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의 작업

 

인간은 누구나 꿈을 꾼다. 이 꿈에 대한 해석은 많은 선각자들의 숙제 중 하나였다. 히포크라테스도 꿈을 통해 몸을 치료하고자 했으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자와 의학자들도 꿈의 존재와 인식에 대해 수많은 고찰을 해왔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 실체가 요원한 분야는 아직 도처에 산재되어 있다. 우리네 일상생활에서도 여러 분야와 현상들이 과학으로 완벽한 해석을 하기 어려운 바가 존재하는데, 꿈 또한 그러하지 않은가 한다.

 

인간이 꿈을 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면서도 꿈을 꾸는 것은 현실세계와의 통로를 열어 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외부자극에 반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잠든 사이에 온도나 촉각, 소리에 대한 자극이 꿈으로 만들어지는 이유도 이렇게 설명이 가능하다. 몸은 잠들었어도 지각신경은 살아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꿈을 억압된 '소망'의 위장된 '충족'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꿈을 해석하는 것은 우리가 마음의 무의식적 활동에 이를 수 있는 왕도라고 봤다. 그렇다면 자는 동안 수없이 꾸게 되는 꿈은, 의식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평소에 원했던 소망이 환각적 경험 속에서 충족되는 과정의 편린들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꿈은 현실의 반대'라는 속설처럼, 꿈속에서 표현된 소망은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춘 채 늘 위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꿈에 관한 기억은 '꿈의 내용'이란 것과 '꿈의 사고'라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실제 드러나는 꿈 속 세계에서 있었던 직접적이고 현시적인 꿈이다. 이에 반해 후자는 그 드러난 세계 이면에 있는 보다 간접적이고 잠재적인 꿈이다. 다시 말하자면, '꿈의 내용'이 우리가 경험하거나 기억하는 것으로서의 꿈이라면, '꿈의 사고'는 꿈의 진정한 뜻과 의미를 파악하게 해주는 측면으로서의 꿈이다.

그렇게 '꿈의 내용'이 '꿈의 사고'로 전환되는 과정을 프로이트는 '꿈의 작업(Traumarbeit)'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압축', '전치', '표상'의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세 과정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꿈의 세계에서 경험하는 일은 늘 현실 세계의 조건과 맥락을 초월한다. 수면 위로 드러나는 빙산이 전체 얼음 덩어리의 극히 작은 일부이듯이 실제 우리가 기억하는 꿈은 잠재적인 꿈보다 늘 작은 내용을 갖도록 축소된다(압축). 또한 실제의 소망은 그대로 나타나지 않고 다른 얼굴로 변장을 한다(전치). 그리고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고 떠올리던 것들은 꿈속에서 생생한 이미지로 치환되어 나타난다(표상). 이처럼 꿈이란 것을 꾸게 됨으로서 우리는 심리적으로 자신의 욕망과 정서를 우회적으로 충족시키거나, 망각하거나, 억압하거나, 퇴행시키는 것이다.

 


 ♣ 인생은 꿈

 

염세주의나 허무주의에서 나온 것이든, 혹은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이라는 철학적 자세에서 나온 것이든 인간이 한때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게 혹시 꿈은 아닌가’ 하는 회의를 갖는 것은 본능의 수준이 아닌가 싶다. 고래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의문에 빠진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깊은 단계까지 가는 사람은 공연히 정말로 염세주의나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꿈이 아니라면 ‘인생은 연극이다’라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 나만의 비정상이라든가 과도함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

 

 

 

 

 

 

 

 

 

 

 

 

 

 

 

 

 

 

 

 

셰익스피어도 그의 작품 『뜻대로 하세요』에서 “온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여자와 남자는 배우일 뿐이다”라며 ‘인생은 연극’이라고 했다. 그는 『맥베스』에서도 “인생은 변하는 환영(幻影)일 뿐/ 짧은 순간 무대 위에 있다 사라지는/ 아무 뜻도 없는”이라고 설파한다. 더 나아가 “이 짧은 인생은 한순간의 잠일 뿐”이라고까지 발전한다.

