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풀 메탈 자켓
스탠리 큐브릭 감독 / 워너브라더스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초대받지 못한 전쟁영화

 

군대를 제대한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군대에서 정신교육을 받아 봤을 것이다. 모든 것이 제한된 ‘군대’라는 집합 공간 안에서 생활하고 또한 목적의식조차 불분명한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장병들을 통제하기 위해선 여러 가지 방법이 필요하다. 매주 토요일 오전에는 정신교육 시간이라고 하여 전 부대원들이 아침부터 점심 식사 시간까지 생활관(예전에는 ‘내무실’, ‘내무반’이라는 용어로 부르기도 했음)에 비디오를 시청한다. 국군 방송에서 방송되는 프로그램의 형식은 주로 국방부나 각 제대의 고위층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강연이었다. 힘들게 임무를 수행중인 현역 병사들이 강연을 듣고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고 목적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강연을 통해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이 강연이 끝나고 난 뒤에는 항상 국군을 홍보하는 선전물이 나온다. 선전물에도 역시 우리 국군의 우수성과 장점들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1년 군 생활 중에 상반기와 하반기, 둘로 나누어 1주일씩 집중적으로 정신교육만 진행하는 집중정신교육기간이 있다. 이 기간에도 정신교육의 날과 비슷한 프로그램들로 진행된다. 예전 정신교육의 날에서 보던 국군 홍보물을 다시 보게 되고 가끔은 전쟁영화도 단체로 보게 된다. 내가 복무하던 사단 부대에서는 집중정신교육기간만 되면 꼭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틀어주곤 했다. 가끔 <블랙 호크 다운><라이언 일병 구하기><에너미 엣 더 게이트><진주만> 등과 같은 소위 전쟁영화 베스트 명작들도 틀어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 한 작품 역시 역대 전쟁영화의 고전으로 꼽히면서도 집중정신교육 시청자료로서 초대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면 바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풀 메탈 자켓>이다.  

 

 

 

 순진한 뚱보는 어떻게 살인기계로 변하게 되는가 

 

 

 

 

아직 군대의 무서운 맛(?)을 몰랐던 순박한 청년 로렌스는...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전반부와 후반부가 뚜렷하게 갈리는 영화다. 전쟁영화라면 전선의 한가운데에 뛰어든 병사들의 장면이 많이 차지하는 법이다. 그러나 <풀 메탈 자켓>은 전선에 들어가기 전의 시간적 과정부터 시작된다. 전동 면도기 앞에 힘없이 풍성한 머리카락이 뚝뚝 바닥으로 떨어져 빡빡머리가 되어가는 사내들의 얼굴들이 각각 한 컷씩 등장한다. 전반부는 훈련소에서 청년들이 살인 병기로 개조되는 과정을 그렸고, 후반부는 베트남에서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이런 의도성이 엿보이는 단절적인 내러티브 구조가 서있긴 하지만 이 영화는 큐브릭의 다른 영화들 치고는 평이한 수준에 속한 편이다. 갖가지 복합적인 연출 테크닉들이 차곡차곡 쌓아져 커다란 효과를 노리는 큐브릭의 특기를 이 영화에선 그다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군대와 전쟁 그 자체를 말하려고 할 뿐이다.

 

 

 

 

자기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무시무시한 '살인 병기'로 변하고 맙니다...

 

 

동작이 굼뜨고 아둔한 ‘뚱보’ 신병 로렌스는 군대라는 단체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강박에 시달리게 된다. 그는 교관 하트먼 중사의 ‘밥’이다. 사격은커녕 총기 분해조차 제대로 못하는 파일을 하트먼 중사는 모욕적으로 대한다. 로렌스 때문에 단체 기합을 계속 받아 화가 난 소대원들이 어느 날 밤 잠자는 그를 집단 폭행한다. 결국 정신이 황폐해진 로렌스는 신병훈련소를 나가기 전날 밤 하트먼 중사를 소총으로 살해하고 자살한다.

