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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용지물이 된 전자 발찌  

요즘 세상이 날이 갈수록 뒤숭숭하다. 글 시작부터 이런 내용을 꺼내기에는 그렇지만 며칠 전, 어느 여대생이 성폭행당한 뒤에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 전국의 모든 여성들이 아직까지도 성 범죄 위험에 쉽게 노출되어 있음을 또 한 번 상키시켜준 사건이 되고 말았다. 최근의 사건 이전부터 한 건씩 나오는 여성 및 유아 성 범죄 사건들이 발생하자 성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더욱 더 강화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성 범죄자의 재범을 막기 위한 전자 발찌(또는 팔찌)를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위치 추적기가 달린 전자 발찌를 도입함으로써 성 범죄자의 위치 추적을 파악하여 이들의 행동을 주시한다는 목적이다.  그러나, 성 범죄자의 전자 발찌 도입에 대해서 찬반으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반 인륜적 범죄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찬성론자들이 있지만, 반대로 개인의 인권보호와 사생활 침해 우려 등으로 반대론자들도 있다. 찬반 논쟁 끝에 결국에는 전자 발찌 착용 제도는 도입되게 되었으며 형법상 성 범죄자들뿐만 아니라 미 수범자들도 발찌를 착용하는 대상자에 포함되었다.   

그런데, 최근에 전자 발찌의 용도를 무색케만든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성 범죄자 전과자가 자신의 발목에 착용한 전자 발찌를 끓고 잠적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전자 발찌를 착용한 성 범죄 전과자들이 또 다시 성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이에 대해 반대론자들 사이에서는 전자 발찌의 목적과 실효성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유토피아>에서 본 범죄자에 대한 형법 처리 문제

성 범죄자 사건이 어김없이 일어나게 되면 전자 팔찌 착용 논란 이외에도 항상 같이 불거지는 것이 성 범죄와 같은 반 인륜적 범죄자들에 대한 사형 제도이다. 사형 제도 문제 역시 전자 팔찌 문제의 찬반 입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강력한 처벌 vs 인권, 생명권 보호' 로 입장이 충돌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자 발찌 제도 찬성론자들은 범죄자들의 인권 및 생명권 보장 차원으로 사형제 대신에 전자 팔찌 착용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성 범죄자들에 대한 최고 법형은 정립되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찬성론자들의 생각은 영국의 정치가 토머스 모어(Thoams More)의 명저 <유토피아>에서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강력 범죄자에 대한 형법에 대한 논의는 토머스 모어가 활동하던 16세기 영국에서도 사회적 쟁점이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작품 속에는 이상국가 유토피아에서 생활해 본 적이 있는 학자 라파엘 논센소와 이 책의 저자인 토머스 모어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영국과 유토피아를 비교하면서 사회 문제에 대해 논쟁적인 대화를 나누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라파엘 논센소는 모어에게 범죄자에 대한 영국의 가혹한 처벌에 대해서 먼저 의문을 제기한다. 여기에서는 절도범들이 언급되는데, 절도범죄자들에게도 교수형을 내리는 점은 사회적으로 부당한 형법이라고 말한다. 요즘 말로 말하자면 라파엘은 사형제 폐지를 옹호하고 있는 입장이다. 그는 이에 대한 새로운 방안으로 톨스토리아라는 또 다른 이상국가의 제도를 소개하면서 범죄자들을 처형하는 대신에 강제 노역 형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나라를 위한 강제 노역을 함으로써 공공 근로 효과도 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라파엘이 주장하는 톨스토리아 형벌 제도

라파엘이 주장하는 강제 노역 형벌에 대한 내용 중에서는 지금의 전자 팔찌 착용과 유사한 제도가 소개되어 있다.  

  죄수들은 모두 다 아무도 입지 않은 특별한 색깔의 옷을 입습니다. 그들은 얼굴 면도는 사실상 하지 않지만 머리카락은 양쪽 귀 바로 위까지 짧께 깎습니다. 그리고 양쪽 귀 중 한쪽 일부분을 잘라냅니다. 
  
 (중략)

  각자의 노예에게는 그가 어느 지역 소속인지를 표시해 주는 배지가 주어집니다. 그가 그 배지를 달지 않거나, 지정 거주 지역을 벗어나거나, 다른 지역 출신 노예에게 말을 걸거나 해도 역시 사형 죄로 다스려집니다. 탈주에 대해 말한다면, 그런 일은 계획만 해도 실제로 실행에 옮긴 것과 똑같이 간주됩니다. 

  - <유토피아> 토머스 모어, 류경희 역, p 80~81 -      

그리고 라파엘은 톨스토리아의 형벌 제도가 죄수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으며 범죄의 과오를 벗어나 선량한 시민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제도라고 말하고 있다.   

고대 중국의 순자 선생은 성악설을 주장하여 인간의 선천적인 악은 수양이나 교육을 통해서 후천적으로 고칠 수 있다고는 말하지만, 과연 범죄자들이 이런 죄의 대가를 받는다해도 못된 성격을 쉽게 버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라파엘은 한 술 더 떠 톨스토리아 형법 제도에 적응된 전과자들은 여행객 안내인(!)으로 고용해도 괜찮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들에게는 무기를 소지 할 수도 없으며 전과자들의 모습이 일반 사람들 속에서 눈에 띄기 때문에 도망간다거나 재범을 저지를 우려가 없다고도 말한다. '난센소'라는 성을 가진 인물답게 언변 역시 난센스적이다.  

