도 해야 할 일을 계속 생각했고,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의 내가 너무 불안했다. 아, 이게 바로 나구나. 선생님 아무것도 안 할 때 저는 아무것도 안 하기를 끝내고 난 후에 할 일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고 보면 상담 샘이 이런 말도 몇 번 했다. “상담 모범생이세요. 숙제처럼 자기 분석을 해오시네요.” 그때는 칭찬이라고 생각했는 데, 좀 더 편하게 와도 된다는 의미였을까나. 


한참 요가 수련에 열심일 때, 맨 마지막 사바아사나 타임 대부분은 돌아가서 할 일들을 생각하며 괴로워했다. 으으, 사바아사나를 해야 하는 데, 또 할 일을 생각하고 있네, 나여 어서 사바아사나를 하란 말이다!! 하지만 집에 가는 길에는 어디를 들러서 뭘 사 가지고… (최소한의 동선을 위한 두뇌 풀가동🤯)… 그런 내가 좀 징그럽고 싫었으나 달리 방도는 없었다.

지금의 ―실업급여 수급 중인 백수 상태로 ‘넘치는 시간과 오롯이 혼자로 지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환경 속에서의― 나는 조금 달라진 것 같다. 백수 초반에 일(혹은 먹고 살)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엄청나게 불안이 몰려오고 안절부절못했다. 어차피 죽을 때까지 불안하게 살 텐데, 딱 백일만 참고 불안해하지 말아 보자!! 일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한 달을 수련(?)했고 두 달이 지나자 겨우 적응이 되었다. 


불안은 습관이다. 재밌는 사실은 불안이 조절되는 것과 동시에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다는 거다. (그 밖의 몇 가지 요인도 더 있지만) 주로 불안할 때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는 것과 엄청나게 불안한 상황에서 처음 담배를 시작했다는 사실도 이제 와서 깨닫는다. (유레카! 담배를 끊는 게 아니라 담배를 떠올리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한 거였어….)

“백수가 되면 좋은 점도 있어요. 평소라면 사는 게 바빠 생각 안 해본 것들을 곰곰이 따져서 생각해 볼 수도 있으니까. 이때다 하고 생각 안 해본 것들 생각해봐요”라고 백수 만렙 친구가 일러 주었다. 역시 베테랑은 달라!! 바로 적용해보겠습니다요. 나 자신에게 솔직하게 물어보는 것은 훈련이 되어있는 편이다. 어떤 질문들은 언젠가는 던져보려 아껴만 놓았었다. 이 때다 하고 의식적으로 미뤄왔던 어려운 질문들을 던진다. 아주아주 심각하게. 


보통은 제대로 느껴볼 새가 없었던 감정들이다. 아, 내가 당했던 그것은 기만이었어.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경멸이었던 걸까. 수치감을 느낄 때 내 얼굴 근육은 이렇게 반응하는구나. 그런데 아, 안돼. 아직은 아픈 것 같아. 생각이 자꾸 후회와 자책으로 흐를 때면 뇌과학 책을 읽는다. 뇌의 상승곡선을 부여잡아야 해… 산책을 나가자… 햇빛을 쬐자… 세로토닌이여….

그리고 공상. 


해야 할 일을 부러 다 없애버리고, 읽어야 할 책도 저리 밀어둬 버리고, 공기처럼 호흡하던 불안과 걱정들을 꾹꾹 눌러 잠가버린 나의 하염없는 시간들 틈으로 생소한 외로움이 그리고 공상이 들어찬다. 가만 생소하다고 썼나? 이 외로움은 대학교 2학년 때, 이 공상의 시간은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각각 겪어본 적이 있었다(는 것을 부러 기억해낼 수도 있을 만큼 시간이 많다). 어쩌면 그리웠을지도. 나에게도 드디어, 드디어 공상의 시기가 찾아왔는 데(백수생활 80일 만에 이룬 쾌거)!! 맙소사 공상하는 나를 부끄러워하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세상에.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고, 그 나들은 너무 피곤한 유형의 타입이라 별로군😰(절레절레)….

