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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1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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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죽음을 믿지 않는다. 또는 이렇게 표현해도 좋다.

 우리 모두는 무의식 속에서 자신의 불멸을 확신하고 있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

 

 

 

 

 Memento mori,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

 

 

 

장 프랑수아 밀레  『죽음과 나무꾼』 1856년

 

 

커다란 막대기 다발을 갖고 노인이 먼 거리를 여행하고 있었다. 자신이 몹시 지쳐 있음을 깨닫고, 그 막대기 다발을 내려놓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노인은 죽음의 신에게, 자기를 불행한 생활로부터 제발 해방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노인의 부탁에 죽음의 신은 바로 찾아와서, 노인에게 무엇을 바라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제발, 제가 짐을 다시 들어 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이솝 우화' 중에서)

 

사람은 종종 죽음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남들 다 죽는데 나도 그때 죽으면 되는 것이지, 인연 따라왔다가 인연 따라가는 거지. 그러나 죽음에 대한 이런 태도는 죽기 전까지만 통용될 뿐이다. 죽음이 임박하면 그런 생각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만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세상이다.

 

누구나 편안히 잠드는 것처럼 죽기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저마다 외모가 다르듯 죽어가는 모습 역시 다르다. 천차만별의 죽음을 보며 '잘 살아야 잘 죽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많은 죽음을 보며 이제는 '어떻게 하면 잘 죽을까'가 아닌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하루의 삶을 챙기게 된다. '오늘 하루 아쉬움이나 후회는 없는가'를 살피며 살게 된다. 진정으로 오늘 하루를 잘 사는 것이야말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죽음의 근원이 됨을 알았기 때문이다.

 

 

 

 '죽음'의 정의, 생각해 보셨습니까?

 

'죽음'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죽음의 존재에 대해서 두려워했지 죽음 단어 자체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무엇이라고 형용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으면서 살아 왔다. 종교와 철학 그리고 모든 문명의 시발점에 이 문제는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적 지식이 극대화되고 분초를 다투어 정보가 쏟아지는 오늘날에 와서도 이 문제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결말을 짓지 못하고 있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미국 예일대에서 '죽음'을 주제로 교양철학 강좌를 진행한 셸리 케이건 교수는 죽음의 정의를 두 가지로 다음과 같이 분류했다. 물리주의자 시선으로 바라보는 죽음(물리적 죽음)과 육체의 관점으로 보는 죽음(육체적 죽음). 물리주의자는 육체가 P 기능(Person function, 인지 기능)을 유지하면 그 사람은 살아있는 것이고, 기능이 멈추면 죽은 것이다. 육체적 죽음은 말 그대로 B 기능(Body function, 신체 기능)이 멈추면 죽은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셸리 케이건 교수는 신체와 인격(마음, 정신 등 포함) 두 가지 요소로 죽음을 간단명료하게 정의하고 있지만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죽음의 시점을 정의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 않다. 예를 들어서 교통사고로 인해 식물인간이 된 환자에게 '사망선고'를 내릴 수 있는가. 식물인간은 대뇌의 손상으로 의식과 운동 기능이 상실되었으나 호흡과 소화, 흡수 따위의 기능은 유지하고 있다. 식물인간은 P 기능이 상실되었고 B 기능만 남아 있다. P 기능이 상실되었다고 해서 죽은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P 기능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고 다시 기능을 재개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죽은 게 아니다. 죽음의 정의를 생각한다는 건 무척 골치 아픈 일이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죽어 있는 '상태'가 어떤건지 알려고 하는 과정이다.  

 

 

 

 죽음의 '사'가지를 피하는 방법

 

인간이 죽으면 '나'라는 존재를 형성하고 있는 P 기능과 B 기능만 멈추는 것이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맛 보거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생의 시간도 멈춰버린다. 살아있다면 누릴 수 있는 삶의 좋은 것들을 박탈해버린다. 이를 통해 우리는 죽음을 나쁘게 보는 근본적인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죽음은 박탈의 성격만 가지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죽는다는 '필연성', 얼마나 살지 모른다는 '가변성',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예측 불가능성',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편재성'이다. '죽음'의 이미지에 걸맞게 '사'(死, 숫자 四)가지다.