  

 전자 발찌 제도에 대한 나의 생각

소설 속 이상국가의 형벌제도와 지금의 팔찌 제도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맞지 않지만, 두 제도가 범죄자의 생명권을 보장하는 대신에 평생 '범죄자'라는 낙인을 달고 살아야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유토피아> 속에서는 톨스토리아 형벌 제도의 폐해를 확인할 수 없지만, 이 글이 발표된 지 400여 년이 된 지금, <유토피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그 폐해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다.  

상대방의 팔이나 발목에 전자 팔찌나 발찌가 채워져 있다면, 우리는 그가 성 범죄자인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성 범죄자'라고 인식하고 또는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범죄자가 팔찌를 채운다고 해서 그가 또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 인간의 행위 자체가 범죄가 되거나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경우에도 사회집단 속에서 '범죄자'로 규정된다면 제2의 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사회학적 용어로 '낙인 효과' 라고 말한다. 팔찌를 찬 상태에서도 또 다시 성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낙인 효과의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팔찌나 발찌를 착용한 전과자들 중에서 자신의 죄를 스스로 반성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전자 팔찌, 발찌 제도는 성 범죄자들의 개과천선을 위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또 반 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막는 수단일 뿐이다. 발찌를 착용한 성 범죄자들이 반성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언론에서는 '전자 발찌' 무용론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 전자 발찌가 성 범죄자 형벌로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난센스이며 시기상조이다. 이제 이 제도가 합법적으로 시행한 지 2년 째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제2의 범죄가 등장하는 것은 '낙인 효과'에 의해서 생기게 되는 필연적인 행위이다. 단지, 전자 발찌를 구성하고 있는 금속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전자 발찌 제도를 폐기해서는 안 된다. 지금으로서는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의견을 딱히 제시할 수 는 없지만, 먼저 사람의 힘으로 전자 팔찌와 발찌가 손상되지 않게 강력한 금속으로 교체를 해야될 것이다. 그리고 착용자들에 대한 신상정보와 이동경로에 대한 정보는 사법기관 간의 공조와 통합적 관리 체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의 제도에 대해서 조금만 보완만 된다면 어느 정도 강력 범죄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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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0 0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0 1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11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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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cafe.naver.com/openbooks21/742  

 

 네끄라소프처럼 독서하기 
  

새벽 2시, 밤이 깊으면 깊어질수록 편의점에 들어오는 손님의 인적은 드물어지고, 편의점 안에 있는 것은 오직 나와 진열된 물품뿐이다. 조용하다 못해 너무 고요하다. 딱 잠이 몰려올 수 있는 최적의 분위기이다.  

2년간의 군인으로서의 임무를 마친 뒤, 사회로 복귀하여 3개월째 밤 12시부터 아침 8시까지 아르바이트로 편의점 카운터로 일하고 있다. 군인 시절에도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했던지라 전역을 하고나면 원 없이 잠을 실컷 잘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사회에 나와서도 야행성 활동은 계속 되었다. 아르바이트 모집 전에 편의점 사장님과 면접을 하면서 군 생활 시절에 많이 밤새봤다면서 나를 고용해달라고 자신 있게 어필했었건만 진짜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될 줄이야.....   

편의점 안에 혼자서 카운터에 앉는 것도 그리 편한 것도 아니다. 그래도 속도는 느리지만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컴퓨터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래서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다. 심심하면 간혹 열린책들 카페에 올려져 있는 글들을 읽으니깐. 그러나 쏟아져오는 잠을 못 이기지 못해 피곤함이 몰려오는 것은 항상 느끼게 된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많지 않은 잠으로 지쳐있는 정신을 회복시키고 점심시간에 일어나면 그 때 몰려오는 피곤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낙천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일도 나름 장점이 있긴 하다. 카운터에 앉아 있으면 멍 때린다거나 컴퓨터 모니터만 보는 게 아니다.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공부와 독서를 한다. 새벽 2~3시 이후부터는 손님이 드문드문 오게 되고, 편의점 내부는 조용해서 공부와 독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새벽에 편의점에서 읽었던 책은 도스또예프스키의 처녀작『가난한 사람들』이다. 광대한 도스또예프스키의 문학 지대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에 관련된 일화가 재미있다. 러시아의 시인 네끄라소프가 밤 새워 가면서 이 작품을 끝까지 완독하자마자,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러시아의 권위 있는 문예 비평가였던 벨린스키에게 원고를 주면서 “새로운 고골이 나타났다.”라는 말을 남겼단다. 당시 신인 소설가였던 도스또예프스키의 천재성을 한 눈에 알아 봤던 것이다. 이 작품이 얼마나 훌륭했기에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신인 소설가에게 ‘새로운 고골’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걸까?  도스또예프스키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무지의 상태에서 나도 네끄라소프와 심정을 느끼면서 그의 처녀작을 밤 새워 읽게 되었다.  