 

셰익스피어와 비슷한 시기의 바로크 시대 문인들도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지 않으면 꿈에 비유했다. 스페인 작가 칼데론은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이라는 희곡에서 “한순간의 꿈이 인생”이라고 했다. 덴마크의 철학자이자 극작가인 루드비히 홀베르는 <산(山)사람 에페>의 줄거리를 ‘인생은 꿈’이라는 모티브를 칼데론에게서 빌려왔다

 

에페란 사람이 도랑 옆에서 잠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남작의 침대에서 눈을 떴다. 그래서 꿈속에서 자기가 가난한 농부였을 뿐이라고 믿게 됐다. 다시 남작의 침대에서 잠이 들었는데 사람들이 도랑 옆으로 옮겨 놓았다. 이제 또다시 잠에서 깨어난 에페는 자기가 남작의 침대에 누워 있던 것이 꿈일 거라고 생각한다.

 

 

 

 

 ♣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하지만 인생을 꿈에 비유한 것은 훨씬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 고대 인도나 중국에서부터다. 대표적인 것이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이다.

 

“어느 날 장주(莊周)는 꿈을 꾸었다. 꽃과 꽃 사이를 훨훨 날아다니는 즐거운 나비가 되어 있었지만 문득 깨어보니 자신은 나비가 아닌 장주였다. 그런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나 자신은 나비인데, 장주에 대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대체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가?”

 

장자(莊子)의 이름이 주(周)다. 장주(莊周)가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꿈 속에 자기가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고 있었다. 꿈속에서 장주는 유유자적하여 자기가 장주인지 알지 못했다. 이윽고 꿈을 깨자 장주로 돌아왔다. 장주는 자기가 꿈을 꾸어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을 꾸어 자기가 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애매모호함’이 가지는 중요한 특징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경계가 애매하고 색깔이 분명하지 않아 유심히 관찰해도 이것이 저것인지, 저것이 이것인지를 잘 모른다는 뜻. 애매모호함의 이러한 특징은 장자의 호접몽에서 잘 나타난다.

 

장주와 나비, 나비와 장주가 또렷이 변별되면서 또한 변별할 수 없으니 지극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이치는 변별을 양식으로 삼는 지식 너머에 있는 것이므로 아무리 큰 성인이라도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호접몽 외에도 장자는 '제물론'에서 '큰 깸이 있은 뒤에야 현실이 꿈이었음을 안다(有大覺而後知此其大夢也)'고 했다. 꿈이라 인식되는 현실뿐만 아니라 꿈인 줄 아는 자신조차도 꿈속의 사람이므로 주관과 객관이 모두 큰 꿈인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장자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았던 서양철학자인 데카르트도 동일한 주제에 대해서 고민을 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해답을 찾는 일이다. 그 해답을 처음으로 구한 것은 데카르트라 할 수 있다. 그조차도 처음에는 깨어 있는 상태와 잠든 상태를 확실히 구분하는 특징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는 <성찰>에서 “내가 지금 여기서 윗도리를 입고 화롯가에 앉아 있다고 하는 것이 꿈이 아니라는 절대적인 보증은 없으므로 신뢰할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의심하고 있는 나 자신의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고 했다. 여기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명제가 나온 것이다. 데카르트 이전의 많은 석학들이 바로 그 직전에서 철학적 고찰을 끝내고 말았지만 데카르트가 비로소 ‘생각하는 나’만은 틀림없는 ‘현실’이라는 답을 찾은 것이다.

 

 

 

 

  ‘다른 세계’라는 절망적인 환상

 

 

 

 

 

 

 

 

 

 

 

 

 

 

 

 

