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새롭게, 지선아 사랑해
이지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잿더미를 뚫고 나오는 새싹처럼 다시 시작된 삶

 

“어젯밤 11시 반쯤 서울 한강로 1가에서 만취 상태의 운전자가 몰던 갤로퍼가 마티즈 승용차 등 여섯 대와 추돌했습니다. 이 사고로 마티즈 승용차에 불이 나서 차에 타고 있던 스물세 살 이 모 씨가 온몸에 3도의 중화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갤로퍼 승용차 운전자는 혈중 알코올 농도 0.35퍼센트의 만취상태였습니다.”

 

회사에 출근하면서, 학교를 가는 길에, 혹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흔하게 듣는 사건과 사고에 관한 뉴스들. 우리는 어쩌면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불의의 사고에 너무나 무딘 지도 모르겠다. 내성이 생길대로 생겨버린 걸까. 누군가의 자살 소식 앞에서도, 혹은 서울 이편에 살고 있는 한 남성의 죽음의 소식 앞에서도 너무 쉽게 망각하는 우리.

 

불에 데어본 사람만이 불의 뜨거움을 감각적으로, 온 몸으로 알 수 있다. 불에 덴 사람을 지켜보는 타인은 그저 ‘뜨겁겠다’라는 위로의 말만을 건넬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진심이라도. 결국은 불이 준 뜨거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제 앞에 나와 불의 잔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잔상은 생각보다 너무 오래가고, 그 상처는 깊다.

 

‘대한민국 화상 1등’이라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심각한 화상을 입은 이지선 씨에게 의료진조차도 ‘살아도 사람 꼴이 아닐 것’이라며 비관적 태도를 보였지만 그녀는 7개월간의 입원과 40번이 넘는 고통스러운 수술, 그리고 재활 치료를 이겨내고 코와 이마, 볼에서 새 살이 돋아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제2의 인생을 맞이한다. 잿더미를 뚫고 나오는 새싹처럼 삶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책으로 만들어졌고 최근 다시 한 번 브라운관을 통해 당당히 대중 앞에 섰다. 그녀는 스스로 증거가 되었다.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꽃다운 얼굴이 아니라 삶을 사랑하는 긍정적인 의지임을.

 

 

 

 

 ♣ 그저 행복하기 위해 노력할 뿐

 

그녀의 입술에서는 ‘감사’라는 고백이 많이 나온다. ‘살아있어서 흰 눈도 보고 추운 겨울을 다시 맞을 수 있어’ 감사하다는 것이 그녀가 말하는 고백의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통해 자신의 삶을 위로받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는 위로가 아닌 반성을 하게 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상황이, 마음이 시키는 대로 놔두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 절망한 사람의 끝은 너무나 자명하다. 지선 씨는 ‘절망은 사람을 죽이는 것’임을 스스로 배웠다. 누가 보아도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마음이 시키는 대로, 절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던 것이 절망적인 순간들마다 그녀가 해온 일이다. 그것이 절망이 그녀를 죽이지 못하도록 지선 씨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지금까지도 이렇게 ‘평범한’ 오늘을 누리며, 오늘보다는 더 달짝지근할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마음이 가는 대로 내 버려두지 않는 것,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고통 속에서 절망의 급류에 휩쓸리지 않고 그것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슬픔의 폭풍우 속에서 넘어지지 않고 서 있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외로움의 눈보라 속에서는 눈을 뜨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녀 또한 너무 괴로워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먹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신앙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고 더 나은 삶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정말 어렵다’는 말보다 더 무게가 실린 ‘쉽지 않다’는 말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쉽지 않은 일일수록 더 많이 애써야 하기에 더 의미 있다. 쉽지 않은 일이기에 더욱 열심을 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의 삶이 늘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저 행복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행복은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기에. 이런 그녀를 일으켜 세운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가족들의 사랑이다. 가족들 또한 신을 원망하기도 하고 지선 씨와 함께 괴로워하기도 하지만, 결국 강한 믿음과 서로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힘든 현실을 극복해 나간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지선 씨의 책에서는 칙칙함이나 우울함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 어떤 정상인보다 밝고 명랑하다. 그녀는 책에서 자신과 같은 중 증장애인을 ‘VIP’라고 표현한다. 맞는 말이다. 장애인들은 우연치 않은 기회에 삶의 비밀을 들여다 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다 가지지 않고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지선 씨는 죽음의 문턱과 편견의 문턱을 넘은 특별한 사람이다. 그녀의 책은 희망의 메시지로 가득하다. 인생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는 차가운 마음, 세상을 향한 조소와 냉소로 가득 찬 우리.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은 문을 꽁꽁 닫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을 활짝 열어놓고, 궂은 날씨든 좋은 날씨든 그것을 음미할 줄 아는 게 진짜임을 알게 하는 이 책은 책꽂이서 10년 20년 꽂아둘수록 깊이 있게 발효될 문장들이다.

 

 

 

 ♣ 고난을 사랑과 축복으로 여기는 특별한 사람

 

나무를 자세히 살펴보면 굴곡이 심한 나무일수록 당도가 높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사과보다는 배가, 배보다는 감이, 감보다는 포도가 당이 높다. 나무가 자기 몸을 흉하게 하면서까지 굴곡을 만들어 당도 높은 과일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굴곡진 인생이 값진 열매를 맺는 것 같다. 고통과 희생 없이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당도 높은 과일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굴곡진 인생의 지선 씨는 화상을 입은 후에 오히려 감사하다며, 베스트셀러를 썼고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일을 많이 하고 있다.

 

특별한 사람이란 남들과 다른 사람이다. 그녀는 일그러진 외모를 지니고 있어서, 화상 사고를 경험하고 이겨내서 특별하다. 그리고 그러한 외모 덕분에 남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었고 남들이 하기 어려운 재활 상담학이라는 공부를 선택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좀 더 많이 받을 수 있었고, 그 사랑을 소중히 여길 수 있었다.

 

지선 씨는 자신의 얼굴이 알려진 이후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예뻐요’, ‘참 아름다워요’ 하는 인사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이는 그를 놀리는 것이 아니고 진정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진 한 영혼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결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시련 속에서도 그녀가 선택한 것은 절망이나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희망이고 용기였다. 홀로 지내는 어둠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지내는 밝음이었다.

 

오늘은 미래를 향한 나의 남은 인생의 첫날이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오늘이다. 그녀는 인생을 덤으로 살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감사하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그녀는 특유의 밝음과 사랑의 에너지를 아낌없이 발산하고 있다. 나는 염치없이 그녀의 은혜를 넙죽 받았다. 고통 속에서도 희망과 삶에 대한 감사를 붙드는 사람, 이런 사람이야말로 향기를 품은 사람임이 분명하다. 그를 직접 만난 일이 없지만 언젠가 그를 만나면 나도 정답게 인사하리라. ‘지선 씨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해 준 모든 사람들도 더불어 사랑합니다.’라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잘잘라 2013-09-27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힐링캠프에 나와서 이야기하는 모습 보면서 많이 울었어요.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고통이기에 책으로는 보지 말아야겠다했는데, 님의 리뷰를 읽으니 아무래도 한 권 사서 책꽂이에 꽂아두어야겠습니다.

cyrus 2013-09-28 22:16   좋아요 0 | URL
원래 힐링캠프를 잘 안 보는데 지선씨가 나온다길래 저도 보게 됐어요. 여전히 명령하고 쾌활한 성격은 여전하더군요. ^^