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오 영감의 비극

 

 

 

 

 

 

 

 

 

 

 

 

 

 

 

 

 

 

 

고리오 영감은 백만장자였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 그는 두 딸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베푼다. 아내의 죽음 이후 고리오 영감은 두 딸의 성장과 교육에 무서운 집착을 보이고 결혼 적령기가 되자 좋은 곳에 시집을 보낸다. 큰딸은 귀족, 둘째 딸은 부유한 은행가와 결혼한다. 이후 일을 그만 두고 고리오는 두 딸의 결혼 지참금을 대주느라 자신은 빈털터리가 되어 병들어 죽는다. 돈에 의한 비정상적인 부성애는 딸들을 불효녀로 만들고 아버지를 비참하게 죽게 만든다. 두 딸의 삶 역시 고리오 영감의 부성매만큼이나 비정상적이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은 '돈'이 인간을 지배하고 가족 관계마저도 왜곡시킨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위기의 베이비부머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을 견인한 지금의 50대들, 이른바 베이비부머로 이름 붙여진 부모 세대들이 본격적인 은퇴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조부모와 자식을 부양하며 세대 간의 버팀목 역할을 했지만 정작 본인을 위한 노후준비는 소홀했다. 한국판 ‘고리오 영감’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결혼문화연구소에 의하면 대한민국 평균 결혼비용이 1999년에 비해 2.7배 증가한 2억 808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결혼 관련 국민 부담이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경기 불황 속에서도 호화결혼식과 자녀 집 장만 유습은 중산층과 서민 가계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결혼을 앞두는 자식들보다 더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부모들이다. 자식들의 눈에는 부모들 입장은 안중에도 없고 남들은 다 그렇게 하는데, 나만 왜 그렇게 해 주지 않느냐며 대든다. 자식 전세자금이라도 마련해주고 나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넘겨주고 늙고 병들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을 할 여유마저 없다.

 

이들은 노후 자금을 교육비에 사용할 정도로 재테크 목적의 최우선 순위로 자녀 교육을 꼽는다. 이렇다보니 우리 사회 경제활동의 중추를 담당하는 베이비부머 절반은 은퇴 준비를 시작조차 못하게 된 것이다. 은퇴준비가 되지 못해 홀가분한 퇴출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회 잔류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들은 고령화 사회가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외환위기 이후 사회구조가 급변하는 가운데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심각한 노후소득보장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 소비 수준이 잔뜩 높아진 베이비붐 세대들은 그동안 부동산을 제외한 금융자산의 축적에 소홀했으며, 이 상태로는 자신의 긴 노후생활을 대비하기에 절대 역부족이다. 주로 자신의 주택 형태로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최근 주택에 대한 수요 감소와 이에 따른 가격 하락 현상에 직면하여 앞으로 재무적 어려움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이나 현행 퇴직연금 및 개인연금 등 사적연금 시스템에 의한 노후소득보장 기능 또한 절대적으로 미흡하다.

 

대부분의 40대는 부모로부터 풍요로운 자산을 물려받지도 못했고, 민주적 토양에서 20~30대를 보내지도 못했다. 나라에서든 기업에서든 가정에서든 중심역할을 해야 하는 연령대지만 수년째 계속되는 경제침체로 스스로도 보전하지 못하는 처지다. 그럼에도 정부나 정치권, 기업의 정책에서 40대는 열외대상인 듯하다. 무상보육, 청년실업, 퇴직자, 장애인, 여성에 대한 대책은 있어도 40대를 위한 대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시대 부모님들의 슬픈 자화상, 베이비부머

 

우리 부모들의 자식 사랑은 유별나다. 맹목적인 사랑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먼지까지도 털어내 보태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젊은 시절, 살림은 어려워도 자식만큼은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살았지만 지금도 멋대로 자란 우리들을 위해 늙어서도 막일을 서슴지 않는다. 오히려 가진 게 넉넉지 않은 것이 부모 가슴에 한으로 남는다.

