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젠의 로마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몸젠의 로마사 1 - 로마 왕정의 철폐까지 몸젠의 로마사 1
테오도르 몸젠 지음, 김남우.김동훈.성중모 옮김 / 푸른역사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벨 문학상을 받은 역사책, 몸젠의 로마사

 

로마제국의 역사를 다룬 책은 수도 없이 많다. 그래서 로마 시대를 읽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로마의 탄생과 멸망을 시오노 나나미식의 대작으로 읽을 수도 있고 핵심적인 내용만 추린 한 권으로도 끝낼 수 있다. 또 아무데나 손 가는 대로 펼쳐 로마 시대의 미시사를 가볍게 읽는 책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진정한 로마사 고전을 읽지 않은 채 로마 역사에 능통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권 참고 문헌 목록을 본 적이 있는가.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할 때 사용한 2차 사료 중 하나가 테오도르 몸젠(1817~1903)의

 

 

 

 로마는 영웅 전설부터 시작하지 않았다

 

 

책은 로마 역사를 '신화'로 바라보던 기존 시각에서 벗어나 고대 로마인의 삶과 로마의 흥망성쇠를 실증적으로 연구했다는 점에서 시대를 초월한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서 저자는 로마의 역사가 아니라 이탈리아의 역사를 다룬다고 말한다. 이탈리아 반도에 살던 전체 민족이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는 과정뿐만 아니라 민족과 언어의 원류를 세밀하게 소개하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권은 로마 건국의 신화 로물루스와 레무스 이야기로 독자를 로마의 세계로 초대한다. 하지만 몸젠의 책은 다르다. 이탈리아 초기 민족이 반도에 정착되는 사실부터 시작한다.

 

 

로마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다. 2천 700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는 역사가 한 곳에 압축돼 있다. 로마를 본다는 것은 그 안에 응축된 역사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건국 설화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가 팔라티노 언덕을 중심지로 정하고 암소와 황소에 쟁기를 달고 사각형의 경계선을 그어 로마가 탄생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몸젠이 수집한 연구 성과에 따르면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한 기원전 753년 이전에도 고대 이탈리아 민족은 조직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 민족은 크게 라티움 지방 종족과 움브리아 종족으로 나뉘는데 초기에는 유목 생활을 하다가 이탈루스 왕에 의해서 농경 생활로 전환하게 된다. 이탈루스 왕은 이탈리아 초기 법 제정에도 깊이 관여할 정도로 이탈리아 역사의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몸젠의 실증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진정한 로마 건국의 시초는 이탈루스인 것이다.

 

 

 

 2천 년 묵은 민족적 통일의 씨앗

 

이탈리아의 역사는 로마 제국 분열 이후 동, 서로마로 분열되다가 중세에 들어서 밀라노, 베네치아, 나폴리 같은 도시국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도시국가의 전성기가 지난 후에도 여전히 이탈리아는 작은 왕국들을 통틀어 부르는 하나의 집합체 이름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이탈리아 민족주의 부흥에 힘입어 가리발디가 이탈리아 통일을 달성하게 된다. 간추린 이탈리아의 역사를 살펴보게 되면 이탈리아인들이 ‘민족’으로서의 동질성 인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굵직굵직한 역사의 근간만으로 역사 속 민족의 특징을 규정하면 곤란하다. 이탈리아가 분열과 갈등을 거듭하는 '콩가루' 나라가 아니다.  

 

 

민족적 동질성을 정치 영역보다는 놀이와 예술에서만 드러내는 희랍인과 다르게 이탈리아 인은 이미 자기통제에 기초한 민족의식을 형성하고 있었다. 라티움 평야에 있는 작은 부락들은 독립된 주권을 가질 정도로 통치자가 다스리는 공동체로 발전했다. 그러면서도 ‘연맹체’라는 공동체 의식은 남아 있었다. 몸젠은 씨족 부락의 라티움 연맹 공동체의 등장에 대해 지역 분리주의를 극복할 수 있었으며 민족적 유대감을 고취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민족적 통일의 꽃은 가리발디가 활동하던 19세기에 늦게 피었을 뿐 종자는 이미 고대에 형성되었고 발아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2천 년 묵은 연꽃 종자가 조그만 새싹을 틔우듯이 그렇게 ‘로마 민족’은 탄생했다.