네끄라소프도 도스또예프스키에 대해서 모르는 상태에서 이 작품을 접했을 것이다. 책은 새벽 2시부터 읽기 시작했다. 간혹 몇 몇 손님이 들어와 흐름이 끊기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독서를 하는 도중에 피곤함이라는 불청객은 찾아오지 않았다. 4시 10분에 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난 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러시아의 우석훈이 나타났다.” 

  

 


 공포 경제학적 소설

작품 속 남녀 간의 러브 스토리에는 당시 러시아 빈곤층의 현실과 애절함이 숨어져 있다. 보통 사람들이 알려고 하지 않는 가난하고 무력한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고독과 상대적 박탈감이다.『가난한 사람들』속에 숨겨진 공포의 경제학을 발견하면 서늘한 진실에 전율을 느끼게 된다.『88만원 세대』출간했던 당시, 우리나라 기성세대들 뿐만 아니라 88만원 세대들까지 우석훈 박사의 지적에 대해서 당혹감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것처럼...   

 

 

3년 전, 어느 경제학자가 쓴 독특한 제목의 책이 서점가뿐만 아니라 사회에까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름은『88만원 세대』. 이 한 권의 책은 우리나라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젊은 세대의 현실과 이로 인해서 발생한 세대 간의 경제학적 갈등을 날카롭게 집어내고 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20대들은 ‘88만원 세대’라는 불명예스러운 직함을 달게 되었다. 이 책은 우석훈 박사의 단독 저작이 아니라 박권일이라는 사회부 기자와 함께 쓴 것이다. 그래서 박 기자 특유의 취재의 눈은 88만원 세대가 겪고 있는 어두운 생활 모습을 적나라하게 포착하고 있다. 우석훈 박사는『88만원 세대』출간 이후에도 ‘한국경제 대안 시리즈’라는 제목의 책을 냈는데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을 포함해서 4권 정도 나왔다. 그의 책들은 공통적으로 사람들이 알려고 하지 않는 불편한 사회적 진실들을 경제학적 관점으로 비판, 분석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그의 연구 활동을 ‘공포 경제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도스또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도 일종의 공포 경제학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전제적인 작품 구성은 가난한 하급관리 마까르 제부쉬낀과 역시 가난한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와의 연애 모드로 설정하고 있다. 서술도 두 사람 간의 서신 교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얼핏 보면 그냥 가난한 연인들이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서로 사랑을 속삭이고 연애하는 이야기라고 단정지을 수 있지만, 끝까지 읽어보면 가볍게 읽을 단순한 연애 소설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편지 내용에는 두 인물이 처하고 있는 상황을 알 수 있는 구절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제부쉬낀은 넥타이와 셔츠 하나도 일 년에 한 번 살까 말까 하는 정도의 가난한 상태이다. 재미있게도 알렉세예브나는 그런 제부쉬낀을 동정하면서도 제발 가난한 티를 내면서 살지 말라고 사랑의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자신도 제부쉬낀을 동정하고 챙겨줄 수 있는 그런 부유한 입장도 아니고 그럴 잔소리할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결국 이 두 사람의 가난한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알렉세예브나가 시골 농장 대지주인 비꼬프와 청혼하기 때문이다. 알렉세예브나의 청혼 사실을 알고 그녀에게 보낸 제부쉬낀의 마지막 편지에는 사랑의 실패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다. 가난한 처지와 사랑의 실패가 제부쉬낀을 두 번 죽이게 된 셈이다.  
 

 

  

 

 가난이 죄인가요?

 

제부쉬낀은 자신의 가난한 처지를 겨냥한 알렉세예비치의 잔소리가 불편했던 것일까? 결국에는 참고 있었던 불편한 감정을 편지 통해서 털어 놓는다.  

 

 

 

  하지만 나의 소중한 친구여, 당신에게서 그런 말을 듣는 게 너무 괴롭습니다! 이런 소릴  

  한다고  화를 내지는 말아요. 제 가슴속은 번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까다로운 법이죠. 선천적으로 그래요. 이미 옛날부터 느끼고 있었던 일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보통 사람과 다른 눈으로 세상을 쳐다보고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곁눈질로 쳐다봅니다.  

  주변을 항상 잔뜩 주눅이 든 눈으로 살피면서 주위 사람들이 한 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씁니다. 

  누가 자기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혹은 다른 사람들이 <뭐 저렇게 꼴사나운 놈들이 

  다 있어!>,  <대체 저렇게 가난한 사람은 무슨 느낌을 갖고 살까?>, 아니면 <이쪽에서 보면  

  어떤 꼴을 하고 있고 저쪽에서 보면 또 어떤 꼴일까?> 등등의 말들을 할까 봐 남의 말에  

  일일이 신경을 씁니다. 

