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장지원 그림 / 샘터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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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말 분위기 나는 연말

올해 2010년도 이제 얼마 안 남았다. 12월 1일이 된 후부터 슬슬 주위 사람들의 입에서는 ' 연말 잘 보네세요. ' 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  부모님이 주로 다니시는 은행에서는 벌써 부모님 폰으로 연말 인사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부모님과 동생 이름으로 가입된 보험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 XXX님, 건강하고 즐거운 연말 보내시고 2010년 마무리 잘 하세요. '  

아직 내 휴대폰에는 연말 인사 문자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친구 녀석들은 평소에 자주 만나고 연락을 해서 그런지 아직 연말 인사 문자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12월 31일이 되면 나에게 연말 인사 문자 보내겠지 하고 생각하지만, 정작 나에게 오는 친구들의 연말 인사 문자는 많아야 5개다. 몇년 전에 한 번은, 대학교 과 선후배, 동기들에게 거하게, 아니 무식하게(?) 단체 연말 인사 문자를 보낸 적이 있었다. 보낸 사람들의 수만 해도 무려 20명 넘었는데 고작 답변 인사해준 사람의 수는 8명이다.  사실, 단체 문자 보내기전에는 20명 넘는 사람들이 답변 문자해주길 바라지는 않았다.  평소의 예의 바른 이미지(?)를 고수하기 위해서 보낸거 뿐이다.  오히려 모든 이들이 한꺼번에 답변 문자 오게 된다면 완전 문자 폭탄 수준이 될 것이다.  연말 인사 혹은 연말 인사 문자 답변을 안 해주는 이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은 새벽중에 보내는 연말 인사 문자이다. 인간의 약점을 간파할줄 아는, 잔머리 잘 굴리고 약삭 빠른 성격의 친구들이 간혹 보내기도 한다.  문자 메시지 도착 소리에 잠을 깬 적이 한 두번이 아니어서, 12월 31일날에 잠을 자게 되면 항상 휴대폰을 꺼둔다.  그리고 새벽에 보내는 친구들의 연말 인사 문자와 비슷하면서 역시 짜증나게 하는 것은 생전 모르는 번호가 문자 보낼 때이다.  친구면 당장 전화 걸어서 쌍욕 날려도 무방하겠지만, 낯선 번호가 문자 오면 당황할 수 밖에 없다. 잠결에 문자로 잘못 보냈다라고 폰을 만지작거릴수도 없고, 그렇다고 친구처럼 낯선 사람한테 욕을 할 수도 없을테니 말이다.  결국에는 연말에만 잠시 폰을 끄고 잠을 자는데 특효약인거 같다. 

휴대폰으로 연말 인사 문자 메시지를 주구창창 받는 것도 괴롭지만, 그래도 연말이 되면 사람의 감정이 즐거워지게 되고, 내년에 대한 설레임 때문에 기분이 들뜬 것은 부정할 수는 없다. 연말에는 각종 망년회를 통해 한 해동안 마음 속에 쌓아두었던 스트레스들을 어느 정도 날릴 수 있다는 점에서 좋고(물론 너무 과하게 술을 마시면 신체뿐만 아니라 마음도 피곤해진다. 이러니 연말이 되면 망년회라는 소리만 들어도 기피하는 사람들 있기 마련이다)  12월에는 크리스마스라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기념일도 있다. (혼자 사는 솔로들에게는 크리스마스 역시 그닥 반갑지 않은 날일 것이다)  이렇듯, 한 해의 기억들을 마무리하고 내년에 대한 기대감에 가득 차야지 정말 연말 분위기가 난다.   

하지만, 이번 해는 그렇게 즐겁고 훈훈한 연말 분위기가 나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에 발생한 연평도 습격 사건으로 인해서 국민들의 마음 속에는 북한 제2의 도발 그리고 전면전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하기만 하다. 연평도에서 살았던 주민들은 그 때의 공포와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지금도 좁디 좁은 찜찔방에서 지내고 있다. 

2010년이 끝나는 시점에만 사람들의 감정이 어두웠던 것이 아니다.  올해 초에는 용산 참사 사건으로 인해서 권력 앞에서 굴복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모습을 우리는 TV로 목도했으며 해결되지 않은 4대강 사업 문제 때문에 올해 내내 대한민국은 소란스러웠다. 2010년에는 남아공 월드컵 그리고 최근에 성황리에 마친 광저우 아시안게임으로 온 국민이 즐겁고 웃었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TV와 신문에 비춰진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잔혹한 범죄들, 폭력으로 가득한 학교 교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는 잠깐 사그러졌던 대한민국 특유의 우울을 또 다시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 요즘 연말 분위기가 아니라 종말 분위기가 나는 듯해요. '  

내가 주로 들리는 인터넷 카페의 어느 회원분이 남긴 댓글 한 마디가 올해 연말 분위기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맞는 말이기는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만 하다.

  

 

  기분이 잡치다거나 우울할 때 읽게 되는 글

요즘 같은 기분이 잡치다거나 우울할 때는 나는 항상 책을 읽는다.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그나마 좋은 위안처이면서도 간혹 웃음을 유발하게 만드는 개그맨 행세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이유보다 독서를 더 좋아하게 만드는 것은 책 속 저자의 목소리가 나의 우울하고 상처받은 감정들을 토닥거릴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저자의 글로부터 위안을 받게 되면 잠시나마 흐트려져 있던 감정들을 추스릴 수 있게 된다. 특히 나의 감정을 쉽게 다스리게 만드는 유일한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글이 바로 故 장영희 교수의 글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교수가 번역한 영미문학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생전에 썼던 칼럼을 모은 에세이집과 단상을 곁들인 영문학 시집들을 다 읽어봤다.  하루하루가 고단하기만 했던 군대 일병 시절에 장영희 교수의 첫 에세이집 <내 생애 단 한번>을 접하면서 그녀의 글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첫만남부터 나의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긍정적인 마음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그 때부터 그녀의 글이 무척 좋았다. 

작년에 그녀가 세상을 떠나게 됨으로써 유작이 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었을 때는 이제 맑디 맑은 그녀의 글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워었는데, 최근에 나온 공식적으로 마지막 작품인 에세이집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라는 책을 읽게 되어 반가우면서도 또 한 번 '마지막' 이라는 감정이 앞선 나머지 시무룩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책 제목처럼 그녀의 글은 나에게 ' 축복과 같은 꽃비' 가 되어 왔다. 마침 어두운 분위기의 연말에 때마침 그녀의 글을 읽게 되나디 정말 축복이다.  

다행히, 이번 글은 전작의 에세이들처럼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살아가야하는 삶에 대한 자조적인 감정들이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간간히 몇 몇 문장 속에서 은근히 그녀의 어두운 면이 보이기도 했지만  '희망' , '사랑' ,  '웃음' 과 같은 그녀의 글에서 항상 등장하는, 긍정적인 단어들이 많은 것은 여전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소개한 영미 시들 역시 읽는 이의 감성을 자극해주고 있었다. 

    

 

  우리 스스로 숨겨놓았던 눈물 

이번 에세이집에 수록된 모든 글과 시는 다 좋았지만, 그 중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에세이 한 편은 ' 숨겨놓은 눈물을 찾으세요 ' 라는 이름의 글이었다.  장 교수는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숨겨놓았던 눈물을 찾는 것이 척박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글의 요지는 다른 에세이의 내용과 비교하면 밀리는 감이 있고 읽는 사람마다 글에 대한 감정이 제각각이듯이 어떤 이들에게는 글이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 짦막한 글을 읽으면서 2010년을 살아가면서 그동안 눈물을 숨겨두었던 감정의 자세가 슬그머니 떠올려졌다.  감정이 뒤흔들 정도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들과 책들을 보면서 눈물을 한 번 흘린 적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머릿속에는 눈으로 입력된 장면과 내용들이 오롯이 기억이 났었지만 정작 그 순간에 내가 눈물을 흘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 눈물을 한 번도 흘리지 않았던 것이다.   

 

 

  눈물 흘릴 줄 아는 방법을 모르는 채 살고 있는 현대인들

올해 정말 기억에 남을 감동의 장면은 여름에 온 국민을 하모니의 감동으로 느끼게 해준 '남자의 자격 - 하모니 편' 이었다.  각기 다른 성격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서 급조적으로 탄생된 오합지졸 합창단이 처음으로 합창 경연장에서 내는 목소리는 모든 국민들과 관중, 그리고 이들을 지도하는 박칼린 씨마저 눈물을 흘리게 할 정도로 감동의 결정체였다.  