 

 

 

 

 실증주의 역사의 대부(代父)

 

몸젠의 역사 서술 방식은 역사적 증거물을 제시해서 실증적이면서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그의 역사에는 ‘가정(假定)’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나긴 세월의 풍파에 파묻혀 역사가의 기억 속에 사라질 뻔한 역사적 문헌을 분석하는데도 몸젠은 주관적인 해석을 지양한다. 프랑스 출신의 화가 쿠르베는 “나는 보이지 않는 천사를 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을 실제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사실주의적 회회의 당위성을 주장한 것이다. 몸젠은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으며 증명 불가능한 신화를 역사로 서술하지 않았다. 그는 신화를 ‘스스로 역사이기를 희망하지만 훌륭할 것 없는 단순한 설명’이라고 정의한다. 자신 즉, 역사가가 사료를 충분히 검토해서 설명될 수 있는 내용을 진짜 ‘역사’라고 인식했다. 몸젠의 로마사는 실증주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시작한 시대에 쓴 책이다. 간혹 전체적인 틀을 보는 거시사적 관점을 옹호하고 개인의 행위, 사유, 문학 등을 역사의 대상으로 제외해야 한다는 역사관을 드러나는 내용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보수적으로 보일 수 있는 역사관은 사망할 때까지 인생의 절반을 로마사 개정에 몸 바친 탐구 정신을 생각해서 애교로 봐주자.(몸젠이 최종적으로 개정 증보한 로마사는 그가 죽은 후 1904년에 출판되었으나 끝내 미완성으로 남겨지고 말았다) 소설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의 목소리를 강하게 내세우는 일본인이 쓴 로마사와 비교하면 몸젠의 로마사는 인문학적 가치가 훨씬 높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신문을 소리 내서 읽어본 적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살면서 책을 소리 내서 읽어본 경험은 하나씩 다 있을 겁니다. 그런데 신문을 소리 내서 읽어보는 우리의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매일 아침 조간신문을 소리 내서 읽는 우리의 모습이 무척 낯설게 느껴집니다. 솔직히 신문을 한 글자 한 글자 소리 내서 읽는 사람을 만나기란 드문 일이니까요.

 

다른 질문을 하겠습니다. 신문을 눈으로 읽어본 적이 있습니까? 신문을 읽는다는 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활동 중의 하나입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우리는 신문을 보는 이들을 자주 볼 수 있거든요. 그런데 20대에게 신문은 여전히 낯선 인쇄매체입니다. 스마트폰, 인터넷 서핑에 익숙한 우리는 그나마 인터넷 신문을 읽긴 합니다. 하지만 종이신문을 꼼꼼히 읽는 20대는 많지 않습니다. 지하철에 탔을 때 앉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해보세요. 종이신문을 읽고 있는 중후한 연세의 어르신 옆에는 스마트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대학생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제 주변에 있는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 매일 종이신문을 읽거나 신문 기사 내용을 주제로 대화의 물꼬를 트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게다가 집에서 종이신문을 정기 구독하는 친구도 보기 어렵습니다. 재미있게도 이들은 신문 읽기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신문을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신문을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거죠. 신문 읽기는 나이 든 사람의 습관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대신에 종이신문을 들여다보는 20대를 어디 본 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젊은 친구들에게 신문 읽기를 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문을 읽어야 지식이 축적되고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혀질 것이라는 식으로 장점을 말로 열거한다고 해서 네모난 스마트폰 화면 속에 갇혀버린 그들의 생각을 구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즘은 종이신문을 읽는다는 것은 무의미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종이신문 대신에 스마트폰 화면 안에 있는 인터넷 뉴스를 보라고 말합니다. 스마트폰으로 한눈에 수많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확인한 정보의 기억은 과연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요?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습득한다고 해서 우리의 뇌가 '스마트'(smart)하게 되진 못합니다. 그냥 눈으로 인터넷 신문을 훑어보는 것은 수박 겉핥기식 정보 습득에 불과합니다.

 

매스미디어 홍수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수많은 매체들로부터 정보를 접할 수 있습니다. 정보매체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문제의 핵심은 인터넷 독자들은 대개 관심 있는 것만 골라서 보기 때문에 사고의 극단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이나 모바일폰 이용의 부작용을 연구한 학자 니콜라스 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사람들이 동일한 텍스트를 읽더라도 종이책이 아닌 컴퓨터 화면으로 읽으면 기억이나 성찰 능력이 떨어진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랑, 정의, 배려, 경청, 관용, 도덕과 같은 가치를 성찰할 수 있는 정신적 공간을 스마트폰에서 찾기 어렵습니다. 신문과 책을 많이 읽은 스티브 잡스는 스마트폰을 만들었는데, 스마트폰 이용자, 특히 젊은 세대는 신문과 책 읽기 장애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양한 시각과 깊이 있는 분석을 제공하는 신문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습니다.

 

 

 

 

 

 

 

 

 

 

 

 

 

 

 

 

 

 

 

혹자는 신문 읽기에 대해서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일부 신문 기사들 중에는 공정하지 못하고 올바른 내용이 없는 영양가 불량인 것이 많다고요. 이에 대해서 주류 언론에 할 말이 많았던 소설가 커트 보니것은 <나라 없는 사람>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뉴스매체인 신문과 TV는 오늘날 국민 전체를 대표하기에 너무나 부실하고, 너무나 무책임하고, 너무나 비겁하다.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매체는 책밖에 없다.”

