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류 인구
엘리자베스 문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일이 많이 바쁘지 않으면 낮잠을 자고 운동을 다녀와 책을 읽거나 읽은 책을 정리하거나 일기를 쓰거나 독후감을 쓴다. 여름이 다가오니 낮이 길어졌다. 낮잠과 늦잠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침실에 암막 커튼을 설치하기로 했다. 뚝딱 뚝딱. 책장 정도는 한번에 조립하는 전동 드릴 실력으로 커튼 봉 설치 따위는 십분 컷이다. 베이지색 암막 커튼을 달았고, 여름 이불과 베갯잇을 씌웠다. 


창문에 임시 방편으로 붙여둔 <비포 선셋>(비포 시리즈 중에 가장 좋아한다) 포스터를 이젠 볼 수 없게 된 것은 좀 아쉽다. 이 못말리는 투머치토커 이상주의자 커플을, 특히 선셋에서의 줄리 델피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의 맞은 편에는 포스터 다섯배는 되는 대왕 세계지도를 열두개의 꼭꼬핀으로 붙여놨다. 생활 반경은 손바닥만 할 지언정 시야는 세계적이겠다는 야심이다. 거짓말이다. 책을 읽다가 모르는 지명이 나오면 찾아보기 위한 용도다. 빗자루질도 설거지도 못하는 괴동물 홉스와 함께 살고 있는 나의 행성은 오로지 독서와 일을 위해서만 최적화 되어있다. 침대로 가는 길은 험난하고, 쌀과 과일은 채우지 않아도 커피원두를 떨구는 법은 없다.


친구의 권유대로 하루에 한 끼는 제대로 챙겨먹으려고 한다. 오필리아처럼 근사한 요리는 아니지만 내가 먹을 만큼의 양을 내가 먹기 좋을 만큼은 조리할 수 있는 능력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있다. 끼니는 대충 떼우는 것 아니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먹고 마시는 거다(!)가 나의 식생활에 대한 대체적인 태도였다. 그래서 기능적인(?) 연료를 공급하 듯 (다음의 일을 하기 위해) 전투적으로 먹고 마셨다. 그 식습관은 혼자 일하게 되면서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 부분이었다. 특히 바쁠 때는 메뉴 고르는 게 너무 싫었다. 


여튼 요즘 나의 화두는 과식하지 않는 것과 과음하지 않는 것이다. (채식이 아닌 소식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데, 다이어트의 목적이 없지는 않지만 금욕적인 것과는 관계가 없다.) 그러려면 천천히 먹어야 하고, 배가 부르는 느낌이 들기 전에 숟가락을 내려놓아야 한다. 마시는 것 역시 인식하면서 마셔야 하고 취하기 전에 술잔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것 역시 어떤 부분에서는 나를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인 데 쉽지는 않다. 폭음과 폭식으로 다져진 이 몸뚱아리를 살살 달래며 더 많이 주목해야 한다. 


“(37) 떠나지 않겠어. 28일 후 나는 자유야.”


스스로 ‘잔류 인구’가 되기로한 70대의 여성 오필리아는 모두가 떠난 행성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무쓸모, 무가치의 시선을 기꺼이 부수고’ 라는 소개 문구에 이끌려 책을 집어들었지만, 뭐 그렇게 읽어도 상관 없지만, 정작 나는 이 소설을 비로소 혼자가 된 여성의 자아회복기로 읽었다. 


“(349) 오필리아는 빌롱의 어머니도, 할머니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역할에는 이미 작별을 고했다. 착한 아이,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가 되는 것에도 그런 것들에 70여 년을 쏟아부었다. 몰두했다. 이제는 색칠하고 조각하고, 늙고 갈라진 목소리로 낯선 괴동물들과 더 낯선 그들의 음악에맞춰 노래하는 오필리아가 되고 싶었다. 괴동물들한테서 받은 역할로도 충분하고도 남았다.”


어떤 고립의 상태라는 오필리아의 상황과 나의 상황이 겹쳐서기도 했을 테지만 (나는 그녀에게 이입하는 것이 정말!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그 고립의 상황 속에서 내가 다른 사람들이 아닌 스스로를 돌보기 위한 의식적 노력을 해왔기 때문일지도.?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모두가 떠난 행성에 혼자남겨진 오필리아가 싸워야 할 것은 자연재해나 기아, 외로움, 무력감, 공포, 두려움이 아니라, 


“(128) 날씨에 따라 들락거리는 집이 네다섯 군데 있지만 나머지는 일만들리는 존재였다. *그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고, 혹시 나중에 필요할 수있으니 전부 다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오래된 죄책감*이 문제였다.

오필리아는 모레부터는 상관없는 집들을 고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않기로 했다. 그의 집과 몇 안 되는 단골집만 들여다볼 생각이었다. 무더운 날 특별히 시원하거나, 추운 날 유독 따뜻하거나, 근처에서 일하다 샤워하러 가기 좋은 집들만, 나머지는 포기할 것이다.”


지독한 책임감이다. (ㅋㅋㅋㅋㅋ 선생님… 제발… 나머지는 포기하시죠?)


나 역시 독신자 생활 초기에는 쓸데없는 청소에의 욕구 때문에 (아니… 치우면 치워지는 집이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했단 말인가? 어지르는 사람이 나 밖에 없다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런데 계속 더러워졌다…? 그렇다고 안 치운다고 또 누가 피해보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청소란 그런 것이었다, 포기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데, 포기 아니면 과몰입 밖에 없는… 아아, 이것은 마치 내 인생…어쩌면 유튜브, 오늘의 집에 영향 받은 인테리어 소비욕망 때문에… 기질상의 쓸데없는 완벽주의 때문에…?) 좀 힘들었다. 청소만으로도 하루를 다 쓸 수 있더라고? ㅋㅋㅋ 아무튼 포기해야 한다. 나를 잘 돌보는 수준의… 생활 공간에 대한 예의 수준으로만. 제발.😬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하고, 어떤 무능력은 인정하고, 포기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을 돌보는 일을 가장 먼저하고, 그렇게해서 얻어진 힘과 시간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그런 과정에서 만나게 된 존재들과 존재-대-존재의 소통을 이루는 노인의 모습이 보기/읽기 좋았다. 


어쨌든 이 책을 읽다 보면, 혼자서는 1도 외롭지 않은 그녀가 되려 뭇 인간 종족들의 외롭지 않느냐는 질문 때문에 빡쳐하는 장면이 나오는 데 (나는 좀 부끄러워졌다… 오필리아처럼 우아하게 말할 걸… 너무 열심히 설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부분이 소설의 핵심 같았다. 


“(354)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아요.”


소통. 소통은 뭘까. 원할 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고,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도 결국 환상이었던가 싶은. 원하지 않고 포기하는 게 쉬운. 그런데 포기한 순간 또 잘 되는.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이계의 종족에게 (이를 테면 홉스.라던가 홉스.라던가.홉스.) 차라리 가능한 것도 같은. 


그렇다면 우리의 소통을 막는 것은 결국 어떤 덧입혀진 생각, 그래야할 것 만 같은 시선, 그 자신의 투사인 것 아닐까. 

“(352)오필리아는 한 번쯤은 사람들이 자신을 제대로 봐주기를 바랐었다, 자신들의 생각을 덧입혀서 보는것이 아니라.”

제대로 보는 것은. 무엇일까. 어쨌든 최근의 나는 고독의 상태가 주는 충만함에 파묻혀 이상한 (어쩌면 필수적? 과정인?) 자의식이 생긴 것 같다. 음… 이런 표현이 맞을 지는 모르겠지만 소통에 대한 몸의 면역력이 떨어진 것 같다는 느낌? 


뭐랄까. 말이 잘 안통하는 사람들과 소통을 위한 소통을 할 땐 너무 외로워져 버리고, 소통이 되는 것 같은 소통을 할 때 그 사람은 생각도 안하고 혼자 너무 흥분하고 몰입해 버린다. 이 온도 차이가 조절이 잘 안돼서. 중요한 건 두 경우 모두 너무 몸이 피곤해져버려… 막 눈에 실핏줄이 터지고, 하루 종일 취침해야 회복되고 그렇다… 음… 뭔가 방도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이게 인류 접촉의 빈도 때문인 건가. 아니면 오랜 솔로 금욕 생활로 인한 체질 개선…? 


여하튼 이제 더는 볼 수 없게 된ㅋㅋ 영화 포스터 <비포 선셋>처럼. 나에겐 충분히 걷고 충분히 이야기 나눌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왜냐면… 어차피 <비포 선라이즈>는 물건너 같고 <비포 선셋>이 지금의 내 나이인데… 맙소사 이렇게 내 행성에 갇혀 지내다간 금방 <비포 미드나잇> 될 거 같아서… 흑흑. 쓰고 나니까 인정하기 싫다. 내 인생에 <비포> 시리즈는 없다. 링클레이터 나쁜 사람. 아이쒸… 더덕단 언니들은 어쩌다 또 비포이야기 해가지고… 내 인생의 충만함을 초라함으로 만드는가…


비포를 홀딱 깨버리는 투지의 영화가 필요하다. 