남자의 자격 합창단 다음으로 눈물이 나올만한 장면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비인기 종목이나 다름 없었던 인라인스케이트 선수 우효숙 씨의 금메달 시상식 장면이었다. 낯선 경기장이 있는 중국에 있는 동안 고국에 있는 몸이 불편한 친할머니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이 앞섰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할머니를 위해서 꼭 금메달을 따야겠다는 마음도 굳게 먹었다.  결국, 그토록 바라던 금메달을 따게 되었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경기가 끝나고 난 뒤에 감독이 조심스럽게 우 선수에게 비보를 전해주었다. 한국에 계시던 할머니가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후 메달 시상대에 오른 우 선수의 얼굴에는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단순히 비인기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기쁨의 눈물이 아닌,  사랑하는 할머니에게 금메달을 걸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애통의 눈물이었다.   

이런 장면들은 우리들의 눈가를 촉촉히 할 정도로 가슴 뭉클한 사연이 있기 마련인데 이들의 감정에 동화되면서 나는 그들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아니, 흘리지 못했다.  왜 눈물을 흘리지 못했던 것일까?   

아마도 남자는 세 번 울어야한다는, 깊게 박혀있는 사회적인 시선 탓도 있지만 요즘 감정이 메마른 현대인들의 마음에는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방법이 잊혀지고 있었다.   

우리 주변 세상이 너무 어둡고 우울하다보니 작은 일에도 쉽게 감동과 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사이버 공간 안에서 타인과의 만남 역시 우리들의 감정을 메마르게 하고 있는 요인이다.  우리는 사이버 공간에서 감정의 표현을 나타내는 이모티콘을 자주 사용한다. 

  " 이 사진 속 장면이 슬퍼요. ㅜㅜ ' , ' 멀쩡하던 그 분이 갑자기 돌아가시다니,, ㅠ_ㅠ "  

'슬픔' 이라는 감정을 우리는 눈물 흘리는 장면의 이모티콘으로 표현한다. 서로 얼굴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나기 위한 방법으로 이모티콘이 유일하다.  하지만, 아무리 댓글에서 'ㅠㅠ' 를 남발한다고 해도 타인은 내가 진심으로 슬픈 감정을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결국에는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나마 드러내는 언어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보다 간결하면서도 쓰기 편한 이모티콘의 유혹에 벗어나지 못한 채 언어 껍데기들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나 역시 이모티콘사용이 편하다는 이점 때문에 이모티콘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나지 못한다면 ' 감정이 눈꼽만큼도 없는 ' 인간으로 보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아바타' 과 자신의 실명이 아닌 '닉네임' 을 사용하면서도 우리는 사이버 공간에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든 감정을 표출하려는 '인간' 으로 보이려고 한다.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자

  '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부(富)이다. '

눈물에 관한 에세이의 마무리를 프랑스의 소설가 생 텍쥐페리의 명언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눈물은 꼭 감정적으로 나약한 사람들만 흘리는 것이 아니다. 또 무조건 슬플 때나 화가 날 때 나오는 액체도 아니다.  나보다 못하고 약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 영화 속 장면이나 책 속 문장을 보면서 생기는 감동적인 마음을 통해 눈물이 나오기도 한다.  아직도 눈물 흘리는 모습을 남들에게도 보이기 싫다면 혼자서라도 눈물을 흘려보자.  눈물은 사람의 우울한 감정을 치유할 수 있는 약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영화를 본다거나 책을 읽을 때 눈물샘을 건드리는 순간이 온다면 눈물샘이 하는대로 내버려두자. 그러면 두 눈에 눈물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될 것이다.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을 가짐으로써 지금과 같은 암울하고 어두운 세상 속에서 감정이 메마르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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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2-04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따뜻한 글이예요. 너무 감사드려요.
사이버 공간도 결국 사람 사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페르조나(가면)이 훨씬 강화된 공간이기도 하구요. 그게 매력이기도 하죠.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고, 포장된 나로서 살아갈 기회의 제공이라는거.

연말. 사랑의 열매의 단란주점 사건으로 인해
뚝 떨어진 기부 문화 기온을 보면서, 정말 안타까왔습니다.
올 연말은 이래저래....... 조금은 서글픕니다. 그래도
우리 멋진 겨울 시작을 맞이하기 위해 힘을 내볼까요, 화이팅!

cyrus 2010-12-04 20:04   좋아요 0 | URL
많이 바쁘실텐데 제 서재에 들려주시네요.
마고님도 얼마 남지 않은 연말에는 서글픔을 훌훌 털어버리고
웃음으로 마무리되시길 바라요.

stella.K 2010-12-05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 얘기일지는 모르겠는데, 안평도 사건을 보면서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그런데, 연평도 주민들 전부는 아니지만 어떤 사람은 독기가 서려있더군요.
그게 더 마음을 쓸어내렸습니다. 어렵기는 다 같이 어려운데
사람들 저마다 어쩌면 이렇게 반응이 다를까 싶더군요.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은데, 한다면 나라겠죠.
근데 나라는 너무 거창하고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니고...등등.
사는 게 점점 팍팍해서 큰 일이어요.

장영희 교수의 책들은 정말 좋죠.
저는 몇 년 전 모 신문에 칼럼 쓰신 거 보면서 정말 미문이구나 했어요.
그걸 책으로 묶은 <문학의 숲을 거닐다> 아직도 제 책상 책꽂이에 꽂혀있습니다.
다른 책도 읽어봐야 할텐데 말이죠.^^

cyrus 2010-12-05 13:48   좋아요 0 | URL
저도 갑작스런 안평도 사건으로 인해 마을에 사는 민간인과
군인이 희생되었고 정든 고향을 떠나야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습니다, 거기에다가 재벌 2세의 폭력 사태 등
자꾸 눈쌀을 찌푸리게하는 사건들이 연달이 터지니 나라 분위기가
어수선하네요. 내년에는 사회 분위기가 좋게 반전되기를 바랄뿐이네요^^


2010-12-05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반양장) 펭귄클래식 3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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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174] 지킬박사와 하이드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 - 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 이상 <거울> 중에서 - 

 

 

  사회적 인물들의 주먹질과 매질        

최근에 모 대기업 회장의 친척관계인 재벌 2세가 노동자를 구타하고 이에 대한 매 값을 지불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문제적인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게 되자 재벌 2세의 행동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 사건이 터지고 난 후, 또 한 번 부자들에 대한 대중의 냉소적인 시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돈과 권력이 많은 자의 비인간적인 횡포에 국민들 머리에 뿔이 나고 만 것이다.  자신보다 연세가 많으며 자신의 생존권을 되찾기위해서 홀로 1인 시위를 벌인 노동자에게 혹독한 매질을 가한 것은 문제가 있을뿐더러 무엇보다 그 자신이 행한 폭행을 금액으로 계산 처리하여 지불한다는 점은 자신의 성숙되지 않은 인격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만 셈이다.

이번 재벌 2세의 폭행 사건 이전에도 사회 내에서 공공의 인물로 알려진 유명인사들의 폭행 사건이 많이 있었다. 최근에 막을 내린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개최되기 전 쯤에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수가 고급 주점에서 여종업원을 성추행하고 경비원들을 폭행하여 물의를 일으켰다. 그 선수의 아버지가 유명 대기업의 회장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여 뉴스에서도 소개되었지만 이번 폭행 사건만큼 크게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그 뉴스가 전파되고나고 한 달 뒤에 문제의 국가대표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그 선수의 문제적인 행동은 잠잠해졌다.  재벌 2세들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 바른 자세와 호감적인 이미지를 보여줘야할 연예인들도 자신들이 일으킨 폭행으로 인해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  인기리에 방영되던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대중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남자 탤런트가 자신의 후배 여성 연기자에게 폭행을 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출연하던 드라마에서 중도 하차를 하고 말았다.  

    

 

  지킬 박사의 고백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 등장하는 주인공 지킬 박사는 인간의 이중성을 상징하는 전형적이면서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현대인의 자아분열 그리고 이중인격자를 우리는 ' 지킬 & 하이드' 라고 비유하면서 부르기도 한다. 이 소설이 발표된지 124년이나 되었는데도 지킬 박사의 이야기는 꾸준히 읽혀지고 있으며 영화, 뮤지컬로 각색되는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모든 인류들의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이중성을 포착한 작가의 관찰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백년이 지난 소설들은 고리타분하며 진부적인 느낌이 드러나는 고전으로 취급받기 쉽상인데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원작으로 읽어도 줄거리를 무척 흥미진진하다.  