 

 

 

 

 

 

 

 

 

 

 

 

 

 

 

 

 

 

사실 종이신문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한 사실을 어느 정도 인정하기는 합니다. 특히 나쁜 신문의 그릇된 기사는 신문을 맹목적으로 읽는 젊은 독자의 상식 습득의 과정과 양심을 마비시킬 수 있습니다. 매일 아침 집으로 배달되는 신문을 읽는 사람들 대다수는 자기가 선택한 신문의 기사 내용과 논조를 그대로 믿어버리고 싶어 합니다. 특정한 신문을 선택한 바로 그 이유가 자신이 그 신문에 보내는 신뢰의 결과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일단 선택한 뒤에는 스스로 어떠한 의심이나 비판도 용납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신문 읽기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가 중요합니다. 저학년 어린이나 청소년들 대부분은 NIE 교육을 많이 배우게 됩니다. NIE 교육은 무조건 이제 막 성장하려는 어린이, 청소년들에게만 국한되는 건 아닙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기 위해 걸음마하기 시작하는 대학생들도 NIE 교육을 받으면 좋습니다.

 

신문은 단순한 정보와 지식을 나열한 종잇조각이 아닙니다. 신문 속에는 많은 지혜, 지식이 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지혜와 지식을 습득함으로써 생각하는 힘을 길러 주게 됩니다. 또한 세상을 바르고 반듯하게 살아가기 위한 진리와 가치와 정의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기에 행복한 삶의 방법과 우리의 생활을 한층 윤택하게 해 주는 구실을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통한 단순 검색이나 뉴스 검색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 대하여 해설 기사나 사설, 칼럼 등은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생각하며, 표현하는 기능을 길러주는지 종이 신문을 찬찬히 읽으며 정리해야 가능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힘을 통해 광범위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인생의 길잡이로서 신문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매일 아침에 읽지 않아도 좋습니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종이신문을 눈으로 읽어보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근법의 탄생

 

 

 

 

 

 

 

 

 

 

 

 

 

 

 

 

 

 

 

 

 

 

 

 

 

 

 

 

 

 

 

기원전 2만 년경,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탄생한 미술의 최대 꿈은 박진감 넘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화면에 옮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삼차원의 현실을 이차원의 평면에 그리는 것은 아주 오랜 동안 거의 불가능한 요원한 꿈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변화하게 될 것들을 미리 자신 앞으로 끌어당겨서 자기의 작품 속에서 그 역동적 에너지를 원근법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당시 원근법은 단순히 이미지를 구성하는 방식이 아니다.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원근법이라는 구성방식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마사초 「삼위일체」  1426년경

 

 

원근법은 사람의 눈에 보이는 3차원 공간의 물체나 공간을 2차원의 평면 위에 거리감과 깊이감을 주어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원근법은 주로 풍경화 등 넓은 공간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1417년 무렵 건축가 브루넬레스키(1377~1446)가 최초의 실험적 시도로써 투시 원근법과 소실점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완성한 이후, 회화에서는 마사초(1401~1428)의 <삼위일체>에서 최초로 실현되었다. 르네상스 미술가들은 광학과 기하학적 지식에 근거한 원근법을 이용하여 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 대상의 사실적인 측면을 강조하고자 했다.

 

마사초는 브루넬레스키가 발명한 투시 원근법을 이 작품에 응용하는 창의성을 발휘하게 된다.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원근법을 사용해 후면의 벽면과 천장이 깊어 보이는 입체감을 주는 공간구성 방식을 창조해낸 것이다. 그리고 이 좁은 공간에 삼위일체의 형상을 묘사하는 성부를 포함해 6명의 형상을 그려 넣어도, 전혀 좁아 보이지 않게 작품을 구성했다.

 

 

 

 서양의 대표적 원근법, 투시 원근법

 

원근법은 투시 원근법과 대기 원근법으로 나뉘는데, 투시 원근법은 일정한 비율이나 법칙이 없이 단순히 멀리 있는 것을 위에 또는 작게 그리거나 사선을 사용하여 배경을 표현하는 초보적인 원근 표현방식을 탈피하여 기하학적인 기초 위에서 과학적인 방법으로 체계화시킨 일종의 공식이다. 투시 원근법은 삼차원의 대상물들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대상들이 이루는 공간 내에서의 원근을 표현하기 위해 소실점을 도입했다. 소실점의 개수에 따라서 1점 투시, 2점 투시, 3점 투시로 나눌 수 있다.

 

 

 

 

 

마인데르트 호마바  「미들하르니스의 길」 1689년

 

 

1점 투시는 소실점이 한 개다. 물체의 한 면을 정면에서 볼 때 생기는 투시로, ‘평행선 원근법’이라고도 한다. 주로 건축물 실내, 길게 나 있는 길, 가로수, 가로등 등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되고, 소실점이 가운데 집중되어 멀고 깊은 공간감을 느낀다. 2점 투시는 소실점이 2개다. 물체의 한 면 대신 모서리를 중심으로 볼 때 생기는 투시로, ‘사선 원근법’이라고도 한다. 이는 기하학적인 입체가 시선에 빗겨 일정한 각도로 틀어져 있거나, 모서리가 화면 표면에 완전히 돌출된 듯이 보인다. 3점 투시는 소실점이 3개이고, 위에서 내려다 볼 때 생기는 투시로, ‘조감도법’이라고도 한다. 물체를 바로 위에서 바라보면 좌, 우, 위 3개의 소실점이 생긴다.