 

그러나 케이건 교수는 죽음의 네 가지 부정적인 특성을 근거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날 수 있는 관점을 역설한다. 스피노자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감정적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죽음이란 무엇인가』p 377) 죽음은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다면 덜 부정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썩 기쁘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지만, 생의 한정성에 얽매어 여생을 살아간다는 건 무척 불행한 일이다. 그리고 내가 몇 살까지 살지 모른다고해서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에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 쓸데없는 '기우'일 뿐이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죽음의 신의 손길은 우리 두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두렵기만 하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자. 만약에 사람마다 태어나면서 자신에게 부여받은 죽는 날을 알면서 살아간다면 일상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죽는 날까지 주어진 시간동안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에 초점을 맞추며넛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정말 원하는 일에 완벽하게 집중할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루게릭병으로 시한부 선고 받은 이후부터 연구에 매진했다는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처럼 살아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름다운 인생을 위해 Memento mori

 

죽음은 시간을 조금 늦출 수 있을지 몰라도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나간 삶이 아닌 내 인생의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더 중요하다. 부질없이 허망한 일들로 자신의 삶을 채우지는 않을 것이다. 죽음은 생방송이다. 사람들은 텅 빈 자신의 삶 앞에 죽음의 폭풍우가 휘몰아치면 그제야 후회와 아쉬움에 절망한다. 이렇게 가슴 치는 일보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자신의 삶 속에서 늘 죽음을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다 보면 의미 있는 삶으로 자신의 시간을 채워가게 될 것이다.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생의 아름다운 졸업이다.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하기를 원한다면 죽음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생각하고 배워야 한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을 덜어내고 죽음을 자연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곧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의 미래인 죽음에 대해 성찰하기는 꺼린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죽음을 미래의 사건으로 여기고 현재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사람들을 "죽음 앞에서의 부단한 도피"를 하는 자들이라고 꼬집었다. 우리는 죽음을 진정으로 잘 알고 있는가. 오늘 밤 죽음이 우리에게 찾아온다면 기쁨으로 반길 준비가 돼 있는가. 이제는 아름다운 인생을 위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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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닦고 스피노자 - 마음을 위로하는 에티카 새로 읽기
신승철 지음 / 동녘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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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힐링하니까 청춘이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한 청년이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며 ‘앞으로 연애와 결혼도 포기하기로 했다’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자기도 비정규직인데 여자 친구도 백수라서 만나면 만날수록 서로 불안한 상황이 더 증폭되기만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젊은이들이 이 같은 가슴 아픈 고민을 안고 있는데 이들을 ‘삼포(三抛)세대’라고 한다.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들이란 의미인데 대체적인 의미는 연애, 결혼, 출산을 지칭한다. 제대로 된 취업을 할 수 없고 취업을 한다고 해도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니 버거운 생활비용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도 포기 하거나 기약 없이 미루는 세대들이란 말이다. 몇 년 전 고용 불안으로 인해 ‘88만원 세대’란 말이 나오더니 이제는 청년 세대들로부터 가족 구성에 필요한 통상적 세 단계를 포기한다는 ‘삼포세대’란 말이 나오니 우울하고 또 우려된다. 불안과 스트레스, 우울증 등 정신적인 이유로 자살을 생각해본 20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힐링(healing)이라는 단어가 우리 생활에 흔하게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 국립중앙도서관에서 2012년 한 해 가장 많이 이용된 도서 80권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지난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려본 책이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었다. 2011년에 1위를 지킨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2위에 머물렀다. 이와 같은 결과를 통해 2012년의 화두가 ‘힐링’과 ‘청춘’이었음을 알 수 있다.