특히, 에드워드 하이드라는 악마의 본성을 지닌 또 하나의 자아에 굴복당하고 마는 지킬 박사의 내면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결국, 자신 고유의 자아인 헨리 지킬로 돌아오지 못한 채 박사는 자살하고 마는데 그가 자살하기 전에 남긴 유서에는 그동안 말 못했던 자아 분열의 고통과 그런 삶을 살아야하는 이유들을 고백하고 있다.  

 

나는 18xx년에 태어났다. 많은 재산을 상속받았고 그밖에도 훌륭한 신체를 물려받았으며 천성적으로 부지런했다. 학식 있고 훌륭한 동료들로부터 존경받는 일을 기뻐했다. 따라서 당연히 명예롭고 빛나는 미래가 보장되어 있었다. 그런데 나의 가장 큰 단점은 쾌락을 탐하는 성향이었다. 쾌락은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지만, 고고한 자긍심으로 대중들 앞에서 철저하게 근엄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오만한 욕망을 가진 내게 쾌락은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욕망을 감추었다.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킬 박사와 하이드> p 105 -  

 

지킬 박사는 우리처럼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감성의 만족,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즐거운 감정을 좋아하는 일반인이다. 하지만 그는 인간으로서 원초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망의 감정을 스스로 억제하고 감추려고 하였다. 지킬 박사는 남에게 과시하는 욕망의 감정은 자신의 부조리함 혹은 추악한 본성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약점을 타인에게 노출시키는 것을 병적으로 두려워하였다. 결국에는 지킬 박사는 자신의 이중성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쾌락을 향한 탐욕은 지킬 박사를 선과 악의 본성으로 갈라진 이중성이 만들어낸 은밀하고도 위험스러운 유혹의 늪으로 향하게 하였다. 

저주받은 약물을 복용하고난 뒤, 악의 본성으로만 가득찬 하이드로 변하면서 그동안 마음 속에 감추어두었던 폭력성을 드러낸다. 지킬 박사는 하이드가 되어 사람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행위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지기도 하지만 그는 약물 복용을 멈추지 않는다. 타인들에게 드러나기 두려워한 나머지 스스로 감추웠던 지킬 박사의 욕망과 쾌락은 하이드라는 제2의 자아의 발현을 통해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지킬 박사는 하이드를 통해서 자신의 쾌락을 탐하였다.

     

  

  돌이킬 수 없는

자신의 이중적인 본성을 인정한 지킬 박사의 고백은 나쁜 감정들을 남에게 드러나지 않기 위해서 살아야하는 우리 현대인의 모습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평상시에 생활할 때는 자신의 이중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킬 박사처럼 '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 ' 이 되기 위해서 추악한 감정과 본능을 숨기려고 한다. 우리들뿐만 아니라 정치인, 연예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 사람' 이다.  대중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보이기 위해서 항상 올바른 자세와 밝은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카메라 앞에서는 힘든 내색이나 화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문단속한다. 하지만 억지로 감추어두었던 추악한 본성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지킬 박사의 친한 동료인 어터슨이 말한 것처럼 숨기려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꼭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악한 본성을 ' 찾아내는 사람 ' 은 자신이 아닌, 우리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즉, 자신이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존재를 위협할 정도로 위험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한 폭력을 저지른 남자 탤런트는 사건이 알려지게 된 이후에 한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 때문에 자살하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자신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하이드의 위험성을 알고 난 뒤 지킬 박사는 경찰들로부터 체포당하기 전에 자살을 하고 만다. 인간은 자신의 추악한 본성을 발현하고나서야 자기 자신의 모순적인 이중성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상의 시 구절처럼 현실적인 자아와 내면적 자아가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한다. 쾌락과 욕구로 가득한 내면적 자아가 현실적 자아가 내민 악수를 받지 않을 정도로 귀가 먼 '괴물' 하이드로 성장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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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2-02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인장이나 저랑 남자이니까 이런거 물어봐도 뻘줌하지는 않은데

구매리스트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즐겨가는 타인의 서재중에서 구매리스트 공개하는 사람은 1명밖에 없어서요 ㅋ

물론 사생활의 영역이라고 선을 그으면 할수 없지만, 주인장은 어떤 책을 구입하는지 살짝 궁금하네요

cyrus 2010-12-02 12:30   좋아요 0 | URL
서재 구매리스트를 관심 있어하는 분도 있었군요,
사실은 서재 블로그 시작할 때부터 공개로 해놓았는데,,,
구매한 책들 대부분 주로 건강책들이라서,, ^^;;
제가 읽는 것이 아니라 어머님이 건강책들 읽는 거 좋아해서
구입한거랍니다. 지금 바로 공개 설정으로 하겠습니다.

다이조부 2010-12-02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장리스트 잘 보았습니다. 근데 의외의 책이 몇 권 보이네요~ 공병호 책 이라든지 ㅎㅎ

건강책 보면서 무척 효자구나 싶네여. 저희 어머니는 건강이 무척 좋지 않은데 제가 너무

무심한게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됩니다.

다이조부 2010-12-02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리스트 를 보면서는 깜짝 놀랐습니다. 민음사 200권 전집을 구입했다는 소식에~
와우..... 얼마나 매력적인 가격으로 할인을 했길래 눈 찔끔 감고 그런 도전을 했을까
궁금해지네요 ㅎㅎㅎ

근데 주인장이랑 저랑 생각이 갈리는 지점이 있네요. 저는 죽기전에 시리즈를 훝어만 봤지만
세상에 꼭 읽어야 할 책이라든지 꼭 방문할 여행지 라는게 존재하는지 의문이거든요. ^^
저는 책읽기 보다는 더 흥미진진한 일이 세상에 있지 않을까 믿고 싶어요.
아무튼 주인장 문학애호가 인정 ^^

cyrus 2010-12-02 20:36   좋아요 0 | URL
아.. 공병호 책은 제 동생이 읽고 싶다고 해서 구입한겁니다.^^
저와 동생, 어머니가 제 알라딘 계정으로 읽고 싶은 책을 구입합니다.
그래서 한 때는 플래티넘 등급을 넘볼 수 있을 정도로 이번 해는
책을 많이 구입했는데,, 10월달 들어서는 책 구입 횟수가 줄어들어서
일반 회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민음사 전집은 정말,, 군생활하면서 모았던 월급과
군 입대 전에 알바로 모아둔 목돈을 쪼개서 산 거랍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전집을 산게 그게 처음입니다.
다행히 홈쇼핑에서 팔고 있길래 샀습니다.

사실 저도 꼭 죽기 전까지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문학에 관심을 갖자는 취지로 정할 뿐이지
그렇게 크게 얽매려고 하지 않는답니다. ^^

oren 2010-12-03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여태까지 원작은 사서 읽어볼 생각조차 못했군요. (아마도 어릴 때 '어린이용'으로는 읽어본 것 같기도..) 이 작품은 뮤지컬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작품이라 오히려 원작이 덜 읽혀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동영상으로만 봐도 감동적인 '조승우 버전'은 한 번도 못봤고, 다른 배우가 공연했던 작품과 브래드 리틀의 내한 공연때 가봤네요.)

* * * * *

cyrus 2010-12-04 00:0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oren님.

다른 분들 서재에 들리게 되면 oren님의 댓글도 유심히 보게 되던데 서재에
뮤지컬 동영상까지 남겨주셔서 오히려 제가 동영상을 잘 봤다고 oren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네요. 제가 좋아하는 노래의 동영상을 댓글로
올려주시다니, 감사합니다.

2010-12-04 2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4 2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이조부 2010-12-05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장 이라는 변수는 상상도 못했나요 ㅋ

아마도 책장은 선물이겠죠? ㅋ

cyrus 2010-12-05 13:44   좋아요 0 | URL
책장은 상품입니다. 그런데 책장 상태와 모양새는 괜찮은데
200권 세트를 다 꽂지 못하더라고요^^:;
할수 없이 열 몇 권은 다른 책장에 꽂아야하는,,-_-;;
그게 좀 아쉬웠더라고요. 200권 모두 한 책장에 꽂혀있으면
폼날텐데 말이죠.