 

산업화 역군으로 앞만 보고 달렸던 베이비부머들이 가정에서 왕따나 다름없는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직장에서 물러나면 따뜻한 가정이 자신을 맞아주리라 기대하지만 막상 가정으로 돌아오니 자신을 대하는 자녀들의 분위기는 싸늘하기만 하다. 자녀에게 물심양면으로 최선을 다했건만 이들은 위로와 사랑은커녕 외면하기 일쑤다. 딸이나 아들은 오히려 사랑을 언제 베풀었느냐는 듯 아버지를 퉁명하게 대하곤 한다. 실제로 60대 남성의 자살률이 가장 높다. 요즘 막 은퇴하고 있는 베이비부머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린 자식 더러운 똥오줌도 / 그대 마음 하나도 거리낌 없는데 / 늙으신 부모님 눈물과 침 떨어지면 / 그대는 도리어 미워하고 싫어하네 / 그대의 몸뚱어리 어디에서 나왔는가 / 아버님의 정기와 어머님의 피라네 / 그대여 늙어가는 부모님을 공경하오 / 젊으실 때 그대 위해 살과 뼈가 닳으셨소.”

 

 

《명심보감》에 수록된 ‘팔반가팔수’(八反歌八首) 중 제3절의 내용이다. 이것이 바로 자식을 향한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다. 사랑스러운 자식을 위해 늙어서도 고생하지만 자식을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대신 희생하는 부모의 모습을 우리 자식들은 이해해야 한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먹고 살기도 힘든 한 세상을 살아왔는데 이젠 자식들 기반까지 닦아줘야 하는 지금의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 그나마 믿었던 자식들마저 부모의 심정을 외면하고 있다. 자기 밖에 모르는 다 큰 자식에 의해서 지금도 대한민국 부모들의 살과 뼈는 닳아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2012. 10.8  대구대학교 안철수 강연회 단상

 

 

 

 

 

 

 

 

 

 

 

 

 

 

 

 

 

 

 

 

 

 

 

 

과거 대선 후보자들은 국민들을 위한 ‘착한’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 ‘착한’ 공약들을 내세웠다. 대선의 새 얼굴인 안철수 후보의 정치 비전은 그동안 출마해 온 대선 후보들이 내세웠던 ‘착한’ 공약들과 비슷하다. 그래서 구체적 방안이 없는 원론적인 내용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안 후보의 정치 비전을 아마추어 보듯이 그리 가볍게 볼 내용은 아니다. 안 후보는 국민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은 채 내세우는 정책 공약을 경계해야 한다며 자신의 정치 비전을 비판하는 입장을 반박했다. 그는 정책 공약은 국민들이 공감하는 것들을 토대로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어야한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자신의 정치 비전을 ‘개혁’이라는 단어를 붙여 소개하고 있다. ‘개혁’(Reform)의 의미를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쇄신’과 혼동하기도 한다. 사전적 의미는 같지만 학문상 의미로 보면 차이가 있다. 사회과학에서의 ‘개혁’은 현재보다 더 나은 상태로 만들기 위해 기존의 제도나 기구를 의도적으로 변화시키는 노력을 말한다. 반면, ‘쇄신’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제도나 기구를 새롭게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자는 ‘정책 변동’을, 후자는 ‘신규 정책 형성’이라고 보면 된다.

 

 

 

 

 

 

 

 

 

 

 

 

 

 

 

 

다시 말하자면 안 후보의 정치 개혁은 문제점 있는 구 정치 제도 및 정책을 사회 발전에 적합하도록 재정비, 점검한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안 후보는 정책 문제와 관련하여 'PDS'을 강조했다. PDS란 'Plan-Do-See'의 약자로 기획의 3단계 절차를 말한다. 정책을 기획하는 데 있어서 먼저 목표를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Plan) 난 뒤, 구체적인 내용을 실행한다(Do). 마지막에는 정책 실행에 대한 평가(See)를 통해 향후보완대책을 수립한다. 우리나라에 도입된 정책들 중에는 평가 단계를 꼼꼼하게 실행된 사례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안 후보 역시 정책 실패의 반복이 이어지는 문제점을 평가 단계의 부재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정책이 순조롭게 잘 실행되고 있는지, 아니면 문제점이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있는 사람은 정책을 만드는 정치가가 아니다. 바로 정책 형성의 참여자이자 정책의 수혜자인 우리 국민들이다.