최근 자각몽(lucid dreaming, 自覺夢)이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자각몽이란 수면자 스스로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채 꿈을 꾸는 현상을 말한다. 꿈을 꾸면서 스스로 그 사실을 인지하기 때문에 꿈의 내용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자각몽을 꾸는 비결이 있다. 꿈속에서 초현실적인 현상이나 비정상적인 사물을 발견하면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게 아닌가’ 하고 자문한다. 처음엔 그 순간 꿈에서 깨기 쉽지만, 연습을 계속하면 깨지 않고 의식을 유지할 수 있다. 지각하지 못하고 꾸는 꿈의 내용에 비해 현실적이며 일관성이 있다. 또 꿈을 꾸는 동안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수면상태와 깨어있는 상태의 차이가 거의 없다. 아직까지 확실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루시드 드림』의 저자 스티븐 라버지는 드림을 통해 스트레스 해소, 슬럼프 극복, 악몽 극복 등 자기를 괴롭히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루시드 드림은 자신을 치유하고 성장할 수 있는 도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자각몽으로 현실 속의 고민을 해결하는 사례도 제시하고 있다. 골프황제 잭 니클라우스는 어느 날 갑자기 슬럼프에 빠졌다. 아무리 애써도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서 공이 원하는 대로 잘 맞기에 살펴봤더니 자신이 평소와 다르게 클럽을 쥐고 있음을 알았다. 다음날 현실에서 꿈속의 방식대로 스윙을 해보니 공이 잘 맞아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원소주기율표를 만든 러시아의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원자량에 따라 원소를 분류하는 법을 발견하기 위해 오랜 세월 노력했지만 찾지 못했다. 1869년 어느 날, 그 문제와 씨름하다 지쳐 쓰러져 잠에 든 그는 꿈속에서 어떤 표를 보게 됐다. 그는 잠에서 깨자마자 곧바로 꿈에서 본 그 표를 종이에 옮겨 적었다. 그 표 가운데 잘못된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고 한다.

 

오늘자 국민일보는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 “자각몽 열풍이 불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젊은 층에서 자각몽이 대유행하는 것은 만화, 소설, 게임 등 개인적으로 현실 도피를 접할 수 있는 세대인 만큼 현실과 또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욕망 때문다. 이를 반증하듯, 최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자각몽’ 관련 글들이 속속들이 올라오며 현실과 다른 세계인 꿈에서나마 자유를 만끽하려는 젊은이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후기들 중에는 부작용에 가까운 것들도 있다. 한 자각몽 경험자는 “꿈 속에서 자해를 했는데 깨어난 후에도 몇 주일간 고통을 느꼈다. 악몽이 두려워 불면증이 생겼다”라고 적었다. 또 다른 자각몽 경험자는 “꿈속에서 내가 해를 입힌 사람이 자꾸 떠올라 괴롭다. 어린 시절 당했던 학교폭력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서 힘들다”라고 토로했다. 무리한 자각몽 시도로 피곤한 상태가 계속되거나, 자각몽에 몰입하다가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현실을 인식하는 주체도 객체인 현실도 몽땅 한바탕 큰 꿈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가 모두 꿈속의 허망한 일이라면 눈앞에 엄연히 전개돼 시시각각 접하는 사물들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물을 인식할 때 사물과 인식 주체인 자기 사이에 '나'란 관념 또는 이러저러한 상념들이 개입되지 않는다면 주체와 객체의 구별이 무너지고 허망한 꿈도 사라진다. 이것이 큰 꿈을 깨 변별하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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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뉘르주는 팡타그뤼엘의 부하로서 사악하고 교활할 뿐만 아니라 남을 골탕 먹이기를 잘 하는 주정뱅이다. 그가 마침 배를 타고 여행 중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양을 잔뜩 실은 상인과 함께 배를 타게 되었다. 상인은 허름해 보이는 팡타그뤼엘의 행색을 보고 모욕적인 말을 내뱉는다. 그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파뉘르주가 주인을 위한 복수를 꾸민다.

 

그리하여 좋은 말로 살살 구슬러 그 자가 데리고 가는 양들 가운데서 우두머리 격으로 보이는 제일 큰 양 한 마리를 비싼 값으로 산다. 그런 후에 그 양을 집어 들어 냅다 바다 속으로 던져 버린다. 양들에게는 크고 기운 센 우두머리 양을 따라 맹목적으로 행동하는 습성이 있었으므로 파뉘르주는 그런 습성을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파뉘르주의 양떼' 같은 부화뇌동(附和雷同)의 무리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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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퍼센트 우주 - 우주의 96퍼센트를 차지하는 암흑물질ㆍ암흑에너지를 말하다
리처드 파넥 지음, 김혜원 옮김 / 시공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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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주의 탄생

 

인류는 오래전부터 '우주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그 끝은 어디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어왔다. 수십 년 또는 수억 년 전의 과거 우주의 모습을 현재의 별빛을 통해 감상하며 그 경이로운 모습에 전율을 느끼기도 하고, 우주의 진화에 대해 궁금해 하기도 한다.