노이에자이트 2010-12-05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소설 굉장히 좋아합니다.분량도 그리 길지 않고...특히 비밀 실험실이 있는 집을 묘사한 대목이 좋더군요.좀 이상한 취향이라고도 하겠지만요.유명하지만 실제로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은 책을 하나하나 골라 읽는 Cyrus 님 취향이 저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cyrus 2010-12-06 11:04   좋아요 0 | URL
뮤지컬로 각색한 것을 보지 못해서 아쉬움이 많았었는데
원작을 읽어보니 오히려 뮤지컬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라도 원전의 내용과 살짝 다르기 마련이거든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에서는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원작에는 비중 있게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이 없더군요.
지킬 박사라는 캐릭터를 부각시켜주는 작가의 배경 묘사는 음울한 분위기를
연출해주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런 점이 괴기소설이나
고딕소설 읽기의 매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번 계기로
스티븐슨의 소설 말고도 고골이나 모파상이 쓴 괴기소설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12-06 16:55   좋아요 0 | URL
아하...뮤지컬엔 여자주인공이 있군요.실제로 원작에 비중있는 여자는 안 나오는데 말이죠...

고골의 '코'를 괴기소설로 분류하기도 하더군요.십여년전에는 <모파상 괴기소설선>이라는 책도 나왔지요.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 선사 삼국 발해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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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한국미술사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 수없이 등록되는 미술 관련 신간도서를 확인한다거나, 도서관에서 미술 관련 책이 꽂혀 있는 서가를 둘러보게 되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많았다.  

  ' 우리나라에는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서양미술사 책이 많은데,  

    유독 우리나라 미술사 책이 많이 나오지 않은걸까? "  

에른스트 곰브리치와 호스트 잰슨의 <서양미술사>는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꾸준히 팔리면서도 읽고 있는 대중들을 위한 미술사 개론서이다. 서양미술사를 전공하는 사람이나 서양미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독자들이 꼭 읽게 되는 책이 단언 곰브리치가 쓴 책이다. 900페이지 정도의 양을 자랑하는 이 두꺼운 미술사 책이 지금까지도 스테디셀러로 자리잡고 있는 이유에는 수준 높은 미술의 역사와 이론들을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한 저자의 문장력이 한 몫을 하고 있지만, 이런 저자의 의도는 서양미술에 대한 우리나라 독자들의 지대한 관심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것도 있었다. 그래서 곰브리치 이외에도 외국의 대중 미술 전문가들이 쓴 책들이 많이 출판이 되었으며 우리나라에도 이주헌, 한젬마, 이명옥 씨와 같은 ' 대중들을 위한 미술 ' 이라는 포맷으로 서양미술을 소개하는 전문가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출판된 미술 관련 도서들 중에서는 서양미술과 관련된 것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다보니 정작 대중들을 위한 우리나라 미술을 소개하는 책의 출판이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미술을 소개하는 책이 많이 출판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유홍준 씨는 이전에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시리즈를 통해 그동안 대중들로부터 외면받고 있었던 우리나라의 문화재들을 조명함으로써 문화재 탐사 붐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 밖에도 추사 김정희, 한국의 도자기 등을 주제로 한 책들을 펴내면서 대중적인 우리나라 미술 저술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강우방 씨는 솔 출판사에 기획된 ' 한국 미의 재발견 ' 시리즈에 참여하여 우리나라 불교 조각과 탑의 미적 가치를 소개하였다. 전호태 씨는 고구려 벽화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故 오주석 씨는 단원 김홍도 등과 같은 조선 시대의 풍속화가들을 대중들에게 알릴 수 있게 하였다.  

현재 한국미술사학회 이사로 역임하고 있는 진홍섭 씨가 쓴 <한국미술사> 등 우리나라 미술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려는 학술적 시도가 있었지만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닌 것인 단점이다.  우리나라 미술 전공자들에게는 이런 책의 등장은 크게 환영받을 일이었지만 반면 대중들에게는 쉽게 다가가기 어렵기만 하다. (진홍섭 씨가 쓴 이 미술사 역시 900페이지 정도가 된다)  이런 활발한 저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그리 높지만은 않은게 사실이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의 영향 때문인지 우리나라 문화는 중국의 영향으로부터 받은 문화라는 인식을 가지는 경향이 있으며 이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이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의 문화를 외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소개된 우리나라 미술은 미시적인 내용들이었다. 고구려 미술, 조선 시대의 미술, 그리고 현대 미술로 두드러지게 갈라져 있으며 고대부터 현대까지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미술의 역사를 조명하고 있는 책이 보기 드물었다.

 

 

  한국미술의 시작, 빗살무늬토기   

서양미술의 인지도에 밀려나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우리나라 대중들에게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 현상이 우리나라 미술의 현주소이다. 메마른 토양이나 다름없는 우리나라 미술계에 이번에 유홍준 씨가 출간한 <한국미술사 강의 1>은 '가물에 단비' 와 같은 존재이다.  특히, 그전부터 한국미술사에 관한 책을 고대하고 있었던 나에게는 이 책의 출간이 무척 반갑기만 하였다. 

이번에 출간된 1권은 선사시대, 삼국시대 그리고 학계로부터 심도 있게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발해의 미술을 다루고 있어서 흥미롭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한국미술사의 시작을 삼국시대부터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책을 통해서 한국미술사의 정의를 다시 한 번 재정립할 수 있었다. 

예전에 학교에서 배우는 국사 교과서의 첫 단원이 선사시대(구석기, 신석기, 청동기)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이 미술의 역사 역시 출발점을 선사시대로 잡고 있었다. 특히, 신석기 시대에 등장한 빗살무늬토기에 대한 내용은 선사시대의 유물에서도 고대의 조상들의 미적 가치를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빗살무늬토기  

 


 

번개무늬토기, 신석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전에 교과서에서 본 빗살무늬토기의 사진을 보면서 토기에 새겨진 저 빗살무늬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는 그냥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고고학적 유물인 토기로만 보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토기에 새겨진 단순한 무늬를 유홍준 씨는 ' 한국미술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새벽 ' (p 30) 이라고 말하고 있다.  토기에 새겨진 빗살무늬가 토기를 쉽게 잡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능적인 목적도 있었지만 이들이 무늬를 새기게 된 근본적인 이유에는 고대의 인류에게도 주위의 사물을 파악하고 표시하려는 '의식' 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인류가 사물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직립보행 못지 않게 중요한 인류 발전의 획기적인 일이다.  아기들이 흰 종이이든 벽이든간에 손에 쥐고 있는 크레파스나 펜으로 우리의 눈으로 그 형태를 확인할 수 없는 기이한 낙서들을 남기는 이유가 자신의 주위에 펼쳐져 있는 사물에 대한 인식이 만들어낸 행위이다.  현재 인류의 지능과 비교하면 한참 뒤떨어져 보일 것 같은 원시적인 인류에게도 사물을 보려는 의식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의식의 결과물이 토기에 새겨진 단순한 무늬라는 점에서 보면 미술이라는 행위는 이미 고대 때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보다 나은 한국미술사를 알리기 위해서는  

저자가 머리말에서 말한 것대로 선사시대부터 신라, 고구려, 백제를 아우르는 삼국시대 그리고 백제까지 고대의 미술을 소파에 앉아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최근에 밝혀진 연구 결과들은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연구 논쟁의 연장성에 있는 내용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정리를 하고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이번 <미술사 강의> 저술은 저자의 학술 활동 경력 중 최대 프로젝트이며 이전에 그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알리게 해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명성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정확하면서도 충실한 내용을 담으려는 그의 노고를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자 역시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 있는 법. 이 책의 2장의 고인돌에 관한 내용에서는 지금까지도 학계에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문제의 내용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있지 않아서 아쉬웠다.  

지금까지도 고인돌이 세워진 의도에 대해서 학자들 사이에 엇갈린 주장과 가설이 제시되고 있다. 학생들이 배우는 국사 교과서에 있는 잘못된 내용의 영향으로 인해 사람들은 고인돌이 지배자를 위한 무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최근에는 고인돌의 용도가 집단 생활을 하고 있는 공동체사회의 제단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혹은 민간신앙의 상징물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다행히도 유홍준 씨는 아직 정립되지 않은 고인돌의 용도에 대해서 정리하고 있으며 고인돌이 단순히 지배자의 무덤이라는 일방적인 내용이라고 언급하지도 않고 있다. 

하지만, 고인돌의 분류법에 대해서는 저자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북방식 고인돌은 기념 조형물로서 장중한 멋을 풍긴다. (중략)  

  남방식 고인돌은 덮개돌이 대개 너럭바위나 큰 바윗덩어리지만 창녕 유리의 고인돌처럼 거대한 메줏덩어리 모양으로 육중함을 과시하는 것도 있다.  

  -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제2장 고조선 또는 청동기시대, p 60~61 -

학창시절 때 국사 시간에서도 배웠듯이 고인돌은 북방식, 남방식으로 분류한다고 알고 있다. 탁자 모양으로 생긴 고인돌을 북방식으로, 바둑판 모양의 고인돌은 남방식이라고 학생들은 통상적으로 그렇게 배워왔다.  