 

“삶에 환상의 몫이 있다”는 말이 “상상은 믿음을 넓히는 일”이라는 문장이 때맞춰 정확히 제 시각에 당도했다. 행운이다. (초등학교 2학년 이후로 공상을 하지는 않았다는 인식 뒤에는 그 이후로는 어른스러워지려 애썼던 내가 있는 것도 같다. 이런저런 공상들로 자주 넘어지고 길을 잃던 시절의 내가 좀 더 길었다면 좋았을 텐데.) 오랜 기간 할당하지 않은 그 몫을 할당하면, 현실에 도움되지 않는다며 내쳐온 상상들이 앞으로의 나를 지탱할 믿음으로 바뀌기도 하는 걸까. 그때는 조금 덜 불안하고, 덜 피곤한, 성마르지 않은, 느긋하고 풍부한 사람이 될 수 있으려나.

“(P.55-56) 나와 아저씨들은 끝까지 서로의 신상에 관해서는 몰랐지만, 아랑곳 않고 곁을 내주었다. 집 앞 담벼락과 트럭 밑처럼, 거기 둥근 밥그릇처럼, 질박한 공간을 당당히 차지하도록 허락했다. 우리는 구석에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구석의 목소리는 곧 꺼질 불씨처럼 위태로워서, 구석끼리 자꾸 말을 시켜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연민이 아니라,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 바치는 아부가 아니라, 나에게도 있고 타인에게도 있는 외로움을 가능성을 보살피려는 마음이 있어 우리는 작은 원을 그렸다. (...) 그러니 성별도 세대도 달랐지만, 소극적으로 사귀었고 말없이 헤어졌지만, 나는 이것이 우정이 아니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아무 일 없이 혼자 보내는 하루는 상상력 없는 인간에게 공상의 시간을 열어줄 만큼 길고, 비로소 혼자가 된 이의 공상의 주제는 대체로 ‘혼자’ 일 때가 많다. 넉넉하지 않은 채로 혼자 늙어갈지라도 이런 식의 곁을 내어줄 수 있다면 근사한 삶이야, 나는 찬성🙋🏻‍♀️!! 마음이 조금 긍정적으로 되었다.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거나, 인생을 계획하고 살아가는 타입은 아니지만 10대 때도 20대 때도 30대 초반까지도 서른다섯 살의 내가 혼자일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피식 웃게 되는 지점은 혼자인 상태를 그 어느 때 보다 안녕하다고 느낀다는 것과 그리하여 어떻게 이 안녕을 건강히 오래 유지할 수 있을까를 궁리한다는 것(악착같이 영양제를 챙겨 먹으며 안 하던 운동을 합니다…). 


몇 년 전의 내가 막연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삶을 내가 지금 살아가는 것처럼, 또 미래의 나는 현재 상상력의 범위 바깥 어딘가에서 분투하고 있을 테지만. 자주자주 지금의 이 상태로 나이 들어감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이면 충분한 데… 지금 같을 수는 없겠지!? 역시 답은 기본소득인 건가… 하지만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 자체 기본소득이 가능해지는 방법은 재테크인가? 이 시간에 재테크 공부를 하는 게 맞지 않나? 애써 확보한 공상의 시간이 자꾸 인생계획으로 변질(;;)되고 마는 주된 이유는 혼자인데 가난할까 봐 + 지금의 근로소득만으로는 내 집 마련은 어렵다는 현실 인식 때문에. ‘그래. 이 걱정들은 앞으로 살면서도 계속할 거니까, 나여!!! 제발!! 지금 만큼은 하지 말자’ 다짐하면서 혼자인 사람들의 글을 찾아 읽는다.