또한 우주에 숨어있는 정보를 분석하여 우주탄생의 단서를 찾기도 하고, 미래 우주의 운명을 예측하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우리는 우주의 많은 부분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우주는 여전히 결정적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인류가 그 베일을 벗겨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주는 시간과 공간조차 없는 절대적인 무에서 생겨났으며 지금 무한히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 현대물리학계의 정설이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은 시간을 거꾸로 돌려 이론적으로 우주를 수축시켜나가면 지금의 우주가 태초에 모래알보다 작은 한 점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137억 년 전, 태초의 우주에는 시간도 공간도 물질도 없었다. 단지 초고온 초고밀도의 특이점이 있었을 뿐이며, 우주의 모든 물질과 힘은 원자알갱이보다 작은 이 특이점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 특이점이 대폭발(Big bang)하면서 원시우주가 탄생했다.

 

이처럼 빅뱅은 절대적인 무에서 우주의 시공간을 동시에 탄생시켰다. 빅뱅 후 1초가 되었을 때 우주는 100가 넘을 정도로 뜨거웠고, 3분이 지나면서 온도가 10이하로 낮아지면서 수소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38만 년이 되었을 때, 온도가 3000정도로 낮아지면서 처음으로 전자가 원자 내부에 붙잡혀서 중성원자가 생기고, 에너지가 빛으로 방출되면서 그 빛이 암흑 속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빅뱅 이후 점점 낮아진 우주의 평균온도는 지금 영하 270(3K: -270)로 냉각되어 있다.

 

 

 

 

 ♣ 우리가 보고 있는 우주는 고작 4퍼센트

 

우주에 있는 물질은 시공간을 휘게 하여 중력을 만든다. 이 중력은 또한 물질을 끌어당겨 별과 은하를 만들면서 주위의 물질을 삼키기도 한다. 만약 우주에 물질이 충분하다면 중력 작용에 의해 우주가 다시 수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극초단파 탐사선(WMAP)이 관측한 최근자료에 의하면,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포함한 행성과 별들은 우주를 이루고 있는 총 물질과 에너지의 4퍼센트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수소와 헬륨 등 가벼운 원소들이 대부분이고, 질소, 산소 등의 무거운 원소는 0.03퍼센트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우주가 이처럼 텅 비어있다면 지금의 우주가 유지될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럼 나머지 96퍼센트는 무엇일까. 74%는 암흑 에너지고, 22%는 암흑 물질이다. 나머지 96퍼센트에 해당하는 물질에 암흑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도 그 물질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암흑 에너지와 암흑 물질의 정체를 모르면서도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관측 결과에 따르면 은하는 우주가 탄생한지 10억 년 이내에 태어났다고 보고 있다. 그렇지만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질량이 부족하기에 중력으로 신속하게 모여서 커다란 가스 구름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원소로만 우주가 이루어졌다면 10억 년 이내에 은하가 탄생할 수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은하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은하를 조종하는 무언가가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런 물질과 에너지가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바로 질량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전하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전자파가 나오지 않아서 우리가 알 수 없을 뿐이다. 쉽게 말해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는 몸을 숨긴 채 이 커다란 우주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2007네이처지에 실린 한 편의 논문은 이런 가설을 입증했다. 우주는 빠르게 팽창하고 있으며, 이렇게 우주가 가속 팽창하는 것은 물질들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에너지보다 큰 에너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96퍼센트 우주의 영향

 

이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의 성분을 규명하기 위해 많은 과학자들이 오늘날 연구에 몰두하고 있지만 여전히 정체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미래의 우주는 보이지 않는 이 두 힘, 수축하려는 중력과 팽창하려는 암흑에너지의 치열한 싸움에 의해 그 운명이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중력이 이기면 우주가 수축하여 다시 붕괴할 것이고, 암흑에너지가 이기면 우주는 한없이 팽창하여 해체될 것이다.