 

탁자식 고인돌, 경북 문경시 산양면 반곡리 


 

 
 

바둑판 고인돌, 강원 양구군 양구읍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사 편지> 시리즈로 어린이들을 위한 역사를 소개하는 저술가로 유명한 박은봉 씨는 2007년에 쓴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에서 북방식, 남방식으로 분류하는 고인돌 표기법은 식민사학이 만들어낸 역사학 용어라고 밝히고 있다. 한반도를 북부와 남부 지방으로 임의로 나눈 이유에는 북부 지역의 사람은 위의 중국에 내려온 민족이며, 남부 지역의 사람은 예로부터 스스로 발전하지 못할 정도의 문화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항상 외부로부터 지배, 발전했다는 논리를 내세움으로써 자신들의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고 있다. 오랫동안 지배되어 온 북방식, 남방식 고인돌의 분류는 북방식 고인돌은 탁자식이며, 남방식은 바둑판 모양이라는 이분법적인 정설을 낳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탁자식 고인돌은 남부 지역에서 발견되며 반대로 바둑판 고인돌도 북부 지방에서도 발견되어 이분법적인 분류법이 주는 효력이 잃어버렸다. 그래서 2006년판 국사 교과서에서는 고인돌의 분류를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으로 고쳤다고 한다.   

저자의 이런 내용은 저자의 실수라기 보다는 지금까지 전해내려오는 학계의 분류법을 고수하려는 일종의 학문적 매너리즘의 경향일 수 있다. 사실, 새로운 고인돌 분류법 개정에 대한 주장이 제기되었을 때에 대부분 사학자들 중에서는 북방식, 남방식 분류법을 그대로 사용하자는 입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오류의 내용이 검증과 비판 없이 그대로 대중들에게 알려진다는 점은 문제가 있다. 특히 저자는 머리말에서 한국은 동아시아 문화에서 당당한 지분율을 가진 문화적 주주 국가라고 밝히고 있다. 비록 중국의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우리 민족은 중국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우리나라만에서 볼 수 있는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하기도 하였다. 한국의 미술문화 속에는 우리 민족 특유의 정체성이 들어가 있다. 비록 작은 단어이지만 우리나라 민족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잘못된 역사는 우리나라 한국사뿐만 아니라 미술사의 옥의 티가 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미술사의 시작은 일제 시대 때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일본인의 학자들에 이루어졌다. 미술의 역사에서도 일본인 학자들은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여 우리나라의 문화마저 말살하려고 하였다.  

즉, 이번에 나온 <한국미술사 강의>에서도 이런 사소한 오류의 내용이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다거나 지금까지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용하고 있다면 과거의 식민사관의 미술사의 내용과 별 반 다를게 없다. 이런 문제점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고유의 미술문화를 대중들에게 정확히 소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 노력에는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미술사를 미술 전공자들을 위한 학문이라는 고정된 학문 인식을 넘어서 고고학자, 사학자들과의 학문적 연계를 통해서 지금보다 나은 한국미술사를 정립하려는 통합의 자세 역시 필요하다.

 

 

* 사진출처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73901&docid=228382&dir_id=10020101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291374&docid=727347&dir_id=10020202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71013&docid=14363&dir_id=10020202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75155&docid=14363&dir_id=1002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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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1-30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들 공부시키다가 고인돌 분류법 오류에 대해서 알게 되었어요.
<나의문화유산답사기>만으로도 거대한 족적이죠.
얼마전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오셔서 말씀을 되게 재밌게 하셨어요.
구라계의 계보를 잇는다셨는데 말이죠~

cyrus 2010-11-30 21:2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몇 년전에 저자가 문화재청에 근무했을때도
말 많았던게 기억이 나네요, 자신이 지금까지 쓴 책들을
문화재청 건물에 비치하고, 건물에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기념품도 아닌,, 책을 사라고 간접적으로 홍보까지 했다고하네요.
또 한 번은 문화 유적지 근처에 근무하는 사람들끼리
고기를 구워 먹은 일 때문에 논란이 있었고요.
책 내용과 학문 활동은 높이 살만하지만,, 저자의 인성이
약간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반딧불이 2010-11-30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을 꾸준히 소개해주셔서 잘 보고 있습니다.

댓글에 언급하신 내용은 좀 다르게 생각해볼 수도 있을것 같아요.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책을 홍보했다는 내용이요. 그분이 '우리 것'을 사랑하시는 분이 맞다면 인세를 챙기려는 의도보다는 그것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닐까요?

다이조부 2010-11-30 21:48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님의 태도는 어떤 사람의 언행을 봤을때 가장 선의로 해석하는게
아닌가 싶어요 ^^ 저도 그런 태도가 바람직하다고 보는데 말이죠~

제가 많이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이겠지만, 마음에 안드는 사람들을
대할때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더라구요 ㅎ

cyrus 2010-12-01 13:25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님 말씀을 보니 그럴수도 있겠네요. 언론에는 과장된 면이
있을 수 있으니 언론에 비치는 이미지만으로 그 사람이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는게 사실이고요. 꾸랑님 말씀대로 선의적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를 가지는것이 중요한거 같습니다.^^

반딧불이 2010-12-01 13:31   좋아요 0 | URL
무조건 선의로만 보는 건 더 모자란 사람이겠죠.

유홍준에 대해서 저는 아는바가 없어요. 다만 위에 조건을 달았던 것처럼 우리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 맞다면 한번 더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미천하지만 소문과는 다른 경우들을 참 많이 봐와서요.

다이조부 2010-11-30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유홍준의 책을 읽은것은 별로 없지만, 이 사람에 관하여 안 좋은 소문을
들은게 있어서 편견을 갖게 되더라구요. 재수 없다고 말이죠 ㅋ
지난달에 이 책을 가지고 알사탕 이벤트를 해서 리뷰만 쓰면 알사탕 받을 정도로
응모자가 없어서 다른 사람의 감상문을 편집해서 제출해 볼까 하다가 아무리 양심이
털이 났지만, 그건 아닌것 같더라구요.

cyrus 2010-12-01 13:28   좋아요 0 | URL
그렇게 안 쓰셔서 다행입니다. 표절은 해서 안된 것도 행위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있지만 나중에 표절이라고 걸리게 되면 뒷감당이 두렵기도
합니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
엄기호 지음 / 푸른숲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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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인생의 황금 시대다. 우리는 이 황금 시대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기 위하여,
이 황금 시대를 영원히 붙잡아 두기 위하여, 힘차게 노래하며 힘차게 약동하자!
 
 - 민태원 <청춘 예찬> 중에서 -  


 

 세상은 눈이 부시도록 넓고 환하고
 젊은 나는 내 젊음을 절망하네.

 . . . 일월의 태양처럼 무기력한 내 청춘이요.
 . . . 닿을 수 없는 먼 곳의 별을 늘 나는 갈망한다.


       - 자우림의 노래 <청춘 예찬> 중에서 -   

  

 

  지금 20대들의 '청춘' 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며칠 전에 평소에 자주 드나드는 알라디너의 글 중에 이 책을 소개한 내용을 읽게 되었다. '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 이라는 부제의 제목을 달고 있다. 대한민국 20대이면서도 88만원 세대라는 썩 좋지 않은 이름까지 달고 있는 나로서는 무척 관심이 가는 책이었다. 감미로운 음악과 아름다운 그림과 스케치가 어울려져 있는 글에서 이 책을 보게 되니 무척 반가웠다. 그래서 그 마음을 댓글로 표현하였다. 다음 날에 글을 작성하신 알라디너가 나의 댓글에 답글을 달아주셨다. 이 분은 엄기호 씨의 신작을 관심 있게 읽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책에 대한 짤막한 감상 다음에는 요즘 20대들에 대한 코멘트도 남겼다. 역시, 내가 드나드는 알라디너 중에서도 글을 잘 쓰는 분답게 댓글 표현도 무척 인상 깊었다.   

커피숍에 마추친 20대들을 보면서 그들의 얼굴이 어두운 갈색이라고 하였다. 

종종 인터넷 기사에는 자신들의 몰상식함을 만천하에 드러나는 댓글을 다는 네티즌들이 있다. 꼭 그렇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남에게 상처를 주는 댓글을 다는 사람들 중에서는 젊은 20대들도 있을 것이다. 만약에 그들이 알라디너의 댓글을 보게 된다면 가만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악의적인 내용의 답글을 남길 것이다. 자기가 뭘 안다고 20대들의 얼굴을, 하필 어둡고 칙칙한 갈색으로 표현하냐고 따졌을지도 모른다.   