 

 

 

 

 

 동양의 원근법, 삼원법

 

 

 

 

 

 

 

 

 

 

 

 

 

 

 

 

중국의 북송(北宋) 때의 화가 곽희는 북송 산수화 양식을 완성하여 화면에 포치하기 위한 시점의 다변화를 최초로 시도했다. 이 때부터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산수화를 표현할 때 삼원법이라는 원근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삼원법은 고원법, 평원법, 심원법 3가지가 있다. 독립된 각 시점에 일치한 시점만의 고집에서 이러한 시점을 한 화면에 복합적으로 적용했다는 것에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이는 곧 산점투시(散點透視)를 의미한다.

 

 

 

 

 

정선  「청풍계(淸風溪)」 제작연도 미상

 

 

산점 투시는 이동 시점에서 생기는 여러 시점으로 바라본 것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고정된 시점에서 대상을 보지 않고, 위치를 여러 번 바꾸어 가면서 대상을 보는 것을 말한다. 이는 미술가가 한 공간 안에, 같은 시간대에 동시에 출현할 수 없지만 서로 연관되어 있는 사물들을 한 화면에 담을 수 있게 함으로써, 작품의 주제를 더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다.

 

산점 투시는 구도의 배치에도 자유롭다. 고정된 소실점에 따라 물체를 바라보는 서양의 투시 원근법과 다르게 산점 투시는 소실점이 다양하며 고정적이지 않다. 그래서 구도의 필요에 따라 좌우와 상하의 거리 조정 등의 표현이 자유로운 편이다. 그래서 화가는 대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화면의 예술적 효과를 얻어내기 위해, 화가 자신이 가장 절실하다고 느낀 부분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해서 표현한다.

 

 

 

 

정선 「금강전도(金剛全圖)」 1734년 (왼쪽, 고원법)

김홍도 「명경대(明鏡臺)」 제작연도 미상 (가운데, 평원법)

정선 「구룡폭포」 제작연도 미상 (오른쪽, 심원법)

 

 

‘고원법’은 높은 산을 산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상태에서 생기는 높이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고원법을 이용한 그림은 자연의 웅대함과 위압감을 느낄 수 있다. '진경산수'를 대표하는 정선의 <금강전도>는 서양의 원근법과는 전혀 다른 다시점의 공간구성법을 통해 금강산의 일만이천 봉을 하나의 화폭에 담고자 한다. 화가는 체험을 바탕으로 하되 풍경에 대한 어떤 이상향적 관념을 품은 채 금강산의 숭고미와 신비감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평원법’은 산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느낌으로 마치 앞산에서 뒷산을 건너다보는 평평한 공간의 넓이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평원법을 이용한 그림은 자연의 광활함이 느껴진다. ‘심원법’은 높은 산의 정상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표현하는 방법으로, 심원법을 이용하여 그린 그림은 자연의 깊이감을 느낄 수 있다. 채색을 할 때 고원인 경우에는 청명한 느낌이 나게 하며, 평원은 밝고 어두움이 고루 나타나게 하여 심원은 무겁고 어둡게 표현한다.

 

 

 

 객관적 재현을 강조한 서양, 체험의 공간을 강조한 동양

 

 

 

 

 

 

 

 

 

 

 

 

 

 

 

 

 

르네상스시대 서구 미술을 지배해 오며, 환영적 사실주의를 꾀했던 전통적 방법은 1점 투시에 의한 원근법이었다. 이는 화면에서 시점의 통일성을 요구하게 되어 관찰자로 하여금 형태의 사실적 화면을 느끼게 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을 뛰어넘어 동양에서는 다시점(多視點)을 통한 화면전개 방식을 구사했다. 한 화면 속에 고원, 심원, 평원 등의 적용은 흩어진 시점 즉 복수시점을 말한다.

 

 

 

 

파블로 피카소  「다니엘 헨리 칸바일러의 초상」 1912년

 

 

바로 상반된 논리를 동시다발적 표현으로 결합시키는 것이 큐비즘(cubism)의 혁명이라 할 수 있는데, 큐비즘은 대상을 해체하고, 시점을 이동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본 대상을 자유롭게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눈에 보이는 대상을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인지하는 것으로 그리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그림은 3차원의 모방을 넘어서 시간을 담은 4차원으로 이동하였다.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큐비즘의 다시점 방식은 이미 오래전에 동양의 화가들에 의해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근대 서양회화의 가장 핵심적인 기법은 원근법인데, 전근대 동양의 그림에서는 이 원근법을 찾아볼 수 없다. 왜 그런 것일까?  그렇다고 원근법이 없는 동양화의 미적 가치를  서양화와 비교하면서 낮출 필요는 없다. 이것은 인식의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관의 문제다. 원근법은 과학의 대두와 개인의 등장이라는 르네상스시대의 사건과 깊은 관련이 있다. 개별적·독자적 주체인 화가의 시선으로 대상을 보고 그것을 화폭에 옮길 때 원근법이 출현한 것이다. 동시에 원근법은 수학적 질서다. 공간은 시점의 각도에 의거해 기하학적 질서로 인식된다. 근대 서양회화의 그림은 이 기하학적 공간에 사물을 배치하는 방식을 따른다. 그러니까 기하학적 공간을 회화의 공간을 만드는 보이지 않는 선험적 공간인 셈이다.