   - 도스또예프스키『가난한 사람들』석영중 역, p 129 -

이 구절을 보게 되면 인간의 심리 묘사에 대한 도스또예프스키의 뛰어난 관찰력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이 쓰고 있을 19세기 중반 러시아의 가난한 사람들이나 수 백 년이 지난 지금의 빈곤층들의 마음은 같을 것이다. 단지 '가난'이라는 이유만으로 죄인 취급하는 따가운 시선은 빈곤층들의 마음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며칠 전에 빈곤층 자녀일수록 정서 불안이 심각하다는 통계의 기사를 접했다. 특히 열 명중 한 명 꼴로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의심 증상이 있다고 한다. 이런 빈곤층 자녀와 ADHD 발병의 상관 관계의 원인을 자녀를 향한 빈곤층 부모의 소홀한 훈육과 일반 가정보다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점을 들고 있으며 낮은 경제력 때문에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것도 또 다른 원인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권위 있는 연구소의 자료라도 그냥 믿어버리지 말고 꼼꼼히 따져가며 읽어야 한다. 단순하게 빈곤층 가정 입장 쪽으로 원인으로 몰아가는 주장을 그대로 믿게 되버리면 오히려 빈곤층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꼴이 된다. 정신학계에서는 ADHD의 원인을 정확하게 규정하여 밝혀진 바가 없으며 다만 여러가지 연구 결과들을 가지고 원인을 추측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그 중에는 정서 박탈 같은 심리 사회적인 요인도 정서 장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빈곤층 아이들에게 향하는 주위의 시선들이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픈 봉원 어린이의 추억

 

그런 예를 쉽게 들어보자면, 8월 18일에 방영된 <황금어장 -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개그맨 이봉원 씨가 있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언급을 하는데 사실은 지금과 같이 성격이 쾌활하지도 않았으며 의외로 어렸을 때 무척 내성적이고 소심했다고 밝혔다. 허름한 단칸방에 여섯 식구가 살 정도로 집안이 너무 가난했었고 얼마나 가난했었으면 초등학생 때 학교에 가면 옷도 만날 같은 것만 입고 다녔다고 한다. 봉원 어린이(?)의 짝꿍은 당시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예쁜 여자아이였는데 가난한 티를 내고 다니는 봉원 어린이를 무척 싫어했던가 보다. 얼마나 싫어했었으면 책상에 선을 그어 봉원 어린이에게 선 넘어 오지 말라고 경고를 했다.  

 

대부분 남성이라면 옛 초등학생 시절에 한 번쯤은 겪어봤을 상황이다. 그래서 여자 짝꿍의 어이없는 으름장에 대항하여 자신의 책상 권리(?)를 찾기 위한 대립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의 소심한 봉원 어린이는 그만 주눅이 들어 하루하루를 긴장감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손가락 하나라도 짝궁의 책상 범위로 넘어오지 않기 위해서.....  이봉원 씨는 녹슬지 않은 재치있는 개그로 썩 유쾌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재미있게 풀어놓았지만 지금의 빈곤층 아이들의 불안한 마음은 아마도 어린 봉원 씨가 느꼈던 심정이 아닐까 생각된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몇 몇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보이지 않는 벽을 통해서 이들과의 접촉을 피하려고 한다.  
 

 

 

 ‘가난한 사랑 노래’는 이제 옛 말?

 

지금은 과거보다 경제도 좋아졌고 대부분 잘 사는 사람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봉원 씨와 같은 이런 웃지 못할 상황은 당시 못 살았고 소박했던 시대의 재미있는 추억으로 볼 수가 있다.  하지만 오히려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지 못한 일부 사람들이 있다. 특히나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자녀를 낳아 기르는 부모가 된다면 곤란하다. 그런 부모는 자식들에게 가난한 집안의 아이와 어울리지 말라고 교육을 할 것이다. 어렸을 때 가난한 짝꿍과 어울리면 괜히 자신도 가난한 아이로 볼게 될까봐 책상 위에 선을 그었던 것처럼 그런 부모들은 자신의 집안이 가난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마음껏 뛰어 놀고 어울려야 할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에도 선을 그어놓는다. 더 무서운 사실은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똑같이 따라하는 습성이다.

그런 잘못된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커서도 부모의 못된 생각을 되물림받게 된다. 자신의 이상형은 무조건 돈이 많아야 하며, 대기업 임원과 같은 생활이 보장되는 사람을 만날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성격보다는 우선적으로 배우자의 직업, 재산 보유 그리고 집을 가지고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 먼저 따지고 보려고 한다. 결국 가난한 형편인 사람들에게는 결혼은 그림의 떡이다. 이제 가난한 사랑이라는 것도 그들에게는 꿈꿀 수도 없는 사치스러운 연애일 뿐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중에서 -

이 시처럼 가난하고 애틋한 추억의 감정이 있는 사랑은 이제 옛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이 시 구절처럼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버려야할 정도로 자신의 삶을 자포자기한다거나 현실을 비정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간혹 우리보다 힘든 생활고에 살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분들은 세상에 대한 믿음과 진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적지만 그런 분들이 있기에 차갑기만한 현실 속에서도 아직도 따뜻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축복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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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0 0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밥과 장미 - 권리를 위한 지독한 싸움
오도엽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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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는 왜.....” 
 
