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대학교 국문과 시간강사인 지섭은 논술강사와 번역 아르바이트를 한다. 철학책 읽기를 좋아하는 철학과 대학생 민우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한다. 심상대의 중편소설 ≪단추≫에 나오는 인물들의 모습은 우리 시대 젊은 비정규직 인문학도의 초상화다. 소설가 심상대는 젊은이들, 특히 '문사철' 공부를 하면서 보이지 않는 앞날을 향해 살아가는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올해 부산 BEXCO에서 11월 1일부터 3일, 사흘동안 제2회 세계인문학포럼이 진행되었다. 올해는 유독 '힐링'(Healing)이라는 단어를 책, TV 심지어 대선판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한 단어가 되었다. 몇 년 전에 유행했던 '웰빙'(Well-being) 열풍의 데자부가 느껴진다.  그 때는 '잘 먹고 잘 사자'는 것이었는데 올해는 잘 살기 위해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것도 중요해진 것이다. 세계인문학포럼도 올해 주제를 '치유의 인문학'으로 정했다. 이 행사에는 세계적인 석학들이 참여, 강연을 펼쳤다. 이들은 무한경쟁 사회에 지치고 상처 입은 현대들을 위해 인문학이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시키고 참된 자아를 찾자고 입을 모았다.

 

나는 이번 세계인문학포럼에 대학생 자격으로 자원 참가했다. 석학들의 강연이 대학생 이상의 지식 수준을 요구하는 내용이라서 대학생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대학생들이 포럼에 참석했다. 참여한 학생 일부는 이력서 한 줄을 채우기 위해서 온 것도 있었지만 나처럼 순수하게 인문학에 관심 있어서 온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포럼의 모든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는 마지막으로 대학생들을 위한 '차세대 리더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이 곳에서 나는 포럼 주제인 '치유의 인문학'과 관련하여 100여 명쯤 되는 학생들 앞에서 학생 대표로 발표를 했다. 발표가 끝나면 학생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는데 '토크 콘서트'과 비슷한 형태로 진행했다. 몇 몇 학생들 중에는 내가 대답을 못 할 정도로 수준 높은 질문을 하기도 했으며 인문학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인문학을 기피하는 사회에 아쉬워하는 공대생도 만날 수 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곳에서 인문학에 관심 많은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석학 단 한 명도 이 자리에 없었지만(<나의 서양미술순례>의 저자인 서중식 선생님만이 이 행사에 유일하게 참석하여 강연을 했다) 대학생들만 참여할 수 있는, 특히 인문학도 대학생들을 위한 인문학 포럼이 너무나도 좋았다.

 

포럼의 모든 행사가 끝나고 난 뒤, BEXCO 건물을 빠져 나오는 인문학도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일희일비(一喜一悲)했다. 과연 그들도 나처럼 같은 생각을 했을까?  그들의 모습은 마치 밤 12시가 지나면 마법이 풀려 재투성이로 돌아가는 신데렐라와 같았다.  사흘간의 인문학의 향연이 끝나면 전국의 인문학도들은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가 토익, 자격증을 공부하거나 학비를 모으기 위해 비정규직을 전전해야 한다.  미래 준비를 위해서 치열한 삶의 시간에 파묻힐수록 좋아했던 인문학 공부는 점점 잊혀져만 간다.  

 

 

 

 

 

 

 

 

 

 

 

 

 

 

 

 

 

 

최근 불어오는 인문학 열풍은 ‘풍요 속의 빈곤’이다. 미래의 인문학을 책임질 젊은 인문학도들은 ‘휴머니타리아트’(Humanitariat)로 전락했다. ‘인문학’(Humanities)을 공부하면서도 취업의 벽에 막혀 계약직, 아르바이트 등의 비정규직 노동을 하는 ‘노동 계급’(Proletariat)이다.

이들은 인문학의 필요성을 자각하지만, 사회가 그만큼 따라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저조한 취업률을 기록한 인문학과는 대학 내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했다.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 중 과반수는 전공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기업이 인문학을 사랑한다고해도 모든 인문학도를 사랑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기업이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창의적 인재의 중요성이 강조될수록 기업은 인문학을 많이 찾기 때문이다. 기업 환경이 기존 정보산업을 넘어 창조산업 중심으로 바뀌며 효율성 중심의 경영이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인문학에서 찾고 있다. 대학교에서 찬밥 신세가 된 교수들은 기업으로 옮겨 최고경영자와 직원들 앞에서 인문학을 강연한다. 기업이 인문학을 지원한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올해 우리나라에 열린 슬라보예 지젝의 '인문학 콘서트'다. 인문학 강연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온 아트앤스터디와 모 의류 브랜드 기업과의 공동 개최로 이루어졌는데 지젝이 우리나라에 오기 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인문학이 취업 전선에 죽 쑤고, 사회 내 인지도가 떨어진다고해서 기업에게 동냥하듯이 의지한다고해서 인문학도들이 회생할 수 있는 돌파구가 있을지 의문이다. 기업의 옷을 입은 인문학은 '실용적 학문'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삶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진짜 인문학이 살아남아야 한다.  