 

 

  10원짜리 동전 같은 20대들의 청춘

그러나, 요즘 대한민국 20대들의 청춘을 한 가지 색깔로 표현하라고 나에게 물어본다면 나 역시 밝은 색깔로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한 건 지금 우리 20대들의 청춘은 어두운 것은 사실이다.  1930년에 쓴 민태원의 유명한 수필 <청춘 예찬>에서는 청춘은 ' 인생의 황금 시대 ' 라고 하였다. 민태원은 이 마지막 구절에서 빛이 나는 황금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젋은 독자들에게 강건하면서도 생명력이 넘치는 청춘이 되기를 당부하고 있다.   

하지만, 황금이라고 표현하는 청춘은 이제 옛 말이다. 지금의 20대들의 청춘은 번쩍번쩍 빛이 나는 황금이 아니다. 칙칙한 갈색을 띄고 있는 구리로 만들어진 10원짜리 동전이다.  이 또한 역시 적절치 못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금의 10원짜리 동전을 향한 인식과 대한민국 20대들의 삶은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동전 서열화, 대학교 서열화

우리나라에 나온 동전 중에서 제일 낮은 원화는 10원이다. 그리고 제일 높은 가격은 500원이며 그 중간에는 100원, 그리고 이보다 낮은 50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지폐까지 포함하면 10원은 제일 낮은 가격이다. 옛날에는 5원짜리 동전이 제일 낮은 가격의 화폐였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   

만약에 길거리에 10원짜리 동전 5개가 떨어져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당신은 그 동전을 주울 것인가, 말 것인가?   요즘에는 알뜰히 모아야 한다는 검약 정신이 강조되는 세상이다보니 10원짜리 동전 5개가 눈에 보이면 주울지도 모르겠다. 동전의 가격을 합하면 50원이니까.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10원짜리 동전을 잘 줍지 않는다. (10원 동전이 10개라면 사람들이 주울라나?) 

유독 10원짜리를 잘 안 줍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제일 낮은 가격의 화폐라는 인식이 강한 탓일거다.  나도 길을 가다가 간혹 10원짜리 동전이 한 개 또는 두 세 개 떨어지는 것을 보면 잘 안 줍는다. 100원이나 500원이라면 줍는데 말이다.  그리고 한 번은 또 이런 일이 있었다.  10원짜리 한 푼 한 푼 모으면 돈이 될 수 있다는 검약 정신을 가지고 있었을 때 길거리에 떨어진 10원짜리 세 개를 주운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친구 왈, 

  " 야, 그 10원짜리 동전 세 개를 주워서 뭐 할려고?  주워봤자 돈도 안 되는데 . . . " 

이렇듯, 우리는 자연스럽게 10원 동전을 가볍게 평가한다. 인간에는 높은 가격의 수치에 집착하고 남들보다 더 많이 소유하려는 욕구가 강하다. 이 욕구 뒤에는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남들보다 더 잘 살고 싶으며 이를 남들에게 과시하려는 의도가 있다.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20대에 접어들게 되면 사회 생활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그리고 자신들도 어른처럼 되려고 행동한다. 그러다보니, 미래의 안정된 생활을 꿈꾸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돈' 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잘 벌고, 많이 받을 수 있는 직업은 높은 연봉을 주는 대기업이다. 그 곳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는 학력이 좋아야한다. 전국의 수험생들이 꿈꾸는 최고의 목표는 'in 서울' 에 있는 대학교, 또는 일명 SKY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명문대라고 치켜세우는 대학교를 가는 것이다.  

500원, 100원, 50원, 10원의 동전 중에서 500원, 100원 동전을 선호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대학을 서열화하고 높은 수준의 교육, 아니 주위 사람들에게 학교 이름만 대면 '명문대' 라고 선망하는 대학교에 가려고 한다. 동전으로 비유하자면 우리들이 제일 가고 싶어하는 대학이 길바닥에 발견하면 '횡재' 라는 쾌재를 부르게 하는 500원이라면, 이름을 들으면 모르거나 지방에 위치하는 대학은 10원, 50원이다.   

이렇다보니, 지방대 입학을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집이 멀더라도, 타지에서 자취 생활을 할 정도로 수도권에 위치한 학교로 무조건 입학하려고 고등학생 3년동안 죽도록 공부만 한다. 그 3년동안의 노고를 단 한 번으로 결정짓게 되는 수능시험의 성적 결과에 따라 자신이 다녀야 할 대학교가 결정이 된다. in 서울 대학교에 들어갈 수 없으며 간신히 지방대 4년제에 들어갈 수 있는 성적이라면 자신의 능력에 대해 스스로 실망하게 된다. 4년제 대학교에 다녀도 '지방대' 라는 꼬리표 때문에 자신의 삶을 이미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서울에 위치하는 명문대 소속의 지방캠퍼스에 다니는 학생들마저도 자신의 소속에 대해서 자괴감에 빠지며 학교 생활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다. 이들이 다니는 대학교는 학생들의 지적 능력을 신장시키는 교육 장소가 아닌, 좋은 직장을 가지기 위한 스펙을 꾸며주는 장소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대학교 내의 교육 역시 질적 가치를 바라기가 어려워졌다.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육의 내용은 단지 취업을 위한 것들뿐이다. 그리고 더 많은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대학교는 기업과 손을 잡기도 한다.        

 

    

  자유로움과 즐거움이 상실된 대한민국의 20대들  

20대들의 삶에 대한 자기비하는 대학교 입학에만 그치지 않는다. 자신이 생각해왔던 20대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 간의 극명한 괴리감을 인식한다.  우리나라 모든 20대들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때 선생님들로부터 이런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교에 가게 되면 너네들이 그토록 하고 싶었던  

   연애도 할 수 있고, 마음대로 놀 수가 있다. 그만큼 대학교에 다니면  

   마음껏 자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다 " 

아직 사회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세상을 몰랐었고, 철들지 않은 학창시절에는 나는 너무 순진하게도 이 말을 믿어버린다. 세상 살기가 그리 쉽지만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대학교만큼은 자유를 즐겁게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교의 생활 그리고 젊음의 현실은 너무나도 다르다. 중고등학생 때는 교복만 있으면 옷 입을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대학에는 옷 입는 것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는 대학교에서는 이상하게도 자유로운 복장을 허용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옷을 입는다해도 주위의 시선은 날카롭기만 하다. 복장이 촌스럽다고 냉담한 평가를 하기도 하며 특히, 군대를 갔다온 뒤 복학하는 예비군 남학생들에게는 '아저씨' , '복학생' 소리를 듣기 싫을 정도로 옷에 대해서 예민해지게 된다. 남들이 많이 입는 옷들은 최신 유행의 옷들이다. 유행이니만큼 남들이 하는 유행에 따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유행에 동참하지 않은 자신이 사회에 점차 낙오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엄기호 씨는 이런 20대들의 사회를 ' 전시회 ' 라고 비유하고 있다. 20대들은 자신을 드러내야하는 주체이면서도 동시에 남들에 대해서 전문가인마냥 평을 하는 주체들이다. 그래서 자신이 스스로 상품이 되어 남들의 시선에 노출이 되며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20대들의 의사소통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을 향한 주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압박감은 대학 졸업 이후에도 여전하다.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서는 이미지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20대들이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모아 먼저 쓰는 곳이 성형외과이다. 지금보다 더 좋은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 얼굴을 바꾸기까지 한다. 지금보다 더 예뻐지기 위해서 코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 몇 천만원을 내면서 코를 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돈을 벌기에 바쁜 20대들에게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찾아 볼 수가 없다. 가난하면 사랑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등록금 모으기에도 빠듯한 상황에서 자신이 번 돈을 사랑하는 이성 친구와 함께하는 데이트 비용으로 쓰기에 아까워한다. 연애에도 '돈' 은 땔래야 땔 수 없다. 데이트를 하면서 그 적지 않은 비용을 자기 혼자 부담하는 것을 꺼려한다.  

오 헨리의 단편소설인 <크리스마스 선물> 속에 등장하는 가난한 신혼부부인 짐과 델라의 애틋한 사랑은 이제는 소설 속 내용일뿐이다. 서로 자신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서 짐은 자신이 가장 아끼던 시계를, 델라는 소중히 길러왔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팔아버린다. 그러고는 짐은 델라를 위한 머리빗을, 델라는 시계에 다는 금 시곗줄을 구입한다. 비록 시계와 머리카락을 팔아버린 이들에게는 서로 전해준 선물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가난 속에서도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사랑의 힘을 확인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들을 귀한 상품을 등가교환하면서까지 서로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서로 간의 빈곤 역시 배려하게 된다.  

