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미술의 정의

 

 

 

 

 

 

 

 

 

 

 

 

 

 

 

 

 

 

르네상스(Renaissance)는 ‘재생’ 또는 ‘부활’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15~16세기 유럽에서 고전 학문과 그 가치에 대한 관심이 미술로 확대되는 시기를 의미한다. 이 시대에는 그리스, 로마 미술과 문학을 재평가하였고, 해부학이나 투시원근법과 같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인체와 자연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당시 봉건제의 몰락, 상업의 성장, 인쇄술․항해술 등과 같은 혁신적인 신기술의 등장 및 발명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신에 대한 관심은 점차 식어가고 인간에 대한 탐구가 활발해지며 새로운 인문주의 정신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한 미술가들은 미술의 소재를 인간에서 구하여 자유로운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미켈란젤로(1475~1564), 라파엘로(1483~1520)등 세 사람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미술가로서 크게 명성을 떨쳤다.

 

 

 

 융합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르네상스 미술

 

 

 

 

 

 

 

 

 

 

 

 

 

 

 

 

 

특히 메디치 가문은 금융업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화가, 조각가, 건축가, 철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가와 과학자들을 후원했다. 또한 이들이 피렌체에서 만나 서로 전문지식을 교류하면서 공동 작업을 할 수 있게 지원했다. 그 결과 피렌체는 여러 학문과 문화가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우뚝 서게 되었다. 예술가와 학자들을 아낌없이 후원함으로써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데 기여한 메디치 가문의 혜안과 통찰력은 개방을 통한 ‘융합’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융합의 원리는 르네상스 미술가들의 작품에서도 읽을 수 있다. 르네상스의 미술은 단순히 회화 한 분야에만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분야의 학문들의 융합을 통해 매우 독창적인 표현이 창출되었다.

 

 

 

 과학과 미술의 융합,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비트루비우스의 이론에 따른 인체 비례도> 1487년경

 

 

고대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B.C. 80년경~B.C 15년경)의 저서를 접하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이를 드로잉으로 그린 것이다. 두 팔과 다리를 벌리고 선 남성의 인체를 원과 정사각형의 선으로 둘러 그 안에 인체가 완벽히 합치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 드로잉을 통해 인체 비례에 대한 관심과 인간을 우주의 원리와 연결시키려는 과학적인 측면을 엿볼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림에 가장 이상적인 인체를 담아내기 위해 아름다움을 정확한 수학적 비례를 통해 규명하고자 했다. 훗날 르네상스의 과학적 사고는 원근법과 명암법 탄생의 근간이 되었다. 인체를 만물의 척도로 바라보는 관점은 르네상스의 인간 중심주의를 반영한 것이다. 이 드로잉은 인간 중심의 과학이 예술과 어떻게 융합되었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작품이다.

 

 

 

 

 문학과 미술의 융합, 보티첼리

 

 

 

 

 

 

 

 

 

 

 

 

 

 

 

 

 

 

 

 

 

 

 

 

 

 

 

 

 

 

 

 

 

 

 

 

 

 

 

 

 

 

 

 

 

 

 

르네상스 미술 작품들 대부분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티브로 한 것이 많다. 하지만 그 당시에 출판되어 유행한 문학 작품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보티첼리의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 이야기>다. 총 4개의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탈리아의 작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단테의 『신곡』과 더불어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근대적 문학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산드로 보티첼리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 이야기> 첫 번째 그림, 1483년경

 

 

그림 속 이야기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스타조란 청년은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했다가 거절당해 크게 실의에 빠진다. 그림에는 두 명의 나스타조가 등장하는데 가장 왼쪽에 이제 막 숲에 들어선 나스타조는 젊은 시절 모습이고, 옆의 나스타조는 시간이 약간 지난 후 모습이다. 그는 심란한 마음을 달래며 숲속을 산책하면서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다. 백마를 탄 기사가 칼을 들고 한 여자를 쫓아오고, 사냥개들이 여자에게 달려들어 물어뜯고 있다. 나스타조는 급한 대로 나뭇가지라도 들고 그녀를 도와주려 한다. (첫 번째 그림)

 

 

 

 

 

 

 

산드로 보티첼리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 이야기> 두 번째 그림, 1483년경

 

 

 

 

