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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수첩 - 초콜리티어가 알려주는 57가지 ㅣ 구르메 수첩 15
고영주 지음 / 우듬지 / 2011년 12월
평점 :
2주 전부터 학교 도서관에서 중간고사를 공부하면서 전공 책보다는 도서관에 꽂혀 있는 책이 너무나도 읽고 싶었다. 공부하다가 중간에 읽을 수 있는 얇은 분량의 책을 찾다가 읽은 게 바로 『초콜릿 수첩』이다. 판형이 작은데다 분량도 얇다. ‘구르메 수첩’이라고 다양한 음식, 음료를 소개하는 시리즈 중 하나이다.
사실 나는 시험공부를 하면 항상 입가심으로 먹는 것이 초콜릿이다. 초콜릿이라고 해서 그냥 달달한 일반 초콜릿을 말하는 건 아니다. 조그만 플라스틱 통으로 판매되는 72% 성분 드림카카오를 먹는다. 내가 지금까지 먹어 본 드림카카오 초콜릿은 카카오 포함 성분 56%, 72% 뿐이다. 몇 년 전에 드림카카오가 판매되기 시작했을 때 86%, 그리고 먹으면 ‘분필 맛’이 난다는 궁극의 99%의 하이(High) 카카오 초콜릿까지 나오기도 했지만 현재는 매출이 저조해서 출시되지 않고 있다.
다크 초콜릿은 카카오 함량이 높을수록 단맛보다는 쓴맛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나는 단 맛이 나는 ‘가나 초콜릿’보다는 다크 초콜릿을 좋아한다. 입 안에 다크 초콜릿 두 알을 넣어 녹으면서 먹으면 쓴 맛이 나면서 동시에 달달하게 느껴지는 뒷맛이 좋다. 다크 초콜릿을 먹으면서 ‘고진감래’는 폭탄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초콜릿 원재료인 카카오에 항산화제 기능을 하는 폴리페놀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서 건강에 좋다. 그래서 카카오 성분이 높으면서 설탕 성분이 적을수록 좋은 초콜릿이다. 이것을 기준으로 초콜릿의 품질을 가늠할 수 있다. 일단 카카오 성분이 많을수록 고급, 10~20%만 포함되어 있으면 중급 그리고 카카오 성분 함량이 10% 미만은 이미테이션 초콜릿으로 분류한다. 이미테이션 초콜릿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자나 케이크 등의 코팅이나 발렌타이 데이 때 비싼 가격으로 판매되는 선물용 초콜릿이다. (그러니 발렌타인 데이 때 초콜릿을 사는 것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굳이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 화려하게 포장된 ‘가짜’ 초콜릿을 살 필요가 있을까)
유일하게 발렌타이 데이만 되면 초콜릿 선물에 집착하는 현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초콜릿을 엄청 좋아한다. 그러나 좋은 초콜릿을 구별하는 방법부터 초콜릿에 잘 어울리는 음식이 무엇인지 등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제대로 만든 초콜릿은 입에 넣기 전에도 알 수 있는데, 성분 표시에 ‘팜유’가 없어야 하고 광택에 나야 한다. 잘못 만든 초콜릿은 표면에 윤기가 없고 뿌옇다. 또 손으로 만졌을 때 단단하고 매끄러운 것이 좋은 초콜릿이다.
요즘에는 수제 초콜릿이 유행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의 저자인 고영주 씨(현재 벨기에 정통 수제 초콜릿 전문카페 ‘카카오봄’(CACAOBOOM) 운영)는 국내 1세대 초콜릿티어다. 초콜릿티어란 초콜릿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초콜릿을 이용해 예술작품을 만드는 직업을 말한다.
『초콜릿 수첩』에는 저자가 운영하는 카카오봄에서 판매되는 30여 종 이상의 수제 초콜릿의 사진과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수제 초콜릿은 일반 가게에서 판매되는 초콜릿과 달리 다양한 재료와 형태로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책 속에 있는 ‘그림의 초콜릿’을 보노라면 저 앙증맞은 갈색 조각을 한 입에 넣어 맛보고 싶다는 욕구가 든다.
딸기 트뤼플을 보는 순간, 딸기맛 미니쉘이 생각났다. 그러나 가공된 딸기향을 첨가하는 미니쉘과는 차원이 다르다. 딸기 트뤼플은 딸기 리큐르라는 술을 첨가해서 만들어진다. 초콜릿 제조 과정에 알코올이 첨가할 수 있다는 점이 우리가 생각하는 기존의 초콜릿의 인식을 확 달라지게 만든다.