 

 

 

 스피노자가 들려주는 힐링법

 

치유의 바람은 새로운 흐름의 전주곡이다. 힐링이 인문학 연구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작년 한국연구재단 주최 ‘2012년 인문주간’의 주제가 ‘치유의 인문학’이다. ‘치유의 인문학’, ‘인문 치료’, ‘철학상담치료’ 등 이름은 조금씩 달라도 지향하는 바는 같다. 인간성 상실과 내면의 상처로 인한 ‘마음의 병’ 혹은 ‘문화적 질병’의 치유가 목표다. 인간 연구가 본령인 인문학의 사회적 역할을 넓히는 일이다. 실용적 가치가 적다는 이유로 후순위로 밀렸던 인문 정신이 삶의 위기를 계기로 하여 삶의 가치를 회복해 줄 근원적 자원으로 활용되는 셈이다.

 

'청춘', '힐링', '인문학'. 이 세 가지 화두를 적절하게 버무린 책이 있다면 바로 <눈물닦고 스피노자>이다. 이 책은 형식이 독특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 괴로워하는 20대 청년, 철수가 우연히 고시원 화장실에서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를 만나 매일 밤 철학 상담을 한다. 진짜 철학자가 매일 밤에 '철학 상담치료'를 해주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자신이 저술한 책 <에티카>의 일부 내용을 소개하여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다양한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요즘 제가 쓰고 있는 《에티카》 내용 중 <2부. 정신의 본성과 기원에 대하여>에서 정리 19를 보면 ‘인간 정신은 오직 신체가 받는 변용의 관념에 의해서만 인간 신체 자체를 인식하며 또 그것이 존재하는 것을 안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p 29~30)

 

젊은 세대들은 사회가 규정한 현실에 얽매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안정적인 근로의 직장에만 들어가면 여생을 편안하게 지낼 수 있고 돈만 있다면 잘 살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 성향이 강하다. 자신의 능력에 맞지 않게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대기업, 공기업이나 공무원과 같은 안정직 취업을 선호하고 많은 시간에 취업 준비에 투자한다. 그러나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대기업과 공기업 등 괜찮은 일자리는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식 경쟁의 장이 된지 오래다. 젊은 세대는 승자독식이 굳어진 살벌한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통을 감수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젊은 세대의 마음은 점점 지쳐가고 자조적으로 변하게 된다.

 

스피노자는 타인에 대한 사랑과 신체 변용을 통해서 낯선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욕망의 흐름에 맡긴다면 불안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봤다. 변용이란 신체가 외부의 물체를 만나 딱딱하거나 부드러워지는 것을 뜻한다. 쉽게 말하자면 타인의 입장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그동안 인정하기 못했던 자신에 대한 존재의 불안함을 떨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체 변용을 통해서 나 자신의 욕망에 맡겨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라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현대사회의 새로운 불치병으로 등장하고 있는 우울증에 대해서 스피노자는 단순히 마음에서 비롯된 개인적인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거대한 사회 구조를 형성하는 억압된 인간 관계망에서 우울증의 원인을 찾는다. 외부와의 관계에 예속되면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발현할 수 없다.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표출하지지 못한다면 슬픔의 감정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우울증인 것이다. 욕망은 곧 자신이 사랑하는 감정을 표상하여 실행으로 발현되어야 한다. 그러기 우리 스스로 나를 둘러싸고 있는 관계망을 재배치해야 한다. 자신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관계망으로.

 

“관계 자체가 예속과 복종의 관계처럼 아예 사랑과 욕망의 힘을 좌절시키는 방향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그것이 언제까지고 슬픔의 관계에만 머물러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관계를 기쁨의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아직까지 기억에 없고 전혀 해본 적이 없는 색다른 사랑의 실천에 나설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란 미지의 것을 향한 욕망의 흐름과 같은 것입니다. 둘 사이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고, 새로운 상상이 떠오르고, 색다른 무엇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기쁨의 관계를 만들어보세요. 창발적인 관계망은 가능합니다. 그것은 두 사람의 욕망이 증대되고 촉발되는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 61~62)

 

작년에 청춘들이 ‘힐링’에 열광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과 좌절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힐링하는 방법을 명사나 책을 통해서만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힐링을 남들이 하는 걸 따라 맞출 필요 없다. 우리 삶에 작은 변화를 주는 힐링을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분야, 새로운 사람을 만나 기쁨의 관계를 구축하는 삶의 과정도 힐링이 될 수 있다.

