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미술의 정의
르네상스(Renaissance)는 ‘재생’ 또는 ‘부활’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15~16세기 유럽에서 고전 학문과 그 가치에 대한 관심이 미술로 확대되는 시기를 의미한다. 이 시대에는 그리스, 로마 미술과 문학을 재평가하였고, 해부학이나 투시원근법과 같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인체와 자연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당시 봉건제의 몰락, 상업의 성장, 인쇄술․항해술 등과 같은 혁신적인 신기술의 등장 및 발명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신에 대한 관심은 점차 식어가고 인간에 대한 탐구가 활발해지며 새로운 인문주의 정신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한 미술가들은 미술의 소재를 인간에서 구하여 자유로운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미켈란젤로(1475~1564), 라파엘로(1483~1520)등 세 사람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미술가로서 크게 명성을 떨쳤다.
융합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르네상스 미술
특히 메디치 가문은 금융업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화가, 조각가, 건축가, 철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가와 과학자들을 후원했다. 또한 이들이 피렌체에서 만나 서로 전문지식을 교류하면서 공동 작업을 할 수 있게 지원했다. 그 결과 피렌체는 여러 학문과 문화가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우뚝 서게 되었다. 예술가와 학자들을 아낌없이 후원함으로써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데 기여한 메디치 가문의 혜안과 통찰력은 개방을 통한 ‘융합’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융합의 원리는 르네상스 미술가들의 작품에서도 읽을 수 있다. 르네상스의 미술은 단순히 회화 한 분야에만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분야의 학문들의 융합을 통해 매우 독창적인 표현이 창출되었다.
과학과 미술의 융합,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비트루비우스의 이론에 따른 인체 비례도> 1487년경
고대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B.C. 80년경~B.C 15년경)의 저서를 접하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이를 드로잉으로 그린 것이다. 두 팔과 다리를 벌리고 선 남성의 인체를 원과 정사각형의 선으로 둘러 그 안에 인체가 완벽히 합치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 드로잉을 통해 인체 비례에 대한 관심과 인간을 우주의 원리와 연결시키려는 과학적인 측면을 엿볼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림에 가장 이상적인 인체를 담아내기 위해 아름다움을 정확한 수학적 비례를 통해 규명하고자 했다. 훗날 르네상스의 과학적 사고는 원근법과 명암법 탄생의 근간이 되었다. 인체를 만물의 척도로 바라보는 관점은 르네상스의 인간 중심주의를 반영한 것이다. 이 드로잉은 인간 중심의 과학이 예술과 어떻게 융합되었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작품이다.
문학과 미술의 융합, 보티첼리
르네상스 미술 작품들 대부분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티브로 한 것이 많다. 하지만 그 당시에 출판되어 유행한 문학 작품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보티첼리의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 이야기>다. 총 4개의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탈리아의 작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단테의 『신곡』과 더불어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근대적 문학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산드로 보티첼리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 이야기> 첫 번째 그림, 1483년경
그림 속 이야기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스타조란 청년은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했다가 거절당해 크게 실의에 빠진다. 그림에는 두 명의 나스타조가 등장하는데 가장 왼쪽에 이제 막 숲에 들어선 나스타조는 젊은 시절 모습이고, 옆의 나스타조는 시간이 약간 지난 후 모습이다. 그는 심란한 마음을 달래며 숲속을 산책하면서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다. 백마를 탄 기사가 칼을 들고 한 여자를 쫓아오고, 사냥개들이 여자에게 달려들어 물어뜯고 있다. 나스타조는 급한 대로 나뭇가지라도 들고 그녀를 도와주려 한다. (첫 번째 그림)
산드로 보티첼리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 이야기> 두 번째 그림, 1483년경