결국 여자는 땅에 쓰러지고 기사는 말에서 내려 그녀의 등을 갈라서 내장을 꺼낸다. 그리고 개들에게 그녀의 내장을 던져준다. 왼쪽에는 질겁하고 도망가는 나스타조가 있다. 그러나 나스타조가 목격한 장면은 환상이다. 그 여인이 살아있을 때 그 기사의 청혼을 거절했다가 그 벌로 매일같이 기사에게 쫓기며 개들에게 내장을 뜯기는 저주에 걸린 것이다. (두 번째 그림)

 

 

 

 

 

 

 

산드로 보티첼리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 이야기> 세 번째 그림, 1483년경

 

 

 

 

나스타조는 꾀를 내서 자신의 고백을 거절한 여자와 그녀의 가족들을 초대한다. 장소는 바로 잔인한 장면이 벌어졌던 그 숲이다. 어김없이 쫓기는 여자와 기사, 사냥개들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하고 주변은 아수라장이 됐다. 나스타조가 바라보는 여성이 짝사랑한 여자이고 둘은 시선을 마주치고 있다. 즉 나스타조는 “너도 나랑 결혼하지 않으면 평생 이 꼴로 만들어주겠다”라는 일종의 경고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세 번째 그림)

 

 

 

 

 

 

 

산드로 보티첼리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 이야기> 네 번째 그림, 1483년경

 

 

결국 나스타조는 원하는 여인과 결혼식을 올린다. 신부는 바로 왼쪽 테이블에 나스타조와 마주보고 앉아있다. (네 번째 그림)

이 그림은 원래 명문가의 부탁을 받고 그린 것으로 신혼부부의 방에 걸러져 있었다고 한다. 그림 속에 나타나 있는 이야기의 주제와 연관 지어 생각해보면 신부를 위한 그림으로 원하지 않는 결혼이라도 참고 견뎌야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신의 도상을 중심으로 회개를 강조하는 그림보다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문학 작품을 통해 인간적 삶의 교훈을 전달하는 그림들이 등장했다.

 

 

 

 철학과 미술의 융합, 라파엘로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베드로 성당의 '서명(署名)의 방'을 꾸미기 위해 철학, 신학, 시학(詩學), 법학 등 당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4개 분야의 학문을 주제로 하는 벽화 제작을 라파엘로에게 주문했다. 그 중에 철학 즉 '인간의 학문'을 주제로 하는 그림이 바로 <아테네 학당>이다.

 

 

 

 

 

라파엘로 산치오 <아테네 학당>  1510~1511년

 

 

 

길이가 8m에 달하는 거대한 이 작품에는 54명의 고대 철학자, 천문학자, 수학자들이 등장한다. 화면 중앙의 두 인물은 서구 문화사에 있어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상가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다. 플라톤은 왼손에는 그의 저서 『티마이오스』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고 있다. 플라톤이 들고 있는 책은 세계의 본질을 논하는 형이상학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은 인간의 지혜로운 처신을 논하는 윤리학이다. 플라톤이 현상을 초월하는 본질인 이데아(idea)를 추구했던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질은 현상에 내재한다고 주장한다. 즉, 이들이 취한 자세는 현실의 문제를 바라보는 두 철인의 철학을 상징하고 있다. 그 외에도 고대의 걸출한 사상가들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특징적인 상황설정과 함께 묘사했다. 주요 인물만 예를 들어보면, 화면의 좌측 상단에서 녹색 옷의 소크라테스가 무리들 틈에서 열심히 토론하고 있고, 맨 앞줄 좌측에는 쭈그리고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수학자 피타고라스다. 오른쪽에는 컴퍼스로 도형을 그리는 유클리드가 있다. 라파엘로는 이 그림을 통해 당시 이탈리아와 고대 그리스를 서로 대응시켜 두 시대의 위인들을 향한 작가의 존경심을 표현하면서 고대의 부활에 의한 인문주의의 찬미를 드러내고 있다.