 

“민주주의란 다수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의 지지로부터 형성된 권력이 견제 받고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스스로 시스템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본질이다"

 

안 후보는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말을 인용하면서 올바른 민주주의의 모습을 강조했다. 이 말을 역으로 표현하자면 지도자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국민의 적극적인 견제와 지지가 필요하며 이것 또한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정치와 정책 형성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참여는 곧 우리가 원하는 정책 탄생으로 귀결된다. 어느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간에 국민은 정치와 정책에 대한 관심의 끈을 절대로 놓아서는 안 된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정의가 구현된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온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저절로 우리 곁에 오는 것도 아니다. 투표 참여 의무와 권리를 지니고 있는 우리 국민, 즉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야 할 우리 대학생들의 이성으로 미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12-10-10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요즘 안철수 교수님이 무척 바쁘십니당^^
 

 

 

 

 

 

 

 

 

 

 

 

 

 

 

 

 

 

 

 

이번 학기 시간표는 특이하다. 전공인 행정학과 수업만 듣는게 아니라 타과 전공 수업도 듣게 되었다. 그런데 복수전공인 경영학과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행정학과 학생이 잘 신청하지 않는 수업을 듣고 있다. 그것이 바로 회화과 전공 수업인 '서양미술사'다. 교양 수업이 아니다. 실제 3학점 회화과 2학년 전공필수 과목이다. 대학 졸업하기 전까지 인문학에 가까운 수업 한 번이라도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그 꿈(?)이 서양미술 과목을 공부하는 것으로 실현된 것이다. 사실 회화과 수업을 신청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서양미술을 확실하게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공부 없이 이것저것 책을 읽어가면서 독학 아닌 독학을 하다보니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미술사조의 범위가 좁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애초에 흥미가 없었던 경영학과 수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별천지나 다름없는 회화과 전공수업을 듣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었기에 강의 듣는데 별 불편함은 없다. 게다가 회화과 특성상 강의실에 여학생이 많다보니 오히려 이런 강의 분위기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공부 의욕이 더 넘친다고 해야 되나...?

 

그리고 서양미술사 과제도 마음에 든다. 특정 서양 미술 사조의 특징에 대해서 논하면 되는 건데, 그냥 단순히 서술하는 게 아니라 특정 주제를 정해서 독창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첫 번째 과제가 중세미술의 특징에 대해서 조사, 작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심 끝에 종교미술에 가장 많이 다루는 '수태고지'를 중심으로 중세미술 양식의 각 특징을 정리해봤다.    

 

 

 

 

 수태고지(受胎告知) 도상의 의미

 

 

 

 

 

 

레오나르도 다 빈치 「수태고지」1472~1475년경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리라” (「누가복음」 1장 26~38절)

 

수태고지(受胎告知, Annunciation)는 『신약성서』「누가복음」 1장 26~38절을 바탕으로 한다. 하느님의 사자(使者)인 대천사 가브리엘이 처녀 마리아에게 그리스도의 임신을 알리는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도들은 이것을 '처녀수태'라고 말한다. 기독교 미술의 오랜 주제 중 하나로써 수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렸다.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과 비잔틴 미술에서는 우물가의 마리아에 대한 수태고지와 외경(外經)으로 전해지는 실 잣는 마리아에 대한 수태고지의 두 가지 형식이 별도로 다루어졌으나, 그 후 고딕 미술에서는 독창적인 형식이 나타났다. 명상 중인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이 나타나는 장면이다. 이때 마리아는 대개 서 있거나 앉았거나 무릎을 꿇고 있다. 천사는 보통 가브리엘 한 사람만을 그리고 있으나 2∼3명의 천사를 함께 그리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하느님의 사자로서 성령의 비둘기를 그리는 경우도 있다. 또 천사는 백합꽃을 들고 있는 때가 많은데, 이 꽃은 하얗고 암수의 구별이 없기 때문에 마리아의 처녀성을 상징한다.

 

 

 

 수태고지 도상으로 살펴보는 중세미술의 특징

 

 

 (1) 비잔틴 미술 (Byzantine art)

 

 

 

 

 

 

 

 

 

 

 

 

 

 

 

 

 

 

 

 

 

작자 미상, 이콘화「수태고지」14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한 330년부터 시작되어 터키의 오스만 제국에 의해 함락된 1453년까지 동방 기독교 사회에서 전개된 미술 양식이다. 비잔틴 회화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아름다움을 배제한 종교적 색채이다. 봉건 영주들을 위한 세속적인 그림 등 비종교적인 미술도 있었지만, 이는 기독교 미술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성경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과 자유보다는 정통 교리와 교회의 강령을 표현하는 데 충실하였다. 비잔틴 미술의 화가들은 자연을 똑같이 그리거나 아름답게 표현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성서의 내용과 종교적 가르침을 미술의 언어로써 가르치고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2) 로마네스크 미술 (Rpmanesque art)

 

 

 

 

 

 

 

 

 

 

 

 

 

 

 

    