결국 여자는 땅에 쓰러지고 기사는 말에서 내려 그녀의 등을 갈라서 내장을 꺼낸다. 그리고 개들에게 그녀의 내장을 던져준다. 왼쪽에는 질겁하고 도망가는 나스타조가 있다. 그러나 나스타조가 목격한 장면은 환상이다. 그 여인이 살아있을 때 그 기사의 청혼을 거절했다가 그 벌로 매일같이 기사에게 쫓기며 개들에게 내장을 뜯기는 저주에 걸린 것이다. (두 번째 그림)
산드로 보티첼리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 이야기> 세 번째 그림, 1483년경
나스타조는 꾀를 내서 자신의 고백을 거절한 여자와 그녀의 가족들을 초대한다. 장소는 바로 잔인한 장면이 벌어졌던 그 숲이다. 어김없이 쫓기는 여자와 기사, 사냥개들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하고 주변은 아수라장이 됐다. 나스타조가 바라보는 여성이 짝사랑한 여자이고 둘은 시선을 마주치고 있다. 즉 나스타조는 “너도 나랑 결혼하지 않으면 평생 이 꼴로 만들어주겠다”라는 일종의 경고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세 번째 그림)
산드로 보티첼리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 이야기> 네 번째 그림, 1483년경
결국 나스타조는 원하는 여인과 결혼식을 올린다. 신부는 바로 왼쪽 테이블에 나스타조와 마주보고 앉아있다. (네 번째 그림)
이 그림은 원래 명문가의 부탁을 받고 그린 것으로 신혼부부의 방에 걸러져 있었다고 한다. 그림 속에 나타나 있는 이야기의 주제와 연관 지어 생각해보면 신부를 위한 그림으로 원하지 않는 결혼이라도 참고 견뎌야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신의 도상을 중심으로 회개를 강조하는 그림보다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문학 작품을 통해 인간적 삶의 교훈을 전달하는 그림들이 등장했다.
철학과 미술의 융합, 라파엘로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베드로 성당의 '서명(署名)의 방'을 꾸미기 위해 철학, 신학, 시학(詩學), 법학 등 당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4개 분야의 학문을 주제로 하는 벽화 제작을 라파엘로에게 주문했다. 그 중에 철학 즉 '인간의 학문'을 주제로 하는 그림이 바로 <아테네 학당>이다.
라파엘로 산치오 <아테네 학당> 1510~1511년
길이가 8m에 달하는 거대한 이 작품에는 54명의 고대 철학자, 천문학자, 수학자들이 등장한다. 화면 중앙의 두 인물은 서구 문화사에 있어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상가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다. 플라톤은 왼손에는 그의 저서 『티마이오스』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고 있다. 플라톤이 들고 있는 책은 세계의 본질을 논하는 형이상학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은 인간의 지혜로운 처신을 논하는 윤리학이다. 플라톤이 현상을 초월하는 본질인 이데아(idea)를 추구했던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질은 현상에 내재한다고 주장한다. 즉, 이들이 취한 자세는 현실의 문제를 바라보는 두 철인의 철학을 상징하고 있다. 그 외에도 고대의 걸출한 사상가들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특징적인 상황설정과 함께 묘사했다. 주요 인물만 예를 들어보면, 화면의 좌측 상단에서 녹색 옷의 소크라테스가 무리들 틈에서 열심히 토론하고 있고, 맨 앞줄 좌측에는 쭈그리고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수학자 피타고라스다. 오른쪽에는 컴퍼스로 도형을 그리는 유클리드가 있다. 라파엘로는 이 그림을 통해 당시 이탈리아와 고대 그리스를 서로 대응시켜 두 시대의 위인들을 향한 작가의 존경심을 표현하면서 고대의 부활에 의한 인문주의의 찬미를 드러내고 있다.
르네상스 미술에서 찾는 창조적 역량
최근 우리 사회에 각광받고 있는 키워드는 융합이다. ‘통섭’(統攝)이라 불리기도 하는 융합은 하나의 분야에 다른 것들을 접목하고, 섞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융합은 이미 수백 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 르네상스의 진원지인 피렌체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융합의 사고를 지닌 인물을 ‘르네상스 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르네상스 맨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다. 우리는 그를 미술가로 알고 있기도 하지만 천재적인 과학기술자로도 알고 있다. 실제로 그는 미술, 수학, 물리학, 공학을 망라한 다양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가 시대에 앞선 천부적인 능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상식을 벗어나 새로운 영역으로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융합의 사고는 꼭 학문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예술 분야에서도 필요하다. 사회가 다양해질수록 해결해야 할 새로운 융합주제는 끊임없이 늘어난다. 어려서부터 복합적으로 사고하고, 다른 분야에 눈을 돌릴 줄 아는 훈련이 된다면 창조적 예술 역량을 이끌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