 

 

 

 르네상스 미술에서 찾는 창조적 역량

 

최근 우리 사회에 각광받고 있는 키워드는 융합이다. ‘통섭’(統攝)이라 불리기도 하는 융합은 하나의 분야에 다른 것들을 접목하고, 섞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융합은 이미 수백 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 르네상스의 진원지인 피렌체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융합의 사고를 지닌 인물을 ‘르네상스 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르네상스 맨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다. 우리는 그를 미술가로 알고 있기도 하지만 천재적인 과학기술자로도 알고 있다. 실제로 그는 미술, 수학, 물리학, 공학을 망라한 다양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가 시대에 앞선 천부적인 능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상식을 벗어나 새로운 영역으로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융합의 사고는 꼭 학문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예술 분야에서도 필요하다. 사회가 다양해질수록 해결해야 할 새로운 융합주제는 끊임없이 늘어난다. 어려서부터 복합적으로 사고하고, 다른 분야에 눈을 돌릴 줄 아는 훈련이 된다면 창조적 예술 역량을 이끌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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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11-22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
(뜬금없지만) 혹시 <데카메론>을 읽었나요? 우리 같이 시작, 하고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읽어보는 게 어때요? 혼자는 시작을 못하겠어요(!) 자주 와요. 자주!!!

cyrus 2012-11-23 18:23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연말 학교 생활이 더 바빠서 글도 자주 올리지 못하게 되었네요. ^^;; 데카메론은 아직 안 읽어봤어요. 아이리시스님과 같이 읽는다면 당장 책 구입해서 읽을 수 있어요~!! ㅎㅎㅎㅎ

아이리시스 2012-11-27 00:59   좋아요 0 | URL
그럼 우리 내년에 해요ㅎㅎㅎ(미루기 대마왕!!)

cyrus 2012-11-27 11:2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내년 1월 1일부터 시작해요!
 

 

 

 

 

 

 

 

 

 

 

 

 

 

 

 

가난한 대학교 국문과 시간강사인 지섭은 논술강사와 번역 아르바이트를 한다. 철학책 읽기를 좋아하는 철학과 대학생 민우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한다. 심상대의 중편소설 ≪단추≫에 나오는 인물들의 모습은 우리 시대 젊은 비정규직 인문학도의 초상화다. 소설가 심상대는 젊은이들, 특히 '문사철' 공부를 하면서 보이지 않는 앞날을 향해 살아가는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올해 부산 BEXCO에서 11월 1일부터 3일, 사흘동안 제2회 세계인문학포럼이 진행되었다. 올해는 유독 '힐링'(Healing)이라는 단어를 책, TV 심지어 대선판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한 단어가 되었다. 몇 년 전에 유행했던 '웰빙'(Well-being) 열풍의 데자부가 느껴진다.  그 때는 '잘 먹고 잘 사자'는 것이었는데 올해는 잘 살기 위해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것도 중요해진 것이다. 세계인문학포럼도 올해 주제를 '치유의 인문학'으로 정했다. 이 행사에는 세계적인 석학들이 참여, 강연을 펼쳤다. 이들은 무한경쟁 사회에 지치고 상처 입은 현대들을 위해 인문학이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시키고 참된 자아를 찾자고 입을 모았다.

 

나는 이번 세계인문학포럼에 대학생 자격으로 자원 참가했다. 석학들의 강연이 대학생 이상의 지식 수준을 요구하는 내용이라서 대학생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대학생들이 포럼에 참석했다. 참여한 학생 일부는 이력서 한 줄을 채우기 위해서 온 것도 있었지만 나처럼 순수하게 인문학에 관심 있어서 온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포럼의 모든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는 마지막으로 대학생들을 위한 '차세대 리더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이 곳에서 나는 포럼 주제인 '치유의 인문학'과 관련하여 100여 명쯤 되는 학생들 앞에서 학생 대표로 발표를 했다. 발표가 끝나면 학생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는데 '토크 콘서트'과 비슷한 형태로 진행했다. 몇 몇 학생들 중에는 내가 대답을 못 할 정도로 수준 높은 질문을 하기도 했으며 인문학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인문학을 기피하는 사회에 아쉬워하는 공대생도 만날 수 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곳에서 인문학에 관심 많은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석학 단 한 명도 이 자리에 없었지만(<나의 서양미술순례>의 저자인 서중식 선생님만이 이 행사에 유일하게 참석하여 강연을 했다) 대학생들만 참여할 수 있는, 특히 인문학도 대학생들을 위한 인문학 포럼이 너무나도 좋았다.