 

 

 

 긍정의 힘을 보여줘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명제를 예로 들면서 완벽한 인간의 이성적 사유와 주체성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명제는 최종 확인을 위해서는 수많은 '나'가 있어야 하고 그 수많은 '나' 중에 또 주체가 필요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나'라는 주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를 작동시켜주는 관계가 중요하다고 한다. 정신적 상실을 망각으로 바꾸는 힐링만으로는 마음의 불치병을 완전히 치유하기가 어렵다. 상실을 자기 안에 수락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자기를 변용해내는 방식을 택하며 자기 세계를 재배치해야 한다. 자기를 삶의 주인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힘이 필요하다.

 

스피노자의 힐링 철학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감정적 고통의 원인을 아는 것이며, 하나는 다른 감정으로 대치하는 것이다. 감정적 고통을 극복하는 것은 오로지 이보다 더 강력한 긍정적인 감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부정적인 감정은 끈질기게 커지며, 괴로움에 괴로움을 더할 뿐이다. 우리 스스로 긍정적인 경험을 간직하고 자신의 정서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동안, 사실은 그것을 하기 싫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실행되지 않는 것이다.” 불행한 삶을 살다간 바루흐(Baruch, '축복받은 자'라는 뜻의 히브리어) 스피노자의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긍정의 힘을 외면한 채 막연하게 먼 곳에서만 힐링을 찾으려고 하는 현대인들을 경고하는 듯하다. 나를 위한 셀프 힐링은 아깝지 않다. 감정적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축복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그것이 바로 긍정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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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 - 삶의 본연을 일깨워주는 고요한 울림
세스 지음, 최세희 옮김 / 애니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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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그런게 아니겠니
원하는 데로만 살 수는 없지만
알 수 없는 내일이 있다는건
설레는 일이야 두렵기는 해도
산다는 건 다 그런거야
누구도 알 수 없는것


 

- 여행스케치 '산다는 건 그렇게 아니겠니' 중에서 -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1995년에 미래학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는 '디지털화하지 않으면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디지털 혁명의 부정적 측면은 디지털 세상이 갖는 강력한 특징 때문에 부각되지 못할 것이라며 디지털 낙관론을 펼쳤다. 아날로그가 모든 영역에서 디지털화하는 세상을 지켜보면서 그의 예언이 적중했음을 느낀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살바도르 달리, 스콧 피츠제럴드가 활약하던 1920년대를 '황금시대'를 동경한다. 길이 꿈꾸는 1920년대를 사는 아드리아나는 고갱과 드가가 살았던 1890년대를 '황금시대'로 꼽는다. 고갱과 드가는 한술 더 떠 르네상스 시대를 '황금시대'로 부르며 자신들이 사는 시대를 '상상력이 죽은 시대'라고 한탄한다. 저마다 동경하는 '황금시대'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다. 모든 '황금시대'는 과거를 조준하고 있다는 점이다.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에 등장하는 세스는 과거의 '황금시대'를 그리워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그는 직업 만화가이면서도 과거에 발행되었던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되는 만화를 수집하는 외골수다. 그는 우연히 잡지 '뉴요커'에 실린 '캘로'라는 필명이 그린 만화를 알게 된다. 세스는 만화가의 삶을 추적하기 위해 어렸을 때 살았던 스트라스로이로 향하게 된다. 시간이 멈춘듯한 스트라스로이에서 세스는 잊고 있었던 과거 일상의 흔적을 발견한다.

 

 

 

 

 

 

하지만 만화 속 주인공의 성격에 대해서 독자들마다 호불호가 엇갈릴 것이다. 과거가 현재보다 낫고 현재는 좋았던 과거를 파괴하고 있는 슬픈 현실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비관주의자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황금시대'를 추억하는 심리를 한 꺼풀 벗겨보면 마냥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과거의 나쁜 일은 빨리 잊고 좋은 기억만을 남기려는 경향이 강하면 '무드셀라 증후군'에 빠질 수도 있다. 디지털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서 복고 열풍을 빠진 현대인이나 만화 속 세스의 모습은 각박하고 치열한 현실에 기댈 곳 없는 상황과 불확실한 미래로부터 오는 불안감의 표상이다. 불안정성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잊기 위해 '황금시대'에 열광하는 모양새다.