최근 인터넷에서 한 어린이가 쓴 짤막한 시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모 연예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출연한 어느 연예인이 초등학생들이 직접 쓴 동시들을 낭독하게 되면서 그 중에 이 시가 전국적으로 전파를 타게 되었다.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이 시가 낭독된 이후, 남성 연예인들은 어린이들의 순수한 동심에 웃었지만 그들의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웃음이 사라지자 그들의 얼굴에는 씁쓸함의 여운이 감돌고 있었다. 

자신들도 언젠가는 '아빠'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린이가 말한 이 시 속의 '아빠'도 될 수 있기에.....   

이 시가 TV에 공개되자마자 삽시간으로 인터넷으로 전파되었다. 그리고 이 방송과 관련된 인터넷 기사들도 올라오게 되었다. 이와 관련된 각종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기사들의 제목을 보게 되면 한 편의 어설픈 삼류 멜로 드라마 속 대사를 상기시킨다.  '이 기사 읽어보세요.'라는 식으로 어떻게든 기사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서 제목에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문구들을 연발하고 있다.     

 

  '초등학생의 시가 대한민국의 아버지를 울리다.'   

  '초등 2년생의 시에 눈물젖은 대한민국의 아버지들.'

  '짧은 시에 담긴 우리네 아버지들의 슬픈 자화상.'   

 

기사의 출처와 작성한 기자가 각기 다른데도 서로 약속이나 하듯이 감성적인 문구를 타이틀로 내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런 기사문을 접한 네티즌들의 반응도 하나같다.  

'가정을 위해서 밤까지 일하는 아버지들의 모습이다.' ,  

'일 때문에 아이들과 같이 놀아준 적 없는 무책임한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반성할 수 있었다.'    

'주말에 쉬는 날이면 평일 직장 생활 때문에 피곤해서 아이들과 제대로 논 적이 없는 거 같다.'

그리고 어느 기사의 마지막 글에는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마지막에 희망적인 메시지로 마무리지어서 우울한 기사문의 반전을 꾀하려는 기자의 의도는 좋다.  

하지만, 이번 초등학생이 쓴 시가 모든 아버지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감동적인 메시지로 봐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시가 모든 아버지들이 씁쓸한 웃음만 나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직장 없는 아버지들은 이 시를 보자마자 쓴웃음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처지에 분노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일을 하지 못해서 슬픈 비정규직 근로자 부모님들  

이 시를 쓴 초등학생은 일 나가는 자신의 아버지가 집에서 놀아주지 못한 점에 대해서 집에서 놀아주는 어머니를 비교하여 집에서 존재감이 없는 아버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래서 초등학생이 쓴 시의 아버지는 일을 하고 있는 '근로자'이며 '노동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모든 아버지들이 다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자신의 직장을 되찾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투쟁을 벌이는 비정규직 근로자(노동자)들도 있다.    

이 책에서는 오늘도 일 할 권리를 찾기 위해서 투쟁중인 비정규직 근로자의 삶과 애환을 담아내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이들의 사연은 다양한다. 적은 보수이지만 가정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직장을 가진 근로자였다가 한순간에 '비정규직' 근로자가 되어버렸는데, 대부분 회사가 갑작스럽게 파산을 맞게 되면서 직장을 잃어버렸다거나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고생해서 일하다가 결국에는 보수나 재정적 가치는 한 푼도 받지도 못한 채 퇴직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받는다.' 라는 속담처럼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고생한만큼 그에 대한 대가를 얻는 보람조차도 느끼지 못하였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아버지들만 있는 것인가?  아이들을 예뻐해 주는 어머니들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병원에서 간호 업무를 맡았다거나, 대학교 내 청소 용역, 학습지 교사 등 직업은 각기 다르지만 이들에게는 죽어라 일만 하다가 얻은 것이 신체를 망가뜨린 '병' 그리고 이제는 일을 할 수 없는 비정규직 근로자라는 꼬리표를 다면서 생긴 '마음의 상처'였다.  

특히 부부중에 자식들에 대한 관심을 많이 쏟은 사람이 어머니다. 제 자식 좋은 교육 받게 해서 좋은 대학 보내주고 싶은 마음은 자식을 향한 모든 어머니들의 공통된 애정이다. 보이지 않는 희망을 되찾기 위해서 하루하루 24시간 공장 밖에서 병든 몸을 이끌고 피켓을 든 채 울부짖는 비정규직 근로자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 무능력함에 대한 절망감 때문에 마음도 병이 든 채 살아가고 있다.   

   

 비정규직 아버지를 두 번 죽이게 만든 초등학생의 시 
  

  대기업이 건설하는 아파트 브랜드 이름을 보세요.
  이곳에 살면 삶이 참 안락하고 행복할 것 같잖아요.
  하지만 이 아파트를 짓는 사람들은 늘 공포와 불안 그리고 고통에 시달려요.    