 

포럼의 모든 행사가 끝나고 난 뒤, BEXCO 건물을 빠져 나오는 인문학도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일희일비(一喜一悲)했다. 과연 그들도 나처럼 같은 생각을 했을까?  그들의 모습은 마치 밤 12시가 지나면 마법이 풀려 재투성이로 돌아가는 신데렐라와 같았다.  사흘간의 인문학의 향연이 끝나면 전국의 인문학도들은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가 토익, 자격증을 공부하거나 학비를 모으기 위해 비정규직을 전전해야 한다.  미래 준비를 위해서 치열한 삶의 시간에 파묻힐수록 좋아했던 인문학 공부는 점점 잊혀져만 간다.  

 

 

 

 

 

 

 

 

 

 

 

 

 

 

 

 

 

 

최근 불어오는 인문학 열풍은 ‘풍요 속의 빈곤’이다. 미래의 인문학을 책임질 젊은 인문학도들은 ‘휴머니타리아트’(Humanitariat)로 전락했다. ‘인문학’(Humanities)을 공부하면서도 취업의 벽에 막혀 계약직, 아르바이트 등의 비정규직 노동을 하는 ‘노동 계급’(Proletariat)이다.

이들은 인문학의 필요성을 자각하지만, 사회가 그만큼 따라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저조한 취업률을 기록한 인문학과는 대학 내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했다.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 중 과반수는 전공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기업이 인문학을 사랑한다고해도 모든 인문학도를 사랑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기업이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창의적 인재의 중요성이 강조될수록 기업은 인문학을 많이 찾기 때문이다. 기업 환경이 기존 정보산업을 넘어 창조산업 중심으로 바뀌며 효율성 중심의 경영이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인문학에서 찾고 있다. 대학교에서 찬밥 신세가 된 교수들은 기업으로 옮겨 최고경영자와 직원들 앞에서 인문학을 강연한다. 기업이 인문학을 지원한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올해 우리나라에 열린 슬라보예 지젝의 '인문학 콘서트'다. 인문학 강연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온 아트앤스터디와 모 의류 브랜드 기업과의 공동 개최로 이루어졌는데 지젝이 우리나라에 오기 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인문학이 취업 전선에 죽 쑤고, 사회 내 인지도가 떨어진다고해서 기업에게 동냥하듯이 의지한다고해서 인문학도들이 회생할 수 있는 돌파구가 있을지 의문이다. 기업의 옷을 입은 인문학은 '실용적 학문'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삶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진짜 인문학이 살아남아야 한다.  

 

인문학자들은 상처받은 마음을 인문학을 통해 치유하자고 주장하지만 정작 치유 받아야 할 사람은 휴머니타리아트다. 인문학을 사랑했다는 이유만으로 성과주의 사회로부터 외면받고 상처받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휴머니타리아트의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을까?  과거, 교양의 성전이었던 대학교가 이 가엾은 학문의 영혼들을 구제하기에는 이미 시대는 과거로의 회귀가 불가능해졌다. 그렇다면 휴머니타리아트들은 정부, 기업의 관심과 지원을 기다린 채 불안과 자조감에 시달려야만 하는가. 아니면 휴머니타리아트가 살아남는 법을 이들의 손에 쥐고 있을 철학책에 찾아야하는 것인가.

 

그들로부터 위로받기를 기대하는 인문학도의 자세는 인문학의 위기를 지속하게 만들 뿐이다. 현실과 괴리된 철학에 심취하는 것만이 휴머니타리아트가 추구해야 하는 인문학이 아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에 나오는 아웃사이더처럼 하이데거의 책을 손에 쥔다고 해서 위안이 될 수 없다. 그 모습은 인문학도의 자존심이 아니라 혼자만의 고독의 몸부림이다.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하여 다 함께 미래를 고민하고 소통하는 인문학이 있어야 한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망치는 파괴의 도구가 아니라 창조의 도구”라고 말했다. 낡고 추상적인 우상(偶像)의 철학을 망치로 깨뜨려 인간적 품성을 회복할 것을 역설했다. 휴머니타리아트는 철학책이라는 근사한 소품을 잠시 내려놓고 공감과 소통을 위한 망치질을 해보자. 인문학을 하면 먹고살기 어렵다는 편견의 벽을 휴머니타리아트가 허물어야 한다. 벽 너머에는 수많은 휴머니타리아트가 있다.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진솔한 대화와 토론을 통해 무한경쟁 사회 속에서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 그리고 이제 대학과 기업 속에 갇힌 인문학을 구출하여 되돌려받자. '차세대 리더 워크숍'처럼 휴머니타리아트를 위한, 휴머니타리아트가 만드는 인문학 행사가 필요하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적은 유용한 인문적 지식을 갖추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인문학의 가장 큰 힘은 폭넓은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기를 사유하는 데 있다. 인문학을 주체적으로 공부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먹고살기 어려워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아도 인문학 공부를 다 함께 해보자.