 

그래도 조금은 슬프다. 우리의 감성과 정서는 여전히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데 주변은 모두 디지털로 전환되고 있는 것 같아서다. 과거의 즐거웠던 일상을 담은 추억의 스냅사진은 언젠가 희미해질 기록이지만 추억은 더 진하게 남지 않겠는가.

 

약간의 소음이 음악의 일부인양 느껴지는 LP판과 소통이 있었던 아날로그 TV가 더 정겹고, 문자나 카톡보다는 학창시절 연애편지처럼 기다림만으로도 마냥 행복했던 편지의 애절함도 그립다. 그렇다고 아날로그 생활만을 고집하며 살 수는 없다. 디지털 기술에 아날로그 감성을 불어넣어,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디지털 세상에서 행복과 동행할 수 있다면 괜찮은 인생이 되지 않을까.

 

 

 

 

 

 

세스의 이야기는 우리를 슬프게 만드는 인생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당신의 인생이면서 또 나의 인생이기도 한 이야기. 어쩌면 무심하고 소소하고 하찮아 보이지만 빛나는 이야기들. 아주 미국적인 것도 같지만 지극히 보편적인 인간사들이 들어 있다.

 

인생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인생은 정해진 순서대로 예측가능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정해져있고, 예측가능한 대로만 된다면, 인생 살기가 얼마나 쉽겠는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필연적으로 불안감을 만들어 내고, 이 불안감은 때로는 현재를 괴롭힌다. 인간은 늘 불안감을 갖고 살아왔고, 이러한 뿌리 깊은 불안감으로 인해 인간은 불확실성 속에서 확실성을 찾고자 애써왔다. 불확실성 속에서 확실성을 찾는 한 가지 좋은 방법이 과거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확실성을 찾지 못하면 현실의 삶이 고달프면 과거를 동경하는 게 사람의 심리인 것 같다. '그래도 그 때가 좋았지'라는 과거 지향형의 향수에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도 담긴다. 옛 향수를 안주 삼아 일상의 지친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자 하는 데는 현실이 고단하기 때문일 게다.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부정은 지금보다 별반 좋을 것도 없는 과거에서 위안을 삼으려는 경향을 커지게 한다.

 

사실 잘 산다는 것은 상대성이 있다. 세대에 따라 계층에 따라 행복의 가치도 다르고 만족의 크기도 저 마다 다르다. 결과가 과정을 대신해준다는 강박증에서 벗어나야 하고, 무엇보다도 인생이란 본디 불확실한 일들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래야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의 불안으로 인해 오늘의 행복을 놓치는 우를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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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사랑학 수업 -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어떻게 떠나보낼 것인가
마리 루티 지음, 권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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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N양. 잘 지내고 있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조금은 힘들지만요. 어떻게 글을 써 내려가야 할지 모르겠네요. 물론 이렇게 인사해도 당신인 줄 모르겠지만 이렇게 용기를 내어 당신에게 써봅니다. 닿을 수는 없겠지만. 당신을 처음 봤던 날을 아직도 기억해요. 왜 우린 그렇게 만났을까. 아니, 왜 제가 N양을 좀 더 일찍 만나지 못했는지요. 처음 봤던 날 그날 화장기 없는 얼굴에 해맑은 미소를 보인 채 인사를 건넸던 기억이 나요. N양은 꾸미지 않아도 제 눈에는 빛나고 있었어요. “친구가 있으면 더 예쁘게 꾸미고 나올걸.” 이라는 당신의 말에 저는 무척 설레었어요. 꾸미면 얼마나 더 예뻐질지 상상했거든요. 그래서 그 만남 이후부터 당신과 가까워지려 노력하기 시작했어요. 연락처를 알아내고, 당신의 눈에 최대한 띌 수 있도록 말 걸어보고 했어요. 하지만 그때마다 저와 N양 사이엔 제 친구도 함께였어요. N양은 늘 어색하다는 핑계로 제 친구와 함께 등장했죠. 저는 솔직히 걱정되기 시작했어요. 설마 N양이 내 친구에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닐까.