영화 추천 받습니다… 뭐? <나는 전설이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2-06-09 05: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과식하지 않기. 저도 배워갑니다. 뼈에 새겨야겠어요 😤😤

잠자냥 2022-06-09 10:14   좋아요 3 | URL
그런 의미에서 오늘 메뉴는 뼈해장국....

공쟝쟝 2022-06-09 10:42   좋아요 2 | URL
다락방님께는 권할 수 없습니다. 일터의 개미 노동자에겐 오로지 연료형 고봉밥과 잔을 꽉채운 맥주만이 위안입니다 ㅋㅋ 아니면 규칙적인 유산소 혹은 섹스라도 하여야 하는 데… 도파민 말라죽어요 ㅋㅋㅋㅋ 우울해집니다. 내면이 일그러지지 않도록 두 메뉴 드시고 근력운동 하세요 ㅋㅋㅋ

잠자냥 2022-06-09 14:13   좋아요 2 | URL
이 사람 오늘 뼈해장국 먹었네, 먹었어. 참 실천력도 대단한 사람이야~ ㅋㅋㅋㅋ

단발머리 2022-06-09 08: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식이야말로 최고의 건강법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1인입니다. 소탈한 밥상을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ㅋㅋㅋㅋㅋ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소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영화 즐겨 보는 사람이 아니기는 한데, 인생 영화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연식 탄로남)의 <The way we were>. 한국에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정치적 이슈를 위해 목소리를 높일 줄 아는 용감한 여성이 아름다운 남성을 얻어가는, 잃어가는 이야기.

공쟝쟝 2022-06-09 13:36   좋아요 2 | URL
어머머머 나 이거 방구석 일열에서 소개하는 거 봤어요!! 볼래요 볼래요 그런데 역시 여자가 정치에 목소리 내고 권력에 각성하면 아름다운 남성 (로버트 레드포드 라니 ㅠㅠㅠㅠㅠㅠㅠ)을 취할 수가 없는 거군요. 이래서 페미니즘이 필요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여자에게도 트로피 남친을 허하라 ㅋㅋㅋ 나도 두개 다 갖고 싶다 ㅋㅋㅋ 욕심이냐? 그럼 안되겟네 레드포드 버려 ㅋㅋㅋ 너따위 ㅋㅋㅋ

얄라알라 2022-06-09 09: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저는 엘리자베스 [잔류인구]를 읽었던 날 저녁부터 밤을 기억해요. 소파 한 자리에서 계속 읽었죠. 이건 정말이지~~~ 멋진 할머니 주인공의 멋짐이 뿜뿜한 소설이었고, 노화과정을 받아들이며 지혜로 감싸안는 그 태도와 생존력, 멋진 작품이었어요.

공쟝쟝님의 라이프스타일을 엮어 쓴 이 리뷰로 [잔류인구]를 다시 만나니, 아침부터 묘한 욕구가 솟습니다!


친구분 좋은 분이시네요. 하루 한끼는 진짜 풍성하게 영양분으로 채우셔야죠^^ 행복한 아침 시작하세요. 공쟝쟝님

공쟝쟝 2022-06-09 10:51   좋아요 3 | URL
얄라님이야 말로 오필리아와 가까운 근사한 라이프 스타일 실천가 아니시던가요? ㅎㅎㅎㅎ 저는 뭐 현생의 욕망이 아직은 드글드글 하단 걸 책을 읽으면서 제가 알았어요 ㅋㅋㅋㅋ 오필리아의 성욕없음…. 은 사실인가…?(응?) 주인공이 중간중간에 바지런 떨다가 피곤해 하실 때 마다 ㅋㅋㅋ 공감되고 ㅋㅋㅋ 좋은 아침을 시작했씁니다 ㅋㅋㅋ 아 점심 뭐먹죠? ㅎㅎㅎ

얄라알라 2022-06-09 11:49   좋아요 2 | URL
하하하.....오필리어님, 루틴이 1인 소화 루틴이 아니었죠? 엄밀히 말하자면 ㅋㅋ˝바지런 떨다가 피곤해 하실 때마다 공감˝ ㅋㅋㅋ 뭔지 알겠습니다 ㅋㅋ

제가 지향하는 스타일과 욕망 내려놓음은 그래요. 근데, 공쟝쟝님은 온라인 활자를 통해서도 그걸 느끼신 건가요?^^ 책임감을 가지고 제 말을 지키는 삶을 살도록 애써야겠네요


점심은? 커피?^^

공쟝쟝 2022-06-09 13:13   좋아요 1 | URL
약간의 진지댓글을 좀 달자면, 오필리아는 잔류하기로 선택한 거잖아요. 다른 인간종족들은 한 행성을 황폐하게 만들고 또 다른 행성을 망치러 떠나고. (아... 그들이 그 버릇을 고쳐야 할텐데. 온 우주를 다 썩힐 셈인가.) 아직 인류의 과학기술은 불가피하게 잔류를 예고하는 가운데...

결국은 이 행성에서 토종 종족(?)과 잘 살아가려면, 자신을 스스로 돌볼 줄알아야 한다고 (어느 정도의 자급 자족 능력), 그리고 가능할리 없는? 기대없는? 소통을 하여야 한다고, 무엇보다 ‘포기‘해야 한다고. (어쩌면 늙어감, 삶이 유한하다는) 인간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자신을 아껴써야 한다고. 그렇게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거 아닌가. (에코 페미니즘?ㅋㅋㅋ 얽 그러고 보면 오필리아도 반육식주의자는 아니던데.. ㅋㅋ 미식가고 대식간데..)

누구도 필요없는 아무도 필요하지 않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그 자신이 다해서 줄 수 있는 그 행성에서 그는.
열심+바지런한 자신의 태도와 느낄 필요 없는(?)죄책감과 싸우잖아요.
그러니까 책임감은............ 조금 내려놓으셔도 ... 아닌가? 싸워야 하나? ^^
어쨌든 전 얄라님의 편안한 상태를 응원합니다. 다들 각자가 편해지기 위해 포기를 좀 해야죠~ (포기 못하는 사람들이 문제 ㅠㅠ) 아... 제 경우는 아직 젊어서인가, 제 한계를 실험해보고 싶은 욕망이 아직은 남아있다는 것,,,,이 문제,,, 욕망을 실현해야 편할 때가 있다... 특히 지적욕망 ..흥흥.. 점심은 된장국에 밥말아 먹었습니다 ㅋㅋ 이제 일합니다 뿅~

잠자냥 2022-06-09 10: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빗자루질도 설거지도 못하는 괴동물이 내 행성에는 세 마리나... 그 괴동물들 막 똥싀키도 탐..... ㅠㅠ
이 작품을 비로소 혼자 된 여성의 자아회복기라고 정의하신 것 공감합니다.
근데 이 작품 좀 지루하지 않던가요?;; 첨엔 괜찮았는데 중반 이후 저는 많이 지루해지더라고요. 혼자 사는 독거 노인 일상 들여다 보면 참 지루하겠다 싶어지더라고요;
쟝님이 왜 별 셋 줬는지 알 거 같은 ㅋㅋㅋㅋ (그래서 <어둠의 속도>에 선뜻 손이 안 가고 있음;;)

공쟝쟝 2022-06-09 10:56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 제 인생도 멀리서 보면 참 지루하려나? 제게는 마약같은 스마트폰이 있군요 ㅋㅋㅋ
자냥님 말씀대로 중반 이후에 지루했고, 약간의 모성찬양(?) 느낌에 뚱해지기도 했는 데 … 오필리아처럼 살았다면 당연히 그게 맞겠다 싶어서 ㅎㅎㅎ
의미부여 하기에 따라선 풍부한 소설이지만 의미를 부여할수록 착해져서 재미없는 걸 보면 제가 좀 확실히 소설이든 뭐든 극단적인게 좋나 봅니다 ㅋㅋㅋㅋ 나의 별셋…* (좋지만 내 취향은 아님…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06-09 10: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음....읽어 보고 싶네요.
별 셋도 이리 좋다면, 별 다섯의 기준은 또 뭘까? 생각해 봅니다.
어제 물감님의 별 하나의 기준과 공쟝님의 별 하나의 기준과 그리고 나의 별 하나의 기준!!!
별 하나, 별 둘, 별 셋.....
그리고 소식하기!! 참 좋은 결심이에요.^^
전 식사 때마다 너무 많이 먹어서 밥 먹고 나면 맨날 졸아 졸아....책을 읽지 못하는....ㅜㅜ
근데 잠냥님의 댓글에서 뒷부분 지루하다고 하시니 나 또 읽다가 졸겠군!!!! 예상되네요ㅜㅜ

공쟝쟝 2022-06-09 11:00   좋아요 5 | URL
네 저도 많이 졸았어요 ㅠㅠㅋㅋㅋㅋㅋㅋ 아니 자냥님이 지루 하다고 하니까 안심되네요 ㅋㅋㅋ 내가 소설을 못 읽는 게 아니었어 ㅋㅋㅋ 여튼 읽은 게 아까워서 다 읽었어용ㅋㅋㅋㅋㅋ
별 다섯은 ㅋㅋㅋㅋ 정말 개인적 미학이라ㅋㅋㅋㅋㅋㅋ 푸코랑 정희진 말고는 ㅋㅋㅋ (훗ㅋㅋㅋ)

그레이스 2022-06-09 22: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타인의 생각 속에 들어가보지 않은 이상 소통을 확신할 수 없으나 어떤 기류가 느껴지는 때가 있죠^^
차라리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다행입니다. 분노하는 어리석은 자신을 발견하는 것 보다는...^^
비포 미드나잇이 가장 현실적일까요?