한국의 휴머니타리아트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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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2-11-12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취업 안 되는 대학생도 괴롭지만 얼마 전 기사를 보니 취업 안 되는 학과 교수들도 고생이더군요.기업체 찾아다니며 '우리 학생들 좀 뽑아주세요' 하면서 아쉬운 인사하러 발이 부르트게 돌아다니는 이들도 있더라고요.

cyrus 2012-11-21 18:53   좋아요 0 | URL
학과 학생들 취업률 높여야 자신들 업무성과에 반영되고, 심지어 학생들은 교수를 취업 알선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니.. 과거의 교양인들을 양성하는 대학의 모습을 되찾기가 어려워보입니다..

맥거핀 2012-11-12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보니 기업중에 인문학을 취업에 반영하겠다는 기업도 있기는 하더군요. 어떤 식으로 반영하는지도 궁금하고, 그게 과연 좋은걸까...하는 생각도 들지만요.(인문학마저 '스펙'이 되면 안될텐데요.) 그건 그렇고 휴머니타리아트라는 말이 누가 만든 말이에요? 혹시 cyrus님?

cyrus 2012-11-21 18:54   좋아요 0 | URL
네, 휴머니타리아트는 제가 한 번 만들어봤어요. ^^

루쉰P 2012-11-20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여전히 인문학도로 열심히 공부를 하고 계시네요. ^^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인문학 공부의 열성적인 팬 역시 저입니다.
후후 저 오랜만에 글 하나 올렸어요. ㅋ 살아 돌아 왔습니다. ㅋ

cyrus 2012-11-21 18:55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루쉰님. 잘 지내고 계시죠? 이제 또 추운 겨울이 찾아왔는데 여전히 경비일을 하시는지요? 저는 요즘 대학생활하느라 예전처럼 알라딘에 놀 시간이 없네요, 책 읽고 글 쓰는 시간도 많이 줄어들었고,, 그래도 조용한 제 서재에 찾아오셔서 반가운 댓글 인사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_^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가을색이 완연합니다. 갑작스레 불어오는 찬바람에 계절의 변화를 다시 느끼게 됩니다. 낭만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계절을 추억하는 것까지 각박할 정도로 세상은 참 바쁘게 돌아갑니다. 하지만 10월의 마지막 밤이 다가오는 지금, 가을의 끝자락이 될 수 있는 이 날만큼은 모든 분들이 따뜻한 커피나 차 한 잔과 함께 각자 낭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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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수첩 - 초콜리티어가 알려주는 57가지 구르메 수첩 15
고영주 지음 / 우듬지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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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부터 학교 도서관에서 중간고사를 공부하면서 전공 책보다는 도서관에 꽂혀 있는 책이 너무나도 읽고 싶었다. 공부하다가 중간에 읽을 수 있는 얇은 분량의 책을 찾다가 읽은 게 바로 『초콜릿 수첩』이다. 판형이 작은데다 분량도 얇다. ‘구르메 수첩’이라고 다양한 음식, 음료를 소개하는 시리즈 중 하나이다.

사실 나는 시험공부를 하면 항상 입가심으로 먹는 것이 초콜릿이다. 초콜릿이라고 해서 그냥 달달한 일반 초콜릿을 말하는 건 아니다. 조그만 플라스틱 통으로 판매되는 72% 성분 드림카카오를 먹는다. 내가 지금까지 먹어 본 드림카카오 초콜릿은 카카오 포함 성분 56%, 72% 뿐이다. 몇 년 전에 드림카카오가 판매되기 시작했을 때 86%, 그리고 먹으면 ‘분필 맛’이 난다는 궁극의 99%의 하이(High) 카카오 초콜릿까지 나오기도 했지만 현재는 매출이 저조해서 출시되지 않고 있다.