 

 

(左) 『수녀원장 메셰데의 히타의 성복음집』중 수태고지, 1020년경

(右) 프레스코화 「수태고지」 (물렛가락을 든 마리아), 12세기 중엽

 

4세기에 로마가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되면서, 동로마에서는 비잔틴 미술이 독자적으로 발달하였으나 서유럽은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으로 인하여 멸망하고 세력권은 분할되었다. 이에 따라 서유럽에서는 예술이 한동안 암흑기를 겪었으나, 11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안정을 찾으면서 로마네스크 양식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도 비잔틴 미술의 전형적인 특징인 그림을 통한 교의 해설, 즉 '그림으로 보는 성서'로서의 성격이 확립하게 된다. 비잔틴 회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양식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고 전반적으로는 사실에 구애받지 않고 강한 색채와 힘 있는 묘선을 구사하여 형태에 있어서 강렬한 표현력을 주고 있다.『수녀원장 메셰데의 히타의 성복음집』에 실린 수태고지 삽화는 유려한 선 묘사와 활기 있는 채색에 특색이 있다. 12세기 중엽, 카탈루냐 지방에서 그려진 수태고지 프레스코화 속 인물들은 전체와의 조화를 꾀하여 신장, 왜곡 등의 변형이 가해져 있다. 

 

 

 

 (3) 고딕 미술 (Gorhic art)

 

 

 

 

 

 

 

 

 

 

 

 

 

 

 

 

 

 

 

 

 

 

시모네 마르티니「수태고지」1333년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수태고지」 12세기 중엽

 

 

 

고딕 미술은 12세기 후반부터 15세기 말까지, 서유럽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로마네스크 미술의 발달의 결과로 형성되었으면서도 많은 점에서 로마네스크 미술과는 대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12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회화, 건축에 로마네스크 성격이 남아 있었을 정도로 과도기적 성향을 나타냈다. 시모네 마르티니의 「수태고지」에는 흘러내리는 의상의 부드러운 곡선과 가느다란 몸매의 미묘한 우아함이 표현되었다. 이전의 비잔틴, 로마네스크 회화 양식과 새로운 표현방법이 어떻게 절충되어 효과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본격적인 고딕 미술은 12세기 말부터 약 1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이전의 비잔틴, 로마네스크 회화와 마찬가지로 고딕 미술도 신학적 상징의 해석을 중요시했지만 거기에 화려한 색채를 통한 성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한 성상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특히 고딕 건축을 대표하는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가장 유명하다. 색채 대비의 아름다움에, 투과의 영롱함을 결부시켜 어두운 성당 안에 비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색과 빛을 통해 화려하면서도 성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중세미술의 재발견

 

중세미술은 성경 속 이야기와 같은 상징을 담은 작품만 제작된 기독교 미술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내용면에서 성화만 기독교 미술로 선을 그으면 표현에 제한을 두는 것이다. 이는 성도들끼리 교감하자는 것이다. 성화는 비잔틴 양식부터 고딕 양식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았다. 화가들이 성서 속 장면을 재현해 신의 섭리를 시각적인 언어로 보여줘 감동을 줬다. 당시 성화는 신을 찬양하는 도구로 사용됐다. 그래서 다른 회화사조에 비해 중세미술의 가치는 저평가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중세미술도 다른 회화 양식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시대를 거듭할수록 기독교적 원칙에 바탕을 둔 상징성을 중시하면서도 외래양식을 혼합하여 형식에 제한을 두지 않는 독창적인 표현으로 발전하였다. 현대에 사는 우리는 이제 중세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 구상, 입체, 미적 가치 등 형식과 내용에 제한을 두지 말고 폭넓은 이해로 중세 미술을 받아들여야 한다. 중세 미술의 특징은 기독교적 윤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 이재익, 크리에이터 - 소설.영화.방송 삼단합체 크리에이터 이재익의 거의 모든 크리에이티브 이야기
이재익 지음 / 시공사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1%의 직감과 99%의 땀이다. 창의성은 직관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다. 여기서 말하는 '노력'이란 소위 잘 나가는 크리에이터가 쓴 책들을 읽고 따라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경험을 해보려는 '크리에이티브 중심적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에 익숙해진다면 굳이 긴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 습관이 곧 노력이다. 크리에이터가 된다는 건 자신의 노력량에 따라 달려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3일 - 쿠바 미사일 위기 회고록
로버트 F. 케네디 지음, 박수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JFK) 대통령이 말했다. <최악의 상황은 오판, 즉 어리석은 판단을 하는 거야>