하지만, 20대들에게는 소설 속 짐과 델라처럼 등가교환의 사랑을 할 수 없다. 아니, 그런 사랑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빈곤하다.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하는 20대들의 경제력은 낮기만 하다. 그리고 자기 살기 바쁜 마당에 남을 배려할 여유도 없다. 이렇다보니, 연애라는 활동은 무척 피곤한 일이며, 돈이 있는 사람이 연애와 결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정말 지금의 20대들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자유로움과 다른 존재에 대해서 열렬히 좋아하는 감정에서 얻게 되는 감정적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단 한 번 뿐인 청춘의 시기쯤에 말이다. 

 

  

  갈색 청춘을 황금색의 청춘으로    

엄기호 씨는 자신들이 가르치고 있는 20대들의 학생들과의 토론과 진솔한 대화를 통해서 보다 나은 20대들의 청춘에 대해서 스스로 성찰해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토론에 참여하는 20대들의 학생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혹은 아예 이해하려고 들지 않는 어른들의 시선에 대해 불편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한때 대한민국의 젋음을 대표했던 386 세대들은 88만원 세대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들 세대들의 청춘을 낭만과 자유가 없는 무미건조한 청춘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이들에게는 청춘이라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20대들의 삶의 모습을 단면적으로 보면서 모독하는 것은 옳지 않은 말이다.  그리고 지금의 20대들에게도 청춘은 죽지 않았다. 단지, 어둡고 암울한 색깔을 띄고 있을 뿐이다.

엄기호 씨는 이런 기성 세대의 착각이 발생하는 이유를 '자신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재구성한 삶' 을 기준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 20대들에게도 이전의 세대처럼 자신이 처하고 입는 사회 속의 지위에 대해서 자각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기위해서는 기성세대나 지금의 세대나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려는 자세를 가질 것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들의 삶에 대해 되돌아보면서 질문을 함으로써 서로 다른 세대의 삶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세를 가지게 된다면 기성 세대와 지금의 세대 간끼리 서로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어진다.

앞에서 20대들의 청춘을 10원 동전으로 표현한 점에서 너무 자기비하적인 표현일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쓸모 없어 보이는 10원에도 유용하게 쓰일 때도 있다. 냉장고나 신발 안에 10원짜리 동전을 몇 개씩 넣어 보관하면 특유의 냄새를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불우 이웃 돕기 목적으로 10원짜리 동전들을 모으는 뜻 깊은 행사도 열리기도 했다. 이 작은 10원 동전 하나 가지고는 아무 쓸모가 없다. 하지만 구릿빛의 10원짜리 동전이 여러 개 모으게 되면 황금빛처럼 보이게 되며 황금 못지 않은 경제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  

구릿빛 갈색의 청춘이 화려한 빛이 나는 황금색이 도는 황금 시대의 청춘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처하고 있는 삶의 위치나 세상에 대해서 비관만 하지 말고,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조금이라도 성찰하려는 자세를 가지도록 노력해야 것이다. 삶에 대한 성찰이 없고 사회에 대해 무감각한 청춘은 평생 구릿빛 갈색을 띄는 10원짜리 동전과 같은 인생을 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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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1-30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분 글 쏙쏙 들어와서 좋아하는데,cyrus님의 리뷰도 쏙쏙 들어오는걸요~
누군가는 청춘을 잉여라고 표현하던데 말이죠.
제가 들어본 청춘에 대한 표현 중 가장 우울한 표현이었어요~ㅠ.ㅠ

cyrus 2010-11-30 21:17   좋아요 0 | URL
좋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좀 표현이 우울한 것이 있지만,,
이 책을 읽기 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엄기호 씨의
책을 읽어보니 너무 공감이 가더라고요. 20대 탐구생활 같다고 해야되나요?
이 책에서도 저자가 청춘을 잉여라고 표현하고 있더군요.
저뿐만 아니라 동년배 친구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인데,,
워낙에 책을 안 읽은 녀석들이라,,, 안타깝기도 하네요.^^;;

다이조부 2010-11-30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뚱한 이야기이긴 한데 저는 주인장이 술 과는 거리가 먼 사내 일거라고 짐작했어요~

알라딘에서 가장 친밀한(?) 사람이랑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 동갑내기 남자는 술 을 안 마신다고 하네요. 뭐 술 안 마셔도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말이죠 ㅋ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것 같아요 ㅎㅎㅎ


다이조부 2010-11-30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대구에서 출생했어요. 외가도 대구에서 가까운 경산이고요~

친구도 대구에 몇 명 있는데, 대구에 갈 일 있으면 주인장 이랑 막창이랑 술 한잔

하고 싶네요 ㅋㅋㅋ

cyrus 2010-12-01 13:22   좋아요 0 | URL
ㅎㅎ 저는 술이랑 친한 사이인데요^^ 그렇게 술과 거리가
멀지 않는답니다. 신기하게도 저랑 일치하는 부분이 많네요.
제가 다니는 대학교가 경산에 있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대구대에 다닙니다. 그리고 막창, 제일 좋아합니다.
언젠가 만나게되면 정말 꾸랑님과 막창과 술 한 잔 하고 싶네요^^


다이조부 2010-12-01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대 학생이구나~ 저 그학교 가봤어요. 그 학교 기숙사에서 잠도 잔 기억이 나네요 ㅋ

학교 무진장 크던데 말이죠~ 긴가민가 하는데 친척누나도 그 학교 특수교육과를 나와서

교직에 있어요. 이젠 10년 다 되어가는데 누나가 저랑 동생이랑 데리고 우방랜드 갔던

기억이 나네요. 놀이기구 타면서 아 나도 이제 나이 먹어서 못하겠다 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그때도 했죠 ㅋㅋㅋ

cyrus 2010-12-01 13:52   좋아요 0 | URL
대구대는 특수교육과가 유명하죠^^
정말 소름 돋는게,, 지금까지 온라인 공간에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
꾸랑님 포함해서 두 분은 제가 살고 있는 대구와 학교와 관련이 있더군요.

비로그인 2010-12-01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뜨끔.. ^^

cyrus님 제가 댓글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말씀해주셨네요~ 생각해보니 어쩌면 저는 그들의 아무렇지도 않은, 밝은 색에서 저의 20대를 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20대 때 읽었더라면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한편 들고요 ㅎ

읽고 올려주신 내용 보면서 많은 부분 공감하며 읽고 갑니다. 서열화, 대학의 목적, 기성세대들의 간섭과 그들만의 잣대로 보는 시선. 저도 모르게 그러고 있는 것 같아서 반성도 해 보고요 ^^

cyrus 2010-12-02 12:26   좋아요 0 | URL
저는 오히려 바람결님의 표현이 우리나라 20대들의 모습을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기성세대들의 눈으로 본 시선도
20대들의 청춘을 어둡게했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지하면서도
그것을 타파하려는 의지도 없이 사는 패배의식 역시 청춘을 우울하게
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다이조부 2010-12-02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겨찾기 하는 20대 저자 중의 한 사람은 이 책을 가지고

세대론 종결자 라고 하더군요~

이 책 나름 시장에서 반응이 좋은것 같아요. 저도 지금 밀린 책이 많아서 한숨 돌리고

나면 봐야겠네요. 근데 이 정도 마음먹은 책은 십중팔구 안보게 되더라구요 ㅋ

cyrus 2010-12-02 12:28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답니다. 하지만 꾸랑님이 보내주신 보들레르 시집은
잘 읽고 있습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읽고나니 바로 보들레르의 시가
연결되어서 읽고 싶어지더군요. 그리고 많이 늦더라도
이 책은 꼭 읽어보시면 좋을겁니다.
 
별에서 온 아이 펭귄클래식 21
오스카 와일드 지음, 김전유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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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에서 참다운 행복은 남에게서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에게 주는 것이다.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정싱적인 것이든,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행동이기 때문이다.
 
 - 아나톨 프랑스 -  

  

  

  동화 같은 9개의 단편들  

 

 

<행복한 왕자>라는 제목을 듣게 되면, 누구든지 ' 아! 그 동화. ' 라고 떠오르게 된다. 어떤 이는 어렸을 때 눈물을 훔치면서 읽었던 동화이며 또 어떤 이는 유치원 시절에 어여쁜 선생님이 구연하는 이야기로 들었을 것이다.  