공쟝쟝 2022-06-10 13:20   좋아요 2 | URL
오랜만이에요 그레이스님 🤗
소통… 이라기 보단 공감..의 영역인걸까요? (물론 둘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제게는 분노하는 어리석은 자신도 있고 외로워서 망상에 빠지는 저도 있답니다! 그리고 그런 저를 발견하는 시간을 내려고 노력하는 게 저를 돌보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구요~
비포시리즈 다시 보고 싶네요.. 하아 근데 그거 보면 외로워질거 같아…
 
잔류 인구
엘리자베스 문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필리아는 한 번쯤은 사람들이 자신을 제대로 봐주기를 바랐었다, 자신들의 생각을 덧입혀서 보는 것이 아니라.”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설령 그 존재가 다른 행성의 괴동물이라 할지라도. 나는 거기서 오래오래 살고 싶을지도 모르겠다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읽는나무 2022-06-08 09: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 보니까 어디서 봤더라? 생각해 보니 제가 가지고 있는, 이거 찻잎 우려내 마시는 내열 유리컵 그림이랑 똑같군요??ㅋㅋ
내열 유리컵은 써 보니 별 다섯인데, 책은 별 셋이군요??
근데 백자 평은 또 땡기네요??^^

공쟝쟝 2022-06-08 13:23   좋아요 2 | URL
좋은 책입니다!!! 제겐 별셋도 좋은 책인데 ㅋㅋㅋㅋ 제 취향은 아니지만 많이들 좋아하실 것 같아요오~! 시간내면 리뷰쓰고 싶은데 모르겟어여 ㅋㅋㅋ
 
혐오스러운 동기가 있는 편이 아무 이유도 없을 때 보다 견디기 쉬운 것도 아닌데
사랑은 왜이렇게 어려운가
이분법 탈피와 빨대
터프 이너프 - 진실을 직시하는 강인함에 관하여
데보라 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책세상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자리에 앉자마자 왜 한나 아렌트에 빠질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각자의 치임 포인트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하이데거 쓰레기!를 도합 열 번 씩은 외치고… 벤야민 이야기를 하다 갑작스럽게 도나 해러웨이로 대화의 주제가 이어지면서 우리 앞에 구워지고 있는 것이 삼겹살이라는 사실에 잠시 아이러니를 느끼다가… 또… 에 … 그러니까 도나의 심오함은 너무도 심오해서 <육식의 성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입장과는 핀트와 어긋나는 부분이 있지 않느냐고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지 알 것 같은 상태를 내맘 알쥬? 우리 같은 맘이쥬? (…🤷🏻‍♀️) 퉁치고, 후식으로 누룽지를 먹으면서는 평소 내가 느꼈던 소통의 어려움과(…왜 어려움을 느꼈는지 니 글만 봐도 알 것 같다고 생각한 당신 정답!…) 푸코에 대해 신나서 떠들다보니 나만 떠들고 있네?… 점점 더 소통이 어려워졌고…ㅋㅋㅋㅋ 우리들의 대화는 미친듯이 고급스러워져서 급기야는 21세기의 신유물론과 양자물리학으로 마무리 되고 말았던 것이다.


“삶에 물기를 원했지만 이토록 많은 물은 아니었다” 이규리 시 <많은 물>

“삶에 지적인 대화를 원했지만 이토록 심한 지적임은 아니었다” 다락방님 말씀 ㅋㅋㅋ


아… 이 가슴이 다 웅장해지는 심하게 지적인 나 자신의 우정을 조금 자랑하면서, 

*한나 아렌트와 메리 매카시의 우정*에 대해 호들갑 떨고 싶어서 이 페이퍼를 써보려 한다. 잘쓸 수 있을까?


일찍이 아렌트 대모님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발표하시고 “너는 유대인인데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가 있냐, 이 심장도 없는 무정한 녀자야!”라는 (남자) 평론가들의 말에 아래와 같은 띵언으로 일침을 놓으셨다. 


“(130)선생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 ‘사랑’에는 전혀 마음이 동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저는 한 번도 어떤 민족이나 집단을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독일인도 프랑스인도 미국인도 노동계급도, 아니 이런 종류의 그 어떤 집단도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오로지’ 친구들을 사랑하며 내가 알고 믿는 유일한 종류의 사랑은 개인에 대한 사랑*입니다.”


저는 여기에 밑줄을 그으며 눈물을 훔치며…🥲 와. 아렌트 친구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좀 짱이잖아. 민족이나 인류보다 친구를 사랑한대. 아… 이 우정 진짜 짱인데? 하지만 이제 와서 아렌트님과 친구가 되기엔 임은 이미 가신 분이시니… 우리 천국에선 꼭 친구해요 아쉬운대로 현생에서는 한나 아렌트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아렌트 성님을 좀 베껴서 사랑해보는 것으로. (하지만 어려울 것 같다. 왜냐면 아렌트 해도 심한 독고다이…)


아렌트 성림이 페미니스트여서 “여성에겐 조국이 없습니다”라는 뜻으로 이 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철저한 단독자로서 사유를 했으므로 집단으로서의 여성도 사랑하지 않으셨고, 그렇게 자신의 철학대로 살다보니 결론적으로는 어떤 페미보다 페미낭낭한 삶을 살아버리신 분!!이라 할 수 있겠는 데 솔직히 한나 아렌트가 너무 페미 거부하셔서 쫌 서운한 맘이 없던 건 아니었으나, 저는 대국적인 k-페미로서 그런 언니를 사랑합니다. 언니가 이런 저를 싫어하시면 저도 페미 정체성을 버릴 수 있…(을지는 두고보겠습니다. 아무튼 사랑해요. 아렌트 짱!) 


자, 집단에 대한 사랑을 완강히 거부하는 단독자 아렌트의 사유를 읽어보자. 

 

“(131)아렌트에게 무정의 화두는 사람이든 사실이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표상하는 구체성에 헌신하는 문제*다. 민족에 대한 사랑은 범주로서의 개념을 내포하기 때문에 관념에 불과하며, 관념과 의도적인 감정적 관계를 맺는다면 그건 실제 감정일 수가 없다. 모든 구체적 문제가 그러하듯 개인에 대한 사랑은 접촉으로만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특정한 성질에서 나온다. 아렌트는 정서적 감각이 현실을 감정의 관할에 할당한다고 암시하고 있다. *정서적 감각은 청자가 상상하는 감정에 먼저 주목한 후 눈앞의 현실에 이차적으로 주목하게 해 현실이 오히려 가상의 감정에 봉사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정은 독자를 향한 아렌트의 근본적 질타, 즉 현실을 직시하라는 요구의 핵심이다.”

이건 인용하니까 더 어려워진 느낌이다. 하지만 내가 공부하기 위해서 쓰는 거니까 상관없다. 


음… 아리까리 하므로 메리 매카시와 한나 아렌트가 ‘연대’와 ‘소속감’이 아닌 ‘고독’을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으로 선택했던 이유를 조금 더 가져와야겠다. (두 사람의 기이한 우정과 정치적 입장을 *2인 정당*이라 말한 사람들은 그러면서도 둘은 ‘같은 편에 *홀로*’ 있었다고 표현한다ㅋㅋ 끝까지 홀로인 개쎈 단독자 녀성들의 우정 <터프 이너프>를 통해 만나보시줘! 🤨)


“(191) 국가적 소속감은 개인을 대중사회의 고독과 소외로부터 보호해준다. 이데올로기적 연대가 제공하는 미래의 서사와 경험에 대한 일관된 이론은 대체로 황당무계하지만 달콤한 위로를 준다. 그리고 아렌트의 용어대로 *파리아* (pariah 배척당한 사람)로의 연대감이야말로 그중 가장 유혹적이다. 현대사회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강렬한 사교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파리아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는 그런 집단에서 유사한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거의 신체적 현상에 가까운 인간관계의 온기를 창출한다. 물론 박해받는 사람들의 온기가 훌륭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완전히 성숙한 단계에 이르면 그런 온기는 다른 방식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불꽃을 피우고 순수한 선에 도달할 수 있다. 활력의 원천이 되어주거나 살아 있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결국 삶은, 세속적인 의미에서, 모욕당하고 상처받은 사람들 사이에서만 온전한 형태에 다다른다는 암시를 피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 활력은 말도 안 되게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바로 무세계성*이다.”