다크 초콜릿은 카카오 함량이 높을수록 단맛보다는 쓴맛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나는 단 맛이 나는 ‘가나 초콜릿’보다는 다크 초콜릿을 좋아한다. 입 안에 다크 초콜릿 두 알을 넣어 녹으면서 먹으면 쓴 맛이 나면서 동시에 달달하게 느껴지는 뒷맛이 좋다. 다크 초콜릿을 먹으면서 ‘고진감래’는 폭탄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초콜릿 원재료인 카카오에 항산화제 기능을 하는 폴리페놀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서 건강에 좋다. 그래서 카카오 성분이 높으면서 설탕 성분이 적을수록 좋은 초콜릿이다. 이것을 기준으로 초콜릿의 품질을 가늠할 수 있다. 일단 카카오 성분이 많을수록 고급, 10~20%만 포함되어 있으면 중급 그리고 카카오 성분 함량이 10% 미만은 이미테이션 초콜릿으로 분류한다. 이미테이션 초콜릿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자나 케이크 등의 코팅이나 발렌타이 데이 때 비싼 가격으로 판매되는 선물용 초콜릿이다. (그러니 발렌타인 데이 때 초콜릿을 사는 것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굳이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 화려하게 포장된 ‘가짜’ 초콜릿을 살 필요가 있을까)

유일하게 발렌타이 데이만 되면 초콜릿 선물에 집착하는 현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초콜릿을 엄청 좋아한다. 그러나 좋은 초콜릿을 구별하는 방법부터 초콜릿에 잘 어울리는 음식이 무엇인지 등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제대로 만든 초콜릿은 입에 넣기 전에도 알 수 있는데, 성분 표시에 ‘팜유’가 없어야 하고 광택에 나야 한다. 잘못 만든 초콜릿은 표면에 윤기가 없고 뿌옇다. 또 손으로 만졌을 때 단단하고 매끄러운 것이 좋은 초콜릿이다.

요즘에는 수제 초콜릿이 유행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의 저자인 고영주 씨(현재 벨기에 정통 수제 초콜릿 전문카페 ‘카카오봄’(CACAOBOOM) 운영)는 국내 1세대 초콜릿티어다. 초콜릿티어란 초콜릿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초콜릿을 이용해 예술작품을 만드는 직업을 말한다.

『초콜릿 수첩』에는 저자가 운영하는 카카오봄에서 판매되는 30여 종 이상의 수제 초콜릿의 사진과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수제 초콜릿은 일반 가게에서 판매되는 초콜릿과 달리 다양한 재료와 형태로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책 속에 있는 ‘그림의 초콜릿’을 보노라면 저 앙증맞은 갈색 조각을 한 입에 넣어 맛보고 싶다는 욕구가 든다.




딸기 트뤼플을 보는 순간, 딸기맛 미니쉘이 생각났다. 그러나 가공된 딸기향을 첨가하는 미니쉘과는 차원이 다르다. 딸기 트뤼플은 딸기 리큐르라는 술을 첨가해서 만들어진다. 초콜릿 제조 과정에 알코올이 첨가할 수 있다는 점이 우리가 생각하는 기존의 초콜릿의 인식을 확 달라지게 만든다.





사실은 초콜릿을 좀 먹어 보거나 수제 초콜릿을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일반 상식이다. 초콜릿은 술과 잘 어울린다. 초콜릿의 타우린 성분은 알코올 분해를 돕는다. 위스키에 다크 초콜릿을 함께 먹으면 술의 쓴 맛을 부드럽게 눌러주는 효과가 있다. 카카오봄에서 판매되는 수제 초콜릿 중에는 생각보다 알코올을 첨가해서 만들어지는 게 꽤 많다. 위스키에 곁들여 먹기도 하지만, 아예 위스키를 섞어서 초콜릿을 만들 수도 있다. 환상의 궁합에서 탄생된 것이 바로 ‘위스키 봉봉’이다. 위스키 봉봉을 입 안에 넣는 순간, 위스키 특유의 달콤하면서도 뜨거운 것이 느껴진다.