굳이 소개 안 해도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많은 이들은 이 이야기를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라고 생각한다. 내용은 읽어보면 동화 같은 구성을 띄고 있다. 그러나 <행복한 왕자>는 단편소설로 분류된다. 아일랜드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이 이야기를 포함한 짤막한 단편소설들을 모아 출간하면서 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 (1854~1900)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행복한 왕자>가 발표된 당시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오스카 와일드가 생전에 화려하고 대중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문학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생전의 화려한 인기들은 그의 머릿속에 나온 작품들 때문이 아니었다. 기성 사회의 흐름을 무시한 채 온 몸을 장식하고 있는 와일드 특유 패션 감각과 잘 생긴 외모 그리고 재치있는 언변 때문에 '오스카 와일드' 라는 이름을 상류층의 사회에 알릴 수 있었다. 작가로서의 명성은 상류층에서의 명성과 비교하면 길지가 않다. <행복한 왕자>가 수록된 단편집이 출간되었을 때는 책이 그다지 많이 팔리지 않았으며 지금도 오스카 와일드의 대표작이라고 일컫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는 출판사로부터 한 번 출판 거절당한 이력이 있었으며 출간 당시만해도 그렇게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행복한 왕자> 외 총 8편을 읽게 되면 그 당시 출판사들이 오스카가 쓴 원고를 손사레쳤는지 알 수 있다. 소설 구성과 내용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없다. 대중들이 좋아하지 않을법한 느낌이 든다. 다시 말하자면, 독자들의 시선을 끌 수 없는 흡인력이 부족하다. 동화 같은 와일드의 단편소설들은 어린이들에게는 좋아하겠지만 어른들에게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로만 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향한 오스카 와일드의 냉소적인 시선    

이 작품의 서문을 쓴 이안 스몰은 그와 관련된 편지와 글들을 통해서 실제로 오스카 와일드는 자신의 유일한 핏줄인 두 자녀를 사랑스럽게 여겼던 자상한 아버지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소설들은 단순히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로만 볼 수 없다. 이 짧은 단편소설들에서는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해 물질만능주의가 팽배되어 가고 있던 유럽 사회에 대한 그의 시선을 읽을 수 있다. 

<행복한 왕자>에서 왕자는 도덕주의자이다.  자신의 발 밑에 위치하는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몇 몇 사람들이 가난과 추위에 고통받고 있는 사실에 슬픔에 빠진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금, 자신의 두 눈을 이루고 있는 푸른 사파이어 그리고 자신이 쥐고 있는 칼자루에 박힌 붉은 루비를 절친한 존재인 제비를 통해서 보내게 한다. 온 몸에 박힌 황금을 거의 다 때어낸 왕자는 예전과 같은 화려한 황금색이 감돌지 않았고 그냥 허름한 돌덩어리로 전락하고 만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왕자의 동상이 초라해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동료들 따라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면서까지 왕자의 덕행이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준 제비 역시 너무 쓸쓸하게 최후를 맞게 된다. 하느님의 구원으로 왕자와 제비는 따뜻한 천국으로 인도되면서 이야기는 헤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왕자와 제비의 참된 덕행의 실천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외면하는 도시 사람들의 모습은 작품을 다 읽었어도 뒷맛이 개운치 않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쓸모 없어진 왕자의 동상을 용광로에 녹여 다시 새로운 동상을 만들기로 결정하는데 끝내 녹여지지 않은 납으로 이루어진 왕자의 심장은 쓰레기터에 버려지고 만다. 이를 통해 본질적인 내면보다는 겉으로만 보이는 화려한 이면을 중시하는 인간의 심성을 확인할 수 있다. 

<별에서 온 아이>에서도 <행복한 왕자>에서 말하고자 하는 교훈과 유사하며 이에 대한 와일드의 생각이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야기가 시작하는 부분에서는 나무꾼들의 대화를 통해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의 양극화와 불평등을 냉소적으로 비꼬고 있다.  

  " 왜 우리가 기뻐하는 거지? 인생은 부자를 위한 것이지 우리 같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데 말이야. 숲에서 얼어 죽거나 짐승에게 잡아먹히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 " 
   다른 하나가 대답했다. 
   " 맞아. 대부분이 몇몇 사람에게 돌아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아주 적은 양을 나누어 가지지. 세상은 불공평해. 슬픔을 제외하고는 평등하게 나눠지는 게 아무것도 없어. "

            - [별에서 온 아이] 오스카 와일드, 김전유경 역, 펭귄클래식코리아, p 206 -   

이런 냉소적인 마음은 우연히 숲에서 별에서 온 아이를 발견되는 장면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훗날 별에서 온 아이를 키우게 된 착한 마음씨를 가진 나무꾼은 이 아이를 가엾게 여기면서 자신의 집으로 데러오려고 하지만 동행한 나머지 나무꾼들은 자신들의 가난한 처지를 이유로 대면서 이 아이를 키울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아이를 감싸고 있는 망토를 달라고 우기기도 한다. 부에 집착하면서도 자신의 영리를 위해서는 연약한 갓난아기마저 외면하는, 인간성이 상실된 자본주의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병리적인 사회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도덕한 행동을 하게 된다. 착한 나무꾼의 손에서 기른 별에서 온 아이는 남을 이해하지 않고 무조건 괴롭히는 불량 소년으로 자라고 만다. 비행에 대한 죄값으로 별에서 온 아이는 두꺼비 얼굴에다가 뱀의 몸을 가진, 기괴한 괴물로 변하게 된다. 못된 심성으로 가득찬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자신이 지금까지 저지른 과오들을 반성하게 된다. 그 후로 별에서 온 아이는 과오들을 스스로 반성하기 위해서 착한 일들을 하기 시작하며 결말에 이르러서는 아이는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으며 그토록 찾고 싶어했던 진짜 부모님을 만나게 된다.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는 예언대로 별에서 온 아이는 선정을 베푸는 왕이 된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읽게 되면 독자들에게 교훈을 주는 동시에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소설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오스카 와일드는 무슨 의도에서인지 이 이야기에서는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마무리짓는다.  

하지만 아이는 그리 오랫동안 그 도시를 다스리지는 못했다. 고생을 너무 심하게 한 데다 너무 힘든 시험을 거쳤기 때문이었다. 삼 년이 지난 아이는 죽었다. 그리고 아이의 뒤를 이어 다시 사악한 왕이 도시를 다스렸다.

                                                   - [별에서 온 아이] p 227 -  

올바른 미덕보다는 부에 대한 끝이 없는 원초적 탐욕 그리고 따뜻한 휴머니즘은 사라지고 이기심이 많아져버린 세상을 표현하고 있다.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마음씨 착한 왕자들이 여러 명 있다고 해도 이 세상이 성서 속 낙원처럼 될 수가 없다. 오스카 와일드는 단편소설들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폐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인격적 완성으로 구축된 인간성과 박애주의를 강조하고 있지만 도덕주의로만으로는 사회의 병리적인 문제점들을 고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입장 역시 피력하고 있다.  


 

  작품의 구성대로 살아간 오스카 와일드의 삶  

이 두 작품 말고도 나머지 작품들 속에서도 선과 악으로 대비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런 설정을 통해서 오스카 와일드는 도덕적 가치 확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설정된 선과 악의 대비는 이율배반적인 구도를 이루면서도 동등한 타당성과 현실성이 느껴진다. 어쩌면 이런 소설 속 설정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소설을 쓴 오스카 와일드의 삶 역시 이율배반적이었다. 이미 사회의 부조리한 이면을 꿰뚫은 오스카 와일드 역시 하나의 인간에게 미치는 사회의 거대한 기류를 거부할 수 없었는가 보다. 우리에게 오스카 와일드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자상한 아버지라는 모습보다는 생계와 인기를 위해서 사교계에 발을 내딛었던 독특한 이력과 동성애자라는 면이 더 많이 부각되기 마련이다. 더욱이 정신보다는 미적 가치와 감각을 중시하는 유미주의의 주창자라는 이미지가 더해져져서 오스카 와일드라고 하면 비도덕주의적인 인상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의 늘그막 인생을 알게 되면 오스카 와일드라는 작가가 딱하게 여겨질 것이다. 동성애 혐의로 인한 감옥 생활을 하고난 뒤 그는 가난하고 불우한 삶을 살기 시작하였다. 특히 그가 사랑하던 자식들을 이제 다시 볼 수가 없게 되었다. 결국, 병으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의 인생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해준 소설 속 주인공 행복한 왕자를 연상케 해준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사랑과 온정을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말로는 비참하였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화려하고 밝은 면은 어두운 면에 가려지고 말았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스스로 파괴했지만 결국에는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 채 버려져야만 했던 불쌍한 왕자처럼 말이다.

 

 * 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ruthkim0212?Redirect=Log&logNo=70017687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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