아렌트는 나치하의 유대인이라는 파리아였고, 수용소 생활도 경험했다. 그의 삶의 궤적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저 문장을 읽는다면 이이가 얼마나 독한 인간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거다. 그르니까 내가 치이는 거다. 졸라 너무 쎄니까 멋짐 폭발 오져버리는 거다. 어이 당신, 그러쿤~ 하고 음미하듯 읽지마라 ㅜㅜ 그냥 나온 사유가 아니다. 뼈를 우려낸!!! 고통에서 건져 올린!! 사유란 말이다. 무릎 꿇어. (쒹쒹)


아렌트가 말하는 ‘무세계성’을 슬그머니 짐작해본다. 같은 아픔을 겪었기에 더욱 끔찍하게 아꼈던 지금은 이별한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들과 분리되는 고통을 겪기 싫어서 삶의 어떤 부분을 직면하지 않고 유보하고 또 유보했다. 그만큼 내 삶도 유보되고 또 유보되고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나의 자아가 가난했으므로 그리 비싸진 않았지만 분명 어떤 대가를 치렀던 것 같다. 이건 이 시점의 해석인 거고, 무슨 대가를 치르던 상관없이 그 온기와 활력감에 머무르고 싶기도 했었어서. 


그러니까, 아렌트의 말을 내 언어로 조금 더 풀자면 소속감을 가진 집단—그것이 이념이든 공통의 상처든, 특히 파리아의 경험이 있는 집단이라면 더욱더, 유난한 가족이나 지독한 연애도 포함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안에서의 끈끈하고 긍.휼.한 연대감이란 현실직시(전체 세계에 대한 인식)를 못하게 하는 마취제로서 기능한다는 거다. (이게 정치가 되면 좀 심각해지는 데… 애석하게도 현대의 인류는 항상 목도하고 있단말이쥐.) 


자신과 닮은 사람들 속에서만 있고 그 안에서만 사고하고 행동한다면 세계에 대한 인지를 교정하고 수정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파리아에게 파리아의 집단이 제공하는 친밀한 사교에서 한발 물러서서 거리를 유지하라는 충고를 할 때, 아렌트는 자족이 아니라 복수성을 권유한다. 즉, 인지 주체로서 자아는 친밀하지 않은 관계에 있는, 다른 상황에 놓여 있는 타자와 접촉해야 한다. 그렇다면 복수성과 공통감의 정치학은 *사실의 미학*을 요구하며 이는 *재현의 실천인 동시에 인지의 수양*이다.”


파리아/복수성/공통감 과 같은 개념들에 대해서는 아렌트를 읽으면서 다시 공부하기 위해 밀쳐둔다. 다만 아렌트가 전체주의 이후의 세상 —“전체주의적 해결책들은 전체주의 정권의 몰락 이후에도 언제든 다시 나타날 강한 유혹물의 형태로 살아남을 것이다”—을 살아가기 위해 개인들에게 요구하는 태도가 *고통스러운 현실직시/인지의 ‘수양’*에 해당하는 것이며, 그녀야 말로 사유와 삶을 통해 부단하게 이를 수양해 온 사람이라는 것 만큼은 매우 알겠다.


그러므로 자기가 아는 유일한 종류의 사랑이 있다면 그건 친구들에 대한 개인적 사랑💕이라는 이 불세출의 20세기 정치 사상가의 말을 우리는 흘려들어서는 안된다. 하여 이 시점(!)에서 우리는 그런 사상가의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본 후, 이 사상가가 말과 삶이 일치하는 찐 철학자였구나라고 쾅쾅 도장을 찍고, 아렌트 진짜 너무 좋아 개 멋져 사랑에 빠졌어!라는 호들갑을 떨고 있는 필자(ㅋㅋㅋ 이거 쓰지 말랬는뎈ㅋㅋㅋㅋ)랑 서재 이웃인 것을 감사한줄로 아세요. (응????ㅋㅋㅋㅋㅋ) 


돌아와서 ㅋㅋ

아렌트의 편집자이며 짱친으로서 지적인 우정을 즐겼고 그 자신도 미국의 저명한 비평가, 소설가였던 *메리 매카시*를 살펴보자.


“(204) 어떤 면에서 사실을 똑바로 직시하라고 도발하면서 매카시가 독려하는 “용기”는 역설적이다. 직시하는 자는 사실에 항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에 대한 항복은 수동성과 등치될 수 없다. *오히려 항복은 열린 마음으로 변화를 대하는 고통스러운 행위다.* 매카시는 지식인과 자유주의 기자들에게 사실을 막는 방어기제를 버리라고 요구한다. 지식인은 총기와 재기를 과시하는 대신 자신의 사유에 당혹스러운 의문과 불완전성이 틈입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확실성의 수사 대신 가설과 추정의 수사를 써야 한다. 자유주의 지식인은 안정된 위상에 안주하기보다는 잠재적으로 전복적인 사실이 논쟁에 들어오는 걸 허락함으로써 남들에게 불충해 보일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용기의 필요성을 토로하는 매카시의 진지한 태도는 그런 제안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방어기제를 버리는 용기! ㅋㅋㅋ 직시하는 자는 사실에 항복해야한다. 여러분 항복합시다. 고통스럽지만 인정합시다. 졌어요. 응? 우린 맨날 지지. 우리라니 그냥 나야 말로 현실에서 맨날 패배하지. 하하하하하하!!! 그래도 직시해야해!!! 무엇을?!! 현실을!! 현실을 직시하란 말이다!!! 자, 고통받아ㅜㅜ 막 후벼파ㅜㅜㅜㅜ 인생에 안도란 없어ㅜㅜㅜㅜ 


여튼 저 문장들 뒤에 매카시님이 쓴 “<자본론>을 한사발 거나하게 들이킨” 지식인 저널리스트 풍자소설(《The Company She Keeps》에 수록된 단편 ‘예일 대학을 졸업한 지식인의 초상’)이 인용되는 데, 살짝만 읽었는 데도 진짜 칼보다 강한 펜으로 팩트 폭행 오졌음 (쪼 아래 밑줄긋기 참조)… 읽고 싶다…😩 누가 좀 번역해주세요…로 새면 안되고, 그러니까 아렌트 머모님의 짱친 메리 매카시 성림 역시 ‘현실 직시’를 요구하는 강인한 ‘인지적 수양’을 하고 계신 분이셨던 것. 그것도 소설로. 미학적으로다가.


아… 여기서 또 정재승 박사님의 띵언을 불러와야겠다. 똑똑한 사람들의 가장 강력한 특징은 똑똑한 사람과 친구가 되는 능력이다…. 진리였구나. 진짜였어. 그렇다면 아, 진짜. 나 똑똑해서 어쩔꺼야ㅜㅜ 소주 마시면서 벤야민 죽는 이야기하는 우리 이제 어뜩하냐고…ㅜㅜ



사실은 아래의 문장들을 인용해 오고 싶어서 쓰기 시작한 글인데…. 뭘 이렇게 많이 써서 또 5천자가 넘었다. 

메리 매카시가 쓴 한나 아렌트에 대한 추도사다. 한나 아렌트의 발목☺️ 이야기를 하던 매카시는 갑자기 


“(234)아렌트가 그녀를 방문하기로 했던 어느 날 친구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던 매카시는 아침 식사를 대접할 요량으로 작은 안초비 페이스트 튜브를 샀다. 아렌트는 그 안초비 페이스트 튜브를 보고, 그게 뭔지 모르는 척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매카시는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친구를 기쁘게 해주려고 애쓰다가 뭔가 잘못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한나는 남이 자신을 ‘아는’ 걸 원치 않았어요. 이상할 정도로 단호하고, 뭐랄까, 환원적인reductive방식으로 그런 고집을 피웠지요. 그런데 나는 한나를 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안초비 페이스트를 샀던 거예요. 언제나 그렇지는 않았지만, 그건 사랑의 증표였죠. 그래서 결국 최후로 내린 분석은, *내가 한나를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겁*니다.”(OP, 42) 추도사를 이처럼 순간적으로 저지른 실수로 마무리하며 매카시는 특유의 자기반성과 자책의 제스처를 취한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냐고요?

이렇게까지 거리두기를 하는ㅋㅋㅋㅋㅋㅋ 25년 지기의 친구 사이였다는 것이지요. (아렌트여… 아놔 이 지독한 사람아….)