 

저는 다짐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N양에게 고백해야겠다. 제 마음, 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려고요. 그런데 참 쉽지가 않군요. 하필 당신은 인턴 일을 하게 되어 당분간 서울로 지낸다고 하고 떠나버렸네요. 이번 겨울방학이 끝나면 다시 대구로 돌아오겠지만, 거리를 지나는 커플들을 보면 문득 N양의 얼굴이 생각나요. 그리워요.

 

N양이 너무 그리워서 마음이 울적할 때, 마침 <하버드 사랑학 수업>이랑

 

아! N양, 제가 읽고 있는 책이 시중에 나오고 있는 연애지침서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일 감명 깊게 읽었다는 ‘하버드 사랑학 수업’은 책 제목대로 실제로 하버드 대학에 '사랑학'이라는 수업이 있어요. 그리고 이 수업이 실제로 학생들 사이에서 큰 반응을 얻었다는군요. 그리고 기존의 연애지침서처럼 '연애를 위해 이성을 꾀는 방법' 같은 내용이 없어요. 이 책의 저자가 하버드 대학의 사랑학 수업을 맡은 교수인데요, 연애지침서를 통렬히 비난하고 있어요. 오히려 연애지침서식 사랑은 남녀 간의 애정을 방해하는 나쁜 책이라네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수업이 있으면 참 좋으련만. 만약에 이 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다면 꼭 N양과 같이 듣고 싶어요. 아니면 이 책을 읽어 보기를 권합니다. 이 책을 읽어보고 N양도 사랑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제가 N양을 위해서 책에서 본 내용을 간추려서 소개하려고 해요. 편지글이 길어도 이해해주세요. 먼저 여기 그림을 봐 주세요. N양에게 이 그림은 생소할거에요. 그래도 그림 속 남녀가 누구인지 짐작했으리라고 생각해요. 프랑스의 여류 화가 수잔 발라동이 그린 아담과 이브에요. 발라동은 르누아르, 로트레크, 드가 같은 유명한 화가들의 모델로 활동하면서도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어요. 그녀의 인생은 파란만장해요. 발라동의 아들도 위트릴로라는 유명한 화가인데요, 그녀는 20년 연하 아들의 친구와 사랑에 빠지게 돼요. 첫눈에 아들의 친구를 사랑하게 된 발라동은 제가 소개한 '아담과 이브' 그림을 완성하고 결혼했어요. 화가의 소개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그림에 대해서 설명할게요.

 

그림을 자세히 보세요. 이브가 웃는 얼굴로 금지된 열매를 따려는 순간, 아담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은 것이 이브를 말리려는 것인지, 사과 따는 것을 도와주려는 것인지 모호하게 그려져 있죠? 지금까지도 아담의 동작에 대해서 해석이 분분해요. 누군가는 자신을 끌어당기는 이브의 유혹에 굴복당하면서도 창조주에게 항변할 핑곗거리를 만들기 위해 아담이 고심에 빠졌다고 말해요. 이주향 교수는 <그림 너머 그대에게>라는 책에 아담과 이브를 '두려움 없는 여자, 두려움으로 비겁해진 남자'라고 표현했더군요. 네, 이주향 교수의 표현이 맞아요. 남자가 이 그림을 봤으면 절로 고개를 끄덕였을 거에요.

 

일반적으로 남자는 자신보다 능력이 있는 여자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어요. 즉, 남자의 성격은 자신이 상대를 주도할 수 있는 권력 지향적이기 때문에 연약하고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여자를 좋아한대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제 주변 친구 녀석들도 그렇고, 연애지침서에서도 남자의 성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남자는 여자를 일종의 먹잇감 또는 정복하고 싶은 대상으로 본다는 거죠. 그래서 여자는 남자의 성격을 맞춰 아무 힘도 없는 척 내숭 부리는 '여우'가 되라고 연애지침서를 그렇게 가르치고 있어요.