  - 『밥과 장미』 [어느 아파트 건설업체 비정규직 근로자의 말] 오도엽, 삶이 보이는 창, p 142 -  

어느 비정규직 근로자의 말처럼 잘못될 대로 잘못되어가는 대한민국 사회에 살고 있는 아버지들의 삶과 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50%의 아버지들은 늦은 시간동안 일을 하다가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과 제대로 놀아주지 않는다. 아이들과 놀게 되면 단지 피곤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집에서만 여유롭게 일에 대한 피로를 풀고 싶어 한다. 이들에게는 집에 오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과의 생활이 고통스럽다고 행복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머지 50%의 비정규직 근로자 아버지들은 오히려 그런 삶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니, 자신들도 정규직 근로자 아버지처럼 되고 싶어할 것이다. 아이들 앞에서 무능력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비춰질까봐 마음 한 구석에는 공포와 불안, 그리고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돈을 벌오기는커녕 하루종일 노조투쟁만 하다가 집으로 돌아온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식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학교에서 아버지의 직업을 써놓은 공간에 당당히 '비정규직'이라고 쓰는 아이들도 있다고 말하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말처럼 그런 아이들이야말로 정말 자신의 아버지가 왜 그러고 사는지, 그리고 왜 있는지 조소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저 초등학생의 시 한 편 가지고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존재감을 일깨워주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그리고 일 할 권리조차 얻지 못한 비정규직 근로자 아버지들에게는 자신의 무력한 존재감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주는, 잔인한 메시지가 되고 말았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햇새벽 
 

  어쩔 수 없이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절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 박노해 <노동의 새벽> 중 일부 - 
  

지금도 박노해 시인의 시 내용처럼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절망적인 삶의 벽인 노동 현실을 분노하면서도 그 운명을 감싸안고 살아가려는 몸부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에는 부질없는 몸부림만 하다가 하루가 저물 즈음에는 소주로 분노를 달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런 슬픔을 이겨야 하겠다는 깡다구와 오기가 서려 있다. 그런 독한 정신이 있기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일을 하고 있으며, 일을 하지 못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도 일 할 권리를 찾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저 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대한민국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 근로자답게, 아니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시작되는 햇새벽이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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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cafe.naver.com/axolotlroadkill/88 

 

오늘 아침에 동물들이 나오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접한 이야기를 적어봅니다.
비록 아홀로틀과 헤게만의 소설과는 전~~~~ 혀 관련이 없는 내용이지만,
카페에 새로운 글 한 편 나오는 것도 희귀한 일이 되어서 일종의 '무(無)글 방지 차원'으로  
한 번 올려봅니다.

무엇보다도 배수아 님이 댓글에서 적으신 코끼리 이야기도 생각나고 해서
이 카페에 가입한지 처음으로 코끼리에 대한 짤막한 일화와 단상을 올려봅니다.

(그런데,,, 이 글을 어느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냥 아홀로틀 포럼에 넣기로 했습니다.  ) 
 

인도의 어느 지역에서 코끼리 7마리가 한꺼번에 화물열차에 치여 죽은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코끼리라는 동물이 비록 커다란 덩치이기도 하지만,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열차에 부딪히게 되면 힘 센 코끼리도 죽음을 면치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 마리도 아닌, 7마리가 열차에 치여 죽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비극적인 사고의 발단에는 2마리의 아기 코끼리들이 있었습니다. 무리 지으면서 이동 생활을 하는 코끼리들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철도 가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마리의 아기 코끼리가 그만 철로에 발이 끼고 만 것입니다. 아직 아기였기에, 그리고 어른 코끼리보다 힘이 약했기에, 아기 코끼리들은 철로에 낀 발을 쉽게 뺄 수가 없었으며, 하염없이 애타게 어미 코끼리를 향해서 울부짖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어미 코끼리와 그 밖에 다른 어른 코끼리들이 자신의 긴 코로 아기 코끼리의 발을 빼내려고 하였지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긴 코를 가지고서는 아기 코끼리의 발을 빼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덩치가 워낙 크기에 여러 명의 코끼리들이 모이면 두 마리의 아기 코끼리의 발을 빼낼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지지도 못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저 멀리서 열차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열차에서 흘러나오는 불빛과 오고 있는 소리를 감지한 코끼리들은 자신들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는 힘껏 아기 코끼리를 구출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열차는 철도 가의 상황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재빠르게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몇 몇 코끼리들은 아기 코끼리의 발을 빼게 하고, 나머지 코끼리들은 그들 주위를 둘러쌌습니다. 어떻게든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열차를 막기 위해서죠. 무엇보다도 자신들보다 연약한 아기 코끼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결국, 열차는 철도 가 위에 서 있는 코끼리들과 충돌하고 말았습니다. (방송에서는 그 코끼리 집단이 몇 마리인지, 그리고 아기 코끼리는 생존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 몇 마리는 살아남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중에서 7마리가 열차의 강한 힘을 이기지 못해 죽고 말았습니다. 아기 코끼리들을 구하려다가 그만 기차에 로드킬(Roadkill) 당한 것이죠. 하지만 죽음을 무릅쓰고, 단지 아기 코끼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코끼리 집단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로드킬을 선택하였습니다. 당시 사고 현장에 죽은 코끼리들을 옮기기 위해서 참여한 사람들은 이런 코끼리 집단이 처한 상황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잠시, 사람들은 살아남은 코끼리들의 행동에 대한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살아남은 몇 마리의 코끼리들이 죽은 동료 코끼리들이 있는 철도 가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죽은 동료 코끼리의 시체 주위에 모여 자신의 코로 그들을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친분이 있던 사람들이 그에게 애도를 표하듯이, 코끼리들도 죽은 동료들을 애도하기 위해서 사고 현장을 떠나지 못한 채, 시체 옆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 단상