함께이길 포기하지 말아요, 우리는 이런 모양으로 사랑을 해요, 힘들어도 내 곁엔 그가 있어요,라고 이야기하는 글들이 좋을 때도 많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 약한가 보다. 글을 읽다 문득문득 함께하는 것을 ‘잃어버렸거나 아직 내 손에 쥐어지지 않은 상태’로 여기곤 한다. 이 글들을 실컷 좋아하면 나의 현재를 덜 좋아하게 되는 것처럼 느끼는 곤란한 마음의 상황이랄까. 그리하여 그토록 좋아하던 밀레니얼 에세이스트(김혼비, 홍승은, 정지우, 서늘한 여름밤 등등)들의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게 되었다. 진짜 나의 마음은 무엇일까. 혼자? 함께? 혼자? 왔다, 갔다, 굳이 마음을 딱 정하지는 않더라도 혼자여도 좋은 글들을 좀 더 읽어볼 필요를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아, 내 외로움으로 타인의 외로움을 건네다 보면서 미지근한 온도로 조심스럽게 이웃과 우정을 나누는 장면이라니요. 작가님, 글에 와사비 발라 놓으셨나요, 자꾸 매워 죽겠는 제 코 어쩔??? 현재의 내 상황(혼자서 풍족하지 않은 채로 나이 들어가기)에서는 가장 도모하여 볼만한 형태의 연대(그러나 저자님 레벨의 내면세계를 구축하는 게 더 어려울 것 같기도)로 느껴지자 이런 장면 또 없나 기대하고 책장을 넘겼더랬다. 너무도 당연히!! 계속 나왔고!!!! 어느새 나는 위로당하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좋은생각><연탄길> 감성은 절대 아니고요…. 그렇다고 <나 혼자 산다> 이런 느낌도 정말 아니고요…. 암튼 표현이 비루해서 죄송한데요… 저도 이제 에세이 읽을 만큼 읽어서 엥간치 잘 쓰지 않으면 흔들리지 않는데(?) 요, 이건 잘 쓰는 게 아니라 주관적인 저의 기준에 정말로 ‘잘 사는’ 사람의 이야기여서… 여러분 이 책 꼭 삽시다. 작가가 돌보는 길냥이들 사료값에 인세 보태라고…. (오랜만에 등장한 아무도 안 시키는데 저 혼자 뜨거운 영업 모드 자아)

혼자되기를 선택했다고 한들 너무 자기 자신으로만 가득 채울 필요는 없으며, 외롭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는 담담한 에티튜드에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시간도 삶도 관계도 사랑도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유한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온당한 자기애와 사람에 대한 사색. 알고 싶지 않지만 알아야 한다면 꼭 그처럼 알았으면 좋겠다. 


“(P.124~125) 나는 시와 저녁이 잘 어울리는 반려라고 느낀다. 모호함과 모호함, 낯설음과 낯설음, 휘발과 휘발의 만남. 바로 그러한 특질 때문에 시도 저녁도 어려운 것인데, 어느새 나는 그것에 기대서만 간신히 살아간다. 뚜렷하고 익숙하며 사라지지 않는 것은 이 세계 어디에도 없음을 알게 되어서이다 … 세상과의 결속에서 틈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나의 내면이 나의 존재와 끊어지지 않으려 분투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 영영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계속 시도해보겠다는 의지 같은 것.
저녁은 그렇게 시를 읽는 나와 함께 늙어간다.”


마지막으로 영업멘트 쐐기박기.

실은 첫 페이지를 펴자마자 반하고 말았다. “(P.11) 눈이 더 쌓였을 것 같은 길을 부러 골라, 머리카락과 뺨과 발목이 젖도록 걷고 또 걷는” 산책자를 좋아하지 않을 재간이 나에게는 없다. 


정말인지 오랜만이다. 닮고 싶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닮고 싶은 사람을 글로 만난 것은.