반면에 동양의 그림에는 이런 기하학적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원근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 곧 주체는 그림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 속 풍경의 일부이다. 그 풍경 안에서 산수의 신비감과 숭고미를 체험하는 것이다. 정선의 <금강전도>는 ‘진경산수’라고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진경은 아니다. 그것은 여러 시점에서 관찰한 금강산을 마음에 품은 채로 그 산의 숭고미와 신비감을 극단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림을 그렇게 그린 이유를 김우창 교수는 회화의 기법을 근본적으로 규정한 세계관에서 찾는다. 풍수사상이 보여주는 대로 땅은 사람이 깃들어 사는 곳이자 무한을 향해 초월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표상한다. 그 땅의 세계와의 일체감이 중요했기 때문에, 동양의 산수화는 풍경을 대상화하기보다는 그 안에 들어가 체험하는 공간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반면에, 서양은 사물을 객관적으로 재현하는 것에서 쾌감을 느꼈다.

 

대상을 그린다는 것은 우리의 눈을 통한 관찰이 우선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관념적으로 직접 보지 않고 그리는 예도 있지만 시각적 언어인 그림은 어떠한 대상을 관찰하는 것부터 출발한다. 그림을 그릴 때 우리의 눈앞에 놓여 있는 대상물을 어떠한 방식으로 보는가에 따라 실제적 결과물은 천차만별이다. 대상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가에 앞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그리는 화가의 자세다. 그리고 동양의 삼원법을 통해서 서양의 원근법처럼 그림을 그릴 때 언제나 정확한 형태와 배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철나무꾼 2013-05-01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북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읽다보면 말이죠,
가본 것만으로도 축복이고 은총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나와요.
그렇다면 보고 경험하고 할 수 있는...
현대를 살아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누릴 수 우리들은 행복한가 하고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들지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자세와 더불어,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의 자세까지 얘기하자면 오지랖이겠죠~--;
 
[블루레이] 풀 메탈 자켓
스탠리 큐브릭 감독 / 워너브라더스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초대받지 못한 전쟁영화

 

군대를 제대한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군대에서 정신교육을 받아 봤을 것이다. 모든 것이 제한된 ‘군대’라는 집합 공간 안에서 생활하고 또한 목적의식조차 불분명한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장병들을 통제하기 위해선 여러 가지 방법이 필요하다. 매주 토요일 오전에는 정신교육 시간이라고 하여 전 부대원들이 아침부터 점심 식사 시간까지 생활관(예전에는 ‘내무실’, ‘내무반’이라는 용어로 부르기도 했음)에 비디오를 시청한다. 국군 방송에서 방송되는 프로그램의 형식은 주로 국방부나 각 제대의 고위층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강연이었다. 힘들게 임무를 수행중인 현역 병사들이 강연을 듣고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고 목적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강연을 통해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이 강연이 끝나고 난 뒤에는 항상 국군을 홍보하는 선전물이 나온다. 선전물에도 역시 우리 국군의 우수성과 장점들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1년 군 생활 중에 상반기와 하반기, 둘로 나누어 1주일씩 집중적으로 정신교육만 진행하는 집중정신교육기간이 있다. 이 기간에도 정신교육의 날과 비슷한 프로그램들로 진행된다. 예전 정신교육의 날에서 보던 국군 홍보물을 다시 보게 되고 가끔은 전쟁영화도 단체로 보게 된다. 내가 복무하던 사단 부대에서는 집중정신교육기간만 되면 꼭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틀어주곤 했다. 가끔 <블랙 호크 다운><라이언 일병 구하기><에너미 엣 더 게이트><진주만> 등과 같은 소위 전쟁영화 베스트 명작들도 틀어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 한 작품 역시 역대 전쟁영화의 고전으로 꼽히면서도 집중정신교육 시청자료로서 초대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면 바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풀 메탈 자켓>이다.  