우리가 빛으로 관찰할 수 있는 우주물질의 양은 너무 적어 현재 가속되고 있는 우주팽창을 멈출만한 충분한 중력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만약 중력과 암흑에너지의 싸움에서 암흑에너지가 승리하면 우주팽창은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천억 년 후에는 은하와 은하 사이 또는 별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져 빛의 이동마저도 쉽지 않을 것이므로 암흑만이 우주공간을 지배하는 삭막한 우주가 될 것이다.

은하들이 하염없이 멀어져 가면서 우주의 모든 물질이 해체되고,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찬란한 별들도 아득히 저 멀리 사라져 버리기에, 점차적으로 빛마저 볼 수 없는 황량한 암흑우주의 시대가 도래 할 것이다. 신화와 전설이 죽고, 모든 것이 잠드는 그런 암울한 시대가 도래 할 가능성이 충분히 열려있기에, 어쩌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밤하늘이 가장 아름다운 우주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알퐁스 도데의 <별>에서 목동과 소녀가 함께 바라본 하늘과 별은 낭만적이었고 또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하늘이 과학자들에게는 의문으로 가득 차있고, 그들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별>의 마지막에 나오는 목동의 독백이 기억이 난다. “나는 수많은 별들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헤매다 지쳐 내 어깨 위에서 잠들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을 비춰주는 밤하늘의 별이 암흑 물질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을 알퐁스 도데는 몰랐다.

 

 

 

 

* 이 책은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과학자들의 여정을 한 편의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 책 한 권만으로 암흑 물질과 우주에 관한 최신 연구 내용을 이해하고 파악하기에는 과학 기초 개념을 잘 모르는 독자에게는 무척 어렵다. 기초 배경지식 없이 책을 읽다가는 과학자들의 뜨거운 경쟁과 분투를 그려 낸 드라마틱한 이야기에 몰입하기는커녕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심지어 과학적 내용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그림이나 사진, 도표가 단 한 장도 없다. '암흑 물질'과 관련된 우주에 관한 기초 지식을 습득하고 난 후에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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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과의 대화 - 세계 정상의 조직에서 코리안 스타일로 일한다는 것에 대하여 아시아의 거인들 2
톰 플레이트 지음, 이은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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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계절의 사나이

 

 

리더란 무엇인가? 무거운 책임과 의무로 점철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지키고, 구성원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상과 비전, 목표와 전략. 리더들에게 이러한 단어는 너무나도 친숙하다. 하지만 자신의 원칙과 상반되는 현실의 벽을 넘어서야 한다.

 

 

16세기 초 영국의 왕 헨리 8세의 권력에 저항하다 처형된 토머스 모어의 일생을 그린 영화 <사계절의 사나이>(Man for all seasons)를 통해서 리더라면 반드시 겪게 되는 ‘원칙과 현실의 조화’ 문제를 볼 수 있다. 모어는 가톨릭 신자로서 로마에 충성했다. 그는 헨리 8세의 이혼에 반대했고 왕이 영국국교회의 수장이 되는 것에 반대했다. 모어는 결국 국왕의 노여움을 샀고 반역죄로 몰려 처형당했다. 네덜란드의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는 토머스 모어를 ‘사계절의 사나이’라고 불렀다. 그 어떤 상황에도 변하지 않는 모어의 숭고한 인격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모어는 영국의 위대한 정치가, 사상가로 칭송받지만 영화에서는 자신이 세운 원칙과 현실을 조화시키지 못해 괴로워하는 인물로 나온다.

 

 

 

 ♣ '아시아 인 유엔 총장'으로서 산다는 것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리더십을 보게 되면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토머스 모어가 오버랩 된다. 반 총장은 개인으로서의 삶보다는 공무가 우선이며 솔직하고 정직한 청렴한 공직자 이미지다. 그래서 정치적 견해를 유지하면서 개인적 소회를 밝히는 데 있어 매우 신중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민감한 질문에 요리조리 빠져나가길 잘한다고 해서 ‘기름장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그런 그가 입을 열었다. ‘아시아 정보통’으로 손꼽히는 전 LA타임스 논설실장 톰 플레이트와의 대담집 <반기문과의 대화>에서다.