로드킬이라면 일반적으로 우발적인 사고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이제 막 어미 곁을 떠나 독립한 새끼 짐승들이라면 길거리에서 죽음을 맞기가 십상이고요.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동물들이 주위의 위험한 환경을 감지 못해서 사고가 발생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로드킬의 원인을 단순히 주위의 환경을 감지 못한 동물로 책임을 돌리는 점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동물들이 도로 한가운데에서 쉽게 죽는 이유는 운전자들의 운행 속도에도 원인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외국에서는 로드킬이 잦은 도로변에 운전자가 로드킬 위험 도로임을 알 수 있는 표지판을 세우며 이 도로에서만은 운전자들이 감속 운전으로 전환하라는 일종의 경고성 표지판도 세우기도 합니다. 낮은 속도에 달리는 차에 동물들이 부딪히더라도 큰 부상은 입게 되지만, 죽음만큼은 면할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러나 우리나라의 도로에는 그런 표지판을 쉽게 찾을 수가 없으며(우연히 도로를 지나가다가 로드킬 위험 도로라고 알리는 표지판 한 개 본 적이 있습니다.)  동물들의 도로 진입을 막기 위해서 많은 돈을 들여가며 울타리에만 설치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물론 울타리를 설치하면 나름 효과는 있겠지만, 이 방안 역시 로드킬의 발생 원인을 동물들에게 있다는 인간 중심주의적 입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로 주변에 울타리를 친다고 해서 모든 동물들이 울타리를 안 넘어올 것이라는 보장도 없고요.

무엇보다도 로드킬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동물들에 대한 인간의 사고 인식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인도의 코끼리 집단 이야기처럼 동물들도 위험한 상황을 스스로 인지할 수 있으며 동물들도 인간처럼 동료를 지키기 위해서 희생적인 로드킬을 선택하게 만드는 동료애의 감정을 느낄 줄 안다는 점도 알고 있어야 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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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뇌, 남자의 발견 - 무엇이 남자의 심리와 행동을 지배하는가
루안 브리젠딘 지음, 황혜숙 옮김 / 리더스북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부부 동반 분만  

만삭의 배우자가 이제 막 출산이 임박하려고 한다. 남편은 고통스러워하는 아내가 크게 걱정하기 시작한다. 산부인과에 도착하자마자 아내는 침대에 눕히어 분만실로 향한다. 아내가 무척 걱정이 된 남편 역시, 아내가 향하는 분만실로 들어가고 싶어 하였다. 진통으로 힘들어 하지 않게 아내 옆에 있고 싶었다. 그러나 산부인과 간호사들은 남편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분만실에 입장할 수 없다면서 막아섰다. 남편은 어쩔 수 없이, 분만실 밖에서 혼자서 대기해야만 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경험이 있는 부부들은 이런 경우 공감하실 것이다. 배우자가 초산이라면 남편 분들이 크게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예전에는 배우자가 분만실에 입장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TV 드라마에서의 출산 장면에서도 분만실에는 임산부와 몇 명의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들이 나오고, 그 임산부의 남편은 대기실에서 초초하게 기다리면서 등장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부부들도 젊은 층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임신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서 출산 경험이 있는 부부들을 중심으로 임신 관련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온라인 모임 공간이 늘어났다. 그리고 젊은 부부들 사이에서는 분만실과 부부가 동반하고 싶어 하는 경향도 보이기도 한다. 그런 부부들의 취향을 반영해서 남편도 분만실에 들어가 아내와 함께 출산의 기쁜 순간을 함께 할 수 있게 해주는 산부인과도 있다. 또, 어느 산부인과에서는 남편이 직접 갓 세상에 나온 신생아의 탯줄도 자를 수 있는 기회도 주고 있다. 신생아의 배꼽에 달려 있는 탯줄을 남편이 직접 자름으로써 이제는 ‘남자’가 아닌 ‘아버지’가 되었음을 알리는 아주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출산 풍경은 극히 일부분이다. 아직도 예전의 방식을 고수하는 산부인과도 있고, 초보 부부들 사이에서는 가족 동반 분만의 중요성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남자를 움직이는 9가지 호르몬 

뇌 연구가이자 『남자의 뇌, 남자의 발견』의 저자인 루안 브리젠딘은 임신한 아내와 사는 남편의 심리 상태를 뇌의 특정 호르몬 발현 작용을 중심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하기 전에, 먼저 남자의 뇌에 작용하는 중요 호르몬 9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뇌과학에 대해서 전무하다거나, 나름 뇌에 관해서 좀 안다는 남자와 여자 독자들은 저자가 설명하는 9가지 호르몬에 관한 내용이 신선하게 느껴질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남자의 몸 속에서 생기는 호르몬은 여자보다 적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남자 몸 속에서 생기는 호르몬을 말해보라고 하면 테스토스테론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런 잘못돤 상식에 사로잡혀 있다보니, 이전에 여자의 뇌에 관한 대중과학 도서를 쓴 적이 있는 저자가 이번에는 남자의 뇌에 대해서 책을 쓴다고 하자, 이에 대한 주위의 반응이 재미있다. "남자의 뇌는 단순해서 이번 책은 쓸 분량이 적겠네요."  