내가 보는 것이 결국 나의 내면을 만든다. 내 몸, 내 걸음걸이, 내 눈빛을 빚는다(외면이란 사실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인간은 내면과 내면과 내면이 파문처럼 퍼지는 형상이고, 가장 바깥에 있는 내면이 외면이 되는 것일 뿐. 외모에 관한 칭찬이 곧잘 허무해지며 진실로 칭찬이 될 수 없는 이유도 그때문이다. 하려면 이렇게. 네 귓바퀴는 아주 작은 소리도 담을 줄 아는 구나, 네 눈빛은 나를 되비추는 구나, 네 걸음은 벌레를 놀라게 하지 않을 만큼 사뿐하구나). 그런 다음 나의 내면이 다시금 바끝을 가면히 보는 것이다. 작고 무르지만, 일단 눈에 담고 나면 한없이 부풀어 오르는 단단한 세계를. - P25

가지지 못한 것이 많고 훼손되기만 했다고 여겨지는 생에서도, 노래를 부르기로 선택하면 그 가슴에는 노래가 산다. 노래는 긍정적인 사람에게 깃드는 것이라기 보다는, 필요하여 자꾸 불러들이는 사람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 P34

다시 지하로 내려가기 전 볕을 또 한번 멀리서 바라보았다.
어떤 일을 겪고서 아무 일도 없는 듯 살 수는 없어, 그건 거짓된 삶이야, 하지만 이제 볕이 보이네, 라고 생각했다. 아니, 거의 중얼거릴 뻔 했다.
다시 이전과 같이 나의 미래를 낙관하고 마음을 활짝 열어 사랑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해도 끝과 죽음을 먼저 고려하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늘 속에 몸을 둔 채로 볕을 보는 사람, 내 몫의 볕이 있음을 아는 사람, 볕을 벗어나서도 온기를 믿는 사람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 P96

그 모든 것이 일정 부분 사실이라고 해도, 그녀의 진실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디킨슨이라는 사람을 그보다 가볍게, 이렇게 이해한다.
그녀는 혼자 살고 싶어서 혼자 살았다. 바깥세상에 나가봤는데 별 마음을 끄는 게 없길래 은둔했고, 흰옷을 입은 자신이 가장 멋져보이길래 흰옷만 입었다. 그것 뿐이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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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31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31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1-05-31 09:3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감은 눈꺼풀처럼 순하게만 보인다! 인상적입니다.
이해하는 사람이 적어도 공감하고 위로해주는 책을 찾아 읽어가며, 스스로 길을 찾는 산책.
좋아보여요.

공쟝쟝 2021-05-31 09:56   좋아요 6 | URL
달아주신 댓글에서 그레이스님의 인품(!)이 느껴져요. 이해받지 못하는 서운함을 이해하는 능력 키우기로 전환시켜보렵니다. 그러게요. 저는 참 좋습니다.

새파랑 2021-05-31 11: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걸으면서 책 읽는 거 한번 해봤는데 (옥상에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더라구요 ㅎㅎ 이 책 완전 좋아요~리뷰 보니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공쟝쟝 2021-05-31 18:34   좋아요 4 | URL
ㅋㅋㅋ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 데 말이죠? 별게 다 어렵다 참 그쵸?

바람돌이 2021-05-31 12:0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가끔 에세이 중에 이렇게 꼭 닮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 글이 있더라구요. 저는 얼마 전에 읽은 ˝지지 않는 하루˝가 그랬어요. 이래서 에세이를 읽는다는..... ^^ 어쨌든 축하드립니다. 좋은 책은 많지만 나에게 꼭 맞고 마음이 저자에게까지 가 닿는 책은 그리 많지 않은듯한데 공쟝쟝님이 오늘 만난 책이 그렇네요. ^^

공쟝쟝 2021-05-31 18:43   좋아요 4 | URL
네, 모처럼이요! 닮게 쓰고 닮게 생각하고 싶은 저자들은 너무 많았으나 닮게 살아보고 싶은 사람은 오랜만이라 저도 오랜 친구를 만난듯 반가웠답니다. 하지만 가장 좋은 친구는 책이겠지요. 저는 에세이가 정말 좋아요.