선. 선. 선을 지켜야 합니다. 저는 아렌트를 사랑하지만ㅜㅜㅜㅜ 그러므로 선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러타. 그들 사이의 그것은 우정이 아니라 무정이었다.ㅋㅋㅋ


“(236) 무정은 공적 생활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일 뿐 아니라 *우정의 방부제*이기도 하다고. 우정, 정치, 미학에 똑같이 적용되는 엄격한 법칙으로서 무정은 불감이나 둔감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아렌트와 매카시가 수양한 고독은 감각을 탈피하는desensitizing것이 아니라 감각을 재건resensitizing해서 세계의 사실에 더 활짝 열려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태다. 그러나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이런 상태는 타자에게, 친구들과 대화 상대들에게 깊이 반응하지 못하게 금한다. 사실의 미학은, 타자와 공존하는 상태에서 실천하되 친밀감은 피해야 한다. 그래야만 연대가 아니라 고독으로만 성취할 수 있는, 괴팍스러우리만큼 엄혹한 재현과 주목의 수양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생활과 개별성에 대한 존중. 각자의 고독에 대한 존중. 그녀들이 추구한 스타일의 우정은 심오하기도 하고 기이한 괴벽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이 연마한 고독이 어떤 감각을 ‘탈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감각을 재건(!)하기 위해서라는 문장에서 난 숨을 조금씩 나눠서 뱉었다. 그렇다. 어떤 감각은 연대가 아닌 고독으로만 성취할 수 있다. 


판막, 친구는 판막이라고 했다. 다른 친구는 오래 전에 방문을 닫고 들어가는 시간이라고 이야기 했었고. 나는, 내 표현은, 자꾸 휩쓸리는 마음에 방파제를 단단히 쌓는 것이라고 했었다. 모두 같은 말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알고는 있다. 자기만의 방이 오랫동안 없었던 나는, 나는, 여전히 판막이 얇고, 방문 닫는 것을 자주 깜빡한다. 그래서 아렌트와 매카시가 너무 멋있고 진짜 부러웠던 거다. 그래도 가끔 눈물 찔끔 나도록 감사한 것은, 지금의 내가 어떠한 수양의 결과로 고독 없이 사는 것을 연대 없이 사는 것 만큼 어려워하는 인간으로 바뀌었다는 거고, 이런 나의 친구들은 내 방문이 열렸다고, 내 판막을 더 두껍게 하라고 조곤조곤 알려주는 이미 고독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아. 그리고. 과음도 못하게 하고, 아렌트도 알고, 양자역학도 안다. 그렇다. 


사실 나만 더!!! 쎄지면 된다. 하지만 당장 쎈건 좀 부족하니까 더 똑똑해지는 걸로 보답하겠음. 

후... 현실을 직시한 우정이란🤷🏻‍♀️ 이토록 지적으로 충만하고, 참으로 어려워.


전체주의적 이상주의의 양극단—무사유로 표상되는 유아독존과 경계가 없이 흘러넘치는 혁명적 공감—사이에 선 현실주의자는 반드시 심리적고뇌의 양태를 관용하고, 심지어 포용해야 한다. 현실주의자는 아무리 극단적이라도 현실의 고통을 수용하고 의혹을 견뎌내고 갈등을 환영하고 예측불가능성에 동의하며 의식적 파리아의 소외와 격리를 떠안고 미래에 대한 통제를 양도해야 한다. *현실주의자가 되는 단 한 가지 길은 어떤 형태로든 지적·심리적 위안을 발견하면 일단 의심을 품는 것*이다. 그리고 아렌트는 우리가 함께 생존하려면 우리가 모두 이를 실천해야 한다고 믿었다. 아렌트는 인간 존재의 끔찍한 면면들에 대한 환상을 증오했고, *그녀 자신과 세계를 "함께 건설하는 동지들"이 기꺼이 인간 존재가 가하는 상처를 받아들이길 원했다. 수난이 아렌트의 사유 개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마어마하게 크다. 아렌트는 인간은 고통을 느낄 때 비로소 자기가 세계를 제대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믿었다.*
☺️ - P178

냉전 시대의 진보적 사회운동들은 하나같이 내밀하리만큼 친밀한 유대감과 집단동질감을 옹호했고, 이 기간에 걸쳐 아렌트와 매카시의 평판 역시 형성되었다. 따라서 실천은 물론이고 이론적으로도 유대감과 집단동질성을 거부한 두 여성은 그들의 지지를 당연히 예상했던 집단들로부터 파리아로 낙인찍혔다. 20세기 후반의 사회운동들이 공감능력의 치유력을 연대성의 접착제이자 진보 정치학의 연료로 권장할 때, 아렌트와 매카시는 소스라쳐 움츠러들었다. 사회 정의라는 목표가 아니라 그리로 가는 길이 탐탁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략) 공감능력이 없는 윤리학을 상상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기에, 아렌트와 매카시는 전제가 다를 뿐 도덕적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기보다는 단순히 심리적으로 냉정한 인간들로 비쳐왔다.
☺️ 2인 정당 ㅋㅋ - P184

이 단편의 처음부터 끝까지 짐은 자신의 감정적 고통을 꼼꼼히 계산하는데, 바로 이 때문에 신념에 투신하지도 못하고 사실을 제대로 평가하지도 못한다. 하찮은 자신의 고통을 늘 수난으로 착각하면서 짐은 원칙을 고수하는 데 실패한다. "평균적인 지식인"의 놀랍도록 생생한 초상으로서, 짐에게 현실의 척도는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다. 자기 경험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잘 봐줘야 입증이 불가한 것으로 생각하고, 심지어 타인의 망상인 것으로 치부하기도 일쑤다. 그 무엇도 짐을 관통하고 침투할 수 없으므로 짐은 결코 흔들리거나 변화하지 않는다. 짐의 변화불가능성을 통해, 매카시는 터프함의 자기기만적 양태를 또한 풍자한다. 짐은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자기가 사실에 직면하고 신념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믿지만, 고작해야 미미한 불편을 진정한 수난으로 착각할 뿐이다.
☺️ 메리 매카시 이 소설 너무 궁금함ㅋㅋ 하찮은 좌파 지식인의 짐의 너무도 하찮은 수난ㅋㅋ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는 신념ㅋ풍자 꿀잼각ㅋㅋ

아버스는 인간 작인의 실패를 양식화하여 이를 트라우마도, 특별히 의미 있는 것도 아닌, 평범하면서도 가시적인 것으로 만든다. 이런 식으로, 실패는 자아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자신의 의도를 이루어내지 못한다.* 자기실현self-realization 프로젝트 하나하나가 유일무이하므로 실패가 특별한 것으로 남는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아버스의 작품은 작인과 그 한계에 관한 이야기다.
☺️ 작인, 행위자(Agent)와 행위 사이의 인과 관계. 인과적 힘. ‘작인‘(agency) 다른 번역은 없나? 어렵네... - P328

그러나 결국 디디온은 자기연민을 피하는 이상은 불가능하지만, 금욕주의는 우리를 위로하는 자기망상의 일환이라는 결론으로 타협한다. "우리는 이상화된 야생의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복잡성으로 인해 실패를 거듭하는 불완전한 필멸의 인간이고, 필멸의 운명을 밀어내면서도 항상 의식하고 있다. 이 필멸은 우리 안에 깊이 새겨져 있어 상실을 슬퍼할 때 우리는 또한, 좋든 나쁘든, 우리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다. 과거의 우리 자신 말이다. 이제는 없는 우리 자신 말이다. 다시는 될 수 없는 우리 자신 말이다."
☺️ 자기연민/금욕주의. 조앤 디디온 너무 특이해서 킵 해놓음. - P403

어떤 남성 지식인에 비교해도 ‘터프함’에서 뒤지지 않았던 이들은, *온정과 연민이란 수난자가 아니라 불행한 수난자들의 시련에 공감하는 자신의 도덕성에 심취하는 허영심에 불과하다*고 믿었기에, 무력한 감상주의를 거부하고 환상 없는 현실 직시에 근거한 유효한 정치적 비전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따라서 이들의 "차가움" 나아가 "비정함"은 현실을 대하는 감정의 온도라기보다는 잘 계산된 "지적 스타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 진짜로 바뀌길 원한다면 다른 인간이 되어야 한다. - P415


댓글(39)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티나무 2022-06-07 02: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캬!!!!!!! 이웃인 것에 감사합니다!!!!!! ❤️❤️❤️❤️❤️❤️❤️
공쟝쟝님 페이퍼로 아렌트 엿보기 늠 재밌고 좋아요~~~~~^^

공쟝쟝 2022-06-07 02:21   좋아요 2 | URL
확실히 쓰면서 공부가 되긴 하거덩요 ㅋㅋㅋ 🫡 열공하겠습니다! 원래 후다닥 쓰고 난티님한테 댓글 달려고 했는데 이제 자야게쒀요 ㅠㅠㅠ

종이달 2022-06-07 0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공쟝쟝 2022-06-07 10:1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다락방 2022-06-07 09: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한나 아렌트 그 세권짜리 셋트.. 품절인데 중고가 막 9만원 넘네요. -.-

공쟝쟝 2022-06-07 10:09   좋아요 2 | URL
전 안도하고 있어요 ㅋㅋㅋㅋㅋ 그거 있었으면 텅장됨 ㅋㅋㅋㅋㅋㅋ 아 ㅠㅠ 혁명론 읽고 싶어요. 다 뿌수고 싶다 ㅠㅠㅠ 아렌트 신 접선해서 한국 정치 개박살 내버리고 싶다 ㅋㅋㅋㅋ

독서괭 2022-06-07 12:32   좋아요 1 | URL
한길사에서 나온 거.. 그거 저 가지고 있지롱요.. 안 읽었지만..