사실은 초콜릿을 좀 먹어 보거나 수제 초콜릿을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일반 상식이다. 초콜릿은 술과 잘 어울린다. 초콜릿의 타우린 성분은 알코올 분해를 돕는다. 위스키에 다크 초콜릿을 함께 먹으면 술의 쓴 맛을 부드럽게 눌러주는 효과가 있다. 카카오봄에서 판매되는 수제 초콜릿 중에는 생각보다 알코올을 첨가해서 만들어지는 게 꽤 많다. 위스키에 곁들여 먹기도 하지만, 아예 위스키를 섞어서 초콜릿을 만들 수도 있다. 환상의 궁합에서 탄생된 것이 바로 ‘위스키 봉봉’이다. 위스키 봉봉을 입 안에 넣는 순간, 위스키 특유의 달콤하면서도 뜨거운 것이 느껴진다.
‘키싱 유’(Kissing You)라는 귀여운 이름의 초콜릿은 코냑을 넣어 만든 것이다. 키싱 유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사실은 초콜릿의 이름을 저자가 직접 붙였다는 것이다. 코냑처럼 뜨겁고 가나시(생크림과 초콜릿을 섞어 만든 반죽, 초콜릿 만드는 데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기본적이면서 필수적인 재료) 크림처럼 고급스럽고 부드러운 입맞춤을 연상시킨 다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체리 퐁당’은 체리로 만들어지는 독일산 브랜디 키어시(Kirsch)를 첨가한 것이다. 사진만 보면 얼핏 체리 크림 같다. 사실 시중에 판매되는 초콜릿 중에서는 초콜릿 또는 바닐라 크림의 침전물이 들어가 있는 제품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은은한 과일 맛의 침전물이 있는 초콜릿이 무척 신선하다. 책에서 소개된 수제 초콜릿 중에서 가장 먹어보고 싶은 것 중의 하나다.
카카오봄에는 견과류, 과일 등 다양한 성분을 첨가한 수제 초콜릿을 제조하고 있는데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이 ‘칠리 페퍼’다. 이름 뜻대로 ‘매운’ 초콜릿이다. 사진 속 초콜릿 조각에 살짝 뿌려진 붉은 칠리 페퍼 가루가 눈에 띈다. ‘매운’ 초콜릿이라는 이미지가 달달한 초콜릿 맛에 길들여진 우리들에게 생소해보이지만, 가장 원시적인 초콜릿을 먹었다던 멕시코에서는 매운 초콜릿이 낯설지가 않다. 초코릿은 처음에는 음료수 형태였다. 멕시코 인들이 즐겨 마셨던 카카오 음료가 바로 초콜릿의 시초인 것이다. 매운 향신료를 좋아하는 멕시코 인들은 카카오 음료에 칠리 페퍼 가루를 넣어 마시기도 했다. 그러나 매운 맛과 초콜릿의 조화는 전 세계의 초콜리티어들 사이에서는 조심스러운 시도이다. 너무 매워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단 맛의 강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칠리 페퍼의 매콤한 맛은 달콤한 초콜릿과 섞여 마지막에 톡 쏘는 특징이 있다.
초콜릿 성분 중에는 페닐에틸아민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다. 이는 사랑을 할 때 대뇌에서 분비되는 물질로 사람을 행복하거나 황홀하게 만든다. 또 적은 양이지만 카페인이 들어 있어 기분을 업 시켜주는 효과도 있다. 이래저래 초콜릿을 먹으면 몸과 마음이 좋아진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시험 기간 공부하면서 심심할 때 이 책에 수록된 수제 초콜릿만 봐도 기분이 좋아졌다. 언젠가 나도 수제 초콜릿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집에서 초콜릿을 만드는 건 여간 쉽지가 않아 보인다. 초콜릿을 만들 때 필요한 재료만 해도 꽤 많고 만드는 과정이 까다로우니까. 온도, 습도의 조절에 따라 초콜릿의 맛이 좌우될 정도이니 그만큼 인내와 꼼꼼함을 요구한다.
그런데 확실한 건 만약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절대로 값 비싸고 화려한 포장으로 싸인 발렌타인 데이용 초콜릿을 사거나 주지도 않을 것이다. 그건 단지 그 날을 위한 기념용일뿐이며 이미테이션 초콜릿 가지고 진짜 사랑을 증명한다는 것 자제가 모순이다. 몸과 마음이 고생해도, 비용이 더 들어가더라도 진심어린 정성과 사랑이 듬뿍 담겨져 있는 수제 초콜릿을 만들어 선물하고 싶다. 과연 그 날이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