‘키싱 유’(Kissing You)라는 귀여운 이름의 초콜릿은 코냑을 넣어 만든 것이다. 키싱 유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사실은 초콜릿의 이름을 저자가 직접 붙였다는 것이다. 코냑처럼 뜨겁고 가나시(생크림과 초콜릿을 섞어 만든 반죽, 초콜릿 만드는 데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기본적이면서 필수적인 재료) 크림처럼 고급스럽고 부드러운 입맞춤을 연상시킨 다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체리 퐁당’은 체리로 만들어지는 독일산 브랜디 키어시(Kirsch)를 첨가한 것이다. 사진만 보면 얼핏 체리 크림 같다. 사실 시중에 판매되는 초콜릿 중에서는 초콜릿 또는 바닐라 크림의 침전물이 들어가 있는 제품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은은한 과일 맛의 침전물이 있는 초콜릿이 무척 신선하다. 책에서 소개된 수제 초콜릿 중에서 가장 먹어보고 싶은 것 중의 하나다.




카카오봄에는 견과류, 과일 등 다양한 성분을 첨가한 수제 초콜릿을 제조하고 있는데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이 ‘칠리 페퍼’다. 이름 뜻대로 ‘매운’ 초콜릿이다. 사진 속 초콜릿 조각에 살짝 뿌려진 붉은 칠리 페퍼 가루가 눈에 띈다. ‘매운’ 초콜릿이라는 이미지가 달달한 초콜릿 맛에 길들여진 우리들에게 생소해보이지만, 가장 원시적인 초콜릿을 먹었다던 멕시코에서는 매운 초콜릿이 낯설지가 않다. 초코릿은 처음에는 음료수 형태였다. 멕시코 인들이 즐겨 마셨던 카카오 음료가 바로 초콜릿의 시초인 것이다. 매운 향신료를 좋아하는 멕시코 인들은 카카오 음료에 칠리 페퍼 가루를 넣어 마시기도 했다. 그러나 매운 맛과 초콜릿의 조화는 전 세계의 초콜리티어들 사이에서는 조심스러운 시도이다. 너무 매워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단 맛의 강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칠리 페퍼의 매콤한 맛은 달콤한 초콜릿과 섞여 마지막에 톡 쏘는 특징이 있다.




초콜릿 성분 중에는 페닐에틸아민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다. 이는 사랑을 할 때 대뇌에서 분비되는 물질로 사람을 행복하거나 황홀하게 만든다. 또 적은 양이지만 카페인이 들어 있어 기분을 업 시켜주는 효과도 있다. 이래저래 초콜릿을 먹으면 몸과 마음이 좋아진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시험 기간 공부하면서 심심할 때 이 책에 수록된 수제 초콜릿만 봐도 기분이 좋아졌다. 언젠가 나도 수제 초콜릿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집에서 초콜릿을 만드는 건 여간 쉽지가 않아 보인다. 초콜릿을 만들 때 필요한 재료만 해도 꽤 많고 만드는 과정이 까다로우니까. 온도, 습도의 조절에 따라 초콜릿의 맛이 좌우될 정도이니 그만큼 인내와 꼼꼼함을 요구한다.

그런데 확실한 건 만약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절대로 값 비싸고 화려한 포장으로 싸인 발렌타인 데이용 초콜릿을 사거나 주지도 않을 것이다. 그건 단지 그 날을 위한 기념용일뿐이며 이미테이션 초콜릿 가지고 진짜 사랑을 증명한다는 것 자제가 모순이다. 몸과 마음이 고생해도, 비용이 더 들어가더라도 진심어린 정성과 사랑이 듬뿍 담겨져 있는 수제 초콜릿을 만들어 선물하고 싶다. 과연 그 날이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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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2-10-31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밤에 뛰어나가 초콜릿을 사들고 들어오게 싶게 만드는 페이퍼입니다.^^;;
 

 

 

 

 

 

 

 

 

뜨겁게 떠나간 여름이 남기고 간 깃털일까,

 

아니면 한 번에 9만 리나 날아다닌다는 전설의 붕새(一)가 남긴 거대한 깃털일까.

 

 

- cyrus 2012.10. 29  어느 가을날 -

 

 

 

 

 

 

 

 

 

 

 

 

 

 

 

 

 

 

 

 

 

 * 붕새 (一) : 『장자』〈소요유〉편에 나오는 상상 속의 새. 한번에 9만 리를 날아오르는데 날개는 구름처럼 하늘을 뒤덮고 파도가 3천 리에 이를 정도로 큰 바람을 일으킬 정도로 거대한 크기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마음껏 누리는 위대한 존재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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