 

큐브릭은 전반부에서 왜 로렌스가 하트먼 중사를 죽었는지를 이야기한다. 평면적인 해석일 수도 있지만, 결국은 군대 제도라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비인간적인지를 증명하고 있다. 무조건적 연대책임과 인권 무시, 신체 혹사를 통해 바른 정신을 배양한다는 구시대적 유물론. 천재적으로 냉정한 탐구자의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납득할 수 없는 곳이었을 것이다.

 

 

 

 

 군대라는 특수한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시무시한 강박증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다보면 군대에 관한 화제에서 벗어 날 수가 없다. 나 또한 군대를 다녀왔고 주변엔 온통 군대를 갈 사람이거나 군대에 가 있는 사람,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 천지 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자 셋이 모이면 군대 얘기가 나오게 되는데(초면이면 더더욱) 남자들이 만들어 내는 내무반, 얼차려, 구타, 탈영 이야기를 질리도록 하고 또 하게 된다. 이 땅은 과거에 전쟁이 있었고 지금은 반으로 갈려 핵이 있어 없어 쏠까 말까하고 앉았으니 의무가 된 건 당연하지만, 이 의무에는 신성함이 곁들여 있으니까 구실 좋게 애국자들이 되는 게 아니겠나. 남자는 군대 다녀와야 사람 된다는 거짓말이 유효한 사회라서 인지 몰라도, 군대라는 집단이 가진 폭력성을 이야기 하는 사람이 참 드물다. 우리는 흔히 군대 무용담을 술안주 삼아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면 과거 고통스러웠던 군대 단체 기압이라거나 선임병한테 가혹 행위 당하던 시절들의 일화가 어느새 즐거운 추억담으로 변주된다. 그 때 느꼈을 강박의 경험들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듯이 말이다. 

 

 

 

 

 

 

 

영화 속 인물들이 드러나는 강박 증상은 흡사 이 나라를 지키고 있는 군인들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무언가 비위가 거슬리면서도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충성스러워야 하는 강박, 신성해야만 하는 강박, 그런데 두들겨 맞아버리니 강박, 그래서 그만큼 두들겨 패줘야 하는 게 강박, 그걸 모른 척 해야 하는 강박, 함부로 말해서도 안 되는 강박, 그래서 무사히 전역하고야 말겠다는 강박. 기어코 미쳐버린 군인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자살, 또는 자살이 아닌데도 자살이여야만 하는 자살, 이것 또한 강박.

 

영화를 본 나의 소감은 ‘아니, 저런 걸 갖고 뭘 저러나…’였다. 영화에서 ‘고문관’ 로렌스가 받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수준은 별것 아니었다. 중학교 때 이미 원산폭격을 경험했다. 신병훈련소에서 구타는 없었지만 영화 속 파일이 듣던 욕설에 버금가는 폭언도 들어봤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섬뜩해졌다. 일상의 폭력에 너무 관대해져 버린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 그 누구도 말할 수 없었던 강박증을 마음의 관물대 속으로 억지로 짱박혀 둔 적이 있었는데. (짱박히다: ‘숨다’를 나타내는 군대 비속어)

 

 

 

 승자도 패자도 없는, 상처의 포탄 자국만 남아 있는 전쟁터 

 

 

 

 

 

전반부의 훈련병 조커는 후반부에서 베트남 파병군의 기자가 된다. 베트남 휴(hue) 시에서 훈련소 동기를 만나게 된 조커는 그들과 동행하지만, 베트콩의 습격을 받게 된다. 후반부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바로 이 휴 시에서의 전투이다. 전쟁영화 마니아라면 정말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전쟁 장면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적들을 소탕하는 인물들을 통해 느끼는 일종의 희열감이라든가 적의 눈을 피하면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는 과정을 보면서 느껴지는 긴박감 등은 이 영화에서 좀처럼 느낄 수가 없다. 영화 속 병사들은 저돌적으로 적을 소탕하는 것도 아니다. 언제 자신의 심장에 박힐지도 모르는 저격수의 총알 하나에 두려워하지 않고 진격하려는 전쟁 영웅도 없다.