 

 

반 총장과 저자 톰 플레이트는 2010년부터 2012년 사이, 두 시간씩 모두 일곱 차례에 걸쳐 진행한 대담을 비롯해 사적으로 만나 나눈 여섯 차례의 대화를 나누었다. 반 총장에 관해 쓴 다른 책들이 그의 어린 시절부터 유엔 사무총장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면, 이 책은 유엔 사무총장이 되고 난 후의 이야기를 본인의 입을 통해 전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지닌다.

 

 

 

임기 초반 반 총장이 마주친 현실의 벽은 뜻밖에도 내부에 있었다. 기존 유엔 직원들과의 조화가 어려웠던 것이다. 반 총장은 고위급 외교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면서도 겸손한 편이다. 그런 아시아 스타일을 서구 언론뿐만 아니라 사무국 직원들에게는 달갑지 않다.

 

그러나 반 총장은 말보다 성과가 우선이고 솔선수범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개인의 카리스마보다 집단의 리더십, 즉 모든 사람의 지지와 합의를 기반으로 조직을 움직이는 리더십이 우선이라는 신념을 지켰다. 아이티 대지진, 칠레 광산 붕괴, 파키스탄 홍수 등 세계 재난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국제사회의 구호를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현장형 리더십을 보였다. 

 

이 책은 유엔이라는 조직과 사무총장이라는 직무의 한계도 보여준다. 유엔 사무총장은 오직 도덕적 힘과 권위, 그리고 회의 소집권만 있다. 모든 결정과 자원은 회원국에서 나온다. 분명한 한계 속에서 반 총장은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이라는 불가능한 꿈을 위해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다. 다른 국가 지도자들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동시 휴전’ 선언을 이끌어내기 위해 분주할 때, 그는 ‘동시 휴전’의 프레임을 탈피해 이스라엘의 ‘일방적’ 휴전을 성사시켰다.

 

 

 

 ♣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더 강하게 만든다

 

 

“많은 이들이 제게 유엔 사무총장은 세상에서 가장 불가능한 직업이라고 충고했습니다. 해보니까 알겠습니다. 이 일이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요. 농담 삼아 회원국이나 친구들에게 말하곤 합니다. 제 임무는 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가능한 임무로 만드는 것이라고요. 이게 제가 하는 일입니다. 제정신이든 아니든.” (47쪽)

 

 

 

유엔 사무총장의 임무는 공직에 대한 사명감 없으면 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불가능한 일이다. 사시사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끊이지 않은 ‘정글’의 세계를 국제 평화와 안전이 유지되는 ‘정원’으로 만드는 중대하면서도 불가능한 역할을 반 총장이 6년째 맡고 있다.

 

다시 영화 <사계절의 사나이>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처형 직전 토머스 모어는 마지막으로 사형집행인에게 이런 말을 한다. ‘자신의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정직한 원칙을 지키려고 했다. 반 총장도 세상에서 가장 불가능한 직업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더 강하게 만든다.’ 톰 플레이트는 철학자 니체의 격언을 언급하면서 차분하면서 강직한 성품의 반 총장을 평가했다. 내․외부에서 비롯된 현실의 벽을 두려워하지 않고 꿋꿋하게 맞서 극복한 그의 끈기는 유엔총회 193개국 만장일치로 연임에 성공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그야말로 반 총장은 서구 언론의 집중포화와 유엔 조직 및 직원들과의 갈등과 반발 속에서도 공직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세계 정상의 조직을 이끌어나가는 ‘세계절의 사나이’다. (세계절: ‘세계’와 ‘사계절’을 합친 조어)

 

 

열네 시간동안 이루어진 대화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낸 반 총장의 모습은 리더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알아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시련을 극복하고 실패를 이기는 힘은 결국 자기 자신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스스로를 이해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바로 안다는 것은 리더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저 최고의 자리에 있다고 해서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리더란, 리더라는 자리에 부합하는 실력과 윤리적 원칙, 위기관리 능력 등을 갖춘 관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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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24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까지 쓴 서평 중 최악의 내용. 다시 봐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글.

http://blog.aladin.co.kr/haesung/9079157 (2017년 1월 24일 작성)

레삭매냐 2017-01-26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같으면 창피해서 슬쩍 지웠을 텐데 대단하십니다...