 

 

 

 순진한 뚱보는 어떻게 살인기계로 변하게 되는가 

 

 

 

 

아직 군대의 무서운 맛(?)을 몰랐던 순박한 청년 로렌스는...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전반부와 후반부가 뚜렷하게 갈리는 영화다. 전쟁영화라면 전선의 한가운데에 뛰어든 병사들의 장면이 많이 차지하는 법이다. 그러나 <풀 메탈 자켓>은 전선에 들어가기 전의 시간적 과정부터 시작된다. 전동 면도기 앞에 힘없이 풍성한 머리카락이 뚝뚝 바닥으로 떨어져 빡빡머리가 되어가는 사내들의 얼굴들이 각각 한 컷씩 등장한다. 전반부는 훈련소에서 청년들이 살인 병기로 개조되는 과정을 그렸고, 후반부는 베트남에서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이런 의도성이 엿보이는 단절적인 내러티브 구조가 서있긴 하지만 이 영화는 큐브릭의 다른 영화들 치고는 평이한 수준에 속한 편이다. 갖가지 복합적인 연출 테크닉들이 차곡차곡 쌓아져 커다란 효과를 노리는 큐브릭의 특기를 이 영화에선 그다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군대와 전쟁 그 자체를 말하려고 할 뿐이다.

 

 

 

 

자기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무시무시한 '살인 병기'로 변하고 맙니다...

 

 

동작이 굼뜨고 아둔한 ‘뚱보’ 신병 로렌스는 군대라는 단체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강박에 시달리게 된다. 그는 교관 하트먼 중사의 ‘밥’이다. 사격은커녕 총기 분해조차 제대로 못하는 파일을 하트먼 중사는 모욕적으로 대한다. 로렌스 때문에 단체 기합을 계속 받아 화가 난 소대원들이 어느 날 밤 잠자는 그를 집단 폭행한다. 결국 정신이 황폐해진 로렌스는 신병훈련소를 나가기 전날 밤 하트먼 중사를 소총으로 살해하고 자살한다.

 

큐브릭은 전반부에서 왜 로렌스가 하트먼 중사를 죽었는지를 이야기한다. 평면적인 해석일 수도 있지만, 결국은 군대 제도라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비인간적인지를 증명하고 있다. 무조건적 연대책임과 인권 무시, 신체 혹사를 통해 바른 정신을 배양한다는 구시대적 유물론. 천재적으로 냉정한 탐구자의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납득할 수 없는 곳이었을 것이다.

 

 

 

 

 군대라는 특수한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시무시한 강박증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다보면 군대에 관한 화제에서 벗어 날 수가 없다. 나 또한 군대를 다녀왔고 주변엔 온통 군대를 갈 사람이거나 군대에 가 있는 사람,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 천지 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자 셋이 모이면 군대 얘기가 나오게 되는데(초면이면 더더욱) 남자들이 만들어 내는 내무반, 얼차려, 구타, 탈영 이야기를 질리도록 하고 또 하게 된다. 이 땅은 과거에 전쟁이 있었고 지금은 반으로 갈려 핵이 있어 없어 쏠까 말까하고 앉았으니 의무가 된 건 당연하지만, 이 의무에는 신성함이 곁들여 있으니까 구실 좋게 애국자들이 되는 게 아니겠나. 남자는 군대 다녀와야 사람 된다는 거짓말이 유효한 사회라서 인지 몰라도, 군대라는 집단이 가진 폭력성을 이야기 하는 사람이 참 드물다. 우리는 흔히 군대 무용담을 술안주 삼아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면 과거 고통스러웠던 군대 단체 기압이라거나 선임병한테 가혹 행위 당하던 시절들의 일화가 어느새 즐거운 추억담으로 변주된다. 그 때 느꼈을 강박의 경험들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듯이 말이다. 

 

 

 

 

 

 

 

영화 속 인물들이 드러나는 강박 증상은 흡사 이 나라를 지키고 있는 군인들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무언가 비위가 거슬리면서도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충성스러워야 하는 강박, 신성해야만 하는 강박, 그런데 두들겨 맞아버리니 강박, 그래서 그만큼 두들겨 패줘야 하는 게 강박, 그걸 모른 척 해야 하는 강박, 함부로 말해서도 안 되는 강박, 그래서 무사히 전역하고야 말겠다는 강박. 기어코 미쳐버린 군인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자살, 또는 자살이 아닌데도 자살이여야만 하는 자살, 이것 또한 강박.

 

영화를 본 나의 소감은 ‘아니, 저런 걸 갖고 뭘 저러나…’였다. 영화에서 ‘고문관’ 로렌스가 받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수준은 별것 아니었다. 중학교 때 이미 원산폭격을 경험했다. 신병훈련소에서 구타는 없었지만 영화 속 파일이 듣던 욕설에 버금가는 폭언도 들어봤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섬뜩해졌다. 일상의 폭력에 너무 관대해져 버린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 그 누구도 말할 수 없었던 강박증을 마음의 관물대 속으로 억지로 짱박혀 둔 적이 있었는데. (짱박히다: ‘숨다’를 나타내는 군대 비속어)

 

 

 

 승자도 패자도 없는, 상처의 포탄 자국만 남아 있는 전쟁터 

 

 

 

 

 

전반부의 훈련병 조커는 후반부에서 베트남 파병군의 기자가 된다. 베트남 휴(hue) 시에서 훈련소 동기를 만나게 된 조커는 그들과 동행하지만, 베트콩의 습격을 받게 된다. 후반부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바로 이 휴 시에서의 전투이다. 전쟁영화 마니아라면 정말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전쟁 장면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적들을 소탕하는 인물들을 통해 느끼는 일종의 희열감이라든가 적의 눈을 피하면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는 과정을 보면서 느껴지는 긴박감 등은 이 영화에서 좀처럼 느낄 수가 없다. 영화 속 병사들은 저돌적으로 적을 소탕하는 것도 아니다. 언제 자신의 심장에 박힐지도 모르는 저격수의 총알 하나에 두려워하지 않고 진격하려는 전쟁 영웅도 없다.