 

인문학자들은 상처받은 마음을 인문학을 통해 치유하자고 주장하지만 정작 치유 받아야 할 사람은 휴머니타리아트다. 인문학을 사랑했다는 이유만으로 성과주의 사회로부터 외면받고 상처받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휴머니타리아트의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을까?  과거, 교양의 성전이었던 대학교가 이 가엾은 학문의 영혼들을 구제하기에는 이미 시대는 과거로의 회귀가 불가능해졌다. 그렇다면 휴머니타리아트들은 정부, 기업의 관심과 지원을 기다린 채 불안과 자조감에 시달려야만 하는가. 아니면 휴머니타리아트가 살아남는 법을 이들의 손에 쥐고 있을 철학책에 찾아야하는 것인가.

 

그들로부터 위로받기를 기대하는 인문학도의 자세는 인문학의 위기를 지속하게 만들 뿐이다. 현실과 괴리된 철학에 심취하는 것만이 휴머니타리아트가 추구해야 하는 인문학이 아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에 나오는 아웃사이더처럼 하이데거의 책을 손에 쥔다고 해서 위안이 될 수 없다. 그 모습은 인문학도의 자존심이 아니라 혼자만의 고독의 몸부림이다.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하여 다 함께 미래를 고민하고 소통하는 인문학이 있어야 한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망치는 파괴의 도구가 아니라 창조의 도구”라고 말했다. 낡고 추상적인 우상(偶像)의 철학을 망치로 깨뜨려 인간적 품성을 회복할 것을 역설했다. 휴머니타리아트는 철학책이라는 근사한 소품을 잠시 내려놓고 공감과 소통을 위한 망치질을 해보자. 인문학을 하면 먹고살기 어렵다는 편견의 벽을 휴머니타리아트가 허물어야 한다. 벽 너머에는 수많은 휴머니타리아트가 있다.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진솔한 대화와 토론을 통해 무한경쟁 사회 속에서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 그리고 이제 대학과 기업 속에 갇힌 인문학을 구출하여 되돌려받자. '차세대 리더 워크숍'처럼 휴머니타리아트를 위한, 휴머니타리아트가 만드는 인문학 행사가 필요하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적은 유용한 인문적 지식을 갖추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인문학의 가장 큰 힘은 폭넓은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기를 사유하는 데 있다. 인문학을 주체적으로 공부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먹고살기 어려워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아도 인문학 공부를 다 함께 해보자.

한국의 휴머니타리아트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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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2-11-12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취업 안 되는 대학생도 괴롭지만 얼마 전 기사를 보니 취업 안 되는 학과 교수들도 고생이더군요.기업체 찾아다니며 '우리 학생들 좀 뽑아주세요' 하면서 아쉬운 인사하러 발이 부르트게 돌아다니는 이들도 있더라고요.

cyrus 2012-11-21 18:53   좋아요 0 | URL
학과 학생들 취업률 높여야 자신들 업무성과에 반영되고, 심지어 학생들은 교수를 취업 알선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니.. 과거의 교양인들을 양성하는 대학의 모습을 되찾기가 어려워보입니다..

맥거핀 2012-11-12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보니 기업중에 인문학을 취업에 반영하겠다는 기업도 있기는 하더군요. 어떤 식으로 반영하는지도 궁금하고, 그게 과연 좋은걸까...하는 생각도 들지만요.(인문학마저 '스펙'이 되면 안될텐데요.) 그건 그렇고 휴머니타리아트라는 말이 누가 만든 말이에요? 혹시 cyrus님?

cyrus 2012-11-21 18:54   좋아요 0 | URL
네, 휴머니타리아트는 제가 한 번 만들어봤어요. ^^

루쉰P 2012-11-20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여전히 인문학도로 열심히 공부를 하고 계시네요. ^^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인문학 공부의 열성적인 팬 역시 저입니다.
후후 저 오랜만에 글 하나 올렸어요. ㅋ 살아 돌아 왔습니다. ㅋ

cyrus 2012-11-21 18:55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루쉰님. 잘 지내고 계시죠? 이제 또 추운 겨울이 찾아왔는데 여전히 경비일을 하시는지요? 저는 요즘 대학생활하느라 예전처럼 알라딘에 놀 시간이 없네요, 책 읽고 글 쓰는 시간도 많이 줄어들었고,, 그래도 조용한 제 서재에 찾아오셔서 반가운 댓글 인사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