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존재-인식-론
캐런 버라드에 대해 임소연이 <페미니스트 과학자는 낙태를 어떻게 보는가?>라는 제목으로 쓴 글을 읽고 쓴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프랑스 철학의 대가 미셸 푸코와 알콩달콩 6일째인 쟝쟝님이 이 책을 읽으며 나를 떠올린 이유를 133쪽에서 찾았다.
버라드의 독특한 철학은 닐스 보어의 양자 물리학을 근간으로 한다. 보어는 관측 대상과 관측 장치의 분리 불가능성 및 얽힘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133쪽)
양자역학을 읽으며 나를 생각하다니. 놀라운 일이고 반가운 일이다. 이 글의 제목과 논의의 시작이 ‘낙태’에 있지만 내 관심은 ‘존재’에 대한 부분이다. 양자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캐런 버나드의 ‘존재는 현상일 뿐,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
전통적 이분법을 넘어서고 인식자의 초월성이 허구임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양자 물리학의 철학이 페미니즘과 일맥상통한다고 보았다. 주디스 버틀러와 푸코를 통해 보어를 독해했으며, 특히 보어의 장치 개념을 젠더 수행성 및 담론적 실천의 물질성 등과 연관해 더욱 도발적인 개념으로 재탄생시켰다. (137쪽)
‘존재가 현상일 뿐,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이분법 탈피’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시청한 <책. 봉. 박. 두. 최재천 교수님 책장 드디어 털었다!>에서 최재천 교수는 꼭 추천하고 싶은 책 4권을 밝혔는데, 그중에 한 권이 더글라스 호프스테터의 『사고의 본질』이라는 책이다. 설명에 따르면, 이 책의 중심 생각은 ‘인간 사고의 핵심은 유추’라는 것이고, ‘(우리는) 모든 것을 비교하면서 이해한다’는 것이다.
페미니즘과 오리엔탈리즘 비판의 근거가 되는 이분법이야말로 ‘비교’를 통해 이해하는 사고방식이다. 상대를 규정함으로써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는 암흑세계 속, 유아가 엄마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나의 쾌락과 동시에 작동하지 않는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 나의 의지와 다르게 움직이는 우주가 존재한다는 인식이, ‘자아’의 발견으로 확정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방식이 아닌가 싶다. 구한말 유럽인을 처음 만난 조선인이 당혹감을 느낀 것과 마찬가지로 조선인을 처음 만난 유럽인 역시 심각하게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구한말 유럽인에까지 갈 필요도 없다. 비슷한 재료로 비슷하게 만들어도 각 집의 김치 맛은 제각각 다르다. 우리(우리 가족)는 다른 집의 김치는 ‘젓갈이 많이 들어갔다’, ‘양념이 약하다’는 식으로 우리 집의 김치맛이 어떤지를 ‘규정한다’. 상대를 통해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타자에 대한 인식과 이원성 발견에 대해 보부아르는 이렇게 썼다.
타자의 범주는 의식만큼 근원적인 것이다. 가장 원시적인 사회와 가장 오래된 신화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동일자와 타자의 이원성을 발견한다. 이러한 분할은 애초에 성적 구분이란 특징을 띠지 않았고, 어떤 경험적 사실에도 속하지 않았다. 이는 특히 중국 사상에 관한 그라네Marcel Granet(1884~1940)의 연구와 인도·로마에 관한 뒤메질Georges Dumézil(1898~1986)"의 연구에서 눈에 띄게 나타난다. 바루나와 미트라, 우라노스와 제우스, 해와 달, 낮과 밤 같은 한쌍에는 애초에 어떤 여성적 요소도 내포되어 있지 않았다. 선과 악행과 불행의 원리, 좌와 우신과 악마의 대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타성은 인간의 생각에 근본적인 범주다. 어떤 집단도 자신 앞에 타자를 즉시 상정하지 않고서는 자신을 주체로 규정짓지 못한다. (『제 2의 성』, 29쪽)
즉, 의식만큼 근원적인 타자에 대한 인식. 나와 너, 우리와 너희의 구별과 구분은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식이다. 따라서, 이분법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이분법 속 ‘가치 판단’이 문제다. 여성에게 육체와 자연을, 남성에게 정신과 문명을, 동양인에게 자연과 열등성을, 서양인에게 문명과 우월성을 ‘배분’하는 판단, 그러한 판단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맥락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다. 며칠 전 자랑스러운 한국의 BTS가 백악관을 방문해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아시아계 관련 혐오범죄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기자단 앞에서의 간단한 브리핑 시간에 슈가가 말했다. “나와 다르다고, 그것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옳고 그름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평등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름을 발견함으로써 세계를 인식하는, 인식해 왔던 인간이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식민시대를 살았던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지구촌 대부분의 나라는 유럽 서구 남성들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우리는 영원히 여성이고, 유색인이고, 후진국이다. 벗어나겠다는 결심을 강제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스스로 일정 정도의 서구 중심주의를 품고 비판하고 그리고 벗어나야 할 것이다. 그 고민의 끝에는 버라드의 주장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존재는 현상일 뿐,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의 주장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1이 선물해준 책은 『시선은 권력이다』인데, 이게 물리학의 ‘관측자 효과’와 연관이 있는 거 아니냐며 잔뜩 흥분해 있었건만, 그래서 '양자역학이 뭐냐'는 친구의 질문에는 제대로 답해 주지도 못하고, 거시 세계 설명한답시고 친구 1을 친구 2에게 떠밀고, 봤죠? 알겠죠? 를 연발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책과 와인, 자몽에이드를 두고 사진을 찍었는데, 빨대 너는 웬일이냐. 누구든 좋으니, 제발 저 빨대 좀 치워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