 

- 로버트 F. 케네디 『13일』(13 days) p 51 -

 

 

 

 

 

 

 1962년 10월 16일 화요일 아침, 위기의 시작

 

 

 

 

 

 

소련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와 미국의 대통령 JKF

 

 

 

 

올해 10월은 쿠바 미사일 위기 50주년이다. 요즘 사람들 중에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이가 드물 것이다. 하지만 50년 전 이 때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쿠바 미사일 위기 사태는 그리 가볍게 볼 사건은 아니다. 1960년대는 미국과 구 소련을 정점으로 동서 양 진영의 대립이 첨예화되던 시기였다. 그 와중에 터진 게 그 유명한 쿠바 미사일 위기 사건이다. 피델 카스트로(1926~    )가 이끄는 혁명정부가 쿠바에 들어서면서 소련의 흐루쇼프(1894~1971) 공산당 서기장과의 밀월관계에 들어가고 미국은 초긴장 상태에 빠진다. 1962년 10월 16일. 미국과 소련은 13일 간 전 세계를 파멸시킬 수 있는 힘으로 무장한 채 으르렁거렸다. 평범한 일상이 될 법한 그 날 화요일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인류의 평화가 달려 있는 위기의 시작이었다. 미국과 소련의 전쟁이 발발한다면 핵전쟁이 될 것이다. 핵전쟁은 수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갈 것임을 잘 알면서도 전쟁의 문턱까지 갔었다.

 

당시 소련은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자생적 사회주의 국강인 쿠바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대량의 무기를 쿠바에 반입했다. 이에 미국은 방어용 무기의 반입은 묵인하겠지만 공격용 무기만큼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쿠바에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 기지가 세워진다면 소련으로서는 전략적으로 확고한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쿠바는 미국 아래 카리브 해역에 있다. 미국은 소련이 최악의 행동은 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당시 흐루쇼프 서기장은 존 F. 케네디(JFK, 1917~1963) 미국 대통령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기에 미국 수뇌부는 소련이 미국의 뒷통수를 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나톨리 도브리닌(1919~2010) 주미 소련 대사 역시 백악관을 방문하면서 그런 최악의 상황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오히려 핵전쟁의 전초전을 우려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소련이 쿠바에서 미사일 기지를 건설 중인 것을 발견했다. 소련에게 뒷통수 맞은 미국 수뇌부는 황급히 국가안전보장회의 집행위원회(ExComm, 엑스콤)를 소집했고 모든 대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최적의 해결 방안을 도출하기 위한 의사 결정 과정

 

 

 

 

 

 

백악관 정원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JFK와 바비(로버트 F. 케네디)

JKF는 정책을 결정할 때 항상 바비의 의견을 귀 기울였다고 한다.

(『13일』수록)

 

 

JFK의 동생이자 케네디 행정부 시절 법무장관으로 활동했던 로버트 F. 케네디(애칭 '바비', 1925~1968)는 당시 엑스콤 회의에 참석했는데 그 때 당시 회의의 순간들을 생생하게 회고하고 있다. 미사일 반입을 묵인한다는 안에서부터 공중공격을 통한 기지 파괴 심지어 카스트로를 암살해야 한다는 극비 침공까지 다양한 안이 탁자에 올랐다. JFK 입장에서는 수뇌부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못해 확실한 방안 하나 제대로 결정하기가 힘들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JFK와 바비는 쿠바 침공을 통한 소련과의 전면전보다는 포성 없이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JFK는 좀 더 활발한 토론을 통한 최적의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기존의 의사결정 방식에 변화를 줬다.  각각 부처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하기 위해서 대책 회의에 직접 참석하지 않았다. 되도록이면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의견을 듣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통령의 결정이었다. 의사 결정 참여에 있어서 내부의 정보만 참고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정보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외교 활동에 잔뼈가 굵은 전직 소련 주재 대사의 의견을 참고할 정도로 다양한 의견들을 듣고자 노력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의 최종 교훈,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미국은 제3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소련이 쿠바의 미사일을 철수하기 위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과시해야 했다. 그러나 대응 강도를 높여서 소련에 압박을 줘서도 안 되었다. 소련에게 생각할 시간과 체면을 잃지 않은 채 후퇴할 수 있는 여지도 주어야 했다. 그래서 채택된 것이 해상봉쇄였다. 10월 22일. JFK는 중대 연설을 통해 쿠바로 향하는 모든 선박에 실린 공격용 군사무기를 철저히 봉쇄할 것이며 흐루쇼프 서기장에게 도발을 중단하고 미사일을 제거할 것을 촉구했다.