그나저나 그 때의 미꾸라지와 지금의 미꾸라지는 다른
사람일지 자못 궁금해졌습니다.

cyrus 2017-01-28 08:22   좋아요 0 | URL
글 한 편을 쓰면, 정말 정성들여 쓰는 성격이라서 못 쎴다고 생각하는 글을 잊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시 고치기도 합니다. 이 글은 통째로 지우고 싶은데, 그냥 놔뒀습니다. 글 한 번 지운다고 해서, 부끄러움이 잊는 건 아니니까요. ^^;;
 
다시 새롭게, 지선아 사랑해
이지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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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잿더미를 뚫고 나오는 새싹처럼 다시 시작된 삶

 

“어젯밤 11시 반쯤 서울 한강로 1가에서 만취 상태의 운전자가 몰던 갤로퍼가 마티즈 승용차 등 여섯 대와 추돌했습니다. 이 사고로 마티즈 승용차에 불이 나서 차에 타고 있던 스물세 살 이 모 씨가 온몸에 3도의 중화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갤로퍼 승용차 운전자는 혈중 알코올 농도 0.35퍼센트의 만취상태였습니다.”

 

회사에 출근하면서, 학교를 가는 길에, 혹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흔하게 듣는 사건과 사고에 관한 뉴스들. 우리는 어쩌면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불의의 사고에 너무나 무딘 지도 모르겠다. 내성이 생길대로 생겨버린 걸까. 누군가의 자살 소식 앞에서도, 혹은 서울 이편에 살고 있는 한 남성의 죽음의 소식 앞에서도 너무 쉽게 망각하는 우리.

 

불에 데어본 사람만이 불의 뜨거움을 감각적으로, 온 몸으로 알 수 있다. 불에 덴 사람을 지켜보는 타인은 그저 ‘뜨겁겠다’라는 위로의 말만을 건넬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진심이라도. 결국은 불이 준 뜨거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제 앞에 나와 불의 잔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잔상은 생각보다 너무 오래가고, 그 상처는 깊다.

 

‘대한민국 화상 1등’이라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심각한 화상을 입은 이지선 씨에게 의료진조차도 ‘살아도 사람 꼴이 아닐 것’이라며 비관적 태도를 보였지만 그녀는 7개월간의 입원과 40번이 넘는 고통스러운 수술, 그리고 재활 치료를 이겨내고 코와 이마, 볼에서 새 살이 돋아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제2의 인생을 맞이한다. 잿더미를 뚫고 나오는 새싹처럼 삶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책으로 만들어졌고 최근 다시 한 번 브라운관을 통해 당당히 대중 앞에 섰다. 그녀는 스스로 증거가 되었다.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꽃다운 얼굴이 아니라 삶을 사랑하는 긍정적인 의지임을.

 

 

 

 

 ♣ 그저 행복하기 위해 노력할 뿐

 