공쟝쟝 2022-06-07 12:3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 괭님 ㅋㅋㅋㅋ 한달에 두권 사는 분이 된데엔 이유가 있었군욬ㅋㅋㅋㅋㅋㅋ 이제라도 ㅋㅋㅋ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야..,,,,

독서괭 2022-06-07 12:50   좋아요 1 | URL
네 과거의 죄를 청산하기 위해 이러고 있습니다..😭

독서괭 2022-06-07 1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글 읽고 저 두 친구분은 분명 v님과 공쟝쟝님일 것이다, 했는데 맞군요 ㅋㅋ 재밌게 읽다가 -단독자 아렌트의 사유를 들어보자. 인용문... 에 잠깐 단 커피를 준비하러 다녀올게요.. 어렵다..

독서괭 2022-06-07 12:22   좋아요 1 | URL
일단 아렌트의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바꿔 말해주는 공쟝쟝님을 서재친구로 두게 되어 기쁘고 감사합니다 ㅎㅎㅎ
근데 이 사상, ‘정‘을 강조하고 니편 내편 감정적인 문제로 엄청 옭아매는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정말 어렵겠는걸요. 저부터도 어려울 것 같고. 아렌트라고 쉽지는 않았을텐데, 그래서 더 대단해 보입니다. 그리고 삼겹살에 소주 마시면서 아렌트에서 시작해 양자역학으로 끝맺는 대화를 하는 여러분도 멋있어요♥

공쟝쟝 2022-06-07 13:08   좋아요 2 | URL
그렇죠… 너무 어렵겠죠… ㅠㅠ 그런데 그래서 너무 문제죠… 다들 지들이 파리아인 줄 아는 자기연민에 빠져버린 집단들이 정치를 한다면서 끌어다 쓰는 정념과 감정과 확증편향의 정치에 (이건 좌우 막론하고 페미니즘도 마찬가집니다…) 휘둘리는 먹고사느라 바빠 생각하는 게 버거운(근데 버거운거 맞아요? ㅋㅋㅋ 먹고는 살아서 생각 안하는거야?)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 대환장파티…
열려있어야 합니다. 자기 고통에 매몰되어 현실을 부정하면 안됩니다. 소중한 준거 집단을 옹호하느라 눈과 귀를 막아선 안됩니다. 알고리즘으로 취향마저 변하기 힘들어진 세상에서 아렌트의 가르침이 점점 더 중요해질거 같아요. 괭님아, 하지만 우리에겐 근사한 우정이 있습니다! 읽고 또 만납시다! ㅋㅋ (그 한길사 그걸 꺼내서 읽으세요!!)

단발머리 2022-06-07 1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삶에 지적인 대화를 원했지만 이토록 심한 지적임은 아니었다” 다락방님 말씀

˝아렌트 페이퍼를 원했지만 이토록 심오한 페이퍼는 아니었다˝ 단발머리 생각...

독서괭 2022-06-07 12:24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한분은 단발머리님이셨군요!

단발머리 2022-06-07 12:27   좋아요 2 | URL
토끼 귀에 얼굴에 수염 달고 빨간 안경테 쓰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 사진의 주인공은 페페로니 피자라서 우리 인간들은 셋 다 우스꽝스러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떻게 ㅋㅋㅋㅋㅋㅋ 한 장 보내 드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2-06-07 12:30   좋아요 2 | URL
그런 사진은 올려주셔야죠 단발님 ㅋㅋㅋㅋ

단발머리 2022-06-07 12:34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행입니다. 댓글로는 사진을 올릴 수가 없네요. 넘넘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6-07 12:45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 제목만 심오하지 ㅋㅋㅋㅋ 내용은 ㅋㅋㅋ 사실 이이의 심오한 정치사상을 이보다 더 쉽게 쓸 수 없지 않아요? ㅋㅋㅋ 단발님 양자역학 쉽게 써보라고욬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2-06-07 12:50   좋아요 2 | URL
더 쉽게 쓰라고요!! 그게 내가 쟝쟝님께 요청하는 바 한 가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양자역학 두 번 설명하면 지나가는 사람도 밀게 생겼어요. 우리 일단 오늘은 ㅋㅋㅋㅋㅋㅋㅋ 미시 세계 관심 접고 이 거시 세계를 살아갑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6-07 13:26   좋아요 2 | URL
이 책에서 제가 냄새 맡은 아렌트의 정치사상은 내 고통에만 매몰되지 말고 나와 삶과 경험의 지평이 다른 친구를 만나 세상을 짓는 일에도 용기를 내겠지만 중요한 건 연대 전에 고독할 줄 알아야 한다.. 함축되는 것 같습니다! (ㅠㅠ 아 근데 이거 너무 후려치는 거 같아 싫은데..ㅋㅋ 생각의 방식을 따라 읽어야지 아렌트적 사유의 고통을 알 수 있지 않겠나요?ㅋㅋㅋ 쉽게 터득하지 맙시다 ㅋㅋ아렌트 신께 예의를..)

단발머리 2022-06-07 13:00   좋아요 2 | URL
👍🏼👍🏼👍🏼 연대 전에 고독! 난 왜 요점 정리에 집착하는가 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6-07 13:03   좋아요 2 | URL
공부잘하는 사람들은 그러더라 ㅋㅋㅋ ㅋㅋ 연대 전과 후에 고독 인 것 같습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전 후에 고독을 꼭꼭 낑겨넣어 사유하지 않으면 편한대로 사유하다 현실직시 못하고 유겐트된대요 ㅋㅋㅋ

단발머리 2023-02-03 11:57   좋아요 2 | URL
나만 읽기에 아까운 (아, 쟝쟝님 유명하지요?) 댓글들 모아 댓글 모음집 냅시다 ㅋㅋㅋㅋ 진심임 ㅋㅋㅋㅋ 우리 사이의 우정을 근거로한 권유임 ㅋㅋㅋㅋㅋㅋ

persona 2022-06-07 13: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삭신이 쑤시고 아무한테나 치근덕거리고 앵기고 싶은 날이라 ㅋㅋㅋ 저 단단하고 깡깡한 게 좀 무서운데요. 근데 내가 단단하고 깡깡할 땐 저런 우정 괜찮은 것 같아요.

공쟝쟝 2022-06-07 15:55   좋아요 2 | URL
인누와요 귀욤이 펄도사님 ㅋㅋㅋ (치근덕 추군덕) ㅋㅋㅋㅋ 아 근데 좀 덥고 습도가 높네요 ㅋㅋㅋㅋ 저리가요 ㅋㅋㅋㅋ

persona 2022-06-07 18:3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 다행히도(?) 물리적으로는 치근덕대거나 앵기지 않아요. ㅋㅋㅋ 즐거운 저녁 되세요!

바람돌이 2022-06-07 2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아렌트의 저 용기. 그 시절에 유대인의 비극앞에서 대놓고 민족이나 집단을 사랑한 적 없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용기.
너무 멋있어서 넘사벽이네요.
게다가 이렇게 멋진 페이퍼를 쓰다니 공쟝쟝님도 저에게 넘사벽인 분이 될 것 같아 미리 슬퍼하고 있어요. ㅠ.ㅠ

공쟝쟝 2022-06-07 23:47   좋아요 2 | URL
아렌트의 멋있음에 공감하는 바람돌이님이 있어 보람된 오늘이네요 ㅋㅋㅋㅋㅋㅋㅋ 왜 왜 슬퍼요… ㅠㅠ 설마 제가 아렌트좀 좋아한다고 정치에 입문하기라도 할까봐요? ㅋㅋㅋㅋㅋ ㅋㅋㅋㅋ

mini74 2022-07-08 17: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ㅎㅎ 댓글도 넘 재미있었던 글이네요. 축하드려요 공쟝쟝님 *^^*

거리의화가 2022-07-08 17: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댓글은 달지 못했지만 재미나게 읽었던 글이었어요. 이렇게나 유쾌하게 지적인 대화를^^ 멋지신 분들!ㅎㅎㅎ

새파랑 2022-07-08 18: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간장공쟝공쟝쟝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적립금으로 필립로스 구매 추천합니다~!!