 

부득이하게 동료가 한 명씩 ‘보이지 않는 적’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전략을 펼치기 위한 판단력이 흔들릴 정도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로 인해 조커의 일행은 무려 3명이 희생당하지만, 알고 보니 보이지 않는 적은 어린 소녀 저격수 한명 뿐이었다. 저격수를 해치우는데 성공하지만 남는 것은 승리의 쾌감도, 복수의 만족감도 아니다.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쓴맛뿐이 남아 전쟁의 딜레마를 표현하고 있다. 이런 상황 설정을 통해 큐브릭은 전쟁에 영웅이란 없다고, 그들은 결코 전쟁에 승리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영화 제목인 ‘풀 메탈 자켓’은 원래 M16 실탄의 탄피에 대한 애칭이지만(영화 원제는 ‘메탈 자켓’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전쟁 앞에서 ‘풀 메탈화’하는 인간의 행동학을 지칭하고 있다. 본부로부터 낙오된 부대가 베트남 전장에서 행하는 자연발생적 전투에서 정점에 달한다. 동료애, 용기, 자존심 같은 가장 인간적인 감정은 배제된 채 ‘로봇신체’의 실질적인 에너지로 아이러니하게 작동함을 보여주는 일종의 사고실험이다. 동료의 어처구니없는 죽음, 자연히 솟아오르는 복수심과 인간적 자존심은 나중에 알고 보니 연약한 베트남 소녀가 저격수였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병사들을 광적 전투로 몰고 간다.

 

 

 

 공포의 전쟁터 속에서 우리의 인간성(humanity)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큐브릭의 손에 그려진 군대와 전쟁은 정말 그 자체로 공포로 다가오는 것이다. 군대 내부에서 인간이 아닌, 시계태엽 장치 속의 부품과도 같은 신세가 된 인간들은 존엄성을 잃었고 합법적 대량살상을 허용하는 전쟁 속에서 망가졌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전쟁의 실상에 대하여 더욱 차가워진 탐구자 스탠리 큐브릭의 시선이 느껴진다.

 

<풀 메탈 자켓>은 베트남 전쟁의 씁쓸함을 그린 전쟁영화다. 그러나 마그리트식 이름 붙이기로 이 영화를 정의한다면 이것은 전쟁영화가 아니다. 평범한 청년들을 전쟁도구로 만드는 과정이나 미군 헬기에서 베트남 민간인들을 향해 재미있다는 듯이 마구 기관총을 난사하는 장면 등에서 전쟁을 비판하는 대개의 다른 전쟁영화와 언뜻 흡사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을 뛰어넘어 씁쓸한 유머까지 던지며 전쟁과 군대를 마구 조롱하고 있는 스탠리 큐브릭을 발견할 수 있다. 포탄 파편이 난무하고 선혈이 흩뿌리는 대규모 전쟁 장면 뒤에 대단한 승전의 감동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특히 <플래툰>보다는 좀 더 최신작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블랙 호크 다운>에 찬사를 마다하지 않으며 군대 정신 교육 단골 영상으로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기억하는 또래 젊은 친구들에게는 말이다.

 

그런데!  진짜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전쟁영화 속 멋진 군인 주인공처럼 멋지게 적군들을 해치우고 폼나게 담배 한 대를 피우면서 쉴 수 있을까?  TV 브라운관 속 전쟁처럼 실제 전쟁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전쟁은 영화가 아닌 엄연한 현실이다. 어떤 이념도 구호도 허구일 뿐이다.

 

당해보지 않고는 젊은 세대는 전쟁이라는 단어 두 글자를 함부로 말할 수 없으리라. 그 공포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축을 위한 철학]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건축을 위한 철학 - 세상에 단 하나뿐인
브랑코 미트로비치 지음, 이충호 옮김 / 컬처그라퍼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망치를 파괴의 도구가 아니라 창조의 도구로 활용한 사람이 있다. 바로 철학자 니체다. 니체를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한다. 기존의 철학을 부수고 그 위에 새로운 철학의 집을 지었던 철학자였기 때문이다. 니체를 망치 철학자라고 하는 이유는 근대를 마감하면서 플라톤 이후 2500년간 서구인들이 신봉해왔던 전통적 가치관을 가차 없이 깨부수었기 때문이다. 그는 낡은 가치관을 전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 위한 도구로서 망치를 활용한 철학자다. 미래를 창조하려면 과거를 파괴하고 그 위에 살고 싶은 새로운 미래를 건설해야 한다. 우상 파괴자, 사유의 망치를 들고 사정없이 부숴버린 니체가 망치를 들고 부수는 행위는 새로운 창조를 전제로 하는 창조적 파괴다.