단발머리 2021-05-31 15:4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인용해주신 부분 읽는데 산문 아니라 시 같네요. 평소의 저라면 읽지 않을 책인데 ㅎㅎㅎㅎ 이 책을 읽으면 쟝쟝님을 더 잘 알게될 거 같아요. 나도 함 읽어볼까나^^

공쟝쟝 2021-05-31 18:45   좋아요 4 | URL
이런 외로움은 근사해요. 저는 외로움을 자꾸 해명하고 이해시키려고 해왔을지도요. 꼭 읽어주세여.. 문장 자체도 아름다웠어요 ㅠㅠ

scott 2021-05-31 16: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공장쟝님의 이런 글솜씨를 담고 싶음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이런 만화 요근래 만나기 힘듬 ૮₍ ˶• ˔ ต ₎ა

공쟝쟝 2021-05-31 18:46   좋아요 5 | URL
정말요? ㅋㅋㅋ 닮? 담?! (장난)
몬스터 재밌었죠. 전 웹툰 안봐서 모르는데 한국 웹툰이 아주 웅장하다대요. 신 매체(ㅋㅋㅋㅋ)를 저희가 몰라서 그렇지 이런만화 많지 않을까요??

붕붕툐툐 2021-05-31 21: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의 영업에 이끌려 평소 에세이만 보면 질투해서 잘 못 읽는 저지만 읽고 싶어졌어요!!ㅎㅎ
쟝쟝님 늘 느끼는 거지만 지금의 시간을 너무 잘 보내고 계신 거 같아요. 내가 닮고 싶은 사람!!😍

공쟝쟝 2021-06-01 08:38   좋아요 2 | URL
으하하하 더 잘 보내리라!!!!!

난티나무 2021-06-02 15: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좋을까 살까 말까 아니야 그래도? 뭐 이런 마음이었던 책인데 결국 사야 하나요. 종이책으로 사고 싶다.... 왠지 들고 나가서 걸어야 할 거 같아요.

공쟝쟝 2021-06-03 13:59   좋아요 2 | URL
이 <말들의 흐름> 시리즈는... 두께에 비해 비싸요.. 그런데 판형이랑 디자인, 본문 글씨체도 특이해서 소장용으로 한 권 정도 ^^? 갖춰 놓고 싶으시다면 거두절미하고 바로 <시와 산책>입니다!! 저는 전 편 <영화와 시>도 샀다능... 산책하면서 읽으면 더 아름다울 것 같아요~~ 호호

scott 2021-06-04 20: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내예감 적중!!
공장쟝님 추카~~
이달의 당선!!

그레이스 2021-06-04 20: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축하합니다~♡
정보가 없어서 scott님 쫓아다니면서 축하댓글 달고 있어요^^

서니데이 2021-06-04 21: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공장쟝님 축하드립니다^^

새파랑 2021-06-04 22: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완전 좋아하는 책인데 더 기쁘네요. 축하드려요^^

모나리자 2021-06-04 23: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편안한 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이하라 2021-06-05 10: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초딩 2021-06-05 15: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장장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공쟝쟝 2021-06-12 10: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두 모두 축하인사 감사합니다! 이달의 당선작되면 축하해주는 게, 요즘의 분위기인 거죠? 앗~~~ 하지만 쑥스럽다구욧.. >_<
 
메리, 마리아, 마틸다 한국문화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775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메리 셸리 지음, 이나경 옮김 / 한국문화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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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막혀 ㅠㅠ 읽으면서 내가 18세기에 안태어났길 너무 다행이라고 정말 많이 생각했다…..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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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5-30 19: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심지어 세 명 다 귀족ㅋㅋ일반 여성들의 삶은 어땠을지.. 아주 캄캄합니다. 🥲

단발머리 2021-05-30 2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네… 맞아요. 읽느라 수고많았어요!
생각보다 빨간 책 힘들었어요, 그죠 ㅠㅠ

다락방 2021-05-30 22: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느라 고생했어요!!

붕붕툐툐 2021-05-30 2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은 안 읽었지만, 지금 시대에 태어난 걸 늘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