그러나 저자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일축한다. 남자의 뇌 역시 여자의 뇌 구조처럼 복잡하고 여러가지 호르몬이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남자의 뇌에서 생기는 호르몬은 테스토스테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뮬러관억제물질(MIS), 옥시토신, 바소프레신, 에스트로겐, 도파민, 코르티솔, 안드로스테네리온, 프로락틴이라는 것도 있다. 

테스토스테론은 많은 사람이 다 알다시피 목표지향적이며, 권위적인 남성적 특징을 발현하도록 한다. 뮬러관억제물질(MIS)는 여성적 해동과 감정을 발현하기 위한 회로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옥시토신은 공감과 애정 회로를 형성하게 하는데, 아버지와 아이의 유대 관계 현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다. 바소프레신은 '일부일처제 호르몬'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는데, 가족을 향한 사랑과 헌신을 나타나게 해준다. 에소트로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많이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에스트로겐은 여성의 특징르 발현하게 하는 여성적인 호르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극히 일부분이고, 역할은 적지만 남성에게도 에스트로겐 호르몬을 분비하고 있으며 그 적은 역할은 남성 성격 형성에 중요한 임무이다. 옥시토신을 자극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호르몬이기 때문이다. 에스트로겐이 있어야 옥시토신을 자극하여 남성들도 공감과 애정의 감정을 느낄 수가 있다. 도파민은 순간적인 쾌락을 추구하게 만들며 다른 호르몬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 어른들이 도박에 쉽께 빠지는 것도 이유가 있다. 코르티솔은 쉽게 화를 내게 하는 호르몬이다. 그래서 남성이 이성적인 여성보다 순간적으로 화를 쉽게, 잘 내는 편이다. 안드로스테네리온은 성적 매력을 풍기게 한다. 여성을 유혹하여 성관계를 맺게 되고, 결혼을 성립하게 만드는 나름 큰 역할을 담당하는 호르몬이다.   

  

 

 아빠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프로락틴 

마지막 호르몬 프로락틴은 앞에서 언급한 부부 동반 분만과 관련이 깊다.  

배우자가 출산을 앞두게 되면 남편의 뇌에는 프로락틴이 많이 생성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배우자의 출산에 대해서 걱정하게 되고, 그 임신에 대해서 공감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를 '쿠바드(Couvade) 증후군' 이라고 한다. 원래 '쿠바드'는 남편이 아내의 출산 전후에 출산에 부수되는 일을 행하거나 흉내내는 원시 사회의 풍속을 뜻한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의만(擬娩)' 이다. 그래서 프로락틴이 한창 생성되는 시기에 남편들이 임신한 아내에 대해서 각별하게 신경을 쓰이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내의 출산에 대한 걱정이 다른 가족들보다 많은 것도 뇌에 프로락틴이 작용되서 생기는 심리적 현상인 것이다. 남성들은 심리적인 변화만 겪을 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변화도 겪게 된다. 출산 경험이 있는 저자는 출산 임박 당시, 남편의 몸무게가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프로락틴은 단순히 아내의 임신을 공감하게하는 심리적 역할을 넘어서 성적 욕구를 감소하게 만들어 아빠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역할도 해준다. 즉, 남자는 스스로 '아빠'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핏줄이나 다름없는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빠가 되는 것이 아니라,아기가 아내의 자궁 속에서 자라고 있을 때부터 이미 남성은 아빠가 된 것이다. 

  

 세상에 모든 남녀들이 읽어야 할 책 

평소에 뇌 과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이 책의 내용의 수준이 초, 중급이라고 말할 것이다. 사실, 이 책에는 누구나 알만한 남성의 뇌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 일종의 '남성 뇌 탐구생활'이라고 해야되나. 저자의 전작 베스트셀러인『여자의 뇌, 여자의 발견』과 겸하여 읽으면 '남녀 뇌 탐구생활'이 된다.

그러나, 남자 아이를 키우는데 고생하고 있는 엄마들, 남성들은 섹스에만 밝히는 본능적 동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왜 그런지 모르는 여성들은 꼭 이 책을 읽어봐야 한다. 왜 남성들이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이 책에 프로락틴의 작용과 쿠바드 증후군에 대한 내용에 염두하여 이제 막 아빠가 되려는 남성들도 읽으면 좋을 것이다. 아내만 아이를 돌보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부부 관계가 법적으로 성립이 되었고, 갓 태어난 아이가 이제부터 가정의 일원이 되었으면 가장으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남성을 보여줘야할 때이다.    

몇 년 전에,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남자가 남자다워야, 남자지.' 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겉으로만 남자다움을 강조하여 남자라고 만날 백번 부르짖기는 보다는 왜 남자다워야 하는지, 남자답게 만드는 뇌의 작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내실이 있는 남자가 진짜 남자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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