 

철학자 니체는 망치를 직접 들어 새로운 세상의 등장을 몸소 증명하려고 했다. 그렇다면 진짜 손에 망치를 든 건축가는 새로운 건물의 건립을 위해 ‘철학’이 필요하다면 이것 또한 창조적 파괴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건축’은 글자 그대로 건물을 세운다는 뜻이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공간을 창조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에 대해 논할 때 은유적으로 건축과 건축가를 들었다. 건축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증명한 셈이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옛 건축가에게 철학은 벽돌을 쌓아올리기 위한 토대와도 같았다. 이는 건축물에 대한 일종의 ‘존재의 증명’이기도 했다. 역으로 이야기 해보면, 건축가가 자신의 철학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면 그의 건축은 그저 벽돌로 쌓은 건물에 불과하다. 물론, 그 건축가의 철학 역시 허공에 지은 관념에 불과할 것이다.

 

철학을 논하기 위해 건축가에게 기본을 물어보자. 좋은 집이란 과연 무엇이냐고. 전망이 좋은 곳에 지은 아름답고 멋진 집인가, 아니면 화려고 웅장한 집인가. 그렇다면 그의 건축은 단순한 거주의 공간이자 건축주의 욕망을 위한 표현 수단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는 건축을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이끌어가고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의 질서로서 판단하고 그 가운데 어떠한 의미들이 건축적 논의 밖으로 확장되도록 한다. 사실상 우리 사회가 바라는 관계의 위상을 이해하고 추구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건축의 본질과 내용을 결정한다. 건축은 근본적인 존재적인 문제, 사회적인 문제, 문화의 문제를 담고 있으며 그 문제들을 해결하고 제시하고자 하는 시대의 의지를 표현한다.

 

고대 로마의 건축이론가 비트루비우스는 인체와 건축의 관계를 분석하고 건축미를 기하학적으로 정의했다. 비트루비우스를 계승한 르네상스 시대의 알베르티는 건축미를 이루는 방, 벽, 기둥, 창의 비례체계를 집대성했다. 이들이 추구했던 아름다움은 인간의 오감으로 느끼기 이전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원리였다. 건축을 위한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건축가가 바로 르네상스 시대 때 활동했던 안드레아 팔라디오다. 그는 건축물은 완벽한 비율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자신의 건축 철학을 하나의 이론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현상학적 사고와 시야는 철학으로부터 얻어진 결과다. 건축에 대한 신체적이고 무의식적인 연결은 현상학으로 인하여 일부 이론가들의 연구대상이 되었는데 그러한 토대는 후설에 의하여 개진되었다. 그리고 하이데거의 작업에 의하여 건축의 현상학적 고려는 형태중심적 사고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미적 토대를 마련했다. 이러한 현상학적 결과들을 노르웨이의 건축 이론가 노르베르트 슐츠는 존재 철학적인 토대에서 장소론으로 발전시켜 건축술에 적용하고자 했다.

 

기존의 형이상학은 중심의 현존을 주장하기 위해 이분법적 대립항을 만들어 완전한 것을 첫째로 하여 특권을 부여하고, 오염된 것은 둘째로 보아 억압했다. 하지만 데리다가 주장한 해체이론의 출발은 전통적으로 확립된 모든 이분법적 대립이 붕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기 미국현대건축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혼란기를 거칠 때 새롭게 등장한 것이 해체주의 건축이다. 피터 아이젠만 같은 건축가들은 진부한 기존의 모더니즘을 파괴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했다. 해체주의 건축의 외형적 특성은 비대칭적, 불확실성의 추구이다. 또한 기능주의적 전제는 무시되기도 한다.

 

건축을 철학 한다는 것은 그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이 스스로 건축이라는 관계의 위상과 의미를 결정하는 것이다. 위대한 창조자, 매우 숙련된 기술자 그리고 뛰어난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건축가들은 모두가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철학의 핵심 이론을 먼저 설명하고 철학이 버무려진 건축 이론을 설명하고 있어서 건축학도가 아니라도 건축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곁에 두고 틈틈이 펼쳐볼 수 있다. 물론 정독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 책 내용이 그다지 어렵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시대정신과 철학에 따라 진화하는 건축물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세상에 단 하나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int236 2013-04-29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축물을 면과 면의 결합 및 경제적, 공간적인 부분으로 볼 것인가, 이데아의 구현으로 볼 것인가가 이 책에서 말하는 건축에 대한 해석의 가장 주된 흐름이겠지요?

cyrus 2013-04-30 17:18   좋아요 0 | URL
이번 달에 중간고사 기간이 겹쳐서 늦게나마 책 읽고 급하게 서평을 썼어요... 한 두 번 정도 곱씹어 읽어보고 써야했는데 번갯불 콩 구워 먹듯이 읽고 쓰다보니 제가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