 

하지만 N양, 저는 N양이 좋아하는 남자가 있으면 '여우'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N양 본인의 모습을 그대로 당당하게 보여주세요. 제가 N양을 더 좋아하게 된 이유는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글을 쓸 때였어요. 저는 페이스북에 남긴 N양의 짧은 글을 읽으면서 당신이 나이에 비해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생각이 깊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남들이 그 모습에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질지 몰라더 저는 N양의 지적인 면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못 믿겠다고요?

 

<하버드 사랑학 수업>에 아주 흥미로운 사례가 소개되어 있는데요, 이 책의 저자인 마리 루티 교수가 제일 친한 이성 친구에게 간단한 설문조사를 했어요. (이 책의 저자는 여자입니다) 여자친구나 아내가 전구 가는 모습을 본다면 매력이 떨어질 것 같으냐고 질문을 했대요. 그러자 그들에게서 온 답변이 어떤지 아십니까? 오히려 전구를 스스로 갈 줄 아는 여자의 모습이 매력 있대요. 비록 저자의 설문조사 결과가 실증적이지 않은데다 모든 남자가 다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예쁜 외모의 여자와 N양 중에서 사귀고 싶은 사람을 고른다면 후자를 택할 겁니다. 저는 N양이 독서를 좋아하고 글 쓰는 모습이 정말 좋아요. 본인 그대로 모습을 나에게만 보여주세요. 제 말을 못 미더우실까봐 제가 책 속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인용해서 소개합니다.

 

누군가가 정해준 틀에 사랑을 끼워맞추려고 하지 마세요. 사랑은 색깔 맞추기 큐브가 아닙니다. 사랑의 수수께끼는 색색의 조각을 제자리에 끼워맞춰서 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봐야 손가락에 물집만 잡힐 뿐이죠. (p 248~249)

 

자신의 강인함에 대해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이 말은 주문처럼 외우고 다녀도 좋습니다. 내가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자란 사실 때문에 괜히 미안해하지 마세요. 괜찮은 남자라면 억지로 꾸며낸 여성스러움이나 의존적 태도보다는 이런 자질을 더 원할 수 있습니다. 여성을 비하하는 것으로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받는 남자만큼 한심한 인간도 없습니다. 누가 이런 남자를 필요로 하겠어요? (p 249~250)

 

그러니까 그저 여성을 소유하려는 '늑대'를 조심하세요. 그런 남자 잘못 만나서 N양의 마음에 큰 상처 남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심리학 용어에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이 있어요. 누군가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나 기대가 그 대상에게 그대로 실현되는 경향이에요. 즉, 상대방이 나를 존중하고 나에게 무언가 기대하는 것이 있으면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는 행동을 하여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는 거죠. 다음에 소개하는 그림은 장 레옹 제롬이 그린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입니다.

 

고대 키프로스 출신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자신의 사랑이 이뤄지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조각가가 자신의 손으로 만든 조각상을 좋아하게 된 거에요. 그렇게 소원을 빌고 집으로 돌아온 피그말리온은 대답 없는 사랑을 고통스러워하며 자신이 만든 여인의 조각상을 사랑하는 연인처럼 꼭 끌어안았어요. 그때 차디찬 조각상이 따뜻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잠시 후에는 심장 고동까지 그의 가슴에 느껴졌어요. 아프로디테가 그의 사랑에 감동하여 생명을 불어넣어 조각상을 피그말리온의 연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저 그림처럼요.

 

N양은 본인의 글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페이스북에서 글 남기는 것이 평범한 일이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저는 N양의 그런 모습을 볼수록 당신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어요. N양이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매력을 유지하고 N양만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본연 그대로 모습을 사랑할 줄 아는 남자를 만나세요. 아니, 용기있게 말하자면 N양의 그런 모습을 사랑해줄 수 있는 남자는 바로 접니다. 저는 책에서 이 구절을 보면서 N양에 대한 특별한 감정에 대해 더욱 더 확신을 가졌어요.