그레이스 2022-07-08 19: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공쟝쟝님 ~

러블리땡 2022-07-09 23: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

thkang1001 2022-07-10 0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휴일 보내세요!

독서괭 2022-07-11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려요~~ 이 책 읽어보고 싶어요!

2022-12-07 1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07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08 0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08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터프 이너프 - 진실을 직시하는 강인함에 관하여
데보라 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책세상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148) 문해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나치의 악행을 감정적으로 설명하는 쪽을 선호하는 취향과 기존의 독서습관이 아이러니의 개입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나치의 도덕적 붕괴를 감정보다는 이성적으로 인지하려 했던 “악의 평범성” 개념이 나치의 범죄를 진부하게 만들고 아이히만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오해받아 많은 독자의 기분을 상하게 했듯이, 아렌트의 어휘는 나치의 동기를 변질시켜 범죄를 더 가볍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괴상한 동기라도, 동기가 있다는 가정만으로도, 범죄의 거대한 규모를 뒷받침하는 극악무도한 악이 존재하는 효과가 생긴다. 반면 동기가 없다고 가정하면(혹은 아이히만의 출세욕처럼 부적절한 동기를 상정하면) 범죄자가 아니라 범죄 자체가 진부해지고 평범해진다.* 대량학살의 배후에 혐오스러운 동기가 도사리고 있는 편이, 아무 이유도 없을 때보다 견디기 쉬운 것도 아닌데* 말이다.


기실 아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고통은 애초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것은, 이 말은, 이 태도는,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의 고통을 나몰라라 하겠다는 것 역시 당연히 아니다. 


현실직시—아렌트는 현실을 직면하자고 했는 데,—물론 나는 동의하지만— 그녀의 요구와 이미 벌어진 고통 사이에는 어떤 심연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래서 감정을 떼어 낸다는 것이 불가해 할 만큼 어려운 일이란 걸 알(것도 같)지만, 그렇지만, 그렇기에 그녀의 주문이 끝끝내 모두가 저지른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심오한 윤리적 태도라는 것을 감히 이해한다. 


내 생각에 … 그녀는 ‘진짜’로 고통을 알기 때문이다. … 그러니까, 나는 거칠게 이렇게 해석한다. 아렌트를 비정하다고 공감 능력이 없다고 짜증스러워했던 (당시의 남자) 평론가들은 고통의 곁에 가까이 있어보마한(뭐 그것도 어느 정도의 윤리적인 태도라고 생각해두기로 하자. 한국의 현실은 좌우를 막론하고 아이히만만 드글드글 하니까.) 종류의 사람들이라고. 


“(150) 즉,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사유’하는 능력의 부재를 말한다. 아이히만과는 의사소통 자체가 불가능하다. *거짓말쟁이라서가 아니라 타인의 말과 존재에 대항해 자신을 보호하는 강력한 막을 둘러치고 ‘현실’ 자체를 차단해 자신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비탈에 있는 것은 아닐까. “왜곡이나 회피 없이 현실과 일대일로 마주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 만큼은? 그러니까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은 결국 나를 당신을 지켜보는 모두를 … 어떤 사유의 지평으로 떠민다. 동정과 연민에의 호소보다 불편하기에 무정하다 욕하지는 말자. 감정은 편하다(이건 자동 반응이니까) 사유는 불편하다(이건 노동이니까) 그러나 인간 개개인은 각자의 고유한 인식 방법이 있고 가끔 우리는 ‘다르게 생각해보기’라는 방식으로 연대를 도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상황이 너무도 불편하면 사유라는 불편한 노동을 해야 한다. 단 쉬운 사유방식이 아니라 안 해 본 방식의 사유(사유 자체에 대한 사유?)를 해보아야 한다. 그게… 그게 어쩌면 이 고통의 의미일지도. 감히.


그러므로 이 무정하고 터프하고 강인하고 멋있어서 죽겠는 아렌트를 꼭 읽어야겠다. (요 며칠 간의 나는 심각한 정신적 치임에 성 정체성까지 위협받았다. 언니, 날 가져요. 엉엉) 


다시 돌아와서.

고통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고통 자체의 참담함 앞에 가해자의 비인간성을 지목하며 이것을 우리 모두는 반복하지는 맙시다라고 말하며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다. 혹은 이 구조가 나쁩니다, 이 구조를 바꿉시다 하며 연대를 공감을 싸움을 촉구(대체로 매우 추상적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만이 고통을 직면하는 태도인가? 그것은 정말로 고통에 필요한 감정 이입인가? 


내가 아는 한 현재진행형인 고통에 감정을 이입하는 용기와 결단이야 말로 오만이고 위선에 찬 나르시시즘이다. 모든 자아를 타자를 위해 통째로 비울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에 테레사 수녀라고 할지라도) 그 대상이 고통이든 욕망이든 상관 없이 유아론이다. 우리는 이미 끝나버린 고통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이입하는 태도를 가져볼 수 있다. 애석하게도, 환장하겠게도. 


현재 진행형인 고통. 리얼리티로서의 고통. 은 통째로 고통이므로 그냥 견뎌지는 것이지 어떤 함량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유가 있다고 해서 더 수월해지는 것도 까닭이 있다고 해서 더 참을 만해지는 것도 아니다. 매는 그 이유를 알고 맞아도 아프고 모르고 맞아도 아프고 첫번째로 맞아도 아프고 마지막으로 맞아도 아프다. 아프다. 아픈 거다.


그리고 그것은 끝났다. 다른 종류의 고통이 시작된다. 

왜.

상황이 심각해지면 육하원칙까지 간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내가 왜 그랬을까.

그는 왜 그랬던 걸까.

뫼비우스의 띠처럼 되돌아와버리는 같은 질문들이 무한대로 반복되고 고통은 리플레이 된다. 때때로 나는 미칠 것 같은 상태가 된다. 사람들은 잊으라고 말하고 아직도냐고 묻고 실은 어쩔 줄 몰라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어쩔 줄 모르게 만드는 것, 곁을 괴롭히는 것 까지도 고통의 연장선일까. 나의 고통이 정말로 벗어날 수 없는 것 처럼 여겨지는 극점은 내 상처가 내 곁을 상처주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다. 


어쨌든 나는 살아야 한다. 현실을 직면해야 한다.

씻어야할 설거지가 있고 벌어야할 돈이 있다. 

더는 리플레이를 하고 있을 겨를이 없다. 그건 나에게 밥을 주지도 않고, 위안을 주지도 않으며, 답을 주지도 이미 벌어진 고통을 없어지게 하지도 않는다. 자기 혐오와 인간 혐오의 상태만을 부추길 뿐이다.


이제 사유의 방식을 바꿀 때가 되었다. 더 이상 이유를 찾지 않는다. 같은 말로 의미 역시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때때로 쉽게 사로잡히게 된다. 이유와 의미에 원인과 결과에) 내 생각에 고통의 핵심으로 곧장 진입하면 결국엔 이유가 없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붙잡는 것은 좀 서글픈 기대이고 어쩌면 최면이다. 그거 없이는 살기가 너무 힘드니까. 환상과 판타지 없는 인생이란 황량하기 그지 없을 것과 같다는 비유까지 들어가며. 현대의 뇌과학은 인간의 뇌가 인과론에 얼마나 익숙하고 음모론에 얼마나 취약한지 알려준다. 고통으로 변해버린 뇌가 정당한 이유를 찾다가 결국 음모론으로 안착해버리는 것 까지도—고통의 효과라고 생각하면 고통에 치가 떨리지만. 


나에겐 아렌트가 있다. (그리고 푸코도 있는 것 같…다..?) 현실을 직시하자. 현실을 직면하자. 생각하자. 생각하자. 


기운내 서 생각하고, 타자와 현실을 공유하고 논쟁하자. 나를 보호하는 것은 맞지만 현실을 부정하면서까지 보호하진 말자. 


이유를 묻지 않고 까닭을 찾지 않으면서도 고통에 취해버린 뇌의 운동 방식을 끊어내는 방법.

취하지 않는 방법. 도피하지 않는 방법.

살아가는 방법 혹은 사랑하는 방법 어쩌면 아렌트가 승리한 방법. 


나는 한나 아렌트를 읽을 것이다. (!!!)


먹고사니즘에 팍팍한 만국의 노동자(ㅋㅋㅋㅋ)들이 기를 쓰고 읽고 쓰는 것들이 지적 허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범한 우리들이 읽고 쓰자. 살아야 하는 거니까. 쉬운 이유와 연민에 안도해봤자 아무것도 변하는 건 없으니까.