그녀의 입술에서는 ‘감사’라는 고백이 많이 나온다. ‘살아있어서 흰 눈도 보고 추운 겨울을 다시 맞을 수 있어’ 감사하다는 것이 그녀가 말하는 고백의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통해 자신의 삶을 위로받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는 위로가 아닌 반성을 하게 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상황이, 마음이 시키는 대로 놔두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 절망한 사람의 끝은 너무나 자명하다. 지선 씨는 ‘절망은 사람을 죽이는 것’임을 스스로 배웠다. 누가 보아도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마음이 시키는 대로, 절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던 것이 절망적인 순간들마다 그녀가 해온 일이다. 그것이 절망이 그녀를 죽이지 못하도록 지선 씨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지금까지도 이렇게 ‘평범한’ 오늘을 누리며, 오늘보다는 더 달짝지근할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마음이 가는 대로 내 버려두지 않는 것,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고통 속에서 절망의 급류에 휩쓸리지 않고 그것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슬픔의 폭풍우 속에서 넘어지지 않고 서 있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외로움의 눈보라 속에서는 눈을 뜨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녀 또한 너무 괴로워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먹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신앙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고 더 나은 삶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정말 어렵다’는 말보다 더 무게가 실린 ‘쉽지 않다’는 말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쉽지 않은 일일수록 더 많이 애써야 하기에 더 의미 있다. 쉽지 않은 일이기에 더욱 열심을 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의 삶이 늘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저 행복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행복은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기에. 이런 그녀를 일으켜 세운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가족들의 사랑이다. 가족들 또한 신을 원망하기도 하고 지선 씨와 함께 괴로워하기도 하지만, 결국 강한 믿음과 서로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힘든 현실을 극복해 나간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지선 씨의 책에서는 칙칙함이나 우울함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 어떤 정상인보다 밝고 명랑하다. 그녀는 책에서 자신과 같은 중 증장애인을 ‘VIP’라고 표현한다. 맞는 말이다. 장애인들은 우연치 않은 기회에 삶의 비밀을 들여다 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다 가지지 않고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지선 씨는 죽음의 문턱과 편견의 문턱을 넘은 특별한 사람이다. 그녀의 책은 희망의 메시지로 가득하다. 인생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는 차가운 마음, 세상을 향한 조소와 냉소로 가득 찬 우리.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은 문을 꽁꽁 닫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을 활짝 열어놓고, 궂은 날씨든 좋은 날씨든 그것을 음미할 줄 아는 게 진짜임을 알게 하는 이 책은 책꽂이서 10년 20년 꽂아둘수록 깊이 있게 발효될 문장들이다.

 

 

 

 ♣ 고난을 사랑과 축복으로 여기는 특별한 사람

 

나무를 자세히 살펴보면 굴곡이 심한 나무일수록 당도가 높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사과보다는 배가, 배보다는 감이, 감보다는 포도가 당이 높다. 나무가 자기 몸을 흉하게 하면서까지 굴곡을 만들어 당도 높은 과일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굴곡진 인생이 값진 열매를 맺는 것 같다. 고통과 희생 없이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당도 높은 과일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굴곡진 인생의 지선 씨는 화상을 입은 후에 오히려 감사하다며, 베스트셀러를 썼고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일을 많이 하고 있다.

 

특별한 사람이란 남들과 다른 사람이다. 그녀는 일그러진 외모를 지니고 있어서, 화상 사고를 경험하고 이겨내서 특별하다. 그리고 그러한 외모 덕분에 남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었고 남들이 하기 어려운 재활 상담학이라는 공부를 선택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좀 더 많이 받을 수 있었고, 그 사랑을 소중히 여길 수 있었다.

 

지선 씨는 자신의 얼굴이 알려진 이후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예뻐요’, ‘참 아름다워요’ 하는 인사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이는 그를 놀리는 것이 아니고 진정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진 한 영혼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결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시련 속에서도 그녀가 선택한 것은 절망이나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희망이고 용기였다. 홀로 지내는 어둠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지내는 밝음이었다.

 

오늘은 미래를 향한 나의 남은 인생의 첫날이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오늘이다. 그녀는 인생을 덤으로 살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감사하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그녀는 특유의 밝음과 사랑의 에너지를 아낌없이 발산하고 있다. 나는 염치없이 그녀의 은혜를 넙죽 받았다. 고통 속에서도 희망과 삶에 대한 감사를 붙드는 사람, 이런 사람이야말로 향기를 품은 사람임이 분명하다. 그를 직접 만난 일이 없지만 언젠가 그를 만나면 나도 정답게 인사하리라. ‘지선 씨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해 준 모든 사람들도 더불어 사랑합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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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3-09-27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힐링캠프에 나와서 이야기하는 모습 보면서 많이 울었어요.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고통이기에 책으로는 보지 말아야겠다했는데, 님의 리뷰를 읽으니 아무래도 한 권 사서 책꽂이에 꽂아두어야겠습니다.

cyrus 2013-09-28 22:16   좋아요 0 | URL
원래 힐링캠프를 잘 안 보는데 지선씨가 나온다길래 저도 보게 됐어요. 여전히 명령하고 쾌활한 성격은 여전하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