 

이상화하는 '좋은' 방법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연인의 매력을 찾아 그 점을 부각시키는 것입니다. 남자의 팔 근육에만 집착하지만 말고 그가 가진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장점에 진정으로 감탄하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겉으로 드러나는 그의 개성, 가령 성(性)이나 친절, 유머 등을 강조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 모르게 꽁꽁 숨겨온 그의 어떤 면을 강조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억압되거나 간과되거나 개발되지 못한 장점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죠. (p 158~159)

 

저는 N양이 지금보다 더 예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외모가 여성 연예인처럼 되기 바란다는 건 지나친 이상화입니다. 자신이 정한 이상형을 기준으로 이성을 찾는다면 실망감만 안겨주는 무척 피곤한 일입니다. 오히려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못 찾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 자신에 대해서 무척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N양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외모가 그렇게 잘 생긴 편도 아니고, 건장한 체구도 아닙니다. 마른 체형입니다. 살면서 소개팅 한 번도 못했고 또래에 비해 집안은 그렇게 잘 사는 편도 아닙니다. '나'의 모습에 대해서 크게 위축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저를 간단하게 표현하면 '모태 솔로'라고 할 수 있죠.

 

마리 루티 교수는 내면을 지배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내 어깨 위의 원숭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저 어깨 위에는 오랫동안 그 녀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깨 위의 원숭이를 내쫓으려고 합니다. 어깨 위의 나쁜 원숭이의 속삭임에만 빠진다면 저는 평생 나의 매력을 발견하지 못한 채 더 소극적인 성격으로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N양이 어떤 남성을 선호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내 본연의 모습 그래도 N양에게 숨김없이 보여주고 싶고, N양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것도 평생동안.

 

오늘 처음으로 이성에게 편지를 처음 써보네요. 어버이날이나 제가 군대 훈련병 시절에 어머니에게 편지 쓴 걸 제외하면요. 막 쓰다 보니 편지가 길어졌네요. 지루하더라도 제발 이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리지 말고 끝까지 읽어주면 좋겠습니다. N양이 선호하는 남자가 제가 아니더라도 여기 편지에 소개한 책을 꼭 기억해주세요. 내가 싫다면 N양의 머릿속에 있는 나라는 존재 그리고 짧았지만, 우리 단 둘이 함께 했던 사소한 일상의 기억들, 잊어도 좋아요. 이 편지와 함께 제가 읽은 <하버드 사랑학 수업>을 전합니다. N양에게 전하고 싶은 저의 모든 감정, 이 편지로 표현하기에는 많이 부족할 겁니다. 하지만 저는 있는 그대로 모든 감정을 다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 대한 감정을 받아주신다면 답변 꼭 부탁드립니다. 저처럼 편지를 안 써도 좋으니 전화 한 통이라도 해주세요. 이제 긴 편지를 마무리하겠습니다. N양이 선택한 사람이 제가 아니더라도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고 본인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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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3-01-12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사랑은 색깔맞추기 큐브가 아닙니다. ->큐브도 짱 어려운데.

근데 N양은 누구예요??? (진심)

cyrus 2013-01-13 22:35   좋아요 0 | URL
아이리시스님! 질문 비밀로 설정해주시지..ㅎㅎㅎ ^^;; 작년에 대외활동하다가 만난 여자애가 있는데.. 참.. 고백 한 번하는게 쉽지 않네요.. ^^;; 이 책에서 저자가 이렇게 말해요. 사랑은 완벽할 수가 없다. 그 점을 인정하고 사랑을 하라고요. ^^

아이리시스 2013-01-17 20:34   좋아요 0 | URL
응, 미안. 저는요, 가상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하고 그랬어요^^; 이제 저는 뭘해야 하나요, 으샤으샤! 아니면 사랑고백 10단계 이런 거 플랜이 필요해요?

축하해요, 사랑은 역시 좋은 거야....( '')
ㅎㅎㅎ

2013-01-13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3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력 없이 쓴 글은 대게 감흥 없이 읽힌다.

 

- 새뮤얼 존슨 -  

 

 

 

올해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감흥을 주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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