 

부득이하게 동료가 한 명씩 ‘보이지 않는 적’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전략을 펼치기 위한 판단력이 흔들릴 정도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로 인해 조커의 일행은 무려 3명이 희생당하지만, 알고 보니 보이지 않는 적은 어린 소녀 저격수 한명 뿐이었다. 저격수를 해치우는데 성공하지만 남는 것은 승리의 쾌감도, 복수의 만족감도 아니다.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쓴맛뿐이 남아 전쟁의 딜레마를 표현하고 있다. 이런 상황 설정을 통해 큐브릭은 전쟁에 영웅이란 없다고, 그들은 결코 전쟁에 승리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영화 제목인 ‘풀 메탈 자켓’은 원래 M16 실탄의 탄피에 대한 애칭이지만(영화 원제는 ‘메탈 자켓’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전쟁 앞에서 ‘풀 메탈화’하는 인간의 행동학을 지칭하고 있다. 본부로부터 낙오된 부대가 베트남 전장에서 행하는 자연발생적 전투에서 정점에 달한다. 동료애, 용기, 자존심 같은 가장 인간적인 감정은 배제된 채 ‘로봇신체’의 실질적인 에너지로 아이러니하게 작동함을 보여주는 일종의 사고실험이다. 동료의 어처구니없는 죽음, 자연히 솟아오르는 복수심과 인간적 자존심은 나중에 알고 보니 연약한 베트남 소녀가 저격수였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병사들을 광적 전투로 몰고 간다.

 

 

 

 공포의 전쟁터 속에서 우리의 인간성(humanity)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큐브릭의 손에 그려진 군대와 전쟁은 정말 그 자체로 공포로 다가오는 것이다. 군대 내부에서 인간이 아닌, 시계태엽 장치 속의 부품과도 같은 신세가 된 인간들은 존엄성을 잃었고 합법적 대량살상을 허용하는 전쟁 속에서 망가졌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전쟁의 실상에 대하여 더욱 차가워진 탐구자 스탠리 큐브릭의 시선이 느껴진다.

 

<풀 메탈 자켓>은 베트남 전쟁의 씁쓸함을 그린 전쟁영화다. 그러나 마그리트식 이름 붙이기로 이 영화를 정의한다면 이것은 전쟁영화가 아니다. 평범한 청년들을 전쟁도구로 만드는 과정이나 미군 헬기에서 베트남 민간인들을 향해 재미있다는 듯이 마구 기관총을 난사하는 장면 등에서 전쟁을 비판하는 대개의 다른 전쟁영화와 언뜻 흡사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을 뛰어넘어 씁쓸한 유머까지 던지며 전쟁과 군대를 마구 조롱하고 있는 스탠리 큐브릭을 발견할 수 있다. 포탄 파편이 난무하고 선혈이 흩뿌리는 대규모 전쟁 장면 뒤에 대단한 승전의 감동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특히 <플래툰>보다는 좀 더 최신작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블랙 호크 다운>에 찬사를 마다하지 않으며 군대 정신 교육 단골 영상으로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기억하는 또래 젊은 친구들에게는 말이다.

 

그런데!  진짜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전쟁영화 속 멋진 군인 주인공처럼 멋지게 적군들을 해치우고 폼나게 담배 한 대를 피우면서 쉴 수 있을까?  TV 브라운관 속 전쟁처럼 실제 전쟁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전쟁은 영화가 아닌 엄연한 현실이다. 어떤 이념도 구호도 허구일 뿐이다.

 

당해보지 않고는 젊은 세대는 전쟁이라는 단어 두 글자를 함부로 말할 수 없으리라. 그 공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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