덧붙임, 아래의 인용문의 아이히만에 조주빈을 넣어보자. ㅋㅋ



그러니까 이는 결코 "공감능력empthy이 아니다. … 다른 사람의 관점을 가정하고 수용한다는 의미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아렌트의 견해로 보면, 그건 아이히만이 다른 사람을 향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었다(물론 그의 증언만 봐서는 그에게 감정을 느낄 능력이 있었다는 증거도 없다). 아이히만이 마비된 양심으로 유대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건, 유대인에게 자기 자신의 입장과 다른 독자적인 견해가 있다는 가능성조차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렌트의 아이러니는 비록 조롱을 통해서라도 복수성을 실현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아이히만의 말 자체를 꼬투리 잡음으로써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관점을 보여주고, 동시에 그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누구나 볼 수 있을 거라는 전제를 깔았던 것이다. 아이러니가 무감정한 수사라는 점은 복수성과 공감능력 사이의 간극을 암시한다. 그러나 아렌트를 폄하하는 사람들은 그 간극을 넘지 못했다. *문해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나치의 악행을 감정적으로 설명하는 쪽을 선호하는 취향과 기존의 독서습관이 아이러니의 개입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나치의 도덕적 붕괴를 감정보다는 이성적으로 인지하려 했던 "악의 평범성" 개념이 나치의 범죄를 진부하게 만들고 아이히만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오해받아 많은 독자의 기분을 상하게 했듯이, 아렌트의 어휘는 나치의 동기를 변질시켜 범죄를 더 가볍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괴상한 동기라도, 동기가 있다는 가정만으로도, 범죄의 거대한 규모를 뒷받침하는 극악무도한 악이 존재하는 효과가 생긴다. 반면 동기가 없다고 가정하면(혹은 아이히만의 출세욕처럼 부적절한 동기를 상정하면) 범죄자가 아니라 범죄 자체가 진부해지고 평범해진다. *대량학살의 배후에 혐오스러운 동기가 도사리고 있는 편이, 아무 이유도 없을 때보다 견디기 쉬운 것도 아닌데 말이다*. - P148

*아이히만의 "무사유"는 현실과 접점을 유지하고 타자와 현실을 공유하고 논쟁하는 데 철저히 실패한 원인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아렌트가 정의하는 "공통감"이다. "아이히만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말을 제대로 못 하는 그의 무능력은 ‘사유’의 무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즉,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사유’하는 능력의 부재를 말한다. 아이히만과는 의사소통 자체가 불가능하다. 거짓말쟁이라서가 아니라 타인의 말과 존재에 대항해 자신을 보호하는 강력한 막을 둘러치고 ‘현실’ 자체를 차단해 자신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아이히만은 현실에 직면하게 만드는 부류의 사유에 저항하기 때문에 독일의 도덕적 붕괴를 너무나 잘 보여준다. 바로 그것이 아이히만이 봉사했던 체제의 범죄이기 때문이다. 아이히만의 무사유가 지적능력의 결핍 또는 교육의 결여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아렌트는 무사유가 천성이나 사회화보다는 의지의 소산이라고 주장한다(이 구분은 《정신의 삶》에서 핵심적 개념으로 발전한다. 사유가 도덕의 보루가 되고, 따라서 당연히 교육받은 자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자질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언어 안에서 복수성과 구체성은 현실을 차단하는 게 아니라 지키는 방어막으로 함께 어우러져 작용한다. 복수성은 자기 자신을 거울로 비추어 그 거울상만을 보여주지 않으며, 구체성은―아렌트가 진델 그린즈판의 증언에서 보았듯―인간이 왜곡이나 회피 없이 현실과 일대일로 마주하게 해준다. - P150

현실은 언제나 복수성과 공통감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는 우리가 타자와 세계를 공유해야 한다는 의미다. 아렌트는 20세기 후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질문은 ‘무언가가 전체주의로 이끄는가 아닌가’라고 믿었기에, 정치적 행동과 정치적 숙고에 대한 아렌트의 처방은 더 이상 명확할 수 없으리만큼 명징했다. *바로, 모두 함께 현실을 직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아렌트가 있는 그대로 공유하려는 현실은 고통스럽지만, 아마 더 중요한 점은, "미리 숙고하지 않은 주목"으로 현실을 보기 위해서는, 잠시 참여를 멈춰야 할 만큼 불편한 수난의 양식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타인의 관점에 대입해 현실을 시험하는 일 역시, 우리 자신의 관점을 보강하고 확장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는 가치를 내재하면서도 위험성을 지닌다. 복수성에 가치를 두는 사유자는 그 예측불가능성과 불확정성 또한 포용해야 한다. 그리고 구체성은 현실을 인지가능하게 하고 공유할 수 있게 해주지만, 현실의 사실성 자체는 우리를 지독하게 견디기 어렵게 할 수도 있다. 현실을 지키는 방어막(복수성과 구체성)은, 그렇다면, 아렌트의 사유와 감정의 철학에서 가압지점이기 때문에 더욱더 투철한 검증을 받아 마땅하다. *방어막 없이 현실을 직시하고, 이에 필수적으로 따르는 도덕적·정치적·심리적 위험성을 감수하도록 하는 자질은 무엇인가?* 그리고 실패의 위험성은 무엇인가? 아렌트는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 수양해야 할 자질보다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는 데 실패할 경우의 위험성을 훨씬 더 힘주어 상술한다. - P152

요점은 *정신이 감정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신은 감정이 드러나는 방식을 통제할 수는 있다. 그리고 "우리는 격정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상당한 자제력을 수련해 길러야 한다".(LOTM, 72) 공적 삶을 감정으로 오염시키거나 도덕적으로 위험이 다분한 무사유에 의존하지 않으려면, 고통을, 그게 아무리 압도적인 고통이라도 그저 순수하게 참아내야만 한다. 암묵적으로 오로지 시간만이 격정을 잠재울 테고 압도하는 감정을 잦아들게 한다는 함의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고요를 기다리는 행위를 무사유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아렌트가 보기에 무사유는 고의로 생각을 하지 않는 행위다. 아니, 그보다 사유를 ‘미루는’ 짓이다*. 무사유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적극적으로 회피하는 것이며, 대체할 만한 사유의 양식으로 위로하고 달래주는 사유를 제시한다. - P173

"현실 직시"는 클리셰처럼 들리고 또 실제로도 아렌트와 매카시가 생각한 과정의 역동성을 상상하지 못한다면 클리셰로 전락한다. 아렌트의 현실 직시 개념은 칸트의 ‘공통감’에 근거한다. 합리적 존재는 그 자체로 명백하고 자연스러운 진실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세계를 바라보는 필연적으로 불완전한 시각을 능동적이고 복잡한 과정을 통해 공유한다는 개념이다. - P188


댓글(12) 먼댓글(1)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연대가 아닌 고독으로만 성취할 수 있는 강인한 우정(혹은 이상주의)에 대하여
    from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2022-06-07 01:55 
    자리에 앉자마자 왜 한나 아렌트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각자의 빠짐 포인트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하이데거 쓰레기 자식을 도합 열 번 씩은 외치고… 벤야민 이야기를 하다 갑작스럽게 도나 해러웨이로 대화의 주제가 이어지면서 우리 앞에 구워지고 있는 것이 삼겹살이라는 사실에 잠깐 아이러니를 느끼다가… 또… 에 … 그러니까 도나의 심오함은 너무도 심오해서 육식의 성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입장과는 핀트와 어긋나는 부분이 있지 않느냐고 뭔지는
 
 
바람돌이 2022-06-04 1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놓기만 하고 아직 안읽고 있는데 왠지 진짜 멋진 언니들의 모습이 잔뜩일것 같은..... 그렇네요. 뭐 한나 아렌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멋지니까 말이죠. 공쟝쟝님의 한나 아렌트 읽기와 푸코 읽기를 모두 응원합니다.

공쟝쟝 2022-06-04 13:08   좋아요 2 | URL
네.. 베유로 맛보고 아렌트로 정점찍고 메리 매카시로 미학으로 승화시킨담에 조앤 디디온으로 반성까지 해버리는 진짜 너무 좋은 책인데… 번역을 좀 너무 어렵게 해놓은 것 같아요 ㅠㅡㅜ! 응원받고 독려갑니다! 바람돌이님두 열시미 읽고쓰시긔😍

다락방 2022-06-04 14: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도 이미 이 책 갖고 있지롱요~ 읽기만 하면 된다!! 😤

공쟝쟝 2022-06-04 14:1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 이미 터프하신데 또 뭘 더 읽어서 터프하실라고 ㅋㅋㅋㅋ

2022-06-04 1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04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04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04 2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05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06 0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06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06 1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 한나 아렌트의 삶과 사상을 그래픽노블로 만나다
켄 크림슈타인 지음, 최지원 옮김, 김선욱 감수 / 더숲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왜, 세 번째 탈출이어야 했는지. 신앙-철학-사랑. 그러니까 삶의 코어와 맞닿은 심각하게 중요한 무엇에 대한 철저한 배교. 그것은 아무나 저지를 수 있는 게 아니고, 단독자 아렌트는 이 모든 걸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