 

일부 미국 여론과 보수 진영의 공화당 진영은 JFK의 해상봉쇄령이 소련과의 갈등을 더욱 장기화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비판적인 지식인이었던 버트런드 러셀마저도 미국의 강경책에 비난할 정도였다. 그러나 JFK는 소련이 세계적인 망신을 당하지 않고 소련이 국익 때문에 대응 강도를 높이지 않도록 심사숙고하게 검토했다. 상대방 소련의 입장을 최대한 생각하고 존중한 대응책인 것이다. 쿠바 미사일 기지를 정찰하고 있었던 미국 U-2기가 격추당하는 돌발의 사태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JFK는 차분하게 대응했다. 전면전의 위기 속에서도 흐루쇼프 서기장과의 서신을 주고받으며 군사적 충돌을 피하고자 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단순히 미국과 소련 간의 전면전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전초전이 아니다. 세계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 수 있는 핵무기로 무장한 제3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될 수 있었다. JFK는 전쟁으로 인한 인류 멸망의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었다. 흐루쇼프가 자국의 이익이 아닌 인류 전체의 이익을 우선시되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제안과 역제안이 오가는 비밀협상을 통해 미국은 쿠가 불가침과 터기 및 이탈리아 배치 미사일 철수를 약속했고 소련은 선박을 회항시켜 쿠바 미사일 계획을 철회함으로써 위기는 풀렸다.   

 

  

 

  

 국가의 지도자라면 꼭 읽어봐야 할 논픽션

 

쿠바 미사일 위기는 지도자의 특성과 위기관리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로버트 케네디는 13일 간 이루어진 위기 극복의 과정을 『13일』이라는 한 권의 논픽션을 통해 그 당시의 상황들을 묘사할 뿐만 아니라 원활한 의사결정 과정이 이루어지기 위한 알아야 할 교훈들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첫 번째, 의사결정자는 항상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것만 들으려 하는 맹신에 빠진다. 그리고 익숙한 정보와 경험만 가지고 상황을 판단하고 추측하려는 성향이 있다. 미국은 사태 이전동안 쿠바 미사일 기지를 정찰하면서도 소련이 쿠바 땅에 기지를 설치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당시 흐루쇼프 서기장은 JFK에게 공식 비공식 채널을 통해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고 단언했다.

 

두 번째,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 속에서도 이성적으로 판단할 것. 만약에 JFK가 해상봉쇄령 대신에 전면전을 예고하는듯한 강경한 군사적 대응을 준비했더라면 지금쯤이면 이 세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리고 침공을 주장하는 군 수뇌부의 입장만 곧이곧대로 들었다면?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역사 교과서에 '쿠바 미사일 위기'와 함께 '제3차 세계대전'이 소개되어 있을 것이다. 아니,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의 마지막 장면처럼 전 세계 인류가 핵으로 멸망했을지도.

 

세 번째,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세가 아니다.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상대방의 입장 또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제아무리 논리적인 사람이라도 자신의 의견과 대립되는 입장에 선 의견이나 정보를 무시하게 된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라는 스티븐 잡스의 말처럼 자신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이 필요하다.   

 

비록 냉전시대의 사건이라서 지금의 구도와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국가의 전략을 논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국익을 지켜내는 강력한 리더십을 생각한다면 지금 미국이나 한국 정부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역사적 사례이다. 냉전의 찌꺼기기 유일하게 남아있는 한반도의 분단구조를 등에 업고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무너뜨리면서 버거운 생존게임(survival game)을 벌이고 있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다. 교전 상황에서도 상대 의중을 정확히 파악해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채널과 통제력을 확보해야 한다. 평화는 우세한 군사력에 엄격한 통제 시스템, 대외 협상력과 외교 그리고 국민의 의지가 뒷받침돼야 유지될 수 있다. 로버트 F. 케네디의 논픽션은 당시 사태의 긴장감을 살리지 못해 밋밋한데다 가벼운 분량이다. 하지만 여전히 군사적 충돌의 긴장감이 흐르고 있는 지금 한반도의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그리 가볍게 볼 책은 아니다. 특히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대선을 앞둔 채 차기 한국의 지도자를 준비하고 있는 대권주자들에게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10-03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03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